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이 덤덤하게 말했다.“완자는 네 오빠를 봐서라도 이 일을 추궁할 생각이 없었어. 널 고소한 사람은 나야.”유미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괴로워하며 물었다.“왜?”“이유는 없어. 어른이라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유미는 끝까지 변명했다.“고의가 아니었어!”“우리 집 곳곳에 CCTV가 설치됐어.”유미가 움찔하더니 할 말이 없었다.남하준은 더 이상 그녀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어서 차를 타려고 돌아섰는데 유미가 울먹였다.“너 전에는 나한테 이러지 않았어.”남하준은 차 문을 당기던 손을 멈추고 심호흡하더니 다시 몸을 돌려 그녀를 보며 차가워진 말투로 말했다.“나도 네가 이렇게 무서운 사람인지 몰랐어. 그리고 네 오빠가 널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으니까. 네 오빠가 아니었다면 넌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너 한 번 보는 것조차 나에게 시간 낭비야.”유미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남하준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아랫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크게 상처받고 서러워 보였다.“돌아가서 응소 준비해. 판사가 네 수입을 참작해서 배상금을 요구할 거야. 그리고 그 금액은 반드시 갚아야 해.”유미가 고함을 질렀다.“너 돈이 부족해?”“아니. 난 돈이 부족하지 않지만 넌 인성이 부족하지. 교훈이 부족하고. 이건 네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벌이야.”유미는 덜컥 겁이 나서 급히 손을 뻗어 남하준의 팔을 잡아당겼다.“하준아. 내가...”남하준은 즉시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소리쳤다.“저리 가!”유미는 더욱 슬퍼서 감히 그의 몸에 손대지 못하고 흐느꼈다.“내가 너와 완자에게 사과할게. 충동적인 행동이었고 나 지금 정말 후회하고 있어. 나 월급이 적어서 저축한 돈도 별로 없단 말이야. 오빠도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너 이러면 동진 오빠만 힘들어져.”“네 오빠 들먹이지 마.”남하준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화를 참으며 말했다.“넌 성인이야. 자기 잘못은 스스로 책임져야지.”“내가 대체 어떻게 해야 날 놔줄 거야?”유미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묻자
정안은 남하준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물었다.“왜요?”남하준이 속삭였다.“너 안고 싶어서.”“많이 힘들어요?”“괜찮아.”무엇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배고파요?”정안은 다정하게 그의 등을 토닥이며 안쓰러운 마음뿐이었다.“아니.”“힘들어요?”“너 안고 있으면 안 힘들어.”“방에 가요. 내가 마사지해줄게요.”정안이 진지하게 말하자 남하준이 가볍게 웃더니 나지막이 물었다.“어떤 마사지?”아주 야릇한 말투였다.정안은 바로 알아채고 그의 어깨를 툭 쳤다.“나 지금 진지해요. 전에 할머니 간병인으로 일할 때 마사지 기술을 몇 가지 배웠어요.”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부드럽게 문질렀다.“이렇게 작은 손으로 마사지한다고? 아까워서 안 되지. 나 마사지 필요 없어. 그냥 이렇게 너 안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감동한 정안은 참지 못하고 그의 이마에 키스하고 그의 얼굴을 움켜쥐고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아까 들어올 때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데. 무슨 일이에요?”남하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래서 일부러 나한테 뛰어온 거야?”“맞아요.”정안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그럼 오빠가 기뻐할 것 같아서.”남하준이 그녀의 코를 찌르더니 사랑스럽게 중얼거렸다.“우리 완자. 어떻게 하면 나 기쁘게 하는지 잘 알고 있네.”“그럼 대체 무슨 일인지 도련님께서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남하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엄숙하게 말했다.“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마.”정안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활짝 웃으며 그를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여보?”남하준은 얼굴이 뜨거워지고 눈빛이 반짝이며 미소가 점점 더 밝아졌다.“다시 한번 말해봐.”정안은 쑥스러워져 고개를 흔들었다.“한 번만 더 부르면 알려줄게.”남하준은 감격에 겨워 손에 힘을 주고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정안은 수줍게 입술을 오므리고 엷게 웃다가 더 이상 부르기가 민망해 고개를 떨구었다.“싫어요.”
몰래 선우석의 DNA를 훔치고 싶었지만 결혼식에서 얻은 교훈으로 지금의 선우석은 아주 조심스럽고 매사에 신중해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었다.정안은 이런 중대한 사건에서는 남하준의 말을 잘 따랐다.남하준이 그녀가 선우석에게 접근하는 걸 원하지 않으면 그녀는 절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인연이란 언제나 교묘한 법이었다.며칠 후, 지윤과 함께 서점에서 나온 정안은 근처 백화점에서 옷을 구경했는데 한 브랜드 옷가게에서 구인아와 쇼핑 중인 선우석을 만났다.정안은 인사도 하기 싫어서 그냥 가버렸는데 선우석이 먼저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이렇게 뵙네요. 사모님.”정안은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호의적이지 않은 선우석을 바라보았다.옷을 들고 탈의실에서 나오던 구인아는 정안을 보자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오늘 운세를 보고 나오지 않았더니 정말 재수가 없네.”지윤이 달려가 혼내려 했지만 정안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흥분하지 말고 진정하라는 뜻을 전했고 구인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백완자. 거기 서!”정안은 못 들은 척 성큼성큼 떠나갔고 선우석은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악에 받쳐 온몸이 괴로운 구인아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저년 지금 무슨 태도야? 너무 예의가 없잖아?”선우석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 밑의 뜨거운 열기를 숨길 수 없었다.정안과 지윤은 두 번째 가게에 가서 계속 옷을 보았고 지윤이 맘에 드는 스타일을 골라 신나게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계속 살펴보던 정안은 판매원의 부추김에 비교적 마음에 드는 옷을 한 벌 골라 탈의실로 들어갔다.탈의실은 문이 없었고 커튼만 있었는데 판매원이 입구에 서서 지키고 있어 정안은 안심하고 옷을 갈아입었다.갑자기 밖에서 판매원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네. 바로 가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탈의실의 커튼이 누군가에 의해 젖혀졌고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음?”정안이 반응하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마침 옷
“언니 괜찮아요?”지윤이 부랴부랴 뛰어 들어가 정안을 끌어내 자신의 뒤로 보호했다.가게 안의 판매원들이 모두 와서 구경했다.“여보?”구인아가 걱정스럽게 다가가 선우석의 팔을 잡고 그가 감싼 곳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상당히 안쓰러워했다.“왜 그래? 혹시 백완자가 때렸어?”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이곳은 여성매장이었고 탈의실 안에는 틀림없이 여자가 있을 것이다.한 남자가 탈의실에 나타났고 심지어 아래 부위가 차였으니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선우석이 괴로운 심호흡을 하더니 중얼거렸다.“백완자 너무 독해.”구인아는 이를 갈며 정안을 노려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두말없이 손바닥을 들고 내리치려 했다.반응 빠른 지윤이 그녀의 팔을 덥석 잡고 홱 뿌리쳤다.그러자 구인아는 몇 걸음 뒤로 비틀거리다가 화가 나서 정안을 가리키며 말했다.“백완자. 너 오늘 죽었어. 절대 가만 안 둬.”“그쪽 남편이 무슨 짓을 해서 맞았는지는 안 물어봐?”지윤이 되묻자 구인아가 고함을 질렀다.“내 남편이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어? 이 천한 년이 몇 번이나 내 남편을 꼬시려 들었어. 진작 눈에 거슬렸다고.”정안이 차갑게 웃었다.“내가 당신 남편을 꼬셔?”“백완자. 내 친한 친구의 남자를 뺏어가더니 이젠 내 남편까지 꼬셔? 너 같은 여자는 길바닥에서 몰매를 맞아야 해!”정안은 화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속으로 웃고 있었다. 이렇게 어리석은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정말 눈이 멀었을까?사정을 모르는 판매원이 옆에서 이러쿵저러쿵하며 손가락질하자 불같은 성격의 지윤은 정안이 비방당하는 꼴을 보지 못하고 나섰다.“우리 언니와 도련님은 소꿉친구고 서로 오랫동안 좋아했어. 그쪽 절친은 그저 도련님 옆에 있는 개일 뿐이야. 근데 감히 주인이 되려고 설쳐? 지금 쫓겨나게 되니 개가 함부로 사람을 물고 말이야. 아주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지금 누구보고 개라는 거야?
지윤은 정안이 떠나는 것을 보고 바로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긴장한 기색으로 차에 올랐고 지윤이 재빨리 시동을 걸고 훌쩍 떠났다.정안은 휴대전화를 꺼내서 바로 남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정안은 혹시나 선우석이 다시 킬러를 보내 그녀를 쫓을까 봐 지금 이 순간 아주 긴장했다.벨이 두 번 울리자 전화가 바로 연결되었고 남하준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정안이 다급하게 말했다.“오빠. 내 몸에 선우석 피가 있는데 지금 어떡해야 해요?”남하준의 긴장한 말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옷가게에서 선우석과 구인아를 만났는데 실랑이를 벌이다가 내가 그 인간을 다치게 했고 피가 내 옷에 묻었어요.”“당장 위치 보내. 그리고 가장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일단 숨어 있어.”남하준의 말투가 유독 긴장했다.“좋아요.”남하준은 즉시 드론을 보내 그들의 차량을 추적 보호한 뒤 부하들을 데리고 정안과 합류했다.10분 후, 정안은 무사히 남하준과 합류했고 군전 그룹 전대의 호송을 받으며 군인 병원의 검사과에 갔다.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검사과 의사가 혈액을 가지고 가서 최대한 빨리 분석하고 검사했다.결과는 세 시간 만에 나왔지만 결과만 나오고 참조 데이터가 없었다.오랫동안 DNA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했지만 전에 보관된 백인호의 DNA 데이터가 사라지고 없었다.군인 병원장 사무실 안.남하준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파에 앉아 결과를 기다렸다.원장은 아직도 컴퓨터 앞에서 조작하며 식은땀을 흘리며 남하준의 냉엄한 표정을 훔쳐보고 있었다.노크 소리가 나자 형사과 팀장이 법의학 부서 책임자를 데리고 들어왔다.두 사람은 남하준 앞에 서서 공손히 인사했다.“안녕하십니까.”남하준은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며 물었다.“찾았어요?”“죄송하지만 데이터베이스에 백인호의 DNA 자료가 없습니다.”형사과 팀장이 먼저 입을 열자 법의학 책임자가 말을 보탰다.“저희 부서에서 보관하고 있던 샘플도 분실되었습니다.”그때 원장이 황급히 다가와 고개
남하준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며 고개를 젓자 정안이 경악해서 물었다.“백인호가 아니에요?”“몰라.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백인호에 대한 DNA 자료가 전부 삭제됐고 전에 보관했던 혈액 샘플까지 모두 사라졌어.”정안이 주먹을 쥐며 이를 악물었다.“어쩐지 오늘 그렇게 침착하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더라니. 이제 보니 후환이 없는 거네요.”“지난번 내가 결혼식에서 피를 훔쳐서 만단의 대비를 한 것 같아.”남하준은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고 고개를 쳐들고 쉬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선우석이 대선에 출마하면 잡기가 더 어려워져.”“아주 무서운 사람이네요. 무슨 일을 하든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처리해버리네요.”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걱정스럽게 말했다.“내가 지금 가장 걱정하는 건 너야.”“내 걱정 말아요. 앞으로 지윤이 말고도 경호원 몇 명 더 데리고 나갈게요.”“905 공정이 곧 시작되니 너도 슬슬 준비해야 해. 이제 나랑 국경으로 가자.”“그럼 아기는요?”정안은 기분이 가라앉아 아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아직 어리잖아요. 오빠 부모님께 맡겨요? 아니면 우리 부모님께 맡길까요?”“데리고 같이 가야지.”남하준이 정안을 품에 안고 말했다.“학교에 가기 전 요 몇 년 동안은 계속 우리 곁에 둘 수 있어.”“좋아요.”도우미가 다가와 그들에게 저녁 식사를 알렸고 식탁에서 온 가족이 웃고 떠들며 상당히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가족들이 모두 있는 틈을 타 남하준은 할아버지와 장인, 장모님께 국경에서 일하겠다고 말씀드렸다.그러자 백진이 호기심에 물었다.“난 하준이 직책과 일을 알고 있는데 우리 손녀딸이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정안과 남하준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고 서윤아가 입을 열었다.“아버님 손녀는 전에 Z국 연구소에서 일했어요.”“그곳에서 무슨 일을 했어?”서윤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그건 저도 몰라요. 어차피 국가 기관이니 저희도 더 묻지 않았어요.”백정우가 말을 보탰다.“그래요. 아빠. 애가
저녁 식사 후.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때 류청이 지윤의 손을 잡고 들어왔고 서윤아가 두 사람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두 사람 어서 이리 와 과일 먹어.”류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에게 인사하고는 남하준 곁에 공손히 서서 귀가 빨개지고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제가 상의 드릴 일이 있어요.”남하준이 건너편 빈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앉아서 말해.”류청은 지윤의 손을 잡고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빙그레 웃으며 지윤의 수줍은 모습을 보면서 좋은 일을 예감하고 기대에 가득 찼다.류청이 목청을 가다듬고 긴장하며 말했다.“도련님, 사모님 저...”지윤은 수줍은 안색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가 빨리 말하기를 기대했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류청을 바라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저... 그러니까 저...”그는 귀가 빨개지고 목까지 빨개지면서 부끄러워서 벌벌 떨고 있는 것 같았다.지윤이 보다 못해 류청의 말을 이었다.“저희 905공정이 시작되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요.”이 말이 나오자 정안은 감격에 겨워 입을 가리고 눈시울을 적셨다.속으로 아주 감동하고 기뻤다.서윤아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그래. 아주 잘 생각했어. 꼭 성대하게 올려.”백진과 백정우도 활짝 웃으며 그들에게 축하를 건넸다.“두 사람 축하해.”류청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환하게 웃었고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남하준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기대가 가득했다.“나를 왜 봐? 나랑 결혼하는 것도 아니잖아. 내 의견 물어볼 필요 없어.”“감사합니다!”류청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남하준은 부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정안과의 결혼식을 치르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늘 불안했다.“우리 초대할 거야?”“당연하죠!”남하준이 묻자 류청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어디서 올려? 결혼식은 어떤 스타일로?”정안이 호기심에 묻자 지윤이 기뻐하며 답했다.“류청 고향 집에서 M국의 전통 결혼식을 올
류청과 지윤의 결혼식 당일, 날씨가 화창했다.두 시간을 달려 정안과 남하준, 그리고 두 대가족이 모두 모였다.남씨 가문과 백씨 가문의 축의금으로도 신혼부부는 집을 한 채 사기에 충분했다.정안은 2억 원 상당의 보석 세트를 지윤에게 보냈고 남하준은 2억 원 호가의 고급 차를 선물했다.류청의 가족들은 미친 듯이 기뻐하고 흥분했다. 시골의 조촐한 결혼식이 이렇게 호화롭게 진행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M국의 갑부 일가와 국방 장군 외에도 나라 고급 관리들과 전우들이 결혼식에 참가했다.류청의 부모는 아들이 그저 장군 옆에 있는 평범한 비서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자랑스러울 줄은 몰랐다.이번 결혼식에 온 하객만으로도 그들은 남은 평생을 호기롭게 보낼 수 있었다.M국의 결혼식은 상당히 전통적이었다. 정안은 친정 식구들이 지윤의 출가를 보는 무리에 섞여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번거롭고 전통적인 순서를 지켜봤다.류청은 유동진만 초대하고 유미를 초대하지 않았지만 유미는 자신도 초대를 받았다며 유동진을 속여 함께 참석했다.결혼식 날, 류청과 지윤이 난처한 표정을 짓자 유미가 한마디 했다.“나 초대 없이 왔어. 류청. 결혼 축하해.”그제야 유동진은 유미가 또 그를 속였다는 걸 알았다.그녀는 정말 남하준을 만날 기회를 조금도 놓치지 않았다.결혼식장이라 얼굴을 붉히기 곤란해 두 사람은 유미를 안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식사 자리는 야외에서 마련됐는데 햇빛을 받으며 식사해 특별한 맛이었다.남하준은 오랜만에 만난 전우들과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남태준이 정안의 옆 빈자리를 만지더니 천천히 걸어갔다.“여기 하준이 자리야?”남태준이 묻자 정안이 웃으며 답했다.“괜찮아요. 그 사람 지금 오랜만에 만난 전우들과 술 마시고 있어요. 오빠 앉으세요.”남태준이 자리에 앉아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혹시 지우도 왔어?”정안은 그제야 생각이 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지윤이가 청첩장 보냈고 저도 전화했는데 오늘 못 본 것 같네요.”남태준의 안색이 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