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두 사람은 아직 신혼이라 집에 너무 많은 사람이 그들을 방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소파에 있을 때도 제대로 앉아 있는 적이 없었다.지우는 언제나 남태준의 허벅지에 앉아 그의 단단한 가슴을 쿠션으로 삼아 그의 품에 안겨 한참 동안 속삭이는 것을 좋아했다.지우가 정원을 가꾸는 것을 좋아해서 남태준은 시간 날 때마다 그녀와 함께 정리했다.해 질 녘.지금은 꽃과 채소를 심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지우는 정원에 공터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원 곳곳에 화초만 가득하고 야채와 열매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유기질 비료와 씨앗을 사 왔다.남태준과 상의한 후 그들은 밭에 여러 종류의 토마토와 방울토마토를 심었다.지우는 남태준과 이런 무료한 일을 하는 것에 아주 기뻐했다.“첫 토마토 열매가 맺으면 따서 당신 줄게요.”“그럼 난 방울토마토가 먼저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어.”지우는 물을 주며 물었다.“왜요? 큰 토마토 싫어해요?”“셔서 싫어”“달콤한 거예요.”지우가 생각하더니 보충했다.“신맛이 조금 있기는 하죠.”남태준은 말없이 웃으며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지우는 남자의 따뜻한 시선에 약간 부끄러워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내 얼굴에 흙이라도 묻었어요?”남태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하지 않았고 눈빛은 더욱 뜨거워졌다.그러자 지우는 바짝 긴장했다.“그렇게 나 쳐다보지 말아요.”석양의 노을빛이 지우를 비추니 더욱 아름다워 보여 남태준은 마음이 녹아버릴 것 같았다.지우는 화난 척하며 물을 남태준의 몸에 뿌렸다.“보지 말라니까요!”물보라가 남태준에게 떨어지자 그는 제때에 피했지만 여전히 조금 젖었다.“감히 물을 뿌려?”남태준은 물을 피해 그녀의 분사기를 뺏으려 했다.지우는 그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 놀라 얼른 뒤로 물러서서 분사기를 그에게 겨누었다.남태준은 옷이 흠뻑 젖었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눈 밑에는 사랑스러움으로 가득 찼다.“도망가지 마.”“다가오지 말아요!”지우는 웃으며 소리치고 필사적으로
촤르르 물보라가 흘러내려 두 사람을 때리자 그들은 옷이 흠뻑 젖었다.지우는 그에 의해 벽에 눌린 채로 몸이 따뜻했다. 그의 강인하고 잘생긴 얼굴을 올려다보니 물방울이 그의 짧은 머리를 타고 흘러내려 야성적이고 거칠고 극도로 매혹적이었다.남태준은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붉고 예쁜 그녀의 얼굴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맑고 순수한 그녀의 눈빛을 마주했다.그는 지우의 얼굴을 부여잡고 걷잡을 수 없이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남자의 키스는 물방울을 타고 흘러내렸고 그녀의 목을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옷도 그의 손에서 천천히 흘러내렸다.지우는 눈을 감고 그의 어깨를 꼭 잡고 욕망에 빠져 숨을 몰아쉬고 수줍게 물었다.“여보. 샤워한다면서요? 이러지 말아요.”남태준은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고 바디워시를 짜내 그녀의 매끄러운 피부에 발라주었는데 그 촉감이 마치 천국을 경험한 듯 황홀했다.너무 부끄러운 지우는 차마 눈을 뜨고 보지 못했고 그가 자기 몸을 멋대로 이끌도록 내버려 두었다.열기가 자욱한 욕실에서는 뜨거운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지우는 다리가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키스하고 만지는 줄 알았는데 더 난폭한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남태준은 그녀의 몸을 돌려 그에게 등을 돌리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여보, 몸 숙여.”그러자 지우는 손을 뻗어 벽을 짚고 몸을 숙였다.순간, 충격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이따금 일어났다.아랫입술을 깨물어도 참지 못하고 수줍은 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그녀는 온몸에 분홍빛이 돌았다. 이내 다리가 시큰시큰해져서 오래 버티지 못했고 남자가 양손의 힘으로 그녀의 허리를 받치고 있었다.욕실에서 침대까지 지우는 계속 스펀지처럼 나른한 상태였다.마지막에는 거의 탈진할 것 같았다.그의 품에 안겨 숨을 헐떡이며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남자의 가슴은 뜨겁고 편안하며 가슴은 출렁이고 있었다.지우는 눈을 감고 만족하며 잠들었고 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등에, 그리고 머리에 키스하고는 다정하게 속삭였
“내가 너에게 욕망이 없었으면 좋겠어?”남태준은 괴로워하며 불평했다.“그게 아니라 내가 며칠 쉬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그럼 그냥 말해. 네 생각 존중할 테니까.”지우는 그의 가슴에 엎드려 애교 섞인 말투로 요구했다.“여보. 제발 말해줘요. 그렇게 은밀한 비밀도 말해줬으면서 이것 하나 더 말해줄 수도 있잖아요.”“그렇게 나와 자고 싶지 않아?”남태준은 그윽하고 흐릿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약간 실망한 듯한 말투로 물었다.“내가 너를 만족 못 시켰어?”“그럴 리가요. 당신 아주 대단해요. 난 내가 감당할 수 없을까 봐 걱정하는 거죠.”“원하지 않으면 바로 말해. 이건 네가 알 필요 없어.”지우는 화난 척 돌아서서 그에게 등을 돌리며 말했다.“말하기 싫으면 말아요. 앞으로 남태준 씨라고 부를 거예요.”남태준은 급해서 얼른 그녀를 뒤에서 껴안고 머리를 그녀의 귓전에 대고 속삭이며 달래었다.“화났어? 내가 말할게...”지우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열심히 들었다.“네가 아플 때, 우울할 때. 그리고 나를 냉담하게 대할 때 욕망이 뚝 떨어져.”아주 정상인 것 같지만 또 아닌 것 같았다.지우는 기뻐하며 돌아서서 그의 가슴에 대고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고마워요. 당신 비밀을 말해줘서.”지우가 웃자 남태준도 참지 못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지우가 생각하더니 또 물었다.“예전에 말이에요. 당신 눈이 안 보일 때 내가 항상 장난을 쳤잖아요? 당신을 놀리고, 욕하고, 그때 무슨 생각 했어요?”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옆으로 눕더니 몸을 아래로 구부려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고 말을 돌렸다.“여보. 좀 힘들다. 우리 좀 자자.”“힘든 척 연기하지 말고 얼른 말해요.”지우가 그를 밀어냈다. 그녀가 밀면 밀수록 남태준은 그녀를 더욱 꽉 껴안으며 말하려 하지 않았다.“그때도 나 덮치고 싶단 생각 했죠?”지우가 추궁하자 남태준은 침묵하며 그녀의 목에 얼굴을 비볐다.“말 안 하면 간지럽힐 거예요.”지우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지우가 소송에서 이긴 결과가 인터넷에 공개되자마자 큰 파문을 일으켰고 바로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이번 실검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임다희가 촬영 중이던 드라마까지 중단하게 되었다.소송이 끝난 지 일주일 후, 임다희의 매니저와 그 회사는 지우의 소속사를 찾아가 지우 책의 저작권을 사겠다고 요청했다.그러나 그들은 한발 늦었다.이 책의 저작권은 이미 남태준에게 넘어가 있었다.햇빛이 쨍쨍한 이른 아침.지우는 편집장님의 호출로 회사에 왔다. 업무적인 일인가 싶었는데 임다희의 일행이 그녀를 만나려는 것이었다.사무실에는 지우가 소파에 앉아 임다희와 그녀의 매니저, 그리고 동행한 실장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연적끼리 만나자 눈에 쌍심지를 켰다.지우는 임다희를 보자 얼굴이 굳어졌다.이 여자는 나쁜 일을 많이 했고 지금은 송수빈까지 이용하고 있었다.“말해. 무슨 일로 나 찾아왔어?”지우가 묻자 임다희가 두 손으로 가슴을 안고 거만한 태도로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입고 있는 그 옷 정품 아니지?”지우가 자신의 옷을 훑어보니 특별한 것은 없었다.“그게 무슨 말이야?”임다희가 코웃음을 쳤다.“요즘 가짜를 만드는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네? 정품과 똑같잖아?”“난 브랜드 같은 거 몰라. 이 옷은 모두 남편이 사준 거야.”지우가 여유 있게 답하자 임다희가 경악했다.“남편? 너 결혼했어?”그러자 지우가 덤덤하게 답했다.“맞아. 너도 아는 사람이야. 남태준.”이 말이 나오자 임다희는 얼굴이 새파랗고 눈 밑에 분노가 가득 차서 주먹을 불끈 쥐고는 할 말이 없어졌다.그들의 눈은 저도 모르게 지우의 핸드백을 향해 흘겨보았다.처음에는 그녀가 전부 가짜로 무장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몇억 원을 두르고 외출한 것이다.더 무서운 것은 지우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물건의 가치가 얼마인지는 전혀 모르고 단지 보기 좋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임다희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숨을 깊이 내쉬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의 매
지우가 길가에서 택시를 잡자 임다희가 차 문을 열고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몇억짜리 가방을 메고 몇천만 원짜리 옷을 입었는데 운전기사도 없이 혼자 택시를 잡아? 정말 웃기네.”지우는 자신의 가방을 내려다보고 또 옷을 보며 순간 충격에 빠졌다.‘뭐? 집에도 이런 가방과 옷이 많은데. 이게 그렇게 비싸다고?’“너 같은 걸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임다희가 웃으며 묻자 그녀의 매니저가 답했다.“된장녀.”“하하. 맞아. 맞아.”임다희가 배시시 웃으며 말하자 지우가 막 반격하려는데 고급 차 한 대가 지우 앞에 멈추었다.임다희의 안색이 완전히 굳어지더니 바로 차에서 내려 문 앞에 서서 보고 있었다.지우도 어리둥절해서 차창 안의 사람을 내려다보았다.그러자 남태준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지우 옆으로 돌아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일 다 끝났어?”“네. 근데 언제 왔어요?”지우가 경악해서 묻자 남태준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온 지 좀 됐어. 방금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오늘 출근 안 해요?”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일부러 화를 냈다.“내가 어젯밤에 한 말 까먹었어?”지우는 그제야 생각났다. 그녀가 비몽사몽 자고 있을 때 남태준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었다.“내일 나 휴가야. 같이 집에 가서 네 어머니 제사를 지내자.”당시 그녀는 대답했고 심지어 아침에 편집장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일이 끝나면 같이 가자고 했다.지우는 난처해하며 웃었다.“미안해요. 까먹었어요.”“괜찮아. 가자.”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차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태준아.”임다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남태준과 지우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그녀는 성큼성큼 걸어왔고 부드러운 웃음을 뜨고 있는 눈에는 이상한 빛이 비치고 있었다.남태준은 처음에는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그녀가 있는 것을 보고 지우를 걱정해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하지만 지우의 표정을 보니 괴롭힘을 당한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여유
임다희는 차에 오를 때 문을 홱 열어젖히고 운전 기사에게 버럭 화를 냈다.“출발 안 하고 뭐 해? 똥이라도 처먹었어? 하여튼 돼지처럼 우둔하다니까.”그러자 운전 기사는 급히 차에 시동을 걸었다.임다희는 화를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꺼내 준영에게 전화를 걸더니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부드러워졌다. “준영 언니, 보고 싶어요. 어딨어요? 내가 지금 찾아가도 돼요?”매니저는 코웃음을 치더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안색이 매우 어두웠다....남태준의 차량은 지우의 고향 쪽으로 향했고 몇 시간을 달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남태준은 트렁크에서 두 사람의 짐이 들어 있는 캐리어를 꺼냈다.지우는 그가 미리 준비한 물건을 보며 물었다.“여기서 며칠 지낼 생각이에요?”“너 여기서 지내고 싶지 않아?”남태준이 되묻자 지우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당연히 지내고 싶었지만 감히 텅 빈 집에 혼자 묶지 못했다. 외로울까 봐, 슬플까 봐, 괴로울까 봐, 어머니와 동생이 보고 싶어 몰래 눈물을 흘릴까 봐.지금 남태준과 집에 돌아오니 느낌이 달랐다.“고마워요. 여보.”지우는 크게 감동했고 남태준은 아무 말도 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남태준은 가구에 씌워진 비닐을 걷어내고 간단하게 청소를 하고 지우의 방도 깨끗이 정리했다.지우는 어머니 방에 앉아 가족사진을 들고 눈물을 글썽이며 과거를 회상했다.부모님은 이미 안 계시고 동생은 아직 감옥에 있다.그저 묵묵히 그들에게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내 걱정은 말아요. 나 아주 잘 지내요. 좋은 사람 만나서 아주 많이 행복해요.”남태준은 바쁜 일을 끝내고 천천히 걸어 들어와 지우 곁에 앉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문지르며 속삭였다.“슬픈 일은 잊고 기쁜 일만 생각하자. 우리 앞만 보면서 살자.”지우는 코를 훌쩍이고 몰래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미안해 여보.”지우는 촉촉이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이 왜 사과해요?”“내가 지성이를 빼낼 수 없어. 나
어떤 말들은 그저 마음속으로만 그녀에게 말할 수 있었다.‘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따님과 결혼했어요.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죄송해요. 도저히 지우를 잊을 수 없었어요. 저의 이런 선택이 아주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거 잘 알지만 진심으로 따님을 사랑하고 있어요.’‘제발 저를 용서해주시고, 제발 저희를 축복해주세요.’‘절대 지우를 고생시키지 않을 거고 따님이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게 제가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만약 저희를 축복해주신다면 지우 꿈에 나타나셔서 저와 잘 지내라고 말씀해주세요.’바람이 불자 덤불의 잎이 살랑살랑 흔들렸다.흰 구름이 떠다니고 고요한 묘비 산이 햇빛에 휩싸여 유난히 따뜻했다.돌아가는 길에 지우는 예전에 가장 좋아하던 간식 가게에 가서 고향의 특산물을 잔뜩 샀다.그녀는 기분이 좋아 먼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기억나요? 우리 연애할 때 당신 나 데리고 등산하는 거 제일 좋아했잖아요.”남태준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등산 힘들잖아요. 근데 왜 데이트할 때 자꾸 나 데리고 산에만 간 거예요?”“산에는 사람이 적잖아. 뽀뽀하고 싶으면 하고 안고 싶으면 안고. 다른 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별로였어.”지우는 싱긋 웃으며 왠지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이제 보니 그런 흑심이 있었네요.”“넌 싫었어?”“난 정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당일 저녁 두 사람은 지우의 방에서 잤다.지우는 그의 품에 누워 집에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사진첩을 꺼내 한 장씩 넘기며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다.모두 가난하고 무료한 이야기였지만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었다. 비록 당시는 힘들었어도 지금 회상해보면 기쁨과 활기가 넘쳤다.그러다 남태준의 품에서 사르르 잠이 들었다.한밤중이 되자 지우가 갑자기 흐느끼며 외쳤다.“엄마... 아빠...”남태준이 깨어나 야광등을 켜니 지우는 아직 꿈나라에 있었다. 남태준은 지우를 살짝품에 안고 불을 끄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괜찮아. 지우야.
다시 지성을 만났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건강해지고 밝아졌으며 더 이상 전처럼 슬프고 우울해하지 않았다.안에서 팀장으로 승진했고 주방 일도 맡아 했으며 밥도 잘 먹고 모든 교도관이 지성에게 잘해주었다.이런 좋은 일들은 모두 몇 달 전에 갑자기 변한 것이었다.지금 지우가 남태준을 데리고 오자 지성은 마침내 이해했다.누군가 밖에서 지성을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었다.지우가 지성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이크를 남태준에게 돌리자 지성은 활짝 웃으며 넉살 좋게 말했다.“매형, 오랜만이에요.”매형이라는 말이 남태준의 마음속 깊이 박혔다.그는 속으로 감개무량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규율을 잘 준수하고 열심히 반성해서 일찍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알겠어요.”“나오면 날 찾아와.”“감사합니다. 매형.”지성은 미래가 어둡지 않은 것 같아 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남태준은 밝은 전조등처럼 어딜 가나 밝은 빛으로 지우를 비췄고 지성이 그 빛을 빌려 천천히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했다.만약 그때 지성의 곁에 이 빛이 계속 있었다면 그는 아마 감옥에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동생도 만나고 부모님의 제사도 지낸 지우는 더 이상 근심이 없었다.그녀는 남태준과 함께 안성으로 돌아갔다.행복한 날은 항상 소리 없이 천천히 흘러갔다.그녀는 운전 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글 쓰는 것 외에도 심심할 때 집에서 드라마를 보고, 정원을 정리하고, 몇 명의 형님들과 함께 쇼핑했다.늦봄, 하지.셋째 형 내외는 아들을 낳았다.남씨 가문은 또 경사를 맞이했고 모두들 기뻐하며 남영준에게 축하 인사를 보냈다.남창민의 다섯 번째 손자로 이름은 남천희라고 지었다.만월 잔칫날, 남하준과 정안은 아주 바빴고 또 멀리 떨어진 국경에 있어 돌아오지 않았다.잔치 당일은 시끌벅적했다. 지우는 셋째 형님의 아들을 안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손을 떼지 못했다.그녀의 타고난 모성애가 자극받은 것이다. 그녀는 아기를 안고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