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여관으로 달려갔을 때, 아직 입을 열기도 전에 프런트 직원이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또 경찰이네.”그러자 형사가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죠?”직원이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말했다.“누가 신고해서 매니저님이 방금 경찰 몇 명을 데리고 올라갔어요.”경찰은 그 일을 상관하지 않고 다급히 물었다.“오늘 밤 손님 중에 술 취한 남자를 데리고 온 유미라는 여자가 있나요?”정안과 유동진은 직원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형사가 검문하는 동안 급히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가 층수를 보았다.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췄다.정안이 버튼을 눌렀고 류청과 지윤도 따라왔다.“3층이야.”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프런트 직원에게 문의한 형사가 달려 들어왔고 그들은 함께 3층으로 올라갔다.302호실 입구, 앞에 온 경찰이 아직도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류청이 부랴부랴 달려가 그들을 밀어젖혔다.“노크할 필요 없어요. 그냥 부수고 들어가요. 내가 배상할 테니까!”말을 마친 류청은 발을 들어 힘껏 문을 걷어찼고 쿵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문이 열렸다.한 무리의 사람들이 방으로 뛰어들었다.커다란 침대에서 남하준이 옷을 입은 채로 가로누워 있었는데 숙취가 든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때 유동진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긴장해서 말했다.“유미야!”“음음!”욕실에서 여자가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렸다.정안은 침대 가장자리로 달려가 앉아 남하준의 볼을 쓰다듬으며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드디어 풀렸다.“오빠. 오빠 일어나봐요.”류청과 지윤은 유동진을 따라 화장실에 갔고 경찰도 따라갔다.화장실 문을 여니 유미가 샤워 봉에 뒷손으로 묶인 채 하얀 수건으로 입이 막혀 있었다.이 광경을 본 지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이 여자는 역시 자기 분수를 몰랐다.남하준이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여자 한 명을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유동진이 다가가 유미 손목의 넥타이를 풀고 그녀의 입에 있는 수건을 뽑았다.“오빠!”유미는 곧 울음이 터질
유미는 아직도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유동진은 유미를 데리고 경찰과 함께 떠났고 류청은 남하준을 업고 정안과 지윤의 에스코트 아래 여관을 떠났다.결코 잠들기 어려운 밤이었다.정안은 혼수상태에 빠진 남하준을 데리고 집에 갈 수 없어 호텔에서 묵을 수밖에 없었고 류청과 지윤은 집에 돌아가 묵었다.고요한 새벽의 밤.정안은 치솟는 남하준의 체온을 낮추려고 쉴 새 없이 그의 몸을 닦아주었다.그는 아마 약에 중독되어 혼수상태에 빠졌을 것이고 어떤 기능도 극도로 흥분되었을 것이다.정안은 남하준이 욕망을 발산하면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두 사람의 옷을 벗기고 남하준의 입술에 천천히 키스하고 그의 위에 허벅지를 걸치고 앉았다.그녀가 리드하려 할 때 남하준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정안은 한바탕 놀라며 황급히 그의 입술에서 떨어져 긴장하며 물었다.“깼어요?”남하준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완이?”정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타까운 듯 입술을 오므리고 붉게 달아오른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미안해요. 하마터면 오빠 큰일 날 뻔했어요.”남하준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더니 침대 위로 세게 확 뿌리쳤다.“아!”정안은 손목이 너무 아파서 뒹굴다가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남하준은 벌떡 일어나 깨끗하게 벗겨진 자기 몸을 내려다보더니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부자리를 잡아당겨 허리에 감은 채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들어섰다.“오빠 왜 그래요?”정안이 다른 이불을 끌어다가 몸에 걸치고 화장실 문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꺼져!”남하준이 노호하더니 곧 물소리가 들려왔다.정안은 완전히 얼빠졌다.“오빠 나 완자예요. 백완자. 오빠 아내.”“꺼지라니까!”정안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남하준은 한 번도 그녀에게 이렇게 모질게 말한 적이 없었다.설마 늦게 왔다고 화난 걸까?아니면 술에 취한 그를 잘 돌보지 못하고 유미의 손에 넘어갈 뻔했다고 화난 걸까?정안은 눈물이 핑 돌았고 갖은 추측에
정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이튿날 아침.정안은 일어나서 깨끗이 씻고 시간을 보고는 옆방에 있는 남하준에게 가보려 했다.그녀가 문을 열자마자 문 앞에 꼼짝 않고 서 있는 남하준을 보고는 놀라서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반짝이는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제 진짜 정신이 들어요?”정안이 조곤조곤 놀렸다.“진짜 너였어?”“당연하죠. 환각인 줄 알았어요?”“얼마든지 환각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잖아.”“아직도 힘들어요?”“응.”남하준은 가볍게 내뱉더니 그녀를 방으로 밀어 넣었고 방문을 닫았다.그는 정안의 몸을 안아 올리고 고개를 젖혀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침대로 향했다.정안은 하룻밤이 지나면 약효가 거의 없어질 거로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그는 계속 참고 있을 뿐 약효가 떨어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두 사람은 호텔 방의 큰 침대에서 열정적으로 한참을 뒤척였다.정안은 몸이 나른하고 팔다리에 힘이 없고 피곤해서 잠이 올 것 같았다.식사도 룸서비스를 시켜 방에서 해결했다.경찰서 안.유미는 꼬박 하루를 갇혔지만 경찰은 그녀를 놓아줄 의사가 없었다.저녁이 되자 남하준이 유동진과 함께 유미를 보러 경찰서에 왔다.경찰이 남하준에게 입건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일단 입건되면 유미는 감옥에 갈 것이다.비록 형기가 길지는 않지만 전과 기록이 생기고 전도에 영향 주고 3대가 공무원이 될 수 없을 것이다.조사실.남하준과 유동진이 유미의 맞은편에 앉았고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초췌하고 쇠약한 모습이었다.유동진은 안쓰러워 눈물을 훔쳤다.“유미야. 대체 왜 그랬어? 뭘 얻으려고? 하준이는 너 안 좋아한다고. 정말 너에게 마음이 없는데 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그럼 오빠인 나도 도와줄 수가 없잖아? 왜 계속 내 친구를 괴롭히냐고? 하준이는 가정도 있고 아이도 있어. 넌 하준이가 행복하기를 원해? 아니면 고통받기를 원해? 너 왜 이렇게 이기적이니?”“말끝마다 하준이 사랑한
유미가 울먹였다.“나 안 아파!”“그럼 입건이야.”남하준이 차갑게 말하자 유동진이 당황해서 소리쳤다.“유미야. 대체 언제까지 미친 짓 할래? 하준이가 넓은 아량으로 살 길을 마련해 주었는데 왜 계속 버텨? 치료하지 않을 거면 그냥 감방에서 썩어!”유미는 아래 입술을 깨물고 뺨의 눈물을 닦으며 강인한 눈빛으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하나만 물어볼게. 솔직히 대답해줘.”“좋아.”유미가 생각하더니 물었다.“네 아내와 아들을 걸고 맹세해.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모두 진실이라고.”남하준이 그녀의 뜻대로 사실만을 말하겠다고 처자식을 걸고 맹세하자 유미는 그제야 만족하고 물었다.“만약 백완자가 없었다면 내게 희망이 있는 거야?”남하준은 생각도 않고 내뱉었다.“만약 완자가 없다고 해도 난 너 좋아하지 않았을 거고 우리가 함께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어. 정확히 말해, 이 세상에 여자가 너 하나뿐이라고 해도 네가 아니라 차라리 네 오빠를 선택했을 거야.”유동진은 입을 떡 벌리고 놀라서 몸을 떨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유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울부짖기 시작했고 남하준은 유동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의 뜻을 표했다.유미는 한바탕 울고 나서 결국 후자를 선택했고 경찰서에서 나와 남하준과 유동진에 의해 바로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다.병원을 떠날 때, 유동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세상에 여자가 많아서 다행이야. 아니면 내가 네 매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동성을 사랑하게 됐겠지.”남하준이 주먹을 쥐고 그의 가슴을 세게 치자 유동진은 가슴을 가리고 아픈 표정을 지었다.“네 동생 단념시키려고 한 말인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유동진이 웃으며 비꼬았다.“뭐야? 나 그 말에 설렐 뻔했어.”남하준이 뒤에 있는 정신병원을 가리켰다.“네 동생이랑 함께 병원에 보내줄까?”유동진은 급히 정색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아니. 장난이야. 난 여자 좋아해. 취미도 여자고 취향도 여자야.”“가자. 데려다줄게.”남하준이 차 키를 꺼내
유미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지 사흘 만에 구인아가 백씨 가문에 찾아왔다.남하준은 공무로 외출 중이었고 백진이 그녀를 접대했다.정안은 선샤인 하우스에서 꽃을 잘라 안고 들어왔다.방문 앞 정원 앞에는 낯선 남자의 뒷모습이 쭈그리고 앉아 백건에게 말을 걸었고 도우미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정안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걸어갔다.다가가자 선우석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그녀는 심장이 움찔하고 긴장해서 오금이 저려 손에 든 꽃을 홱 뿌리치고 황급히 달려가 백건을 품에 꼭 안은 채 경계하며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았다.선우석은 어안이 벙벙하여 정안의 매서운 눈초리를 마주치자 음산하게 웃으며 천천히 일어섰다.도우미가 긴장해서 말했다.“아가씨, 왜 그러세요?”정안은 백건을 도우미에게 맡기고 차갑게 명령했다.“지금 당장 건이 데리고 들어가세요. 앞으로 절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게 두지 마시고요. 특히 눈앞에 있는 이 사람.”도우미가 백건을 받아 안고 서둘러 떠났다.선우석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좀 섭섭하네. 이미 본 지가 몇 번인데 나 낯선 사람 취급하지?”“당신 어떻게 들어왔어? 누가 들여보냈어?”정안이 화를 참고 묻자 선우석이 느릿느릿 다가갔다.“저번에 나 발로 찬 일에 대해서 아직 추궁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날카롭게 굴면 어쩌나? 난 정정당당하게 차 몰고 들어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정안은 그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긴장하여 뒤로 물러섰다.그가 백인호라는 사실은 이미 확실했지만 증거가 없었다.이렇게 위험한 인물은 테러리스트보다 더 무서웠다.남하준이 류청을 데리고 나갔고 집에도 다른 경호원이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집사님!”정안이 집을 향해 소리치자 집사가 급히 걸어 나왔다.“네. 아가씨.”“이 사람 당장 쫓아내세요.”정안이 명령하자 집에서 나오던 구인아가 화를 내며 물었다.“백씨 집안은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접하나?”정안이 고개를 돌려보니 구인아가 그녀의 할아버지를 모시고 문을 나서는 것이
정안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정말 자기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나대는 여자였다.정안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인아 씨 아버지께서도 이렇게 분별없는 말은 하지 못하실 거예요. 남편이 아직 정통의 자리에 앉지도 못했는데 벌써 이렇게 날뛰다니. 만약 나라가 정말 당신 남편 손에 넘어간다면 얼마나 참혹하겠어요.”구인아는 이를 악물고 정안의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악독하게 말했다.“백완자. 너 두고 봐.”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고 선우석은 뜨거운 눈빛으로 정안을 잠시 바라보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껌딱지처럼 구인아의 뒤를 따라 떠났다.백진이 정안의 곁에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다. “완자야. 너 괜찮아?”정안은 마음을 가다듬고 백진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들어가며 당부했다.“할아버지. 앞으로 어떤 이유로든 절대 선우석 부부를 집에 들여보내시면 안 돼요. M국에서는 아직 하준 오빠에게 감히 미움을 살만한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할아버지는 더욱 완강한 태도를 보이셔도 돼요.”백진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랑스레 말했다.“그래. 네 말대로 하마. 하준이가 지켜준다면 우린 누구도 두렵지 않아.”정안은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대선이 다가올수록 남하준은 더욱 바삐 돌아쳤다.정안은 국경으로 갈 준비를 시작했고 몇 달 동안 중단했던 업무도 서서히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곧이어 정안은 905 공정의 영입 임명 협의서를 받았고 그녀는 수석 엔지니어 겸 지도 고문으로 임명되었다.이번 공사 책임자 명단에서 그녀는 류강우의 이름을 보았다.유미의 동창이자 2팀의 팀장, 전문 지식은 부족하지만 인맥이 탄탄한 팀장이었다.그가 있는 한, 이 프로젝트의 명단 심사가 충분히 엄격하지 않은 것 같았다.스케줄이 달라 정안은 아들을 데고 먼저 국경으로 가서 빨리 905 공정에 투입해야 했고 남하준은 수도에 머물며 대선까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떠나기 전날, 정안은 남하준과 함께 아들을 보여주러 시댁에 갔다.남씨 가문 별장의 거실.허윤미가 손자를
남하준은 참지 못하고 다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그래. 조심할게.”이 장면을 마침 아래층으로 내려오던 남영준과 최서윤이 보았고 최서윤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그녀는 소파에 와서 앉더니 아이도 보지 않고 시부모님께 인사도 하지 않고 마치 온 세상이 그녀에게 빚진 것처럼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정안이 다급히 남하준의 품에서 벗어나 똑바로 앉아 인사했다.“형님.”남영준이 뒤에서 걸어오며 활짝 웃었다.“두 사람 왔어?”“네. 형.”남영준과 정안이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했고 남영준은 부모님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즐겁게 웃었다.최서윤은 불쾌한 듯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정안을 보았다.“형수 눈이 불편해요?”남하준이 차갑게 묻자 최서윤은 꾹 참으며 냉소를 지었다.“도련님 참 자기 아내를 아끼네요. 눈빛 하나도 용납 못 해요?”남하준이 날카롭게 말했다.“알았으니 앞으로 태도에 주의해 주시죠.”남영준과 부모님은 어안이 벙벙하여 천천히 그들을 바라보았고 정안이 재빨리 남하준의 손을 잡고 슬쩍 당겼다.“나 괜찮으니까 그러지 말아요.”“난 늘 이런 태도였어요. 도련님 아내가 괴롭힘당하는 것 같으면 앞으로 집에 데려오지 마시죠. 난 완자가 특히 눈에 거슬려서 말이에요.”남하준의 태도가 더욱 강경해졌다.“완자는 한 번도 형수님에게 미움을 산 적이 없을 텐데요?”최서윤은 가슴에 두 손을 두른 채 소파에 기대고 오만하게 말했다.“그게 뭐요? 사람 싫어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나?”이 집에서 남창민과 허윤미는 항상 평화를 지상 하는 마음으로 평소에도 아들과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그들은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또 최서윤의 거만한 태도에 익숙해져 아이를 안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남영준은 항상 최서윤의 기에 눌려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그의 이런 성격 때문에 최서윤이 집에서 이토록 거리낌이 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하지만 남하준은 최서윤을 내버려 두지 않고 따져 물었다.“이유가 없는 게 확실해?”순간 남
최서윤은 침묵했다.그녀는 반박하지 않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재산 분할은 똑바로 해. 나 언제든지 시간 있어.”말을 마친 최서윤은 차가운 얼굴로 올라갔고 남영준은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통스럽게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옆쪽 단풍나무 숲 별장 오두막, 남하준과 정안이 문을 두드렸다.도우미가 문을 열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도련님, 사모님. 오셨어요?”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걸어 들어갔다.남태준은 한창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있었다.두 사람이 헬스장 입구에 도착하자 정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태준 오빠.”남태준이 버튼을 만지작거리다가 기계를 끄고 물었다.“완자야?”“맞아요. 나예요.”정안이 웃으며 대꾸하자 남태준이 앞을 더듬으며 정안에게 다가갔고 정안이 그를 잡아주려고 손을 뻗었다.그러자 남하준이 정안의 손을 홱 잡아당기고는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남태준은 남하준의 손을 만진 순간 떨떠름하더니 피식 웃었다.“하준이도 왔어?”남하준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형 이젠 손으로 사람을 알아봐?”“완자는 나 보러 올 때마다 제일 먼저 와서 내 손을 잡아. 너만 나 라이벌로 생각해서 네 아내 손도 못 만지게 하지.”정안은 몰래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고 남하준은 약간 어색한 듯 남태준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형. 라이벌이라니. 말도 안 돼.”“전에도 그렇고 늘 그랬어 넌.”남하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숨을 내쉬더니 급히 화제를 돌렸다.“요즘 건강은 좀 어때?”그러자 남태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화제 돌릴 생각하지 마.”세 사람이 소파에 앉았지만 남태준은 여전히 남하준을 붙잡고 놀려댔다.“어렸을 때 완자가 너보다 날 더 좋아했잖아. 그래서 넌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고 심지어 나를 연적으로 여겼어.”“형. 점심은 먹었어?”남하준은 머쓱하기도 하고 그런 걸 생각하면 자신이 바보 같아 계속 화제를 돌렸지만 남태준은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완자야. 그렇
경찰이 한 달간 배치한 작전이 오늘로 끝이 났다.산에서 거대한 독극물 재배 기지와 원자재가 발견되었고 2t의 현물도 압수되었다.남태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촬영기지의 투자자 육건우는 체포되어 입건되었다.다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그의 변호사가 와도 보석으로 풀려날 수 없었다.취조실.남태준은 쇠 옥에 갇힌 육건우를 향해 말했다.“침묵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에요. 당신이 말을 하든 안 하든 증거가 확실하다면 마찬가지로 형을 선고할 수 있어요.”육건우는 피식 웃더니 조금의 당황함도 없이 여유작작한 모습이었다.경찰이 아무리 검문해도 침묵으로 일관했다.“대장님, 잠깐 나와보셔야겠어요.”취조실 문이 열리면서 오신우가 그를 불렀다.남태준이 일어나서 떠나려고 할 때, 육건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남태준, 난 그저 평범한 영화 투자자일 뿐이야. 마약 같은 거에 손댄 적 없으니까 나 풀어줘.”남태준은 얼굴이 어두워져서 육건우를 돌아보니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눈가에 냉기가 돌았다.남태준이 나가 문을 닫는 순간 오신우가 긴장해서 말했다.“대장님. 지성이가 신고하러 왔어요.”“지성이가?”남태준이 긴장하며 얼굴을 찡그리자 오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남태준은 밖으로 나가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일이야?”“누나가 실종됐대요.”오신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태준은 황급히 달려나갔다.그는 달려가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종일 꺼둔 전원을 켰다.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고 그중에 지성도 있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경찰 프런트 데스크에서 뛰쳐나왔고 표정은 엄숙하고 무거웠다.지성은 남태준을 보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더욱 초조해서 말했다.“형...”남태준이 다급히 물었다.“지우가 왜?”지성은 눈시울이 흠뻑 젖은 채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누나가 아침에 장 보러 간다고 나갔다가 계속 집에 안 돌아왔어요. 누나 스쿠터는 길바닥에 쓰러져있는데 사람은 안 보여요.”그때 옆에
남태준은 경찰서로 돌아와 밤새 배치하고 새벽 4시에 많은 경찰 병력을 이끌고 이웃 마을 산꼭대기의 영화기지를 공격했다.산꼭대기에 가까운 사람들은 늦은 밤 총소리에 잠이 깼다.날이 밝자 많은 경찰차가 정적을 울렸고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났다.지우가 한창 단잠에 빠져있는데 송수빈의 전화에 잠이 깼다.지우가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송수빈의 전화를 받자 송수빈은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지우야. 지우야. 얼른 인터넷 확인해봐. 세상에. 우리 마을에서 큰 뉴스가 났어. 어젯밤 얼마나 짜릿했는 줄 알아?”“우리 마을에서?”지우는 일어나 게슴츠레한 눈을 비볐고 송수빈이 황급히 수정했다.“아니. 우리 마을 아니고 옆 마을. 산에 있는 촬영기지 있잖아. 새벽 4~5시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경찰차가 잔뜩 오가고 난리가 났대.”새벽 4~5시? 지우는 남태준 생각이 나서 군말 없이 송수빈의 전화를 끊고 남태준의 휴대전화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전원이 꺼진 상태였다.지우는 그가 임무를 나갈 때 전원을 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마음이 조마조마해진 그녀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인근의 기사를 검색했다.지우는 아침 내내 걱정하며 전화도 여러 번 했다.정오가 되자 지성이 밖에서 돌아와 득의만면한 얼굴로 물을 따라 마시더니 흥분해서 말했다.“누나! 육건우가 잡혔대. 하늘도 양심이 있지.”“육건우가 잡혔다고?”지우가 긴장하며 물었다.“마약 형사한테 잡혔대? 태준 씨는 괜찮아?”“누나 남자친구 괜찮던데? 내가 방금 육건우가 묵고 있는 호텔 입구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태준이 형이 경찰 몇 명과 함께 육건우를 경찰차에 태우는 걸 봤어.”아침 내내 근심하던 지우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육건우는 잡히면 사형 아니면 종신형이야. 네가 진 빚도 갚지 않아도 돼.”지성이 흥분해서 말했다.“그러니까 말이야. 죽어도 싸지 뭐.”“이번 사건으로 교훈을 얻어서 다시는 도박 하지 말고 착실하게 살아.”지성은 테이블에 있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소
남태준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가 내게 선물한 반지 같아서 질투하고 기분 나빴던 거야?”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이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흥분하며 지우의 몸을 덥석 껴안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너도 나 좋아하지? 그래서 신경 쓰고 있는 거지?”“맞아요. 나 당신 좋아해요. 그 반지 돌려주면 안 돼요? 더 이상 갖고 있지 말아요. 네?”“지우야.”남태준은 흥분하는 말투로 달랬다.“다시 한번 말해주면 안 될까?”지우는 순순히 중복했다.“그 반지 돌려주라고요.”남태준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긴장해서 말했다.“그거 말고 첫 마디.”지우는 얼굴이 화끈거려 그의 가슴팍에 묻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수줍게 말했다.“좋아해요. 태준 씨.”“나도 너 좋아해.”남태준은 크게 흥분하여 매력적인 목소리로 지우의 귓가에 속삭였다.“사랑해. 지우야.”“그럼 그 반지는...”남태준이 바로 말을 끊었다.“그거 임다희가 준 반지 아니야.”지우가 호기심에 고개를 들고 물었다.“그럼 누구 거예요?”“그때 큰 마약 조직을 잡으면서 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물건도 압수했지만 배후의 보스만 잡지 못했어. 그 신비로운 배후의 보스는 다들 준영이 형이라고 부르는데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어.”“그 반지는 그 사람이 잠자리에 들 왕비로 선택받은 중요한 증거야. 그것만 있으면 그 사람 배에 탈 수 있거든.”지우는 충격적인 표정으로 남태준을 밀어내고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남색을 팔아 접근했던 거예요?”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난 선택받았지만 그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신분이 폭로됐어.”“만약 폭로되지 않았다면...”지우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용기가 없었고 남태준은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그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쯤 아마 감옥에 갇혔겠지.”지우가 호기심에 물었다.“그 사람은 잠자리에서 어떤 역할인데요?”남태준은 미간을 잔
지우는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다른 서랍을 잽싸게 뒤지고 양말과 팬티를 챙긴 다음 옷장 문을 닫고 황급히 남태준의 집을 떠났다.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그녀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했지만 그럴수록 바늘에 가슴이 찔리는 듯 아파졌다.지우가 다시 병원에 돌아왔을 때 남태준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짐가방을 가볍게 내려놓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의 옆을 지켰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을 보고 또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보며 마음속으로 서글퍼졌다.‘임다희는 몇 번이나 당신을 해쳤는데 왜 그 여자가 준 반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전에는 당신을 죽일 뻔했고 지금은 당신을 이렇게 괴롭게 만들었는데 왜 계속 마음속에 그 여자 자리가 있냐고요.’지우는 생각할수록 슬퍼져서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그의 큰 손 옆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녀의 손은 저도 모르게 천천히 남태준의 따뜻한 큰 손을 만졌고 천천히 그와 손깍지를 꼈다.지금의 지우는 너무 불안하고 조금의 안정감도 느끼지 못했다.남태준이 아직도 임다희를 사랑할까 봐 두려웠다.남태준은 은은히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에 천천히 눈을 떴다.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하자 지우의 거뭇거뭇한 머리가 그의 곁에 엎드려 자는 것이 보였다.여자의 손이 그와 맞닿았다.남태준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가 금방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남태준은 달콤한 행복에 마음이 꽉 채워진 것 같았고 손바닥을 천천히 조여 여자의 부드럽고 작은 손과 더 단단하게 밀착시킨 후 다시 눈을 감았다.조용한 병실에서 지우의 존재가 가져다준 따뜻한 행복에 남태준은 그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그날 밤, 남태준은 몸 안의 약효가 빠지자 서둘러 퇴원절차를 마쳤다.지우는 그에게 하루 더 병원에 머물며 지켜보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새벽 네 시에 중요한 임무가 있어서 지금 서둘러 경찰서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남태준은 지우가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그녀의
지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병원에 병 보러 오지 왜 왔겠어? 갑자기 왜 태준 씨를 물어?”임다희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확인했다.“태준이가 당신 안 찾았어?”“아니.”지우가 고개를 젓자 임다희는 가볍게 웃었다.“그쪽이 아니라면 대체 누굴 찾아갔을까?”“그게 무슨 말이야?”지우가 일부러 이해가 안 가는 척 묻자 임다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두 사람 재결합한 거 맞지?”지우는 침묵했다.임다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조롱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두 사람 다시 만나는 거 아니까. 태준이가 당신을 찾지 않은 건 아마 약효가 너무 강해 당신 같은 여린 몸을 망쳐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여자를 찾아 해결했나 보네.”“약효가 너무 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지우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녀를 만족시켜줬다.임다희는 속이 편안해지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이 시간에 당신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지우의 안색이 확 가라앉았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앞의 이 악랄한 여자를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남태준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고 무슨 염치로 지금 까불고 있을까?만약 남태준이 그녀가 임다희와 정면충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지우는 절대 임다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남태준의 뜻에 따라 얌전하고 철든 여자친구가 되어야 했다.지우는 괴로운 척 연기하며 겨우 눈물 한 방울을 짜냈다.임다희는 그녀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한 감정을 잠재우고는 실소를 터뜨렸다.“이게 당신들 사랑이야? 하하. 우습네!”그녀의 비아냥거림과 함께 차 문이 닫히고 차량이 서서히 빠져나갔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택시를 잡아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태준을 걱정했다. 그의 옷이 흠뻑 젖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지우는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고는 남태준의 집에 가서 깨끗한 옷 몇 벌을 챙기려 했다.
잠시 후 한 남자 의사가 들어와 남태준이 평온하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효과가 조금은 있네요.”말을 마친 그는 남태준의 아랫도리를 보더니 한마디 보탰다.“하지만 효과가 만족스럽지는 않네요. 휴. 환자분 물 많이 주시고 약효가 천천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의사는 자리를 떠났고 지우는 급히 미지근한 물을 붓고 남태준의 아랫배를 슬쩍 쳐다봤다.병원의 이불이 너무 얇은 편도 아니었는데 남태준의 아랫배가 여전히 부풀어 올랐다.지우는 속으로 욕했다.‘늑대 같은 임다희! 빌어먹을!’“태준 씨. 물 좀 마셔요.”지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남태준이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뜨고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자 지우가 서둘러 그의 등을 부축해 주었다.“아직도 힘들어요?”지우가 관심하며 묻자 남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나 이제 괜찮으니까 너 집에 가서 쉬어.”“싫어요. 여기 있을래요.”남태준은 눈을 감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돌아가라고.”“혹시 무슨 일 생겼는데 옆에 돌봐줄 사람 없으면 어떡해요?”“여기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으니까 나 괜찮아.”“그래도 난 여기 있고 싶다고요.”남태준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천천히 뜨고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몸 안의 불은 꺼졌지만 탄소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어. 넌 탄소 더미 옆의 디젤과 같아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비유를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남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지우는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여기 머무르는 게 어쩌면 그의 안정과 회복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좋아요. 나 먼저 갈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줘요.”“그래.”지우는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1층 로비에서 매니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약을 받는 임다희를 만났다.지우는 재빨리 기둥 뒤에 숨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허리와 다리를 다친
지우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옆집에서 종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매번 거래가 있을 때면 이웃 할아버지는 종돈에게 독한 약을 먹였고 약을 먹은 종돈은 열 몇 마리의 암퇘지와 교배를 했다.그녀는 그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처절하고 끔찍한 돼지 울음소리는 그녀 어린 시절의 악몽이었다.정신이 번쩍 든 지우는 두말없이 펑 하고 문을 닫았다.갑작스레 문을 닫는 모습과 지우의 창백한 얼굴, 당황하는 모습에 남태준은 피식 웃었다.지우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았고 15분 후, 남태준은 지우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응급실에 가서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의사가 남태준 옆에 있는 지우를 가리키며 물었다.“환자분 여자친구예요?”남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여동생이에요.”지우는 마음이 뭉클했다. 남태준은 스스로 고통을 참을지언정 그녀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여자친구 있어요?”“없어요.”“내가 주소를 줄 테니 가서...”의사가 간단한 방법을 추천하려 하자 남태준이 엄숙하게 말했다.“나 경찰입니다.”의사는 말을 뚝 그치고 긴장된 듯 침을 삼키더니 웃어 보이며 애써 둘러댔다.“그러니까 제 말은 이런 경우 의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도 해독제가 없어요.”“진정제 놔주세요. 진정제가 안 되면 마취제라도...”“그런 약은 함부로 처방할 수 없고 일정한 수치에 도달해야 처방할 수 있어요. 환자분 같은 경우는...”의사는 난처해하더니 남태준의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강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고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진정제 놓아드리겠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거예요. 그저 괴로움을 조금 억제하는 정도예요.”“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롭게 참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다른 약도 같이 처방해 드릴게요.”의사가 약을 처방하며 말했다.“여자친구도 없고 그런 서비스도 받기 싫다면 여동생분께 성인 가게에 가서 사달라고 하세요.”지우는 이렇게 난처한 적이 없었다.
지우가 만약 숫처녀라면 아마 고생할 것이다.남태준은 생각하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러 의사를 찾아 해결할 생각이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이얼을 돌리려던 순간,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지우가 다급하게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태준 씨?”남태준은 움찔 놀랐다. 뜨거운 눈으로 지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니 입이 바짝 마르고 욕망이 최고조에 달했다.지우는 남자가 머리와 몸이 흠뻑 젖어 숨도 약간 헐떡이는 것을 보고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타오를 듯한 고온에 지우는 화들짝 놀랐다.“태준 씨 열 나요.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남태준은 꾹 참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운전할 줄 알아?”“아니요.”지우가 긴장하며 말했다.“방금 택시 타고 왔어요. 택시 타고 병원에 데려다줄게요.”택시?남태준은 자신이 통제 불능이 되어 택시에서 무슨 엉뚱한 짓을 할지 몰라 걱정했다.지우는 휴지를 뽑아 그의 볼과 목의 물기를 닦아 줬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기, 손바닥의 부드러움은 치명적인 유혹처럼 그를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들고 싶게 만들었다.“지우야.”남태준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감고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도 못하며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말했다.“방금 다희를 만났어.”지우는 땀을 닦는 동작을 멈추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티 나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요?”“그리고 이렇게 됐어. 너무 괴롭고 답답해 죽을 것 같아.”남태준은 침을 삼키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지우의 시선은 그의 고통스러운 안색에서 내려와 그의 가슴팍을 보니 기복이 아주 심했고 더 아래로 내려가니 운전석에 앉아도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다희가 약을 먹였어요?”지우는 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어쩔 줄 몰랐다.그러자 남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어떡해요?”지우는 부랴부랴 고개를 내밀어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살폈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그건 지난번에 이미 설명했잖아.”“그 사람 내가 만나야겠어. 주소와 연락처 줘.”“없어.”임다희는 냉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내가 그렇게 큰 단서를 줘서 네가 공을 세웠는데 넌 내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이 이런 태도로 날 심문해?”“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너 경찰서로 데려가 어떻게 해서 그 단서를 얻었는지 조사할 거야. 너 절대 쉽게 못 벗어나.”임다희는 피식 웃더니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정말 어이가 없어.”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 술을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알코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점차 뜨거움으로 번지고 일부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며 의식이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컵을 보더니 와인을 바라보았다.컵은 닦았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문제는 아마 개봉하지 않은 것 같은 와인에 있을 것이다그가 방심했다.남태준은 더 이상 임다희를 캐묻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말없이 성큼성큼 돌아서서 가버렸다.“태준아!”임다희가 급히 뒤쫓아가 남태준을 뒤에서 덥석 끌어안고 두 손을 놓지 않았다.“가지 마. 태준아. 사랑해.”임다희는 와인에 매우 강한 약을 넣었다. 소 열 마리라도 이 약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남태준의 경계하고 신중한 성격을 알고 일부러 와인에 약을 넣은 다음 개봉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이거 놔.”남태준은 화를 꾹 참고 나지막이 명령했지만 임다희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그의 몸을 더 꽉 껴안고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문지르며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임다희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겨 어깨너머로 세게 넘어뜨렸다.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임다희의 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초라했다.“내일 다시 봐.”남태준은 매섭게 말하고는 방에서 사라졌다.그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