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를 건 사람들은 전부 불만을 표했다.다들 진서준이 질 것에 내기를 걸었고 이건 확실한 이득이 보장된 거래였다.하지만 이제 손원순이 갑자기 진서준을 대신해 출전한다고 하니 그들의 돈줄이 끊긴 셈이었다.“손 천사님, 그 녀석과 무슨 관계인가요? 왜 그 녀석을 대신해 나서시는 거죠?”“맞아요, 손 천사님, 이건 경기 규칙에 맞지 않아요.”“손 천사님, 그냥 내려가세요. 우리 돈 벌게 놔두세요.”사람들이 하나둘씩 손원순에게 내려가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손원순은 차가운 눈빛으로 구경꾼들을 쏘아보며 답했다.“불만이 있으면 먼저 올라와서 날 이겨봐.”손원순의 말 한마디에 떠들썩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손원순을 이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칠급 영선 술사라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실력이었다.황혼 기사도 냉정하게 말했다.“좋아, 그럼 먼저 너부터 죽이고 저 녀석을 죽여야겠어.”VIP룸에 앉아 있던 예크스는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황혼, 저 녀석도 죽여버려! 저 늙다리에게 우리 교회 실력을 알려줘야 해.”심판이 마지막 확인을 마친 뒤 경기가 드디어 시작되었다.“난 밖에 나가 있을게. 손 천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구할 수 있게.”진서준의 말에 이세아가 놀란 듯 물었다.“너 손원순이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이세아가 놀란 듯 물었다.“아까 보니까 교회 기사들 강기는 호국장군과 비슷한 수준이야. 손 천사 실력도 약한 편은 아니지만 저 기사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좀 불안해.”진서준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무인와 수선자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무인도 나이가 많으면 실력이 점점 더 강해지긴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도 문제였다.나이가 너무 많으면 예전처럼 정정하지 않아 작은 상처나 질병이 있을 경우, 고수와 결투할 때 그 사소한 문제가 점점 더 커져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었다.수선자는 한 단계씩 경지가 올라가면 수명이 늘어나지만 무인은 그렇지 않았다.무인은 지선 경지에
“맙소사, 이게 바로 손 천사님의 실력인가?”“이 검을 과연 저 기사가 막을 수 있을까?”“막을 수 없을 거야. 손 천사님은 우리 명주시 최고 술법 강자잖아.”대다수 사람은 황혼 기사가 이 공격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황혼 기사도 눈앞의 광경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우리 스승님 시그니처 술법이네!”곽윤상이 흥분하며 소리쳤다.예전에 명주시에서 요괴들이 날뛰었을 때, 손원순은 바로 이 보라색 검으로 악귀 세 마리를 단번에 처치했다.그 사건을 계기로 손원순은 일약 명성을 떨쳤다.지금의 손원순은 그때보다 몇 배나 더 강해졌고 이 전설적인 기술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졌다.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보라색 뇌검에 집중되었다.하지만 황혼 기사도 물러서지 않았다.황혼 기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손원순 못지않았다.황혼 기사는 은색 창을 높이 들고 길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전쟁의 신처럼 우뚝 섰다.그리고 황혼 기사가 갑자기 바닥에 발을 내딛자 강철처럼 단단한 바닥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황혼 기사의 모습은 빛처럼 빠르게 움직였고 순식간에 링 중앙에 도달했다.손원순 앞에 있던 뇌검도 같은 순간에 바닥을 쪼개듯 사나운 기세로 내려쳤다.창과 검이 공중에서 충돌하며 폭발적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펑!그 후, 뇌검은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부서져 날아갔다.그리고 공중에서 멈췄던 황혼 기사의 모습이 바로 손원순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술법이 깨져버리자 손원순은 원기가 크게 상하며 시뻘건 피를 왈칵 토해냈다.손원순의 강기는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격렬한 충격에 연신 뒤로 물러서며 발을 제대로 디딜 수도 없었다.“죽어!”황혼 기사는 손에 들었던 창을 힘껏 던졌고 그 창은 손원순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그 창에 맞으면 신선이라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이 순간, 두 사람의 결투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전부 경악을 금치 못했다.명주시에서 오랜 세월 명성을 떨친 술법
모든 사람은 입을 떡 벌린 채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이 청년은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선전포고하는 건가?구경꾼들만 놀란 게 아니었다. 진서준 뒤에 서 있던 손원순도 진서준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이 애송이가 대담해도 너무 대담한 것 같았다.이 유람선에 올라탄 사람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어쩌면 링 아래에 팔급, 심지어 구급 대종사 경지의 경호원이 있을지도 모른다.이런 강자가 지금 링에 올라간다면 진서준도 무척이나 난감해질 것이다.“너 과연 그렇게 오만하게 굴 실력이 있을까?”이세아가 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잠시 후, 사람들이 정신을 가다듬었고 그들의 눈에서 스치던 경악은 사라지고 그 대신 불타오르는 분노가 가득 찼다.“오만하고 무지한 애송이가 감히 큰소리를 쳐? 이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를 거야.”“우리가 나설 필요 없어. 저 기사님이 알아서 널 처단해 버릴 거야.”“허세를 부리다가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군중의 분노가 폭발했지만 아무도 무대에 올라가지 않았다.다들 무대 위에 있는 황혼 기사가 진서준의 목을 쳐낼 것이라 믿고 있었다.황혼 기사는 차가운 살기를 눈에 띄게 드러내며 말했다.“이봐, 너 지금 대형 사고 친 건 알고 있어?”“몰라. 단지 네가 이제 곧 죽을 거라는 것만 알아.”진서준이 평온하게 답하자 손원순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외쳤다.“빨리 물러나. 이 사람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명주시 최고의 술법 천사인 손원순도 황혼 기사를 이길 수 없었는데 어떻게 한낱 국안부 소속의 상경인 진서준이 상대할 수 있겠는가?진서준은 손원순을 힐끗 바라보더니 가볍게 그의 어깨에 손바닥을 얹었다.그러자 손원순의 얼굴이 급변했다.하지만 진서준이 손원순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기운이 손원순의 온몸에 편안한 흐름처럼 퍼져 나갔다.그러자 방금 황혼 기사의 공격에 심각하게 다쳤던 상처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사실, 눈앞의 이 청년은 기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서 살짝 놀랐다.하지만 황혼 기사는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황혼 기사는 갑자기 뒤로 물러났고 긴 머리가 공중에서 휘날렸다.그러고는 두 손을 가슴에 교차시켜 놓고 경건한 신도처럼 거만한 고개를 살짝 숙였다.“신성한 빛이여, 이 세상 모든 악을 멸해 버리옵소서.”기사가 입으로 중얼거리자 손에 쥔 긴 창에서 눈부신 빛이 방출되었다.황혼 기사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기도 이 순간 전부 폭발했다.조금 어두운 지하 링은 지금 한낮의 밝은 햇살처럼 강렬한 빛을 발산했다.“저 녀석 드디어 숨통이 끊어지겠네. 황혼 기사가 성력을 사용했어.”예크스가 눈을 반짝이며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성력은 오직 교회 원탁 십이 기사와 주교 세 명만이 소유한 특별한 힘이다.이 힘은 산을 하나 통째로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이세아도 그 눈 부신 빛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유람선이 과연 이 엄청난 힘을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이세아이 우려한 것처럼 유람선에서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유람선 위의 손님들은 저마다 불안해했다.그때, 링 위의 황혼 기사가 갑자기 움직였다.기사는 순간 이 세상에서 사라진 듯, 한순간에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졌다.그리고 다시 나타났을 때, 이미 진서준의 앞에 서 있었다.진서준은 검을 쥔 손을 급하게 들어 올리며 청색의 검빛이 발산하는 일격을 날리자 눈앞의 눈 부신 빛을 찢어버렸다.우르릉!굳건한 링의 바닥이 진서준의 일격을 맞고 기다란 균열이 나타나며 부서진 돌멩이가 사방으로 튀었다.그 후, 진서준은 손에 쥔 참선검을 풀었고 이내 그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청색과 적색을 띤 거대한 용 두 마리가 진서준의 뒤에서 나타났다.두 용은 하나로 합쳐졌다가 다시 청색과 적색이 엇갈린 용 세 마리로 나뉘었다.진서준의 주먹 앞에서 거대한 용 한 마리가 거대한 입을 벌려 모든 것을 삼켜버리려 했다.콰지직!한 줄기의 갈라진 금이 황혼 기사의 창에
현장은 말 그대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링 위의 그 인물을 쳐다보았다.원탁 십이 기사는 말 그대로 천의방에 오르는 슈퍼 강자였다.천의방은 비록 대한민국 국안부가 만든 목록이지만 국내외 모든 권력자와 강자가 그 권위성을 인정하는 목록이기도 했다.전 세계를 둘러보면 강자가 수없이 많지만 70억 가까운 인구 중에서 단 100명만이 천의방에 기록된다.이 100명은 어느 나라에 가든 각국의 권력자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쓰는 존재였다.수많은 강자가 천의방에 올라가려고 발버둥 칠 때 놀랍게도 천의방 78위에 위치한 황혼 기사가 지금 20살 남짓한 청년의 공격 세 번으로 죽음을 맞이했다.용존 진서준.이 이름은 해외 강자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이름이었고 갑자기 떠오른 인물일 뿐이었다.진서준이 대한민국에서 벌인 가장 유명한 전투는 봉호전과 강남에서 육급 대종사 두 명을 단 일격으로 처치한 일이었고 그 외에는 특별한 전과가 없었다.천의방의 다른 강자와 비교했을 때, 이 정도의 전과는 너무나 미미해 보였다.만약 국안부가 보해 전투의 결과를 공개했다면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질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의 안전을 고려해 진서훈 일행은 그 사실을 숨겼다.지금 진서준은 각국 강자들 앞에서 교회의 기사를 단번에 처치했다.이번 결투 이후로 진서준의 명성은 앞으로 더욱 널리 퍼질 것이다.가장 중요한 점은 진서준이 겨우 26살이라는 것이다.실력도 무시무시했지만 이토록 어린 나이는 더 공포스러운 사실이었다.VIP룸안에서 이세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얼음처럼 차가운 황예은이 저 녀석을 따랐구나.”“세 분, 여러분이 힘을 합친다면 저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요?”박서명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박서명은 진서준이 기껏해야 지의방 정도의 실력밖에 없을 거라 여겼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당황하기 시작했다.진서준이 천의방의 강자를 처치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실력을 갖춘 것이다.게다가 진서준은 너무 쉽
하지만 오늘 손원순은 너무나 큰 실수를 저질렀다.진서준이 조금 전 링에 올라와 손원순을 돕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황혼 기사의 창에 맞아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다시 묻는다. 내 실력이 의심스러운 사람 있어?”진서준의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지며 지하 1층에 메아리쳤다.링 아래에서 적막만 흘렀다.천의방의 강자도 처치할 수 있는 사람을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있겠는가?진서준은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몸을 돌려 링에서 내려갔다.“용존님!”손원순이 재빨리 진서준을 따라갔다.“방금 실례가 많았습니다. 용존님께서 부디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손원순은 진서준에게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러자 진서준은 즉시 손원순을 손으로 붙잡고 웃으며 말했다.“의협심이 넘치시는 손 천사님은 우리 모두의 본보기입니다.”그 말에 손원순이 어색하게 웃어넘겼다.“용존님, 과찬입니다. 저는 그저 제 능력 범위내에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용존님, 명주시에 돌아가신 후 시간이 되면 꼭 한 번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손원순이 이 기회를 빌려 진서준을 식사에 초대했다.“좋습니다, 시간이 되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손원순과 같은 선량한 사람과는 당연히 친구가 되어야 했다.진서준이 방으로 돌아가자 허윤진이 신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다가왔다.“진서준, 방금 진짜 멋있었어. 공격 두세 번 만에 그 사람을 처치할 줄은 몰랐어.”“그 해외 사람들 좀 잡아 와.”진서준의 말에 이세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거야?”“당연하지.”잠시 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이 예크스 일행을 끌고 왔다.“너... 너 뭐 하려고 그래?”예크스의 얼굴에는 아까 보였던 거만하고 교만한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두려움이 가득한 기색이 역력했다.예크스의 눈에선 원탁 십이 기사가 신의 사자와도 같은 존재였다.하지만 지금 진서준은 신의 사자를 죽였다.그러니 진서준은 분명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일 것이다.“
예크스와 함께 온 청년들은 충격을 받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예크스의 시신을 그대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진서준은 아무런 자비도 베풀지 않았고 손바닥을 한 번 뒤집는 순간, 또 몇 명이 죽어갔다.“진서준, 너 진짜 큰 문젯거리를 일으킨 거야.”이세아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 남자가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이세아도 인정하지만 그가 일으킨 이 문제는 만만치 않았다.서오런 교회는 올림푸스 신전, 멸용 조직과 대한민국 국안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였다.얼마 전 이세아는 길거리에서 떠도는 소문을 들었는데 혈수가 그 세 대형 조직에 의해 함께 몰살되었다는 소식이었다.그러니 이 세 조직의 실력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내 주변은 항상 문젯거리가 끊이지 않아.”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하자 이세아는 말문이 막혔다.“그래도 더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나쁠 게 없어.”그 후, 예크스 일행의 시신은 이씨 가문 사람들이 와서 정리했고 진서준은 허윤진과 서지은에게 말했다:“너희는 먼저 올라가서 쉬어.”유람선 10층에는 전용 휴식실이 있었고 문을 열자 문 앞에 네 명이 서 있었다.“진서준 씨.”박서명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채 진서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죠?”진서준이 차갑게 물었다.“네, 사실 얘기하고 싶은 게 좀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박서명은 자기 신분까지 낮춰가며 매우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박서명의 태도는 진서준 일행에게 다소 의외였다.이세아의 눈에도 놀라운 표정이 스쳤다.박씨 가문은 이씨 가문보다 실력이 더 강한 가문이었고 박서명은 바로 그 대단한 박씨 가문의 가주였다.대한민국 전역에서도 박서명의 신분은 최고급에 속하는 존재였다.그런 대단한 인물이 진서준에게 이런 겸손한 태도를 보일 이유가 없었다.혹시 방금 진서준이 황혼 기사를 죽인 사실이 박서명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걸까?진서준도 머릿속에서 의문이 넘쳤다.“시간은 괜찮은 것 같네요. 여기 잠시 기다리세요.”진서준
박서명은 본인이 진서준이 찾고 있는 간첩이 아니라는 걸 꼭 증명하고 싶었다.박서명의 뒤에 있던 한 노인이 박서명을 거들었다.“배에 올라온 이후로 박서명 씨는 우리 시야를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도 박서명 씨가 국가를 배반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진서준은 그 노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왜 내가 당신들 말을 믿어야 하죠?”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서준과 박서명 일행은 적대적인 관계였다.몇 마디 말로는 진서준의 신뢰를 얻을 순 없었다.“몇 마디 말로 제 의혹을 벗어내긴 부족하다는 건 인정합니다.”박서명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근데 진서준 씨는 왜 저에게만 시선을 돌리는 건가요? 우리 박씨 가문이 오다 가문과 연관이 있다는 이유 때문인가요?”박서명의 질문에 진서준은 즉시 인정했다.“맞아요.” 진서준이 이 임무를 받았을 때도 어리둥절했지만 박씨 가문 사람들이 오다 가문과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에 박씨 가문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진서준이 사적인 원한으로 박씨 가문을 의심할 이유도 없었고 이렇게 큰 의혹을 박씨 가문에게 돌릴 필요도 없었다.“이제 박씨 가문이 한강에 뛰어들어도 우리 박씨 가문 오명은 씻을 수 없겠군요.” 박서명은 씁쓸하게 웃다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표정이 싹 바뀌었다.“진서준 씨, 최근 며칠 동안 황씨 가문 남매와 계속 함께 있었죠? 그 둘을 의심해 본 적 없으세요?”“의심은 했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죠.”진서준이 박서명의 질문에 대답했다.최근 며칠 동안 황예은은 거친 공격을 미친 듯이 받았다.진서준이 없었으면 황예은이 이미 죽었을 건데 그런 그녀가 적국과 비밀리에 거래하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최소한 진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진서준 씨, 사실 황예은이 가장 의심스럽습니다.”박서명이 진지하게 자기 생각을 털어놨다.“그 이유는 뭔가요?”진서준의 질문에 박서명은 천천히 설명했다.“황예은 아버지 때문이죠. 명주시 사람들은 다 알 겁니다. 물론 진서준 씨도 잘 알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