기모진은 과감히 시동을 걸었다.그 말을 들은 소만리의 얼어붙은 얼굴에 점차 기대감의 미소가 떠올랐다.전면의 백미러를 통해 기모진은 소만리가 두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눈동자에 한없는 설렘과 한 가닥의 긴장감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그녀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기모진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마침내 그녀의 이런 미소를 다시 보았다.붐비는 길을 한참을 달린 끝에 차는 마침내 소만리가 익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수상쩍은 듯 차창 밖으로 펼쳐진 경치를 바라보았다.설마 그 아이가 사월산 쪽에 줄곧 살고 있는 걸까?그럼 누가 우리 아이를 돌봐줄까?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마침내 차가 천천히 멈추었다.소만리는 기모진이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 주기도 전에 서둘러 차에서 내려 달려나갔다.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전혀 낯설지 않은 사월산의 해변이었다.추운 겨울 음력 12월의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니, 서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이런 계절에는 해변에 놀러 오는 사람도 전혀 없고, 인근 마을 주민들도 발길이 뜸했다.소만리는 텅 빈 주위를 둘러보더니 기모진 앞으로 몸을 휙 돌려 달려갔다.“기모진, 내 아이는요!”그녀가 절박하게 물었다.“당신 나를 여기에 왜 데려왔어요? 나는 내 아이를 만나야 해요!”“오늘 중으로 꼭 아이를 보여 줄게.”“오늘 중? 기모진, 당신 도대체 왜 이래요? 또 나를 놀리는 거예요?”기모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내렸다.“나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어.”“무슨 뜻이에요?” 소만리는 참을성이 없어 보였다.“당신은 나를 용서할 수 없고, 더 이상 예전처럼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래서 나는 당신과 하루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어.”그의 말에 소만리는 아연실색하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기모진, 당신이 한 말이 얼마나 우스운지 알아요?”“나도 알아.”남자는 속삭였고, 깊은
기모진은 그 기회를 틈타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아내를 데리고 이곳에 와서 추억을 찾는 중이에요.”소만리는 조금 불만스러운 듯 기모진을 힐끗 보았지만, 남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노부인을 도와 고구마를 치운 후 바로 들어 올렸다.“근처에 사시죠? 제가 갖다 드릴게요.”“그럼 정말 고맙겠어요.”노부인은 사양하지 않고 앞으로 가라고 길을 안내했다.기모진은 소만리의 손을 잡고 바짝 따라붙었다.소만리는 손을 빼려다 실패했다.“당신들은 정말 서로 사랑이 깊은 가봐요, 이렇게 추운 날 해변에 오다니요.”노부인은 웃으며 돌아보았다. 소만리와 기모진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니 웃음이 더 짙어졌다.“새댁,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는 남편이 있으니 정말 행복하겠어요. 그때 당신 발에 상처가 났을 때, 그가 당신을 등에 엎고 헐떡거리면서 얼마나 걱정하던지 아니나 다를까 나는 당신들이 분명 해낼 거라고 생각했어요.이 말을 들은 소만리는 입가에 비웃음을 지으며 기모진을 바라보았다.“할머니, 할머니께서 보신 것은 겉모습만 보신 거예요.”“할머니, 이 잘생긴 남자가 당신을 보는 눈빛만 사랑으로 가득 한 거예요.”노부인은 농담으로 말했다.“그리고 부부싸움은 당연하죠. 제 남편이 있을 때에는 매일 잔소리를 하곤 했지만, 그가 떠나고 나니 온 세상이 황량한 것 같았어요.”“사람의 인생은 사실 아주 짧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답니다.”“할머니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꼭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행복하게 해줄 거예요.”기모진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끝을 이어갔다.노부인은 자식을 가르치는 눈빛으로 기모진을 바라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노부인이 사는 곳에 이르렀다.소만리는 기회를 틈타 기모진의 손을 놓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작별인사를 하려고 할 때, 노부인은 그들에게 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따뜻하게 초대했다.소만리가 거절하려는 것을 보고, 기모진은 더 빨리 승낙했다.그러자 노부인은 반가운 마
그 말을 들은 소만리는 비꼬듯이 웃었다.그녀는 웃고 또 웃었지만 그녀의 눈시울은 바닷바람에 점점 젖어갔다.“기모진,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아름다운 눈동자는 이미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당신은 나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 순간에 나를 좋아했다고요?”소만리는 이 좋아한다는 말이 가장 비참했다.“기모진, 한사람을 좋아하는 다는게 이런 건가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설마 당신의 관념 속에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녀에게 매섭고 다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 인가요?”소만리는 마음속의 불만을 완전히 털어놓았고 바닷바람이 휘몰아쳐 그녀의 눈가에서 흐르는 눈물을 떨어뜨렸다.그 눈물이 기모진의 손등에 떨어졌고, 눈물의 뜨거운 온도가 그의 피부를 가늘게 태우고 있었다.“기모진, 당신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나를 속이지 말아요. 당신은 항상 소만영을 사랑했는데, 그녀가 그렇게 잔인한 짓을 했어도, 당신은 그녀를 옹호했어요. 내가 누명을 쓰고 모함 당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 당신은 나를 비바람이 몰아치는 길가에 내던지고 죽게 내버려 두었어요!”이를 들은 기모진은 고통에 목이 메어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그는 두 팔을 벌려 소만리를 품에 안았다.“그만해, 이제 그만해……..”그는 구차하고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소만리는 기모진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더욱 화를 내며 주먹을 들어올려 그를 때렸다.“기모진 날 나줘요, 왜 말을 못하게 해요? 당신이 저질러 놓고, 왜 나는 말을 못하게 해요!”“내가 당신을 그렇게 사랑했을 때, 당신은 내 사랑을 당신 발 아래 놓고 짓밟아 버렸어요! 내가 ‘죽는’ 날까지 당신은 여전히 소만영과 행복하게 약혼했어요, 당신은 한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찔려 죽는 맛이 어떤지 알아요? 사는게 죽는 것 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알기나 해요?”소만리
소만리는 입을 벌려, 무자비하게 기모진의 입술을 깨물었다.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심취한 깊은 눈을 떴다.그러나 그의 눈에는 웃음기가 어려 있었는데, 분명히 소만리의 무자비한 거절을 극도의 즐거움으로 여겼다.그는 그녀를 놓아주고 뺨을 한 대 맞았다.소만리는 그를 극도로 미워하며 기모진의 입술에 묻은 피를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다른 여자한테 키스했던 입술로 키스하지 마세요! 역겨우니까!”그녀는 분노하며 몸을 돌렸다.기모진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입가에 묻은 헌혈을 닦으며 말했다.“내가 키스한 사람은 당신 한사람이야.”소만리는 그 말을 듣고 걸어가던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기모진은 소만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당신이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이야. 나는 당신 이외의 여자와 키스한 적이 없어.”소만리는 눈을 날카롭게 뜨며 말했다.“그래요, 당신은 다른 여자와 키스한적이 없겠죠, 그래서 당신은 소만영을 건드린 적이 없어요? 그럼 당신들은 군군을 어떻게 낳았죠? 생각만 했더니 군군이 태어났나요?”“......”기모진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기모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만리는 비웃음을 더했다.“그때 그녀가 임신을 몇 번 했는지도 잊었어요? 더군다나 한번은 악독한 저로 인해 유산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우리의 결혼기간 동안 당신이 언제 밤에 돌아온 적이 있어요? 당신은 매일 그 마귀랑 함께 있었잖아요!”“기모진, 당신이 아직도 남자라면, 당당해야죠, 내가 당신을 업신여기지 못하게.”소만리는 노발대발하며 길에 주차된 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문을 쾅 닫았다.기모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었다가 이따금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그의 코트의 냉기가 더 심해졌다.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기란군이 소만영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소만영과 결코 관계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직감이 있었다.그가 술에서 깨어 있을 때 그는 자신이 그녀를 건드린 적
아들?소만리는 멍하니 멈추었다가 갑자기 깨달았다.소만영이 나를 속였어. 내가 그때 낳은 아이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어!소만리의 심장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눈썹에 미소를 머금은 남자를 바라보며 눈동자 속에 한 가닥의 의문이 남았다.기모진은 소만리의 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그녀를 바라보며 깊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소만리의 의심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했고, 그녀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모씨의 집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소만리의 다급한 모습을 보며 기모진은 미안한듯 눈을 내리깔았다.소만영은 확실히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렀는데, 그는 언제 아닌 적이 있을까?마침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사화정은 기란군의 손을 잡고 모현과 함께 식당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하인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선생님, 사모님, 천리아가씨가 오셨어요!”사화정과 모현은 귀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향해 걸어오는 소만리를 보자 부부는 반가운 표정으로 돌아섰다.“천리!”사화정이 절로 다정하게 소만리의 이름을 불렀다.모현 역시 기대만큼 가까워진 소만리를 보며 기뻐했다.“만리, 마침 잘 왔어. 아빠와 엄마랑 함께 식사하자.”소만리는 앞에 있는 부부를 바라보며 그들은 염두 해 두지 않은 듯 보였다.굳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갑자기 기란군의 작은 그림자가 사화정과 모현의 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엄마.”기란군이 앳된 목소리로 소만리를 불렀다.꼬마 녀석의 귀엽고 잘생긴 아이의 작은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가 가득했다.소만리는 기란군을 차분히 바라보다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천리, 너 왜 그래?”소만리의 낯빛이 이상해지자, 사화정은 걱정스러운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천리, 너…….”“군군 말고, 다른 어린 친구들이 있나요?”소만리는 조용히 물었지만, 눈도 깜박이지 않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기란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떨리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기란군의 눈썹을 만졌다.그의 눈, 그의 코, 그의 귀, 그리고 그의 귀여운 작은 입……“엄마, 왜 그러세요? 왜 울어요?”기란군은 의아한듯 눈을 깜빡이며 손을 내밀어 소만리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소만리는 기란군의 하얗고 여린 작은 손을 꼭 잡고 그녀의 손바닥에 소중히 쥐었다.“군군, 엄마의 아가야, 엄마가 드디어 너를 만났네!”소만리는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기란군의 마른 몸을 그녀의 품에 꽉 안았다.그녀는 기란군을 꼭 껴안고 마음속의 슬픔, 분노, 기쁨이 한데 모여,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쏟아냈다.그녀는 그녀가 사실 더욱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은 오히려 매우 아팠다.뜻밖에도 이런 식으로 그녀와 그녀의 자식을 괴롭힐 생각을 하다니 소만영은 정말로 너무 사악했다.지난 5년동안 기란군이 소만영에게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소만리의 마음이 조여왔다.그녀는 심지어 그때 소만영이 칼을 들고 기란군의 얼굴을 칼로 베는 장면을 너무 가슴이 아파 감히 떠올리지 못했다.소만영이 그런 미친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소만영의 고문으로 상처받은 것은 그녀의 친 자식이었다!기란군은 소만리의 격동적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소만리의 품에 안겨 사랑받는 느낌을 좋아했다.사화정은 이 장면을 보고, 기쁘고 괴로워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모현의 어깨에 기댔다.하늘은 정말 불공평했다.왜 그들의 딸이 그토록 많은 비통한 일을 감당해야 합니까?기모진은 곁에서 조용히 엄마와 아들이 서로 껴안고 있는 장면을 응시하며 눈가가 시큼해졌다.그는 지난 6년 간의 시간이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다시는 밀어내지 않을 것이다.소만리는 목이 메고 흐느껴 울며 기란군이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위로 할 때까지 오랫동안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엄마 울지 마세요, 감히 누가 우리 엄마를 괴롭혀요.
남자의 따스한 시선을 마주한 소만리의 눈에는 싸늘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기모진, 만약 당신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내 아이를 돌려줘요.”“이것이 당신이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야?”기모진은 쓴 웃음을 지었다.“군군은 엄마를 가질 수 없고, 다시 아빠를 잃네.”“아빠?”소만리는 웃었고, 비꼬는 웃음은 기모진의 눈에 강렬한 경멸과 함께 전달되었다.“기모진, 당신이 군군의 아버지로서 무슨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기모진은 입술을 꽉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만리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자, 찬바람에 작고 가냘픈 몸매가 늠름한 몸매의 남자를 마주하고 있다.“날 괴롭힐 때 마다 당신이 나에게 뭘 먹으라고 했는지 기억나세요? 피임약을 먹으라고 했는데 나 같이 천한 여자는 나의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했잖아요. 잊었어요?”“......”소만리의 질문과 함께 기모진은 두 칼날 같은 눈썹을 찡그렸다.“그때 소만영이 자살하는 척 속여 병원에 가던 날, 사실 난 이미 당신의 아이를 임신 했었어요.나는 순진한 마음으로 내가 임신하면 우리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이 기쁜 소식을 당신에게 전할 겨를이 없었는데, 이 좋은 소식에 당신은 내 앞에 피임약을 던졌어요.”이 말을 듣고 기모진의 눈동자에 희미한 빛이 갑자기 번쩍였다.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소만리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때 당신 이미 임신한 상태였어?”“그래요, 그때 제가 군군을 임신한 상태였는데, 그게 또 어떻다고요, 당신은 신경이나 썼어요? 당신은 아무런 신경도 안 썼잖아요!”“당신은 나와 대화할 때조차 짜증스러워했고, 그래서 결국 당신은 나에게 이혼 하하며 문자 메세지를 보내서, 당신의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나에게 사생아를 지우라고 했죠. 이 세상에서 소만영만이 당신의 아이를 키울 자격이 있다고 말했죠. 만약 내가 이 아이를 지우지 않았다면, 아마 당신이 직접 이 아이를
“내가 소만영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 당신은 나에게 무슨 말을 했었죠? 내가 임신한 사생아 아이가 소만영의 낙태된 아이와 함께 묻힐 것이라고 말 했었죠.”“기모진, 당신이 군군에게 그리고 나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 이런거 다 잊었어요? 당신은 지금 무슨 근거로 군군이 행복하고 원만한 가정을 주겠다고 말하는 거에요? 당신은 군군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어요!”소만리는 기모진이 꼭 잡은 손바닥을 훌훌 털고 소탈하게 돌아섰다.기모진은 심장 박동과 호흡이 정상 빈도로 돌아오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눈송이가 그의 어깨 위로 떨어졌지만, 오히려 그의 심장을 녹이는 것 같았고, 너무 축축하고 추웠다.소만리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기란군 앞으로 곧장 걸어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군군, 앞으로 엄마와 함께 살래?”가란군은 주저 없이 즐거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군군은 엄마와 함께 살래요! 그리고 아빠도요, 군군은 앞으로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가 이 말을 들은 소만리의 눈에는 막막함이 조금씩 드리웠다.“엄마, 밥 먹고 엄마 아빠랑 함께 집에 가는 거예요?녀석의 순수한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다.기모진은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파다.그는 이미 소만리가 반드시 부정적인 대답을 할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만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그녀가 뜻밖에 고개를 끄덕여 기란군에게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응, 저녁 식사 후에 아빠 엄마가 군군을 집에 데려갈게.”소만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눈에는 부드러운 모성애가 가득했다.“군군은 항상 엄마 아빠가 있는 착한 아이인데, 앞으로 누가 감히 군군에게 엄마 아빠가 없다고 놀리면 엄마가 혼내줄게!”“최고예요!”기란군은 작은 손뼉을 치며 돌아서 사화정과 모현에게 달려갔다.“외할머니, 군군은 곧 엄마 아빠랑 집에 갈 거에요. 다음에 또 와서 여기서 잘 거니까, 저를 너무 보고 싶어 하지 마세요.”사화정의 눈이 뜨거워졌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