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881화

작가: 고나름
4월의 세상은 봄의 따스한 햇살과 맑은 경치로 가득 차 있었다.

유월영과 신연우는 정원 뒷마당에서 천천히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봄바람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쳤고 장미 향기가 섞여 퍼졌다.

두 사람은 아직 결혼식 예복을 벗지 않았다. 신연우가 벗으려 했지만 유월영은 옷을 입고 걸어봐야 어느 부분이 불편한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내일이 결혼식인데, 식전에 예복을 입고 움직여 봐야 불편한 부분을 고칠 수 있죠. 아니면 결혼식에서 가서야 알아채면 그 옷을 입고 고생할 수밖에요.”

신연우도 그녀의 말에 설득되어 예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그의 다리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혼자서 걷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두를 필요가 없어 천천히 정원을 거닐었다.

“그날, 시우가 나한테 전화해서 우리는 한 시간 넘게 이야기했어요.”

신연우가 말을 꺼냈다.

유월영이 물었다.

“우리 관계에 대해 털어놓던가요?”

“네.”

“그럼 많이 놀랐겠네요?”

유월영은 그 황당한 진실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닌 듯 신연우를 놀리며 말했다.

신연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뭐라고 말을 꺼낼지 망설이다 결국 침묵했다.

앞에서는 한 무리의 가정부들이 손님들이 사용할 식기를 옮기고 있었다.

그 식기들은 모두 베르나르도 도자기에서 생산된 것들이었으며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많은 궁전 연회에서 사용된 명품이었다.

식기들은 매우 정교하고 비쌌지만 깨지기 쉬워 가정부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다.

신연우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시우의 말을 다 듣고 나니 그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유월영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네?”

“월영 씨도 알겠지만, 다니엘 부인이 살아있을 당시 그분은 능력 있고 권위까지 가진 사람이었어요. 레온 가문의 모든 일은 거의 그분의 말 한마디에 결정되었고 아무도 그분에게 반기를 들 수 없었죠. 설령 그분이 자리를 손자에게 물려주려 해도 레온 가문 사람들은 탐탁지 않아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죠.”

유월영이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882화

    신연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시우는 이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월영 씨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어요. 그래서 월영 씨를 곁에 두고 싶어 했죠. 하지만 이제 시우도 깨달았어요. 월영 씨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월영 씨 대신 결정을 내리거나 심지어 강요하는 건 잘못된 일이란 걸요. 그래서 시우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유월영이 물었다.“신 교수님과 결혼하든지, 아니면 그와 결혼하든지요?”신연우가 말했다.“나와 결혼하든지, 아니면 결혼식을 취소하든지요.”유월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레온 가문의 명성은 포기하고요?”신연우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건 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요. 시우한테는 월영 씨가 더 중요하죠.”유월영은 신연우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봤고 신연우도 유월영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여전히 금속 체인으로 된 테 안경을 쓰고, 눈빛은 부드럽고 다정했다.유월영이 잠깐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신 교수님은 예복이 참 잘 어울려요.”신연우는 약간 놀란 듯 그녀를 바라봤다....불가리 호텔은 세계적으로 몇 개밖에 없는 최고급 호텔로 기본 객실조차도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고 스위트룸의 가격은 몇천만 원을 호가했다.사람들은 레온 가문에서 이번 결혼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현시우는 호텔을 일주일 동안 통째로 예약해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을 맞이했다.그 비용만으로도 몇십억 원에 달했으며 강수영마저 그 사치스러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조금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사촌 오빠가 진 것 같은데.”연재준과 강수영도 결혼식에 초대받은 손님이었기 때문에 불가리 호텔에서 묵고 있었다.유월영은 정말로 연재준에게 청첩장을 보냈고 연재준도 보란 듯이 결혼식에 참석하러 왔다.강수영은 이 상황이 너무 막장처럼 느껴졌다.연재준은 불쾌한 표정 없이 이런 의미 없는 비교에 화내지 않았다. 그는 큰 창가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창밖은 마르세유의 야경이 펼쳐졌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883화

    노현재가 차 테이블 아래에 있던 청첩장을 발견하고 집어 들며 말했다.“봐, 청첩장에 신랑과 신부의 사진도 없고 신랑과 신부의 이름도 안 적혀있어. 이런 방식, 왠지 익숙하지 않아?”정말 익숙했다.연재준이 미간을 꾹 누르자 노현재가 계속 말했다.“유월영 여동생의 결혼식 기억나? 그때도 이런 식이었잖아. 숨기고 감추다가 나중에 신랑이나 신부가 바뀌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게.”만약 결혼식의 주인공이 정말 현시우와 유월영이라면 청첩장이 이렇게 될 리가 없었다.레온 가문은 결혼식을 위해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였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청첩장 같은 작은 부분에서 실수할 리가 없었다.그렇다면, 이름은 일부러 안 적은 거였고 신랑을 바꾸는 것도 이미 계획된 일이다.노현재는 청첩장을 던지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신연우는 현시우랑 다르지. 월영 씨와 신연우가 정말로 결혼하면 그건 진짜 부부야.”“맞아. 두 사람은 진짜 부부가 되는 거야!”강수말이 재빨리 대답했다.“사촌 오빠. 신연우는 달라. 유 비서도 신연우한테 아예 감정이 없는 게 아니야! 그때 오빠가 유 비서의 모든 앞길을 막았을 때 신연우가 유 비서를 거둬들였어. 3년 전에 유 비서가 살아있었다는 사실도 신연우만 알고 있었잖아. 게다 얼마 전에 유 비서를 구한다고 다리도 다쳤고. 유 비서가 신연우 때문에 신씨 가문하고 신현우한테 복수도 살살한 거 보면 그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진짜라니까!”연재준은 유월영이 현시우와 결혼하는 것보다 다른 남정네와 결혼하는 게 더 두려웠다.현시우와 유월영은 결혼한다고 해도 이성적인 관계에 그칠 거지만, 신연우과 결혼하면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었다.유월영은 이제 정말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는 것이다.청첩장을 바라보는 연재준의 검은 눈동자는 파도처럼 요동쳤고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다.노현재가 다시 거들었다.“두 사람은 진짜라니까.”연재준이 무표정하게 말했다.“그뿐만 아니야. 월영이가 당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서정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884화

    유월영은 은베이지색 끈 달린 잠옷에 가운을 걸친 채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이미 화장을 마친 상태였고 이승연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유월영의 머리를 묶어주는 모습을 보며 눈이 반짝였다.유월영이 웃으며 물었다.“어때?”이승연이 아낌없이 칭찬했다.“정말 예뻐.”유월영이 웃으며 대답했다.“다른 사람의 칭찬은 잘 믿지 않지만, 언니가 예쁘다면 정말 예쁜 거야.”그녀는 머리를 움직일 수 없어 거울 속의 이승연에게 말했다.“결혼식은 아홉 시인데,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서 화장해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아. 한 시간만 더 자도 될 것 같은데…”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승연은 거울 속의 유월영을 바라봤다. 메이크업 덕분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기뻐서인지, 오늘의 유월영은 평소처럼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다.‘오늘 결혼식을 많이 기대한 것 같네.’이승연이 이내 복잡한 표정을 거두며 대답했다.“맞아. 내 결혼식 때도 그랬거든.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준비했잖아. 다행히 나는 메이크업 하는 동안 사건 파일은 볼 수 있었거든. 그래서 결혼식 전까지 사건 하나는 끝낼 수 있었어.”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대단하다는 듯 이승연을 힐끗 쳐다봤다.유월영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때 우리가 친하지 않아서 아쉽게 결혼식에 못 갔어.”이승연이 상관없다는 듯 대답했다.“괜찮아. 재혼할 때 꼭 초대할게.”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조서희가 그 말을 듣고는 혀를 차며 웃었다.“대체, 결혼식 날에 그게 무슨 망언이야! 어른들이 들으면 혼난다고!”유월영과 이승연은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물론 다 장난이었다.헤어스타일이 끝난 후 유월영은 이승연과 조서희의 도움을 받으며 웨딩드레스를 갈아입었다.웨딩드레스는 중세기 디자인으로 디자이너들이 밤낮으로 작업해 만든 것이라 가격이 매우 비쌌다.드레스는 실크 샤틴과 실크 오르가자로 만들어져 우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광택을 띠고 있었고, 금실로 고급 레이스와 자수도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885화

    연회 부인은 팔찌를 꺼내 유월영의 손목에 끼우며 말했다.“고씨 가문에서 몇 대를 이어온 팔찌인데 네가 결혼 할 때 꼭 끼워주고 싶었어.”유월영이 팔찌를 어루만지며 눈에 눈물이 맺혔다.“고마워요. 어머니.”연회 부인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유월영을 안고 싶었지만 잘 손질된 머리가 망가질까 대신 가볍게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앞으로 엄마가 좋은 것만 해줄 거야. 필요한 건 뭐든지 말해.”유월영이 몸을 숙여 연회 부인의 허리를 살짝 안았고 연회 부인은 따뜻하게 그녀의 등을 어루만졌다.유월영의 시선이 방문을 향했다. 사람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했지만 더 이상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8시 30분, 다니엘 정원 입구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신부를 맞이하는 차량 행렬이 정원 대문을 지나가고 있었다.예복을 차려입은 신연우가 차에서 내려서 손목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 신랑 들러리들과 같이 2층으로 향했다. 결혼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석대로 진행되었으며 신부 맞이 과정도 빠질 수 없었다.몇 명의 귀여운 화동들이 앞장섰고 신부 들러리들도 길을 막으며 짓궂게 했다. 따뜻하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유월영은 큰 침대에 혼자 앉아 팔찌를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마음은 고요했고 평화로웠다.예식 시간이 다가오자 행사 진행자가 신랑과 들러리들을 방으로 들여보냈고 유월영은 고개를 들어 신연우를 향해 미소를 보였다.조서희는 장난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마지막 관문을 웨딩 구두를 찾는 거예요. 찾지 못하면 신부는 우리가 데려가요!”그렇게 신랑과 들러리들은 방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옷장, 침대 밑, 테이블과 의자까지 안 뒤진 곳이 없었지만 웨딩 구두는 도무지 발견되지 않았다.신연우가 유월영 앞에 무릎을 꿇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사랑하는 나의 신부, 힌트 좀 주시면 안 될까요?”유월영이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저도 몰라요. 다시 한번 찾아보세요.”행사 진행자는 시간이 임박하자 재촉했다.“신랑께서 서둘러 찾아야겠어요.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886화

    언제부터인지 방 안은 조용해졌고 조금 전까지 시끌시끌했던 신부 들러리들도 사라졌다.방 안에는 이제 연재준과 유월영 두 사람만 남아 있었고 결혼식도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유월영은 여전히 침대 끝에 앉은 채 말이 없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연 대표님. 나는 당신이 어젯밤에 올 줄 알았어요.”연재준의 목소리가 떨려왔다.“내가 어제저녁에 당신을 찾아왔다면, 오늘 신 교수와 결혼하지 않으려고 한 거야?”유월영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이 질문은 이제 의미가 없어요. 결국 당신은 어제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그제야 연재준은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깨달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고통이 그를 짓눌렀다.연재준은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따뜻하게 감싸주었다.“미안해. 어제는 생각할 게 많아서 그랬어.”그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아마도 자신의 현재 몸 상태로 얼마나 오래 그녀를 지킬 수 있을지 고민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신연우보다 더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인지, 그녀가 신연우와 결혼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온 밤을 고민했을 것이다.연재준의 이성은 그에게 유월영을 찾아가지 말라고, 유월영에게 신연우가 더 잘 어울리고 그와 결혼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는 모든 계획과 포석이 거의 완성된 이 순간에 자신의 판단을 흐리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말했다.결국 생각을 거듭하고 결정을 내린 끝에 어젯밤에 연재준은 유월영을 찾아가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아침 모든 사람들이 이 세기의 결혼식에 대해 떠들고 있을 때, 그는 마침내 이성을 잃고 신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연 대표가 왔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따라나서야 한다는 법은 없죠.”유월영이 이를 악물었다..“나는 당신한테 설명할 기회를 줬고 나를 데려갈 기회도 줬어요. 내가 왜 신 교수님과 함께 예복을 입고 밖에서 산책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887화

    연재준이 과거 유월영과 그녀의 양어머니인 이영화를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던 일부터, 이영화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던 사실까지 그는 유월영에게 먼저 말한 적이 없다.모든 것은 그녀가 윤영훈과 신현우, 그리고 오성민한테서 듣고 알게 되었다.어디 이것뿐이랴.3 년 전, 현시우는 그녀에게 과제로 레온 그룹의 인수 프로젝트를 맡겼었다. 그건 바로 SAM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었고 그때 그녀는 ‘한국에서 온' 경쟁 상대와 맞붙게 되었다.현시우는 일부러 유월영에게 상대가 누구인지 숨겼지만 유월영은 그 경쟁 상대가 바로 연재준이라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그렇다면 연재준은 상대편이 유월영이라는 걸 몰랐을까?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그녀가 그를 잘 아는 만큼, 그도 그녀의 모든 걸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어젯밤 유월영은 하객으로 온 SAM 대표 제임스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두 사람이 처음 만나던 날부터, 그리고 그 이후의 인수 건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제임스가 문득 말했다.“사실, 나는 연 대표와 오랜 친구예요.”“그 말이 뭐였더라? ‘C'est le meilleur arrangement que le destin puisse faire’ 모든 것은 결국 다 운명이다.”꼬장꼬장한 노인네는 와인 한 잔을 마시고 나서 이어 말했다.“다행히 그때 연 대표가 한 수 놓쳐서 지고 말았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마주 앉아 얘기할 수도 없을 거예요. 당신처럼 재미있는 친구를 놓치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거든요.”유월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나보고는 재미있다고 한 사람은 제임스 씨가 처음이에요. 나는 전혀 재미있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왜냐하면 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보는 눈이 있거든! 연 대표도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보고 재미있는 노인네라고 한 사람도 연 대표가 처음이에요. 고 대표도 신주시에 갔었으니까 아마 연 대표의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거예요.”“신주시의 연재준 대표를 말씀하시는 거죠? 아주 친하신 가 봐요?”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888화

    연재준은 유월영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그는 유월영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홧김에 얘기하는 건지 알 수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일부러 당신을 속상하게 하려던 게 아니야. 나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한 적 없어. 나는 그저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한테 속죄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야...”그는 어디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달래야 그녀의 화가 풀릴지 알 수 없었다.연재준은 유월영의 차가운 손을 자신의 따뜻한 얼굴에 대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그 사람들한테 직접 복수하려고 현시우의 도움도 받으려 하지 않았잖아. 내가 나서면 당신은 더욱더 거부하겠지. 그래서 나는 뒤에서 몰래 그렇게 한 거야.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어.”그는 자신의 업보를 청산하고 마음 편히 죽으려던 게 아니었다.“내가 윤영훈, 오성민 그 사람들보다 더 나쁘다는 걸 알고 있어. 그렇게 당신을 괴롭혔으니 내가 당신한테 한 만큼 당신도 나한테 똑같이 되갚아 주기를 바랐을 뿐이야.”유월영이 손을 빼려 하자 연재준은 더욱 꽉 잡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당신이 이런 일들을 모른 채 내가 죽은 뒤에도 나를 미워하기를 바랐어. 내 죽음으로 당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해, 후회 없이 죽을 수 있어.”“그래서요?”유월영은 목에 무언가 틀어막힌 것 같았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그렇게 헌신적으로 나를 위한다면서 지금 왜 여기 왔어요? 얼마 살지도 못할 거면서 나를 데려가면, 나 홀로 남겨놓고 과부라도 되라는 건가요?”연재준은 말문이 막혀 입술을 꽉 깨물었다.유월영도 침묵하자 방안이 삽시에 조용해졌다.유월영은 그의 깊고 검은 눈을 마주했다. 그의 날카롭던 눈매는 지금은 슬픔으로 힘없이 보였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연재준이 몸을 일으켜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그의 심장은 예전처럼 단단하지 않았고 마치 오랜 세월 바람에 침식된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889화

    연재준은 여전히 그녀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다행히 키가 컸기에 허리를 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그는 유월영의 등을 토닥여 주며 떨림을 진정시키려 했다.연재준은 그녀의 눈물을 이해하고 있었다.그 눈물에는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한 힘든 짐뿐만 아니라 서로를 괴롭히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진 마음과,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무력감까지 모두 담겨 있었다.연재준도 자신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가볍고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전에 우리 결혼식 반쯤 치르다 말았잖아. 이제 남은 부분을 마저 할까? 신랑이 현시우에서 신연우로 바뀌었으니 이제 나로 바뀌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유월영은 그의 등을 때리며 저항했지만 연재준은 여전히 애교 부리듯 말했다.“나랑 결혼해줘...내가 반지도 가져왔어. 에로스, 이건 영원히 당신 거야. 다시 이 반지를 받아줄래?”그는 주머니에서 에로스 반지를 꺼냈다.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는 영원했으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다.“나중에 내가 손가락을 또 잘라야 할지도 몰라요.”유월영은 여전히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내 몸에 있는 흉터는 전부 당신 때문에 생긴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몸이 변하듯 흉터도 점차 옅어지겠죠. 10년, 20년이 지나면 아마 눈에 띄지도 않을 거고요.”“하지만 내가 죽어 내 살이 썩고 결국 뼈만 남았을 때도 흉터는 뼈에 아로새겨 있겠죠. 내 가슴에 관통된 상처와 내 손가락에 남은 상처들.”연재준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그럼 우리 둘이 죽으면 땅에 묻지 말고 같이 화장해 달라고 하자. 내 유골과 당신 유골을 같이 담으면 내 유골 가루가 당신의 상처가 된 부분을 채워 줄 거야. 그렇게 하는 게 어때?”“...”유월영은 기가 막혀 그의 어깨를 덥석 물어버렸다.“그런 미친 소리는 혁재 씨한테서 배운 건가요? 뜻대로 안 되면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거요.”연재준은 유월영을 끌어안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조준을 잘해. 활 쏘는 것도 총 쏘는

최신 챕터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6화

    “할 수 있지, 할 수 있어. 연이가 원하는 거라면 아빠는 꼭 해낼 거야.”윤영훈은 목이 메어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주월향은 딸에게 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빠가 누군지 알려주며 7년 동안 떨어져 있었음에도 딸이 그를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해줬다.‘이 세상에 이런 여자가 또 어디 있을까?’그러나 윤영훈은 주월향의 이런 행동이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뜻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집안에 들어서자 연이가 활기차게 떠들었다.“엄마!”주월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연이야, 배고프지? 어제 배추전 먹고 싶다고 했잖아? 방금 만들어서 아직 따뜻해. 간식이니까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알았지?”아이가 환호하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주월향은 윤영훈을 힐끗 보며 말했다.“당신도 먹어볼래요?”윤영훈은 그녀 쪽으로 다가가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월향아, 미안해...”“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요.”주월향이 그의 말을 끊었다.그리고 딸을 한 번 보더니 아이가 듣지 못하도록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윤영훈도 그녀를 따라 나갔다.주월향은 식물에 물을 주며 담담하게 말했다.“7년 전, 영훈 씨가 감옥에 가기 전에 우리 모녀를 위해 모든 걸 준비해 줬어요. 돈, 집, 차까지 모두 마련해줬죠. 게다가 내가 당신을 한 번 배신하기도 했으니 당신에게 상처 준 대가로 다 갚았다고 볼 수 있겠죠. 우리는 7년 전에 이미 정리됐어요. 그러니 서로에게 빚진 건 없어요.”윤영훈은 숙연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주월향이 돌아서서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이 7년 동안 내가 감옥 면회를 가지 않은 이유는 더 이상 먼저 다가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오늘 출소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죠. 당신이 날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그냥 이대로 끝났을 거예요.”“하지만 영훈 씨는 나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지금 당신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여기 남을 건가요?”“...내가 여기 남아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5화

    “됐어요, 사촌 오빠, 얼른 가세요. 곧 비가 올 것 같아요. 이모와 이모부께는 제가 잘 지낸다고 전해주세요. 여기서 부족한 것 하나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요.”‘사촌 오빠?’남자는 주월향의 남편이 아니라 사촌 오빠였다.거의 죽어가던 윤영훈의 마음이 한순간에 되살아났다.그는 참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뻔했다.그러나 그 사촌 오빠가 집을 나서자 윤영훈은 재빨리 수박 덩굴 아래로 몸을 숨겼다.물론 그 남자가 남편이 아니라고 해서 주월향에게 남편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하지만 이 반전만으로도 그는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꼈다.그때 머리 위의 수박잎이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젖혀졌다.윤영훈은 순간 얼어붙었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청아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내가 아까 한 말 못 들었어요? 곧 비가 올 것 같으니 빨리 벼부터 거두는 걸 도와줘요. 비 맞으면 이번 농사는 다 망해요.”윤영훈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주월향의 말투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마치 그가 7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잠깐 외출했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들렸다.천천히 돌아선 윤영훈을 주월향은 담담하게 바라보며 갈퀴를 건넸다.“모두 한데 모아주세요. 내가 자루를 가져올게요.”윤영훈은 멍하니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그는 감옥에서도 농사일을 해봤기에 이런 일이 낯설지 않았다.하지만 일을 하다가도 자꾸 주월향의 눈치를 살폈고 그녀의 의도를 이해하려 애썼다.주월향이 입을 열었다.“지금 나는 온라인에서 요리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어요. 팔로워가 몇백만 명은 되죠. 영상 편집이 아직 안 끝났으니 벼를 다 거두고 나면 이 앞에 초등학교에 가서 연이를 좀 데려와 주세요.”“지안 초등학교가 어디 있는지 알죠? 몰라도 괜찮아요. 핸드폰 내비게이션 켜고 찾아가면 돼요.”윤영훈이 여전히 멍하니 있자 주월향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내 말 들었어요?”“들었어...”주월향은 거둔 벼를 집 안으로 가져가며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4화

    윤영훈은 10년 형을 선고받았다.모범수로 인정받아 감형된 덕분에 실제 복역 기간은 7년 10개월이었다.출소하는 날,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감옥 문 앞에 서서 바라본 세상은 이미 많이 변해 있었다. 그의 모습도 더 이상 과거의 의기양양하고 자유분방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윤영훈은 감옥 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출소를 반년 앞두고 그는 출소 후의 삶을 계획하려 애썼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윤씨 가문은 이미 몰락한 지 오래였다.2년 전, 그의 아버지는 감옥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교도관들의 배려로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그곳에서 그는 가난에 시달리는 친척들을 보았다.가문의 보호막 없이 근근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윤영훈은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그의 사촌 서정희는 출소 후 찾아오라 했지만 그녀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윤영훈이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주월향이었다.그녀와 딸 연이를 보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등장이 그녀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웠다.게다가 그녀는 이미 자신을 만나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재판을 받던 날에도 주월향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그녀는 분명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녀 곁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남자가 없더라도 모녀는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윤영훈은 감옥에 가기 전 그녀에게 충분한 재산을 남겼고 그녀가 이를 잘 활용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등장은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비열하다고 느꼈다.주월향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멀리서 그녀를 한 번 보기만 해도 만족하겠다고 다짐한 윤영훈은 감옥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기차표를 사서 그녀의 고향으로 향했다.그곳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작은 마을이었다.기차역에서 그녀의 집까지는 버스로 2시간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3화

    “그래도 돼?”강수영은 신현우가 미쳤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정말로 그녀의 애인이 되었고 강수영은 반년 넘게 그와 몰래 관계를 이어갔다.강수영은 일부러 자신이 이미 남편과 이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매주 몰래 찾아오는 신현우를 지켜보며 즐거워했다.가끔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면 그녀는 짐을 싸서 바로 떠났다.그럴 때마다 신현우는 알림도 받지 못한 채 허탕을 치고 돌아가야 했다.친구들은 강수영이 신현우를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이 상황을 즐길 뿐이었다.현재 신현우의 눈에는 질투와 시기가 가득 차 있었고 늘 당당하던 그의 얼굴에는 답답함과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강수영은 자신이 그의 곁에서 겪었던 모든 억울함과 상처를 이렇게 풀고 싶었다.이번 주, 강수영은 영국으로 떠날 예정이었고 신현우는 그녀가 남편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 밤 강수영이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그는 거실에서 홀로 술병을 비우고 있었다.엉망이 된 그의 모습은 평소와 달리 초라해 보였고 강수영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약해졌다.그녀는 오랜 시간 방치해둔 녹음기를 꺼냈다. 그건 예전에 신연우가 건넨, 신현우의 음성이 담긴 파일이었다.그녀는 당시 결혼 생활에 전념하고 싶어 듣지 않았던 녹음을 재생했다.녹음기에서는 술에 취한 신현우의 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것은 강수영의 결혼식 날, 신현우가 취한 상태에서 남긴 말들이었다.신연우가 그를 말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수영이가 내 앞을 그렇게 지나갔어. 남편 팔짱을 끼고 날 쳐다보지도 않았어.”“내가 정말로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아니야, 난 수영이를 좋아했어. 다만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길 바랐을 뿐이야.”“나 때문에 부모님과 친구들과도 관계를 끊었잖아. 너무 어리석었어. 나는 그런 가치를 줄 만한 사람이 아닌데...”“다 내 잘못이야. 처음부터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았더라면 수영이가 이렇게 집착하지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2화

    두 사람은 서쪽으로 스위스 알프스를 찾아가 산맥의 낭만을 만끽하며 자연 보호구역에서 아름다운 야생동물들을 만났다.북쪽으로는 핀란드의 로바니에미와 캐나다의 퀘벡으로 향해 겨울 축제와 북유럽의 신비로운 매력을 경험하고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오로라의 장관을 즐겼다.그러던 중, 한 여행지에서 강수영은 신연우를 우연히 마주쳤다.오래된 친구라 할 수 있는 사이였기에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식사 후, 신연우는 그녀에게 녹음 파일을 건네며 말했다.“이 안에는 우리 형의 음성이 들어 있어. 들을지 말지는 네가 결정해. 하지만 듣는다면 네 결혼 생활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그는 이어 덧붙였다.“형이 요 몇 달 동안 상태가 많이 안 좋았어. 큰 병을 앓아 체중이 많이 빠졌고, 회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어. 최근에서야 조금 회복됐지.”강수영은 특별히 반응하지 않고 녹음 파일을 받았지만 끝내 듣지 않았다.신혼여행을 마치고 부부는 지성으로 돌아와 결혼 후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이혼 절차를 밟게 되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큰 갈등이 없었다. 강수영의 남편은 여전히 훌륭한 사람이었고 이혼의 원인은 문화적 차이와 생활 습관의 차이였다.한 사람은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다른 한 사람은 서양식 사고방식으로 자라며 서로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그들은 평화롭게 헤어졌고 이혼 후에도 좋은 친구로 남았다.부모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이혼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합의한 후 강수영은 다시 전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했다.그러다 각 나라, 각 도시에서 신현우를 계속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세 번째 만남에서는 더 이상 참지 못한 강수영이 그를 조롱했다.“신 대표님, 이렇게 한가하신 줄 몰랐네요. 왜 자꾸 저를 따라다니시는 거죠?”“따라다닌 게 아니야. 우연일 뿐이야.”“우연이 이렇게 자주 겹칠 리가 있나요?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차가운 미소를 띤 강수영에게 신현우는 화제를 돌렸다.“넌 왜 여기저기 여행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1화

    ‘소은혜’에서 다시 ‘강수영’으로 돌아온 후, 강수영은 그 차가운 남자와 더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한눈에 반했던 감정은 결국 그녀의 인생을 망쳤고 다시는 그 남자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 파혼하고 집을 떠나 이름까지 바꾼 채 명분 없이 그의 곁을 지켰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자라며 손가락질했다.그러는 동안 그는 가문 배경이 잘 맞는 귀한 집 아가씨와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스스로를 명문가의 딸에서 천한 첩으로 전락시켰지만 그에게선 차가운 시선만 돌아왔다. 그녀가 바친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는 온기 한 줌 나눠주지 않았다.강수영은 결국 깨달았다. 그 감정을 고집한 자신이 문제였다는 것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그녀는 강씨 집안의 딸로 돌아왔고 그는 여전히 신씨 가문의 장남으로 남아 있었다.부모님은 그녀를 위해 맞선을 주선했고 두 가문 모두에게 이로운 자리였다.강수영은 더 이상 부모님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 기쁜 마음으로 맞선에 응했다.맞선 상대는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훌륭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나이도 비슷했고 배경도 잘 맞았다.며칠간 그와 시간을 보내본 그녀는 그가 괜찮다고 느꼈다. 특히, 그가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고백했을 때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너무나 고된 일이었기에 이번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3개월간 교제했고 큰 문제 없이 잘 맞았다. 비록 심장이 크게 뛰는 설렘은 없었지만 세상 대부분의 결혼이 ‘적당함’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그 기준에서 본다면 그와의 결혼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결국 두 사람은 약혼했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그러나 결혼식 당일,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나타났다. 바로 신현우였다.그의 등장에 강수영은 잠시 굳어졌지만 이내 미소를 띠며 신랑과 함께 술잔을 들었다.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0화

    방금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는 축 늘어져 있었다.이승연은 고양이가 우울증에 걸릴까 봐 걱정되어 이혁재에게 맡기기로 했다.“경험 있는 네가 좀 맡아줘.”이혁재는 황당했다.“내가 무슨 경험이 있다고 그래!”이승연은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처지가 비슷하잖아.”화가 난 이혁재는 이승연을 들어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곱게 바른 립스틱을 번지게 했다.“전혀 비슷하지 않거든!”이혁재의 사무실.이혁재와 연재준은 일 얘기를 하고 있었고 두 아이는 옆에서 놀고 있었다.그때 이혁재가 무심코 고양이에게 한마디를 건넸다.“호두야, 누나를 잘 돌봐야 해.”기어다니기 시작한 윤아는 갑자기 호두의 꼬리를 잡았다.호두는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을 좋아했지만 꼬리만큼은 예외였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이혁재의 말 때문인지 꼬리를 잡힌 채로 억울한 듯 야옹 소리만 냈다.윤아는 깔깔 웃으며 꼬리 끝을 입에 넣으려 했고 그제야 호두는 꼬리를 빼내더니 아기에게 돌아서서 야옹 소리를 내며 경고했다.마치 “입에 넣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그러자 윤아는 호두를 향해 돌진하며 그를 덮쳤다.두 아빠가 일을 마치고 아이들을 찾으러 갔을 때 윤아는 카펫 위에서 잠들어 있었고 호두는 듬직한 몸을 베개 삼아 윤아를 받치고 있었다.그 동화 같은 장면에 연재준과 이혁재는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지었다.“고양이가 어린이를 알아본다더니 진짜인가 봐.”퇴근 시간이 되어 이혁재는 호두를 데리고 이승연의 사무실로 향했다.이승연은 호두를 품에 안고 기뻐하며 입을 맞췄고 이어 호두가 이혁재에게도 뽀뽀하도록 했다.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이혁재는 고양이 털을 한가득 삼키고 서둘러 뱉어냈다.“퉤퉤퉤.”그 순간, 호두도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흉내를 낸 게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토해냈다.이혁재는 어이가 없어 발끈했고 이승연은 웃음을 참지 못해 의자에 쓰러지듯 폭소했다.사실 고양이는 털을 핥으며 스스로를 청소하는 습성 때문에 위에 털 뭉치가 생겨 종종 토하곤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9화

    작은 고양이는 케이지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치료로 인해 털이 대부분 깎인 채 볼품없는 모습이었다.이혁재가 싫은 소리를 내자 새끼 고양이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이승연을 알아본 듯 비틀거리며 케이지 가장자리로 다가와 그녀를 향해 야옹 울었다.이승연은 손가락을 내밀어 고양이를 살짝 만졌다. 그러자 고양이는 꿈틀거리며 그녀의 손가락에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그녀는 미소 지었고 이를 지켜보던 이혁재가 말했다.“여보, 얘 다 낫고 나면 집에 데려가 키우자. 이렇게 작고 못생긴 애가 혼자 힘으로 먹을 걸 찾기도 힘들고, 다른 고양이들이 받아주지도 않을 거야.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얘 어떻게 살겠어.”이승연도 같은 생각이었다.두 달 후, 고양이는 건강을 회복했다.이혁재는 직접 고양이를 씻기고 구충한 뒤 집으로 데려갔다.시간이 지나면서 고양이는 털이 윤기 나게 자랐고 살이 올라 뼈만 앙상했던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결국, 고양이는 기름지고 윤기 나는 털을 자랑하며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이혁재의 몸 위로 덮치는 대형 고양이가 되었다.“이런 젠장!”이혁재는 고양이의 기습에 또 당했고 숨이 턱 막힐 뻔했다.고양이가 도망치려 하자 그는 재빨리 붙잡아 들어 올리며 따졌다.“너 자신이 얼마나 무거운지 전혀 모르는 거야? 아니면 정말 날 깔아뭉개려고 작정한 거야?”고양이는 억울하다는 듯 야옹거리며 반응했다. 그러나 고양이가 이승연에게는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았기에 이혁재는 고양이가 일부러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다.고양이는 이승연이 일할 때 그녀의 발등 위에 앉아 체온으로 발을 따뜻하게 해주었다.그녀가 서류를 검토할 때는 네 발을 모아 단정한 자세로 그녀 곁에 앉아 ‘독서’에 동참했다.때로는 앞발로 서류를 톡톡 두드리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중요한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이혁재는 고양이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고양이를 뒤집어 배를 위로 한 채 들어 올려 얼굴을 고양이 배에 묻고 한 번 흡입했다.고양이는 저항하며 네 발로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8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합의한 후, 이혁재는 정관 절제술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피임 수술’을 통해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정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이혁재는 이 일을 이승연에게 알리지 않았다. 관련 정보를 철저히 조사한 뒤, 직접 차를 몰아 병원으로 갔다.수술은 간단했고 외래 진료에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수술을 마친 그는 바로 퇴원했고 그날 오후에는 몇 시간 동안 회의를 열기도 했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그 불편함조차 완전히 사라졌다.수술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이혁재는 가벼운 농담처럼 이 일을 이승연에게 털어놓았다.이승연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평소 재빠른 두뇌 회전과 날카로운 눈치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말을 잇지 못했다.이혁재는 그녀가 ‘수술’이라는 단어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혹시 일이 심각하다고 오해했을까 봐 그녀를 안고 달래며 자세히 설명했다.“여보, 내가 요즘 아이를 갖는 게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랐지? 피임을 해도 혹시 실수라도 생길까 봐 계속 걱정했어. 만약 사고가 생기면 낳든 낙태하든 둘 다 누나 몸에 무리가 갈 거잖아. 그래서 아예 근본적으로 위험을 없애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이승연은 그의 허리를 감싸안고 이마를 그의 가슴에 기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이 수술 알아. 우리 아빠가 받았거든.”그녀는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다.“그 시절에는 보통 여자가 피임 수술을 받곤 했는데 우리 아빠는 알아보니 여자가 받는 수술이 훨씬 위험하고 몸에 무리가 된다는 걸 알게 됐대. 그래서 엄마가 고생하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자신이 받았지.”“아빠는 우리 동네에서 피임 수술을 받은 유일한 남자였고 사람들은 우리 아빠를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남자라고 칭찬했어. 엄마도 복 받은 거라고 하셨고.”이혁재는 그녀가 아버지를 칭찬하며 은근히 자신도 칭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날 밤, 소파와 카펫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