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방 안.한 노파와 하녀 채월이 침대 곁에 서서 새신랑 송려를 바라보고 있었다.송려는 신부 봉장미를 직시하고 있었다.봉장미는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두 손을 무릎 위에 겹쳐 놓은 채 등까지 꼿꼿이 세운 자세였다. 긴장한 그녀의 모습이 역력했다.송려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채월이 건넨 저울을 받아 들었지만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혹여 잘못해서 봉장미의 얼굴을 건드리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송려는 조심스럽게 천을 걷어 올렸다.그 아래, 정성껏 화장을 한 아름다운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봉장미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작은 얼굴이 입술 색보다도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신방 안은 조용했다. 바늘 하나 떨어져도 들릴 만큼의 고요함이었다.송려의 가슴이 떨렸다.“부인, 정말 아름답소.”그는 봉장미에게 처음에는 의원의 마음으로 다가갔었다. 환자를 책임지고 돌보아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친구의 간절한 부탁 때문이었다.그는 그녀를 극진히 간호하고 치료했다.그러다 차츰 그녀를 가엾이 여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삶이 너무나도 처참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순수하고 선량한 마음에 감동했다.그녀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비 오는 날, 다친 참새를 품에 안아 보호해 주던 그런 사람이었다.그 순간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송려가 사랑하게 된 것은 그녀의 내면이었다.그는 그녀와 함께하며, 그녀가 건강을 되찾고 웃음꽃을 피우기를 바랐다.송려의 칭찬에 봉장미는 더욱 부끄러워졌다.고개를 한층 더 숙이며 수줍어했다.그러자 노파가 시기적절하게 웃으며 말했다.“새신랑, 그냥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빨리 자리에 앉아야지. 이제 합근주를 마실 시간이야!”송려는 봉장미 옆에 앉았다.두 사람은 가까이 마주한 채로 온몸이 뜨거워지고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채월이 합근주를 가져와 두 사람에게 건넸다.합근주는 두 개의 반쪽 과실 모양의 잔에 담겨 있었다.자신의 잔을 마신 뒤, 상대방의 잔에 담긴 술을
“장군! 급보입니다! 장미 아가씨께서 치욕을 당해 자결하셨으니 속히 경성으로 복귀하여 큰아가씨 대신 혼인하라는 노부인의 명이 있으셨습니다!”남제(南齊)의 변경, 준마가 금방 녹은 시냇물을 힘차게 밟으며 미친 듯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말을 탄 봉구안(鳳九顏)이 최전방에서 달리고 있었다. 흰색 소복에 검은 머리를 대충 비녀로 틀어 올린 그녀의 주변으로 귀티 나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그녀와 동생 봉장미는 쌍둥이였지만 이 시대에 여자 쌍둥이가 태어나면 불길한 징조였기에 그녀는 어릴 때부터 바깥을 떠돌며 자랐다.성품이 온화한 봉장미는 누구에게 원한을 살 여인이 아니었다.봉구안은 누가 그처럼 순수하고 착한 동생을 해하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게 누구든, 범인의 가죽을 발라내서 개 먹이로 줄 것이다!호위대는 그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뒤에서 애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군, 벌써 강행군으로 말 두 마리가 죽었습니다. 전방에 객잔이 있으니 가서 좀 쉬고…”봉구안은 힘차게 채찍을 휘둘렀다.“따라오지 못할 거면 군영으로 꺼지거라! 이랴!”‘멍청한 놈들, 쉴 시간이 어디 있다고!’그녀의 어깨에 짊어진 것은 봉씨 가문 백여 명의 목숨이었다.호위대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상대는 북대영(北大營)에서 가장 빠르고 신출귀몰하기로 소문난 봉 장군이었다!그렇게 7일 후, 황성.봉가에서 일국의 황후가 나왔다는 것은 지고무상한 영광이었다.백성들은 천자의 혼인식을 구경하러 분분히 거리로 나왔다.하지만 영친 대오가 도착했지만 새신부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구경꾼들이 차츰 술렁이기 시작했다.“봉가의 장녀는 얼마 전에 산적들에게 끌려갔다가 봉가의 친위대가 출동하여 겨우 구해왔다고 들었는데 순결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여인이 어찌 일국의 황후가 될 수 있단 말이오?”“봉가의 여인들은 참 팔자도 좋소. 대대로 황후를 배출한 가문 아니오. 이런 든든한 집안이 우리 남제를 지켜주고 있어서 우리가 이런 태평 성세에 살고 있는
방 안에서 바깥의 소리를 듣고 있던 봉구안은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봉가에는 이득이 될 게 없었다.황귀비는 봉가의 여식이 이미 순결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일을 벌인 것이 분명했다.만약 봉장미의 대신인 그녀의 순결이 증명된다면 이 음모를 피해갈 수 있을지는 모르나, 필히 황귀비의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만약 대체품 신분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황실을 기만한 중죄이며 봉가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봉구안은 전방을 주시하며 창을 휘두르던 손으로 얼굴에 연지를 곱게 발랐다.사부께서는 그녀에게 병법과 관료가 해야 할 일들을 가르치셨다.사부의 부인인 사모께서는 그녀에게 안주인으로서의 도리와 처세술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중에는 첩이 득실대는 귀족가의 뒷방에서 살아남는 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는 가르쳐 주시니 겸허히 배웠지만 그걸 쓰게 될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그녀는 뒷방에 갇혀 살림이나 하면서 서방을 섬기는 여자보다는 이 나라의 곳곳을 누비며 영토를 넓히는 게 꿈인 사람이었다.그런데 결국 돌고 돌아 이런 날이 올 줄이야.태감과 그가 데려온 궁중 여관은 기세등등하게 봉 부인을 압박했다.“부인, 이건 황귀비 마마의 명령일세. 감히 명을 거부하겠다는 건가?”태감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비웃듯이 물었다.‘너희가 아무리 권세 가문이라고 하더라도 황실의 명을 어길 수는 없지! 깃털이 다 뽑힌 봉황은 닭보다도 못한 법이야!’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음침한 얼굴로 봉 부인을 추궁했다.“이거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그럼 날 너무 원망하진 마시게!”곧이어 그가 손짓하자 뒤를 따르던 궁중 시위대가 나섰다.봉 부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봉가의 저택에서 법도를 무시한 채, 이런 무례한 일을 벌이다니!궁중 시위대가 봉 부인을 제압하려던 찰나, 창문 너머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 봉씨 가문은 대대로 황후를 배출한 가문으로 역사에 이름까지 올렸다. 그런데 그런 가문의 여식인 내가 순결을 의심받는 날이 오다니.”
자녕궁(慈寧宮), 태후의 처소.봉가의 일을 전해들은 태후는 흐뭇한 얼굴로 계 상궁을 바라보며 말했다.“작년 생일 연회에서 봉장미 그 아이를 보았을 때는 성격이 너무 유약하여 황후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지.”“그런데 오늘 일은 꽤나 영리하게 대처했군. 능연(황귀비 이름: 凌燕)의 측근에게 대놓고 면박을 주다니. 내가 그 아이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구나.”태후의 최측근인 계 상궁은 어린시절부터 궁중에서 생활한 사람으로 후궁이 얼마나 험난한 곳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태후의 찻잔에 따뜻한 차를 따르며 말했다.“폐하께서 황귀비를 편애하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니 황후께서 아무리 영리하신 분이라 할지라도 영소전과 대항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늘밤에 황귀비가 또 소란을 부릴 수도 있겠군요.”계 상궁은 어린 황후에게 딱히 거는 기대가 없었다.태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자네 말도 맞아. 수완(琇琬,태후의 조카딸)이 입궁했을 때도 그랬지. 황상은 그 아이의 처소에 머무르기로 했는데 능연 그 요물이 아프다고 난리를 치면서 황상을 자기 처소로 불러갔었지.”“지금 생각해도 그 아이가 안타깝구나. 고모로서 아무 도움도 못 주고.”계 상궁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폐하는 애증이 분명한 분이고 아직까지 후궁에서 황귀비를 대적할 비빈은 나온 적이 없지요. 황후께서도 아마 오늘 밤에 독수공방하게 될 것 같군요.”태후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태후는 황제의 생모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황제를 길러준 사람이었기에 그의 성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다.영비를 향한 그의 집착과 죄책감은 전부 대체품인 능연에게로 갔다.선황의 유언장이 없었더라면 아마 황후의 자리도 진작에 황귀비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길시가 되자 봉구안은 금자수를 수놓은 혼례복에 황후의 상징인 왕관을 머리에 올리고 옥석으로 장식한 복도를 걷고 있었다.복도의 끝에는 마찬가지로 옥으로 된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십보 걸을 때마다 뒤를
황제가 오기로 되어 있으니 봉구안은 마지못해 다시 치장을 시작했다. 그런데 연상이 긴장한 탓인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세 번째로 두피에서 통증이 느껴졌을 때, 봉구안은 더는 참지 못하고 싸늘하게 말했다.“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나가 있거라.”스승님 밑에서 변장술을 익힐 때 단장하는 법도 많이 익혔기에 그녀는 손쉽게 머리를 원래대로 복구했다.연상은 그녀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마마, 제가 한 것보다 더 예쁘네요.”그렇게 그들이 황제를 맞을 준비까지 다 마쳤을 때, 밖에서 전갈이 왔다.“마마, 황귀비마마께서 두통이 재발했다고 하여 폐하께서는 영소전으로 가셨사옵니다.”연상은 입만 뻐금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하필 황제가 궁으로 복귀하자마자 두통이 재발하다니!황귀비의 뻔한 수가 엿보였지만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봉구안은 황귀비 얘기가 나오자 죽은 동생 봉장미가 떠올랐다.‘장미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언니가 복수해 줄게!’싸움에서 이기려면 적을 파악해야 하는 법.황귀비는 장기간 독보적인 총애를 받아왔으니 신변에 분명 무예가 강한 호위가 지키고 있을 것이다.경솔하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한편, 자녕궁.태후는 염주를 손에 쥐고 더듬으며 화를 삭히고 있었다.“혼인 첫날밤에 서왕을 신랑 대역으로 세웠다니!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더냐! 황상이 이런 황당무계한 일을 벌일 때까지 너희는 대체 뭘 하고 있었느냐!”궁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다.“소인은 정말 몰랐사옵니다.”황제가 유아독존에 제멋대로인 게 하루이틀이 아니고 태후의 말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대로 가다 가는 천하 백성들에게 태후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다고 비난 받을 판이었다.태후는 화가 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서럽고 무기력함에 빠졌다.“내 비록 황상의 생모는 아니지만 현명한 군왕으로 가르치려고 노심초사했건만…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그 모습을 본 시종들은 태후가 안타깝고 황제가 불효하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불 난 집에 기름 붓는 소식
봉구안이 신혼방으로 돌아오자 아까까지 잔뜩 인상을 쓰며 싫은 티를 내던 최 상궁은 싱글벙글 웃으며 뜨거운 물을 준비하라고 시종들에게 일렀다.그러고는 감개무량해서 봉구안에게 말했다.“마마, 그동안 황귀비를 제외하고 폐하께서는 한 번도 다른 비빈들에게 밤시중을 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마가 그 선례를 깨신 거예요!”연상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최 상궁을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궁에서 여자의 지위는 황제의 총애와 비례한다지만 존귀한 황후마저 거기에 포함될 줄이야.봉구안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최 상궁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연상이만 남고 다들 나가 있거라.”내전이 조용해지자 연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마마, 폐하께서 오시기로 한 것은 우리에게 좋은 일이긴 하나, 이렇게 되면 황귀비와 완전히 척을 지게 되는 거 아닌가요?”“부인께서는 저희에게 궁에서 적을 만들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고 하셨사온데….”“어머니께서 장미에게도 그러라고 가르쳤더냐?”봉구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연상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녀는 이런 교육 방식을 찬성하지 않았다.사부와 사모께서는 그녀에게 은혜는 배로 갚고 원수도 배로 갚으라고 가르쳤고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유감을 남기지 말라고 하셨다.사실 봉 부인도 봉가에서 전해져 내려온 법도대로 자식들을 가르쳤다.봉가는 대대로 황후를 배출한 과문이었기에 유독 딸에게는 요구가 엄격했다.악기, 바둑, 그림, 서시 모든 방면에서 봉가의 딸은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명백한 요구가 있었다.그리고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어 좋은 명성을 유지해야 했다.장미는 서신에서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는 언니가 부럽다고 하면서 황후가 되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매번 했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봉장미처럼 유순한 사람이 입궁하여 황후가 되었다면 주변의 시달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연상은 봉부의 하인들 중에서 봉구안의 진짜 신분을 아는 사람이었다.그녀는 주변을 경계하다가 다가가서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마마, 저희를 예의주시하는 사
소리를 들은 연상은 바로 내전으로 달려왔다.“마마, 무슨 일이시옵니까...”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침상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가!”사내의 목소리에 연상은 크게 당황하며 사람을 부르려 하였다.이때, 안으로 달려온 태감이 급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낮은 소리로 호통쳤다.“멍청한 것, 폐하가 안에 계신데 이 무슨 소란이더냐!”연상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폐하? 사람을 죽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던 그 폭군?’침실 안.사내는 한손으로 봉구안의 어깨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비수를 잡은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쥔 채, 시선을 내리깔고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봉구안을 내려다보았다.봉구안은 상대를 던져버리려다가 황제라는 것을 깨닫고 반항을 멈추었다.주변이 어두워서 그녀는 사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하지만 그에게서 진동하는 살기는 진짜였다.“황후, 해명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서는 진한 살기가 진동하고 있었다.평범한 여자였다면 지레 겁을 먹고 우물쭈물했겠지만 봉구안는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고 태연히 답했다.“그 일이 있은 후로 살기 위해 비수를 항상 가까운 곳에 두었습니다. 일부러 폐하께 무례를 범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그녀는 봉장미가 아니었기에 동생의 나긋나긋하고 온화한 말투까지는 모방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딱딱했다.마치 자신의 부군이 아니라 아무 상관도 없는 타인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설명을 들은 사내는 크게 코웃음치고는 그녀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고 몸을 일으켰다.봉구안은 어슴푸레한 달빛을 빌어 용포를 풀어헤친 사내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했다.그는 장난감을 손에 쥔 것처럼 비수를 요리조리 돌리며 관찰했다.침실 안에 삭막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봉구안은 몸을 일으키고 사내와 일정거리를 유지한 뒤에 사내의 동향을 주시했다.이때, 사내는 갑자기 몸을 비틀더니 손에 들고 있던 비수를 그녀의 목에 가져다댔다.봉구안은 피하지도, 거부하지도
어차피 한번은 경험해야 할 일이었고 예상 범주를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솔직히 폭군에게 첫날밤을 바치는 것보다 차라리 이 방법이 더 나았다.적어도 치욕스럽게 사내의 밑에 깔리지 않아도 되니까.봉구안은 하얀 치마자락을 찢어 손수건 대신 침대에 받쳤다.그리고 한손으로는 치마자락을 들고 한손에는 비수를 들었다.이미 하기로 한 일이지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그녀는 그냥 전장에서 부상당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어차피 어릴 때부터 수많은 부상을 이겨내며 살아온 그녀였다.곧이어 그녀는 칼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그 순간 갑자기 뻗어나온 손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봉구안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상대를 바라보았다.소욱은 그녀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고 아까보다 더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군.”챙그랑!말을 마친 그는 비수를 침대 밖으로 던져버렸다.“어차피 네가 순결한 몸인지 아닌지 짐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이렇게까지 해가며 황후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더 이상 멍청한 짓은 하지 말거라. 예를 들면 짐이 영소전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 짐을 만나겠다고 거기까지 찾아오지 말란 말이다.”봉구안은 이를 악물었다.폭군은 그녀가 관심을 끌려고 찾아간 거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하기 싫은 걸음을 한 것이었다.어차피 밤시중을 들라는 말을 강조한 것도 일부러 그녀를 농락하기 위함일 것이다.참으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이런 방식이 당신의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에게는 소용 있을지 몰라도 나한텐 안 통하지.’그녀는 처음부터 황제의 총애를 바라고 입궁한 게 아니니 오히려 그녀가 원하던 상황이었다.봉구안은 신속히 옷섶을 여미고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폐하, 신첩이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시는 폐하의 총애를 바라지 않겠습니다.”“폐하께서 황귀비를 애정하시는 마음은 잘 알았습니다. 신첩 앞으로 귀비를 친자매처럼 여기고 폐하를 대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귀비를 대할 것이옵니다.”그
신방 안.한 노파와 하녀 채월이 침대 곁에 서서 새신랑 송려를 바라보고 있었다.송려는 신부 봉장미를 직시하고 있었다.봉장미는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두 손을 무릎 위에 겹쳐 놓은 채 등까지 꼿꼿이 세운 자세였다. 긴장한 그녀의 모습이 역력했다.송려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채월이 건넨 저울을 받아 들었지만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혹여 잘못해서 봉장미의 얼굴을 건드리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송려는 조심스럽게 천을 걷어 올렸다.그 아래, 정성껏 화장을 한 아름다운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봉장미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작은 얼굴이 입술 색보다도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신방 안은 조용했다. 바늘 하나 떨어져도 들릴 만큼의 고요함이었다.송려의 가슴이 떨렸다.“부인, 정말 아름답소.”그는 봉장미에게 처음에는 의원의 마음으로 다가갔었다. 환자를 책임지고 돌보아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친구의 간절한 부탁 때문이었다.그는 그녀를 극진히 간호하고 치료했다.그러다 차츰 그녀를 가엾이 여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삶이 너무나도 처참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순수하고 선량한 마음에 감동했다.그녀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비 오는 날, 다친 참새를 품에 안아 보호해 주던 그런 사람이었다.그 순간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송려가 사랑하게 된 것은 그녀의 내면이었다.그는 그녀와 함께하며, 그녀가 건강을 되찾고 웃음꽃을 피우기를 바랐다.송려의 칭찬에 봉장미는 더욱 부끄러워졌다.고개를 한층 더 숙이며 수줍어했다.그러자 노파가 시기적절하게 웃으며 말했다.“새신랑, 그냥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빨리 자리에 앉아야지. 이제 합근주를 마실 시간이야!”송려는 봉장미 옆에 앉았다.두 사람은 가까이 마주한 채로 온몸이 뜨거워지고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채월이 합근주를 가져와 두 사람에게 건넸다.합근주는 두 개의 반쪽 과실 모양의 잔에 담겨 있었다.자신의 잔을 마신 뒤, 상대방의 잔에 담긴 술을
신부가 출가할 때는 반드시 친정 오라버니가 업어 꽃가마에 태워야 한다.봉구안은 남장을 하고 친정 오라버니 신분으로 변장하여 봉장미를 업었다.그녀의 걸음은 한없이 안정적이었다.장미는 그녀의 등에 기대어 안도감에 젖었다.“언니, 우리 둘 다 행복해야 해.”한 방울의 눈물이 봉구안의 목덜미로 떨어졌다.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리 될 것이다.”모든 고생 끝에 행복이 찾아온다 하지 않는가. 장미가 그간 겪은 고난을 생각하면, 이후 그녀의 인생길은 분명 순탄할 것이다....기쁜 나팔 소리와 함께 꽃가마는 송가에 도착했다.신부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가마에서 내려왔다.송려는 혼례복을 입고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그는 서둘러 신부를 부축하려 했지만, 희포가 막아서며 말했다.“신랑님, 너무 급하면 안 됩니다. 먼저 의식을 치러야지요!”주위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송려는 얼굴이 빨개졌다.그는 너무 오랫동안 장미를 보지 못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만약 소환의 사고가 없었다면, 그들은 이미 부부가 되었을 것이다.오늘 온 하객들 중에는 송려의 강호 친구들도 있었는데, 강림 또한 그를 찾아왔다.그는 봉구안을 보자마자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소환! 역시 자네 목숨은 정말 질기군! 몇 달 전 자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자네를 찾느라 적지 않은 돈을 썼다네!”봉구안은 강림을 흘겨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오늘은 송려의 혼인식이네. 자네가 붉은 옷을 입고 온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강림은 평소 붉은색을 좋아했기에 이런 점을 생각지 못했었다.그가 문을 들어설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그는 스스로를 더욱 멋있어졌다고 착각했던 것이다.강림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 남자를 붙잡았다.“어서 옷을 벗게.”그 남자는 황당해하며 말했다.“이보시오, 지금 제정신이오?”하지만, 장면이 바뀌자 그 남자는 속옷만 남기고 벗은 채 금덩이를 손에 들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형님, 형님은 정
봉구안의 표정이 단호해졌다.“스승님, 사모님, 저에게 대체 무엇을 숨기고 계셨던 겁니까?”맹 부인은 깊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구안이 스스로와 인연을 끊겠다며 약쟁이의 일을 추적하려고 하는 상황이니, 이제 더는 막을 힘이 없었다.이내 그녀는 비통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성주는 예전에 약쟁이에 대해 알게된 후 신분을 숨긴 채 조사를 계속했단다. 그 아이는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왔었지. 약쟁이들의 소굴을 발견했다며, 직접 조사하러 가겠다고 했어. 그리고 그 후에…”“사형께서 그들에게 살해당했습니까?” 봉구안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그동안 스승님과 사모님의 아픈 과거를 들추는 것이 두려워 사형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그렇게나 자애로웠던 사형. 그녀는 스승님이 말한 대로, 누군가를 구하다가 사고로 사망했다고 믿고 있었다.평소 침착하고 강인했던 맹 부인.하지만 아들의 일을 떠올리자 몇 번이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고,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맹 장군은 멍한 얼굴로 남은 이야기를 전했다.“부인이 직접 성주의 시신을 검시했는데, 성주의 무릎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눈은 부서졌으며, 오장육부는 산 채로 도려내졌었다. 그놈들이 놈을 고문했던 게야.”“이 모든 세월 동안 나는 계속 이 일을 비밀리에 조사해왔다.”“그런데 천룡회는 약쟁이의 뿌리가 아니야.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은 어둠 속에서 활 쏘는 것과 같단다.”“구안아, 죽은 자는 돌아오지 못한다. 성주는 더는 이 세상에 없고, 이제 우리에겐 너 하나뿐이다. 그저 네가 평안하고 순조로운 삶을 살아주길 바랄 뿐이다. 이번엔 내 말을 듣거라. 약쟁이의 일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말거라.”그가 그때 명확히 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구안이 집요하게 파고들다 성주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을까 두려워서였다.하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그녀는 끝내 약쟁이에 대해 알아버린 것이다…사형의 진짜 죽음의 이유를 알게 된 후, 봉구안의 마음은 격랑처럼 요동쳤다.
단정은 병약한 모습으로 여전히 기운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남을 욕할 힘은 남아 있었다.“꺼져… 시중드는 사람 따위는 필요 없어! 날 만지지 마. 멀리 꺼지란 말이야!”곁에서 시중드는 하녀는 온순한 성격이었다. 단정이 아무리 모욕하고 욕을 해도 그녀는 묵묵히 약을 먹이려 애썼다.그때 단정이 봉구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화를 억누르며 태도를 바꿨다. 마치 이전에 자신이 욕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듯, 큰 억울함을 담아 말했다.“형수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봉구안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다리가 나무판으로 묶여 있는 것이 보였다.단정은 눈을 붉히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토로했다.“염추가 제 다리를 묶었습니다. 그 아이는 형님의 유골을 원했어요.”“하지만 전 끝까지 그 아이에게 형님이 어디에 계신지 말해 주지 않았어요.”“그러자 그 아이가 제 내공을 다 빨아먹었어요.”“참, 형수님께서는 아직 모르시겠군요! 그 아이는 만간성법을 익혔습니다!”“겨우 탈출해 나왔는데, 다리를 다치고 말았어요. 이 모든 건 다 그 아이 때문이입니다!”“형수님, 절 대신해서 꼭 그 아이를 죽여주세요! 그 아이가 정말 증오스럽습니다!”단정은 사람들에게 구출된 후, 자신을 북방 장군부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맹 장군의 도움으로 그는 자유각에서 요양하게 되었다.의원은 그가 평생 다시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단정은 염추를 증오했다. 그녀의 가죽을 벗겨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다!봉구안은 하녀가 손에 든 약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일단 약부터 먹어라.”단정은 고개를 돌리며 체념한 듯 말했다.“먹기 싫습니다! 어차피 다시 나아질 수도 없는 몸인데! 이 약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전 그저 염추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수님, 저를 잘 보살펴 주겠다고 형님에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형수님께서 제 복수를 해주세요…”“염추는 이미 죽었다.” 봉구안은 차갑게 말했다.“뭐라고요?” 단정이 그녀를 돌아보며 눈빛
“거짓말입니다.”봉구안은 소욱이 서왕과 관련된 일을 말하자마자 단호히 말했다.“완부옥의 주량을 제가 모를 리 없지요. 술에 취해 실수했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아니면, 완부옥이 일부러 그런 척했겠지요. 하지만 완부옥은 여인을 좋아하니, 서왕과 무슨 일이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소욱 역시 완부옥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그 아이가 굳이 그런 일을 벌인 이유는 단순하지. 황성에 남아서 네 곁에 있고 싶었던 게다.”그는 그럴듯한 이유를 찾았지만, 문제는 서왕의 태도였다.‘서왕이 정말 완부옥에게 마음이 생긴 거라면, 이건 좀 골치 아파지겠군.’소욱이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하려던 찰나, 봉구안이 말했다.“폐하, 잠시 북방에 가야 할 듯합니다. 내일 떠날 것입니다.”소욱은 문득 생각에서 깨어나더니 그녀의 손을 잡았다.“혼례를 앞두고 있는데, 북방에 가겠다는 게냐?”그는 이미 여러 번 버림받은 경험이 있어 불안함을 느꼈다.봉구안은 차분한 눈빛으로 진지하게 답했다.“장미가 곧 혼례를 치릅니다.”장미의 혼례는 원래 작년 11월 말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봉구안이 천지설산에서 사고를 당하면서 연기된 상태였다.소욱은 머릿속으로 날짜를 세기 시작했다.‘만약 지난번 사건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혼례는 3월 초닷새에 치러질 터였겠지.’하지만 천룡회의 잔당을 궁에서 철저히 소탕하느라 만사가 미뤄졌고, 혼례복 역시 제작이 지연되어 지금까지도 완성되지 않았다.이제 와서 소욱은 길일 같은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든 준비만 끝나면 바로 혼례를 치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혼례복이 5월은 되어야 완성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호위병을 데리고 가거라.”봉구안은 그제야 은육을 꽤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소욱은 그녀가 떠나는 게 못내 아쉬운 듯 당부했다.“빨리 돌아와야 한다. 알겠느냐?”그는 천지설산에서의 일이 떠올라 여전히 가슴이 철렁했다.…다음
봉구안이 다시 한 번 검을 시험해 보니, 눈에 날카로운 빛이 서렸다.보검이 손에 쥐어지자, 그녀는 무언가를 베어 검의 예리함을 확인하고 싶어졌다.소욱은 그녀가 이 적연검을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며, 눈가의 미소가 더욱 부드러워졌다.그러나 점차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가 검에 쏟는 관심이 자신보다 크다는 것이다.특히 그녀가 검을 바라보는 눈빛은, 자신을 바라볼 때보다 훨씬 더 깊고 진지해 보였다!“나는 그럼 바깥에서 상소를 좀 보겠다.”소욱은 이 말을 하며 그녀가 자신을 한 번쯤 돌아보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검을 만지작거릴 뿐,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간단히 대답했다.“네.”그 외엔 한마디도 없었다.“저 검이 그렇게 좋은 것이냐?”마음에 한가득 서린 불만을 품고, 그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 상소를 읽으러 갔다.그러다 마침 진 나라 태종 황제의 묘에 묻힌 부장품 목록을 보며, 그의 불만은 눈 녹듯 사라졌다.이런 아내를 얻었으니, 이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자신이 속이 좁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어찌 검 하나도 포용하지 못할 수 있겠냐고 스스로를 설득했다.그렇게 소욱은 스스로를 달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궁 밖서왕부.서왕은 요즘 완부옥에게 시달리고 있었다.정말로 시달리는 중이었다.그의 팔에는 한 마리의 뱀이 감겨 있었고, 호위무사 유화는 대장부임에도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전하…”그녀는 대체 어디에서 온 요괴란 말입니까! 너무 심한 게 아닙니까!서왕은 훨씬 더 침착하게 눈을 감고 속으로 울분을 삼키며 말했다.“완 낭자, 마지막으로 충고하겠소. 이제 그만두시오.”“낭자가 나를 죽인다 해도, 나는 결코 낭자와 혼인하지 않을 것이오.”완부옥은 마치 이 서왕부의 안주인이라도 된 듯, 당당히 대청에 앉아 요염하게 웃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제가 마지막으로 충고하겠습니다. 술을 권할 때 마시지 않고 벌주를 받으려 하다니요! 제가 전하를 마음에 둔 것은 영광인 일입니다.”“지금 당장 저와 함께 입궁하여
소욱은 정말 어이가 없고 웃기기도 했다.어쩐지 며칠간 사라졌다 싶더니, 이렇게 엉망진창인 꼴로 돌아온 이유가 밝혀졌다.알고 보니 남의 선산을 파헤치러 간 것이었다!소욱은 봉구안 앞으로 걸어가, 손을 뻗어 그녀 얼굴에 묻은 흙을 직접 닦아주며 말했다."이리도 위험한 일을, 꼭 네가 직접 해야 했더냐? 그냥 편히 혼례 준비나 하면 안 되겠느냐?"지금 혼례복만 완성되면 바로 그녀를 궁으로 맞아들일 참이었다. 그래야 매일 그녀 걱정으로 속을 끓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하지만 이 순간, 그는 문득 자신이 어린 시절의 봉구안을 키웠던 맹건 부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어릴 적 그녀 역시 이렇게 가만히 있지 못하고 온종일 뛰어다니고 돌아다녔을 것이다.봉구안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묘 안에는 온갖 장치가 있더라고요. 꼭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그녀가 학문적으로 지식에 대한 갈망을 보이며 진지한 태도를 보이자, 소욱은 마음이 부드러워졌다.그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받치며, 입술에 두 번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그녀가 너무 좋아서,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였다.그러나 봉구안은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정신 차리세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이 부장품들, 전부 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소욱은 그녀의 뒤통수를 한 손으로 잡아 고정하며, 가까이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 말을 끊었다."넌 자꾸 정사만 이야기하자 하는구나. 나는 너와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그는 다른 손으로 그녀 허리띠를 슬쩍 당기며, 의도를 암시하듯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날 밤 말이다. 네가 욕조에서 날 두고 혼자 도망친 일 말이야. 그때의 빚, 아직 내가 정산하지 못했어. 네가 어찌 갚아야겠느냐?"봉구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아니, 대혼례 전까지는 몸을 아끼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소욱은 잠시 멍해졌다.큰일이다. 자신이 쏜 화살에 스스로 맞아버렸다.하지만 그는
염추가 이미 죽었고, 천룡회와 금련파도 철저히 몰락했다. 양연삭은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백성들이 던진 돌더미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이로써, 강호에는 더 이상 천룡회가 없으며, 진국 황실의 후손도 완전히 끊어졌다.소욱의 생일 이튿날, 봉구안은 사람들을 이끌고 궁림에 도착했다. 진나라 태조 황제의 묘를 찾기 위해서였다.이를 위해 그녀는 감옥에서 몇몇 도굴꾼들을 끌어냈다.전문가를 대동한 이유는 일을 더욱 수월하게 처리하기 위함이었다.도굴꾼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며칠 되지 않아 대략적인 묘 위치를 확정했다.계속해서 땅을 파내자, 한 관이 드러났다.기묘한 점은, 이 관이 세로로 세워져 있다는 것이었다.도굴꾼들은 흥분하며 말했다.“세로로 세워진 묘입니다! 관 속의 사람 신분이 지극히 고귀하다는 뜻이죠! 틀림없습니다! 이건 진 나라 태조 황제의 묘입니다!”한 호위가 흙이 느슨해진 것을 발견하고 외쳤다.“이상합니다! 흙이 헐거워졌습니다!”느슨한 흙을 파내자, 낮은 문 하나가 드러났다.봉구안은 그 낮은 문을 바라보다가 즉시 명령을 내렸다.“관은 옮겨 다른 곳에 다시 묻어라.”이어 다시 말했다.“문을 열어라. 문 뒤에 뭐가 있는지 보도록 하자.”잠시 후, 문이 열렸다.문 안쪽에는 극도로 좁은 통로가 있었고, 오직 작은 체격의 사람만 기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한 도굴꾼이 스스로 나섰다.“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축골공을 익혔습니다!”그는 이 상황의 첫 목격자가 되어 역사의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믿었다.봉구안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에게 밧줄을 묶어라.”“예!”곧, 그 도굴꾼은 밧줄을 묶은 채 좁은 통로로 기어들어갔다.밧줄은 그의 움직임에 따라 계속해서 앞으로 뻗어나갔다.대략 열 장 정도 갔을 때, 밧줄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그 도굴꾼이 끝까지 도달한 듯했다.다른 도굴꾼들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나으리, 저희도 이제 들어갈 수 있습니다!”도굴 작
소욱의 말을 들은 봉구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시험을 해보라니?봉구안은 몸을 돌려,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어떻게 시험하면 될까요?”소욱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에 두었다. 동시에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고정되어 그녀의 표정 변화를 확인하려 했다.봉구안의 숨결이 약간 흐트러졌고, 그녀의 눈은 반쯤 내려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 속 감정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소욱은 그녀의 귀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농담한 것이다.”그녀는 언제나 이렇게 냉정하고 담담했으니,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기란 참으로 어려웠다.그렇게 말한 뒤, 소욱은 그녀의 손을 놓아주고는 다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신혼 첫날밤은 지키고 싶구나.”대혼례 전까지 그는 성욕을 자제해야 했다.그가 물러나려던 찰나, 봉구안이 갑자기 앞으로 나섰다.그녀는 그의 옷깃을 잡아채며 전장에서 적을 마주하는 것처럼 공격적인 눈빛을 보였다.“제가 꼭 원한다면요?”소욱은 한 걸음 물러섰다. 얼굴에는 믿기 힘든 당혹감이 스쳤다.“구안아, 진정하거라.”그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완전한 혼례를 지키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했다.봉구안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눈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하지만 그 말의 내용은 다소 도발적이었다.“벗으시죠, 폐하.”소욱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너… 진심으로 원하느냐?”그는 여전히 고민하는 듯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차갑고 결연해 보였다.“네, 주실 건가요?”소욱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찌 여인으로서 이리 늑대처럼 구느냐.”결국 그는 포기했다.신혼 첫날밤이 뭐 대수겠는가. 그녀와 함께 있는 모든 밤이 신혼 첫날과 같을 터였다!잠시 후, 소욱은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갔다.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봉구안은 오지 않았다.뒤돌아보니,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그 순간, 내관 진한길이 들어와 병풍 밖에서 보고했다.“폐하, 마마께서 보내신 옷입니다.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