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정말 자기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나대는 여자였다.정안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인아 씨 아버지께서도 이렇게 분별없는 말은 하지 못하실 거예요. 남편이 아직 정통의 자리에 앉지도 못했는데 벌써 이렇게 날뛰다니. 만약 나라가 정말 당신 남편 손에 넘어간다면 얼마나 참혹하겠어요.”구인아는 이를 악물고 정안의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악독하게 말했다.“백완자. 너 두고 봐.”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고 선우석은 뜨거운 눈빛으로 정안을 잠시 바라보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껌딱지처럼 구인아의 뒤를 따라 떠났다.백진이 정안의 곁에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다. “완자야. 너 괜찮아?”정안은 마음을 가다듬고 백진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들어가며 당부했다.“할아버지. 앞으로 어떤 이유로든 절대 선우석 부부를 집에 들여보내시면 안 돼요. M국에서는 아직 하준 오빠에게 감히 미움을 살만한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할아버지는 더욱 완강한 태도를 보이셔도 돼요.”백진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랑스레 말했다.“그래. 네 말대로 하마. 하준이가 지켜준다면 우린 누구도 두렵지 않아.”정안은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대선이 다가올수록 남하준은 더욱 바삐 돌아쳤다.정안은 국경으로 갈 준비를 시작했고 몇 달 동안 중단했던 업무도 서서히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곧이어 정안은 905 공정의 영입 임명 협의서를 받았고 그녀는 수석 엔지니어 겸 지도 고문으로 임명되었다.이번 공사 책임자 명단에서 그녀는 류강우의 이름을 보았다.유미의 동창이자 2팀의 팀장, 전문 지식은 부족하지만 인맥이 탄탄한 팀장이었다.그가 있는 한, 이 프로젝트의 명단 심사가 충분히 엄격하지 않은 것 같았다.스케줄이 달라 정안은 아들을 데고 먼저 국경으로 가서 빨리 905 공정에 투입해야 했고 남하준은 수도에 머물며 대선까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떠나기 전날, 정안은 남하준과 함께 아들을 보여주러 시댁에 갔다.남씨 가문 별장의 거실.허윤미가 손자를
남하준은 참지 못하고 다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그래. 조심할게.”이 장면을 마침 아래층으로 내려오던 남영준과 최서윤이 보았고 최서윤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그녀는 소파에 와서 앉더니 아이도 보지 않고 시부모님께 인사도 하지 않고 마치 온 세상이 그녀에게 빚진 것처럼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정안이 다급히 남하준의 품에서 벗어나 똑바로 앉아 인사했다.“형님.”남영준이 뒤에서 걸어오며 활짝 웃었다.“두 사람 왔어?”“네. 형.”남영준과 정안이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했고 남영준은 부모님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즐겁게 웃었다.최서윤은 불쾌한 듯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정안을 보았다.“형수 눈이 불편해요?”남하준이 차갑게 묻자 최서윤은 꾹 참으며 냉소를 지었다.“도련님 참 자기 아내를 아끼네요. 눈빛 하나도 용납 못 해요?”남하준이 날카롭게 말했다.“알았으니 앞으로 태도에 주의해 주시죠.”남영준과 부모님은 어안이 벙벙하여 천천히 그들을 바라보았고 정안이 재빨리 남하준의 손을 잡고 슬쩍 당겼다.“나 괜찮으니까 그러지 말아요.”“난 늘 이런 태도였어요. 도련님 아내가 괴롭힘당하는 것 같으면 앞으로 집에 데려오지 마시죠. 난 완자가 특히 눈에 거슬려서 말이에요.”남하준의 태도가 더욱 강경해졌다.“완자는 한 번도 형수님에게 미움을 산 적이 없을 텐데요?”최서윤은 가슴에 두 손을 두른 채 소파에 기대고 오만하게 말했다.“그게 뭐요? 사람 싫어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나?”이 집에서 남창민과 허윤미는 항상 평화를 지상 하는 마음으로 평소에도 아들과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그들은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또 최서윤의 거만한 태도에 익숙해져 아이를 안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남영준은 항상 최서윤의 기에 눌려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그의 이런 성격 때문에 최서윤이 집에서 이토록 거리낌이 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하지만 남하준은 최서윤을 내버려 두지 않고 따져 물었다.“이유가 없는 게 확실해?”순간 남
최서윤은 침묵했다.그녀는 반박하지 않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재산 분할은 똑바로 해. 나 언제든지 시간 있어.”말을 마친 최서윤은 차가운 얼굴로 올라갔고 남영준은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통스럽게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옆쪽 단풍나무 숲 별장 오두막, 남하준과 정안이 문을 두드렸다.도우미가 문을 열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도련님, 사모님. 오셨어요?”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걸어 들어갔다.남태준은 한창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있었다.두 사람이 헬스장 입구에 도착하자 정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태준 오빠.”남태준이 버튼을 만지작거리다가 기계를 끄고 물었다.“완자야?”“맞아요. 나예요.”정안이 웃으며 대꾸하자 남태준이 앞을 더듬으며 정안에게 다가갔고 정안이 그를 잡아주려고 손을 뻗었다.그러자 남하준이 정안의 손을 홱 잡아당기고는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남태준은 남하준의 손을 만진 순간 떨떠름하더니 피식 웃었다.“하준이도 왔어?”남하준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형 이젠 손으로 사람을 알아봐?”“완자는 나 보러 올 때마다 제일 먼저 와서 내 손을 잡아. 너만 나 라이벌로 생각해서 네 아내 손도 못 만지게 하지.”정안은 몰래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고 남하준은 약간 어색한 듯 남태준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형. 라이벌이라니. 말도 안 돼.”“전에도 그렇고 늘 그랬어 넌.”남하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숨을 내쉬더니 급히 화제를 돌렸다.“요즘 건강은 좀 어때?”그러자 남태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화제 돌릴 생각하지 마.”세 사람이 소파에 앉았지만 남태준은 여전히 남하준을 붙잡고 놀려댔다.“어렸을 때 완자가 너보다 날 더 좋아했잖아. 그래서 넌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고 심지어 나를 연적으로 여겼어.”“형. 점심은 먹었어?”남하준은 머쓱하기도 하고 그런 걸 생각하면 자신이 바보 같아 계속 화제를 돌렸지만 남태준은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완자야. 그렇
시댁 식구들을 본 후 정안은 아이를 데리고 남하준을 따라 친정으로 돌아갔다.지윤이 이미 짐을 다 싸놓았고 내일 국경으로 출발할 것이다.그날 밤, 수 없는 엎치락뒤치락 끝에 정안은 피곤해 잠이 들었지만 남하준은 마음이 울적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품에 안긴 채 잠든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그녀를 미리 국경으로 보내는 것은 반드시 선거 전에 백인호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이번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라서 그녀와 아이가 안성에 있으면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룹의 경비가 삼엄하니 어쨌든 안성보다는 나았다.이튿날 아침.남하준은 직접 정안과 아이를 군용기에 태웠다.헤어지기 전, 정안은 참지 못하고 그를 꼭 껴안고는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한마디 속삭였다.“기다릴게요.”남하준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금방 갈게.”정안의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애써 미소 지으며 덤덤한 척했다.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보면서 남하준의 마음도 마침내 조금 안정되었다.몇 시간의 비행 끝에 국경 군용 비행장에 착륙했다.군전 그룹과는 차로 30여 분의 거리가 있어 군용 차량이 이미 정안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정안은 아이를 안고 지윤은 짐을 끌고 군용차로 향했다.가까이 가서 마중 나온 사람을 본 정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류강우가 웃으며 맞이했다.“사모님.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팀장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죠?”정안이 두리번거리자 류강우가 공손하게 말했다.“도련님께서 사모님을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차 문을 열어주었다.“들어가시죠.”정안이 아이를 안고 들어가 앉았고 지윤도 짐을 넣고 뒷좌석에 따라 앉았다.류강우가 시동을 걸고 비행장을 떠났고 차 안에서 류강우가 호기심에 물었다.“제가 들은 소식에 의하면 사모님께서 이번 프로젝트 수석 엔지니어라고 하시던데 사실인가요?”“네.”정안이 덤덤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려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았다.류강우는 감개무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지윤은 총탄 속에서 뛰어내렸다.모두 도로변으로 달려가 경사면 아래의 정글을 겨냥하여 한바탕 소사했다.놀란 정안은 제자리에 철퍽 쓰러져 펑펑 우는 아이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이런 소사에도 지윤은 살 수 있을까?정안은 경사면 아래의 상황을 볼 용기가 없었고 지윤의 안위를 걱정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데려가.”류강우의 명령이 떨어지자 정안이 총기를 든 건장한 남자들에 의해 다른 차에 태워졌다.그녀는 천천히 눈물을 닦으며 품에 안긴 아들을 달랬다.정안은 그들에 의해 한 민가로 끌려갔고 곧 음식과 물 그리고 분유와 기저귀가 배달되었다.이튿날 아침.그녀는 눈이 가려진 채 자동차에 올라타 한 시간쯤 달려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정안은 대략적인 위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아직 국경 근처에 있지만 군전 그룹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정안은 하얀 유럽식 별장에 갇혔는데 바깥 화원에 튤립이 가득 심겨 있고 입구에는 총을 든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그녀는 아들과 함께였기에 감히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부지한 다음 남하준의 구원을 기다렸다.남하준이 그녀와 아이를 구하러 올 것이라고 믿었고 지윤도 절대 죽지 않았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지윤은 이제 막 결혼했고 인생의 새로운 서막이 새로 펼쳐졌으니 절대 죽을 수 없었다.지윤이 죽으면 류청은 어떡할까?정안은 이런 저러한 생각에 몰래 눈물을 훔쳤다.일주일 넘게 구금되었지만 그녀를 구하러 온 남하준도 보이지 않았고 백인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대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정안은 백인호가 당선되기 위해 그녀와 아들을 빌미로 남하준을 협박한다고 추측했다.지금쯤 남하준은 그녀가 실종된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얼마나 그들을 걱정하고 있을까?정안은 생각만 해도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도 마음이 답답했다.아들이 없었다면 그녀는 어떻게 버텼을지 모른다.이날, 정안이 혼자 묵묵히 점심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이어 문을 지키는 남자가 공손하게 말했다.
백인호는 말하더니 후회하며 웃었다.“네가 군전 그룹에 들어가면 다시는 손을 쓸 기회가 없을까 봐 두려웠어. 완자야. 난 널 위해 또 한 번 모험한 거야.”“백인호, 넌 내 할머니를 죽이고 부모님을 몇 년 동안 가두었어. 그렇게 많은 나쁜 짓을 하고도 날 가두면 내가 널 따라갈 거라 생각해? 꿈 깨. 내가 죽어도 넌 내 완전한 시체도 갖지 못해.”선우석은 몸을 곧게 펴고 그녀를 바라보는 뜨거운 눈에는 눈물이 반짝였다.“넌 원래 나 안 좋아했잖아. 난 너 때문에 몇 번이나 위험을 무릅쓰고 널 구해줬어. 정호도 나보고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하는데 넌? 네가 내 맘을 알아?”“알고 싶지 않아.”백인호가 웃으며 일어나 천천히 정안에게 다가갔다.“그러니까 내가 널 가둔 거야. 그렇지 않으면 평생 네 마음을 얻을 수 없으니까.”정안은 아이를 안고 쭈뼛쭈뼛 뒤로 물러섰다.백인호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황급히 몸을 돌려 재빨리 2층으로 뛰어올라 자신을 방에 가두고 문을 잠갔다.당황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그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남하준이 칼을 빼든 이상 M국에서 더 머물 수 없었다....안성 정통부.정통 어르신은 격노하여 탁자 위를 툭툭 치며 어두운 얼굴로 남하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한 달 밖에 안 남았는데 그것도 못 참아? 대체 왜 온 나라를 발칵 뒤집고 민심이 흉흉하게 만들어!”남하준은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엄숙하게 말했다.“임기 동안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시고 정치도 느슨하게 하셔서 외래 세력이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 침투했습니다.”“저도 어르신께서 퇴임한 후에 시작하고 싶었지만 제가 틀렸어요. 지금은 단 1초도 더 기다릴 수 없습니다.”정통 어르신은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계속 노하여 물었다.“그래. 국내의 첩자를 잡으려 하는 건 이해하네! 자네가 류강우 교수를 죽인 것도 이해하고. 하지만 왜 내 사위의 사업을 전부 중단하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바로 수배령을 내리나? 이건 너
블랙 섀도우 본사를 파멸해야만 숨어 있던 첩자들이 두목도 없이 정보 사슬이 끊길 것이다.정통 어르신은 외교문서 뭉치를 들고 남하준 앞에 내동댕이쳤다.“이건 모두 세트리아에서 보내온 규탄문서네. 국제적으로도 규탄하고, 제재하고, 반격하는 문서들이 끊임없이 날아올 거네!”남하준은 더욱 분노했다.“어르신께서는 외교를 잘하시잖아요. 중간에 끼어 행여나 문제를 일으킬까 봐 두려워 몸을 움츠리고 방임하여 우리나라가 계속 퇴보하게 했죠.”“확실히 물러나실 때가 되었네요.”남하준은 마지막 독설을 내뱉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다.정통 어르신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잔뜩 화가 났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직위가 높고 정권이 있는 그에 반해 남하준은 군권을 손에 쥐고 실력이 막강했다.퇴임을 앞둔 그도 남하준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였다.남하준이 정통부를 나서자 류청이 급히 다가가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도련님 괜찮으세요? 어르신 많이 화나셨어요?”남하준이 걸어가며 대답했다.“지금 어르신 기분 신경 쓸 필요 없어. 아직도 소식 없어?”류청이 고개를 끄덕였다.“융단 수사가 일주일째 진행 중이고 범위가 점점 좁혀지고 있어요.”“백인호 찾으면 일단 죽이지 마. 붙잡아 두면 내가 쓸모가 있어서 그래.”남하준이 명령하자 류청이 의문스러워 물었다.“왜요?”남하준이 답하지 않자 류청은 더 이상 캐묻지 못했다.그들이 군용차에 오르자 기사는 차에 시동을 걸고 정통부를 떠났다....하늘에 안개비가 자욱하고 날씨가 점점 추워졌다.백인호는 별장으로 온 후 계속 떠나지 않았다.정안은 그가 대선에 출마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꼈다.하지만 요 며칠 매우 바빠 보였다.그녀를 데리고 M국을 떠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찾고 인맥을 동원하고 있었다.밖은 바람이 세게 불고 날씨가 쌀쌀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어 가시도가 매우 낮았다.방안에서 아들을 재운 정안은 베란다의 유리창 앞에 서서 정원 밖의 경치를 가만히 바라보며 서글퍼졌다.철컥.잠긴 문이 열쇠에 의해
정안은 확고한 눈빛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백인호, 넌 남하준 못 죽여. 넌 그 사람 상대도 안 돼.”백인호는 붉어진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음흉하게 웃었다. 웃다가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한 손으로 정안의 턱을 잡고 그녀의 머리를 치켜올리고는 차가운 눈을 가늘게 뜨고 또박또박 말했다.“그래. 난 상대도 안 돼. 남하준은 한 나라의 장군이지만 난 그저 평범한 시민이지. 하지만 지금 내 손에는 네가 있잖아. 남하준의 약점.”정안은 차갑게 웃으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래도 넌 남하준 못 죽여.”“아니. 틀렸어. 난 지금 당장 남하준을 죽일 수 있어.”백인호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정안은 심장이 턱 막히고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정안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백인호가 부드럽게 말했다.“아이 내려놔. 내가 남하준 만나게 해줄게.”순간, 정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꼼짝도 하지 못하고 가슴이 저렸다.그가 진짜 남하준을 잡았을까?백인호는 그녀의 손에 있는 아기를 빼앗아 아기 침대 위에 놓았다.정안은 긴장한 채 아들을 뺏으려 했지만 백인호에게 팔이 잡혀 밖으로 끌려나갔다.“가자. 지금 당장 남하준 만나게 해줄게.”정안은 놀라서 두 발이 나른했다.별장을 나서니 밖은 안개비가 자욱하고 맑은 바람에 빗물이 섞여 살을 에는 듯한 추위였다.정안은 빗물에 젖어 시야가 흐릿한 채로 백인호에게 끌려갔다.앞쪽 정원의 오솔길을 지나서 뒤뜰의 풀밭으로 돌아갔고 멀지 않은 곳에 큰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큰 구덩이 앞에는 총을 든 남자 두 명이 서 있었고 그 앞에는 낯익은 모습이 묶여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정안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남하준은 입에 천을 물고 묶인 채 그녀가 오는 것을 보고 흥분하여 몸부림쳤다.총을 든 남자가 그를 꼼짝 못하게 꽉 눌렀다.“오빠...”정안은 심장에 큰 구멍이 뚫려 피범벅이 된 것 같았다.뼛속까지 파고드는 아픔이었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하는 두려움이었다.“오빠!”정안이 돌진하려는데 백인호가 그녀의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