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시는 강남과 멀지 않아 KTX로 두 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지호는 자기가 이끄는 호위대를 데리고 강남에 도착했다.“사장님!”중년 남자가 기차역에서 박지호를 맞이했다.하지만 박지호는 중년 남자의 돼지머리가 된 얼굴을 보자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너, 걔네한테 내가 누군지 말하긴 했어?”“당연하죠. 근데 제가 사장님 이름을 말하자마자 그놈이 더 신나게 두들겨 패더라고요. 심지어 사장님께서 직접 와도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어요.”중년 남자는 일부러 사실을 부풀려서 고자질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직접 오면 반년 동안 병원 신세나 질 각오하라고 큰소리쳤습니다.”“제정신이 아니구나.”박지호의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두 눈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지금 그놈들 어디 있어?”“제가 미리 경호원을 붙여 놨습니다. 방금 연락이 왔는데 한 유흥업소에 있다고 합니다.”중년 남자가 서둘러 대답했다.“즉시 그쪽으로 안내해. 강남에 날 무릎 꿇게 할 사람이 어떤 대단한 사람인지 직접 봐야겠군.”박지호 일행은 곧장 유흥업소로 향했다.하지만 진서준과 김혜민은 이미 식사 후 자리를 떴다.지금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은 장주완과 조수아 일행뿐이었다.다들 노래 부르고 춤추며 잔뜩 들떠서 놀고 있었다.하지만 조수아는 달랐다.아까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기에 놀 기분이 나지 않았다.“수아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장주완이 알아서 해결한다잖아?”보라색 원피스 여자가 조수아를 달래듯 말했다.“맞아, 장주완을 믿어. 게다가 장주완은 차이더리스 셋째 도련님이랑 연락할 수 있다잖아.”“이 세상에서 차이더리스 가문을 무시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다들 아까까지 박씨 가문을 두려워했지만 장주완이 리앙과 아는 사이라고 하자 그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난 괜찮아. 너희끼리 먼저 놀아. 요새 너무 힘들어서 그래.”조수아는 억지로 웃으며 모두와 어울리는 걸 거절했다.“그래. 그럼 좀 쉬어.”
“아, 박 사장님이셨군요.”장주완은 즉시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박 사장님, 사실 이건 전부 오해입니다. 수아는 이미 귀사와의 계약을 해지했고 그동안 번 돈도 다 돌려드렸잖아요. 이젠 수아를 놓아주세요.”찰싹!박지호의 손이 번개처럼 날아갔다.“넌 어디서 굴러온 녀석인데? 네가 뭐라고 나랑 협상하겠다는 거야?”장주완의 안경이 훌쩍 날아가며 코에서 피가 흘러내려 완전 꼴사나운 몰골이 되었다.“왜 애먼 사람을 때려?”보라색 원피스 여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왜? 너희는 내 부하를 때릴 수 있는데 난 너희를 못 때린다는 규정이 있어?”박지호가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그리고 이내 몸을 돌려 조수아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오늘 우리랑 안 가면 네 친구들도 전부 무사하게 여길 나가지 못할 줄 알아.”박지호의 거만한 태도에 보라색 원피스 여자가 물러서지 않고 즉시 반발하듯 외쳤다.“똑똑히 들어, 장주완은 차이더리스 그룹의 고위 간부야. 게다가 차이더리스 셋째 도련님이랑도 아주 친하다고.”박지호는 대수롭지 않게 귀를 후벼 파며 말했다.“이 녀석이 셋째 도련님 본인이라면 체면 정도는 봐줄 수 있지. 근데 그냥 그룹 간부라고?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호들갑이야? 그룹 간부가 한둘이야? 개나 소나 하는 게 그룹 간부야.”장주완은 얼굴을 감싸 쥐고 분노에 찬 눈빛으로 박지호를 노려봤다.“박 사장님, 저는 리앙 도련님과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정말 오늘 여기서 끝장을 보시겠다면 제가 직접 리앙 도련님에게 전화하겠습니다.”“좋지. 그럼 당장 해 봐. 나도 궁금하긴 해. 그 셋째 도련님인지 뭔지 하는 놈이 너 같은 쓰레기 하나 때문에 날 적으로 돌릴지 말이야.”박지호는 전혀 겁먹지 않고 오히려 휴대폰을 먼저 꺼냈다.그 순간, 장주완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사실 장주완은 그냥 허세를 부려 본 것뿐이었는데 박지호가 허세에 겁먹지 않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장주완은 그저 차이더리스 그룹의 하찮은 직원일 뿐이었고 귀국
그 말을 듣자마자 장주완의 얼굴이 돼지 간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이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뻔히 아는데, 김혜민이 제 발로 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왜? 전화 안 할 거야? 얼씨구? 의리 있네? 깡 있네? 좋아, 그럼 잠시 후에 네 사지를 부러뜨려 주마.”박지호가 비웃음을 터뜨렸다.그 말을 듣자 장주완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냈다.“제가 바로 전화하겠습니다.”곧바로 전화가 연결되었고 김혜민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뭔 일인데?”아까 있었던 동창 모임 때문에 김혜민은 이들에 대한 정이 뚝 떨어진 상태였다.“혜민아. 얼른 모던 유흥업소로 와줘. 급하게 상의할 일이 있어.”장주완은 죽어도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지금 상황을 알면 김혜민이 절대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무슨 일인데? 전화로 얘기해.”김혜민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전화로는 절대 못 할 얘기야. 전화로 얘기할 수 있으면 급하게 상의할 일이라고 하지 않았겠지.”장주완은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진짜야. 혜민아, 네가 직접 와봐야 해. 내가 왜 널 속이겠어?”“알았어, 이따가 갈게.”“아, 그리고 네 남자친구도 같이 데리고 와.”장주완이 황급히 한마디 덧붙였다.“왜? 또 애들과 함께 조롱하려고? 됐어, 나 혼자 갈 거야.”김혜민은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김혜민이 데려가고 싶지 않아서 안 데려가는 게 아니었다.진서준은 지금 김연아와 함께 있었다.그런데 이 타이밍에 진서준을 데려가면 김연아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김혜민은 차를 몰아 유흥업소로 향했다.그와 동시에 리앙이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유흥업소에 도착했다.“리앙 씨. 이게 무슨 일입니까? 누가 리앙 씨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거죠?”박지호는 온몸에 붕대를 감은 리앙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 사람은 차이더리스 그룹의 셋째 도련님이라 신분과 지위가 박지호와 맞먹는 인물이었다.그런 리앙을 이렇게 처참하게 만든 놈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말도 마세요. 나도 그 자식이 누군지 몰라요.
‘진짜 선견지명 있네.’“누구라고?”리앙이 순간 눈을 번쩍이며 장주완을 쳐다봤다.“김혜민 남자친구요.”장주완이 서둘러 대답했다.“너 김혜민을 알아?”리앙의 말에 장주완은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듯했고 얼른 자기와 김혜민의 관계를 설명했다.“알죠. 당연히 압니다. 저희 같은 학교 출신이에요. 셋째 도련님, 혹시 도와주실 수...”장주완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리앙은 번개처럼 장주완의 얼굴을 후려쳤다.“X발, 내 이 꼴 난 게 다 그 계집애 때문이야!”“네?”장주완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당장 그년한테 전화해. 안 오면 너희 전부 다 죽여버릴 거야.”리앙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그 모습에 다들 절망의 늪에 빠졌고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얼마 후, 김혜민이 유흥업소에 도착했다.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걸 느꼈다.방 안에는 리앙과 아까 맞은 중년 남자가 있었고 처참하게 얻어맞은 장주완 일행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김혜민 씨, 또 만나네요?”섬뜩한 미소를 짓는 리앙의 눈엔 증오가 가득했다.어젯밤, 김혜민과 뜨거운 밤을 보내기는커녕 죽도록 처맞았으니 이 치욕을 반드시 되갚아야 했다.“너 왜 여기 있어?”김혜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장주완, 이 개자식아. 감히 날 함정에 빠뜨려?”“미안해, 혜민아. 우리한텐 다른 방법이 없었어.”장주완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네가 희생하면, 우리 전부 살 수 있을 거야.”“야, 너 사람 맞아?”“됐고.”리앙이 손짓하며 말을 끊었다.“너희끼리 싸우는 건 나중에 하고 우리 문제부터 해결하자고.”리앙은 자기 머리 상처를 가리키며 따지기 시작했다.“어젯밤, 날 팬 놈이 누구야?”“몰라. 내가 깨어났을 땐 이미 집이었어.”김혜민이 단호하게 말했다.“몰라? 그딴 핑계가 통할 것 같아?”리앙이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오늘 안에 그놈 이름 안 대면 너 여기서 개망신당할 줄 알아.”리앙이 손뼉을 치자 곧장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서준은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이 목소리는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너 누구야?”진서준은 얼굴을 굳히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기어와.”리앙이 전화기 너머에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기다려.”차가운 한마디를 남기고 진서준은 전화를 끊었다.“무슨 일이야?”진서준의 어두운 표정을 보자 김연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김혜민이 납치당했어. 날 보고 오라고 하네.”진서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뭐? 누가 그랬는데?”“모르겠어. 근데 저 목소리가 왠지 귀에 익어.”진서준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넌 집으로 돌아가. 나 혼자 가볼게.”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김연아를 무작정 데려가는 건 위험했다.괜히 김연아까지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는 없었다.“알겠어, 꼭 조심해. 혹시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전화해. 내가 사람 데리고 갈게.”김연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당부했다.진서준은 차에 올라타 상대가 말한 장소인 모던 유흥업소로 향했다.같은 시각, VIP 룸김혜민은 싸늘한 눈빛으로 장주완을 노려보고 있었다.설마 이 녀석이 자기를 속여 여기에 오게 할 줄은 몰랐다.더 황당한 건 리앙까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었다.진서준이 이 자리에 오게 된다면 어젯밤 그를 두들겨 팬 사람이 누구인지 리앙이 알게 될 것이다.“혜민아, 그렇게 노려보지 마. 나도 어쩔 수 없었어.”장주완은 김혜민의 눈빛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진씨 가문은 어쨌든 강남에서 두 번째로 강한 가문이었다.김혜민이 마음먹고 장주완을 혼내려고 한다면 장주완은 강남을 떠나는 건 물론이고 아예 대한민국을 벗어나야 할지도 몰랐다.“그래서 날 이용해서 너희 안전을 얻어내려는 거야?”김혜민은 이를 악물며 모두에게 호통쳤다.“정말 너희를 친구라고 생각한 내가 한심해. 내가 어떻게 이런 인간들이랑 어울렸지?”“다 네 남자친구 때문이잖아.”보라색 드레스 여자가 불쾌한 표정으로
“어제는 내가 방심해서 부하들을 안 데려갔어. 그래서 그 자식한테 당한 거지. 하지만 오늘은 내가 직접 경호원들을 데리고 왔어. 그 자식이 오면 난 그놈을 여기서 생매장해 버릴 거야.”이 경호원들은 전부 차이더리스 가문의 정예였다.각자 군대에서 전설로 불리는 병왕이었고 혼자서 열 명쯤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더군다나 박지호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설령 부하들이 상대를 이기지 못하더라도 박지호가 나서서 리앙을 도울 수 있었다.“네 경호원 따위로 진서준을 막을 순 없어. 진서준은 혼자서 이 사람들을 깔끔하게 처단할 수 있어.”김혜민이 단호하게 진서준의 편을 들었다.“순진하긴? 내 경호원들은 전부 전장에서 살아남은 병왕이라고.”리앙은 김혜민의 말이 너무나 우스웠다.“싸움질은 내 경호원들이 확실히 잘하는 영역이 아니야.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영역이라면 이들보다 잘하는 자가 없어.”그 말을 듣자 김혜민의 표정이 흔들렸다.저 경호원들에게서 심상치 않은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던 이유가 따로 있었다.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진정한 병왕이라 불릴 만했다.병왕들이 일단 움직이면 무조건 한 방으로 숨통을 노리게 된다.일부 종사 고수조차 이런 병왕을 만나면 충분히 패배할 수도 있었다.“이제 좀 무서워졌나 보네?”리앙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얼굴에 기괴한 미소가 떠올랐다.“네 남자가 도착하면 그 자식 눈앞에서 널 내 마음대로 갖고 놀 거야. 대한민국 여자들은 정조를 목숨처럼 여긴다며? 조금만 기다려. 널 전 국민이 볼 수 있도록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거야. 그럼 넌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거야.”리앙의 말에 장주완 일행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악마는 지옥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리앙이 바로 인간 세상의 악마였다.이런 악마의 손에 떨어진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무했다.한편, 박지호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진서준이라는 이름은 이미 여러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진서준이 예전에 명주시에 갔을 때도 엄청난 피
“네놈이었어?”들어온 사람을 본 순간, 리앙의 눈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대놓고 당당하게 방에 들어온 남자는 바로 어젯밤 자기를 흠씬 두들겨 팬 진서준이었다.진서준을 본 박지호의 눈꺼풀이 미친 듯이 떨렸고 속으로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야, 진짜 저놈이었네. 이거 골치 아파졌는데?’“진서준, 날 좀 구해줘.”진서준을 보자 김혜민은 마침내 숨을 돌릴 수 있었다.“구해 달라고? 이 자식이 지금 자기 목숨도 지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널 어떻게 구해? 웃기고 자빠졌네.”리앙은 피식 웃으며 쌀쌀하게 한마디 하고는 바로 손을 휙 내저었다.“이놈 당장 포위해.”그러자 경호원들이 살기를 내뿜으며 진서준을 겹겹이 에워쌌다.“셋째 도련님, 박 사장님. 이젠 문제를 일으킨 놈도 왔으니 저희는 이만 가봐도 되겠죠?”장주완은 재빨리 눈치를 보며 물었다.지금 이 틈을 타 도망치지 않으면 진짜 못 나갈 수도 있을 판이었다.“가긴 뭘 가? 이 자식 하나 들어왔다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해? 꿈 깨.”중년 남자가 장주완을 발로 걷어찼다.일촉즉발의 상황, 박지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리앙 씨, 제 체면 좀 봐서라도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어떨까요?”“네?”리앙은 순간 멍해졌고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어리둥절해졌다.아까까지만 해도 진서준을 박살 내겠다고 그 난리를 쳐놓고 이제 장본인이 오니 대충 마무리하겠다고?대체 이게 무슨 개소리야?“박 사장님, 제 얼굴 상처는 바로 이놈이 때린 겁니다. 제가 이걸 어떻게 그냥 넘어가나요?”리앙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박지호를 바라봤다.그냥 맞은 걸로 끝나면 사실 행운이었다.이 자식을 잘못 건드렸다가 목숨까지 날아갈 수도 있었다.“다른 사람 권고를 들으면 밥을 굶진 않는다는 말 못 들어봤어?”진서준이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잘 들어, 오늘은 누가 와도 널 구할 수 없을 거야.”리앙은 흉측한 표정을 지으며 위협했다.이렇게 치욕적인 굴욕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리앙 씨, 부탁인데 제 말 좀 들
리앙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김혜민의 뺨을 후려쳤다.아까 맞은 따귀까지 포함하면 이게 두 번째 따귀였다.김혜민은 순간 머리가 핑 돌면서 온몸이 휘청거렸다.그 모습을 본 진서준의 눈에서 서늘한 기운이 번져나갔다.눈앞에 있는 건 전장에서 사람을 죽여본 경험이 있는 베테랑 병왕이었지만 진서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먼저 움직였다.진서준의 손끝이 살짝 떨리더니 옷소매에서 은침이 순식간에 날아갔다.슉! 슉!스무 개가 넘는 은침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용병들의 미간에 박혔다.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경호원들은 단 한 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졌다.“뭐, 뭐야?”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으스대던 리앙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이 장면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이 경호원들은 리앙이 직접 고르고 훈련한 정예였는데 그동안 수도 없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기를 구해낸 최고의 경호원이었다.그런데 지금 한순간에 진서준의 손에 전부 죽었다.‘이 녀석은 도대체 사람이야, 귀신이야? 실력이 왜 이렇게 대단한 거지?’장주완 일행도 똑같이 제자리에 얼어붙었다.분명 진서준이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진서준은 무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리앙의 부하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렸다.게다가 아무도 진서준의 손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 못했다.사람들 중에서 오직 박지호만이 차분한 얼굴이었다.박지호는 진서준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이따위 경호원들은 진서준 앞에서 그야말로 하찮은 개미와 다를 바가 없었다.용존이라는 칭호는 절대 헛되이 불리는 게 아니었다.항상 기고만장하던 리앙이 이번엔 상대를 잘못 골랐다.“이봐, 방금 도대체 뭘 한 거야?”리앙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떨며 물었다.“직접 지옥에 내려가서 물어보지 그래? 저 개미들이 잘 설명해 줄 거야.”진서준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한 걸음씩 다가갔다.“감히 날 죽이려고 해? 난 차이더리스 가문 셋째 도련님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