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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낯선 사람의 방문

Author: 연의 수정
민여진은 자조적인 미소를 흘렸다.

잠이 오지 않아 다시 몸을 일으켰다. 옷장을 더듬다가 손끝에 만져지는 외투를 꺼내 몸에 두르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실문 앞에 다다랐을 즈음, 조인화가 마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밖으로 나와 있는 민여진을 발견하자마자 다급히 다가와 말했다.

“왜 밖에 나와 있어, 안에서 기다리지. 지금 얼마나 추운 줄 알아?”

조인화가 민여진에게 걸어오며 중얼거렸다.

“날도 추운데 처음 보는 사람이 찾아왔더라고. 이런 날씨에 도대체 뭘 하겠다고 여기까지 온 건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차림에, 외제 차까지 타고 왔더라고. 생긴 건 또 무지하게 잘생겼어. 동네 사람들 다 나와서 구경하고 있다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요?”

민여진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 누굴 찾는 것 같은데 계속 안 가고 기다리고 있더라. 방금도 나 보자마자 이것저것 캐묻고.”

“뭘 물어봤는데요?”

민여진이 다급히 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잠시 당황한 듯 멈칫한 조인화가 대답해 주었다.

“별거 안 물었어. 그냥 우리 마을은 어떻게 살고 있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은 있나 정도로만 물어보더라. 이상하긴 했어. 여기가 외부인 접근이 쉬운 곳도 아니고, 이렇게 외딴 산간 마을에 외부인이 찾아오는 건 거의 6개월 만이잖아.”

민여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고 숨소리가 점점 가빠졌다. 그녀는 가빠진 숨을 억지로 고르며 자신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아니야, 아닐 거야... 이런 우연이 있을 수도 있나?’

그들에게 민여진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박진성이 무슨 수로 여기까지 찾아올까? 더군다나 이정화가 민여진의 행방을 누설할 리도 없었다.

“왜 그래, 여진아?”

조인화는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민여진의 반응에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져주며 물었다.

“갑자기 안색이 안 좋아 보이네. 어디 아파서 그래?”

“아니요...”

민여진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힘겹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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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미연이 이렇게까지 확신하자, 문채연도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제 분명히 박진성을 봤고, 양성에서 안진까지는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어떻게 된 거지?’라미연은 문채연이 아무 반응이 없자 또 불을 지폈다.“채연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말 네가 사랑하는 남자를 그 여자에게 내줄 셈이야? 민여진은 그저 너랑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박씨 가문의 며느리가 됐고, 널 공식 석상에 나오지도 못하게 했어. 이제는 네 남자까지 빼앗으려 하는데 계속 이렇게 가만히 있을 거야? 너 이러다 다 빼앗길 수도 있다고!”힘들게 지내던 과거가 떠오르자, 문채연의 눈에는 살기가 스쳐 지났다. 그녀는 두 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알았어. 미연아, 고마워.”문채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올해 신상으로 나온 핸드백, 사람을 시켜 보내줄게.”라미연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사양했다.“됐어. 친구 사이에 뭘 이런 것 가지고.”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던 문채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혹한의 추위마저 얼어붙게 할 만큼 차갑게 변했다.그녀는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두 손에 힘을 주더니, 다시금 사진을 열었다.사진 속, 그 여자의 환한 미소는 마치 칼날처럼 문채연의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왜? 넌 왜 이렇게까지 망가진 꼴을 하고도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건데?’반면 문채연은 이정화가 그 두 해 동안 함께한 사람이 자신이 아니란 사실을 안 후로, 완전히 연락을 끊어버렸고 몇 번을 찾아가도 문전박대만 당할 뿐이었다.‘이정화와의 관계도 끝났는데 박진성마저 잃는다면...’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문채연은 이를 악물더니 벌떡 일어나 옷을 걸치고 나갔다.박진성의 병세는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다. 복부의 상처가 자꾸만 벌어지며 악화하여 며칠 내내 별장에서 요양 중이었다. 게다가 민여진의 일까지 더해져 그는 식사 시간 외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문채연이 찾아가자, 서원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께서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7화 박진성이다

    민여진의 머리가 임재윤의 넓은 가슴에 닿았다. 그에게서 풍겨오는 향기는 묘하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특정할 수 없는 향수 냄새였지만, 오히려 민여진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다만 애매한 이 자세가 불편했다.두 사람의 행동에 여자는 눈이 빨개진 채 말했다.“뭐야? 사귀는 사이였어? 요즘 세상에 왜 잘생긴 남자는 다 못생긴 여자랑 붙는지 모르겠네!”여자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는 자리를 떠났다.여자의 말에 임재윤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낀 민여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익숙해요.”민여진은 임재윤이 자신의 마음이 다친 건 아닌지 신경 쓸까 봐 걱정스러웠다.임재윤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다가, 손을 뻗어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더니 그녀의 손바닥에 천천히 글씨를 썼다.[민여진 씨가 저 여자보다 훨씬 아름다워요.]한 글자 한 글자 강한 압력으로 글을 쓰는 그의 태도는 단호하고 진심이 어려 보였다.어쩌면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민여진은 웃음을 터뜨렸다.“왜 현준 오빠랑 똑같이 그래요? 현준 오빠는 원래 사람을 잘 달래주는 사람이라 이해가 가는데, 임재윤 씨는 예쁜 여자를 너무 많이 봐서 제 얼굴이 신기한 건가요?”임재윤은 침묵하다가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그리고.”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타자를 했다.“내 앞에서 다른 남자 이름 부르는 건 싫어요.”다른 한편.엘리베이터를 타려던 라미연은 민여진과 임재윤의 모습을 보고 흠칫하며 멈춰 섰다.‘저거 민여진 아니야?’깜짝 놀란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민여진을 찍은 뒤, 엘리베이터에 올라 바로 문채연에게 사진과 함께 음성을 보냈다.“채연아, 방금 너한테 사진 보냈는데 봤어? 이 여자 민여진 아니야?”음성을 보내고 다시 한번 사진을 찬찬히 훑어보던 라미연은 그제야 민여진 옆에 한 남자가 희미하게 찍혀 있는 걸 발견했다.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터라 남자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등만 찍혀 있었는데 체형으로 보니 박진성인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6화 몸으로 갚다

    “하지만...”민여진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짧은 시간 안에는 갚기 어려울 거예요.”민여진에게는 자립할 능력도, 돈을 벌 방법도 없었다.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한, 그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짐이 될 뿐이었다.“그냥 돈을 받아주세요. 현준 오빠한테 빚진 건 언제든 갚을 수 있지만, 임재윤 씨는 휴양지 건설이 끝나면 떠나실 거잖아요. 기간이 너무 짧아요.”민여진은 임재윤이 평생 안진 마을에 머무를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집은 여기가 아니었고,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임재윤은 받지 않고 물었다.“민여진 씨의 뜻은 나더러 안진 마을에 좀 더 머물러 달라는 건가요?”차가운 기계음 소리는 임재윤이 지금 농담하는 건지 아니면 진지하게 말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민여진이 잠깐 멈칫하자, 임재윤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일단 가지고 계세요. 제가 떠나기 전에 갚을 수 있을 거예요.”결국 민여진은 그 돈을 임재윤한테 주지 못한 채 다시 조인화에게 가져갔다.“왜 다시 갖고 왔어? 임재윤 씨가 뭐라고 했는데?”“빌려주는 거래요. 돈이 생기면 갚으라고.”조인화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건 앞으로 다시 만날 계기를 만드는 거나 다름없었다. 오직 순진한 민여진만이 자신에게 매력이 없다고 여기며 그런 쪽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었다.“갚지 못하면 어쩌려고?”민여진도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임재윤 씨의 말로는, 떠나기 전에 내가 갚을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몸으로 갚으라는 거야?”민여진은 흠칫하더니 순간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숙였다.“이모, 장난치지 마세요.”조인화는 웃으며 그녀의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아이고, 이 바보.”잠시 후, 포장 되어있는 봉투는 아까 전보다 훨씬 무거워져 있었다. 임재윤이 봉투를 받아 든 뒤, 세 사람은 가계를 나왔다.밖으로 나가던 중 다른 한 가계에서 조인화는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5화 당신한테 빚지고 싶지 않아요

    민여진이 옷을 내려놓자, 조인화가 다가오며 물었다.“왜? 마음에 안 들어?”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가게로 가요.”“왜? 현준이가 나한테 이 가게를 추천했는데, 겨울옷이 보온성이 좋다더라.”말하던 중 조인화는 뭔가를 깨달은 듯 미소를 지었다.“돈 걱정은 하지 마. 현준이가 너한테 옷을 사주라면서 돈을 푼푼이 보내줬어. 한 푼도 남기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하면서. 그러니까 현준이 말을 들어야겠지?”조인화가 민여진을 데리고 계산대로 가 결산을 하려 하자, 한 직원이 임재윤을 바라보며 말했다.“금액은 저분이 이미 결제하셨습니다. 옷은 포장해 드릴까요, 아니면 주소를 알려주시면 저희가 따로 배송해 드릴까요?”직원의 말에 조인화와 임여진은 깜짝 놀랐다.임재윤이 시내까지 태워다 준 것만 해도 이미 큰 도움인데 갑자기 옷까지 사준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얼마를 내셨죠?”민여진이 묻자, 직원은 웃으며 대답했다.“이 매장 전체를 살 수 있을 정도예요.”조인화는 탄성을 내뱉었다.“임재윤 씨가 부자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브랜드 매장인데 이 매장을 통째로 살 수 있을 만큼 줬다니, 도대체 얼마를 준 거야?”민여진은 입술을 깨물었다.‘대가 없는 호의는 받을 수 없어.'그녀는 차라리 조현준에게 신세를 지더라도 임재윤에게 더 이상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서 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이모, 현금 가지고 계세요? 제가...”“가지고 있지!”조인화는 서둘러 지갑에서 돈을 꺼내 민여진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이모도 알아. 너와 임재윤 씨 사이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는걸. 그러니까 이렇게 받는 건 아닌 거 같아. 어서 가서 돌려줘.”민여진은 돈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려다가 너무 예의를 차리는 것 같아 미소를 지었다.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카운터를 짚으며 입구로 향했다.문어 구에 있던 임재윤은 그녀를 발견하고 다가가 휴대전화로 물었다.“왜요? 옷 다 골랐어요?”민여진이 손에 든 현금을 임재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4화 임재윤이 너 좋아해

    “이모...”조인화의 말에 민여진은 당황스러워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 차가 다시 멈추더니 앞에서 휴대전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도착했습니다.”“임재윤 씨, 고생하셨어요”문을 열려던 조인화는 문득 임재윤에게서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날카롭게 각진 그의 턱선은 불편할 정도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고, 미간에 잡힌 가느다란 주름이 불쾌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임재윤의 태도에 조인화의 머릿속에는 순간 한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임재윤이 휴대전화로 물었다.“돌아갈 방법은 생각해 두셨나요?”민여진이 대답했다.“오후 5시에 안진 마을로 돌아가는 버스가 있어요.”“너무 늦네요.”임재윤은 눈살을 찌푸렸다.“다섯 시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잖아요. 저도 할 일이 없으니 같이 쇼핑하다가 다시 모셔다드릴게요.”“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민여진이 사양하려는 찰나, 임재윤은 차가운 표정으로 타자했다.“그냥 이렇게 하는 거로 하죠.”완강한 그의 태도에 민여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수고해 주세요.”조인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재윤과 민여진 사이를 관찰하고 있었다.한 매장에 들어간 뒤 임재윤이 입구에서 기다리자, 조인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여진아, 너랑 임재윤 씨 사이가 좋아 보이던데?”민여진도 두 사람 사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몰라 두루뭉술하게 답했다.“임재윤 씨는 모두에게 친절하시잖아요.”“글쎄다.”조인화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임재윤 씨가 널 보는 눈빛은 분명히 다르더라. 게다가 성격도 원래 냉정한 걸로 보이는데, 우리랑 쇼핑하겠다고 하다니. 분명히 너 때문이야. 그리고...”게다가 민여진이 조현준과 통화할 때, 임재윤은 불편한 기색을 훤히 드러냈다.“그리고요?”민여진은 묻다가 바로 웃으며 말했다.“임재윤 씨는 겉보기에는 차갑지만 속은 따뜻하고 세심한 사람이잖아요. 이모도 그날 축하 자리에서 보셨잖아요.”조인화는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3화 신혼부부

    “우리도 좀 태워주시겠어요?”조인화가 말했다.“시내에 가서 여진이 겨울옷 좀 사주려고요.”“그럼요.”진시우는 자신의 차를 잠깐 바라보다가 말했다.“근데 제 차는 자리가 꽉 찼네요. 앞에 차가 임재윤 차인데 저쪽에는 자리 남았을 거예요.”“임재윤 씨요?”조인화는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임재윤에 대해 더 이상 거부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편하지는 않아 어색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괜히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무슨 소리세요.”진시우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다 한 식구 아닙니까. 도움 줄 수 있다면 좋아할 거예요.”“알겠어요.”조인화는 민여진의 손을 잡고 임재윤의 차 옆에 다가가 차창을 두드렸다.임재윤이 차창을 내리자, 날렵하면서도 깔끔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조인화를 스치듯 흘깃 보고는 민여진의 얼굴에 시선을 꽂았다.조인화는 순간 당황했으나 바로 말을 이었다.“임재윤 씨, 저희 시내에 가서 옷 좀 사려고 하는데 태워주실 수 있나요?”임재윤은 볼품없이 낡아빠진 민여진의 옷을 보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조인화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두 사람이 모두 뒷좌석에 타는 건 임재윤을 운전기사 취급하는 것 같아, 조인화는 조수석에 올라탔다.차가 출발하자마자 민여진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받자, 전화기 너머에서 따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여진아.”“현준 오빠.”의외의 전화에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던 민여진은 운전석에 있는 임재윤이 미동하는 게 느껴져, 그가 시끄럽다고 생각할까 봐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전화를 다 하고?”조현준은 놀리듯 웃으며 말했다.“일 없으면 전화도 못 해?”“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민여진은 약간 당황해하며 말했다.“전화해 줘서 당연히 반갑죠. 그런데 지금 출근 시간 아니에요?”“맞아.”조현준은 미소를 머금었다.“그런데 갑자기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민여진이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2화 빨리 오는 것보다 때맞춰 오는 게 좋아

    너무 자연스러운 임재윤의 행동에 민여진은 또다시 혼란스러웠지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털어 버렸다.‘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런 행동은 박진성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계속 앞으로 걸어가자, 눈은 어깨에도 쌓일 정도로 점점 더 많이 내렸다. 하지만 손이 잡혀 있어서인지, 그다지 춥지 않았다.문 앞까지 왔을 때, 임재윤은 멈춰 서서 휴대전화로 말했다.“도착했어요.”민여진은 옷에 묻은 눈을 털며 말했다.“고마워요.”민여진이 대문을 여는 순간까지 임재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민여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임재윤 씨, 들어가서 따뜻한 차 한잔하실래요?”“다음에요.”임재윤은 빠르게 글을 쓰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어젯밤, 제게 할 말이 있냐고 물어보셨잖아요. 물어볼 말이 있어요. 다음에 만날 때 물을 테니까 그때는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요.”멍하니 서 있던 민여진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임재윤의 발소리가 저만치 멀어진 뒤였다.민여진이 안뜰로 들어가자, 불을 피우고 있던 조인화는 민여진을 보자마자 수건을 들고 와서 그녀의 옷에 묻은 눈을 털어 주며 말했다.“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방금 불을 피워 놓고 너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어.”민여진은 미소를 지었다.“마당에 마무리할 게 조금밖에 안 남아서, 그냥 두고 오기가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했어요.”“이 바보야, 안 추웠어? 내가 여기 있는 옷 몇 벌만 손보고 나가서 도와줄 테니, 너는 일단 앉아서 불 쬐고 있어. 따뜻한 물 좀 떠올게.”“네.”민여진은 앉아서 얼굴로 전해지는 따스함을 느꼈다. 손을 내밀어 차가웠던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자, 아까 임재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 뜻은 원래 어젯밤에 할 말이 있었다는 거 아닌가?’민여진은 머리가 아파져 왔다.‘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눈이 한번 내리자, 기온은 뚜렷하게 떨어졌다.민여진이 입고 있는 옷들은 하나같이 얇은 옷들이었고 유일하게 맞는 건 조인화의 낡은 옷뿐이었다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1화 내가 싫으세요

    임재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민여진에게 물었다.“됐어요?”그의 가슴은 여전히 드러난 채 있었고, 귀가 달아오른 민여진은 보이지 않음에도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대답했다.“네.”임재윤은 다시 옷을 내려 입고 단추를 채운 뒤, 천천히 글을 썼다.“당신 마음속에 있다는 그 사람, 저와 매우 비슷한가요?”민여진은 잠깐 멈칫하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아마... 조금은요. 하지만 많이 닮진 않았어요.”“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어요?”‘어떤 사람이냐고? 독단적이고 냉혈 하면서도 무자비한 사람.’민여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박진성의 모습은 항상 높은 곳에서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살얼음처럼 차가운 모습뿐이었다.자세히 생각해 보면, 임재윤과 박진성은 완전히 정반대의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무슨 황당한 생각으로 두 사람을 겹쳐 본 걸까?“잊어버렸어요.”민여진은 박진성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는 생각하기 싫어 잠시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요.”어쩌면 이건 민여진의 바람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박진성이라는 이름조차 잊고 아픈 과거를 모두 떨쳐내고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임재윤은 눈치껏 화제를 바꿨다.“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민여진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교회 내부 구조를 잘 모르는 한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수고해 줘요.”임재윤은 잠시 침묵했다. 약간 불쾌해 보이긴 했지만 크게 드러내지 않고 민여진의 손목을 잡은 채 밖으로 이끌었다.들어올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나가보니 땅에는 얇게 눈이 쌓여 있었다.민여진이 손을 내밀자, 눈이 손바닥에 닿아 차갑게 녹아내렸다.“집까지 데려다줄게요.”임재윤이 휴대전화로 글을 썼다.“괜찮아요.”민여진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안진 마을에 오신 것도 일 보러 오신 거잖아요. 저 때문에 이미 시간을 많이 낭비하셨는데 일 보러 가세요. 여기서부터는 길을 아니까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0화 계속해도 돼요

    임재윤은 더 이상 휴대폰으로 타자를 하지 않았고 대신 조용히 민여진의 손을 붙잡았다.그의 손은 크고 따뜻했고 그 사람이 지니던 차가운 손과는 전혀 달랐다. 임재윤의 손은 피부가 델 듯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뜨거웠다.민여진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살짝 떨었고 임재윤은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자신의 몸쪽으로 이끌었다.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그가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리고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가슴과 복부 사이 어디쯤 조심스럽게 얹었다.마침 그 자리는 심장이 뛰는 곳이었고 손등 너머로 전해지는 맥박은 뜨겁고 강했다. 그 울림에 민여진은 마치 전신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민여진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 했지만 임재윤이 더욱 단단히 그녀의 손을 잡고는 아래로 이끌었다.그의 허리로 내려간 손끝에는 단단하고 잘 단련된 근육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압도적인 힘과 긴장감과 폭발적인 에너지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잠시 후, 임재윤은 그녀의 손을 놓았고 옷을 더 걷어 올렸다.그건 마치 마음껏 확인해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이었다.민여진의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피가 터질 것처럼 귀 끝까지 달아올랐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되뇌었다. ‘이건 그저 확인일 뿐이야. 그 사람인지 아닌지만 알아보면 되는 거야.’하지만 시야가 보이지 않는 만큼 감각은 모든 걸 더욱 생생히 느꼈다.그의 숨소리 피부에서 나는 미묘한 향기 손끝에 닿는 근육의 결까지도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그녀는 예전에 박진성과 수없이 많은 밤을 함께 했지만 이렇게 집중해서 그의 몸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그들은 서로의 몸만 공유한 낯선 사이였을 뿐이다.감정도 사랑도 없었다.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도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임재윤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고 그제야 민여진도 정신을 차리고 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그러고는 손을 그의 왼쪽 허리로 옮겼다.그녀는 눈을 꼭 감고 과거를 떠올렸다. 그날 그녀가 칼을 찔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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