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수심에 찬 얼굴로 남우영을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은 마치 게이 아들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어쩔 수 없어 보였다.남우영은 당황해서 황급히 설명했다.“엄마, 진짜 아니에요. 나 정말 정상적인 남자고 여자를 좋아해요. 나 남자에게 관심 없다고요.”“근데 왜 여자친구가 없어?”“좋아하는 여자를 못 만났어요.”“그러니까,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거지!”정안이 단호하게 말하자 남우영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 소파에 기대어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정안이 생각하다가 말했다.“아니면 내가 소개팅을 잡을까?”남우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엄마, 나 이제 겨우 스물여섯인데 소개팅이라니. 말이나 돼요?”“스물여섯인 남자가 여자 손도 못 잡아 본 건 말이 돼? 게다가 넌 이렇게 훌륭하고 주변에 많은 여자가 대시할 텐데 여태 모태솔로라니. 분명 문제가 있는 거지.”남서연이 황급히 부추겼다.“맞아요. 작은 엄마 말씀이 맞아요. 오빠는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남우영은 벌떡 일어나 몸을 꼿꼿이 세우고 엄숙하게 말했다.“좋아요. 소개팅 주선해 주세요. 대체 얼마나 좋은 여자를 주선하는지 내가 좀 봐야겠어요.”“분명 예쁘고 대범하고 박식하고 우아하고 재밌는 여자일 거야!”정안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남우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래요. 어디 한번 보고 싶네요.”정안은 그제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 급선무는 동생의 혼사를 해결하고 아들에게 여자친구도 찾아주는 것이었다.앞으로의 나날들이 점점 재미있어지는 것 같았다.밤이 깊었다.남서연은 정안과 남우영에게 하룻밤 묵으라고 권유했지만 정안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갈게. 이따가 건이가 깨어날 테니까 그때 잘 돌봐줘.”남서연은 백건이 술에 취한 줄만 알고 별생각 없이 대꾸했다.그녀는 정안과 남우영을 배웅하고 방으로 돌아갔다.방에 들어가니 침대 위의 남자는 이미 없고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깼네? 술에 취해서 샤워한다고? 만약 안에서 넘어지면 위험한데.’남서연은
새벽에 깨어나니 남서연은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어젯밤, 그녀는 거의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백건이 그녀를 몇 번이나 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단지 그가 미쳤다는 것만 기억했다.깨어보니 옆에서 백건은 아직 편안히 자는 중이었다. 그녀는 안심하고 다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정안이 한 말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평생 서윤아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나?백건처럼 훌륭한 남자에게 누군가 약을 타는 상황이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었다.그녀는 두 사람의 감정이 위태롭다고 느꼈다.혼인신고를 먼저 할 수 있지 않을까?적어도 그렇게 하면 환상을 가진 여자들이 단념할 수 있었다.남서연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잠에 빠졌다.꿈에서 그녀는 백건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끌고 낭만적인 초원을 달리는 것을 보았다.남서연은 흥분하며 그 신부가 자신인 줄 알았다.여자가 고개를 돌리자 유승아의 얼굴이 나타났다.남서연은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그때, 창밖의 햇빛이 찬란하게 비치고 있었고 베란다에서 쏟아져 들어와 매우 쾌적했다.그녀가 옆자리를 보니 백건은 이미 없고 이불은 아직 따뜻했다.그녀는 이불을 감싸고 일어나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그때 욕실 문이 열렸다.방금 샤워하고 나온 백건은 홈웨어를 입고 상쾌한 모습이었다.그는 남서연이 깨어난 것을 보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양손으로 침대를 받치고 몸을 숙여 그녀의 붉어진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힘들지? 좀 더 자.”남서연은 고개를 저었다.“안 잘래요.”“들어가서 목욕할래?”남서연은 몸이 불편한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물 받아 놓을게.”말을 마친 그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남서연은 이불로 몸을 두르고 침대 머리맡에 놓은 핸드폰을 들고 날짜를 봤다.그때 백건이 걸어 나왔다.“불쌍하네. 우리 서연이.”백건이 말하자 남서연은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M국, 변경.서다인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친오빠라는 자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그녀를 2천만 원에 팔아버렸다!이 암담한 사기 센터에는 전화 사기, 인신매매, 장기매매, 구타와 학대가 매일 발생하고 있다. 이곳은 사람을 풀 베듯 함부로 죽이는 곳이다.서다인은 수려한 미모를 지녀 범죄자들에게 강제로 이끌려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그녀는 죽을지언정 필사적으로 반항하여 혹독하게 두들겨 맞아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몸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서다인은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여 절망의 끝자락에 놓였을 때 문득 남편 남하준이 떠올랐다.“제발 저 건드리지 마세요. 우리 남편더러 돈 보내오라고 할게요... 얼마든지 다 드릴 수 있어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그녀는 울먹이며 애원했다. 이건 최후의 몸부림이나 다름없다.금전 갈취는 그들의 업무 중 하나이다.앞장선 김호영이 화색을 띠며 서다인을 두들겨 패는 부하들을 멈춰 세우고 재빨리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네 남편에게 40억 가져오라고 전해! 10원 한 장이라도 모자라기만 해봐. 그땐 여기 있는 우리 애들을 네가 전부 먹여 살려야 할 거야. 몸을 팔아서 손님들 돈을 벌어와야 한다고, 알아들었어?”서다인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겁에 질려 눈동자가 흔들렸다.짝사랑한 지 3년, 혼인 신고한 지 1개월이 지났지만 단 하루도 함께 지내지 않은 그녀의 남편이 진짜 40억을 내놓으며 그녀를 구할까?“알았어요.”서다인은 무기력하게 대답한 후 남하준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건 마지막 동아줄이다. 그녀의 생사가 걸린 마지막 전화 한 통이다.전화가 연결되자 수화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누구세요?”그 순간 서다인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텅 비었다.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 초조하게 말했다.“저는 남하준 씨 아내 서다인이에요. 실례지만 남하준 씨 바꿔줄 수 있나요?”전화기 너머로 여자가 담담하게 말했다.“오빠 지금 낮잠 자고 있어요. 용건
국가의 안위를 위해 침략자를 몰아내며 피로 물든 전쟁을 이어가면서도 두려운 기색은 추호도 없었다.남하준은 중동 내부전쟁에 참가한 군사의 왕이고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며 가장 참혹한 전쟁에서 포위를 뚫은 신과 같은 존재인데 눈앞에 있는 연약한 여자가 그의 아내라니, 이건 당최 말이 안 되는 일이다.김호영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부하를 타일렀다.“걱정들 붙들어 매. 남하준이 어떤 사람이야? 권력이 하늘을 찌르고 단지 이름 석 자만으로도 사람을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는데 그런 사람의 아내를 누가 감히 팔겠어? 내가 알기로 남하준은 아직 미혼이야. 아마 동명이인일 거야. 이년 남편한테 계속 연락해서 40억 갖고 오라고 해!”남자들은 계속 남하준에게 연락했다.서다인은 마음이 재가 되어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절망감에 휩싸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얼마나 지났을까.귀가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콰당!”대지가 흔들릴 정도의 폭격 소리였다.서다인은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떴다.방에서 한창 카드놀이를 하며 서다인의 몸값을 기다리던 남자들이 식겁하여 넋을 놓았다.밖에 있던 부하들도 공포에 휩싸여 큰소리로 외쳤다.“보스, 큰일 났어요. 우리 대문이 폭발해버렸어요.”“폭발?”김호영은 겁에 질렸다.“누구 짓이야?”“그게... 군전 그룹 사람들이에요. 어마어마한 군부대가 거침없이 쳐들어와 우리 센터를 포위해버렸어요.”부하는 상공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전투기 헬리콥터도 두 대 더 있어요...”“필레 전쟁에 참여한 군전 그룹을 말하는 거야? 우린 이젠 뒈졌어!”이때 김호영이 가녀린 체구의 서다인을 잡아당기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윽박질렀다.“네 남편이 정말 군전 그룹 수장 남하준이야?”서다인은 무기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김호영은 순간 미친 듯이 후회가 밀려왔다. 그는 서다인에게 총을 겨눈 채 밖으로 나갔다.사기 센터 밖에는 수십 대의 무장 차량이 이곳을 가지런히 에워쌌다.수백 명의 건장한 무장 병사가 강렬한
김호영은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며 끝까지 협박했다.“그럼 도련님 아내분과 함께 죽을 겁니다.”남하준은 살인에 늘 단호한 법이다. 그 누구에게도 협박당해보지 못한 그였기에 두 눈에 살기가 스쳤다!별안간 일곱 발의 탄알이 폭발하는 소리가 서다인의 고막을 울렸다.그녀는 몸을 움찔거리더니 온몸에 피가 굳은 듯 제자리에 경직되어서 두 눈만 질끈 감고 있었다.잔인한 참살이 이뤄지고 선홍빛 핏물이 창백한 그녀의 얼굴에 튀었다.이 순간 그녀가 남하준의 아내란 신분은 단지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다. 이토록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남하준이 구한 건 그녀가 아니라 사기 센터에 갇힌 수천 명의 피해자였으니 실수로 그녀를 죽여도 전혀 괜찮겠지?!서다인은 한없이 연약한 몸으로 이런 충격을 견디지 못해 비통한 슬픔에 젖은 채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군전 그룹 본사.M국 최대 규모의 무기 생산 기지이자 삼엄한 경계를 이룬 국영 병기 공장.“안돼...”악몽에서 놀라 깬 서다인은 땀에 흠뻑 젖어서 두 눈을 부릅떴다.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의식이 흐트러진 채 사방을 둘러보다가 침대 맡에 서 있는 여자에게 시선이 멈췄다. 의학의 힘을 빌린 정교한 이목구비는 마치 인형 같았고 요염함 속에 은은한 청순함이 돋보였다.여자의 손에 쥔 쟁반에는 온수 한 잔과 전복죽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깼어? 오빠가 먹을 것 좀 가져다주라길래.”백하린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고마워요.”서다인은 친절하게 고마움을 표하고는 나른한 몸을 이끌고 겨우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그녀는 종일 물 한 방울도 안 마셔서 지금 허기지고 온몸에 기운이 쫙 빠졌다.백하린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나더러 네게 음식을 갖다 주라고 하긴 했지. 근데 아쉽게도 네가 대접받을 급은 아니잖아.”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백하린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수중의 음식을 바닥에 내던지고 본인도 잇따라 주저앉았다.물건이 깨지는 요란한 소리가 문밖까지 울려 퍼졌다. 백하린은 울먹이는 목
남하준이 한없이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 순간 뼈가 시릴 정도로 한기가 감돌았다. 남하준은 진중하면서도 냉담한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뜻이지?”서다인은 굳건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봤다.“우리 이혼해요.”그녀는 이 남자를 3년 동안 짝사랑하며 바라는 건 단 하나, 순수한 결혼생활뿐이었다.이젠 이 혼인 관계가 더는 순수하지 않으니 그녀도 굳이 타협하며 눈 감고 살아갈 필요가 없다.남하준은 서늘한 눈빛에 표정이 일그러졌다.뒤에 서 있던 비서실장 류청이 언짢은 말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름, 서다인, 나이 25세, M국 안성시 출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가정폭력 성향이 있고 어머니와 오빠는 도박에 빠져 빚이 산더미입니다.”서다인은 놀란 눈길로 류청을 쳐다봤다.류청은 거리낌 없이 계속 말을 보탰다.“서다인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중퇴하고 인터넷으로 만난 남자에게 사기를 당하여 유흥업소에서 몇 년 동안 아가씨로 몸담아왔습니다. 20살 때 해외에 있는 80세 노인에게 시집갔는데 2년도 안 돼 과부가 되었고 재산은 한 푼 상속받지 못했습니다.”“다인 씨는 기껏해야 초등학교 학력이고 이 몇 년 동안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인간관계가 문란하고 복잡하며 성매매로 두 번 잡히고 성형을 15번 했습니다. 성병 치료 세 번에 알려진 남자친구만 32명입니다. 최대 5명까지 동시에 사귀었고 원나잇 상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3년 전에 M국으로 돌아와 일부러 어르신을 가까이하며 환심을 사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죠. 그러다 결국 재벌가인 남씨 일가에 시집와서 도련님의 아내로 거듭났습니다.”서다인은 자신의 과거를 듣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해서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곤두섰다.화려한 과거사에 그녀도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류청은 서다인의 신상정보와 과거의 흑역사를 적나라하게 캐내며 야유 조로 말했다.“서다인 씨 같은 사람이 도련님의 아내로 사는 건 하늘이 내린 축복이나 다름없는데 대체 무슨 염치로 이혼을 논하는
남하준은 아찔하고도 강렬한 수컷의 기운을 내뿜었다.“감히 날 협박해?”서다인은 그의 압도적인 기세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불안감에 떨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제발 사람 강요하지 말아요.”남하준은 싸늘하고도 한없이 짙은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녀의 얼굴을 담담하게 쳐다봤다.매끄럽고 탱탱한 피부 결과 또렷한 이목구비, 작고 동그란 얼굴은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 귀엽고 앙증맞을 따름이었다.그녀의 예쁘장한 얼굴은 백하린의 어릴 때 모습을 조금 닮아 있었다.남하준은 넋 놓고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눈썹을 살짝 들썩거렸다.“네가 그 여자 어릴 때 모습이랑 비슷해지려고 갖은 수단을 부렸나 봐? 이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겠어. 이래서 할머니가 널 그렇게 좋아하셨구나.”그 여자 어릴 때 모습이라니?남하준이 말한 ‘그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서다인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남하준이 침착하게 대답했다.“알았어, 네 요구 들어줄게.”그는 이 말만 남긴 채 부하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그 순간 서다인은 어안이 벙벙했다.어떤 요구를 들어준다는 말이지?이혼 아니면 부부로서 잘 지내는 거?...밤이 깊어지고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류청이 저녁밥을 방 문 앞까지 가져왔고 서다인은 식사를 마친 후 방 안에서 병법에 관한 서적을 한 권 찾아내 흥미진진하게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피곤이 몰려오자 그제야 씻으러 들어갔다.욕실에서 30분을 씻은 후 갈아입을 옷이 없어 몸에 걸쳤던 때 묻은 옷을 깨끗이 빨아서 욕실 창문 밖에 내걸어놓고는 샤워가운을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별안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남하준이 막 상의를 벗고 튼실한 몸매를 드러내며 버젓이 방에 나타난 것이다.건강한 피부색과 탄탄한 근육, 군살 하나 없는 완벽한 몸매에 간간이 옛 상처가 보여 남자의 매력이 더 물씬 풍겼다. 말 그대로 상남자였다.남하준이 상의 탈의한 채로 화끈한 몸매를 드러내며 그
남하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정색하며 물었다.“이 남하준의 아내가 바닥에서 잔다고? 지금 누굴 능멸하는 거야?”막강한 남성호르몬과 아찔함 속에 스친 무언의 압박감에 서다인은 곧 질식할 것만 같았다.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잔뜩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그저... 하준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우리가 함께... 함께 자는 게 마땅치 못하다고 생각했어요.”남하준은 눈썹을 치키며 입꼬리를 말아 올려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난 너한테 아무 감정 없어. 네가 발가벗고 내 앞에서 춤춘다 해도 쳐다보지 않을 거고 터치할 일은 더더욱 없어.”서다인은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고 가슴 깊숙이 있는 가장 연약한 곳을 찔린 듯 숨이 턱턱 막혔다.반박하고 싶었지만 목이 불에 타듯 따가웠고 입만 열면 이 서러운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될까 봐 두려웠다.그녀의 맑고 영롱한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서다인은 결국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침묵했다.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수정처럼 맑은 눈물이 고인 순간 남하준은 무언가에 홀린 듯 잠시 넋을 놓았다.이어서 그는 옆자리에 등지고 누워 차갑게 명령했다.“불 끄고 이만 자.”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방 안의 조명이 어두워졌다.서다인은 칠흑같이 어두운 방 안을 쳐다보며 마음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그녀는 자세를 다잡고 편하게 누웠다.커다란 더블침대에 두 남녀는 각자 침대 양옆에 눕고 중간에 아주 넓은 거리를 두었다.이날 밤 서다인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새벽에 너무 피곤한 나머지 끝내 참지 못하고 스르륵 잠들었다.다음 날 이른 아침, 그녀는 벨 소리에 놀라서 깼다.비스듬히 눈을 뜨니 남하준이 멋진 검은색 군복 세트를 차려입고 위풍당당한 기운이 저절로 차 넘쳤다.이런 게 아마도 한 사람을 짝사랑하는 자의 마음가짐이겠지. 그가 나타난 곳마다 눈부신 아우라가 풍기는 그런 느낌.남하준이 전화를 받고 목소리를 낮췄다.“좋은 아침, 하린아, 무슨 일이야?”서다인은 백하린이 뭐라 말하는지 모르지만 남하
새벽에 깨어나니 남서연은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어젯밤, 그녀는 거의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백건이 그녀를 몇 번이나 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단지 그가 미쳤다는 것만 기억했다.깨어보니 옆에서 백건은 아직 편안히 자는 중이었다. 그녀는 안심하고 다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정안이 한 말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평생 서윤아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나?백건처럼 훌륭한 남자에게 누군가 약을 타는 상황이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었다.그녀는 두 사람의 감정이 위태롭다고 느꼈다.혼인신고를 먼저 할 수 있지 않을까?적어도 그렇게 하면 환상을 가진 여자들이 단념할 수 있었다.남서연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잠에 빠졌다.꿈에서 그녀는 백건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끌고 낭만적인 초원을 달리는 것을 보았다.남서연은 흥분하며 그 신부가 자신인 줄 알았다.여자가 고개를 돌리자 유승아의 얼굴이 나타났다.남서연은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그때, 창밖의 햇빛이 찬란하게 비치고 있었고 베란다에서 쏟아져 들어와 매우 쾌적했다.그녀가 옆자리를 보니 백건은 이미 없고 이불은 아직 따뜻했다.그녀는 이불을 감싸고 일어나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그때 욕실 문이 열렸다.방금 샤워하고 나온 백건은 홈웨어를 입고 상쾌한 모습이었다.그는 남서연이 깨어난 것을 보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양손으로 침대를 받치고 몸을 숙여 그녀의 붉어진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힘들지? 좀 더 자.”남서연은 고개를 저었다.“안 잘래요.”“들어가서 목욕할래?”남서연은 몸이 불편한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물 받아 놓을게.”말을 마친 그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남서연은 이불로 몸을 두르고 침대 머리맡에 놓은 핸드폰을 들고 날짜를 봤다.그때 백건이 걸어 나왔다.“불쌍하네. 우리 서연이.”백건이 말하자 남서연은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정안은 수심에 찬 얼굴로 남우영을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은 마치 게이 아들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어쩔 수 없어 보였다.남우영은 당황해서 황급히 설명했다.“엄마, 진짜 아니에요. 나 정말 정상적인 남자고 여자를 좋아해요. 나 남자에게 관심 없다고요.”“근데 왜 여자친구가 없어?”“좋아하는 여자를 못 만났어요.”“그러니까,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거지!”정안이 단호하게 말하자 남우영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 소파에 기대어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정안이 생각하다가 말했다.“아니면 내가 소개팅을 잡을까?”남우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엄마, 나 이제 겨우 스물여섯인데 소개팅이라니. 말이나 돼요?”“스물여섯인 남자가 여자 손도 못 잡아 본 건 말이 돼? 게다가 넌 이렇게 훌륭하고 주변에 많은 여자가 대시할 텐데 여태 모태솔로라니. 분명 문제가 있는 거지.”남서연이 황급히 부추겼다.“맞아요. 작은 엄마 말씀이 맞아요. 오빠는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남우영은 벌떡 일어나 몸을 꼿꼿이 세우고 엄숙하게 말했다.“좋아요. 소개팅 주선해 주세요. 대체 얼마나 좋은 여자를 주선하는지 내가 좀 봐야겠어요.”“분명 예쁘고 대범하고 박식하고 우아하고 재밌는 여자일 거야!”정안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남우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래요. 어디 한번 보고 싶네요.”정안은 그제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 급선무는 동생의 혼사를 해결하고 아들에게 여자친구도 찾아주는 것이었다.앞으로의 나날들이 점점 재미있어지는 것 같았다.밤이 깊었다.남서연은 정안과 남우영에게 하룻밤 묵으라고 권유했지만 정안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갈게. 이따가 건이가 깨어날 테니까 그때 잘 돌봐줘.”남서연은 백건이 술에 취한 줄만 알고 별생각 없이 대꾸했다.그녀는 정안과 남우영을 배웅하고 방으로 돌아갔다.방에 들어가니 침대 위의 남자는 이미 없고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깼네? 술에 취해서 샤워한다고? 만약 안에서 넘어지면 위험한데.’남서연은
남우영은 눈을 반짝이며 설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요?”“일단 네가 여자친구를 사귀어야 해.”정안이 엷게 웃으며 말하자 남우영은 멍하더니 잠시 후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엄마, 그냥 내가 여자친구를 찾기를 원하는 거잖아요. 왜 삼촌과 서연이 핑계를 대요?”정안이 불쾌해하며 말했다.“멀쩡한 남자가 스물여섯 살이면 연애를 하는 것도 정상 아니야? 넌 전혀 흥미가 없는 거야? 이 세상에 네 눈에 들 여자가 한 명도 없냐고?”“예쁜 여자는 많지만 다 재미가 없어요. 재밌는 영혼을 가진 여자를 아직 한 명도 만나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도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핑계는!”정안은 코웃음을 쳤다.“허허!”남우영은 어이가 없었다.30분 후.차량이 별장 앞마당으로 들어섰다.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남서연은 정안과 남우영을 보고 어리둥절했다.“두 사람이 여기 어쩐 일이에요?”남우영은 뒷좌석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곤드레만드레 취한 백건을 부축해냈다.그러자 남서연은 급히 다가가 부축하며 물었다.“오빠가 왜 이렇게 많이 취했어요?”“취한 게 아니라...”정안이 급히 말렸다.“우영아...”남우영의 소리가 뚝 그쳤다. 그는 즉시 깨닫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남서연과 함께 백건을 방으로 부축했다.백건을 눕힌 후 남우영과 남서연은 방을 나섰다. 거실로 내려와 정안과 함께 얘기를 나눴다. 도우미가 차를 가져왔다.“작은 엄마 언제 돌아오셨어요?”남서연이 묻자 정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우영이 외할머니가 다치셔서 보러 왔어.”“맞아요. 심각하게 다치셔서 지금 걷지도 못하세요.”남서연이 걱정하며 말했다.정안은 남서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연아, 우리 엄마 동의 구할 필요 없이 건이와 혼인신고부터 해. 엄마가 일단 결정한 일은 쉽게 바뀌지 않을 거야.”“평생 저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으시면 저와 오빠의 결혼생활도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남서연이 걱정스레 말
유승아는 고모가 두 대 얻어맞자 깜짝 놀라 가만히 있지 못하고 황급히 문을 열고 내렸다.“왜 사람을 때려요?”유승아가 불쾌해하며 따져 물었다.정안이 남우영에게 눈치를 주자 그는 곧장 다가가 차 문을 당겼다.당황한 유승아가 제지하려 했지만 뒷좌석에 누워있는 백건을 남우영에게 들키고 말았다.“너....”유승아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남우영이 백건을 부축해내는 것을 허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미는 분노를 꾹 참으며 이를 악물고 또박또박 말했다.“백완자, 네가 지금 누구를 때렸는지 알아?”“알아. 범죄자를 때렸지.”정안이 여유롭게 말하자 유미가 버럭 화를 냈다.“건이가 술에 취해서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을 뿐이야!”정안이 뒤에 있는 호텔을 가리키며 따졌다.“여기가 건이 집이야?”유미는 화를 꾹 참으며 말문이 막혔다.유승아는 남우영이 백건을 그들의 차에 데려다주고, 상황이 아무런 여지도 없이 흘러가자 황급히 앞으로 다가가 설명했다.“고모는 정말 건이를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을 뿐인데 마침 이 호텔을 지나친 거예요. 고모가 볼일만 보고 가려고 했어요.”정안은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깔보는 시선으로 유승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네 아빠와 내 남편은 가장 좋은 친구야. 네 아빠는 공명정대하고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이야. 넌 왜 아빠에게 좋은 건 못 배우고 하필 네 고모의 더러운 수법만 배운 거야? 승아야. 참 실망이다.”유승아는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며 몸 둘 바를 몰랐다.정안은 또 유미를 바라보며 경고 조로 말했다.“다시 한번 이런 일이 있으면 절대 뺨 두 대로 끝나지 않아.”말을 마친 정안은 뒤돌아 차에 올랐고 남우영은 시동을 걸고 훌쩍 떠났다.남은 두 사람은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하지만 정안의 말 때문에 유승아는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의 자신이 낯설 정도로 추하게 느껴졌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이 차를 몰며 물었다.“엄마, 근데 어떻게 저 두 사람의 계획을 알고 또 이렇게 빨리 장소를
유미는 백건의 곁으로 돌아와 남편과 백건에게 한 잔씩 건넸다.백건은 리셉션이 있어서 술과 접대를 피할 수 없었다. 두 시간 후, 리셉션이 끝났지만 백건은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하현우가 직접 들어가 찾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하현우가 급히 백건에게 전화를 걸어도 아무도 받지 않았다.제대로 당황한 그는 급히 남우영에게 전화를 걸었다....30분 후.유승아는 전화를 받고 급히 집을 나섰다.그녀는 길가에서 유미의 차에 올랐고 뒷좌석에서 의식을 잃은 백건을 보고 어리둥절해서 물었다.“고모,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유미는 시동을 걸고 훌쩍 떠나갔고 차를 몰며 말했다.“사람은 내가 데려왔으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그게 무슨 말이에요?”유미는 그녀를 째려보면서 말했다.“바보야. 내가 지금 두 사람을 호텔로 데려다주겠다고. 네가 잘 돌봐주다가 건이가 반응을 보이면 잠자리를 가지면 돼. 내일 아침에 내가 경찰 단속을 보낼 거고 기자도 함께 보낼 거야. 그럼 넌 건이 여자친구로서 호텔에서 잠자리를 가진 거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거야.”유승아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고모의 계획에 감탄했다.“세상에! 고모 정말 대단하네요!”유미는 득의양양하게 웃었다.“그때가 되면 건이는 어쩔 수 없이 너와 결혼할 거야.”“만약 건이가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고집하면 기업은 분명 영향을 받을 거고 건이 부모님은 절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건이를 협박해서라도 너와 결혼시킬 거야.”“물론 보험도 하나 있어. 한 달 후에 네가 임신했든 안 했든 난 네가 임신했다고 대외적으로 말할 거야.”유승아는 들으면 들을수록 설레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고모 정말 짱인데요?”유미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차량은 또 다른 5성급 호텔의 대문 밖에 도착했다.유미가 시동을 끄자마자 유리를 사이에 두고 남우영이 보였다.그녀와 유승아 모두 어리둥절했다.남우영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꼿꼿한 자세로 차량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남하준과 정안의 장점을
진우석이 차갑게 웃었다.“대체 무슨 뜻이야? 왜 그 자식을 데리고 와?”“내 약혼자니까!”“허! 정말 재밌네.”남서연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할 말 다 끝났지? 나 바쁘니까 다음에 다시 약속 잡아.”다음에 약속을 잡자는 건 기약이 없는 말로 대충 넘어가려는 심산이었다.남서연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니 백건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그녀는 다가가 손을 뻗어 그가 정리하고 있는 넥타이를 받아 들고 그의 섹시한 목젖을 올려다보며 서투른 손놀림으로 천천히 매어 주었다.백건은 흠칫 놀라더니 뜨거운 눈빛으로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급한 일 있대?”남서연은 얼굴이 뜨거워졌고 가볍게 말했다.“저녁에 같이 식사하재요.”백건의 눈동자가 확 어두워졌다.남서연은 급변한 그의 안색에 싱긋 웃으며 말을 보탰다.“내가 거절했어요.”남자의 얼굴빛이 순간 맑아지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그녀의 머리를 잡아 가볍게 키스하고는 속삭였다.“저녁에 정계의 거물들이 초대한 연회가 있어. 최대한 빨리 돌아올 테니까 집에서 나 기다려. 진우석과 단둘이 데이트하러 가지 말고.”데이트라는 세 글자에 남서연은 조금 난처했다.알고 보니, 백건의 마음속에 그녀와 진우석은 이런 애매한 관계였다.남서연은 발끝을 세우고 남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기다릴게요.”백건은 몸이 살짝 굳어졌다. 그녀가 수줍은 모습으로 그에게 먼저 키스하니 심장이 쫄깃해졌다.그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큰 거울로 밀어내어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남서연은 자신의 가벼운 뽀뽀가 역습을 당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녀는 거울에 눌려 뜨거운 키스를 받아냈다.이 긴 키스는 남서연의 몇 번의 발버둥으로 겨우 끝이 났다.이대로 키스하다가는 그는 출근하지 않고 곧장 그녀를 끌고 침대로 갈 것이다....저녁.5성급 호텔의 어느 연회장에서 호화로운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현장에는 대부분 정계의 거물들, 고위 관리들, 그리고 안성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른 아침,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백건은 잠에서 깨어나 품에 안겨 잠든 여자를 쳐다보더니 급히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음소거를 누르고 발신 번호를 흘끗 보았다.진우석, 그는 진우석이라는 이름을 보자 갑자기 얼굴이 굳어져서 바로 끊어버렸다.핸드폰을 내려놓고 남서연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녀를 꼭 껴안고 계속 잤다.몇 분 후, 벨이 또다시 울렸다.극도로 짜증이 난 백건은 품에 안긴 남서연을 살짝 밀어내고 핸드폰을 들고 베란다 밖으로 나가 귀에 댔다.휴대폰 너머 진우석의 목소리가 아주 부드러웠다.“서연아, 잘 잤어? 오늘...”백건이 차가운 목소리로 끊었다.“서연이 아직 자고 있어. 무슨 일이야?”진우석은 몇 초 동안 침묵하더니 태도가 180도 바뀌어 극도로 불쾌하게 입을 열었다.“당신이 왜 서연이 전화를 받아?”“나도 받고 싶지 않아. 아까 한 번 끊었는데 계속 전화하니 급한 일인가 보다 했지. 아니면 이렇게 눈치 없진 않겠지?”“서연이 바꿔. 내가 할 말이 있어.”“서연이 지금 자고 있다고 말했잖아?”휴대전화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 사이에 은은한 불꽃이 튕기고 있었다.진우석은 이를 깨물며 경고했다.“두 사람이 약혼하든 말든 앞으로 서연이 사생활은 존중하길 바랄게. 다시는 서연이 전화 받지 마.”“우리 사이에 사생활은 없어.”백건이 일부러 이렇게 말하자 진우석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백건. 말 다 했어?”백건은 느릿느릿 경고했다.“앞으로 내 약혼녀와 거리를 뒀으면 좋겠어. 평범한 친구가 가져야 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더 이상 서연이에게 그 어떤 환상도 갖지 마.”말을 마친 백건은 전화를 끊었다.그는 휴대전화를 쥐고 베란다 밖에 서서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이미 깨어난 남서연은 침대에 앉아 게슴츠레한 눈동자를 비비며 그녀의 휴대전화를 찾고 있었다.“휴대폰을 분명 침대 옆 캐비닛에 뒀는데?”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가서 건네주며 말했다.“진우석이 전화를 두 번이나 걸어왔어. 네가
유미의 안색이 더욱 나빠져 이를 악물고 말했다.“백완자, 말조심해.”정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내가 뭐 잘못 말했나?”유미가 노기등등해서 말했다.“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야. 나와 하준이가 만났을 때 당신들은 이미 이혼한 상태였고 네가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거야.”“상사와 부하직원 관계도 만났다고 할 수 있는 거야? 그 병은 여전하네.”유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 주먹을 쥐고 가늘게 떨었다. 어금니가 깨질 정도로 꽉 깨물고 꾹 참으며 말했다.“백건과 승아는 오랫동안 만난 연인 사이고 게다가 서로 첫사랑이야. 결혼 이야기까지 나온 상태에서 남서연이 갑자기 끼어들어 남의 약혼자를 뺏어간 거잖아?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정안은 더 이상 어이가 없어 냉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이봐요. 정말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요점을 일부러 피해 가는 거예요?”“그게 무슨 말이야?”“승아는 처음부터 건이와 연인 사이인 척 연기해서 우리 엄마를 속인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근데 승아는 왜 갑자기 진짜 건이 여자친구 행세를 하는 거지?”유미는 싱긋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눈 밑의 사악한 분노는 이미 파도가 넘실거렸다.유미는 자신이 남하준을 뺏지 못했으니 지금 조카딸이 백건을 뺏어오면 자신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또박또박 말했다.“세상만사에는 변수가 있기 마련이야. 백건이 마지막에 누구와 결혼할지 아직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말을 마친 유미는 정안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정안은 엄숙해진 태도로 그녀를 불렀다.“유미!”유미가 발걸음을 멈추자 정안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경고했다.“당신 남편은 지금 그 자리에 참 어렵게 올라왔지? 사람은 높은 곳에 오래 서 있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잊기 쉬워져. 자기 분수를 지키는 게 좋을 거야. 당신 집착 때문에 주변의 가장 친한 사람을 망치고 당신 자신을 망치지 마.”유미는 귀담아듣지 않고 시큰둥하게 콧방귀를 뀌며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정안은
남서연은 대답하지 않았고 방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백건은 불을 끄고 남서연의 몸을 더 꼭 끌어안고 참다못해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하루라도 결혼하지 않으면 그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익일 점심.정안은 군전 그룹 헬리콥터를 타고 안성으로 돌아왔다.그녀는 부랴부랴 병원에 와서 병든 어머니를 보았다.서윤아는 정안을 보자 조금 언짢아하며 말했다.“이 정도 부상으로 일을 그만두고 올 필요 없어.”정안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어머니가 하반신불수가 되었는데도 이런 말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오랫동안 병원에서 서윤아와 함께 있었다.저녁 식사 시간, 유미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다시 만난 두 사람은 눈에 쌍심지를 켰다.“백완자?”유미는 흠칫 놀랐고 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일어섰다.“오랜만이네요. 유미 씨.”유미는 피식 웃으며 잘 관리된 정안의 외모를 보았다. 쉰 살이 다 되어 가는 정안이 여전히 소녀스러움을 물씬 풍기자 그녀는 마음이 언짢았지만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오랜만이네요.”정안은 유미의 손에 든 음식을 보며 말했다.“우리 집에는 영양사와 요리사를 고용하고 있어요. 요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앞으로 이렇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유미는 조금 난처해졌다.보온상자를 들고 있으며 놓아야 할지 도로 가져가야 할지 망설였다.서윤아가 다급히 말했다.“유미가 만든 음식 아주 맛있어. 내가 좋아해. 어서 갖고 와.”서윤아의 말을 들은 유미는 활짝 웃으며 급히 걸어갔다. 은근슬쩍 정안을 밀어내고 도시락 뚜껑을 열고 음식을 꺼냈다.“오늘은 어르신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소고기 볶음을 만들었어요.”정안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옆으로 밀려났다.서윤아가 버튼을 누르자 침대 머리맡이 천천히 올라갔다. 그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대단하다니까. 유미는 권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어질고 요리 솜씨도 좋고. 정말 집 안이나 집 밖에서 모두 훌륭해. 승아가 너처럼 유능한 것 같아.”정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