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들은 모두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연재준도 특별히 퇴원하고 정우증권의 부사장을 만나러 온 것도 당연히 이익 때문이었다. 식사 시간 동안 두 사람은 하나의 프로젝트 협력 건을 합의하고 사인까지 마쳤다. 악수할 때 상대방은 옆에 있던 하정은을 잠시 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제 기억에 연 대표님 곁에 유씨 성을 가진 비서 한 명 있지 않았나요?”예상치 못한 사람이 갑자기 유월영을 언급하자 하정은은 깜짝 놀라 상대를 쳐다보았다. 연재준은 그가 왜 묻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침착하게 대답했다.“네. 맞습니다. 예전에 거의 부사장님 비서가 될 뻔했죠.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기억하시네요.”유월영은 당시 해운그룹을 나와 일자리를 찾을 때 정우증권에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었고 거의 확정 전까지 갔었다.부사장이 웃으며 말했다.“그런 인재는 드물어서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죠. 그분은 지금 해운그룹에 있지 않은가 보네요?”연재준은 그들이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약지에는 아직도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다이아몬드는 생기있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네. 더 이상 없습니다.” 부사장은 아쉬워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악수를 마친 후 먼저 떠났다.하정은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떤 사람은 죽었더라도 무언의 존재가 아니었으며 해운그룹에는 한때 대단했던 수석 비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그들은 서덕궁에 오래 머물지 않고 자리를 떴다. 복도 걸어 나올 때 갑자기 한 여자가 방에서 비틀거리며 나와 연재준에게 부딪혀왔다.연재준은 바로 한발 물러나 닿지 않으려 피했다. 여자는 바닥에 넘어져 당황한 얼굴로 그를 올려보다 이내 그를 알아보고 얼굴에는 기쁨이 번졌다.그녀는 바로 기어가서 연재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말했다. “연 대표님, 저 좀 구해주세요. 연 대표님,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연재준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그 방에서는 곧 뚱뚱한 남자가 뛰쳐나와 여자의 머리채를
여우 눈을 한 여자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연재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분명히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리라 생각했다. 결혼식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으니 그는 지금 실의에 빠졌을 것이고 사람들은 흔히 여자가 남자의 상처를 위로하는 좋은 약이라고들 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가엽고 순종적이니, 그가 분명히 그녀를 받아들일 것이라 믿었다.그러나 연재준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연재준이 반문했다.“내 결혼식이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하게 될거라고 생각해?”여우 눈을 가진 여자는 예상 밖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며칠간 무표정으로 지내오던 연재준은 처음으로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정말 여자가 필요하다고 해도 선택지가 많을 텐데, 너는 뭐가 특별하지? 아니면 그 여자의 사연을 모방하면 그녀를 대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이러는 건가?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집에서 진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와 빚을 갚다 나쁜 사람들을 만나고, 추행을 당할뻔하다 우연히 그를 만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 지금 이 상황과 딱 맞아떨어졌다. 오늘 밤에 비까지 내렸더라면 유월영을 만났던 그때와 똑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재준은 결코 길에서 불의를 보고 돕는 선량한 사람이 아니었다.그가 그때 유월영을 구한 것은 그녀가 유월영이였기 때문이었으며 다른 사람이라면 연기가 아니고 진짜라 하더라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 여자를 자신의 곁에 둘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그는 유월영의 대체품에 관심이 없었다.여우 눈을 한 여자는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 말을 잇지 못했다.연재준은 차에 올라탔고, 하정은 일을 해결한 후 나와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탔다. 차는 그렇게 그녀 앞에서 떠나갔다.여우 눈을 한 여자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서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서 허점을 보였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연기한 게 맞았다. 연재준의 곁에 너무나도 가고 싶
그의 예상대로 안에서 대답이 없었고, 현시우는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 안은 눅눅한 바닷바람이 들어올 수 없게 창문이 꼭 닫혀 있었고, 에어컨만 켜져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는 계속해서 혼수상태에 빠진 채 지난 보름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여자는 중상을 입고 과다 출혈로 인해 응급 수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녀의 얼굴은 종이처럼 창백했다.현시우는 시간을 맞춰 찾아왔다. 그녀가 맞고 있던 수액이 막 다 떨어지자 그는 주삿바늘을 뽑고 자신이 가져온 약병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수액의 속도를 조절하여 계속해서 그녀의 몸에 생명을 유지하는 에너지를 주입했다.가정부는 그녀의 뺨과 손을 닦아주려다 현시우가 직접 하겠다고 하자 말없이 물러났다.그는 깨끗한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셔서 짜낸 후, 생기 없는 그녀의 얼굴을 조금씩 적셔주었다. 그녀의 얼굴은 비록 초췌하고 창백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코는 작고 오뚝했다. 옛말에 코가 곧은 사람은 고집이 세다고 했는데, 그 말도 일리가 없진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목을 닦을 때 그녀의 목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칼에 베인 자국이었으며, 상처는 자칫하면 동맥까지 다칠 정도로 깊었다. 현시우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맥을 짚어봤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그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풍덩 소리가 나고 유월영의 몸은 바다에 던져졌다. 그녀는 가슴에 화살이 꽂혀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그녀 자신도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피가 그녀의 가슴에서 새어 나와 주변을 옅은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유월영의 손과 발은 점차 감각이 없어졌으며, 사방에서 밀려드는 바닷물의 압력으로 그녀는 점점 아래로 가라앉아 바다 밑바닥으로 사라져갔다. 바닷속은 조용하고 공허했지만, 죽음으로 향하는 절망감이 밀려왔다.또다시 풍덩 소리가 나고 현시우는 몸을 던져 바다에 뛰어들었다. 한 줄기 빛이 그를 따라 유월영을 향해 뻗어나갔다. 마
유월영의 얼굴과 손을 닦아준 뒤, 현시우는 침대 머리맡의 따뜻한 조명을 켜고, 책을 한 권 집어 들어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의사는 유월영에게 말을 많이 하면 자극이 되어 그녀가 깨어날 수도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현시우는 유월영이 누워있는 동안 그녀에게 많은 말을 했다. 이제는 새로운 주제가 없어서 이야기책을 읽어줄 수밖에 없었다.지남이 현시우의 저녁 식사를 가져오며 침대 위를 한 번 보고는 머뭇거리며 물었다.“대표님. 월영 씨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니겠죠?”현시우는 잠시 멈추고 나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일 없을 거야.”하지만 벌써 보름이 지났다...지남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전 아직도 기억합니다. 월영 씨가 영안에서 제가 몰래 사진 찍었을 때를요. 그때까지만 해도 월영 씨 잘 지내고 계셨는데.”현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책 페이지를 넘겼다.“월영이, 앞으로도 잘 지낼 거야.”지남은 고개를 숙이며 자책했다.“월영 씨가 깨어나면 제가 직접 가서 설명하고 사과드릴게요. 그분의 부탁을 저버리고, 어머님을 구해내지 못했어요.”현시우는 그저 손짓으로 물러가라는 신호를 보냈고, 지남은 방을 나갔다. 현시우는 유월영의 옆머리를 뒤로 넘기며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월영아, 빨리 깨어나.”“그 사람이 싫어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거라면, 그럴 가치 없어. 그 사람이 뭐라고. 양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라면 괜찮아. 내가 대신 복수해 줄게.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너에게 줄게.”이불 안에 있던 유월영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하지만 현시우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계속 책을 읽어 내려갔다.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들의 목적지는 여전히 멀리 있었고 배 속도도 빠르지 않아 벌써 바다 위에서 20일을 항해하고 있었다. 유월영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마치 현시우가 어젯밤 이야기한 잠자는 공주처럼 잠들어 있었다.오늘은 바다에 태양이
한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서 최근 신현우가 연재준의 사촌 여동생과 그렇게 가까이 지낸 거군요. 두 집안이 혼인하려는 모양입니다.”현시우는 태블릿을 바라보다 화면에 나타난 연재준의 얼굴을 보고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기자가 연재준에게 인터뷰했다. “연 대표님, 해성그룹에 대한 기대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연재준의 목소리는 저음에 매력적이었고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기대요?”단 두 글자만으로, 유월영의 속눈썹이 떨리며 호흡이 거칠어졌다.이번에는 현시우가 유월영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즉시 태블릿을 내려놓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월영아?”그녀가 깨어나려고 하는 건가?화면 속 연재준의 목소리는 계속 흘러나왔고, 유월영은 그가 한 말을 모두 귀로 듣고 있었다.“제가 많은 돈을 투자하고 또 심혈도 기울였으니 당연히 잘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코스닥 상장, 나스닥의 종을 치고, 세계 500대 기업으로 발전하여 또 하나의 GDP를 이루는 높은 산이 되기를 바랍니다.”기자들도 웃으며 말했다.“연 대표님 오늘 기분이 좋으신가 보네요. 이렇게 유쾌하게 농담하시다니.”연재준이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마치 카메라를 통해 누군가를 보는 것 같았으며 그의 검은 눈동자는 심연처럼 깊었다.“네, 기분이 좋습니다. 오랫동안 계획한 것이 드디어 성공했으니까요. 방해가 되는 것들, 원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들, 사라져야 할 것들은 모두 깨끗하게 처리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홀가분합니다.”방해가 되는 것들, 원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들, 사라져야 할 것들...방해가 되는 것들, 원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들, 사라져야 할 것들...유월영의 호흡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연재준의 목소리는 다른 세계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으며 여전히 무정하고 변함없이 잔인했다.‘방해가 되는 것들. 그는 나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내 가족을 말하는 걸까?’유월영은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고 온몸이 찢어지는 듯했다.그녀는 도와달라고, 아프다고
“민...서?”처음 듣는 이름에 유월영은 어리둥절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현시우를 쳐다보았다. 현시우가 노 집사에게 물었다. “우리 어머니가 시키신 건가요?”노 집사는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네, 도련님. 사모님께서 저를 보내셔서 젊은 도련님과 아씨를 레온 정원으로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택에서는 환영 연회도 준비되어 있으며 모든 건 사모님께서 직접 준비하신 겁니다. 원래는 김우희 사모님이 갑자기 방문하지 않았다면 사모님께서 직접 마중 오시려고 했습니다.”뒤에 있던 지남과 한세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사모님이 직접 왔더라면, 상황은 지금보다 더 과장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사모님은 정말...“우리 다니엘 저택으로 갑시다.”현시우는 차분하게 말했다. “어머니께 전해주세요. 월영이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이렇게 떠들썩 한 행사들은 그녀를 놀라게 할 수 있습니다.”노 집사는 그 말을 듣고 유월영을 살펴보았다. 유월영의 얼굴은 여전히 많이 병약해 보였다.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가까운 다니엘 저택으로 가서 먼저 쉬는 것이 좋겠습니다. 민서 아씨, 빨리 회복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유월영은 노 집사의 모든 게 조금 과장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외국 사람들의 성격이 원래 감저표현이 풍부하다고 듣기는 했지만 그는 분명히 한국 사람이었다...아마도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곳 사람들과 같아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유월영은 생각했다.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 집사는 크게 감동한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나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유월영은 노 집사의 큰 예의를 감당하기 어려워 자기도 모르게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현시우는 이젠 습관이 됐다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항구의 계단 아래로 데려갔다.계단 아래에는 눈에 띄는 여러 대의 고급 승용차가 줄지어 서 있었고 그들이 차 앞을 지나갈 때, 운전사들은 일
현시우가 유월영을 침대에 눕히자마자 그녀는 눈을 비비며 깨어나 그를 바라보았다. “시우 씨, 돌아왔구나.”현시우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매일 이렇게 자면 머리 안 아파?”“그래도 졸려.”그녀는 이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며 마치 추위를 타는 작은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렸다.현시우는 무심코 그녀의 뺨을 살짝 만졌다. 한세인은 그의 뒤에 서 있다가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문밖에 서 있는 한세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방 안에는 불을 켜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정원 가로등과 복도에서 흘러들어오는 전등의 빛만 있었고 반쯤 어둑한 조명이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었다.현시우의 목소리도 부드러웠다. “밖에 나가서 밥 먹자. 마르세유에 온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아직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잖아.”유월영은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 베개에 기대어 무기력하게 말했다. “그날 항구에서 저택까지 가면서 이미 봤어.”“나가고 싶지 않다는 얘기지?” 유월영의 뜻을 알아챈 현시우는 강요하지 않았다. “그럼 집에서 먹자. 일어나.”유월영은 무언의 한숨을 내쉬고 현시우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저택의 집사와 가정부들은 모두 동양인이었고, 요리도 한식으로 다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유월영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으며, 현시우가 먼저 말을 걸지 않을 때면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렇다고 어디가 이상하다고 콕 집어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성격 자체가 원래 조용했으니까.식사가 끝난 후, 유월영은 다시 올라가려고 했고 그런 그녀를 현시우가 불러 세웠다. “또 자러 가는 거야?”유월영은 시계를 보았다. 밤 9시 반이었다. “이렇게 늦었는데, 안 자?”“밥 먹고 나서 바로 누우면 위가 아파. 이것도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이야.”현시우는 일어나며 말했다.“저택의 길을 알려줄 겸 소개할게. 식사 후 소화한다고 치고.”“난 별로 많이 먹지 않아서 소화할 필요도 없어. 좀 졸리니까 내일 길을 알아볼게.”현시우가 가정부에게 말했다.
유월영은 뭐라고 말하려 입술을 달싹였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도 자신의 마음속 감정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현시우는 그녀의 반응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월영아, 나를 위해 한 번만 더 춤을 춰줘. 내가 해외로 떠나기 전에 네가 마지막으로 췄던 그 춤 말이야.”유월영은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돌렸지만, 사방이 거울이어서 고개를 돌려도 현시우는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거부하고 있었다. 다만 현시우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춤에 대한 거부감이었다.유월영이 대답했다.“너무 오래돼서 나도 춤 다 잊어버렸어.”“너의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 내가 모를 것 같아?”“상처도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고.”“상처는 배에서 이미 회복되었고, 의사도 확인했어.”“오늘 입은 옷도 춤추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다음에 할게.”“교복을 입고도 춤을 출 수 있었잖아. 지금은 왜 못해?”현시우는 그녀가 계속 거부하는 상황에서, 드물게도 계속해서 끈질기게 요구했다. 하지만 유월영은 지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현시우는 팔짱을 풀며 갈색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봤다.“아직도 내가 너를 떠난 것에 화가 나 있는 거야?”유월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현시우가 다시 말했다. “그럼 이번에 내가 너를 구한 걸로 과거의 잘못을 만회할 수 있을까?”유월영은 반복해서 강조했다. “나는 화가 나지 않았어.”현시우는 그녀가 여전히 화가 나서 춤을 추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했다.“그럼 이제 빚은 갚았으니까 나를 위해 춤을 춰줄 수 있겠지?”유월영은 그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고!’현시우는 미소를 지었다.“...”“음악 틀어줄까?”“...”현시우는 한 손에 바이올린을 들었다.“...”유월영은 묵묵히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로 나무 바닥을 밟았다. 나무 바닥은 윤을 냈는지 매끄러워 춤을 추기에 맞춤했다.현시우는 바이올린을 어깨에 얹고 잠시 생각한 후 차이콥스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