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수는 이를 보고 느긋하게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찰랑!수박을 자르듯, 금색 빛은 순간 산산조각 났다.유지수는 종아리에 힘을 주더니 순식간에 속도를 내며 배수정을 향해 돌진했다.벼락이 내리치듯 두 사람이 빠르게 교전한 후, 배수정의 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배수정은 순간 뒤로 물러났고 시뻘건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어머나, 평온 스님이 다쳤잖아!”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평온 스님이 지현민 주지의 직계 제자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평온의 실력은 동년배 무인들보다 훨씬 뛰어났다.그런데 지금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신농 제자에게 상처를 입었다.진서준은 마음이 조여들며 근육이 팽팽해졌다.진서준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주자청이 물었다.“김평안 씨, 혹시 평온 스님과 아는 사이인가요?”“친구입니다.”진서준은 냉랭하게 한마디 던졌다.“저 여자가 아까부터 살인을 목적으로 공격하는 걸 보니 평온 스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겠어요.”주자청이 진서준에게 귀띔했다.“네? 저 유지수라는 여자가 평온 씨를 죽이려고 한다고요? 왜요? 둘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나요?”조슬기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여긴 소림이잖아요. 저 여자가 진짜 평온 씨를 죽인다면 자기도 살아남기 어려울 건데요.”신수란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주최 측의 사람을 죽이고 도망치려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가 진짜 마음먹고 평온 스님을 죽이려고 한다면요?”주자청은 진서준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슬쩍 떠보았다.“그럼 내가 평온을 구할 겁니다.”진서준은 침착하게 대답했다.진서준은 절대 유지수가 배수정을 죽이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었다.지난번 유지수가 허사연을 고문할 때, 진서준은 현장에 없었다.이번에는 절대 그런 비극이 반복되게 두지 않을 것이다.“배수정, 아직도 전력을 다하지 않을 거야?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거야.”유지수는 눈을
“김평안, 너 설마 경기 규칙을 깨려는 거야?”용전이 벌떡 일어나서 곧장 진서준을 가리켰다.다른 사람들도 전부 경악이 가득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저자가 감히 링에 올라가 경기를 방해하다니, 다른 종문들의 분노를 사는 게 두렵지도 않은 건가?”“보아하니 저 김평안이 평온 스님과 뭔가 숨겨진 과거가 있는 것 같아.”“영웅이 미녀를 구하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다만 안타깝게도 평온 스님은 이미 불문에 귀의했지.”은청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을 털어놨다.“저 자식,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건가? 저렇게 경기를 방해하면 이후의 경기는 어떻게 진행하라는 거지?”만약 모두가 진서준처럼 갑자기 난입해서 경기를 막아선다면 남은 대회는 아예 진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싸늘한 눈빛으로 유지수를 바라보았다.“더 이상 무례하게 굴면 널 저세상에 보내 주마.”“뭐야, 네 소중한 애인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유지수가 실실 웃으며 비꼬았다.“진서준, 넌 참 한결같구나. 네 최대 약점은 너무 착하다는 거야. 지금 넌 그 여자를 구했지만 이후의 경기는 어떻게 할 건지 생각이나 해 봤어? 우승하지 못하면 천년병제련을 얻을 수 없고 자연스레 진서라도 살릴 수 없어. 근데 진서라와 이 여자 사이에서 넌 이 여자를 선택했어.”이 말에 배수정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진서준이 천년병제련을 얻기 위해 이 대회에 참석한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그 약초는 지금 장경각에 보관되어 있다.검은 옷의 침입자가 들이닥쳤던 그날 밤, 주지가 직접 확인했을 때도 천년병제련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내가 남겨진 선택지가 단 두 개뿐이라고 생각해?”진서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웃기고 있네, 설마 네가 다른 곳에서 천년병제련을 구했단 말이야?”유지수는 여전히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진서라의 독은 내가 직접 놓은 거야. 천년병제련은 필수적인 약재지. 그게 없으면 진서라를 구할 방법은 없어.”“서라는 내가 반드시 구할 거야.
“진서준이 누구지?”은청준 일행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김평안이라는 신분이 가짜였던 말이야?”“잘 들어, 진서준. 네 주변의 여자들, 내가 하나씩 다 죽여버릴 거야. 오늘 날 죽이지 않으면 넌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유지수의 눈빛은 광기에 휩싸였고 그녀의 미친 듯한 모습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소인은 건드려도 여자는 건드리지 말라는 옛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았다.“좋아, 그럼 네 바람대로 해주지.”진서준이 담담하게 받아쳤다.“네 마음대로 날뛰게 놔둘 것 같아? 네가 지수를 죽이면 바로 네 정체를 폭로할 거야. 그땐 너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거야.”용전이 이를 갈며 위협했다.“굳이 네가 폭로할 필요도 없어. 난 이미 이 신분이 지겨워졌으니까.”진서준은 태연하게 손을 뻗어 얼굴에 쓴 인피면구를 벗어던졌다.“대박, 진짜 진 마스터잖아.”“진 마스터랑 김평안이 같은 사람이었다고?.”“이게 말이 돼? 한 사람이 검도, 횡련, 무도, 술법 네 가지를 다 정통했다고> 그럼 우리 같은 재능 없는 놈들은 대체 뭐 먹고 살라는 거야?”진서준의 젊은 얼굴이 드러나자 경기장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세 종문의 장로들은 진서준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 진서준이라는 청년은 아무리 봐도 20년 전 그 사람을 너무 닮아 있었다.혹시 이 진서준이 그 사람의 후손인 건가?“맞다, 이분이 바로 국경에서 나랑 수란 언니를 구해주셨던 그 은인이잖아.”조슬기가 눈을 반짝이며 단번에 진서준을 알아봤다.“맞네요.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네요.”신수란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진서준과 김평안이 동일 인물이었다는 걸 신수란이 예상할 리 없었다.“김평안이 진서준이었네. 그러니 배수정이 저렇게 신경 쓰고 있었던 거군.”양지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진서준이 주동적으로 인피면구를 벗는 모습을 본 용전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이 녀석이 오늘 진짜 죽을 각오를 한 건가?자기를 노리는 종문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꺼져.
이번엔 유지수가 진짜 당황해했다.유지수가 진서준의 눈에서 강렬한 살의를 읽었기 때문이었다.진서준은 지금 진짜 유지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진서준, 정신 차려! 내가 죽으면 구지범은 절대 네 아버지를 풀어주지 않을 거야!”유지수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체내의 강기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그 느낌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구지범의 목적은 이미 알고 있어. 그놈은 단지 우리 아버지에게서 장청결을 얻으려는 것뿐이야.”진서준은 쌀쌀하게 말을 이었다.“널 풀어준 건 우리 아버지 흔적을 찾는 시간을 지연시키려는 술수에 불과했어. 유지수, 넌 내가 일부러 널 살려줬다고 착각했어?”진서준이 말하는 동안, 용전이 구경꾼들을 향해 소리쳤다.“다들 우리 신농을 위해 이 배신자를 잡아. 선뜻 나서는 자에게는 우리 신농이 큰 빚을 지는 거야.”그 말을 듣자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대한민국 최상급 종문 신농이 큰 빚을 진다면 이후 대한민국에서 거의 법을 무시하며 제멋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당신은 신농의 한낱 제자일 뿐인데 어떻게 감히 신농을 대표해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죠?”조슬기가 단칼에 반박했다.진서준에게 두 번이나 목숨을 구원받은 조슬기는 진서준이 다수에게 포위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용전의 얼굴이 시퍼렇게 굳어졌다.조슬기가 자기 계획을 방해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조슬기 씨 말이 맞아. 신농 제자 따위가 감히 신농을 대표할 자격이 있겠나?”“그냥 우린 지켜보자고. 무엇보다 저 용존 실력이 너무 강해.”“신농 제자들을 한 방에 처리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어?”사람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용전은 분통이 터졌다.용전은 이제라도 사실을 밝힐지 고민하고 있었다.진서준에게 선법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용전이 굳이 부추기지 않아도 이들이 알아서 덤벼들 것이다.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용전은 선법을 차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승려는 진서준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그 기운에 짓눌려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들어졌고 결국 진서준의 손바닥에 맞아 날아가듯 튕겨 나갔다.“감히 우리 승려를 공격해?”다른 소림 승려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겹겹이 둘러쌌다.“진 시주님, 이만 물러나세요.”황금 가사를 두른 승려가 앞으로 나서며 설득했다.이 승려는 소림 열여덟 금강 중 한 명이었는데 천의방에 오를 정도로 실력이 강력한 인물이었다.“주 장로님, 어서 진서준 오빠를 구해주세요.”진서준이 승려들에게 포위당하자 조슬기가 초조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했다.“저 녀석이 우릴 전부 속였잖아. 애초에 수상쩍었는데 왜 굳이 구해줘야 해?”“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자를 학대하는데, 저런 놈을 왜 우리가 도와야 하지?”“슬기 후배, 너도 정신 좀 차려. 저런 미친놈은 여기서 죽는 게 좋은 일이야.”곤륜 제자들이 일제히 진서준을 도와줄 필요가 없다며 소림 승려가 죽이는 게 정당하다고 여겼다.“조슬기 아가씨, 저는 변경에서 저 녀석을 만났을 때부터 뭔가 수상쩍다고 생각했어요.”신수란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여자를 이렇게까지 학대하는데 남자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맞나요?”모두가 진서준을 비난했지만 아무도 진서준이 왜 이러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여러분,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조슬기가 분노를 터뜨렸다.“진서준 오빠가 당신들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적대하는 거죠?”“조슬기 아가씨, 그럼 저 녀석이 여자를 죽도록 패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진서준 오빠가 저러는 건 꼭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아무리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요?”신수란은 여전히 진서준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얼씨구, 소림이 작정하고 오늘 끝까지 남의 일에 간섭하려 한다는 거지?”진서준이 금강을 노려보며 물었다.“시주님, 살생을 멈추세요.”“살생을 멈추라고? 말은 참 쉽군.”
인력은 결국 한계가 있다.설령 지선이라 해도 신화 속 신선들처럼 산을 옮기고 바다를 뒤엎으며 별 불로 하늘을 태울 수는 없다.오직 한 부류의 사람이 이 정도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선인이었다.먼 옛날부터 이 세상에는 선인이 출현했다는 많은 증거가 있었다.그 선인들은 사실 처음에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단지 그들이 수선지법을 갖고 있었기에 평범한 사람과 달라진 것이다.용전의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그제야 왜 스무 살 남짓한 진서준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실력을 자랑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한 듯 보였다.이유는 사실 간단했다.진서준이 절세의 전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그 절세의 전승이 과연 무엇일지, 다들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바로 진서준이 수선지법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순식간에 사람들이 진서준을 바라보는 눈빛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여러분, 그거 아나요? 20여 년 전, 대한민국이 대재앙을 겪을 때 대한민국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 진요한이라는 남자가 바로 이놈의 아버지입니다. 그동안 진요한은 우리 신농의 금지 구역에 가두어두고 수선지법을 얻어 모든 이와 나누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용전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진요한은 고집이 세서 이 좋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득이하게 진요한의 아들을 잡으러 온 거죠.”용전은 자기가 도덕적 고지에 올라선 듯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지금까지 한 모든 일이 결국 선법을 얻어 모두와 나누기 위한 것인 듯 모두를 속이고 있었다.이 해명을 들은 사람들은 모든 죄를 진서준에게 돌리기 시작했다.“이 자식이 갑자기 무도계에 튀어나온 이유가 있었군. 수선지법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했던 거였어.”“그렇게 대단한 걸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와 나누지 않는다니, 진짜 이기적이네.”“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지.”천천히 지켜보려던 사람들도 전부 일어섰다.선법은 최고 수준의 전승이었다.진서준이 스무 살 남짓
그러자 소림의 사람들은 즉시 자리를 비켜주었다.“장로님, 우리도 얼른 올라갑시다. 조금만 늦으면 저놈 선법을 다른 사람이 빼앗을 겁니다.”도권우도 급한 마음에 문추원을 재촉했다.“급해할 거 없어. 이 녀석 실력이 약하지 않으니 저 미련한 놈들에게 당할 수 없어. 일단 인해 작전에 지치게 놔두자.”문추원도 바보는 아니었다.진서준처럼 선법을 가진 사람과는 절대 정면으로 맞붙으면 안 된다.이런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생포해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생포하는 것과 죽이는 건 차이가 엄청난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상대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이 있지 않는 이상 생포할 수는 없을 것이다.장백 쪽에서도 미적지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4대 종문의 제자들은 수련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던가? 바로 선인의 길을 추구하는 것, 영생을 얻기 위해서였다.이제 선법을 얻을 기회가 생겼으니 당연히 놓칠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은 문추원과 마찬가지로 무모하게 움직이지 않고 적절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멈추세요! 진서준 오빠를 공격하지 마세요!”조슬기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진서준 앞에 서며 말했다.“조슬기 씨, 이 일은 우리와 이놈의 개인적인 일이니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황의 노인이 조슬기를 설득했다.“진서준 오빠는 제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에요. 이 일은 저와도 당연히 상관있는 일이에요.”조슬기의 태도는 단호했다.“게다가 이 선법은 진서준 오빠의 가보인데 왜 당신들한테 줘야 하죠? 진서준 오빠에게 사이좋게 나누자고 하기 전에 당신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는지나 한번 생각해 보세요.”황의 노인은 자기가 논리적으로 밀리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조슬기와 언쟁을 벌이려 하지 않았다.“조슬기 씨, 오늘 이 선법을 손에 넣을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백 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할 겁니다. 그런데도 조슬기 씨가 길을 비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눈이 달리지 않은 주먹과 발이 조슬기 씨를 스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황의 노
백 명을 상대해도 진서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진서준은 4대 종문 대회에 참가하려고 다짐했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왕관을 쓰고 싶은 자는 그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자기가 힘들게 얻은 전승을 지키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이 필요하다는 걸 진서준은 이제야 깨달았다.그리고 왜 그 창욱 어르신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됐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두 분의 선의는 잘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내려가 주세요.”진서준은 조슬기와 배수정에게 다정하게 말했다.“그럴 수는 없어요. 진서준 오빠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조슬기의 얼굴에 깊은 우려가 떠올랐다.“괜찮아요. 이 사람들은 날 죽일 수 없습니다.”진서준은 여전히 담담하게 웃고 있었고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황의 노인은 그 말을 듣고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조슬기 씨, 평온 스님,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으니 얼른 비키세요.”“맞아요, 비키세요. 칼에 눈이 없어 자칫 두 분을 다칠까 봐 두려워 그럽니다.”진서준도 다시 한번 정중하게 부탁했다.배수정은 진서준의 결단에 찬 눈빛을 보자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진서준이 일단 결정을 내리면 쉽게 바꾸지 않는 사람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진 시주님 말대로 우린 더 이상 이분을 방해하지 맙시다.”배수정은 조슬기를 끌고 링에서 내려왔다.“진서준 오빠, 꼭 무사하셔야 해요.”조슬기의 눈에서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둘이 막 링을 떠나자 황의 노인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다들 함께 이 녀석을 잡아! 선법은 우리 다 함께 나눠 갖자!”노인은 팔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고 사람들은 즉시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진서준을 향해 달려갔다.진서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달려드는 무리를 보며 피하지도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탐욕이야말로 사람을 죽이는 가장 큰 원흉이야.”진서준은 참선검을 몸 앞에 잡고 체내의 영기를 다뤄 전부 참선검에 모였다.그러자 청색 검광이 번쩍이더니 진서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검
신도시는 이미 새 아파트가 가득 지어진 지역이었다.또한 발전도 활발한 곳이라 갑자기 다시 철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너 혹시 우리 가족을 납치했어?”도지아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철거는 핑계였고 가족을 납치한 게 진짜 목적이었다.하씨 가문은 르벨의 실세인지라 그들이 도지아의 가족을 납치하는 건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이었다.“아니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하겠어?”하경범은 태연하게 웃으며 천천히 주머니에서 장명쇄 하나를 꺼냈다.그것을 본 순간, 도지아는 온몸이 굳어버렸다.왜냐하면 도지아의 동생이 딱 저런 장명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이 장명쇄는 어디서 난 거야?”도지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아, 내 부하가 며칠 전에 르벨에서 가져왔어. 철거하려는 집에 있던 청년한테서 얻었다고 하더라고.”하경범은 느긋하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그거 내가 확인해 봐도 돼?”도지아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당연하지.”하경범은 장명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도지아 앞으로 밀었다.도지아는 서둘러 손을 뻗어 장명쇄를 집어 들었다.그 순간, 눈에 들어온 성씨를 확인하자 도지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건 틀림없이 도지아 동생의 장명쇄였다.이제야 도지아는 순식간에 지금 이 상황을 깨달았다.하경범은 처음부터 사과 따윈 생각도 없었다.하경범은 이미 도지아의 가족을 납치했고 그걸 빌미로 도지아를 협박하려는 것이었다.“하경범. 너 인간이 맞아? 내 가족을 감히 납치해?”도지아는 분노로 치를 떨었다.“응?”하경범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모르쇠를 놓았다.“지아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이건 내 동생의 장명쇄야. 네놈이 내 가족을 납치했잖아?”도지아는 이를 갈며 하경범에게 따졌다.“어라? 벌써 알아차렸어?”하경범은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는 듯이 냉소를 지었다.“네 가족이 내 손에 있다는 걸 안다는 사람이 감히 그런 태도로 말하는 거야?
“도지아, 나 하경범이야.”해 질 무렵, 도지아는 하경범의 전화를 받았다.상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도지아는 바로 전화를 끊으려 했다.“잠깐만, 끊지 마. 오늘 전화한 건 전에 있었던 일에 관해 사과하고 싶어서야.”하경범이 드물게도 저자세로 나왔다.“뭐? 사과라고? 나한테?”도지아는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도지아가 아는 하경범은 절대 고개 숙일 사람이 아니었다.설령 본인이 잘못했어도 어떻게든 상대를 조종해서 오히려 죄를 뒤집어씌우는 인간이 바로 하경범이었다.“그래, 그땐 내가 정신이 나갔던 것 같아. 어떻게 너처럼 훌륭한 모델을 억지로 따먹으려 했는지 모르겠어. 네 다리 다친 것도 내가 시킨 게 맞아. 정말 미안해. 며칠 전 너와 다시 만난 뒤로 계속 반성했어. 내가 너무 지나쳤더라고. 너한테 용서를 구할 기회를 줄 수 있겠어?”하경범의 태도는 의외로 진지했다.도지아는 순간 지금 전화 너머에 있는 사람이 정말 하경범이 맞나 싶었다.“됐어, 앞으로 다신 날 귀찮게 하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해.”“당연하지. 앞으로 널 귀찮게 할 일은 없어. 이번에 전화한 건 너와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어서야.”하경범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어. 전화로 사과한 것만으로도 충분해.”도지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도지아도 경계를 완전히 내려놓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지아야, 네가 나랑 안 만나주면 솔직히 나도 불안해. 사실 이번에 내가 이렇게 나오는 건 황예은 때문이야.”하경범은 자세하게 자기주장을 해명했다.“황씨 가문의 세력이 어떤지 네가 더 잘 알 거야.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괜한 적을 만들고 싶진 않거든. 나도 황예은과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하경범의 말을 듣자 도지아는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하경범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건 전적으로 황예은 때문이었다.황씨 가문은 대한민국에서 최고 재벌이라고 불리는 가문이었다.어떤 명문대가라고 해도 황씨 가문 앞에선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물론 하씨 가문이라고 예외
진서준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김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앞으로 네 말 잘 들을게.”“뭐 먹고 싶어? 내가 해줄게.”진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아무거나 좋아. 네가 만든 거면 다 맛있으니까.”김연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사랑하는 사람이 곁에서 걱정해 주는 이 따뜻한 느낌이 김연아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준은 버섯 죽 한 그릇을 가져왔다.“그나저나 차이더리스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놈들이 가만있을 것 같진 않은데?”김연아가 죽을 먹으며 물었다.“군부에서 알아서 적절하게 처리했어.”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군부가 나섰다고?”김연아는 예상치 못한 소식에 놀랐다.“응. 놈들은 이제 절대 대한민국을 떠날 수 없어.”김연아는 순간 멈칫하다가 다시 진서준에게 확인했다.“설마... 다 죽은 거야?”“그래.”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가주 월런도 죽었어.”“차이더리스 가문이 무조건 가만히 있지 않고 복수하려 할 거야...”김연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어쨌든 차이더리스 가문은 초아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가였다.그런데 그 가문의 가주가 대한민국에서 죽었으니 가문 전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걱정 마. 어제 일을 알고 있는 놈들은 전부 죽었어.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낼 수 없을 거야.”진서준은 태연하게 웃으며 김연아를 위로했다.사실 아버지를 찾는 일이 급하지 않았다면 김연아의 상처가 회복되는 순간, 진서준은 직접 초아국으로 쳐들어가 차이더리스 가문 자체를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넣을 것이다.진서준의 가족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이었다.용의 역린을 건드리면 대가는 파멸뿐이었다.“참, 며칠 후에 르벨에 좀 다녀올 거야.”진서준이 갑자기 다른 화제를 꺼냈다.“르벨에? 왜?”“오영수 대장한테서 내 출생에 관한 정보를 조금 들었어. 더 자세한 걸 알아보면 아버지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그럼 조심해야 해. 르벨은 대다수 대한민국 도시와 틀려. 거기에서 거
이른 아침.반쯤 망가진 몸으로 돌아온 진서준을 본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진서준, 난 다시는 널 못 보는 줄 알았어.”눈이 벌겋게 충혈된 서지은이 곧바로 달려와 진서준을 꼭 껴안았다.“난 괜찮아, 지은아. 우선 연아 치료부터 해야 해.”진서준은 서지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뭐라고? 연아가 다쳤다고? 그럼 어서 가.”서지은은 깜짝 놀라며 급히 진서준을 놓아주고 그를 재촉했다.김혜민이 앞장서서 진서준과 함께 김연아가 있는 곳으로 갔다.“하문천 어르신께서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셔서 언니 상처는 간단히만 응급처치했어.”김혜민이 이를 악물었다.“그 개자식들이 어떻게 여자한테 이 정도로 잔인하게 굴 수가 있어?”김연아의 상처를 직접 확인한 순간, 김혜민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일단 나가 있어.”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고 이내 조용히 김연아 곁에 다가갔다.혼수상태에 빠진 김연아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진서준... 어서 도망쳐... 날 신경 쓰지 말고...”그 한마디가 진서준의 심장을 송곳처럼 찔렀다.이 지경까지 고문당했으면서도 김연아는 여전히 진서준을 걱정하고 있었다.“난 여기 남을 거야. 나도 도울게.”김혜민은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그럼 일단 따뜻한 물 한 대야랑 흰 수건 몇 장 가져와.”“알았어. 금방 가져올게.”김혜민이 다시 들어왔을 때, 진서준은 이미 김연아의 붕대를 모두 벗긴 상태였다.피는 이미 굳었지만 피멍과 자국으로 가득한 상처는 너무나도 끔찍했다.“이 상처를 치료한 후 언니 몸에 흉터가 남으면 어떡해?”김혜민이 흐느끼며 물었다.“걱정 마. 최고의 약으로 모든 상처를 깨끗이 지워줄 거야.”진서준은 직접 제조한 약 가루를 꺼냈다.본래는 도지아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김연아의 상태가 더 위중했다.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수건으로 김연아의 상처를 닦아냈다.소독, 약 바르기, 붕대 감기... 진서준은 모든 과정을 신중하게 진행했다.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특
진서준은 무심하게 주머니에서 갈색 알약 하나를 꺼냈다.그 모습을 본 소르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알약은 입에 닿자마자 녹아들었고 엄청난 영기가 범람하는 홍수처럼 진서준의 단전에 쏟아져 들어갔다.“다음번 공격으로 널 지옥에 보내주마.”말을 마치자마자 막대한 영기가 참선검으로 흘러들었고 검신은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물들었다.소르는 참선검에서 모든 걸 파괴할 듯한 어마어마한 힘이 분출되고 있다는 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소르의 머릿속에 꽉 찼다.지금 이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도망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소르는 재빨리 몸을 돌려 필사적으로 뛰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백 미터를 달려 나갔다.“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이 발을 내디디는 순간, 이미 소르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이봐, 사람은 한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해. 그래야 나중에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거 아니겠어?”소르의 얼굴이 어둡게 일그러졌다.“넌 날 다시 볼 기회 따위 없어.”말이 끝나기도 전에 참선검이 소르의 목을 스쳤다.가는 실처럼 섬세한 검광이 스쳐 소르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지더니 곧이어 피가 샘물처럼 솟구쳤다.휘둥그레 뜬 소르의 두 눈에는 극도의 원한과 후회만이 가득했다.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천의방 두 고수가 차례로 죽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분도 되지 않았다.그리고 그들을 죽인 건 단 한 사람, 바로 진서준이었다.이 사실이 외부에 퍼진다면 아마 전 세계가 경악할 것이다.“쏴! 당장 쏴 죽이란 말이야!”월런이 격노하며 명령을 내렸다.그러자 주변의 총잡이들이 일제히 총구를 들어 진서준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며 진서준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오늘 여기 있는 놈들은 모조리 쳐 죽일 거야.”선천의 힘조차 진서준을 상처 입히기 어려운데 하물며 이런 총알 따위가 위협이 될 수 없었다.진서준은 검을 휘두르며 총잡이 속으로 뛰어들었다.진서준이 지나가는 곳마다 아무런 저항도
“세 공격 만에 날 죽이겠다고?”루돌프는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섬뜩한 웃음을 터뜨렸다.“방금 그 노인네가 있었으면 조금은 신경 썼겠지만 네가 직접 그 노인네를 내보냈으니 네 손으로 죽음을 택한 거야. 요즘 젊은것들은 왜 이렇게 건방진 거야?”소르도 진서준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다.약을 삼킨 루돌프의 실력은 단순히 조금 오른 정도가 아니었다.지금의 루돌프는 사실상 십급 대종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세 번 공격은커녕, 열 번 공격한다고 해도 진서준이 루돌프를 죽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저놈을 죽여.”월런의 얼굴이 새파래졌다.하문천이 다시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호국장군이 이 대결에 끼어든다면 승패를 예측하기 어려웠다.“가자!”루돌프가 먼저 움직였다.하지만 진서준의 속도가 더 빨랐다.진서준의 발끝이 땅을 스치자 어둠 속에서 수많은 잔상이 춤추듯 번쩍였고 그의 등 뒤에 떠오른 오조금용이 살아 숨 쉬는 듯했다.챙!진서준의 검이 루돌프 앞을 가로막는 선천의 힘에 부딪치며 금속이 부딪치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한 번.”진서준의 표정은 냉랭했다.“이봐, 설마 진짜로 세 번 안에 날 죽일 셈이야? 농담도 정도껏 해.”루돌프의 분노가 폭발했다.차이더리스 가문의 절대 강자이자 천의방 고수인 자기가 한낱 젊은 청년한테 이런 취급을 당하다니, 분노가 끓어오를 수밖에 없었다.참선검이 루돌프를 꿰뚫지 못했지만 진서준은 모든 게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듯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쿵!진서준이 또 주먹을 내지르자 포탄이 산을 강타하는 듯한 충격이 일어났다.땅이 흔들리고 발밑의 지면이 반 미터 깊이의 균열을 만들며 사방으로 갈라졌다.루돌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자기 앞을 보호하던 선천의 힘의 방어막에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금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두 번.”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네놈을 죽여버릴 거야. 네 뼈를 뽑아 개밥으로 던져 주마.”루돌프는 광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분노에 찬
심지어 어둠 속에서는 저격수가 기회를 노리고 진서준을 죽이려고 했다.철갑탄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기에 대종사급 강자라 해도 이 탄환을 정면으로 맞으면 무사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았지만 이 찬환을 회피할 기회조차 없었다.푸슉!철갑탄이 진서준의 갈비뼈를 꿰뚫었고 붉은 피가 상처에서 샘물처럼 터져 나왔다.“저놈이 치명상을 입었어!”월런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며 모두의 기세를 돋구어줬다.그제야 주변에 있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설마 이 청년이 죽지 않는 악마는 아닐지 다들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그러나 총상을 입은 진서준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것처럼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게다가 진서준의 상처는 빠른 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저놈, 진짜 악마 아냐?”소르는 그 모습에 놀란 목소리로 중얼댔다.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이런 회복 속도가 나올 리가 없다.“바로 지금이야, 다들 함께 달려들어 저놈을 죽여!”루돌프가 정신을 차리고 모두를 향해 외쳤다.“너희 차이더리스 놈들, 우리 대한민국 땅에서 너무 날뛰는 거 아니야? 눈에 뵈는 게 없어?”그때였다.멀리서부터 우렁찬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누구야?”모두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그곳에서 한 사람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이 선명해지자 소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하문천? 저 녀석이 왜 여기 있어? 명주시에 있던 거 아니었나?”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대한민국 국안부의 진천진군 하문천이었다.하문천을 보자마자 월런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호국장군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내가 너희 국안부를 우습게 보는 게 아니야. 너희 사람이 우리 아들을 죽였단 말이야.”월런이 앞으로 나서서 하문천과 눈을 마주쳤다.“얼씨구, 그래서 네가 직접 대한민국에 발을 붙인 거야?”하문천은 월런의 말에 의아해했다.사실 하문천은 차이더리스 가문이 급하게 전용기를 띄워 대량의 인원을 강남으로
“진서준!”진서준의 뒷모습을 본 김혜민은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진서준이 다행히도 제때 도착한 모양이었다.하지만 진서준의 품에 안긴 김연아를 본 순간, 김혜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김연아는 온몸이 피범벅이었고 등에는 살점이 찢겨 나가 볼품없이 다쳐 있었다.김연아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당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이 개자식들이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질러?”김혜민은 이를 갈며 분노했다.“닥쳐! 저 계집 도망 못 가게 잘 감시해.”소르는 쌀쌀하게 명령을 내린 후 바로 전장 한가운데로 걸어갔다.소르의 시선은 곧바로 이미 선약을 사용한 상태인 루돌프에게 향했다.루돌프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다니, 눈앞의 이 진서준이라는 청년의 실력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어라? 이건 오조금용이잖아? 대한민국 용맥의 가문이야?”소르가 가까이 다가오자 진서준의 등에 새겨진 오조금용을 발견했다.“소르, 같이 이놈을 잡자. 우리 둘이 대한민국 용맥의 가문 비밀을 죄다 파헤치는 거야.”루돌프가 소리쳤다.루돌프의 몸은 이미 뼈만 남은 해골처럼 말라버렸고 마치 꺼져가는 촛불 같았다.하지만 루돌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는 여전히 강렬했다.“천의방 강자 둘이 협력하면 저놈이 살아남을 리가 없지.”아직 살아있는 월런의 부하들은 다시 희망이 활활 타올랐고 월런 역시 안도의 숨을 깊이 내쉬었다.“어서 저놈 죽여 버려!”월런은 진서준을 1초도 살려두고 싶지 않았다.진서준이 살아있는 한, 월런은 한순간도 편할 수가 없었다.“가자!”순간, 소르가 땅을 구르며 화살처럼 튀어나와 진서준에게 돌진했고 루돌프 또한 소르와 동시에 움직였다.두 사람이 앞뒤에서 진서준을 협공했다.“이런 치사한 놈들, 둘이서 한 명을 상대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김혜민은 급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굴렀다.그 말에 주변의 사람들이 폭소했다.생사가 걸린 전투에서 치사하고 부끄러운 걸 따질 수 없었다.어떤 비겁한 수단을 써서라도 살아남는 자만이 최후의 승자였기 때문이다
쾅!귀청이 찢어질 듯한 폭음과 함께 저택 전체가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다.두 사람의 발밑에서 균열이 일어나더니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설마 루돌프 씨도 저놈을 이기지 못하는 건가?”“말도 안 돼. 저 대한민국 애송이가 얼마나 어린데?”“가주님, 지금 혼란스러울 때 총을 쓰는 게 어떻겠습니까?”곁에 있던 집사가 낮은 목소리로 귀띔했다.월런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렸다.“저격총을 사용해. 반드시 한 방에 저놈을 끝내야 해.”이제 와서 무슨 수를 쓰든 상관없었다.어떻게든 저 괴물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는 게 월런의 생각이었다.“알겠습니다.”집사는 즉시 사람을 시켜 저격팀을 준비했다.그때, 진서준의 옷이 찢어지면서 등 뒤의 오조금용이 모습을 드러냈다.“아니, 이건 오조금용이잖아? 설마 네가 대한민국 용맥의 가문 사람이란 말이야?”루돌프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루돌프는 100년 넘게 살아오며 일반인이 모르는 수많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심지어 루돌프는 지난번 대한민국 대재앙에 가담했었다.목적은 단 하나였는데 바로 용맥 가문의 또 다른 인물을 잡기 위해서였다.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다시 용맥의 가문 사람을 마주하게 되었다.“네놈이 이 어린 나이에 괴물 같은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가 이거였네.”루돌프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20년 전 만났던 그 남자도 지금 이 녀석처럼 실력이 막강했다.“네놈은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아.”진서준은 무심한 표정으로 루돌프의 말을 외면했다.지금 진서준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 늙다리를 찢어 죽이는 생각 하나만 남았다.이 늙다리를 처치한 후 저 짐승 같은 월런에게 생지옥을 맛보게 해야 했다.“이봐, 네가 용맥의 가문이면 뭐 어쩔 건데? 20년 전 그 녀석도 우리한테 쫓겨서 개처럼 도망쳤잖아.”루돌프가 무심결에 진서준을 도발했다.그 말을 들은 순간, 진서준의 가슴속에서 분노가 더 활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그럼 당시 우리 아버지를 추격하던 놈 중에 네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