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도대체 누구인 걸까? 이선우는 첫눈에 그녀의 외모와 몸매에 놀라긴 했으나 그보다도 그녀의 깊은 상처가 신경 쓰였다. 무술인이 틀림없었다. 최은영은 그런 이선우의 시선을 인식하지 못한 채 침대에 앉으며 물컵을 건넸다. 이선우는 물컵을 건네받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최은영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선우 씨, 전 최은영이라고 해요. 당신 약혼녀고요.” “네? 약혼녀요?” 이선우는 상황판단이 안 돼서 멍하니 최은영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최은영이 갑자기 그의 품에 안겼다. “사실 어제 절 당신께 드리려고 했어요. 근데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인사불성이신 상태시더라고요. 이제 술도 깨셨고 오늘 날씨도 좋으니까 지금이 기회인 거 아닐까요?” 최은영은 말을 마치고 바로 이선우에게 입을 맞췄다. 이선우는 놀라서 최은영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밀어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일단 진정하세요. 먼저 대화부터 나눠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약혼녀라고 하시는데 전 약혼을 한 적이 없어요. 저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닙니다.” 최은영은 그 말에 발끈했다. “그럼 전 쉬운 여자라는 건가요? 좋아요, 어떤 게 쉬운 건지 알려드릴게요.” 그녀는 이선우를 덮치고는 그의 볼을 잡고 입을 맞췄다. 그녀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전쟁터에서 신이라고 불리던 자신이 거절당한 것도 모자라서 쉬운 여자라는 취급을 받는 것이 참을 수 없게 분했다. 그 시각 이선우는 거칠게 입을 맞춰오는 최은영을 차마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몸을 뒤집어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제압할까도 잠깐 생각했지만 최은영 몸에 난 상처가 떠올라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한번 힘껏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죄송해요, 일단 화내지 마세요. 제 말을 오해하신 것 같아요. 전 그런 뜻으로 얘기한 게 아니었어요. 상처도 깊으시면서 왜 이러시는 거예요.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요?” “제 상처를 보셨다고요?” 최은영이 깜짝 놀라 물었다. “
“조금 따끔할 거예요. 잠시만 참아줘요.” 두 번째 바늘도 들어갔다. “베개를 등 쪽에 받쳐주세요. 반시간 내로 폐 쪽에 고여있던 피들이 빠져나갈 거예요.” 이선우가 베개를 최은영에게 건넸다. 반시간 후, 최은영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원래도 아름답도 그녀의 미모가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신경 쪽에 치명상을 입었어요. 치료하려면 16종류의 진귀한 약재가 필요해요. 지금은 없지만 이틀 내로 제가 구해올게요.” “정말 이것도 치료할 수 있는 거예요?” 최은영이 물었다. 이런 치료방식은 생소했기에 궁금한 점이 굉장히 많았다. “네,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이선우는 손을 멈추지 않았고 수많은 침들이 최은영의 몸에 놓였다. 최은영은 내내 조용히 누워서 이선우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전쟁터의 피비린내와 비명소리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지워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요함과 편안함이었다. 그녀는 서서히 눈을 감고 이 편안함에 몸을 맡겼다. 어느덧 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 침을 빼볼게요. 지금 상태가 어떤 것 같아요?” 최은영의 혈색이 많이 좋아졌다. 숨도 더 이상 가빠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은영은 기쁘지 않았다. 왠지 이선우라면 자신의 병을 빠른 시일 내에 고칠 수 있을것 같았고 그때가 되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선우는 최은영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다급히 물었다. “왜 그래요, 어디가 불편해요?” “아니요, 많이 나아졌어요. 고마워요.” “고맙긴요, 제 약혼녀라고 하셨잖아요. 일단 기본적인 치료는 마쳤어요. 하지만 격렬한 운동은 하지 마시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세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마저 치료하죠.” “아, 그리고 제가 식단과 먹어야 할 약들을 좀 정리해서 적어봤어요. 이따가 제가 보내드릴 테니까 상처가 다 낫기 전까지는 제가 적어드린 대로 드시고 약도 꼭 챙겨먹어야 돼요.” 최은영은 세심하게 챙겨주는 이선우의 모습에
주현호와 양지은이 보디가드를 데리고 나타났다. 자신의 부하들이 다 처참히 무너진 모습을 보고 주현호도 화를 참지 못했다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이선우랑 저 노인네 하나도 똑바로 처리 못해?” “도련님, 정말 강합니다. 대신 복수해 주세요 제발요.” 흑곰이 주현호 발밑으로 기여와 옷소매로 그의 구두를 닦으며 말했다. 주현호는 이미 최은영과 이설에게 완전히 주의를 뺏긴 상태였다. 그녀들의 기세와 미모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양지은은 그들에게 상대도 안 됐다. 주현호는 흑심을 품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전 주현호라고 합니다. 이건 제 명함이에요. 보아하니 양성 사람은 아니신 것 같은데 소개를 좀 해보자면 저희 집안이 양성에서도 알아주는 집안입니다. 혹시 백조라고 불린다는 전쟁의 여신이 양성으로 왔다는 소문을 들으셨나요? 그분이 저희 집에 방문하신다고 해요. 지금 저희 삼촌이랑 같이 있으시다는데 진심으로 두 분을 저희 집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주현호가 음침하게 웃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그는 이런 빅뉴스를 들었으니 이 둘이 절대 자신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양지은은 그 모습을 보고 굉장히 불쾌한듯한 표정이였다. “오빠, 무슨 헛소리야? 삼촌이 같이 있긴 무슨.” 주현호가 두 여성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걸 양지은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삼촌을 만나고 오는 길이였다. 그리고 삼촌에게서 백조 여전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소식도 입수했었다. 언제 도착하는지는 삼촌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들도 여기저기에 백조에 관한 소식들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양지은과 주현호가 이곳에 온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주현호의 말이 끝나자 이설에게서 서늘한 기세가 느껴졌다. 그들은 양성에 비밀리에 왔다. 부대에서도 대장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이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이설은 이미 살기 어린 눈빛으로 주현호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최은영에게서 명령이 떨어지면 그녀는 바로 주현호를 살해할 준비가 되
이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최은영은 현재 남자에게 보호받은 것에 감동받아 그런 기분을 느낄 틈이 없었다. 그때 주현호의 보디가드들이 주현호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련님, 이 자식 좀 고수 같은데요. 위험할 것 같아요.” 주현호가 보디가드의 뺨을 때렸다. “다들 이것밖에 안돼?” 주현호가 시선을 이선우에게로 돌렸다. “너나 너네 엄마나 목숨이 참 질기다. 어제 나랑 지은이 때릴 때 즐거웠지? 각오해. 내 뒤에 부하들 보이지?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우리한테 사과하고 보호비를 내면 너랑 너네 엄마는 풀어줄게. 아, 그리고 이 두 아가씨는 나랑 술 한잔 하러 가고.” 주현호가 또다시 음흉하게 이설과 최은영을 바라봤다. 이선우는 간신히 살기를 억누르며 담담히 말했다. “여긴 병원이야, 일단 나가서 얘기해. 걱정 마, 네가 원하는 거 내가 다 만족시켜 줄 테니까.” 이설이 분노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예요?” 하지만 최은영이 이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봤기에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은영이 이선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처리할 수 있어요.” “아니요, 당신을 힘들게 할 수 없어요. 제가 처리할 테니까 저희 엄마 잠시만 돌봐주세요. 금방 올게요.”이선우의 말이 최은영 마음속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건드렸다. 그녀는 바로 이설을 데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이선우 씨는...”“조용히 해, 선우 씨를 믿자.”최은영은 더 이상 남을 지키는 게 아니라 남에게 보호받는 입장이 된 기분을 처음 느꼈다. 그녀는 이제 이선우를 완전히 신임했다.병실밖으로 나가자 이선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공기의 온도도 확연히 내려간 듯싶었다.“가죠, 주현호 씨. 그렇게 대단한 집안이시니 저 두 여성분도 어디 도망가시진 못할 겁니다.”말을 마치고 이선우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그는 병원에서 소란스럽게 굴고싶지 않았다.“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주현호는 보디가드 두 명을 시켜 병실을 지키게
“장군님, 이선우가 의사라면 정말 장군님 병도 고칠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방금 자기가 코드네임 백조라고 밝히려 하셨죠!” 병원을 벗어나자마자 이설이 참아왔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최은영은 병원으로 오는 길에 이미 이설에게 이선우가 의사인 사실과 자신을 치료해 줬다는 사실을 얘기했었다. “난 이선우 씨가 내 병도 고쳐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방금 내 진짜 신분을 밝히려고 했던 것도 맞아. 우리 둘이 군인이라고 얘기할 때 이선우 씨 표정이 무척 평온했던 거 못 봤어?” 이설은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은영이 말을 이어갔다. “이선우 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신비로운 사람이야. 은인님의 제자라서 그런지 역시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내가 한 말 명심해. 다시는 그 사람한테 시비 걸지 마.” “네, 그럴게요.” 이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문을 열었다. 최은영이 차에 타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번호를 확인한 최은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최은영은 그 전화를 받았다. 그 시각 이선우는 퇴원수속을 밟고 있었다. 2시간 후 그는 엄마를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문 앞에 도착하니 웬 중년남성이 정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오셨어요?” 이선우의 아버지는 이한이라는 사내였다. 이선우의 기억 속에 그는 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아마 8년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한은 늘 말이 적었기에 이선우는 그가 매우 낯설게만 느껴졌다. 이선우는 아버지가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종래로 묻지도 않았다. “그래, 엄마는 좀 어때?” 이한은 담배를 끄고 전민자를 안아 안방 침대에 눕혔다. “많이 괜찮아지셨어요. 곧 깨실 것 같아요. 몇 달 더 쉬시면 다 나으실 거예요. 아버지는 이번에 돌아오셔서 얼마나 머무르실 생각이세요?” “이젠 떠나지 않을 거다. 몇 년 동안 엄마랑 둘이서 고생이
“아니에요, 의사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인걸요. 어르신, 고마워할 필요 없으세요. 전 이선우라고 합니다.” 이선우는 말을 마치고 좀 전에 놓았던 침들을 뽑았다. “이제 정상적으로 움직이실 수 있으실 거예요.” 옆에 앉아있던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애가 할머니를 부축했다. “할머니, 좀 어때요?” “이제 괜찮아.” “진짜요? 할머니 저 정말 놀라 죽는 줄 알았잖아요.” 여자애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 귀인을 만나셨네요. 다행이에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이제 다들 일하러 가시죠. 소희야, 가서 이 의사분께 1억짜리 수표 한 장 드리거라.” “네?” 손녀인 김소희가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뭐 하는 거야, 어서 가지 않고.” “안 돼요 할머니, 진짜 치료가 된 건지도 모르고 아까 먹은 알약이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는 건데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떡해요. 혹시 독약이면 어떡하려고요.” “꼬마 아가씨, 제 의술을 의심하는 건 좋은데 인성까지 의심하진 말죠? 어르신이랑 아무런 원한도 없는 관계인데 제가 왜 독약을 드렸겠어요.”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는데 김소희에게 의심까지 받으니 이선우는 조금 불쾌해지려고 했다. 하지만 김소희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도도하게 말했다. “흥, 저희 할머니를 모르실 리가 없잖아요. 양성의 모두가 우리 할머니랑 관계를 맺고 싶어서 다들 안 달나 있는데 그쪽이라고 다르다는 보장 있나요? 제가 오해를 했을지는 몰라도 뭔가 꿍꿍이가 있을게 분명해요.” “조용히 해!” 김홍매가 호통을 치자 김소희가 흠칫 놀랐다. “죄송해요.” “하하하, 너 같은 손녀가 옆에 있는 걸 보니까 할머님 쓰러지신 것도 이해가 되네.” “너!” 이선우의 말에 김소희는 분해서 화를 내려고 했지만 할머니의 눈치가 보여 하려던 말을 삼켰다. “의사양반, 미안하네. 우리 손녀가 곱게 커서 뭘 잘 몰라. 목숨 살려줘서 고마워
김소희는 이선우가 할머니가 말한 대로 그렇게 강할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김홍매도 복잡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양성에서 그 괴물들을 제외하면 김홍매는 두려울 게 없었다. 몇 년 전 괴물과 상대하다가 참패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괴물에게서 느꼈던 기운이 자신보다 훨씬 강했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이선우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가늠도 되지 않았다. 큰 블랙홀처럼 끝을 알 수가 없는 느낌이었다. “소희야,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거라. 그리고 방금 그 사내를 찾아서 가깝게 지내. 알겠지?” 김홍매의 목소리가 부드러웠지만 태도가 굳건했다. 김소희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이선우는 이미 진료소를 차릴 위치를 다 알아보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주민재의 보디가드인 유현민이었다. “안녕, 난 유현민이라고 해. 주민재 회장님 보디가드. 회장님이 네 사지를 찢어서 가져오라고 하더라고. 근데 내 손에 피 묻히기 싫어서 그러는데 네가 직접 할래?” 유현민은 말을 마치고 비수를 그의 앞에 던졌다. 유현민은 이선우를 보자마자 굉장히 실망했다. 무술인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데다가 약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전혀 자신의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주현호와 흑곰등 사람들의 다리를 부러뜨린 사람 같지 않았다. 유현민은 그에게 손을 댈 의욕조차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미친놈...” 이선우는 상대하지도 않고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야, 내 말 안 들려?” 이선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똑똑히 얘기했다. “잘 들리긴 하지만 너 같은 애랑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가라.” “하하하, 그래. 좋아. 이제야 좀 흥이 돋네. 굳이 내가 먼저 나서는 게 보고 싶다면 그 요구 만족시켜 줄게.” 유현민은 한걸음 한걸음 이선우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선우를 얕잡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선우에게 유현민은 그저 도살장에서 죽기를 기다리는 가축 같은 존재였다. 그
한 시간도 안 돼서 그는 최은영의 집 앞에 도착했다. 이설이 문 앞에 서있었는데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선우가 다급히 물었다. “은영 씨는 어떻게 됐어요?” 이설은 이선우가 다정하게 최은영을 부르는 모습이 달갑지 않았지만 최은영이 명령을 내렸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오늘 병원에서 나올 때 전화를 한통 받으시고는 지금까지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세요. 제가 아무리 얘기를 나눠보려 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아가씨 마음속에는 그쪽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 들어가서 좀 살펴봐주세요. 실망시켜 드리지 말고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이설이 울먹거렸다. 최은영의 부하이기는 하지만 이설에게 최은영은 친언니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네, 저한테 맡기시고 들어가 보세요.” 이선우가 최은영의 방문을 두드렸다. 아직 최은영을 치료할 많은 약재들을 구하지 못한 데다가 치료과정이 길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원래 부모님이랑 시간을 좀 보내다가 최은영을 치료해 줄 심산이던 이선우는 오늘 그녀의 상태를 보고 그냥 바로 치료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오셨어요, 이쪽에 앉으세요.” 최은영은 혈색이 안 좋았고 낯빛이 창백했다. 하지만 이선우를 보자마자 그녀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근심은 사라지고 부드러움만이 남아있었다. 이선우는 바로 최은영 옆에 앉아 그녀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했다. “은영 씨,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맥이 고르지 않아요. 증세가 악화된 것 같아요. 일단 누워봐요. 침술을 진행할게요.” 이선우는 최은영을 천천히 눕히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최은영이 이선우의 품에 안겼다. 최은영은 잠옷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몸을 이선우에게 밀착시켰다. “전 곧 부대로 돌아가봐야 해요. 하지만 금방 다시 돌아올 거예요. 이제 한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아요.” 최은영이 이선우를 침대에 눕혔다.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최은영을 보며 이선우는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지금 이 상태로 부
이선우가 연달아 절기를 시전하자, 그의 기세는 최고조에 달했고, 검의도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이내 그의 기세는 무서운 지경에 이르렀고 그 모든 것을 노인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순간 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비록 그의 본체는 천공성 멀리에 있었지만 그와 같은 강자에게 있어 거리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이선우는 그의 지척에 있는 것 같았다.“녀석, 내가 눈이 나빠 너를 얕봤구나. 불굴의 검도를 이렇게까지 깨우쳤을 줄을 몰랐구나. 너는 정말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두 번째 젊은이다. 불굴의 검도라니 재밌구나. 나를 실망하게 하지 말거라.”말을 마친 노인이 허공을 밟고 떠났다. 그는 이선우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토록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젊은이는 그를 위해 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최은영에게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결국 그는 최은영의 장총에 지고 말았다.그는 이선우가 그를 이길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이선우는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노인의 본체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이게 무슨 일이야? 본체가 온다고? 그 사람한테 죽는 거 아니야?”어리둥절한 나머지 이선우는 놀라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비록 몇천 리 덜어져 있지만 노인에게 그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십여 초 사이 노인은 이미 이선우 앞에 나타나 있었다. 이선우는 그를 보고 다시 한번 넋이 나갔다.몸집이 작고 새우등처럼 굽어진 허리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그의 몸에서는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절대 강자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늙은이 같은 존재였다.“어떠냐, 젊은이. 실망한 거냐? 나도 널 그다지 죽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넌 절대로 날 위해 쓰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니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네가 먼저 선제공격을 해보거라.”노인은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숨을 헐떡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선배님께서 가르침을 주시지요.”웅!이선우 수중의 수라검에서
이번에 이선우는 선제공격을 감행했다.웅!수중의 수라검에서 낮은 검명성이 들려왔다. 불굴의 검의와 불굴의 검도의 가세 하에 이선우는 간사한 각도로 손에 쥔 수라검으로 커다란 손을 잘랐다.쾅 하는 소리가 울렸다.이선우의 검이 여전히 거대한 손을 부수지는 못했지만, 손은 허화되고 있었다.이선우는 기세를 몰아 다시 검을 몇 번 내질렀다.슉! 슉! 슉!끝내 손이 철저하게 부서지며 허화되더니 사라졌다.그 모습을 본 이선우와 일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곧 또 다른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손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단단했다. 비록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반응했지만 거대한 손이 그를 덮칠 때 그는 자신이 전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갑자기 자기 발이 땅속에서 자라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손은 바로 이선우를 내리쳐 완전히 날려버렸다.무려 십여만 척이나 날아간 후에 겨우 멈춰 섰고 사방의 공간 장벽도 그대로 산산이 부서졌다.몸을 가누고 멈춰 선 이선우의 입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고 몸 어디도 성한 곳이 없었는데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다.사람 전체가 아비규환이었다.바로 그때 어린 스님과 일행이 당황하여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 참담한 모습을 보고 모두 마음을 졸였다.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놀라움과 경악으로 가득 찼다. 비록 안에 있는 사람이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실력이 반단계 도경의 강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그들의 인지 안의 범위에서는 이선우도 더할 나위 없이 강했다. 하여 그들은 이선우가 이렇게 처참하게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아미타불, 이 시주님. 괜찮으십니까?”어린 스님은 놀라서 얼른 이선우를 부축하고 사람들을 불러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체내로 진기를 주입해 주었다.그 순간 이선우의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의식은 약간 흐려지며 매우 괴로웠다.오장육부는 이미 부서진 것처럼 일순간에 뒤집혔지만, 육체적인 고통에 비해 그저 심적인 억울함이 더 강했다.상대도 똑
어린 스님과 기타 일행은 그대로 만 척 밖으로 날려갔다. 이선우가 제때 검기를 내뿜어 그들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들 모두 어디로 날아갔을지 모를 일이었다.“무섭네요. 너무 두려운 위압감과 기세에요. 공포스러운 기세는 우리의 인지를 벗어난 것 같아요. 안에 있는 사람은 아마 초월자를 넘어서 도경에 들어선 것 같네요.”어린 스님과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정말 통로 안에 있는 사람의 실력은 그들의 인식을 뛰어넘어 있었다. 단지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무서운 살상력을 뿜어냈으니 말이다.그들은 이선우 뒤에 서서 호흡조차 조심히 해야 했다. 이선우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마 이미 갈기갈기 찢겼을 것이었다.그 순간 그들은 모든 희망을 이선우에게 걸었고 마음속에는 그를 향한 경외심만이 가득했다.그와 반대로 이선우의 얼굴빛은 약간 굳어있었다. 비록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안에 있는 사람의 실력이 그의 예상을 조금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목소리만으로 끝없는 공포가 밀려왔다.“아미타불, 이 시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정말 생각 밖으로 강한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시주님만 믿겠습니다. 저희는 저 사람의 목소리조차도 버티지 못합니다. 그러니 시주님과 함께 나란히 싸운다는 건 어불성설이겠죠. 결과가 어찌 되든 저희는 항상 옆에 있겠습니다.”어린 스님의 말이 끝나자 다른 사람들도 맞장구를 쳤다. 바로 그때 검령이 사람들의 앞에 나타났다.그는 이선우를 한번 쳐다보고는 시선을 먼 곳에 있는 문에 고정했다.“이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지? 안에 있는 사람은 너랑 경계 자체가 달라. 그는 너보다 몇천 년은 더 살았어. 아마 일찍이 공간 접힘술을 익혔을 거야. 그의 실력은 이미 도경에 들어섰어. 조금 전 그 사람의 목소리는 무수히 많은 공간 접힘술을 통해 너희들을 향해 온 거야. 너희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면 아마 그의 본체는 사실 통로에 있는 게 아니라 천공성에 있다는 것이겠지.
말을 마친 검령이 검광으로 변해 수라검 안으로 들어갔다.이선우는 그 자리에 멍하니 있다가 십여 초 지나고 나서야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그는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검령이 방금 한 말은 그의 약함과 보잘것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검령이 그를 속일 이유는 없었다. 그는 갑자기 무력함을 느꼈다.그는 줄곧 자신의 재능이 가장 뛰어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최은영과 조민아에 비하면 이 정도의 재능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걸어왔다. 비록 스승님의 가르침과 조언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실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그는 초월자라는 큰 경지에서 자신만의 절기를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불굴의 검도도 터득했다.이 두 가지만으로도 그는 이미 천재 중의 천재라고 할법했다. 하지만 검령의 말을 들은 그는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이미 이곳에서 두 달 넘게 지체했고 이제 마지막 관문을 남겨두고 있었다. 안에 있는 그 사람의 실력은 확실히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그는 최은영이 어떻게 관문을 뚫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단시간 내에 혼자서 장총 하나로 뚫고 지나갔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었다.이렇게 비교해 보니 그는 자신이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느꼈고, 보잘것없이 느껴졌다.“은영이는 임독 2맥을 뚫은 건가?”이선우가 혼자 중얼거렸다. 최은영에 대한 그리움이 그를 과거로 돌아가게 했다.비록 그는 최은영이 구효궁에서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 몰랐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이 분명 행운과 거대한 기연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라고 믿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짧은 시간 안에 그가 우러러 바라봐야 할 정도로 성장했을 리가 없었다.지난 두 달여 동안 통로 안의 강자들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을 통하여 그는 그 안 수호자들의 실력도 철저히 알게 되었다.안에 있는 수호자들은 하나같이 강한 실력을 갖췄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몇 사람을 포함해서 말이다.
어린 스님과 일행의 생사가 불명했다.이선우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들의 종적은 찾지 못했다.“설마 내가 그 사람들까지 전부 죽였나? 그럴리가...”이선우는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한 그는 마음이 초조해졌다“아니겠지? 정말 내가 그 사람들까지 다 죽였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이선우가 얼른 자기 생각을 부정하고 일행을 찾기 시작했다.그는 마침내 부서진 공간에서 그들을 찾았는데 사람들을 본 이선우는 머릿속이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어린 스님과 기타 일행들의 상태나 너무 처참했다. 모든 사람이 중상을 입었고 가장 큰 부상을 입은 몇 사람은 목숨이 위태로웠다.온 현장이 아비규환이었다.이선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어린 스님 곁으로 달려가 단약 몇 알을 꺼내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이어 진기를 그의 몸에 주입하고는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두 시간의 치료로 모든 사람들의 목숨은 건졌지만 두세 달 동안은 싸울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모든 부상이 안정되자 이선우는 그제야 질문을 건넸다.“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이 지경이 됐어요? 개척해 낸 공간에서 시전한 그 검들은 무차별적인 공격이 아니었어요. 제가 실수로 공격했나요?”일행이 듣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미타불, 이 시주님은 정말 남다릅니다. 그러니 불굴의 검도에 관해 새로운 깨달음까지 얻으셨겠죠. 그 검의 살상력은 전보다 더 매서워져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시주님께서 내지른 검에 다친 것이 아니라 부서진 공간 파편 때문에 다친 겁니다. 이 시주님의 검은 저희의 상대를 단칼에 제거했어요.”이선우는 듣고 충격을 받았다.그는 이전에 시전한 검이 외부의 공간까지 파괴하고 복구하지 못했을 줄은 몰랐다.공간 파편만으로 일행들이 이렇게 심하게 다칠 줄도 생각지 못했다.“선배님, 정말 강하십니다. 자책하실 필요 없으세요. 저희가 너무 약해서 그렇습니다. 볼품없는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다행히 저희를 제때 구해주셔서 망정이지 아니면 저승에
그 순간 세 사람은 모두 이선우를 향한 살의가 넘쳤다.이선우의 실력이 그들의 예상을 훨씬 웃돌아 그들에게 극도로 위험한 감정을 안겨주었다.“그럼 너희들이 그럴만한 실력이 있는지 봐야지.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와라!”이선우의 전의가 불타올랐다. 그는 전투를 갈망했다. 통쾌하고 피로 물든 전투를 갈망했다.눈앞의 세 사람이 그를 만족시키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충분했다.이선우는 지금 점점 더 전투를 갈망하고, 더 강한 상대를 갈망하고 있었다.강한 상대만이 그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고 그의 경지를 더 빨리 향상할 수 있었다.“죽어라!”세 사람이 동시에 이선우를 향해 어떠한 남김도 없이 최선을 다해 돌진했다.쾅! 쾅! 쾅!공포스러운 기세가 세 사람의 체내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금방 만들어낸 공간은 바로 풍비박산 나버렸다.세 사람이 동시에 손을 써서 보여준 실력이 공포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 상황이 바로 이선우가 바라던 바였다.“싸우자!”이선우는 수라검을 손에 쥔 채 자리에서 사라졌었다. 공포스러운 검명성이 천지를 울렸다. 공포스러운 검기가 주위의 공간을 산산이 조각내더니 다시 복구시켰다.이선우는 공포스러운 검의를 두르고 있었다. 매번 나타날 때마다 발밑에는 새로운 검기가 생기고 있었고 검기는 부단히 강해지고 있었다.슉! 슉! 슉!수라검이 한 번씩 휘둘러 질 때마다 한 줄기 한 줄기의 검기가 발사되며 검광이 번쩍였다.복구된 공간이 다시 한번 찢겼다. 이선우의 검기가 세 사람이 내뿜은 기세를 가르며 그들을 향해 나아갔다.푹!네 인영이 연이어 뒤로 물러났다. 이선우도 족히 만 척 밖으로 밀려나고 나서야 멈췄다.멈춰 선 그는 검을 든 손이, 팔 전체가 이미 선혈로 낭자한 모습을 발견했다. 몸에도 빽빽한 상처들이 생겼다.수라검이 가늘게 떨며 낮은 검명성을 내었다.그와 만 척 밖에 떨어진 세 사람의 상태도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매 사람의 몸에는 적어도 열 개의 상처가 나 있었고 전부 이선우가 내지른 검기로 인해 생긴
이선우가 말하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체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두 시간이 지나자 이선우의 체력은 이미 완벽히 회복했다. 하지만 체내의 진기는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자연히 전투력도 정상으로 회복하지 못했는데 90% 정도는 회복된 상태였다.비록 전투력은 90% 정도만 회복했지만 그의 경지는 이전보다 훨씬 많이 향상되어 있었다.두 시간의 회복 기간 이선우는 검도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도 얻었다.이선우는 이제 검도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경지가 향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그 발견은 이선우를 매우 놀라게 하고 흥분시켰고 그가 검도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마음을 더 확신시켰다.그 순간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이전보다 더 깊어졌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확연히 눈에 띄었다.그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어린 스님이 그랬다. 비록 그와 이선우가 함께 지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선우의 천재성과 불굴의 검도에 대한 깨달음은 잘 알고 있었다.비록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이선우는 불굴의 검도에 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이전에 얻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여 일행들도 얼마간 깨달음을 얻긴했지만 도의 문턱에 닿으려면 아직 많이 부족했다.이선우에 비한다면 그들은 모두 이 세상에 살 자격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자격도 없다고 느껴졌다.상대적인 박탈감은 심했다.“아미타불, 이 시주님은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습니다. 짧디짧은 두 시간 사이에 불굴의 검도에 관해 또 새로운 깨달음을 얻다니요. 이러면 정말 사람들에게 맞기 쉽습니다. 저희도 살길 좀 주세요. 희망도 좀 주시고요.”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선배님. 제발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주세요! 지금 재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예요! 저희 지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두부에 부딪혀 죽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모두 제각기 표정이 울상인 채로 입을 열었다.이선우가 사람들을 바라보며 얼른 위로의 말을 내뱉었다.“자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천부적인
이어 청색 두루마기를 입은 중년 남성이 대문을 나서며 이선우를 향해 손바닥을 내지르고 있었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이선우가 날려갔다. 멈춰 선 그의 입가로 선혈이 흘러나왔다.그 순간 이선우의 안색은 더 없이 어두워져 있었다.그 남자는 엄청 강했는데 사용하는 수법이나 공법이 매우 기이했다이선우는 한순간 그 어떠한 허점과 속임수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상황이 그의 표정을 저도 모르게 굳게 만들었다.청색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는 이선우를 바라보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그저 그렇네. 난 또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 했어. 공격해 봐. 세 수 안에 네 목을 취하겠다.”말을 마친 남자는 더 이상 이선우를 신경 쓰지 않고 손을 주소요의 어깨에 올려 진기를 그녀의 체내로 주입해 주었다.“네 매혹술로 적을 상대하지 말라고 말했지. 이제 네 실력이 얼마나 약한지 알겠지?”주소요는 인정하지 않았다.“나 여우야! 매혹술을 안 쓰면 뭐 하라고? 그리고 네가 뭔데 내 실력이 약하다고 하는 거야? 당시에 네가 어떤 모습으로 져서 내 치마폭에 들어왔는지는 잊은 거야?”청색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자신도 모르게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주소요의 매혹술에 걸려 처참한 모습으로 패배했기에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그때 그는 하마터면 몸을 잃을 뻔했다.비록 지금의 주소요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당시 주소요가 매혹술로 그를 패배시켰던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여전히 몸을 흠칫 떨었다.“흥, 할 말 없지? 아직 비장의 카드는 꺼내지도 않았어! 꺼냈으면 저놈도 내 치마 밑에 무릎을 꿇었을 거야! 아까 나를 아주 처참하게 때렸어! 그러니까 나 대신 저놈 잘 좀 혼내줘. 하지만 죽이지는 마. 괜찮은 남자야. 쟤랑 수련해서 정기를 흡수할 거야. 아니면 이분을 삭힐 수 없어!”말하는 순간 조소요의 온몸에서 도발적인 향이 풍기더니 이내 인간형으로 변했다.청색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단 몇 알을 던져주고는 그녀를 외면한 채 이선
검이 또 한 번 내질러 지며 주소요의 두 꼬리가 잘려 나갔다.두 꼬리가 사라지자 주소요가 사람들에게 가했던 매혹술이 훨씬 약해졌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서둘러 이선우와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그녀는 이내 먼 곳에 있던 문 근처로 후퇴하고 남은 7개의 꼬리를 모두 회수했다.잘린 두 개의 꼬리를 보는 주소요의 마음속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이선우를 노려보았다.“죽일 놈의 인간! 감히 두 꼬리를 잘라? 정말 살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서 구미호로 진화했는지 알아? 매 꼬리가 나한테 무슨 의미인지 아냐고! 죽일 놈의 인간! 가만두지 않겠다.”이전의 주소요는 계속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그녀의 전력을 꺼내야 할 만큼 이선우가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여우 일족으로 구미호가 되는 건 극한에 다다른 성과였다. 더 앞으로 진화하고 실력을 더 향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하지만 아홉 개의 꼬리가 잘리지 않는 동시에 인간의 비술을 수련하면 끊임없이 경지를 향상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인간 남자와 정을 나눈다거나 하는 행위가 있었다.하여 이선우를 만나고 난 후 얼굴도 잘생겼고 실력도 괜찮은 듯하여 적합한 상대라는 생각이 들었다.더 중요한 사실은 이선우가 잠자리에서도 굉장한 능력이 있을 듯하여 끊임없는 그녀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만 같았다.하여 그녀는 지금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았고 그저 환술만으로 이선우를 굴복시키고 싶었다.생각지도 못하게 이선우한테 두 꼬리가 잘린 그녀는 이제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두 꼬리가 잘린 그녀의 실력은 최소한 30%가 줄어들었다.그녀에게 치명적인 상황이었다.이선우와 동귀어진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러한 원수에게는 꼭 복수를 해야 했다.한순간 주위에 다시 한번 공포스러운 보라색 기운이 풍겨왔다. 그와 동시에 주소요도 여우와 인간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영혼과 수명을 태우는 일도 불사했다. 주소요의 목적은 이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