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정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큰 사람이었기에, 소만영의 말을 듣자 더욱 마음이 쓰라렸다."만영아, 안심하렴.. 엄마는 네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당하게 두지만은 않을 거야. 오늘 여기 계신분들은 경도에서 제일 명문가의 자제라는 기모진 도련님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인간인지 똑똑히 보게 될 거야!!! 어쩜 사람이 이리도 무정한지.. 의리 따윈 져버린 지 오래고 딴 생각만 하는 찌질이 인지?! 그리고! 천미랍이라는 여자는 얼마나 비열하고 뻔뻔한 여우 같은 년인지!"하객들은 사화정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사화정의 말을 듣고 보니 천미랍이라는 사람이 기모진과 소만영 사이에 끼어들어 소만영이 버림받은 것 같아 보였다."엄마~ 그만하세요.. 그만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모진이와 미랍 씨와는 관련 없는 일이니까 우리 그냥 가요~ 흑흑.."눈물을 흘리는 소만영의 모습이 얼마나 불쌍해 보였는지, 그녀의 눈물 연기는 많은 사람들이 연민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사람들은 소만영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소만영과 기모진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 천미랍은 마치 불륜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대부분의 손님들은 점차 소만영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천미랍을 경멸하는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기모진은 온몸으로 주변 분위기의 변화를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천미랍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괜찮아요?"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소만리는 우아하고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제가 겨우 손바닥 하나 때문에 문제가 생기겠어요? 전 그렇게 약하지 않아요."그녀가 웃으며 사화정과 소만영을 바라보자, 온몸으로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 했다."사모님..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져야하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유 없이 절 때리고 여우라고 욕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합당한 설명을 하셔야겠죠?”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당당한 눈빛은 적의와 의심이 가득한 눈빛들을 스쳐 지났고, 그녀의
소만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위가 점점 고요해졌다.그럼..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설마 방금 들었던 모든 것들이 모두 진실이 아니라고?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소만영은 사실 그 사건의 주범이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천미랍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안절부절못했다.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을 때, 사화정이 먼저 다가와 그녀를 보호해주었다."천미랍.. 너 정말 대단하구나?! 내 딸을 헐뜯으려고 속임수까지 쓰다니!"사화정은 화가 나서 천미랍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네가 돈을 써서 그 건달들을 산 뒤에 만영이를 납치한 것이 아니냐?! 넌 만영이를 그렇게 잔인하게 모욕을 당하게 만들었어. 게다가 넌 이걸 인터넷에 올려서 만영이의 명예를 손상시키기까지 했잖아. 나는 오늘 내 딸을 대신해서 너랑 끝장을 볼 테야!""엄마..."소만영은 눈물을 흘리며, 사화정의 팔을 붙잡고 한없이 연약한 척을 해댔다."됐어요 엄마.. 이것에 대해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아요. 모진이를 기분 나쁘게 하고 싶지 않다고요...""기모진, 이것 봐. 만영이는 지금까지도 너만 생각하고 있는데 너는 도대체가?!"사화정은 마음 아픈 듯 소만영을 껴안고 기모진과 천미랍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너는 저 여우 같은 년 때문에 만영이가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관심도 않고 묻지도 않았었어. 지금의 넌 내 딸의 상대로 어울리지 않아!""모진아~ 예비 안사돈의 말을 들으렴. 넌 만영이를 무시할 수 없다. 이 일도 끝까지 조사해봐야 한다고!"기씨 부인은 소만영의 편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소만영은 이런 주변의 이야기를 듣자 눈물을 흘리면 흘릴수록 마음이 설렜다."어머님, 엄마. 이 두 분께서 절 응원해주시기만 하면 되어요. 저는 피해자이지만 정말 이 일에 대해 따지고 싶지 않아요. 흐윽.."소만영은 몇 차례 흐느끼며 천미랍을 바라보았
"얼마 전에 제가 납치됐다는 이야기를 여러분들이 들은 적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맞아요.. 전 납치 되었고 건달들에게 모욕을 당했어요.. 이 일의 배후는 바로 제 눈앞에 있는 저 천미랍 씨에요.. 사실 이 일에 대해 다시 추궁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랍 씨가 자꾸 이렇게 사실을 숨기고 절 모욕하니 정말 참을 수 없어 이렇게 모두의 앞에서 이야기하게 되었어요..."소만영은 입술을 깨물고 갑자기 천미랍을 가리켰다."천미랍!!! 내가 당신을 고소할 거야!"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일제히 소만영의 편을 들고 있었다."소만영씨! 우리는 모두 당신의 말을 믿어요.""천미랍.. 당신 정말 얌체 아니야!?""만영씨, 안심해요~ 우리 모두가 당신이 이 여자를 고소하는 것을 지지한다고요!""천미랍!! 당신 같은 인성을 가진 여자의 브랜드를 우리가 다시 찾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의 ML 브랜드는 망하게 될 거라고!""모두 그 입 다물어!!!"갑자기 군중들 속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거세게 밀려와 천미랍을 향한 욕설들을 멈추게 만들었다.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소만리 옆에 서있는 기모진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섬뜩함을 느끼기 시작했다.기모진의 날카롭고 음험한 두 눈은 마치 날카로운 검날과 같았다. 아무런 온기도 없는 그 날카로운 눈빛은 천미랍을 향해 욕설을 퍼붓던 사람들을 베어버리고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만영의 얼굴을 겨냥하고 있었다.소만영은 갑자기 심장이 두근대며 호흡 또한 긴장되기 시작했다."왜 굳이 굴욕을 자초하는 거야? 내가 이 일에 대해서 다시는 언급하지 말라고 경고 했을 텐데.. 하필 이런 자리에서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씩이나 계속해서 들추는 거냐고..?""모진아.. 그런 게 아니야!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야~! 나를 해친 사람이 계속 법을 피해 요리조리 빠져나가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흑흑.."소만영은 억울하다는 듯 변명하기 시작했다."그래, 더 이상 이야기하
소만리의 급할 것 없다는 듯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고는 화면에다 전화 번호를 하나 띄웠다.모두가 화면을 바라보았다. 소만영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화면에 적힌 일련의 번호들을 쳐다보았다.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화면을 자세히 본 그녀의 얼굴색은 새파랗게 질렸고, 눈빛도 흔들리기 시작했다.당황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소만리는 편안하게 미소 지었다.“소만영씨~ 왜 말이 없으세요? 이 번호..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물론 낯익겠죠. 당신 양어머니 전예 씨의 번호니까요.”소만리는 웃으며 우아한 걸음으로 소만영의 앞에 다가가 우아하고 당당함을 내뿜으며 그녀를 압도하고 있었다.“만영씨는 참 똑똑한 것 같아요. 혹시나 이 일이 발각될까 봐, 양어머니의 휴대전화로 그 네 명의 양아치에게 연락했죠? 지금 그 양아치의 휴대전화에는 당시 통화기록이 남아있어요. 기록을 삭제하더라도 통신사에 가서 조금만 조사해보면 바로 알 수 있죠.”“아 참! 또 하나 알려 줄게 있는데~ 그 건달이 말이죠.. 거래할 때마다 녹음하는 습관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녹음을 틀어서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들려 드리는 게 어떨까요?”“......”소만영은 경악한 채 두 눈을 크게 떴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조금 전 까지만 해도 소만영을 응원하며 천미랍을 고소하겠다고 했던 사람들 모두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에 분노하며 눈을 부릅 뜨고 있었다.이런 반전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소만영을 지지하겠다던 그들은 하마터면 무고한 사람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누명까지 씌울 뻔했던 것이다.소만리는 주변의 반전된 분위기를 만족스럽게 지켜보며 가볍게 웃었다.“소만영씨! 아직도 피해자 코스플레이를 계속 하실 건가요?”“......”“모진 씨는 당신과 교제했다는 이유로 차라리 자신의 친구를 희생하고 당신을 도와주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잘잘못도 분간할 줄 모르고 이런 자리에서 좋으신 어머님과 함께 나와 모진 씨를 욕하다니.. 만영
남들 앞에서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없던 그였지만, 오늘 천미랍을 위해 평소의 고상하고 도도한 이미지를 버렸다."기모진! 전예의 말 들었지? 만영이는 피해자야! 무고하다고!"사화정은 소만영이 그렇게 비열한 인간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어서 그 여자를 내려 놓지 못해? 만영이는 어디다 두고?"그러나 기모진은 천미랍을 내려 놓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껴안은 채 자신의 품에 안긴 그녀를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전 평생 이 사람의 손을 놓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딸과 이미 파혼했으니 다시 번복하게 하지 마십시오."말을 마친 기모진은 천미랍을 안고서 뒤를 돌아 유유히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이 장면을 보고 사화정은 아무 말없이 분노에 차서 이를 갈았다.소만영에게도 이 상황이 얼마나 거슬리고 가증스럽고 창피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기모진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와의 혼사를 철저히 부정하고 천미랍에 대한 결심을 언급하다니..이걸 어떻게 참을 수 있어?기모진은 천미랍을 안고 바로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그가 비록 이곳에 와서 지내는 일은 매우 드물었지만, 방은 늘 청소가 되어있었다.소만리는 방에서 익숙한 향기를 맡았다.그녀가 직접 배합한 것으로 숙면의 효과가 있는 향이었다.기모진의 아버지는 예전에 사람을 시켜 이 디퓨저 두 상자를 사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기모진에게 주었는데, 그의 숙면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소만리는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침실로 돌아와 기모진이 창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깔끔하고 매끈하게 드라이 된 셔츠를 입었고, 따뜻한 가을 햇살이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의 평온한 모습은 그녀로 하여 대학교에서 처음 만난 날을 상기시켰다.하지만 그는 그 때의 기모진이 아니었다."조금 전의 일.. 저에게 책임을 물으실 건가요?"소만리는 그의 등 뒤에 서서 어렵게 입을 뗐다.기모진이 고개를 돌리자 요염한 눈매가
소만리는 입술을 살짝 다물고 웃음지었다. 술에 취한 그녀의 보조개가 입술 양옆으로 피어났다.“기모진 씨, 내가 당신에게 사랑에 빠진 게 탐탁치 않은 건가요? 사실 당신은 여전히 소만영씨를 사랑하고 있는 거죠? 그렇죠?”그녀는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눈시울을 붉혔다.“만약 그렇다면.. 지금 당신을 떠나서 다시는 찾지 않을 게요.”소만리는 기모진의 손에 일부러 힘을 풀고 넥타이를 놓아주었다.넥라인이 느슨해지자 기모진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눈앞의 그녀가 슬퍼하며 돌아서는 것을 보자 그는 아찔한 착각으로 인해 멍해졌고, 갑자기 마음이 보이지 않는 바늘에 찔린 듯 따끔거렸다.“가지마.”기모진이 천미랍의 손목을 낚아챘다. 겨우 두 걸음도 채 가지 못한 소만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기모진이 보이지 않게 조용히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다만 이 승리를 누린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그녀의 몸이 강한 힘에 이끌리는 것을 느꼈다.소만리는 갑작스럽게 그의 가슴팍에 부딪혔다. 차갑고 익숙한 향기가 그녀의 호흡을 빠르게 휘감았다.당시 그에게서 나는 그 향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를 껴안은 채 매일 밤 편히 잠들기를 얼마나 바랐던지...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던 것은 끝없는 기다림과, 그 기다림에 지쳐 돌처럼 무겁게 가라앉아버린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녀의 단념으로 가망조차 없이 끝나버렸다.소만리는 한 쪽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리고 비웃음을 짓고 나서야 눈길을 위로 향했다. 그 순간 기모진과 눈을 마주친 그녀였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줄이야.. 무심결에 깊은 밤처럼 그윽한 그의 시선과 마주친 그녀의 시선은 갈 곳을 잃은 듯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을 보는 기모진의 눈빛이 너무나 애틋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번 차갑고 무정한 그의 모습들만 보았던 그녀를, 지금 이 순간 얼떨떨하게 만드는 기모진이었다.그러나 그녀는 아래층 벽 모퉁이에 있던 실루엣이 여전히 그녀와 기모진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
”할아버지.. 저에 대한 오해가 깊으시다는 거 알고 있어요...”“나에게 변명할 필요 없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거 아니냐.”“......”소만영은 입을 열었지만 말이 없었다.이때 전예가 쿵 소리를 내며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영감님, 이 일은 모두 제가 혼자 저지른 일입니다! 만영이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얘가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일부러 절 막으러 온 거에요. 그 때문에 만영이가 이런 안타까운 일을 당한 겁니다. 저에요. 제가 만영이를 해친 겁니다!!”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자책했다.“영감님, 탓하시려면 저를 탓하십시오. 절 경찰서에 보내시는 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영이는 정말 좋은 아이입니다. 저는 모진이가 저 때문에 만영이를 오해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이 아이는 많은 고생을 겼었습니다. 모진이가 이럴 때 우리 만영이의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사실 그 모든 잘못들 모두 그 천미랍이라는 계집애의 잘못이에요!”사화정은 천미랍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그러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계단에 한 쌍의 익숙한 그림자가 나타났고, 그 뒤로 천미랍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유유히 들려왔다.“사모님은 정말 만나기 어려운 좋은 어머님이시네요. 분명히 사실과 증거가 눈 앞에 있는데도 당신은 겉과 속이 다른 훌륭한 딸을 지키고 계시니까요.”사화정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바뀌었다. 시선을 돌리자 기모진 옆에 선 천미랍이 환하게 웃으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더욱 분노하여 어쩔 줄 몰라했다.“천미랍.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너 같은 불륜녀가 만영이의 약혼자를 빼앗으려고 할 텐데, 그녀의 양어머니가 어떻게 사람을 부려 널 납치하게 할 수 있단 말이야? 바로 너 때문에 우리 만영이가 사고를 당했을 거야. 난 네가 정말 너무 가증스럽다!”“가증스럽다고요?”소만리는 낮게 웃으며 사화정 앞으로 다가갔다.“전 오히려 사모님이 더 가엾어요.”“... 너.. 방금
천미랍의 이야기와 함께 소만영의 얼굴은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졌다.‘뭐라고? 잘못들은 건가? 천미랍이 대체 뭐라는 거지?’소만영은 그저 기모진과 그의 할아버지 앞에서 다정하고 의로운 사람인 척 보이고 싶었을 뿐. 정말 전예를 대신해서 죄를 뒤집어쓰려던 것이 아니었다.모두 다 꾸며낸 것이었을 뿐!전예와 사화정 모두 천미랍이 저렇게 독한 캐릭터일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기에 그저 놀라고만 있었다.소만영의 경악한 표정을 보며 천미랍은 기모진을 향해 유유히 웃었다.“모진 씨.. 그렇다면 지금 저와 함께 경찰서로 가줘요.”기모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어쩔 줄 모르는 소만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제가 같이 가 줄게요.”천미랍은 활짝 웃으며 기모진의 팔짱을 끼고, 차가운 눈빛으로 발 옆에 무릎 꿇고 있는 소만영을 내려다보았다.“납치. 협박. 상해. 이런 걸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아마도 몇 년 동안 옥살이를 해야 할 텐데? 만영씨는 옥살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겠죠? 그럼 이번 기회에 감옥에서 그 안의 어둠을 한 번 경험해보세요. 아 참! 감옥에 들어가면 또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심하게 구타당한다고 들었어요.. 정말 무서울 것 같던데..”“......”이 말을 들은 소만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러나 그 순간 기모진은 가장 먼저 소만리가 떠올랐다.그 어두운 곳에서 그녀는 끝없는 고통과 매질을 겪었다..그녀의 몸에 있었던 흉터와 상처가 마치 그의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 때 그는 그토록 선명하게 그녀의 상처들을 마주했었다.“천미랍 씨!”사화정의 다급한 목소리에 천미랍은 채 몇 걸음도 가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그녀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소만리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쓰라림을 느꼈다.사화정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온화하고 아름다워야 할 얼굴은 원망으로 가득했다.천미랍은 조용히 사화정을 바라보았다.“부인..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사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