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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3화

Author: 무솔레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31 19:00:00
초가을 아침은 좀 쌀쌀했다.

하늘이 희끗희끗해지자 베란다의 거즈 커튼이 은은한 빛을 비추었다.

커다란 침대에 누운 상의를 벗은 남자가 얇은 이불을 허리까지 덮고 있었다. 완벽한 근육질 몸매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저세상 사람 같았다.

찬 바람이 불어오자 거즈 커튼이 천천히 펄럭였다.

서늘함을 느낀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옆을 만졌다.

문득 그는 눈을 뜨고 텅 빈 옆자리를 바라보며 순간 마음이 가라앉았다.

당장 일어나 침대 밑에 있는 옷을 주워 재빨리 입었다.

그는 긴장한 기색으로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다급히 외쳤다.

“서연아!”

화장실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발코니, 거실, 주방, 서재를 뒤지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는 전화를 걸고 무거운 호흡을 하며 이마를 짚고 침대 위의 검붉은 혈흔을 응시했다. 가슴은 마치 돌에 짓눌린 듯 숨이 막히고 답답한 고통이 느껴졌다.

“지금 거신 전화는 전원이 꺼져 있으니...”

그는 쓸쓸히 침대에 걸터앉아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였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온몸을 뒤덮었다.

그는 다시 번호를 눌렀다.

휴대전화 저쪽에서 육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남서연은 어딨죠?”

“아침에 서연 씨가 이쪽 일이 다 끝났냐고 제게 와서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끝났다고 하니 돌아갔어요.”

“어디로 돌아갔죠?”

“M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언제 귀국해도 된다고 허락했죠?”

노기를 띤 말투에 육나리는 바짝 긴장했다.

“저도 서연 씨에게 대표님 동의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고 했지만 제 말을 듣지 않고...”

그는 더 이상 설명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고 휴대전화를 휙 집어 던지고는 뒤로 넘어졌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우울한 기분이 점점 퍼지고 있었다.

커튼이 천천히 나부끼고 방은 조용했다.

오직 그의 고통스러운 호흡만이 남아 있었고 굳어버린 심장은 여전히 힘겹게 뛰고 있었다.

남자는 침대에 가로누워 눈을 감은 채 우울하고 괴로워했다. 그는 힘없이 손을 들어 눈을 덮었다.

‘남서연, 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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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베이터 문은 디자인팀 사무실 층에서 멈추었다.문이 열리는 순간 남우영이 말했다.“서연아 도착했어.”남서연은 바로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마주 보며 남우영을 향해 미소 짓고 손짓했지만 부드러운 시선은 저도 모르게 백건에게 떨어졌다백건은 그윽한 눈빛으로 줄곧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두 눈이 서로 마주치자 서로 회피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닫히면서 두 사람의 시야가 차단되었다.남서연은 가볍게 심장을 가리고 왠지 모를 긴장과 설렘을 느끼며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이제 백건을 당당하게 볼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남몰래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남의 남자친구를 훔치는 죄책감도 없게 되었다.다만 아직 백건이 솔로인지 100% 확실하지 않았다. 유승아와 사귀지 않는다면 다른 여자친구가 있는 건 아닐까?‘일단 신경 쓰지 말자. 어쨌든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잖아.’남서연은 즐겁게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싱글벙글 웃으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디자인 팀 사무실로 들어섰다.디자인 팀의 업무는 남서연에게 매우 충실하고 성취감이 있었다.그녀는 패션디자인을 매우 좋아해서 한번 일에 몰두하면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겨울 신제품 디자인 초안을 선별하는 중인데 남서연이 제출한 몇몇 제품들이 탈락되었지만 그녀는 결코 낙담하지 않았다.여다혜는 초조한 나머지 머리를 싸안고 책상에 머리를 쿡쿡 박았다.초조해하는 여다혜를 본 남서연은 사무용 의자를 끌고 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여다혜는 일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고 슬퍼하며 말했다.“서연아, 내 디자인 모두 떨어졌어.”남서연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내 것도 마찬가지야.”“내가 걱정을 안 하게 생겼어? 계속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번 구조조정에서 감원대상이 될 거야.”남서연은 경악했다.“또 감원해?”여다혜는 고개를 들고 슬픈 얼굴, 불안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서연아, 너 그거 알아? 새로 부임한 대표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원래 대표보다 훨씬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891화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남서연은 황급히 시선을 떼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옷자락을 살짝 꼬며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백건은 그녀의 예쁜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쉬운 듯 시선을 돌렸다.잠시 후 도우미가 저녁 식사가 이미 준비되었다고 말하자 모두 저녁 식사하러 갔다.남서연은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밥을 먹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백건은 정말 그녀의 가족이 그의 결혼 예물을 예약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특별히 설명하러 온 것이 맞을까 생각했다.‘그 말들이 전부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승아 언니는 왜 나 오해하게 했지? 아니면 연기가 아니라 진심인 걸까?’남서연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팠고 난무하는 추측을 떨쳐버리고 조용히 잠을 잤다.이튿날 아침.단꿈에서 깨어난 그녀는 기분이 꽤 좋았다.갑자기 백건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남서연 너를 원해.”갑자기 이 말이 생각난 그녀는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멍하니 있었다.그때 백건이 그녀를 원한다고 했던 말은 그녀를 내연녀로 삼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남서연은 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깨끗이 씻고 예쁜 치마로 갈아입은 후 가방을 메고 출근했다.오늘도 남우영이 그녀의 출근길을 책임졌다.마침 가는 길이라는 이유였다.남우영도 ND에 다니고 있고 고위직에 있지만 출근 카드를 찍어야 했다.차 안에서 남우영이 운전을 하면서 말했다.“우리 엄마가 너 잘 지켜보고 있으라고 하셨어.”“왜 갑자기 날 지켜보라는 거예요?”“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널 잘 보라고 했어.”남서연은 싱긋 웃으며 말이 없었다.“그리고 승아 누나를 조심하라고 했어.”남서연이 경악해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작은 엄마가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응.”남우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서연이 웃으며 물었다.“그러니까 승아 언니가 대체 뭘 했기에 오빠더러 조심하라고 한 거예요?”“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도 계속 승아 누나를 별로 안 좋아했어. 가식적이잖아. 딱 봐도 여우야.”남우영이 느릿느릿 말하자 남서연은 피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890화

    남서연은 질문을 듣자 긴장한 손에 땀이 났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백건을 감히 보지도 못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백건은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고 몇 초간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사실 승아는 제 여자친구가 아니에요.”“뭐?”다들 어리둥절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남서연도 경악하여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백건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반응이 너무 커서 백건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남서연의 반응이 너무 귀여웠지만 꾹 참았다.그때 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백건은 남태준을 바라보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전에 엄마가 저더러 여자친구를 사귀라고 강요하셨거든요. 그래서 급한 마음에 가장 친한 친구를 찾아 연인인 척 연기했어요. 그렇게 연기하다 보니 다들 우리가 연인인 줄 알더라고요.”“근데 지금은 왜 이 사실을 밝히는 거야?”“엄마가 이미 아셨거든요.”“어쩐지.”남서연은 어리둥절해져서 입을 살짝 벌리고 의아하면서도 놀라웠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늘 가슴속에 품고 있던 죄책감을 덜어내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알고 보니, 그와 유승아는 연인이 아니었다.그럼 그녀가 백건과 잤던 일은 도덕적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다.그럼 그녀가 짝사랑하는 남자도 유부남이 아니라는 뜻이다.“삼촌...”남우영이 들어오자 백건이 고개를 들어 보았다.그는 환하게 웃으며 백건의 곁에 앉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 외할머니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라고요. 난 심지어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예요. 불쌍한 우리 삼촌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 손아귀에서 자랐으니.”허윤미가 불쾌하게 노려보며 타일렀다.“우영아, 그게 무슨 말 버릇이니?”남우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개탄했다.“전부 사실이에요. 아빠가 그러는데 엄마는 어렸을 때 동년이 없었대요. 줄곧 공부만 했대요. 다행히 엄마는 지능이 높아서 너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과학자가 되었지만 우리 삼촌은 좀 비참하죠. 삼촌...”남우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889화

    차량은 남씨 본가로 들어섰다.남우영은 가서 차를 세우고 남서연이 먼저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현관을 지나 털 슬리퍼를 갈아 신었고 도우미가 다가와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아가씨. 집에 손님이 오셨어요.”“아. 감사합니다.”남서연은 도우미에게 가방을 건네주고 손님이 누구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들어갔다.그녀는 먼저 남창민과 서윤아, 그리고 그녀의 엄마 아빠와 두 큰아버지를 먼저 보았다.“저 돌아왔어요.”거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 쪽을 쳐다보았다.곧 손님도 얼굴을 돌렸다.남서연은 발걸음을 뚝 멈추더니 얼굴의 웃음이 순간 굳어진 채 백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손님이 백건일 줄은 몰랐다.남씨 가문은 대가족으로, 남서연의 부모님은 단풍나무 숲에 살고, 다섯째 내외는 금원에 살고, 셋째 내외도 그들이 거처가 있었다. 몇몇 사촌 오빠들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모두 혼자 밖에서 살았다.오직 남서연만이 시끌벅적한 집안의 분위기를 좋아해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다.“서연이 왔어?”“서연이 얼른 와서 앉아.”“서연아 누가 왔는지 봐봐. 와서 인사해.”남서연은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고 괜히 긴장한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서 남자의 눈을 마주쳤다.백건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남서연은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고민했다. 괜히 긴장되고 마음이 편치 않았고 무엇보다 어색했다.백건이라고 하면 가족들이 기분 나쁠 것 같고 삼촌이라고 부르면 백건이 싫어했다.남서연은 생각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지우가 불쾌하게 미간을 찌푸렸다.“서연아 왜 삼촌이라고 안 불러?”남서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지우 옆에 앉으며 억울하게 말했다.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거 싫어해요.”그러자 모두가 어리둥절해졌다.백건이 여유 있게 입을 열었다.“맞아요. 제 뜻이에요. 서연이 탓 아니에요.”지우와 남태준이 서로 마주 보며 눈빛을 주고받았다.남창민이 물었다.“그럼 뭐라고 불러야 해?”“그냥 백건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888화

    그녀와 남자를 빼앗기에 남서연은 너무 여렸다.백건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기척이 커서 정안과 남하준이 방에서 나왔는데 마침 유승아를 보았다.유승아는 두 사람을 보자 점잖고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아저씨 아주머니, 안녕하세요.”“승아?”정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아빠가 딸기를 따서 갖다 드리라고 해서요.”정안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고마워.”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백건이 시무룩해서 걸어와 소파에 앉더니 쓸쓸히 눈을 감고 소파 등에 기댔다.그는 피곤해 보였다.이런 피곤함은 분명 몸의 피곤이 아니었다.“서연이는?”정안이 또 물었다.“서연이는 일이 있다고 먼저 갔어요.”정안은 상황을 눈치채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조카가 정상적으로 집에 돌아갔다면 분명 그들에게 인사하고 갔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절대 아무 말 없이 홀연히 가지 않았을 것이다.정안의 말투가 약간 차가워졌다.“편히 놀아.”말을 마친 그녀는 남하준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유승아는 승리의 감격을 느끼며 여전히 기뻐하고 있었다.그녀는 백건을 위로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러나 그녀가 1층으로 내려오자마자 백건은 옆에 있던 외투를 휙 걷어 올리고 성큼성큼 금원을 떠났다.“건아.”유승아가 긴장한 얼굴로 쫓아갔지만 백건은 차를 몰고 훌쩍 떠났다.유승아는 따라잡지도 못하고 몇 걸음 뛰더니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그다음 날들은 평범했고 남서연은 여전히 행복하게 지냈다.결국,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이 많았으니 남서연은 우울한 여자가 아니었다.그녀는 최대한 자신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었다. 가끔 백건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아프고 꿈도 꾸지만 그를 사랑한 것을 후회하거나 짝사랑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여다혜는 회사에서 늘 그녀에게 물었다.“우리 오빠 어때? 두 사람 가능성 없어?”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집안의 몇몇 오빠들이 그녀가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할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887화

    “그 남자 싫어?”“언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에요.”유승아는 웃으며 말이 없었다.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자 유승아는 딸기를 도우미에게 건네고 남서연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남서연은 바르고 단정하게 앉았지만 유승아는 집주인 같은 편안함을 느끼며 여유롭게 말했다.“우리 아빠와 너희 작은 아빠는 아주 좋은 친구여서 난 어릴 때부터 이 집에 자주 놀러 왔었어.”“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는 일 년 내내 거의 집에 없는데 어떻게 놀러 왔어요?”남서연이 의혹스러워 묻자 유승아가 자랑스럽게 말했다.“건이가 데리고 왔지. 부모님의 통제를 못 이겨 답답하고 힘들 때 며칠씩 여기 숨어지냈으니까.”그러더니 그녀는 위층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저 방이 우리 둘만의 아지트였어.”남서연이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보았다.방을 아지트로 표현하다니. 성인이라면 곧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뒤숭숭하고 쓰라리고 괴로워하면서도 덤덤한 척 말했다.“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았네요.”유승아가 입구를 돌아보니 백건이 들어온 것을 보고 다급히 말했다.“너와 진우석도 그런 사이 아니야? 진우석의 아빠가 네 아빠 전우이자 동료잖아. 너희 둘도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서 사이가 좋잖아?”남서연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유승아가 또 입을 열었다.“진우석도 너 좋아해.”남서연은 멍해졌다.‘이건 무슨 말이지?’남서연은 유승아 말의 논리와 뜻을 생각하고 있었다.‘왜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지? 왜 진우석도 라고 했을까?’그녀는 백건이 그녀의 뒤에서 어둡고 냉랭한 얼굴로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그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더니 위층으로 올라가서 샤워만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했다.그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발소리를 들은 남서연은 그제야 그가 돌아온 것을 발견했다.도우미가 깨끗이 씻은 딸기를 가지고 와서 탁자 위에 놓았다.유승아는 큰 딸기를 들어 남서연의 손에 쥐여주었다.“서연아. 먹어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886화

    남서연은 보기 힘든 남자의 웃음을 바라보더니 절로 멍해졌다.그녀는 지금까지 백건이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웃는 그의 모습이 이렇게 예쁠 줄이야. 그저 옅은 미소를 지었을 뿐인데 보는 이를 매혹시키는 매력이 있었다.그는 너무 차가워 보여서 많이 웃어야 했다.정신을 차린 남서연은 남자의 따가운 시선을 마주치고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쪼그리고 앉아 묘목을 가져갔다.“우리 시작하죠. 어디부터 심어요?”남서연이 묻자 백건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너 하고 싶은 대로 해.”그저 평범한 말이었지만 남서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남서연은 애써 담담한 척 자신의 불안과 긴장을 숨기고 정원을 계획하기 시작했다.그녀가 계획을 말하자 백건이 열심히 들었다.2층 베란다에서 정안은 몰래 그들을 관찰하며 방긋 웃었다.남하준이 들어와서는 그녀를 뒤에서 살짝 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뭐 보는 거야?”정안은 남하준의 등에 기대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내 동생이 당신 조카를 좋아하면 어떡할 거예요?”남하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우리 서연이 예쁘고 마음씨도 고우니 건이가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지.”“당신은 반대할 거예요?”“나보단 서연이 뜻이 중요하지. 만약 서연이가 좋아한다면 난 반대하지 않겠지만, 만약 서연이가 싫다면 건이가 서연이 곁에 얼씬도 못 하게 할 거야.”정안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자 남하준은 극도로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 집 전체의 생각일 거야. 우린 서연이 생각을 존중해.”정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잘됐네요. 이제 서연이 생각에 달렸어요.”“젊은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나랑 놀아줘.”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정안은 허탈하게 웃었다.여러 해가 지났지만 남하준은 여전히 그녀의 꼬리처럼 따라다녔다.매번 휴가 때마다 집에 틀어박혀 그녀와 붙어 다녔다. 함께 음식을 만들고, 영화를 보고, 바둑을 두고, 잠을 자고, 헬스를 했다.무엇을 하든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885화

    남서연은 정안에게 말을 걸려는데 백건에게 시선이 쏠렸다. 남자가 고개를 들고 물을 마시는 동작이 멋지고 목젖이 섹시했다.단지 물을 마시는 동작 하나에 몸이 뜨거워진 남서연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불안한 듯 말했다.“제가 뭐 도울 일이 있을까요?”정안은 휴대폰을 꺼내 눈살을 찌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회사에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실험 데이터를 보내서 지금 빨리 정리해서 제출해야 할 것 같아.”남서연은 멍해졌다.정안은 바구니에 있는 묘목을 가리키며 당부했다.“서연아, 네가 건이와 함께 이 묘목들을 심어줘. 난 먼저 가볼게.”“저...”남서연은 조금 당황스럽고 불안해서 그녀를 부르려고 했다. “작은 엄마...”정안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걸어가며 말했다. “나 진짜 바빠서 그래. 서연아 네가 좀 수고해줘.”남서연은 거절하기 미안하여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괜찮아요. 가서 일 보세요.”정안은 정원에서 사라졌고 남서연은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너무 긴장해 호흡이 가쁘고 불안한 듯 돌아서서 뒤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는 조용히 서서 줄곧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하지만 말을 잘 하지 않는 그는 늘 사람들에게 차갑고 거리감을 주었다.어렸을 때, 남서연이 그를 볼 때마다 그는 계속 숨었다.그에게 말을 걸면 대꾸도 하지 않고 심지어 그녀를 피해버렸다.그래서 남서연의 마음속 백건의 이미지는 줄곧 매우 차갑고 냉담하고 어울리기 힘들고 말도 잘 하지 않는 남자였다.하지만 그녀는 이상하게도 다른 남자들에겐 느낌이 없었지만 이 남자를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몸이 불편할 정도로 긴장했다.지금은 함께 잠자리를 가진 이유로 남서연은 더욱 난처하고 불안해져 몸 둘 바를 몰랐다.백건이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깨고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너도 심을래?”남서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건은 생수를 내려놓고 구석으로 가서 새 장갑 한 쌍을 집어 들고 남서연의 앞으로 다가왔다.남서연이 손을 뻗어 받아오려 하자 백건이 휙 피하더니 장갑을 열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884화

    정안은 탄식했다.“서연이가 널 좋아하지 않는다면 일찍 포기해. 그렇다고 너무 자포자기해서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지는 말고. 승아는 너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백건이 느릿느릿 말했다.“승아에게는 수단이 악랄한 고모가 있죠.”정안은 경악했다.“너도 알고 있었던 거야?”“네.”정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당부했다.“그래. 난 이만 갈게. 오늘은 일찍 쉬고 내일 점심에 금원에 와.”금원은 국가가 남하준에게 준 작은 별장이었고 금원 맞은편이 바로 유원, 유승아의 집이 있었다.“금원에는 왜요?”정안이 다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일찍 와서 누나 좀 도와줘.”말을 마친 정안은 돌아서서 백건의 방을 나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백건은 쓸쓸한 눈으로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익일 점심.남서연은 꽃무늬 원피스에 차양 트리밍 모자를 쓰고 손에 대나무 꽃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꽃바구니 안에는 온통 화초의 어린 모종들이 가득했다.그녀는 차에서 내려 기뻐하는 무지개 나비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원 쪽으로 걸어갔다.멀리 그녀는 정원 한가운데에 흰 셔츠를 입고 진흙탕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을 보았다.“작은 엄마!”가까이 다가선 남서연은 발걸음을 뚝 멈추었다. 소리가 목구멍에 걸리고 시선은 눈앞의 남자에 고정되어 멍해졌다.백건은 소리를 듣고 일어나 자신의 귀가 잘못 들린 줄 알고 돌아섰을 때,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는 여자를 보자 그도 멍해지며 굳어버렸다.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다.남서연은 남자의 시선이 왠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자 당황한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작은 엄마인 줄 알았어요. 묘목을 선물하려고 왔는데 내가...”“물 가지러 갔어.”백건은 처음에 정안이 왜 집안의 정원사를 놔두고 굳이 그를 집으로 불러들여 정원을 가꾸게 했는지 몰랐다.이제야 그는 이해했다.그는 손에 든 호미를 내려놓고 장갑을 벗고 두 걸음 앞으로 나가 남서연에게 손을 내밀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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