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라면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렸지, 다시 재발급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등기본이 없기에 그녀는 신분증을 재발급받을 수 없고 장가네로 가고 싶지 않다.장소월도 인내심이 있는 편이 아니고 평소에 어느 정도 눈 감아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대해 준 것이다.예전의 성격대로라면, 장소월은 바로 휴지통을 그녀의 머리에 덮어버렸을 것이다.“이혜성, 그 지갑 안에는 우리 엄마의 사진이 있어. 나한테는 아주 중요해. 그리고 그 안에 신분증... 돈을 갖고 싶은 거면 너한테 줄게. 다른 건 어차피 너에게 중요하지도 않잖아. 그러니 나한테 돌려줘!”이혜성은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발로 걷어찼고 안에 있던 쓰레기가 모두 굴러 나왔다.“장소월, 너 지금 무슨 뜻이야? 네가 지갑을 잃어버린 게 나랑 뭔 상관인데? 난 네 지갑을 가진 적이 없어. 무슨 근거로 나를 모함하는 건데? 못 믿겠으면 경찰에 신고해!”그녀의 목소리는 가게 전체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장소월은 짜증이 나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이혜성... 나 평소에 너 건드리지 않았지? 그 핸드크림을 가지고 싶다면, 너한테 줄게. 지갑 돌려줘. 그러면 그냥 없던 일로 할게.”“장소월, 난 네 지갑을 가진 적이 없어. 너 왜 날 모함하는 건데!”주인아저씨는 홀의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재빨리 걸어 나왔다.“무슨 일이야? 너 근무시간이 저녁 시간대 아니야?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장소월은 숨기려 하지 않았다.“아저씨, 저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안에 아주 중요한 사진이 있어요. 그리고 제 신분증도 있고요... 오늘 원래 사직하고 할머니한테 가려고 했는데 신분증이 없어서 티켓을 구매할 수가 없어요.”“왜 그래? 갑자기 왜 가는 거야?”어제저녁 발생한 일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회상하면 그녀의 마음이 더 불편해질 뿐이다.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도 않다.장소월은 얼버무려 말했다.“그냥 집에 가고 싶어서요. 아저씨, 경찰에 신고해서 제 지갑 좀
예전의 그녀는 금전적인 자원을 너무 쉽게 받았다.돈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장소월은 돈을 편지 봉투에 넣었고 꽤 두꺼웠다.주인아저씨는 그녀에게 알바비를 지급해 주고는 배달 하러 나갔다.가게에는 그녀와 이혜성만이 남았다.“이혜성, 내가 너한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서 그런 거야. 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짓을 했는지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지금 네가 흘린 눈물, 네가 하는 말은 마음에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나한테 증거가 없다는 걸 알고 있어... 네가 널 모함했을 수도 있고. 만약 정말로 내가 모함한 거라면 우선 미안하다고 사과할게. 만약 네가 정말 가졌고 나에게 그 사실을 숨기는 거면 넌 버는 장사야. 그 지갑은 아버지가 나에게 준 생일 선물이고 60만 좌우에 판매되는 한정판이야. 그러나 넌 평생 너의 추악하고 더러움을 고칠 수 없는 거야.”이혜성은 차갑게 비웃었다.“장소월 너 지금 무슨 쇼를 하는 거야? 나보다 조금 더 이쁘장하게 생겼을 뿐, 무슨 부잣집 딸 행세를 하는 거야? 그 지갑이 60만이라고? 왜 600만이라고 하지 않고? 만약 네가 정말 부잣집 딸이라면 지금 이곳에서 알바하면서 설거지하고 있는다고?”“잘난 척 쇼하는 사람은 봤어도 너처럼 쇼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그딴 지갑은 공짜로 줘도 안 가져. 그리고 만약 정말 내가 그 지갑을 가졌다고 한들, 너 어떻게 할 수 있는데? 증거도 없으면서.”이혜성은 예쁜 편이 아니고 마른 체격을 소유하고 있다. 윤기가 없는 머릿카락에,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은 사람에게 까칠한 인상을 남겨주는데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더욱이 보기가 역겨웠다.처음에 그녀가 왔을 때, 장소월은 그녀에게 자신의 스킨케어 제품을 나눠주는 등 나름 잘 챙겨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탐욕스러워서, 묻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쓰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그녀는 단지 자신의 물건을 쓰기 전에 자신에게 얘기하고 쓰라는 한마디를 했을 뿐인
“이거 놓으라고. 이 짐승 같은 놈아. 날 건드린다면 우리 아빠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이범은 미친 듯이 웃었다.“네 아빠? 네 아빠는 병신이야. 온다고 해도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살... 살려줘!”“천한 년, 조용히 해! 속옷도 온통 레이스던데, 무슨 연기를 하고 있어.”이범은 바로 뺨을 날렸다.장소월의 얼굴 한쪽이 뺨을 맞았고 그녀는 바로 그의 손을 물었다. 이범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힘껏 당겼다.장소월은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바로 그때 위층에서 한 남자가 내려왔다.장소월은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애원하였다.“살려, 살려줘요... 살려주세요...”좁은 복도에 세 사람이 서 있으니 보다 비좁아졌다.이범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내 일에 손대지 마.”그는 강렬한 포스를 풍기고 있고 이범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키에, 얼굴빛은 싸늘했으며 눈을 내리깔고 그를 보며 말했다.“그 손 놔.”“너 당장 꺼져!”“마지막으로 한 번만 경고할게. 그 손 놔!”목소리는 차가웠다.“놓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곳에서 널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야.”이범은 장소월의 머리를 놓아주었고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악랄하게 얘기했다.그러나 그 사람은 바로 이범을 발로 차버렸고 이범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져 비명이 들렸다.장소월도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이범이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고 이마에서 피까지 흘리는 걸 봤다.장소월도 입을 틀어막아 자신이 소리를 지르는 걸 막아버렸다.그녀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자리를 떴다.장소월은 허둥지둥 계단을 올라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는데, 아까의 두근거림에 당황해서 열쇠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뜨렸다.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걸어 잠그고 옷장에서 자기 옷을 꺼내 트렁크에 넣었다.예전에 그녀는 너무 보호를 잘 받아서 바깥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 전혀 몰랐다!만약 그녀한테 신분이 없고 장가네가 없다면... 장소월은 어떤 인생을 살 게
한 편의점에서.장소월은 4만 원을 들여 그녀의 신분증으로 낙성에 가는 티켓을 구매했다.버스로 가면 16시간이 걸려 꽤 오랜 시간이 소요 되지만 다행히도 이것은 오늘 밤 출발하는 마지막 한 장의 티켓이다. 다만 출발 시간이 조금 늦은 편으로 저녁 8시 30분에야 출발한다.서 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장소월이 아직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고 거기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마침 알맞은 시간이다.그때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리고 보라색 번개가 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주인아줌마는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학생, 곧 비가 내릴 것 같은데... 아니면 내일 출발해. 지금 이 시간에 서 터미널로 가는 버스도 연착 될 것 같아.”장소월은 입술을 오므리고 다급해하며 말했다.“사장님, 저를 터미널까지 데려다 줄 방법이 없을까요? 돈은 더 지급할게요.”“안돼. 왕복하면 2시간은 걸릴 텐데, 폭우도 오면 너무 위험해.”“제가 2만 원 더 낼게요.”사장님의 눈빛이 순간 빤짝거렸지만 바로 난처해하며 말했다.“안돼. 목숨 하나에 2만원이라니...”“4만 원 드릴게요. 만약 사장님이 안 된다고 하면 저 다른 사람 찾아볼게요.”주인아줌마는 바로 장소월 손에 있는 4만 원을 받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조금만 기다려 봐. 내가 남편한테 학생을 터미널까지 데려다주라고 할게.”“고맙습니다.”빠르게 남자 사장님은 봉고차 한 대를 빌려왔고 주인아줌마는 장소월의 가방을 들어주며 말했다.“학생, 혼자서 그렇게 먼 곳으로 가는데 조심해야 해. 나쁜 사람에게 유괴당하지 말고. 학생처럼 예쁘게 생긴 사람을 유괴해서 인신매매 진행하는 경우도 많거든.”장소월은 주인아줌마의 웃는 듯 마는 듯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묘한 눈빛이 섞여 있었다.그녀가 주인아줌마가 건네준 캐리어를 건네받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운전석에 앉아 못된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 사장님을 보았다.장소월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차량 창문을 통해 차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걸 보았다.“학생,
사람 다섯 명이 차에서 내려왔고 장소월은 바닥에 손을 짚고 역겨운 눈빛을 보내는 그들을 보며 두려움에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당신들... 무슨 짓을 하려고... 오... 오지마!”“돈을 원하는 거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줄게.”이범은 음흉하게 웃으며 장소월을 향해 걸어왔다.“씨, 너 때문에 내가 하마터면 뼈가 부러질 뻔했는데 감히 도망 쳐? 더 도망쳐 봐... 어디로 갈 수 있을지...”“니 년한테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해서 뭐해. 그냥 끌고 우리 아지트로 가서 우리 다섯 명이랑 재밌게 놀자.”“그러니깐. 3일 안에 쟤를 순종적으로 만들 자신이 있어. 앞으로 우리 몇 명의 시중을 들고 아들 몇 명까지 낳으면 되겠네.”장소월의 다리는 부들부들 떨려왔고 나른해졌지만 애써 일어섰다.“이건 위법행위라고!”이 말을 들은 그들은 미친 듯이 날뛰며 그녀를 비웃었다.“위법행위? 너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 이곳에서 우리가 바로 법이야!”“미쳤어... 이 미친놈들...”그녀는 그들 손에 잡히면 안 된다. 만약 오늘 그녀가 저 차에 타게 되면...전생의 비극은 다시 재연될 것이다...그녀의 울부짖음...그녀의 고함...메아리소리가 텅 빈 창고에서 울려 퍼지고 몇 명의 벌거벗은 남자들은 악마처럼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고, 그 장면들은 악몽처럼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싫어...그녀는 이 비극이 싫다...어두운 곳,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멀지 않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었고 차 안의 남자는 블루투스 헤드셋을 끼고 한 글자 한 글자 보고하고 있었다.“대표님, 화면은 이미 전송해 드렸습니다.”“응, 봤어.”“이제 움직일까요? 그 사람들이 아가씨에게 손을 쓰려고 하고 있어요.”“급해하지 마. 내가 가서 처리할 테니 일단 따라붙어.”와이퍼 레버가 좌우로 흔들리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고 차 안 모니터의 어두운 화면에는 덩치 큰 남자 몇 명이 힘없는 열여덟 살 꽃다운 소녀를 괴롭히는 장면이 재생되었다.전연우는 생각에 잠긴
백윤서는 그녀의 옆에 검은 반팔만 입은 채 서 있는 강용을 바라보며 물었다.“너 안 추워? 재킷 그냥 네가 입어.”“괜찮아. 그냥 네가 입고 있어.”엽청하는 백윤서 옆에서 팔로 그녀를 문질렀다.“윤서야, 너희 둘 사귀는 거야? 빠른데!”백윤서는 부끄러워하며 입을 열었다.“이상한 소리 하지 마. 우리 그냥 친구야.”“이게 친구 사이라고? 연기하지 마.”엽시연은 옆에서 눈을 희번덕거리며 백윤서가 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인대호는 분위기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바로 입을 열었다.“무슨 날씨가 이래. 모처럼 모였더니 비가 오네. 하느님이 너무 체면을 봐주지 않는거 아니야?”엽시연:“체면? 너 따위가 뭐라고! 하느님이 네 체면을 봐줘? 번개 맞아 죽지나 말고.”그들 무리는 또 바로 웃음이 터졌다.“설마 우산 챙긴 사람 아무도 없어? 이 비 언제 그칠지 알고.”“누가 알겠어.”“잠깐만, 너희들 들었어? 방금 누가 살려달라고 소리 질렀어.”“누가 살려달라고 했는데. 너 잘못 들은 거 아니야?”“정말이야. 다시 들어봐...”곧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귀 기울여 빗소리를 들으니 정말 누군가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고 남자 몇 명의 목소리도 들렸다.또렷한 목소리가 뒷골목에서 들려왔다.“살려줘요. 누가 없어요...”“천한 것, 어디로 도망쳐!”인대호는 빠르게 목소리의 주인공을 분별했다.“헐, 이건 이범 일행의 목소리야. 뻔하지, 또 어떤 여자애를 강요하고 있겠지.”“시연형, 이 목소리 그 여자애 목소리랑 비슷하지 않아? 우리 여기에 막 도착했을때 우리랑 말대꾸하던 그 여자애.”엽시연이 입을 열었다.“역시 내 눈이 정확했어, 그 이범인지 뭔지 인간 말종이었어. 그 여자애 이제 막 성인이 된 것 같던데... 용아, 무슨 일인지 보러 갈래?”강용은 무심하게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언제부터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걸 좋아했어?”백윤서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용아, 나 방금 소월이의 목소리를 들
“도망쳐. 왜 그만 도망치는 거야.”“그만 반항하고 얌전히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잘 해줄게.”장소월은 발밑의 돌멩이가 떨어져 순식간에 거친 파도에 삼켜져 버린걸 보았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나?장소월은 아마 두려워하고 있을 수 있다.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나?그녀는 잘 모르겠다.장소월은 가장 힘들고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을 이미 모두 느껴봤다...주변의 모든 가족들은 뜻밖의 재난으로 죽었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한때 그녀의 가장 아름다웠던 모든 것들은 그녀를 떠났다.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이 모든 것은 한 사람 때문에 꾸며진 아름다운 꿈이고,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나중에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고 끝없는 어둠의 심연, 고통과 시달림이 남게 되었다.그녀는 이번 생에 그런 일과 사람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전생에 일어난 모든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이 틀렸다고 느꼈다.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비극이 될 운명이었다.하느님은 장해진이 진 모든 빚을 그녀더러 짊어지게 하였다.그녀도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그녀도 평온하게 이번 생을 살아가고 싶다...그녀는 지난 생의 모든 것을 바꾸려고 정말 노력했다.이번 생은 좋은 결말을 맞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러나 결국 그녀는 여전히...그녀는 이미 한번 죽어 본 사람이다...죽음은 결코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그녀가 죽어라도...아마... 슬퍼할 사람은 강영수 뿐일 것이다.아쉽네! 한 번 더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인대호:“헐, 설마 정말 뛰어내리려고 하는 거 아니겠지? 만약 정말 뛰어든다면 건지지도 못해...”강용은 점점 더 빨리 걸었고 나중에는 뛰기 시작했다.강용:“너희들 당장 멈춰——”그의 목소리는 천둥소리 사이로 사라졌다.그들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장소월——뛰어내리지 마——”“뛰어내리지 말라고——”“이러다 정말 사
강영수,안녕...그녀는 몸을 뒤로 젖혔다. 그 바람들이 칼처럼 그녀의 얼굴을 스치는 것을 느꼈고 매우 아팠다!강용:“장소월——”강지훈: “큰일 났어요, 대표님! 아가씨가...”전연우:“소월——”“헐. 범아, 저 여자 정말로 바다에 뛰어들었어. 우리 때문에. 어떡하지!”“나랑 상관없어. 나 때문에 죽은 거 아니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이범은 밑으로 떨어져 이미 자취를 감추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놀라서 다리가 나른해져 바닥에 주저앉았고 다른 사람들도 이미 놀라서 사방으로 도망친 지 오래다.그때 누군가가 다가왔고 강용은 아무 말 없이 입고 있던 반팔을 벗어 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었다...“헐, 용이야. 정말 뛰어든다고?!”장소월은 암초에 부딪혀 붉은 피가 바닷물에 퍼졌고 차가운 바닷물이 그녀의 사지를 얼어붙게 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의식은 점점 흐릿해졌고 마치 곧 사라질 별처럼 끊임없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로 떨어졌다...너무 어두워. 엄마, 나 너무 추워...인대호는 급한 마음에 바닷가를 계속 맴돌았다.“경찰에 신고해, 빨리 신고해!”한 사람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지금 비 와서 신호가 안 잡혀요.”인대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사방을 빙빙 돌았다.“씨...”푸른 머리 남자는 어쩔 바를 몰라 하였다.“어떡하지.”인대호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네가 나한테 물어보면 난 누구한테 물어? 당장 가서 사람 불러. 수영 잘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신호가 좋은 곳을 찾아서 전화해. 일단 경찰에 신고해.”엽시연과 백윤서는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렸지만 강용 일행이 돌아오지 않자 이상함을 느껴 해변가로 왔다.역시나 옆에서 조급한 마음에 자리를 맴돌고 있는 인대호를 보았다.“인대호,강용은?”인대호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방금 강용이 그 여자애를 구하기 위해서 바다로 뛰어 들어갔어.”엽시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고 또 발로 그를 걷어찼다.“
막무가내인 그녀의 모습을 신이랑은 더는 참아낼 수가 없어 단호히 말했다.“현실을 제대로 자각하세요. 난 절대 신수지 씨와 결혼하지 않아요. 당신 집안의 도움은 더더욱 필요 없고요. 성세 그룹에 들어간 건 민아 씨를 위해서예요. 민아 씨가 없어도 난 당신들과 얽히지 않을 거예요.”“계속 여기에 있고 싶으면 있어요.”신이랑은 바로 서재에 걸어 들어가 중요한 서류들을 챙기고는 노트북 가방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신수지는 얼른 달려가 그의 팔을 잡았다.“어디에 가려고요? 오빠, 가지 말아요. 내가 그렇게 싫어요?”“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 때문에?”신이랑은 바로 그녀의 손을 뿌리쳐버렸다.“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 하지 말아요.”신이랑은 물건을 들고 바로 떠나버렸다.신수지는 그의 뒤를 쫓아가며 소리쳤다.“오빠!”신이랑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리를 떴다.신수지는 분노에 차올라 발을 동동 굴렀다.“이게 다 소민아 때문이야. 너만 없었다면 오빠도 날 멀리하지 않았을 거라고!”신이랑은 차를 몰고 집에서 나가 한 호텔 방에 체크인했다.신수지는 엉엉 울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유연홍은 자신의 귀한 딸이 울며 들어오자 얼른 뛰어가 달랬다.“왜 그래, 수지야? 누가 너 괴롭혔어? 엄마한테 말해.”유연홍은 신수지의 옆에 앉아 휴지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엄마! 저 신이랑한테 갔었는데 쫓겨났어요. 밥 한 끼 같이 먹겠다고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쳤는데...”“절 완전히 무시하더라고요.”“욕까지 했어요! 대체 제가 그 여자보다 못한 게 뭐예요? 그 여잔 나보다 나이도 많고 예쁘지도 않잖아요.”유연홍이 그녀를 달랬다.“수지야, 네가 이랑이를 찾아간 일 절대 아빠가 알게 하시면 안 돼. 아빠는 이미 이랑이를 집에 돌아오게 할 방법을 찾으셨어. 이랑이가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엄마가 어떻게든 널 받아들이게 할게.”“그러니까 지금은 너무 밀어붙이면 안 돼. 알겠니?”그 말에 신수지는 다운되었던 기분이 많이 괜찮아졌다.“하지만 오빠 마음
소민아가 다시 깊게 잠이 들자 명세진은 도우미와 함께 방에서 나가 계단 입구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송시아 씨?”“사모님.”명세진이 이마를 찌푸렸다. “송시아 씨, 난 전에도 말했어요. 민아가 송시아 씨를 인정하고 싶다고 하면 저희는 막지 않겠다고요. 하지만 다른 수단으로 우리 집안에 무언가를 할 생각이라면, 지금 명확히 알려줄게요. 우린 그리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앞으로는 전화하지 말아요. 아니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말을 마친 그녀는 단호히 전화를 끊어버렸다.송시아는 사무실에 앉아 꺼져버린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에 싸늘함이 번뜩였다.소씨 가문이 계속 서울에서 버티고 있으면 그녀가 소민아의 마음속에 들어갈 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절대 이대로 소씨 가문이 서울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게 하면 안 된다.소씨 가문이 줄 수 있는 건 그녀도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줄 수 없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하다.송시아가 온 힘을 쏟아 이 자리에 오른 건 동생에게 가장 행복한 삶을 선물해주기 위함이었다.소민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녀는 반드시 동생을 신씨 가문 안주인 자리에 앉힐 것이다.‘장소월... 네 목숨을 끊지 않는 건 다 민아를 위해서야. 영원히 꼭꼭 숨어있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절대 너한테 자비 따위 베풀지 않아.’송시아는 또 신이랑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때... 신이랑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핸드폰이 진동해 문자를 확인해 본 순간, 그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집에 도착하니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신이랑은 바로 핸드폰을 집어넣고 지문으로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정돈된 오피스텔 안에 불청객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신수지가 머리를 묶고 앞치마를 한 채 문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오빠, 왔어요?”신이랑이 이마를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밥상 위 차려진 음식으로 옮겼다.“열쇠 누구한테 받은 거예요?”신수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
도우미가 말했다.“민아 아가씨가 돌아오셨어요. 그런데 제가 방금 방에 가보았는데 두통이 다시 재발한 것 같았어요.”명세진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민아는요? 지금 어디에 있어요? 민아한테 무슨 얘기 했어요?”“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약만 가져다드렸어요. 얼굴색이 정말 안 좋았어요.”명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내가 올라가 볼게요. 오늘 저녁엔 민아가 좋아하는 음식들 많이 만들어요.”“네, 사모님.”명세진은 소민아를 줄곧 자신의 친딸로 생각하며 키워왔다. 소현아와 소민아 모두 소씨 가문의 소중한 딸이다. 실제 언니는 소현아였지만, 평소엔 동생인 소민아가 언니처럼 소현아를 챙겼다.명세진은 소민아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평소 그녀에게 더 관심을 쏟기도 했다.명세진은 방으로 올라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소민아를 본 그녀는 조심스레 다가갔다.소민아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지 베개가 흥건해지도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안 돼요... 나 데려가지 말아요...”“오... 오지 마...”“언... 언니...”“언니... 어디에 있는 거예요!”명세진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손수건으로 이마 위 식은땀을 닦아주었다.“괜찮아. 괜찮아. 고모가 여기에 있어.”명세진은 따뜻하게 이불을 덮어 주고는 예전 소민아를 집에 갓 데려왔을 때처럼 침대 옆에 앉아 밤새 그녀를 토닥여 주었다.슬프게 흐느끼던 소민아는 한참을 다독인 뒤에야 천천히 울음을 그쳤다.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주는 명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아이를 갓 집에 데려왔을 때를 그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영양실조로 살집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일주일 동안이나 의식을 되찾지 못해 병원에서도 다시 살지 못할 거라고 했었다.이후, 다행히 그녀는 목숨을 지켜냈고 천천히 몸을 회복했다.비록 예전의 기억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영리하고 총명한 아이였다. 학교에서의 수업도 교과서 한 번만 읽으면 바로 익히는
세면대 위에 놓아둔 핸드폰이 진동해 살펴보니 신이랑이 보내온 문자였다.[며칠 집에서 쉬어요. 회사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소민아의 머릿속에 신이랑과 결혼하면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던 송시아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소월 언니 집안에 관한 일은 고모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장씨 집안의 지위는 어마어마하게 높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높은 권세를 누리고 있는 가문들조차도 장씨 집안에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암암리에 수많은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한 사람의 목숨은 단 한마디 말로 가볍게 좌지우지되는 것이었다. 소씨 집안은 명함도 내밀지 못했고, 서울에서 난다긴다하는 명문가 집안도 장해진 앞에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송시아가 저지른 범죄도 그들과 그리 다르진 않을 것이다.소민아는 갑자기 밀려온 어지러움 때문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세면대를 지탱하지 않았다면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 낯설고도 생생한 기억이 펼쳐졌다.울음소리 가득한 어두운 지하실...남자 한 명이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에게 만두 하나를 쥐여주었다. 6, 7세 남짓한 어린 여자아이는 허겁지겁 만두를 입에 구겨 넣었다...머리가 깨질 것만 같아 이마를 감싸 쥐었다. 곧이어 참을 수 없는 두통이 밀려왔다.고통을 견디며 30초 정도 지내 보내니 그제야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았다.그곳은 대체 어디일까. 왜 그녀 기억 속엔 없었던 걸까...그 남자는 누구지?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거지?도우미가 깨끗이 세척한 옷을 들고 들어왔다가 이상한 모습의 소민아를 보고는 다급히 다가와 물었다.“아가씨, 왜 그러세요? 또 머리가 아픈 거예요? 제가 약 가져다드릴게요.”소민아는 어렸을 때 자주 두통을 앓았었다.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발병하지 않았다.도우미가 얼른 약을 꺼내 소민아에게 가져다주었다.약을 입에 넣고 물로 삼키니 두통이 많아 가라앉았다.도우미가 말했다.“아가씨, 계속 불편하시면 병원에 가보세요.”소민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그녀가 신이랑과 결혼만 하면 송시아는 더는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왜 그렇게 보는 거예요? 네?”소민아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 신이랑과 거리를 넓혔다.“난 괜찮으니까 먼저 돌아가요. 잠깐 어지러워서 그랬어요.”“그래요. 내가 차로 데려다줄게요.”“아니에요. 회사와 내가 가려는 곳은 반대 방향이에요. 지금은 근무 시간이잖아요. 이랑 씨 일에 영향 줄 수는 없어요.”소민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음속에서부터 그를 천천히 멀리하기 시작했다.그 변화를 느낀 신이랑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실망감이 어렸다.“민아 씨,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아니면 송시아가 또 기성은 씨로 협박한 거예요? 뭐든 상관없으니까 나한테 말해요. 내가 도와줄게요.”소민아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신이랑 씨, 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이건 친구에게 베푸는 호의가 아니잖아요! 그보단... 다른 관계...’소민아는 그에게 똑똑히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랑 씨, 여긴 불편하니까 차에 가서 얘기할까요?”“그래요. 내가 캐리어 들어줄게요.”신이랑은 소민아의 짐을 들고 그녀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올라탄 뒤 그가 물었다.“나한테 할 얘기 있어요?”“이랑 씨, 우린 친한 친구 맞죠? 이랑 씨도 송시아처럼 나쁜 사람으로 변하진 않을 거죠?”신이랑은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민아 씨, 나쁘게 변하든 아니든 절대 민아 씨를 해치진 않을 거예요!”신이랑이 그녀에게 하는 약속이었다.“민아 씨 생각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변할 것 같아요?”소민아는 그를 믿는 게 맞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송시아의 말로는 신이랑은 앞으로 정계에 입성할 것이고 기성은의 위협이 될 거라고 한다. 그녀는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기성은이 그녀에게 신신당부한 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서울에 돌아가면 그 누구의 말도 믿으면 안 돼요.”“이랑 씨는요? 회사에서 유일하게
소민아의 눈동자에서 빛이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너무 괴로워 목구멍에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당신 생각이에요, 아니면 이랑 씨 생각이에요?”송시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민아야, 그 말을 이랑 씨가 들었다면 얼마나 섭섭해할까. 줄곧 신이랑은 나랑 다르다고 말해왔으면서, 지금 신이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내가 했던 말 잊었어?”“신이랑은 널 위해 본가에까지 들어갔어!”송시아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었다.“신이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너만을 위해 살았어!”“핸드폰 확인해봐. 신이랑이 너한테 문자를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비행기에서 내린 뒤 그녀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놓았다. 기성은의 문자 외에 다른 건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송시아가 걸어 나가며 말했다.“일단 씻고 내려와서 밥 먹어. 저녁에 서울로 돌아갈 거야.”소민아가 핸드폰을 꺼내 보니 베터리가 없어 꺼진 상태였다. 충전선을 꼽고 전원을 켜니 송시아의 말처럼 신이랑으로부터 적잖은 문자가 와 있었다.40개가 넘는 문자 중 대부분이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말투에서 그녀에 대한 걱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가 이럴수록 소민아는 그에게 죄책감이 느껴지고 부담감이 더해갔다.오후 3시 식사를 마치고 짐 정리를 한 다음, 비행기에 올라탔다.소민아는 창밖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송시아가 그녀 옆에 앉아 눈을 감고는 말했다.“보지 마. 아무리 봐도 기성은은 너랑 같이 여길 떠나지 않아.”“기성은은 애초부터 이 더러운 곳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어. 네가 아무리 애써도 뼛속 깊이 새겨진 비천함은 변하지 않아.”소민아가 말했다.“당신은 얼마나 고귀한 사람이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도 예전엔 이처럼 악랄한 환경에서 살았었다는 거 잊지 말아요.”송시아가 들뜬 말투로 말했다.“이 세상 사람들에겐 모두 등급이 있어. 전연우가 아니었다면 기성은은 아직도 여기에서 굴러다녔을 거야. 참, 내가 알려줬었나? 기성은의 아버지는 지독
“그때가 되면 소씨 가문도, 그리고 언니도... 기성은 하나 때문에 무너져버릴 수 있어.”송시아가 가장 잘하는 게 바로 사람의 가장 여린 약점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 몇 마디 말에 소민아는 패닉에 빠져버렸다.“그... 그럴 리가 없어요! 기성은 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신이랑 씨도 당신 말처럼 기성은 씨를 해치지 않을 거고요. 당신 입에서 나온 말은 한 글자도 믿지 않을 거예요.”송시아가 더더욱 그녀를 몰아붙였다.“민아야, 내가 예전에도 말했었잖아. 장씨 가문은 서울 지하조직 수장이었다고. 그 인간들이 무슨 짓을 했었는지 알기나 해?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장해진이 죽길 바랐을까. 전연우가 없었다면 장소월은 목숨을 부지하지도 못했을 거야.”“그동안 장씨 집안, 남원 별장을 지켰던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장씨 집안은 전연우와 기성은이 지탱하고 있었던 거야. 장소월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야만 살 수 있는 기생충에 불과해.”“장씨 집안이 끝나버린 지금, 기성은은 장씨 집안의 뒤처리를 해주려고 저렇게 고생하고 있는 거야.”“장씨 집안이 저지른 죄를 모아 신고하면 목숨이 몇백 개라도 모자라거든.”소민아는 더는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됐어요. 그만 해요. 소월 언니를 벌레 보듯 하고 있는데... 소월 언니는 아무것도 몰라요. 무슨 근거로 모든 잘못을 소월 언니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예요? 내가 보기에 소월 언니는 당신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에요. 적어도 다른 사람을 해치진 않았으니까요!”“만약 내가 당신 동생이 아니었다면 어떤 방식으로 날 해치우려고 했어요? 난 저번 하마터면 당신 손에 철저히 망가질 뻔했어요.”송시아는 화가 나 이마를 찌푸렸다.“장소월이 착하다고? 그래! 장소월은 어렸을 때부터 걱정하나 없이 온실 속에서 자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귀한 집 아가씨였어. 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민아야... 우리한테 제일 필요 없는 게 바로 착함이야. 장소월처럼 살았다면 난 이미 일찌감치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네
기성은은 그녀를 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려주고는 차를 몰고 떠났다.소민아가 돌아가 보니 송시아는 밤새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송시아가 어디에 갔든 전혀 상관없었다. 그녀는 피로한 몸을 이끌고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무언가 생각났는지 다시 방으로 돌아가 베개를 등에 받히고 침대에 누웠다.어리석은 방법일 수도 있지만, 소민아에겐 더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송시아가 돌아왔을 때, 소민아는 깊이 잠들어 있었고, 바닥에선 베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녀 옷깃에 묻은 자국을 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송시아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이렇게까지 깊게 빠져버렸다고?신이랑이 기성은보다 못한 게 뭐란 말인가. 왜 하필이면 배경도, 돈도 없는 기성은을 좋아하게 된 걸까.송시아도 밤새 바쁘게 보냈던 지라 바로 욕실에 들어가 씻은 뒤 소민아의 옆에 누웠다.소민아는 오후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옆에 누워있는 여자를 본 순간,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눈동자 속에 감출 수 없는 증오가 피어올랐다.그 움직임에 송시아도 깨어났다.소민아가 말했다.“방이 두 개나 있는데 왜 하필 내 침대에 누운 거예요.”송시아가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너 예전엔 언니랑 딱 붙어 자는 거 좋아했잖아.”소민아는 그녀에게 더는 관심을 주지 않고 옆에 있던 옷을 들고 욕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아랫배를 어루만졌다...‘아이가 있든 없든 난 끝까지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소민아는 샤워를 마친 뒤 욕실에서 나가 송시아에게 물었다.“우리 언제 돌아가요?”“어젯밤 기성은 만났어? 기성은도 너한테 꽤 마음이 있나 보네.”“묻고 싶었던 건 물어봤어?”“안 물어봤어요.”송시아는 화장대에 앉아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귀걸이를 걸며 말했다.“아무 조건 없이 마음을 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기성은을 선택하면서 신이랑의 마음이 어떨지는 생각해봤어? 신이랑은 널 위해 제일 돌아가고 싫어하던 본가로 들어갔어.
차가운 밤바람에 체온이 떨어지자 기성은은 그녀를 데리고 은밀한 위치에 멈춰선 차에 올라타고는 히터를 틀었다.소민아는 바로 그의 몸에 올라타고 키스를 퍼부었다. 마음껏 키스한 다음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고 말했다.“기성은 씨, 3년 줄게요. 기다릴 테니까 3년 안에 서울로 돌아와요. 그동안 뭘 하든 상관하지 않을게요. 그냥 3년 후... 나한테 전화 한 통이나 문자 하나만 해줘요.”“기성은 씨만 원한다면 난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기성은 씨를 대신해 총괄 비서 자리 잘 지키고 있을게요. 전 대표님이 깨어날 때까지, 그리고 기성은 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말하지 않으면 동의한 걸로 생각할게요.”기성은에게 있어 모든 것이 미지수다. 3년이라...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3년이 있을 수 있을까.“이곳을 떠나면 동의할게요.”소민아는 그의 목덜미를 잡고 말했다.“힘들게 왔는데 허탕을 치면 안 되죠. 날이 밝기 전엔 갈 생각하지 말아요.”소민아가 그의 옷 단추를 풀었다.덜컹덜컹 흔들리는 차 안, 소민아는 거칠게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얼마가 지났을까, 그녀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기성은의 가슴팍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다음날 날이 밝아서야 소민아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기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기성은도 그녀의 손길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송시아도 왔어요. 저 곧 가야 할 것 같아요. 정말... 기성은 씨와 잠시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요.”기성은이 바깥을 쳐다보니 날은 이미 밝아있었다.“내가 송시아의 동생이라면, 나 미워할 거예요?”기성은이 말했다.“그건 알고 있었어요.”“그럴 줄 알았어요.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예요?”소민아는 다시 몸을 기울여 그의 가슴에 기댔다. 그의 평온한 심장박동이 그녀에게 안정감을 심어 주었다.“그럼 기성은 씨 생각은 어때요? 제가 그 여자를 언니로 인정해야 할까요? 제 머릿속엔 조각조각 찢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