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이 느긋하게 대답했다.“그럼 삼촌이라는 사람이 집으로 데려줘야 하지 않겠어? 저번에 베이스캠프에서 얼마나 큰 사고를 쳤는데 연구소의 교수님이 영 화가 나 있어 내가 어떻게 나설 수도 없더라고.”그 말을 들은 백하린은 씩씩거리며 남하준에게 다가갔다.“하준 오빠, 나 집에 안 갈래요. 나도 훈련하는 거 보러 갈래요.”남하준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삼촌이랑 집에 돌아가. 할머니 할아버지 걱정하시잖아.”그 말을 마친 후, 서다인의 손을 잡은 남하준은 그녀와 함께 군전 그룹의 중무장 차량으로 향했다.서다인과 남하준이 손을 잡은 채 차에 올라탄 모습을 본 백하린은 분노가 끓어올랐다.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주먹을 꽉 쥐었고 눈에는 살기가 어렸다.유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했다.“냅... 내버려둬요. 하린 씨, 그럼 삼촌 백 선생님 차를 타고 가죠.”백하린은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백인호, 나 군전 그룹으로 데려다줘.”백인호가 쌀쌀맞은 태도로 대답했다.“나 내일 출근해야 해. 수술이 몇 개 있어서 시간 없어. 혼자 택시 타고 가.”그 말을 한 뒤 백인호는 차가운 얼굴을 보이더니 자리를 떴다.옆에 있던 유가영은 어안이 벙벙했다.‘어떻게 된 거야? 두 사람 친한 삼촌 조카 사이 아니었나? 왜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졌지? 그리고 백하린은 왜 삼촌의 이름을 막 부르고 있는 거야?’백인호가 혼자 차를 몰고 떠났다.백하린은 택시 타고 남하준의 차를 따라갔다.유가영만 혼자 남겨진 채 제자리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차는 국경 지대로 향하고 있었다.서다인은 경직된 채로 창문 밖 경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남하준이 어디쯤에서 그녀를 내려줄지 생각하고 있었다.‘이왕이면 지하철이나 버스 역 근처에서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본가로 돌아가기도 훨씬 편해질 거잖아.’차는 이미 안성시를 떠났지만 남자는 전혀 차를 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서다인은 용기를 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오늘따라
서다인은 바로 그의 뜻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백하린이 쫓아온 모양이다.전에 군전 그룹에서 알콩달콩했던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리고 백하린을 살뜰히 보살피는 남하준의 모습을 떠올리면 서다인은 가슴이 비수에 꽂힌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여 더는 말하지 않았다.남하준은 암울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절로 미간이 구겨진 그는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웠다.‘나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싫은 거야? 아마도 지금은 백인호 생각을 하고 있겠지?’남하준은 그녀를 더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잠깐 망설이고는 물었다.“어디서 내리고 싶어?”그 말을 들은 서다인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음이 더없이 시큰거렸다.‘결국 나를 차에서 내리게 하네.’“마음대로 해요.”서다인이 쌀쌀맞게 대답했다.이때 조수석에 있던 류청이 다급하게 말했다.“사모님, 이미 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더는 차를 세울 수 없어요.”열심히 운전하고 있던 정호도 말을 보탰다.“사모님, 베이스캠프에서 며칠 지내고 가세요. 베이스캠프 사람들이 사모님을 엄청 좋아해요. 특히 연구소의 교수님들도 사모님이 언제 오시는지 자주 물었어요.”서다인은 기억을 잃은 후로 할머니의 예쁨만 받아봤지, 다른 사람의 친절함과 인정은 처음 받아보는 것이었다.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정호의 말에 서다인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는 운전석에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정말이에요?”정호가 대답했다.“정말이에요. 유주헌 교수님도 사모님 얘기를 자주 하세요.”명분을 찾은 서다인이 당당하게 말했다.“그럼 교수님들을 한 번 뵈러 가야겠어요.”정호가 웃으면서 말했다.“사모님, 이번에는 제가 호신술을 제대로 가르쳐 드릴게요. 저번처럼 놀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서다인은 ‘흥’하며 입을 삐죽였지만 기분이 워낙 좋았던지라 입꼬리는 귀에 걸려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저번에 나 일부러 놀린 거 인정하는 거예요?”지금까지 지내보니 정호는 서다인이 온화하
국경 지대, 군전 그룹 베이스캠프.차들이 하나둘씩 경비가 삼엄한 베이스캠프로 진입한 후 하늘을 찌를 듯한 호화로운 빌딩 앞에 멈춰 섰다.서다인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차에서 내려 남하준을 따라 빌딩 안으로 들어간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넓은 회의실 안.각종 유니폼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남하준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했다.“도련님, 안녕하십니까.”서다인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그 사람들 중에는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어떤 사람은 실험실 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전투복을 입고 있었으며, 또 어떤 사람은 개발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그 외에도 서다인이 보지 못한 유니폼도 많았는데 아무래도 각 부서 팀장들이 모두 모인 모양이다.남하준은 카리스마를 보이며 위엄 있게 최상석에 앉았다.정호는 서다인에게 옆에 있는 휴게실로 안내한 후 그녀에게 차를 갖다주며 말했다.“사모님, 도련님은 긴급회의가 있어서요. 잠깐 여기서 쉬고 계세요.”서다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죠.”정호가 떠난 후 서다인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한참 동안 휴대폰을 했다.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왜 여기서 하준 씨를 기다리고 있지? 기다린다고 뭐가 달라지나?’서다인은 배가 고파 아래층으로 내려간 후 이 빌딩을 나섰다.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서다인은 피곤하기도 하고 배가 점점 고파졌다.전에 한 번 베이스캠프에 온 적은 있지만 면적이 워낙 넓어 한 개 작은 마을과도 같았다.그녀는 결국 길을 잃어버렸다.서다인은 어느새 농구장이 있는 작은 공원에 다다랐다.하지만 걸을수록 이상함을 감지했다. 바람이 불어오더니 스산히 기운이 감돌았다.서다인은 휴대폰을 꺼내 남하준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했으니 결국 길을 물어보려던 생각을 접었다.갑자기, 스산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란 서다인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뒤를 바라봤지만 무성한 나무들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안색이 어두운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호흡이 딸려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서다인은 이렇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하준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어수선한 그의 모습을 보고는 적잖이 놀랐다.남하준은 병실에 들어온 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서다인은 목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정호 씨가 제때 살려줬어요. 나 괜찮아요.”남하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도 제대로 진정되지 않은 모양이다.서다인은 남자의 살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덜컥 겁을 먹은 서다인은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녀는 다친 두 손을 들어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범인이 칼로 내 심장을 찌르려고 했어요. 다른 방법이 없어 두 손으로 잡았는데 칼이 빗나갔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더 심하게 다치진 않았으니 곧 나을 거라고 했어요.”서다인의 희고 고운 두 손에 붕대가 감긴 걸 본 남하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에서 무서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분노가 눈에 보였다.서다인은 이런 남하준이 두려웠다.분명 상처를 입은 건 그녀라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한데 왜 지금 그녀가 잔뜩 화가 난 남하준을 위로하고 있는가?한참을 설명해도 남하준는 무슨 말을 하기는커녕 이렇게 무서운 모습만 보이니 서다인은 겁을 안 먹을 수가 없었다.서다인은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더니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준 씨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고요...”남하준은 마음속의 분노와 두려움에 못 이겨 침대 가장자리에 앉고는 서다인의 상체를 일으켜 품에 꽉 껴안았다.그제야 서다인의 체온을 느낀 남하준이 진정을 되찾았다.서다인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 제자리에 얼어붙었다.남하준은 처음으로 있는 힘껏 서다인을 안아 품에 보호하고 싶었다.얇은 옷 사이로 서다인은 자신의 부드러운 몸과 그의 두툼하고 단단한 가슴팍이 닿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상처가 난 곳이 욱신욱신 아팠다.서다인은 꾹 참고 아무
감정을 추스른 남하준은 자신이 지나치게 긴장하고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일어나서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널 암살하려던 사람의 특징을 말해봐. 남자야, 여자야?”서다인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고개를 가로저었다.“온통 검은색 복장에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키나 체형은?”“음...”이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준 오빠... 하준 오빠.”백하린은 병실로 뛰어 들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하준 오빠, 여기 있었어요? 밖에 경비가 삼엄하고 출입을 엄하게 자제하고 있어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뛰어 들어오는 백하린을 바라보던 서다인은 답답한 듯 고개를 떨구고 어이가 없었다.백하린은 침대 위의 서다인을 노려보며 눈을 부릅뜨고 과장된 표정으로 놀라며 안쓰러운 척 물었다.“어머, 다인 언니, 다쳤어?”“어쩌다가? 다인 언니가 왜 다친 거야? 대체 누가 그랬어? 많이 아파?”겉으로는 관심 가득한 질문 세례였지만 속으로는 고소해하고 있었다.서다인은 덤덤하게 말했다.“괜찮아.”백하린은 남하준을 바라보며 긴장한 듯 물었다.“오빠, 대체 무슨 일이에요?”남하준은 덤덤하게 대답했다.“아직 조사 중이야.”백하린은 눈을 깜박이며 의아한 듯 물었다.“언니 설마 원한 산 사람 있어?”서다인은 어이가 없었다.“내가 누구한테 원한을 사겠어?”“혹시 알아? 삼촌한테 들으니까, 오빠랑 연애하기 전에 많은 남자랑 사귀었다며? 온갖 종류의 남자를 다 만났다고 했어. 그때 성격이 불같고 제멋대로라 많은 사람의 미움을 샀을 수도 있잖아.”서다인은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온몸이 나른해졌지만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특히 남하준 앞에서 더욱 창피하고 난감했다.하지만 백하린은 점점 더 흥분해서 말했다.“회사에 언니랑 만났던 남자가 있을지도 몰라. 그때 언니한테 상처 입은 남자가 지금 시집 잘 간 언니를 보고 괘씸해서 복수할 수도 있잖아?”서다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증거 있어?”백하린은
남하준은 얼굴이 굳어지더니 또박또박 말했다.“다른 사람 과거를 들먹이며 아픈 곳만 콕콕 찔러 상처 주는 게 네 교양이야?”“난 그저 감정 문제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닌가 의심해서 그런 거죠.”남하준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목소리는 살얼음판 같았다. 분노 섞인 말로 크게 소리쳤다.“다른 사람 감정 문제에 네가 함부로 의심할 자격 없어.”백하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말했다.“잘못했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생각 없이 한 말이에요. 화내지 말아요. 네?”이건 생각 없이 한 말이 아니라, 일부러 서다인에게 상처 주려고 한 인신공격이었다.남하준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밖으로 끌고 나가면서 말했다.“사람 불러서 데려다줄 테니까 앞으로 다시 오지 마.”백하린은 손을 빼려고 발버둥 쳤다.“나 안 가요. 이제 겨우 왔단 말이에요. 나 오빠랑 있을 거예요.”“난 너 필요 없어.”“오빠, 이거 놔요. 나 안 갈래요.”병아리처럼 거칠게 들린 백하린의 몸부림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백하린이 펑펑 울기 시작했고 순찰 대오는 모두 멍해졌다.그녀는 벗어날 수 없자 화를 내며 물었다.“오빠 설마 서다인 좋아해요?”남하준의 발걸음이 멈추더니 그대로 제자리에 굳어졌다.전류에 맞아 심장마비가 온 것처럼 당황스럽고 불안했다.그가 넋을 잃고 있을 때 백하린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오빠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남하준은 백하린을 노려보며 귀찮은 듯 말했다.“뭐가?”백하린은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우리는 어릴 때부터 서로 좋아했어요.”“나한테 고백한 적은 없지만 난 오빠 때문에 25년 동안 수많은 남자를 거절하며 내 몸을 깨끗이 지켰어요.”“그런데 오빠는요? 할머니 때문에 악명 높고 더러운 여자랑 결혼한 것도 모자라, 이제 그 여자 요술에 넘어가 마음까지 줘버렸잖아요!”“보기에는 단순하고 온화하고 지혜로워 보이지만 그건 모두 오빠를 꼬시려는 수단이에요! 전에도 남자들을 그렇게
밤이 깊어 인기척이 없고 달빛은 맑고 투명했다.병원 밖에서는 바스락거리는 나뭇가지 끝소리가 아늑함을 더했다.남하준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실로 들어섰다.간병인 아주머니가 급히 일어나 인사를 하려 하자 남하준은 손을 뻗어 제지했다.아주머니는 재빨리 알아듣고 방에서 살며시 물러났다.병상에서 서다인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남하준은 침대 옆 의자에 털썩 앉더니 깊고 검은 눈동자로 그녀가 잠든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여자의 동그랗고 하얀 얼굴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고 보송보송한 그녀의 피부는 화장기가 없어도 수려하고 청순해 보였다.휜 눈썹, 촘촘한 속눈썹, 오똑한 콧날과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진 그녀는 더욱 귀엽고 평온해 보였다.그녀는 성격이 강인하고 재능이 많았다. 이렇게 온화하고 정숙하고 단아한 모습이 정말 위장일까?그의 관찰력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위장술이 너무 강한 것일까?밤은 그렇게 깊어갔다.남하준은 병실에서 서다인과 몇 시간 동안 함께 있다가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떠났다.이튿날 아침.교대한 간병인이 서다인을 씻겨 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아침 식사를 배달하고는 약을 바꿔 주었다.한가할 때 서다인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남하준이 백하린의 손을 잡고 떠난 이후로 다시는 그녀를 보러 오지 않았다.서다인은 강한 척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잘 먹고 잘 마시고...겉으로는 별일 없어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괴로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사흘째 되는 날 밤, 서다인은 악몽에 놀라 깨어났다.놀라서 온 얼굴이 땀으로 젖었고 몸이 움찔하더니 눈을 떴다.마치 물속에서 오랫동안 빠져 있다가 마침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그녀는 목이 말라서 침대맡에 손을 뻗었다. 따듯한 찻잔이 만져지자 흠칫 놀랐다.그때 간병인이 그녀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급히 다가왔다.“사모님, 왜 깨셨어요? 목마르세요?”“이거 누구 차예요?”서다인은 일어나 앉아 맑은 차 한 잔을 바라보았다.“도련님 차입니다.”서
간병인은 서다인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엄마처럼 따뜻하게 말했다.“사모님 슬퍼하지 마세요. 도련님은 너무 바쁘시잖아요. 회사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실 거예요. 최근에 훈련을 강화하고 있어요. 사모님께서 습격을 당하셨으니 지금 군전 그룹 전체에 비상이 걸려 모든 사람들이 조사받고 있어요.” “낮에 회사 일을 놔두고 사모님을 찾아올 수 없으니 본인 휴식시간을 희생해 저녁에 보러 오시는 거잖아요. 도련님은 사모님을 많이 걱정하고 계세요.”간병인의 말을 들은 서다인은 억울하고 상처받은 마음이 조금 나아졌고 무력한 아이처럼 그녀의 품에 안겨 위안을 찾았다.“정말 저 같은 여자에게 관심을 보일까요?”간병인은 안쓰러운 듯 서다인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제가 사모님을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쁘신 분도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세요?”서다인은 든든한 나무를 찾은 듯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터놓고 울었다.“아주머니, 전 정말 그 사람 사랑해요. 어떡하죠? 이제 어떡하면 좋죠?”간병인은 헛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참 바보 같네요. 그분은 사모님 남편이세요.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죠. 매일 도련님이 밤새도록 옆을 지키시는 게 마음 아프시다면 일찍 퇴원해서 기숙사 아파트로 돌아가시면 도련님도 쉴 시간이 있겠네요.”“하지만 손이 아직 안 낳아서 기숙사로 돌아가면 불편할 것 같아요.”서다인은 코를 훌쩍이며 간병인의 어깨에서 벗어났다.간병인 아주머니는 눈살을 찌푸리며 미소를 지었다.“손가락 잘 움직이시잖아요. 밥도 드시고 물도 마시고.”서다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아직 물에 닿으면 안 돼요. 혼자 약을 바꿀 수도 없고.”“아이고, 난 또 뭐라고.”간병인은 옅은 미소를 짓더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씻고 약을 바꾸는 일이 10분이면 되는데 도련님께서 분명 도와주실 거예요.”생각지도 못했던 서다인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져 눈을 늘어뜨리고는 수줍게 속삭였다.“그 사람은 안 돼요.”간병인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지우는 당장 남태준을 찾아가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상대할 의향이 있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젯밤 자신이 남태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답장하지 않았다.어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말했는데 지금 다시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나자고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이렇게 하면 그녀가 남태준을 대하는 감정이 제멋대로이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처럼 오만하게 보이지 않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고 마음이 착잡했다.전화도 문자도 모두 성의 없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이 시간에 남태준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다.저녁노을이 지우에게 쏟아지고 그녀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길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가락을 찾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스쿠터가 무성한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봄바람이 불어와 공기마저 향긋했다.지우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30분 후. 경찰서 입구에 도착한 지우는 브레이크를 밟고 전원을 끄고 대문 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유독 남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지우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를 잠그고 가방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좀 긴장되었다.들어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전부 업무를 보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들이었다.그때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면서 물었다.“어떻게 오셨죠?”지우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긴장하며 물었다. “실례지만 마약 단속팀 남 대장님 계시나요?”남자는 사무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안 계세요.”“그럼 어디로 가셨죠?”지우가 또 묻자 경찰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주시했다.“누구시죠? 무슨 일로 남 대장님을 찾으시죠?”지우는 상대방의 경계심과 엄숙함이 느껴졌고 뭔가 사납고 엄한 압박감을 주는
“난...”진효연은 당황하고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이게 전부 너를 위해서야.”지우는 눈물을 닦고 울며 말했다.“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거의 매일 사람이 죽어요.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내가 만약 운전기사와 결혼하면 남편이 운전하다가 차에 치여 죽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요?”“내가 작은 가게 사장에게 시집가면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 죽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만약 농부에게 시집가면 가난해서 죽겠네요?”“뉴스 보면 가문이 몰살되는 참사가 얼마나 많아요?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마약 형사만 해당하는 거 아니라고요.”“제발 엄마의 그 비참한 운명을 나에게도 돌리지 말라고요!”지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진효연은 어찌할 줄 몰라 멍하니 있으며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고 마음도 어지러워졌다.한바탕 눈물을 흘린 지우는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였다.“엄마 첫사랑인 그 약혼자가 뜻밖에 세상을 떠나 결혼하지 못한 건 엄마 평생의 한이겠죠. 이제 나도 똑같아요. 다른 점은 내 첫사랑은 죽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감정은 엄마 때문에 이미 억눌려 죽었어요.”진효연은 얼굴이 창백하여 넋을 잃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말을 마친 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은 적막했다.진효연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로 소파에 멍하니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그날 밤, 지우도 잠을 설쳤고 진효연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아침.하룻밤이 지나자 지우는 어제저녁 자신이 한 말이 너무 심해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쨌거나 진효연은 지우를 사랑하고 걱정하기 때문이었다.지우는 미안한 마음으로 진효연의 방문을 두드렸다.“엄마. 일어났어요?”방안에 인기척이 없자 지우는 또 몇 번 두드리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진효연은 늘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늘 삶에 대
지우가 난동을 부릴수록 남자는 더욱 괴로웠다.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가며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부드럽게 닿았다.지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다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떨며 울먹였다.“태준 씨. 이러지 말아요.”“사랑해 지우야.”그녀의 귓불에 키스하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지우는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고 그가 키스한 피부에 마치 전류가 흘러 사지를 관통하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두렵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갈망하고 있었다.어느새 몸부림을 포기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누군가를 사랑하기 전, 그녀는 절대 혼전 순결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하지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성보다 신체의 갈망이 훨씬 컸다.지우는 온몸에 힘을 빼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한 촉감에 입에서 수줍은 신음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꾹 참았다.그녀가 남태준이 주는 정욕의 설렘을 즐기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멈추었다.그는 지우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숨을 몰아쉬더니 그녀의 옷 밑에서 천천히 손을 빼내어 그녀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었다.“미안해.”남태준은 욕망을 고통스럽게 억누르고 죄책감 가득한 채 속삭였다.“미안해. 미안해.”그는 하마터면 통제력을 잃을 뻔했다.이성이 돌아온 지금, 남태준은 자신의 뺨을 몇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거야?’“난 정말 개자식이야. 미안해.”남태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그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지우는 가슴이 출렁이고 호흡이 어지럽고 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욕망을 추슬렀다.좋아하는 남자가 키스하면서 쓰다듬어주면 몸에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 일어날 줄이야.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녀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아 강렬한 욕망까지 생겼다.아주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
지우는 남태준에 의해 강제로 집에 끌려들어 갔다.문이 잠기는 순간 지우는 좀 당황스러웠다.그녀는 화가 난 남자가 어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지 몰라 계속 몸부림치며 떠나려고 했지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힘센 손에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남태준에 의해 거실로 끌려가 그대로 소파에 던져졌다.그녀는 긴장해서 움츠러들었고 방황하면서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태준을 쳐다보았다. 그가 미칠 듯이 달려들 것 같아 속으로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이성적으로 그녀 곁에 앉아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매우 괴로워 보였다.밝은 거실은 두 사람의 가벼운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창밖은 캄캄했다.집안의 분위기가 점점 굳어졌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지우는 남태준이 화가 나서 그녀와 단둘이 지낼 이유를 찾는 것이지 그녀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태준 씨, 나 놔주겠다고 했잖아요?”남태준은 얼굴을 가리고 깊게 숨을 내쉬더니 온몸에 냉기가 번져 형언할 수 없는 감상과 슬픔이 어렴풋이 배어 있었다.그는 소파 등에 기대어 옆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눈가에 쓸쓸한 감정이 가득했다.“지우야. 내가 헤어지겠다고 했지 널 포기한 적은 없어. 난 계속 노력하고 있었어.네가 나 좋아하도록, 네 가족이 나 좋아하도록.”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하며 말했다.“진짜 그럴 필요 없어요.”“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갈등도 다툼도 제삼자도 없었어. 네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한 거 혹시 엄마 때문이야?”지우는 침묵했고 손가락을 꽉 쥐고 손톱을 뜯었다.“대답해줘.”남태준은 소파를 따라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다가갔다가 꾹 참았다.그에게는 이제 지우의 손을 잡을 명분이 없었다.매일같이 그리움에 시달리고, 미칠 듯이 그녀를 보고 싶고,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어도 이젠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그저 모퉁이에 몰래 서서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헤어지는 날은 녹슨 무딘 칼처럼,
“맞아. 하지만 이미 마음에 다른 남자를 품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 미안해.”진준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무슨 말인지 알겠어. 만약 네 마음에 있는 그 남자에게 기회가 없다면 차라리 그 기회를 나에게 주는 건 어때? 어쩌면 우리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잖아.”지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자 진준호 역시 멈추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나 아주 아쉬워. 널 오랫동안 짝사랑했지만 졸업 시즌에 네게 고백하지 못한 거 계속 후회했어. 만약 지금 그 기회가 왔다면 놓치고 싶지 않아.”지우는 용감한 사람을 탄복했다“준호야, 나...”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의 그림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지우가 반응도 하기 전에 강력한 힘의 큰 손이 그녀의 팔을 꽉 잡고 힘껏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자신의 따뜻하고 튼튼한 가슴으로 끌어당겼다.그녀가 경악하며 고개를 들자 남태준의 준수한 얼굴을 보고는 가슴이 떨렸다.지우가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진준호는 다급하게 물었다.“당신 뭐야?”남태준의 거대한 체구에 진준호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말로 으름장을 놓았다.“당장 지우 놔줘!”남태준은 싸늘한 눈빛에 노기를 띤 채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여자친구에게 할 말이 있어 먼저 실례할게요.”여자친구?지우는 멍해졌고 진준호는 더욱 어리둥절했다.남태준이 지우를 끌고 떠나자 진준호가 급히 쫓아가 두 사람 앞을 막으며 물었다.“지우야. 너 솔로라며?”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가로젓고는 혼란스럽게 말했다.“나 솔로 맞아. 이 사람은 전 남자친구야.”그녀의 말에 남태준의 안색이 더욱 새파래졌다.“나 이 사람이랑 얘기 좀 할 테니까 너 먼저 가봐.”지우는 웃으며 진준호에게 손을 흔들었다.“잘 가.”진준호도 더 이상 지우를 빼앗을 이유가 없어 지우가 끌려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노려봤다.남태준은 지우를 차에 태워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는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량이 넓
지우는 입술을 깨물고 서러워하며 되물었다.“그럼 네가 다시는 목숨으로 나 협박하지 말라고 엄마 설득할 수 있어?”“아니 난 못해. 엄마는 너무 독해. 매번 빈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이시잖아.”지성은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고 지우도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사랑을 위해 어머니의 목숨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남태준을 잊고 가슴 아픈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칠 후 지성이 퇴원하자 지우의 생활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매일 글쓰기에 바쁘고 어머니의 매점도 봐주고 가끔 밥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가 쇼핑을 하며 기분 전환을 했다.이날 송수빈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자고 했다.늘 외지에서 일했던 지우는 동창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올해 그녀가 마침 고향에 있으니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창들과 모이려고 했다.한 식당의 룸.큼지막한 원형 테이블에는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가득했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는 신혼이거나 미혼인 사람도 있었다.지우와 송수빈은 미혼이라 싱글남 친구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두 사람의 외모도 출중하고 몸매도 좋았다.모두들 웃고 떠들며 건배하며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을 때, 한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준호가 지우를 오랫동안 짝사랑했잖아. 준호 녀석 지금 이혼했는데 설마 아직 지우를 못 잊은 거 아니야?”음식을 먹던 지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경악하며 말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반장이던 그는 지금 한 기업의 관리자였다.그는 술잔을 들고 일어나 지우를 향해 물었다.“지우야. 너 아직 싱글이라며. 아직 준호에게 기회가 있는 거냐?”지우는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 진준호를 바라보았다.부드러운 눈매를 가진 진준호는 어색한 듯 지우를 바라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이혼한 지 얼마 안 된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이공계 IT 남으로 수입도 높고 외모도 잘생겼고 성격도 온순했다.같은 마을 사람이라 부모끼리도 서로 잘 알고 있었다.지우는 난처해하며 미소 지었다.
이번에 지성은 말을 할 수 있었고 사유도 또렷했다.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지성의 몸 상태를 물었고 지성이 괜찮은 걸 확인하고는 조사를 시작했다.지성은 남태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가 누나의 전 남자친구라는 것을 알고 더욱 존경했다.지성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누나가 육건우를 고소했기 때문에 제 빚은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갚지 않아도 되거든요.”“하지만 육건우의 부하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그날 저를 뒷산으로 데려가 폭행했고 저는 그들을 따돌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쳤어요. 철조망이 가로막힌 곳까지 도망쳤는데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어서 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 철조망을 넘어 안에 있는 나무로 뛰어올랐어요.”“들어가고 나서 계속 출구를 찾았는데 못 찾았고 마스티프 몇 마리가 저를 쫓아왔어요.”“그래서 큰 스튜디오 몇 군데로 달려갔어요. 근데 안에 촬영 장비는 없고 오히려 양귀비꽃과 비슷한 식물이 많이 심겨 있더라고요.”“저는 깜짝 놀라 얼른 숨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요.”“그러다 어떤 창고에 숨었는데 그 안에서 마약을 정제하는 사람들이 저를 발견하고는 저를 죽일 듯이 때렸고 제 심장에 칼까지 꽂고 산기슭에 저를 던졌어요.”지성은 심장의 상처를 만졌다. 의사가 말하길 지성의 심장 위치가 다른 사람과 달라서 조금 빗나가 목숨을 부지했다고 했다.불행 중 다행이었다.남태준과 오신우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표정이 굳어졌다.산꼭대기에 촬영기지를 설립하려면 소방 안전 검사와 경찰의 순찰도 필요하다.그런데도 안에서 미친 듯이 독을 심고 마약을 정제할 수 있다면 분명 백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그 백은 결코 직위가 낮지 않을 것이다.자백을 마친 지성이 긴장하며 물었다.“남 대장님, 만약 제가 죽지 않은 걸 알면 또 사람을 보내 저를 죽이러 올까요?”“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요.”남태준은 온화한 태도로 진지하게 말했다.“지성 씨 옆에 24시간 경호를 붙여 신변을 보호할게요.”“감사합니다.”지성이 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