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가 울먹였다.“나 안 아파!”“그럼 입건이야.”남하준이 차갑게 말하자 유동진이 당황해서 소리쳤다.“유미야. 대체 언제까지 미친 짓 할래? 하준이가 넓은 아량으로 살 길을 마련해 주었는데 왜 계속 버텨? 치료하지 않을 거면 그냥 감방에서 썩어!”유미는 아래 입술을 깨물고 뺨의 눈물을 닦으며 강인한 눈빛으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하나만 물어볼게. 솔직히 대답해줘.”“좋아.”유미가 생각하더니 물었다.“네 아내와 아들을 걸고 맹세해.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모두 진실이라고.”남하준이 그녀의 뜻대로 사실만을 말하겠다고 처자식을 걸고 맹세하자 유미는 그제야 만족하고 물었다.“만약 백완자가 없었다면 내게 희망이 있는 거야?”남하준은 생각도 않고 내뱉었다.“만약 완자가 없다고 해도 난 너 좋아하지 않았을 거고 우리가 함께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어. 정확히 말해, 이 세상에 여자가 너 하나뿐이라고 해도 네가 아니라 차라리 네 오빠를 선택했을 거야.”유동진은 입을 떡 벌리고 놀라서 몸을 떨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유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울부짖기 시작했고 남하준은 유동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의 뜻을 표했다.유미는 한바탕 울고 나서 결국 후자를 선택했고 경찰서에서 나와 남하준과 유동진에 의해 바로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다.병원을 떠날 때, 유동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세상에 여자가 많아서 다행이야. 아니면 내가 네 매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동성을 사랑하게 됐겠지.”남하준이 주먹을 쥐고 그의 가슴을 세게 치자 유동진은 가슴을 가리고 아픈 표정을 지었다.“네 동생 단념시키려고 한 말인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유동진이 웃으며 비꼬았다.“뭐야? 나 그 말에 설렐 뻔했어.”남하준이 뒤에 있는 정신병원을 가리켰다.“네 동생이랑 함께 병원에 보내줄까?”유동진은 급히 정색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아니. 장난이야. 난 여자 좋아해. 취미도 여자고 취향도 여자야.”“가자. 데려다줄게.”남하준이 차 키를 꺼내
유미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지 사흘 만에 구인아가 백씨 가문에 찾아왔다.남하준은 공무로 외출 중이었고 백진이 그녀를 접대했다.정안은 선샤인 하우스에서 꽃을 잘라 안고 들어왔다.방문 앞 정원 앞에는 낯선 남자의 뒷모습이 쭈그리고 앉아 백건에게 말을 걸었고 도우미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정안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걸어갔다.다가가자 선우석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그녀는 심장이 움찔하고 긴장해서 오금이 저려 손에 든 꽃을 홱 뿌리치고 황급히 달려가 백건을 품에 꼭 안은 채 경계하며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았다.선우석은 어안이 벙벙하여 정안의 매서운 눈초리를 마주치자 음산하게 웃으며 천천히 일어섰다.도우미가 긴장해서 말했다.“아가씨, 왜 그러세요?”정안은 백건을 도우미에게 맡기고 차갑게 명령했다.“지금 당장 건이 데리고 들어가세요. 앞으로 절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게 두지 마시고요. 특히 눈앞에 있는 이 사람.”도우미가 백건을 받아 안고 서둘러 떠났다.선우석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좀 섭섭하네. 이미 본 지가 몇 번인데 나 낯선 사람 취급하지?”“당신 어떻게 들어왔어? 누가 들여보냈어?”정안이 화를 참고 묻자 선우석이 느릿느릿 다가갔다.“저번에 나 발로 찬 일에 대해서 아직 추궁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날카롭게 굴면 어쩌나? 난 정정당당하게 차 몰고 들어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정안은 그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긴장하여 뒤로 물러섰다.그가 백인호라는 사실은 이미 확실했지만 증거가 없었다.이렇게 위험한 인물은 테러리스트보다 더 무서웠다.남하준이 류청을 데리고 나갔고 집에도 다른 경호원이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집사님!”정안이 집을 향해 소리치자 집사가 급히 걸어 나왔다.“네. 아가씨.”“이 사람 당장 쫓아내세요.”정안이 명령하자 집에서 나오던 구인아가 화를 내며 물었다.“백씨 집안은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접하나?”정안이 고개를 돌려보니 구인아가 그녀의 할아버지를 모시고 문을 나서는 것이
정안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정말 자기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나대는 여자였다.정안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인아 씨 아버지께서도 이렇게 분별없는 말은 하지 못하실 거예요. 남편이 아직 정통의 자리에 앉지도 못했는데 벌써 이렇게 날뛰다니. 만약 나라가 정말 당신 남편 손에 넘어간다면 얼마나 참혹하겠어요.”구인아는 이를 악물고 정안의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악독하게 말했다.“백완자. 너 두고 봐.”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고 선우석은 뜨거운 눈빛으로 정안을 잠시 바라보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껌딱지처럼 구인아의 뒤를 따라 떠났다.백진이 정안의 곁에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다. “완자야. 너 괜찮아?”정안은 마음을 가다듬고 백진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들어가며 당부했다.“할아버지. 앞으로 어떤 이유로든 절대 선우석 부부를 집에 들여보내시면 안 돼요. M국에서는 아직 하준 오빠에게 감히 미움을 살만한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할아버지는 더욱 완강한 태도를 보이셔도 돼요.”백진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랑스레 말했다.“그래. 네 말대로 하마. 하준이가 지켜준다면 우린 누구도 두렵지 않아.”정안은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대선이 다가올수록 남하준은 더욱 바삐 돌아쳤다.정안은 국경으로 갈 준비를 시작했고 몇 달 동안 중단했던 업무도 서서히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곧이어 정안은 905 공정의 영입 임명 협의서를 받았고 그녀는 수석 엔지니어 겸 지도 고문으로 임명되었다.이번 공사 책임자 명단에서 그녀는 류강우의 이름을 보았다.유미의 동창이자 2팀의 팀장, 전문 지식은 부족하지만 인맥이 탄탄한 팀장이었다.그가 있는 한, 이 프로젝트의 명단 심사가 충분히 엄격하지 않은 것 같았다.스케줄이 달라 정안은 아들을 데고 먼저 국경으로 가서 빨리 905 공정에 투입해야 했고 남하준은 수도에 머물며 대선까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떠나기 전날, 정안은 남하준과 함께 아들을 보여주러 시댁에 갔다.남씨 가문 별장의 거실.허윤미가 손자를
남하준은 참지 못하고 다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그래. 조심할게.”이 장면을 마침 아래층으로 내려오던 남영준과 최서윤이 보았고 최서윤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그녀는 소파에 와서 앉더니 아이도 보지 않고 시부모님께 인사도 하지 않고 마치 온 세상이 그녀에게 빚진 것처럼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정안이 다급히 남하준의 품에서 벗어나 똑바로 앉아 인사했다.“형님.”남영준이 뒤에서 걸어오며 활짝 웃었다.“두 사람 왔어?”“네. 형.”남영준과 정안이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했고 남영준은 부모님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즐겁게 웃었다.최서윤은 불쾌한 듯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정안을 보았다.“형수 눈이 불편해요?”남하준이 차갑게 묻자 최서윤은 꾹 참으며 냉소를 지었다.“도련님 참 자기 아내를 아끼네요. 눈빛 하나도 용납 못 해요?”남하준이 날카롭게 말했다.“알았으니 앞으로 태도에 주의해 주시죠.”남영준과 부모님은 어안이 벙벙하여 천천히 그들을 바라보았고 정안이 재빨리 남하준의 손을 잡고 슬쩍 당겼다.“나 괜찮으니까 그러지 말아요.”“난 늘 이런 태도였어요. 도련님 아내가 괴롭힘당하는 것 같으면 앞으로 집에 데려오지 마시죠. 난 완자가 특히 눈에 거슬려서 말이에요.”남하준의 태도가 더욱 강경해졌다.“완자는 한 번도 형수님에게 미움을 산 적이 없을 텐데요?”최서윤은 가슴에 두 손을 두른 채 소파에 기대고 오만하게 말했다.“그게 뭐요? 사람 싫어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나?”이 집에서 남창민과 허윤미는 항상 평화를 지상 하는 마음으로 평소에도 아들과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그들은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또 최서윤의 거만한 태도에 익숙해져 아이를 안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남영준은 항상 최서윤의 기에 눌려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그의 이런 성격 때문에 최서윤이 집에서 이토록 거리낌이 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하지만 남하준은 최서윤을 내버려 두지 않고 따져 물었다.“이유가 없는 게 확실해?”순간 남
최서윤은 침묵했다.그녀는 반박하지 않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재산 분할은 똑바로 해. 나 언제든지 시간 있어.”말을 마친 최서윤은 차가운 얼굴로 올라갔고 남영준은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통스럽게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옆쪽 단풍나무 숲 별장 오두막, 남하준과 정안이 문을 두드렸다.도우미가 문을 열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도련님, 사모님. 오셨어요?”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걸어 들어갔다.남태준은 한창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있었다.두 사람이 헬스장 입구에 도착하자 정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태준 오빠.”남태준이 버튼을 만지작거리다가 기계를 끄고 물었다.“완자야?”“맞아요. 나예요.”정안이 웃으며 대꾸하자 남태준이 앞을 더듬으며 정안에게 다가갔고 정안이 그를 잡아주려고 손을 뻗었다.그러자 남하준이 정안의 손을 홱 잡아당기고는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남태준은 남하준의 손을 만진 순간 떨떠름하더니 피식 웃었다.“하준이도 왔어?”남하준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형 이젠 손으로 사람을 알아봐?”“완자는 나 보러 올 때마다 제일 먼저 와서 내 손을 잡아. 너만 나 라이벌로 생각해서 네 아내 손도 못 만지게 하지.”정안은 몰래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고 남하준은 약간 어색한 듯 남태준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형. 라이벌이라니. 말도 안 돼.”“전에도 그렇고 늘 그랬어 넌.”남하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숨을 내쉬더니 급히 화제를 돌렸다.“요즘 건강은 좀 어때?”그러자 남태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화제 돌릴 생각하지 마.”세 사람이 소파에 앉았지만 남태준은 여전히 남하준을 붙잡고 놀려댔다.“어렸을 때 완자가 너보다 날 더 좋아했잖아. 그래서 넌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고 심지어 나를 연적으로 여겼어.”“형. 점심은 먹었어?”남하준은 머쓱하기도 하고 그런 걸 생각하면 자신이 바보 같아 계속 화제를 돌렸지만 남태준은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완자야. 그렇
시댁 식구들을 본 후 정안은 아이를 데리고 남하준을 따라 친정으로 돌아갔다.지윤이 이미 짐을 다 싸놓았고 내일 국경으로 출발할 것이다.그날 밤, 수 없는 엎치락뒤치락 끝에 정안은 피곤해 잠이 들었지만 남하준은 마음이 울적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품에 안긴 채 잠든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그녀를 미리 국경으로 보내는 것은 반드시 선거 전에 백인호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이번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라서 그녀와 아이가 안성에 있으면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룹의 경비가 삼엄하니 어쨌든 안성보다는 나았다.이튿날 아침.남하준은 직접 정안과 아이를 군용기에 태웠다.헤어지기 전, 정안은 참지 못하고 그를 꼭 껴안고는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한마디 속삭였다.“기다릴게요.”남하준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금방 갈게.”정안의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애써 미소 지으며 덤덤한 척했다.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보면서 남하준의 마음도 마침내 조금 안정되었다.몇 시간의 비행 끝에 국경 군용 비행장에 착륙했다.군전 그룹과는 차로 30여 분의 거리가 있어 군용 차량이 이미 정안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정안은 아이를 안고 지윤은 짐을 끌고 군용차로 향했다.가까이 가서 마중 나온 사람을 본 정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류강우가 웃으며 맞이했다.“사모님.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팀장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죠?”정안이 두리번거리자 류강우가 공손하게 말했다.“도련님께서 사모님을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차 문을 열어주었다.“들어가시죠.”정안이 아이를 안고 들어가 앉았고 지윤도 짐을 넣고 뒷좌석에 따라 앉았다.류강우가 시동을 걸고 비행장을 떠났고 차 안에서 류강우가 호기심에 물었다.“제가 들은 소식에 의하면 사모님께서 이번 프로젝트 수석 엔지니어라고 하시던데 사실인가요?”“네.”정안이 덤덤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려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았다.류강우는 감개무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지윤은 총탄 속에서 뛰어내렸다.모두 도로변으로 달려가 경사면 아래의 정글을 겨냥하여 한바탕 소사했다.놀란 정안은 제자리에 철퍽 쓰러져 펑펑 우는 아이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이런 소사에도 지윤은 살 수 있을까?정안은 경사면 아래의 상황을 볼 용기가 없었고 지윤의 안위를 걱정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데려가.”류강우의 명령이 떨어지자 정안이 총기를 든 건장한 남자들에 의해 다른 차에 태워졌다.그녀는 천천히 눈물을 닦으며 품에 안긴 아들을 달랬다.정안은 그들에 의해 한 민가로 끌려갔고 곧 음식과 물 그리고 분유와 기저귀가 배달되었다.이튿날 아침.그녀는 눈이 가려진 채 자동차에 올라타 한 시간쯤 달려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정안은 대략적인 위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아직 국경 근처에 있지만 군전 그룹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정안은 하얀 유럽식 별장에 갇혔는데 바깥 화원에 튤립이 가득 심겨 있고 입구에는 총을 든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그녀는 아들과 함께였기에 감히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부지한 다음 남하준의 구원을 기다렸다.남하준이 그녀와 아이를 구하러 올 것이라고 믿었고 지윤도 절대 죽지 않았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지윤은 이제 막 결혼했고 인생의 새로운 서막이 새로 펼쳐졌으니 절대 죽을 수 없었다.지윤이 죽으면 류청은 어떡할까?정안은 이런 저러한 생각에 몰래 눈물을 훔쳤다.일주일 넘게 구금되었지만 그녀를 구하러 온 남하준도 보이지 않았고 백인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대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정안은 백인호가 당선되기 위해 그녀와 아들을 빌미로 남하준을 협박한다고 추측했다.지금쯤 남하준은 그녀가 실종된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얼마나 그들을 걱정하고 있을까?정안은 생각만 해도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도 마음이 답답했다.아들이 없었다면 그녀는 어떻게 버텼을지 모른다.이날, 정안이 혼자 묵묵히 점심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이어 문을 지키는 남자가 공손하게 말했다.
백인호는 말하더니 후회하며 웃었다.“네가 군전 그룹에 들어가면 다시는 손을 쓸 기회가 없을까 봐 두려웠어. 완자야. 난 널 위해 또 한 번 모험한 거야.”“백인호, 넌 내 할머니를 죽이고 부모님을 몇 년 동안 가두었어. 그렇게 많은 나쁜 짓을 하고도 날 가두면 내가 널 따라갈 거라 생각해? 꿈 깨. 내가 죽어도 넌 내 완전한 시체도 갖지 못해.”선우석은 몸을 곧게 펴고 그녀를 바라보는 뜨거운 눈에는 눈물이 반짝였다.“넌 원래 나 안 좋아했잖아. 난 너 때문에 몇 번이나 위험을 무릅쓰고 널 구해줬어. 정호도 나보고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하는데 넌? 네가 내 맘을 알아?”“알고 싶지 않아.”백인호가 웃으며 일어나 천천히 정안에게 다가갔다.“그러니까 내가 널 가둔 거야. 그렇지 않으면 평생 네 마음을 얻을 수 없으니까.”정안은 아이를 안고 쭈뼛쭈뼛 뒤로 물러섰다.백인호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황급히 몸을 돌려 재빨리 2층으로 뛰어올라 자신을 방에 가두고 문을 잠갔다.당황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그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남하준이 칼을 빼든 이상 M국에서 더 머물 수 없었다....안성 정통부.정통 어르신은 격노하여 탁자 위를 툭툭 치며 어두운 얼굴로 남하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한 달 밖에 안 남았는데 그것도 못 참아? 대체 왜 온 나라를 발칵 뒤집고 민심이 흉흉하게 만들어!”남하준은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엄숙하게 말했다.“임기 동안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시고 정치도 느슨하게 하셔서 외래 세력이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 침투했습니다.”“저도 어르신께서 퇴임한 후에 시작하고 싶었지만 제가 틀렸어요. 지금은 단 1초도 더 기다릴 수 없습니다.”정통 어르신은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계속 노하여 물었다.“그래. 국내의 첩자를 잡으려 하는 건 이해하네! 자네가 류강우 교수를 죽인 것도 이해하고. 하지만 왜 내 사위의 사업을 전부 중단하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바로 수배령을 내리나? 이건 너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