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이 차분하게 말했다.“추억 팔이는 다음에 하고, 우선 본론부터 이야기하죠. 저는 연 대표님을 대신해 밖에 있는 기자들에게 영상이 가짜라는 것을 '해명'하는 것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네 분께 큰 선물을 드려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즉 전화위복을 만들어드릴 수 있다는 말이죠.”“오, 그래요?”윤영훈은 그녀가 말하는 '복'이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유월영은 차를 마시지 않고, 찻잔을 두 번 돌리다가 내려놓았다. 그러자 한세인이 서류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유월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해성 그룹은 아르사와의 협력을 잃었다고 봐야겠죠. 아르사와 비슷한 규모의 자본을 찾지 못하면 점점 더 어려워질 거예요.”윤영훈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아르사가 왜 해성 그룹과 더 이상 협력하지 않기로 했는지, 그 누구보다도 유월영씨가 잘 아실 건데요.”유월영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앉아서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레온 그룹도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성을 도울 수 있어요.”신현우는 그녀를 주시하며 말했다.“유월영 씨의 말은, 레온 그룹이 아르사를 대신해 해성 그룹과 협력하겠다는 뜻인가요?”유월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오성민이 안경을 밀며 말했다.“유월영 씨, 너무 속이 뻔히 보이는 것 같은데요.”누가 뭐래도 그들은 유월영의 철천지원수였다. 그녀는 먼저 해성그룹과 아르사의 협력관계를 망쳐놓고 이제는 자신과의 투자를 제안하니 누구라도 그걸 받아들이기엔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녀의 의도가 분명한 음모라는 걸 네 사람은 모두 알아챌 수 있었다.그러나 유월영은 이를 숨기거나 변명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약서를 들고 그들 앞에 던지듯 내놓았다.“당신들한테 다른 선택이 있어요?”아니, 이것은 명백한 계략이면서 협박이었다. 그녀가 덫을 놓았다는 것을 그들이 알면서도 그 덫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최근 며칠간 일어난 일들이 없었다
연재준은 뭔가 예상되는 게 있었다.그는 유월영의 손을 잡고 그녀의 장갑 속에 숨겨진 손가락을 하나씩 만져 보았다.하나, 둘, 셋, 넷, 다섯...다섯 손가락이 모두 멀쩡히 있었다.그제야 연재준은 눈을 감고 자신이 생각이 틀렸음을 알고 안도했다.유월영은 그의 위선적인 듯한 행동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른 손을 뒤로 내밀자 한세인이 문서 봉투를 그녀 손에 건넸다.유월영은 연재준한테 잡힌 손을 빼면서 봉투를 그에게 건네주었다.“추억 팔이는 다음에 하자고 했잖아요. 지금은 일 얘기만 하죠. 연 대표님께서 이렇게 시원하게 사인해 주셨으니 저도 한 가지 선물을 드릴게요. 연 대표님 오늘 멋지게 한 번 이길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거예요.”유월영이 건넨 봉투는 묵직했다.하지만 봉투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기보다 연재준은 다른 데에 관심이 있었다.“그다음이라는 게 언제인가요?”“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 저도 신주시에 얼마간 머물 예정이니 언젠가는 시간이 있을 겁니다.”유월영은 계약서를 챙기고 일어섰다.“이제 연 대표님을 대신해 ‘해명’해 드리러 가야겠네요.”그녀는 한세인과 함께 별관을 떠났다.윤영훈 일행의 표정은 매우 무거웠다.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그들은 모두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예전의 유월영이 아니었다.지금의 유월영은 너무도 여유로웠고 마치 모든 것이 그녀의 계산 안에 있는 듯 행동했다.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승리를 장담하는데 자신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나 끔찍했다.윤영훈은 연재준에게 뭔가 얘기하려 다가갔지만 봉투 안의 내용을 확인한 연재준은 얼굴이 굳어진 채 말없이 성큼성큼 별관을 나갔다.남은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역시 재벌 가문답게 십여 분 만에 깨끗하게 정리된 빈소는 다시 엄숙한 분위기로 돌아왔다.화재는 바로 정리되었다. 흰 국화는 다시 준비되었고 촛불도 다시 켜져 있었다. 향이 피워지고 연씨 가문의 친척들은 모두 절을 하고 있었다.그 순간 유월영이 나타나자 기자들이 다시 몰려
강수영은 마침내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이제 보니 당신이 범인이었네. 내가 말했잖아, 큰 아빠가 이전에 고혈압만 있었지 건강했는데 어쩐지 갑자기 병이 그렇게 심해졌나 했더니, 당신이 독을 탄 거였어!”“윤미숙, 당신은 큰아빠를 죽이고도 모자라 빈소에서 이 난리를 쳐서 그분이 마지막 가는 길도 평온하지 않게 만들었어. 밤에 큰아빠가 당신을 찾아올까 봐 무섭지 않아?”윤미숙은 언제 찍혔는지 모르는 그 사진들을 보며 고개를 저으며 공포에 휩싸여 부정했다.“...이건 사실이 아니야! 내가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라고!”그녀는 연재준이 연민철의 병명을 의심하고 약 찌꺼기를 조사할까 봐 겁이 나서 매번 약을 달이면서 그릇에 따라 낸 후에 뭔가를 넣고 섞었다.그리고 연민철이 약을 마시면 모든 증거가 깨끗이 사라지고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사진들...이렇게 선명한 화질에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찍힌 사진은 집안 가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그녀의 곁에 누군가 그녀를 배신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윤미숙은 등골이 서늘해지며 이번에는 자신에게 큰일이 생겼음을 예감했다.그녀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연재준을 가리켰다.“너야! 연재준, 이 사진은 네가 조작한 거야! 네가 나를 이용해 너에 대한 여론을 돌리려고 하는 거지. 네가 몇 장의 사진으로 나를 모함할 수 있을 것 같아?”“사진뿐만 아니라 동영상도 있어.”윤미숙은 한순간에 힘이 빠지며 다리가 풀려 뒤로 비틀거렸다.“설거지가 제대로 되지 않은 약 그릇, 당신이 독약을 구매한 경로 그리고 증인의 증언까지 있어.”“...”윤미숙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어떻게 약 그릇까지...그녀는 머릿속에서 이 모든 자료가 어디서 새어 나온 건지 끊임없이 되풀이했다.윤미숙은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마지막으로 유월영에게 시선을 멈췄다.담담한 얼굴로 평온하게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유월영을 보고 윤미숙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바로 유월영이 연재준에
연재준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걸렸다.상인은 언제나 이익 때문에 모이기도 하고 또 이익 때문에 흩어지기도 하는 법이었으며 이런 인지상정인 문제를 두고 굳이 논쟁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그래서, 윤 대표님은 레온 그룹과의 협력 외에 당장 해성의 주가를 회복시킬 방법이 있으신가요?”물론 그는 없었다.윤영훈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오늘 연씨 가문의 사건은 실시간 검색어를 휩쓸었고 전례 없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만약 이 상황에서 최종 승자를 꼽자면 당연히 연재준이었다.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해운 그룹과 해성 그룹의 실시간 주가가 몇 시간 안에 롤러코스터처럼 변동했다는 점이었다.오늘 최종 장 마감 시점에서, 주가는 128% 이상 상승했다.그뿐만 아니라, 연재준의 원래 망가졌던 이미지와 평판도 극적으로 회복되었다.그는 더 이상 계모를 괴롭히는 몹쓸 놈이 아니라 계모에게 누명을 쓰고 살인 혐의로 비난받았던 ‘불쌍한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게다가, 그의 친부조차 독한 계모에게 살해된 것이라는 진실이 밝혀지고 그가 별관에서 계모를 비난하며 보여준 눈이 붉어진 모습은 아버지의 죽음에 큰 고통을 느낀 탓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사람들은 열광적으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이런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누리꾼들은 아마도 보름 정도 인터넷에서 뜨겁게 논의할 것이 분명하였다.긍정적인 열기가 높아질수록 해성에게는 더욱 유리할 것이고 그들은 해성과 레온 그룹의 협력을 발표할 때 주식시장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반응할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윤영훈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레온 그룹과의 이 계약이 바로 그들에게는 제때 내리는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윤영훈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다만 월영 씨가 우리에게 함정을 파놓지 않을까 걱정돼요. 월영 씨는 이제 더 이상 그 시절의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비서가 아니에요. 내가 그녀의 새 이름을 조사해 봤거든요.”“소위 말하는 고민서는 크로노스의 약혼녀예요. 약혼녀라고는 하지
“대표님, 유...고민서 씨를 말하는 건가요?”하정은은 유월영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약간 망설이며 대답했다.“그분은 반야 호텔에 머물고 있습니다.”연재준은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녀를 만나고 싶어.”‘...지금?’하정은은 시계를 보았다. 이미 자정이 넘어서 12시 30분이었으며 이 시간에 방문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하지만 연재준은 이미 일어나서 곧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억눌렸던 감정이 오랜만에 재회한 이 밤에 덩굴처럼 거칠게 자라난 듯 그의 발걸음은 빨랐고 심지어 다소 급해 보였다. 하정은은 그를 따라잡기 위해 거의 뛰어야 했다.예상대로 유월영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한세인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죄송합니다, 연 대표님. 저희 아가씨가 몸이 좋지 않아 이미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손님을 맞이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무슨 일이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아가씨가 내일 일어나면 꼭 전해드리겠습니다.”연재준은 눈을 감으며 오늘 유월영의 모습을 떠올렸다.“이미 새벽 1시가 넘었으니, 해가 뜰 때까지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네요. 저도 여기서 그분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죠.”한세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아가씨의 마음이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연 대표님께서 헛되이 밤을 지새우실까 걱정되셔서 그러는 데 우선 돌아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가씨가 연 대표님을 만나길 원하면 제가 바로 비서에게 연락드리겠습니다.”하지만 연재준은 이미 소파에 앉은 채 턱을 괴고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급 호텔 로비에 배치된 바둑판을 보며 그는 아무렇게나 한 알을 집어 들었다.“바둑을 두며 밤을 보내는 것도 괜찮죠. 별다른 일도 없으니 기다리겠습니다.”한세인은 더 이상 말리지 않고 자리를 떴다.연재준은 그 바둑판의 미완성된 국면에서 혼자 두기 시작했다.하정은은 그가 정말로 여기서 밤새 유월영을 기다리려는 것을 보고, 말했다.“대표님,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유월영은 되돌아봤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발견하고 유월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연 대표님,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죠? 제가 문 앞에 세운 사람들이 순순히 들여보내 주지 않았을 텐데요?”연재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지금 우리 쪽 사람들과 서로 주먹질을 하고 있겠지.”유월영이 비꼬며 말했다.“보아하니 저희 쪽 사람들도 실력이 부족했나 보네요. 그렇지 않았으면 연 대표님도 여기까지 들어올 수 없었을 텐데.”연재준은 아무 말 없이 제단에서 향을 집어 들고 불을 붙였다. 유월영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연재준은 향을 향로에 꽂은 후 영정 앞에 절을 하고 일어섰다.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유월영은 향을 뽑아 바닥에 힘껏 던졌다.연재준은 잠시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유월영이 싸늘하게 말했다.“연 대표님은 설마 윤미숙한테서 영감을 받으신 건가요? 살인자로서 피해자의 영정 앞에서 우쭐대는 쾌감을 즐기고 싶으세요?”연재준이 차분하게 말했다.“그저 애도의 뜻을 표하려고 했을 뿐이야. 당신이 싫어한다면 안 할게. 그분들은 너의 양부모인데 나도 그렇게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아.”유월영이 코웃음 치며 물었다.“연 대표님께서 어제저녁부터 나를 기다렸다고 하던데, 이젠 봉현진까지 따라왔네요. 도대체 무슨 일이죠?”그녀는 촛불 옆에 서 있었고 따뜻한 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연재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2년 7개월이 지났고, 그녀는 올해 겨우 29살이었지만 본래 차가운 눈매는 더욱 날카롭고 두려움 없는듯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유월영은 마치 날카롭게 다져진 칼처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피를 보게 될 것 같았다.연재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별일은 없어. 그냥 오랜만에 당신이 보고 싶었던 것뿐이야.”“어찌 된 일인지, 연 대표님께서 이렇게 애틋한 말을 해도 전혀 놀랍지 않네요.”유월영이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아마 예전에 많이 들어봤기 때문이겠죠. 이게 당신의 가장 자주 쓰는
유월영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차갑게 물었다.“연 회장은 죽기 전까지 계속 당신 이름을 불렀어요. 들었어요?”연재준이 입술을 깨물었다.“비록 당신 부자 관계는 항상 나빴지만 연 회장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했고 자랑스러워했어요. 내가 살아있는 걸 보자 그는 너무나 두려워했죠. 내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해칠까 봐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일어나 나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어요.”유월영이 천천히 설명했다.“연 회장은 다른 말도 못 하고 그저 ‘재준아, 재준아’를 되뇌었죠. 마치 예전에 우리 엄마가 당신한테 ‘월영이, 우리 월영이'이라고 하며 제발 나를 해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던 모습처럼 말이에요.”가까이서 보니 연재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방금까지는 촛불의 따뜻한 빛이 그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연재준은 아마 밤을 새워서 피곤한 듯했다.유월영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연 회장께서 방금 돌아가셨으니 연 대표님도 슬픔을 가라앉히기 바래요. 해운 그룹과 해성 그룹이 당신만 바라보고 있으니 지금 쓰러지면 안 되죠.”연재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아주 건강해.”연재준의 시선은 그녀의 손으로 향했다. “여기는 별로 안 추워서 그 장갑을 벗어도 될 것 같은데. 더러워졌잖아.”유월영이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바로 떠날 거예요. 돌아가서 바꾸죠 뭐.”연재준은 순간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당신 이제 레온 그룹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야. 더러운 장갑을 끼고 있는 건 너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아.”연재준의 손길이 그녀의 몸에 닿자 유월영은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놔!”연재준은 그녀의 장갑을 억지로 벗기려 했지만 그녀의 장갑은 손목에 벨크로로 고정되어 있어 그렇게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그 틈을 타 유월영은 손을 재빨리 빼낸 후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그를 비꼬듯 말했다.“드디어 본성을 드러낸 거예요? 재준 씨, 당신이 궁금한
“여보세요.”현시우의 목소리를 듣자 유월영은 그에게서 나는 은은한 송백향이 다시 코끝을 스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나 뉴스 봤어.”“난 아직 못 봤는데.”유월영이 웃으며 말했다.“그 기자들이 카메라에 필터 켰는지 모르겠네? 나 잘 나왔어?”“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현시우는 어이가 없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한참 후 다시 입을 열었다.“그를 만났겠지?”현시우가 말한 그는 당연히 연재준이었다.유월영은 차창을 내렸다. 12월의 신주시는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었다.“막 추억 팔이를 하고 나오는 중이야.”“국내외로 있는 레온 가문의 사람들이 너의 지시를 따를 거야. 급하면 우리 현씨 집안에서 사람을 데려가도 돼.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안전에 유의해. 내가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돌아가 도와줄게.”현시우는 그녀가 홀로 그 네 가문을 상대하는 것이 불안했다. 레온 그룹의 일에 발목이 잡히지만 않았다면 그는 분명 유월영과 함께 귀국했을 것이다.하지만 유월영이 그를 안심시키며 말했다.“시우 씨 몸부터 챙겨. 또 서재 창가에 서서 바람 쐬고 있는 거 아니야? 마르세유에 오늘 비가 오던데 감기 조심해.”되려 한 소리 들은 크로노스는 무안하게 웃으며 창가에서 걸어 나오면서 되받아쳤다.“너도 바람 쐬고 있잖아. 바람 소리가 들리거든.”“난 괜찮아.” 유월영은 괜찮았지만 현시우는 아니었다.작년 그 교통사고로 그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1년이 지나도록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유월영은 마음이 쓰여 참지 못하고 말했다.“일을 다 못 끝내면 나한테도 보내줘. 내가 도와줄게. 시우 씨는 좀 더 쉬어야 하는데.”현시우가 가볍게 웃었다.“내가 이렇게 살아있는데 벌써 내 자리를 넘보려고?”유월영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가 다시 말했다.“내 자리를 빼앗아도 돼. 레온 가문을 너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걸 너도 알잖아. 나 유언장도 다 작성해 놨어.”작년에 그 교통사고에서 현시우는 거의 목숨을 잃을뻔하였으며 그는 정신을 잃기 전 병실에서 변호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