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국 역대 최고로 처참한 신부 들러리가 아닐 수 없었다.남하준은 무대에서 내려오기 바쁘게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홀로 식장을 빠져나갔다.그가 어디로 가는지, 왜 서둘러 떠났는지 아무도 몰랐다.다들 호기심에 차 있을 때, 무대에서는 결혼식이 정상으로 돌아와 신랑신부가 사랑하게 된 과정, 케이크 커팅, 축배 등이 펼쳐졌다.여전히 손에 든 하얀 손수건을 바라보던 선우석은 반지를 빼내고 안에 있던 침을 뽑아 바닥에 던졌다.눈을 내리뜨고 하얀 손수건을 응시했다.한참 후에야 그는 당황한 기색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며 황급히 무대 뒤로 걸어갔다.“선우석, 어디 가?”구인아가 소리치자 선우석이 애써 웃으며 답했다.“화장실이 급해서 그래. 금방 다녀올게.”무대 위에는 신부와 사회자만 남아 순간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선우석은 구석에 숨어서 숨을 헐떡이며 음험한 눈으로 차갑게 명령했다.“남하준이 내 피를 가져갔어. 아마 차를 타고 군인 병원으로 가고 있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든, 죽여서라도 내 피가 묻은 손수건을 뺏어 와. 절대 남하준이 군인 병원으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상대방이 되물었다.“그 피 묻은 손수건을 남하준이 가진 게 확실해요?”“정호조차 자신을 배신했으니 아마 아무도 안 믿을 거야. 남하준은 분명 내 피를 갖고 직접 병원에 가서 DNA 검사를 할 거야. 확실해!”“알겠습니다.”상대방이 전화를 끊었고 선우석은 손에 든 반지를 보며 이를 갈았다.그는 매사에 신중히 행동하고 경각심을 세웠지만 여전히 의심을 받았다.선우석은 남하준에 대한 증오가 마음에 번졌고 속으로 생각했다.‘남하준! 이러려고 내 들러리가 된 거였어? 네 목적이 이거였네!’선우석은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무대로 나왔다.그의 시선이 정안의 얼굴을 스치며 눈 밑에는 온정과 다정함이 가득했고 미소가 더 부드러워졌다.결혼식은 계속 진행되었다.정안은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해 진정할 수 없었다.잠시 후 휴대폰 벨이 두 번 울렸고 그녀가 휴대폰을 확인
정안이 류청의 차를 타고 사고 현장에 도착하니 결혼식장과 십여 분 정도 떨어진 고가도로였고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인양된 선박은 이미 자동차를 들어 올렸고 구조대원들은 강바닥에 잠입해 남하준을 찾고 있었다.교통경찰은 사고 현장에서 일련의 문제들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목격자를 조사하고 CCTV 등을 조사했다.정안은 난간 옆에 아무 말 없이 서서 두 손으로 난간을 꽉 쥐고 손바닥에는 땀이 찼다. 가슴 깊은 곳이 마비될 정도로 아프고 무감각해졌다.숨 쉬는 것도 잊고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머리는 텅 비고, 두 발은 힘이 없고, 의지력으로 버티고 있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마음이 괴로워서 눈 밑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울고 싶지 않았다.남하준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그는 살아 있는 것이라 여겼다.그녀는 남하준이 살아 있다고 굳게 믿었다.남하준은 지금까지 그녀를 속인 적이 없었다.그가 보낸 메시지에서 꼭 돌아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못 찾았어요.”강바닥에서 잠수해 올라온 구조대원이 소리쳤다.“계속 찾아!”그의 상사가 명령했다.“인력을 더 파견해서 꼭 찾아야 해,”정안은 심장의 강렬한 통증을 느끼며 눈물이 눈가에서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녀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닦고 나른해진 다리를 이끌고 서서히 몸을 돌렸다.“지윤아, 부축해 줘.”정안이 나지막이 울먹이며 말하자 지윤이 즉시 정안을 부축하고 슬픔에 빠져 말했다.“아직 도련님 못 찾았는데 어디 가려고요?”정안이 애써 웃으며 짐짓 덤덤하게 말했다.“오빠 여기 없어. 괜찮아. 우리 집에 가자.”“여기 없으면 어디 있어요?”“몰라. 일 끝나면 집에 돌아올 거야.”정안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가볍게 말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고 두 발에 힘이 빠지고 손이 떨렸다.그러자 지윤은 더욱 마음이 안쓰러웠다.그녀가 힘겹게 버티고 있고, 자신을 속여가며 현실을 외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지윤은 정안을 부축해 차 안으로 가서 다
정안은 배고픔을 전혀 느낄 수 없고 갈증은 더더욱 느끼지 못했다.남하준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깨어날 의욕이 전혀 없어 다시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나 괜찮아. 좀 더 잘게. 오빠 오면 나 깨워줘.”“언니!”지윤은 놀라서 펑펑 울었다. 그녀는 정안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정안은 작은 일에도 울고 낙담하고 슬퍼하는 사람이었다.지금 남하준에게 사고가 났으니 아주 슬픈 일이지만 그녀는 뜻밖에도 울지도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줄곧 쿨쿨 자고 있었다.마치 삶의 의지를 잃은 것처럼 삶을 홀대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가까웠다.이런 정안이 지윤은 더욱 무서웠다.백진은 남하준에게 사고가 났다는 걸 알게 된 후, 사람을 더 보내 수색 범위를 넓혔다.그는 손녀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계속 잠만 자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다.아무리 설득해도 그녀는 듣지 않고 깨어나면 물었다.“오빠 돌아왔어요?”남하준을 못 보자 그녀는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잤다.사흘째 되던 날.주치의가 와서 정안에게 영양제를 투여했다.의사가 주사를 놓을 때도, 정안은 마치 자기 손이 아닌 듯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영양제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선생님.”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 바르게 물었다.“네. 아가씨. 어때요? 뭐 좀 드시겠어요?”정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드러운 말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배 안 고파요. 혹시 제 남편 보셨어요? 남편 이름이 남하준인데 아직 안 돌아왔어요?”“남 장군님은 아직 안 돌아오셨습니다.”정안이 손을 뻗어 옆자리를 만져보며 물었다.“제 아들은요?”“도우미가 젖 먹이려고 데리고 나갔어요.”“나 더 자고 싶어요. 제 남편이 돌아오면 꼭 깨워주세요.”정안은 말을 마친 뒤 자세를 바꿔 잠이 들었다.옆에 많은 사람이 서 있었는데 정안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무관심했다.그리고 그녀는 다시 잠이 들었다.남창민과 허윤미가 정안을 보러 왔다.아들은 아직 생사를 알 수 없고 며느리는 살 의욕을 잃어버렸고 손자는 아직 그렇
바로 그때 류청이 부랴부랴 걸어 들어와 얼굴이 창백하고 이마에 콩알만 한 땀방울이 맺히고 숨을 헐떡이며 목소리는 약간 울먹였다.“어르신... 시체... 떠오른 시체를 찾았는데 형체가 알아볼 수 없어서 법의학자가 시체를 확인하러 오라고 하셨어요.”허윤미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다리가 나른해지며 기절했고 남창민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애써 진정하며 곁에 있던 아내를 재빨리 부축했다.류청이 상황을 보고 급히 달려가 도왔다.백진은 몸을 약간 떨면서 침대 가장자리로 가서 몸을 웅크리고 정안의 차가운 작은 손을 잡고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완자야. 일어나봐. 하준이를 찾았어.”정안은 하준이라는 두 글자에 허약한 눈꺼풀을 뜨고 덤덤하게 백진을 바라보았다.그는 얼굴이 굳어지고 눈 밑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할아버지 왜 우세요?”정안은 쉰 목소리로 가슴 아파하며 물었다.백진은 그녀의 관심에 더욱 슬퍼졌고 눈물을 닦았다.“구조대가 강가에서 시신 한 구를 건져냈어. 지금 법의학자들이 감식하고 있는데 하준이 가족들 보고 가서 DNA를 채취해 시체를 확인하라고 해. 너도 같이 가서 하준이가 맞는지 보자꾸나.”정안은 애써 웃어 보이며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절대 하준 오빠 아니에요. 오빠는 분명 돌아와요. 죽었을 리가 없어요.”백진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다정하게 달랬다.“그럼 안 죽었지. 아내와 아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죽어? 그래도 일어나서 할아버지랑 같이 가보자. 가서 하준이가 아닌 걸 확인하면 더 안심하잖아.”정안은 숨이 가빠진 것을 느끼며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나 안 갈래요. 오빠 돌아오면 내 방으로 오라고 하세요. 며칠 동안 보지 못했더니 너무 보고 싶어요. 너무너무.”정안은 말하면 할수록 힘이 빠지고 목소리는 가벼워지더니 이내 깊은 잠에 빠져 캄캄하고 아득한 꿈속에 자신을 가두었다.꿈나라에서 그녀는 하얀 호수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수천 년을 헛되이 기다린 요정처럼 몸과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무력했다
지윤이 말을 이었다.“언니! 도련님 연락 왔어요! 도련님 소식이라니까요. 얼른 일어나요!”정안이 서서히 눈을 뜨고 피곤한 눈을 깜박이다가 앞에 류청을 보고는 다시 감고 중얼거렸다.“오빠 아니잖아.”류청이 심호흡하고 긴장해서 말했다.“사모님. 도련님이 제게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지금 위험에 처하셨으니 저더러 구하러 오래요.”정안은 다시 한번 눈꺼풀을 젖히고 손을 뻗어 지윤을 잡고는 허약한 몸으로 일어나려 했다.“지윤아. 나 좀 일으켜 줘.”지윤은 감격에 겨워하며 급히 정안을 일으켜 세웠다.정안이 류청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오빠가 보낸 메시지는요?”류청이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프로그래머가 설정한 정보를 열어 정안에게 건넸다.정안은 남하준의 번호를 보고 또 그가 보낸 메시지를 보더니 눈물이 핑 돌고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나 안 죽었어. 낯선 곳에 갇혀 있는데 나 구할 방법을 생각해봐. 완자에게는 내가 사고 났다고 말하지 말고 당분간 출장 갔으니 걱정 말라고 거짓말해.]류청은 심호흡하고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사모님, 도련님 아직 살아 계세요. 어딘 가에 갇혀 있대요. 이렇게 사모님을 걱정하시는데 이제 그만 마음 추스르세요.”정안은 더 이상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끌어안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온몸을 떨며 지윤의 품에 안겨 목 놓아 울었다.마치 그동안 참았던 고통을 단숨에 토해내듯 숨이 턱턱 막히도록 비통하게 울었다.결국 의사를 불러 진정제를 맞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할 수 있었다.다들 어리둥절했다. 정안이 왜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였는지 알지 못했다.진정제를 맞은 정안은 자기는커녕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류청에게 건네주며 씁쓸하게 말했다.“연기가 너무 서투네요. 그리고 이 메시지도 오빠가 보낸 거 아니잖아요. 오빠 폰은 아마 강바닥에서 꺼내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겠어요?”정안의 사유가 또렷하자 지윤과 류청은 반색했다.의사는 정안이 메시지를 보고 기운을 차리고 그녀의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하준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강에서도 시체를 건져내지 못했고 마치 증발이라도 한 듯 모습을 감췄다.나라에서는 비밀리에 전문적인 수사대를 파견하여 그의 종적을 찾았다. 몸을 회복한 정안도 밤낮없이 그를 찾기 시작했다.다만 그녀는 수색팀처럼 맹목적으로 강을 수색하거나 수사대처럼 밖에서 찾지 않고 당일 도로 상황 CCTV를 확인했다.당시 남하준의 차량은 여러 대의 미스터리한 번호판 차량에 쫓기고 있었고 도로에서 과속 현상이 나타났지만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갑자기 남하준의 차가 고장 나듯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면서 차 전체가 강물에 빠졌다.그를 미행하던 차량은 곧장 앞으로 나가더니 핸들을 꺾어 강 아래 도로로 향했다.강의 양쪽 길에는 CCTV가 없어 모든 추적 화면이 끊겼다.정안은 남하준의 입장에서 일을 생각하려 했다.그는 왜 들러리를 서려고 했을까?왜 연회 도중에 갑자기 떠났을까?만약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면 절대 혼자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류청도 부하도 데려가지 않은 건 대체 무슨 목적일까?정안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류청이 서재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사모님, 찾았어요!”정안이 급히 류청이 건넨 USB를 받았다.USB를 받은 그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컴퓨터에 꽂았다.류청이 다가가 같이 보면서 감격해서 말했다.“얼마나 어렵게 얻은 줄 아세요? 제가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서 이 CCTV 영상을 겨우 얻었어요.”정안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열심히 구인아의 결혼식 날 영상을 확인했다.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지켜보던 정안은 선우석이 반지에 손을 베인 것을 보고 남하준이 다가가 손수건으로 선우석의 손가락을 가릴 때 멈춤 버튼을 눌렀다.당시 무대에서는 아무도 이런 미세한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류청도 경악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왜 손수건을 몰래 바꾸셨을까요? 대체 뭘 하시려는 걸까요?”정안은 몇 초간 침묵하다가 계속 영상을 틀었다.그제야 정안은 그날의 사회자가 왜 그렇게 형편
“만약 선우석의 신분이 깨끗하다면 자기 피 때문에 긴장할 리 없고 만약 선우석이 진짜 문제가 있다면 바로 처리하겠죠.”류청은 그제야 알아차리고 활짝 웃었다.“그러니까 도련님의 진정한 목적은 선우석의 피로 DNA 검사를 하는 게 아니라 선우석의 의심을 사기 위해 허상을 만들었다는 거네요? 선우석이 먼저 공격하게끔?”정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제 추측으로는 그래요.”“근데 도련님께서 왜 그러신 거죠?”정안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머리가 윙윙 아팠다.그녀는 한참 동안 이마를 짚고 생각하더니 물었다.“혹시 최근에 오빠가 특별히 이상한 일을 시켰거나 차에 뭐 좀 실으라고 한 적 있어요?”류청은 뭔가 떠올라 경악했다.“있어요! 얼마 전에 저보고 군 창고에서 잠수에 쓰이는 산소 펌프와 차창을 깨는 전문 망치를 가져오라고 하셨어요.”정안은 참지 못하고 한줄기 미소를 지었다. 요 며칠 동안의 슬픔과 괴로움이 모두 사라지고 모든 걱정이 동력으로 바뀌었다.그녀 마음속의 큰 바위가 마침내 내려졌다.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이 그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마음 단단히 먹고 나 기다려.]정안은 입술을 깨물고 속으로 희비가 엇갈렸다.‘남하준, 돌아오면 단단히 혼내줄 거야. 그렇게 위험한 계획을 나와 상의도 없이 혼자 목숨 걸고 뛰어들면 어떡해? 만약 사고라도 생기면 나랑 아이는 어떡하라고?’류청이 호기심에 물었다.“사모님, 도련님의 계획이 뭘까요? 지금 어디 계실까요?”“그건 저도 몰라요.”정안은 남하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이 전부 그의 장악하에 있다는 것만 알았다.“그럼 우리 이제 어떡하죠?”“계속 맹목적으로 찾아요. 조사하지 말고 선우석에게 접근하지 말고, 사람 붙이지도 말고 그저 그 사람이랑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냥 류청 씨 할 일을 하세요. 하준 오빠 계획 망치지 말고.”“네, 사모님.”“그리고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네. 알겠습니다.”.
지윤이 아이를 안고 떠나자 정안은 뒤돌아 구인아 앞으로 다가갔고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기록을 펼쳤다.통화기록을 구인아 앞에 널어놓은 채 여유롭게 말했다.“결혼식에서 당신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에게 치근덕거리기 시작했어요. 이건 지난 한 달 동안 당신 남편이 나에게 전화한 기록이죠. 어디 한번 잘 봐봐요. 아는 번호죠?”구인아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손을 뻗어 정안의 휴대전화를 뺏으려 했다. 정안이 재빨리 휴대전화를 숨기고 차갑게 말했다.“집에 돌아가서 남편에게 제발 나에게 치근덕거리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난 그 사람 모르고, 친구 하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부디 자중해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스토커로 고소할지도 모른다고.”구인아는 아랫배를 누르고 화가 나서 온몸이 떨리고 호흡이 어지러웠다.정안은 그녀가 아랫배를 감싸는 동작을 보고 그녀의 임신을 더욱 확신했다.같은 엄마로서 정안은 더 이상 그녀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 차가운 태도를 거두고 여유롭게 말했다.“그리고 두 분, 앞으로 말조심하세요. 나랑 내 남편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고, 그 사람이 나 십 년 넘게 좋아했고 나도 그 깊은 사랑에 감동한 거지 누가 누굴 꼬신 적은 없으니까.”정안은 유미를 노려보며 말했다.“그리고 당신, 입만 벙긋하면 자꾸 내가 남하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격이 없다고 하는데. 세상에 완전히 어울리는 부부가 몇이나 되겠어? 날 사랑하는 그 마음이면 충분한 거야.”유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반박하려 했지만 정안이 바로 말을 끊었다.“억지 부리지 마. 세상에 당신만이 남하준 곁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아쉽게도 당신이 하늘의 신선이라고 해도 남하준은 당신 거들떠보지도 않아. 근데 굳이 무리해가면서 남하준이 당신을 미워하게 만들 필요가 있나?”유미는 화가 나서 말문이 턱 막혔다.구인아는 상황을 보고 태동을 건드릴까 봐 무서워 급히 유미를 끌고 먼저 떠났다.“유미야. 우리 가자. 이런 미친 여자는 상대할 필요도 없어.”정안이 말다
이다은은 컴퓨터를 켜고 쇼핑몰 관리자 페이지에 로그인했지만, 거래 완료된 주문은 하나도 없고 답장하지 못한 문의 메시지만 가득한 화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답답한 마음으로 하나씩 정성껏 답장을 보냈지만, 새로운 손님은커녕 추가 메시지도 오지 않는 적막한 화면에 멍하니 시선을 두다가 결국 다른 화면으로 넘어갔다.새로 띄운 화면에는 빽빽한 코드와 무인 로켓의 데이터 구조가 가득 떠 있었다.이다은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이마를 짚으며 깊은 고민에 빠진 끝에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두 시간 동안 코드를 작성하고 저녁을 먹은 뒤에도 세 시간이나 작업에 매달렸다.밤늦게 작업을 마치고 파일을 보냈지만, 그녀가 손에 쥔 돈은 고작 60만 원에 불과했다.‘학력이 없으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값싼 노동자로만 보이는구나...’그녀는 가끔 이 모든 걸 버리고 싶을 만큼 깊은 절망에 빠지곤 했다. 컴퓨터를 끄고 스트레칭을 하며 욕실로 들어가면서도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한때 그녀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운명이 바뀔 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M국 항공우주대학교 합격 통지서가 도용되면서 그녀는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 일은 그녀의 꿈과 미래를 부숴버렸고 지금까지 체념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다음 날 아침, 약속대로 남우영과 두 번째 만남을 가진 이다은은 드디어 손에 혼인관계증명서를 쥐게 되었다.남우영이라는 잘생긴 남편이 생겼지만 그녀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녀에게 결혼은 그저 누구와 하든 큰 차이가 없는 일이었다.‘결혼이란 건 결국 평생 팀플할 팀원을 고르는 거지. 게다가 부모님 잔소리에서도 해방될 수 있게 됐으니, 이보다 완벽한 일거양득이 어딨어?’구청을 나서며 혼인관계증명서를 내려다보던 이다은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남우 씨, 근데 왜 이름이 남우영으로 되어있어요? 남우 아니었어요?”남우영은 순간 표정이 굳더니 억지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주민등록증엔 남우영으로 되어있어요.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 남우라고 불
이다은은 남우영이 타고 온 차를 보더니 그 자리에 멍하니 얼어붙었다. 그렇게 조수석 문 앞에서 한참 머뭇거리는 그녀를 본 남우영이 다가와 차 문을 열어주며 물었다.“다은 씨, 왜 그래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이다은은 차를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몇억은 하는 차 아닌가요? 잘못 긁거나 고장 내면 저희 둘 다 감당 못 해요.”남우영은 잠시 그녀를 보며 생각하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고 타요. 제가 조심해서 안전운전 할게요.”이다은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차에 올랐다.차가 도로를 달리자, 이다은은 자기 집 주소를 알려주었고, 한 시간이 지나 낡고 오래된 구도심의 허름한 건물 앞에 차가 멈췄다.이다은은 차에서 내린 뒤 남우영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 구청에서 봬요.”남우영도 창문을 내려 손을 흔들었지만, 그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낡고 허름한 건물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며 답답한 마음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이다은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건물의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8층 꼭대기 층에 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캐릭터 탈을 구석에 내려놓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크게 숨을 내쉬었다.“하아... 오늘도 정말 너무 많이 뛰어다녔네.”그때 옥상에서 세탁물을 한가득 담은 빨래 바구니를 들고 다리를 저는 그녀의 아버지, 이적이 내려왔다.“다은아, 이제 퇴근해서 온 거야?”이다은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달려가 빨래 바구니를 받아들며 말했다.“아빠, 제가 할게요.”이적은 바구니를 건네고 천천히 거실로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이다은이 빨래를 하나씩 꺼내 정성스럽게 개기 시작하자, 이적도 옆에 앉아 빨래를 개며 무심히 물었다.“다은아, 요즘엔 선 봤던 남자 안 만났어?”이다은은 빨래를 개던 손을 멈추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말했다.“아빠, 저 결혼하려고요.”이적은
이다은은 눈웃음을 지으며 기쁨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그동안 선을 보면서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집안 형편이 가난하다느니, 학력이 부족하다느니, 성격이 유치하다느니 하며 그녀의 단점을 들춰내기 바빴다.하지만 이번엔 달랐다.‘그것도 이렇게 잘생기고 멋진 남자가 인정해 주다니... 집이 가난한 건 서로 똑같으니까 오히려 잘된 거야. 적어도 누가 누구를 나무랄 일은 없으니까.’더군다나 이다은의 이모는 이미 그의 고향으로 시집가 그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까탈스러운 이모가 그를 성실하고 착하며 남편감으로 손색이 없는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니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이다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목소리가 낮아졌다.“저도 남우 씨가 맘에 들어요. 우리 그냥 내일 혼인 신고하러 가요.”남우영은 눈이 동그래지며 놀라 되물었다.“혼인 신고요? 오늘 선보고 내일 바로 혼인 신고요? 그래도 시간을 두고 서로 좀 더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이다은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어차피 부부로 살아가는 건 현실적인 문제잖아요. 적당히 맞춰 가면서 살다 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남우영은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하다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살짝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그건 그렇지만...”이다은은 남우영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싱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물론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고 싶으시다면 저도 받아들일게요. 다만... 이모에게서 남우 씨 아버님이 암 투병 중이셨다가 지금은 많이 나아지셨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남우 씨의 결혼 문제로 걱정을 많이 하신다면서요? 그래서 저는 남우 씨가 저보다 더 급하신 줄 알았거든요.”남우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우리 혼인 신고합시다.”이다은은 엄청나게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오래된 숙제를 끝낸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필요한 서류 챙겨서 내일 아침 일찍 구청 앞에서 만나요.”남우영은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이다은은 여전히 개구리 캐릭터 탈을 품에 안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남자를 발견했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남우영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다은은 그를 단순히 맞선남 ‘남우 씨’로만 알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을 애타게 찾는 듯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눈이 마주친 순간 성큼성큼 다가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물었다.“작은 개구리 탈 하나 제작하는 데 도대체 얼마나 드는데요?”“만... 만원이요.”이다은이 대답하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그러면 고작 만원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왔다는 거예요?”다소 황당하다는 어투가 담긴 질문에 이다은의 표정이 굳어졌고 목소리에는 살짝 짜증이 묻어났다.“마치 고작 몇 푼 때문에 생고생이라도 했다는 식으로 얘기하시네요?”“돈 문제가 아니라면... 그럼 뭐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셨단 거죠?”남자가 당황한 듯 다시 묻자, 이다은은 코웃음치며 속으로 생각했다.‘역시 잘생긴 얼굴이 다는 아니라니까!’조금 언짢았지만 이다은은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고작 만원이 아니에요. 오천 원은 저에게 이틀 치 밥값이기도 하고요. 새벽부터 일어나 두 시간 걸려 도매시장까지 가서 어렵게 가져온 개구리 캐릭터들이에요. 제가 하나하나 기대를 담아 준비한 거라고요. 심지어 단속 공무원들 피해 가며 골목에서 한 시간이나 도망쳤는데 그걸 훔쳐 간 사람이 결국 ‘할머니의 모습’을 한 도둑이었다는 거죠. 제가 그걸 되찾으려고 한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세요?”남우영은 이다은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개구리 캐릭터 탈을 내려놓고 자기 지갑에서 현금을 몽땅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이 정도면 오늘 손해 본 건 다 메꿀 수 있겠죠?”그는 이다은이 더 이상 속상해하지 않길 바랐다. 이런 일로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피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오늘 소개팅을 잘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이다은은 그의 손에 들린 현금다발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남우영을
안성의 6월은 날씨가 무더웠다.뜨거운 태양 아래, 거리에 행인이 거의 없었다.왕개구리 인형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커피숍 앞으로 다급하게 다가왔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수십 개의 개구리 ‘자식’들을 구석에 놓고 무거운 개구리‘머리'를 벗고는 땀에 젖은 예쁜 얼굴을 드러냈다. 간판을 올려다보고 큰 눈을 깜빡이며 다급하게 말했다.“아마 여기가 맞을 거야!”개구리 머리를 안고 카페에 들어가 두리번거렸는데 젊은 남자는 한 명뿐이었다.멀리서 보니 얼굴도 아주 잘생겼고 분위기도 우아했다.‘오늘 남자는 좀 괜찮은데? 어쩐지 엄마가 이번에 결혼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경고하더라니.’여자는 헐레벌떡 걸어 들어가 남자 앞에 앉은 후 매우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제가 일 때문에 방금 도시 관리인에게 쫓기다가 길을 잃었어요. 반 시간이나 늦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소리를 들은 남우영은 고개를 들어 반대편에 앉아 있는 반인 반개구리를 보는 순간 멍해졌고 눈 밑에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놀라움이 언뜻 스쳤다.정장 차림의 남자는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며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약간의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그녀는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애써 웃으며 설명했다.“아.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남자가 덤덤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다은.”이다은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반응하고 말했다.“맞아요. 전 이다은이에요. 저희 이모가 말해줬나 보네요. 그래도 예의상 자기 소개를 더 자세히 해야겠어요.”남우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이다은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제 이모가 당신을 소개해줬어요. 저는 전문대 졸업에 올해 26살이고 프리랜서 창업자예요. 연애 경험 제로, 적금 제로, 나쁜 습관도 없고 취미도 없지만 꿈은 있어요.”남우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물었다.“꿈이 뭐죠?”이다은은 개구리 손을 덥석 움켜쥐며 흥분해서 말했다.“제 꿈은 달을 여행하는 우주비행사가 되는
너무 비정상이었다.그때 남서연과 백건이 다가왔다.세 사람은 사사로운 일을 제쳐두고 백건과 남서연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그들은 덕담도 나누고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흐름이 남우영에게 흘러갔다.“그러고 보니 우리 집안 애들은 전부 결혼했네. 이제 서연이까지 결혼했으니 우영이만 혼자야. 아내는 고사하고 여자친구도 없어.”“엄마, 내 위에 있는 사촌 형들 전부 서른이 넘었어요. 결혼하는 게 정상 아니에요?”“서연이는 너보다 어린 데도 이미 결혼했어!”남하준이 나서서 말렸다.“조금만 더 기다려. 서두르지 말고 서른이 넘으면 다시 말해. 안 되면 마흔에 해도 되고. 혹시 알아? 오십에 할 수도 있잖아. 아직 몇십 년 더 남았어.”남우영은 어두워진 얼굴로 덤덤하게 웃었다.“아빠는 위로를 참 잘해요.”백건은 정안과 남하준의 걱정을 이해하고 위로했다.“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우영이는 확실히 여자를 좋아해요. 얘가 어릴 때...”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우영이 갑자기 달려들어 한 손으로 그의 입을 막고 어깨동무를 한 채 옆으로 질질 끌고 갔다.“삼촌, 내가 할 말이 있어요.”정안은 긴장하더니 흥분해서 앞으로 다가갔다.“어릴 때 뭐? 야! 가지 마. 똑바로 말하고 가!”남우영은 백건을 꼭 감싸고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엄마. 삼촌이 헛소리하는 거예요.”“분명 뭔가 있네.”남하준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우영에게 비밀이 있네요.”남서연이 목소리를 낮추고 장난스레 중얼거렸다.“작은 아빠, 작은 엄마, 집에 가서 제가 우영 오빠의 비밀을 알아낼게요.”정안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좋아. 서연이 네가 돌아가서 꼭 물어봐.”남서연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이번 성대한 결혼식은 이틀 동안 거행되었다.첫째 날의 주제는 결혼식이었고 둘째 날의 주제는 여행이었다.그리고 이 섬은 백건이 사들여 남서연에게 선물했고 스위트 아일랜드라
“그래. 더 이상 의미가 없지.”“두 사람 지금 무슨 얘기하는 거야? 난 왜 하나도 못 알아듣겠지?”백건은 부드럽게 웃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넌 알 필요 없어. 가자. 부모님이랑 한잔해.”“그래요.”남서연은 주스를 챙기고 진우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서윤아와 백정우를 향해 걸어갔다.진우석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젖혀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서윤아는 휠체어에 앉아 적당한 우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백건과 남서연이 다가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아버님, 어머님, 저희가 한잔 올릴게요.”서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남서연을 보았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눈빛이지만 그런 사랑은 단순한 사랑이지 그녀를 향한 인정은 아니었다.그녀는 마음속 깊이 여전히 남서연의 능력이 그의 아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다만 그녀의 편견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아무도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그들 부부의 애정 전선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백정우는 크게 기뻐하며 격앙되어 잔을 들며 끊임없이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요점은 아이를 빨리 낳으라는 것이었다.남서연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백건은 이미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입술을 오므리고 몰래 남서연을 바라보며 꿀을 먹은 듯 달콤했다.비밀을 지키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하지만, 그의 어린 아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했다.3개월 후, 태아가 안정되면 모두에게 공개하려 했다.그리고 그녀의 체질도 대단해서 임신 증상이 전혀 없었다. 평소처럼 먹고 자고 출근하고, 어지럽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고, 입덧도 하지 않았다.멀지 않은 곳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남하준, 정안 그리고 그들의 아들 남우영.언뜻 보면 그들은 또래처럼 생겼는데 절대 남우영이 성숙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그의 부모가 선천적으로 미모를 타고났고 또 관리가 너무 잘 되어 젊어 보이는 것이었다.한 명은 늠름한 국방 장군이고, 한 명은 꽃 같은 미모의 화학자이고, 남우영
반년 후.남하준은 국경에서 안성으로 돌아왔다.정안과 반년 동안 떨어져 살면서 그는 그녀에게 언제 국경으로 돌아가냐고, 언제 실험실로 돌아가냐고 수없이 물었다. 비록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정안의 옆에 붙어 있으려 했다.그때마다 정안은 이렇게 대답했다.“난 안성에 남아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요.”무슨 중요한 일인지 정안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그리고 남하준은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정안은 묵은 원한과 새로운 원한을 함께 복수하고 있었다.유미의 남편은 횡령으로 고발돼 조사를 받다가 낙마했다.유미는 해외에서 남서연의 납치를 지시한 혐의와 직책 뇌물수수 혐의도 함께 추가되어 체포됐다.부부가 나란히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갔다.반년 동안 걷지도 못한 서윤아도 이 일을 알고 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승아를 집에 데려오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건은 그들 가족의 기업에 누를 끼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또 한 가지 큰일이 있었다.바로 백건과 남서연의 성대한 결혼식이었다.갑부의 결혼식은 M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에서 진행되었다. 십여 대의 비행기가 몇 번이고 낭만적인 섬으로 향했다.하늘과 바다가 일색이 되어 단조롭던 해변이 낭만적인 꽃바다로 변하고, 땅에 꽃잎이 깔리고, 수천만 개의 현장 장식이 있고, 가장 호화로운 음식과 술이 있었다.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서연도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장을 보게 되었다. 공기조차 꽃향기로 변했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로맨틱함이 가득했다.남서연은 수억 원짜리 웨딩드레스에 수십억 원짜리 주얼리를 착용한 채 멋지게 차려입은 백건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카펫을 밟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결혼식 무대 중앙으로 다가갔다.하객석은 꽉 찼고 모두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남서연은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달콤한 미소로 하객석의 부모님과 큰아버지들, 큰어머니들, 그리고 그녀를 20년 넘게 애지중지한 사촌 형제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자신이 너무 행복하다고 느꼈다
“백정우, 방금 뭐라 그랬어? 내가 소란을 피워?”서윤아가 울부짖자 핸드폰 저쪽에서 통화를 뚝 끊어버렸다.서윤아는 자기 화를 이기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냅다 던져 박살 냈다.그래도 그녀의 마음은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아들과 남편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고, 심지어 자기 딸과 외손자까지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것에 크게 실망했다.백건과 남서연을 이어주려고 주변의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녀와 점점 멀어진다고 느꼈다.유승아는 바닥에 부서진 휴대전화 두 대를 주워들고 그녀 곁에 다가와 앉으며 부드럽게 달랬다.“너무 화내지 마세요. 그러다 몸 상해요. 건이 결혼 문제는 천천히 해결하세요.”“승아야,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서윤아가 긴장하며 묻자 유승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때 정안이 성큼성큼 병실로 들어오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다.“이제 아무 방법도 쓸모 없어요.”병실 안의 두 사람은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정안은 우아하게 걸어 들어와 보온 상자를 손에 들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 건이는 이미 재산의 절반을 서연에게 주겠다고 공증을 끝냈어요. 이혼하면 가족 기업 전체가 흔들릴 거예요.”권력과 재산을 중시하는 서윤아는 고함을 질렀다.“누가 허락했어? 이 자식이 감히 반역을 저질러!”서윤아는 일어나지 못했지만 포악한 기세가 너무 강렬해 침대에서 벌벌 떨 정도였다.정안은 이제 그녀의 어머니를 걱정하지 않았다. 유일한 걱정은 유승아가 계속 파란을 일으키는 것이었다.도시락을 내려놓은 정안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유승아를 마주 보며 비꼬듯 말했다.“승아는 참 끈질긴 애구나. 건이는 이미 서연이와 결혼했으니 너도 이제 정신 차리고 적당한 선을 지켜. 더 이상 건이에게 환상을 품지 마.”유승아가 황급히 설명했다.“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와 건이는...”정안이 차갑게 웃었다.“오해인지 아닌지는 네가 누구보다 잘 알겠지. 거짓 해명은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