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불안하게 하룻밤을 기다렸다.다음 날, 남하준은 돌아오지 않았다.그녀는 감히 전화를 걸어 방해하지 못하고 끝없는 고통과 기대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한 번도 시간이 그렇게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1분 1초를 세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문 앞을 응시했다.아무리 기다려도 남하준은 돌아오지 않았다.셋째 날 늦은 밤, 그녀는 휴대전화로 인기 뉴스를 보았다.묘비 산에서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주변 주민들이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깊은 밤이라 총소리만 들리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정안은 휴대전화를 계속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남하준의 번호를 눌렀다.휴대전화에서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음이 들려왔다.정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고 커다란 손이 그녀의 심장을 움켜쥔 것 같았다.가슴이 답답하고 아프고 걱정과 두려움 속에 안절부절못하며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새벽 세 시.정안은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아 코트를 걸치고 베란다 밖에 서서 찬 바람을 쐬며 정원 앞의 큰 철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남하준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또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정안은 갑자기 고급차량이 별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흥분해서 말을 할 수 없었고 재빨리 몸을 돌려 방으로 뛰어들어 문으로 달려갔다.남하준이 차에서 내려 문을 닫고 몸을 돌리는 순간, 그림자 하나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오빠!”정안의 목소리는 약간 울먹였고 감격스러웠고 흥분했다.남하준은 기쁘지만 또 안쓰러웠다. 새벽 4시가 다 되어가는데 그녀는 아직도 안 자고 있었다.남하준이 반응하기 전에 정안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어 그의 목을 감싼 후 꽉 안았다.그는 자연스럽게 정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큰 키와 큰 체형 때문에 정안은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온몸의 힘이 남자의 팔에 들어갔다.“안 다쳤어요?”정안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걱정돼 당장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남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정안의 품이 너무 부드
남하준은 뜨거운 시선으로 정안의 눈을 내려다보며 그녀의 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정안은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 입술을 오므리더니 물었다.“계획은 어떻게 됐어요?”“날 밝으면 말해줄게. 응?”그의 따가운 시선은 여자의 연분홍 입술에 고정되어 있었고 목젖이 저절로 위아래로 굴렀다.“좋아요.”정안은 힘들어 보이는 그의 뺨을 손으로 살며시 어루만졌다.“피곤하죠? 내가 샤워 물 받아줄게요. 씻고 얼른 쉬어요.”“안 힘들어.”남하준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뜨거운 눈빛은 마치 화로 같았다.“나 샤워하러 갈 테니까 먼저 자지 마.”자신에게 할 말이 있나 싶어 정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남하준은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외투를 벗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뒤돌아서 화장실로 들어갔다.정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휴대전화를 눌러보니 배터리가 없었다.즉시 충전선을 찾아 그의 휴대전화를 충전했고 이불을 펴고 그가 잘 자리에 들어가서 누워 이불속을 따뜻하게 해주었다.10분 후, 정안은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즉시 일어나 앉았다. “내가 따뜻하게 했어요. 오빠...”정안은 순간 소리가 뚝 그쳤다.눈앞의 남자는 마른 수건을 손에 들고 반쯤 젖은 단발머리를 닦고 있었고 각진 이목구비는 여전히 매혹적이고 아름다우며 상체는 벗은 채 샤워타올만 두르고 나왔다.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의 건장한 체격은 그야말로 감탄스러웠고 가슴 근육은 단단하고 복근은 뚜렷했다.사나이가 목욕하고 나온 이 장면은 정말 생기와 야성미가 넘쳤다.정안은 그가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을 본 적이 드물어 매번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며 괜히 부끄러워 났다.그녀는 겁에 질려 눈을 내리뜨고 눈빛을 약간 피하며 중얼거렸다.“일찍 쉬세요.”남하준은 머리카락을 닦던 수건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침대를 받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정안은 고개를 점점 더 숙였고 턱을 목구멍에 파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뛰고 목소리가 떨렸다.“또 옷 안 입고 자요?”남하준은 저
정안은 그의 손목을 덥석 누르고 흐릿한 눈을 뜨고 그의 뜨거운 시선을 바라보며 숨을 헐떡였다.“오빠. 새벽 네 시예요. 요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이러면 안 돼요.”남하준은 손을 빼서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말투에는 아쉬움이 깃들었다.“몸이 아직 회복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나 밀어내는 거야?”정안이 급히 설명했다.“이미 두 달이 넘었어요. 몸이 회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오빠가 걱정돼서...”남하준은 이불을 빼서 몸을 덮고 샤워타올을 빠르게 뿌리쳤다.순간, 남자의 몸이 정안의 아랫배에 닿았고 그녀는 남자의 고통스러운 욕망을 실감하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정말 잠들 수 없었다.정안은 움찔하더니 몸이 팽팽해지고 볼이 붉어져 수줍게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남하준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네 몸이 불편하다면 참을 수 있는데 나 피곤할까 봐 걱정하는 거라면 나 못 참아.”정안은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고 아랫배가 세게 받친 느낌에 조금 괴로워 부끄러운 듯 눈을 감았다.“원해?”남하준이 그녀의 목에 키스하고 쉰 목소리로 부드럽게 달랬다.“살살, 빨리 끝낼게.”살살은 얼마나 살살이고, 빠르다는 건 또 얼마나 빠르단 걸까?그들이 관계를 맺은 건 비록 한 번뿐이었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 그는 살살 빨리 끝낼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정안은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내면 그도 일찍 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네.”정안이 수줍어하며 대답하자 남하준은 다정하게 웃더니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손으로 그녀의 잠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뜨거운 욕망이 한밤중에 타오르고 있었다.피부의 솔직한 만남, 가장 깊은 곳에서의 육체적 교감은 감정의 가장 좋은 조화제였다.정안이 평생 들어본 남하준의 가장 큰 거짓말은 살살 빠르단 것이었다.새벽의 시간은 이 남자가 쓰기에 역부족이었다.게다가 그는 정안이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절제하고 있었다.이른 아침 해가 뜨자 정안은 피곤해
“아니라니까요!”정안은 그의 허벅지에서 움직였다. 앉아 있는 자세가 너무 친밀해 수줍어하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오빠가 나 피곤하게 만들어서 여태까지 잔 거잖아요.”남하준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붉은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앞으론 안 그럴게.”“내가 아직도 오빠 말을 믿을 것 같아요?”정안은 불쾌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그건 금욕을 너무 오래 해서 그래.”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만져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앞으로 자주 하자.”자주 하자는 말에 정안은 창피함이 몰려왔다.남하준은 그녀의 보들보들한 작은 손을 만지다가 참지 못하고 입가에 대고 입맞춤을 하더니 손을 떼지 못하고 자기 손바닥에 비벼 넣었다.“더 먹을래?”“배불러요.”정안은 자신의 손을 빼내어 긴장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경각심을 세웠다.“설마 또 원하는 건 아니죠?”남하준은 쓸쓸한 미소를 짓더니 가볍게 탄식했다.“네 남편 아직 팔팔해. 너만 원한다면 언제든지 가능하지. 하지만 무조건 너도 원해야 해. 난 절대 너 강요 안 해.”“그럼 뭐 할 건데요?”“배불렀으면 나랑 누구 만나러 가자.”남하준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진지하게 말했다.정안은 그의 눈에 희망이 보이자 허벅지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손을 잡고 흥분해서 말했다.“가요. 지금 당장.”한 시간 뒤.남하준이 직접 운전해 두 사람은 군인 병원에 도착했다.이곳은 안성에서 경비가 가장 삼엄한 병원으로, 보통 군인과 중요 인물만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진찰 외에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정안은 조마조마하게 차에서 내렸고 남하준의 손에 이끌려 겹겹이 경비를 지나 VIP 병실로 들어갔다.날이 어두워지자 병원은 환하게 불이 켜졌다.문을 지키는 병사가 방문을 열어주었다.널찍한 병실, 정안은 멀리 병상에 누워 있는 노인이 보였다.그녀는 긴장한 듯 고개를 들어 남하준을 바라보았다.“대체 누구 만나러 온 거예요?”“들어가 보면
백진은 정안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달랬다.“너무 걱정 마. 네 부모님이랑 동생은 다 잘 있어. 다만 어딘가에 갇혀있을 뿐이야.”“구체적인 위치를 아세요?”백진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몰라. 사방이 높은 담장이고 경비도 많아서 철옹성 같은 곳이라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어.”“그럼 백인호는요? 찾아간 적 있었어요?”“아니. 한 번도 나타난 적 없었어. 마치 그 자식이 벌인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야.”백진이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하지만 그곳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전부 감시당하고 있었어.”남하준이 다가와 예의 바르게 물었다.“할아버지, 하늘을 바라보면 근처에 무슨 건물이 있었는지 한번 떠올려보시겠어요?”“아무것도 없었어. 사방이 산봉우리고 숲이고 나무였어.”“너무 교활해서 그렇게 은밀한 곳을 찾기가 어려울 거야.”정안은 괴로운 듯 고개를 숙였고 남하준이 정안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걱정 마. 내가 할아버지를 구해냈으니 네 부모님이랑 남동생도 구할 수 있을 거야. 조금만 시간을 줘.”“네.”정안이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백진은 흐뭇한 눈빛으로 남하준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하준아. 넌 정말 날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어. 아주 똑똑해.”“과찬이십니다. 할아버지께서 지혜로우셔서 제가 짠 판을 알아채시고 잘 협조해주신 거죠.”백진이 탄식하며 말했다.“다만 네 5조 원 짜리 산장은 내가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남하준은 그 뜻을 알아챘다.백진은 그의 아내의 제사를 지내다가 구출되었지만, 그의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가 아직 적의 손에 있다는 것이 바로 그들의 가장 큰 카드였다.그들의 뜻에 순종하고 재산을 모두 그들에게 주든지, 아니면 가족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지킬 수 있어요. 할아버지.”“어떻게?”남하준이 자신 있게 말하자 백진이 의문스러워 물었다.“백인호가 이미 죽었거든요.”백진이 경악했다.“백인호가 죽었다고?”남하준이 옆 의자에 앉아 설명을 이어갔다.“백인호는 지금 M국의
남하준의 말을 알아들은 정안은 눈물에 젖어 백진의 손을 꼭 잡았다.“할아버지, 오빠 말은 할아버지를 구해냈으니 한이서를 바로 체포할 수 있다는 거예요.”“네. 그렇습니다.”남하준이 대답했다.백진은 눈물을 반짝이며 흐뭇하게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밤.정안은 병원에서 늦게까지 백진의 곁을 지켰다.백진의 몸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나이가 많은 데다 묘비산에서 양측이 교전하는 바람에 놀랐고 또 여기저기 조금 부딪혔다.남하준은 그의 건강이 안심되지 않아 그를 입원시키고 전면 검사를 하며 몸조리도 겸했다.또 이곳에서는 잘 보호 받을 수 있었다....한편, 군전 그룹 위성 데이터 모니터링 실.수십 대의 거대한 풀스크린 컴퓨터가 각종 위성 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그중 28호 CCTV에는 두 명의 직원이 도청하며 컴퓨터에 빠르게 타이핑 하고 있었다.바로 한서진과 한이서의 대화 내용이었다.“백씨 가문 재산으로 부족해? 대체 얼마나 탐욕스럽고 어리석으면 5조 원짜리 함정에 빠져?”“그건 5조 원의 문제가 아니라 M국에서 가장 호화롭고 아름다운 산장이야.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살 수 없는 지역이라고!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한서진이 차갑게 웃었다.“그래, 돈이 있어도 못 사지. 그러니까 너처럼 탐욕스러운 여자를 속인 거 아니야? 이제 어떡할 거야? 손에 있는 가장 큰 카드가 없어졌으니 어쩔 생각이야?”한이서가 여유롭게 대답했다.“우리 손엔 아직도 세 장의 카드가 남았잖아?”한서진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잠자코 있어. 분명히 말해두는데 절대 그쪽에 연락하면 안 돼. 안 그럼 손에 있는 모든 카드를 빼앗기고 우린 모두 죽을 거야.”“그게 무슨 말이야?”“네가 남하준의 능력에 대해 알아? 내 추측이 맞는다면 지금 우리 대화 내용은 이미 위성을 통해 도청되고 있고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이미 매수당했을 거야. 우리 일거수일투족은 이미 남하준 손바닥 안에 있다고. 작은 실수 하나에 우리 목이 날아가.”
한서진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하늘을 봐.”“위에 아무것도 없잖아?”“위성 신호는 사람이 밖에 있는 한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어. 그리고 우리 휴대전화가 신호만 받으면 위치를 추적당하고 근처에 있는 CCTV든, 경찰서든, 교통 정보 센터든, 개인용 CCTV든 전부 데이터베이스에서 쉽게 감시되고 있어. 그리고... 네가 차고 있는 그 스포츠 시계, 평소에 운전하는 차량, 집에 있는 컴퓨터 모두 위치추적 시스템과 수신만 있으면 우리는 숨을 곳이 없다고.”한이서가 긴장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떡해?”“일단 지켜보고 있어.”...며칠 후, 백진은 즉시 변호사에게 연락해 5조 원짜리 산장을 남하준 명의로 이전했다.남하준은 정안에게 주는 예물이라며 완곡하게 거절했다.백진은 감동되고 기뻤지만 그래도 그들 부부 명의로 부동산을 이전했다.며칠 동안 휴양한 백진은 퇴원을 원했고 정안이 그를 남씨 본가로 데려가서 잠시 머물게 했다.남씨 일가는 백진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원래도 친분이 두터운 데다 M국 갑부였으니 그야말로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눈치 빠른 몇몇 형님 내외는 벌써 아첨하고 따뜻하게 대접했다.백진이 가장 기쁜 일은 증손자를 안은 것이었다. 집안의 변으로 인한 우울한 기분도 말끔히 사라졌다.남하준은 자신의 업무 외에도 정안 부모님의 실종 사건을 계속 수사하고 있었다.정안은 변호사와 연락하고, 회사 고위층과 상의해 백씨 가문 자산을 한 번에 되찾고 한이서를 감옥에 넣을 준비를 했다.두 사람 모두 각자 바쁘게 지냈다.이날 남창민 부부와 백진은 손자를 데리고 뒤뜰로 산책하러 나갔고 형제 내외는 일하러 나가 집에는 정안과 지윤만 남았다.정안이 모든 자료를 준비하고 지윤과 함께 변호사를 만나러 가려고 입구를 막 나서자마자 불청객이 찾아왔다.집사가 유미를 데리고 들어왔다.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서로 멍하니 바라보며 눈에는 어둠이 드리웠다.집사가 예의 바르게 보고했다.“사모님, 유미 씨께서 도련님을 만나러 찾아왔습
유미가 버럭 화를 냈다.“헛소리!”“당신이 조사받은 일은 남하준 뜻이었어. 난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유미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이를 악물고 또박또박 말했다.“지금 우리 사이 우정을 이간질하는 거지?”지윤이 보다 못해 화가 나서 말했다.“언니, 이런 사람이랑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사람 불러서 내쫓아요.”내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쫓아내면 다음은? 그다음은?유미는 끊임없이 남하준에게 매달릴 것이다.이 일은 반드시 깔끔하게 해결해야 한다.정안은 지윤에게 상관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녀의 손을 지그시 눌렀다.그리고 유미를 집안으로 안내했다.“들어가 앉아서 천천히 얘기하지.”유미가 성큼성큼 들어갔고 지윤은 정안이 괴롭힘 당할까 봐 따라 들어갔다.거실 안. 도우미가 차를 가져왔다.유미는 잿빛이 된 얼굴로 소파에 앉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지윤은 불쾌하게 유미를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하지만 정안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이 내 남편 좋아하는 거 알아. 이미 결혼했어도 친구라는 명목으로 계속 옆에 머무는 것도 서슴지 않고 말이야. 하지만 난 이제 당신 존재가 신경 쓰여.”유미가 버럭 화를 냈다.“그건 네가 소심하고 인색하고 품위가 없어서 그래!”지윤이 심호흡하더니 그녀를 후려치고 싶은 생각이 꿈틀거렸다.정안도 화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꾹 참았다. 유미가 이렇게 그녀를 헐뜯고 부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말다툼하는 건 의미가 없었으니 반드시 그녀를 해결해야 했다.유미처럼 집착이 강한 여자가 계속 남하준 곁에 있다면 남하준의 마음이 아무리 확고해도 그들 부부의 감정은 조만간 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남하준을 사랑하는 한, 정안은 유미가 말하는 그런 너그러운 아내가 될 수 없었다.정안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내 남편도 그쪽이 옆에서 일하는 거 원하지 않아.”유미가 확고한 눈빛으로 말했다.“난 네 이간질에 놀아나지 않아.”“
이다은은 컴퓨터를 켜고 쇼핑몰 관리자 페이지에 로그인했지만, 거래 완료된 주문은 하나도 없고 답장하지 못한 문의 메시지만 가득한 화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답답한 마음으로 하나씩 정성껏 답장을 보냈지만, 새로운 손님은커녕 추가 메시지도 오지 않는 적막한 화면에 멍하니 시선을 두다가 결국 다른 화면으로 넘어갔다.새로 띄운 화면에는 빽빽한 코드와 무인 로켓의 데이터 구조가 가득 떠 있었다.이다은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이마를 짚으며 깊은 고민에 빠진 끝에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두 시간 동안 코드를 작성하고 저녁을 먹은 뒤에도 세 시간이나 작업에 매달렸다.밤늦게 작업을 마치고 파일을 보냈지만, 그녀가 손에 쥔 돈은 고작 60만 원에 불과했다.‘학력이 없으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값싼 노동자로만 보이는구나...’그녀는 가끔 이 모든 걸 버리고 싶을 만큼 깊은 절망에 빠지곤 했다. 컴퓨터를 끄고 스트레칭을 하며 욕실로 들어가면서도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한때 그녀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운명이 바뀔 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M국 항공우주대학교 합격 통지서가 도용되면서 그녀는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 일은 그녀의 꿈과 미래를 부숴버렸고 지금까지 체념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다음 날 아침, 약속대로 남우영과 두 번째 만남을 가진 이다은은 드디어 손에 혼인관계증명서를 쥐게 되었다.남우영이라는 잘생긴 남편이 생겼지만 그녀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녀에게 결혼은 그저 누구와 하든 큰 차이가 없는 일이었다.‘결혼이란 건 결국 평생 팀플할 팀원을 고르는 거지. 게다가 부모님 잔소리에서도 해방될 수 있게 됐으니, 이보다 완벽한 일거양득이 어딨어?’구청을 나서며 혼인관계증명서를 내려다보던 이다은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남우 씨, 근데 왜 이름이 남우영으로 되어있어요? 남우 아니었어요?”남우영은 순간 표정이 굳더니 억지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주민등록증엔 남우영으로 되어있어요.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 남우라고 불
이다은은 남우영이 타고 온 차를 보더니 그 자리에 멍하니 얼어붙었다. 그렇게 조수석 문 앞에서 한참 머뭇거리는 그녀를 본 남우영이 다가와 차 문을 열어주며 물었다.“다은 씨, 왜 그래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이다은은 차를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몇억은 하는 차 아닌가요? 잘못 긁거나 고장 내면 저희 둘 다 감당 못 해요.”남우영은 잠시 그녀를 보며 생각하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고 타요. 제가 조심해서 안전운전 할게요.”이다은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차에 올랐다.차가 도로를 달리자, 이다은은 자기 집 주소를 알려주었고, 한 시간이 지나 낡고 오래된 구도심의 허름한 건물 앞에 차가 멈췄다.이다은은 차에서 내린 뒤 남우영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 구청에서 봬요.”남우영도 창문을 내려 손을 흔들었지만, 그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낡고 허름한 건물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며 답답한 마음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이다은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건물의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8층 꼭대기 층에 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캐릭터 탈을 구석에 내려놓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크게 숨을 내쉬었다.“하아... 오늘도 정말 너무 많이 뛰어다녔네.”그때 옥상에서 세탁물을 한가득 담은 빨래 바구니를 들고 다리를 저는 그녀의 아버지, 이적이 내려왔다.“다은아, 이제 퇴근해서 온 거야?”이다은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달려가 빨래 바구니를 받아들며 말했다.“아빠, 제가 할게요.”이적은 바구니를 건네고 천천히 거실로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이다은이 빨래를 하나씩 꺼내 정성스럽게 개기 시작하자, 이적도 옆에 앉아 빨래를 개며 무심히 물었다.“다은아, 요즘엔 선 봤던 남자 안 만났어?”이다은은 빨래를 개던 손을 멈추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말했다.“아빠, 저 결혼하려고요.”이적은
이다은은 눈웃음을 지으며 기쁨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그동안 선을 보면서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집안 형편이 가난하다느니, 학력이 부족하다느니, 성격이 유치하다느니 하며 그녀의 단점을 들춰내기 바빴다.하지만 이번엔 달랐다.‘그것도 이렇게 잘생기고 멋진 남자가 인정해 주다니... 집이 가난한 건 서로 똑같으니까 오히려 잘된 거야. 적어도 누가 누구를 나무랄 일은 없으니까.’더군다나 이다은의 이모는 이미 그의 고향으로 시집가 그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까탈스러운 이모가 그를 성실하고 착하며 남편감으로 손색이 없는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니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이다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목소리가 낮아졌다.“저도 남우 씨가 맘에 들어요. 우리 그냥 내일 혼인 신고하러 가요.”남우영은 눈이 동그래지며 놀라 되물었다.“혼인 신고요? 오늘 선보고 내일 바로 혼인 신고요? 그래도 시간을 두고 서로 좀 더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이다은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어차피 부부로 살아가는 건 현실적인 문제잖아요. 적당히 맞춰 가면서 살다 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남우영은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하다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살짝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그건 그렇지만...”이다은은 남우영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싱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물론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고 싶으시다면 저도 받아들일게요. 다만... 이모에게서 남우 씨 아버님이 암 투병 중이셨다가 지금은 많이 나아지셨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남우 씨의 결혼 문제로 걱정을 많이 하신다면서요? 그래서 저는 남우 씨가 저보다 더 급하신 줄 알았거든요.”남우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우리 혼인 신고합시다.”이다은은 엄청나게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오래된 숙제를 끝낸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필요한 서류 챙겨서 내일 아침 일찍 구청 앞에서 만나요.”남우영은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이다은은 여전히 개구리 캐릭터 탈을 품에 안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남자를 발견했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남우영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다은은 그를 단순히 맞선남 ‘남우 씨’로만 알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을 애타게 찾는 듯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눈이 마주친 순간 성큼성큼 다가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물었다.“작은 개구리 탈 하나 제작하는 데 도대체 얼마나 드는데요?”“만... 만원이요.”이다은이 대답하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그러면 고작 만원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왔다는 거예요?”다소 황당하다는 어투가 담긴 질문에 이다은의 표정이 굳어졌고 목소리에는 살짝 짜증이 묻어났다.“마치 고작 몇 푼 때문에 생고생이라도 했다는 식으로 얘기하시네요?”“돈 문제가 아니라면... 그럼 뭐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셨단 거죠?”남자가 당황한 듯 다시 묻자, 이다은은 코웃음치며 속으로 생각했다.‘역시 잘생긴 얼굴이 다는 아니라니까!’조금 언짢았지만 이다은은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고작 만원이 아니에요. 오천 원은 저에게 이틀 치 밥값이기도 하고요. 새벽부터 일어나 두 시간 걸려 도매시장까지 가서 어렵게 가져온 개구리 캐릭터들이에요. 제가 하나하나 기대를 담아 준비한 거라고요. 심지어 단속 공무원들 피해 가며 골목에서 한 시간이나 도망쳤는데 그걸 훔쳐 간 사람이 결국 ‘할머니의 모습’을 한 도둑이었다는 거죠. 제가 그걸 되찾으려고 한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세요?”남우영은 이다은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개구리 캐릭터 탈을 내려놓고 자기 지갑에서 현금을 몽땅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이 정도면 오늘 손해 본 건 다 메꿀 수 있겠죠?”그는 이다은이 더 이상 속상해하지 않길 바랐다. 이런 일로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피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오늘 소개팅을 잘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이다은은 그의 손에 들린 현금다발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남우영을
안성의 6월은 날씨가 무더웠다.뜨거운 태양 아래, 거리에 행인이 거의 없었다.왕개구리 인형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커피숍 앞으로 다급하게 다가왔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수십 개의 개구리 ‘자식’들을 구석에 놓고 무거운 개구리‘머리'를 벗고는 땀에 젖은 예쁜 얼굴을 드러냈다. 간판을 올려다보고 큰 눈을 깜빡이며 다급하게 말했다.“아마 여기가 맞을 거야!”개구리 머리를 안고 카페에 들어가 두리번거렸는데 젊은 남자는 한 명뿐이었다.멀리서 보니 얼굴도 아주 잘생겼고 분위기도 우아했다.‘오늘 남자는 좀 괜찮은데? 어쩐지 엄마가 이번에 결혼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경고하더라니.’여자는 헐레벌떡 걸어 들어가 남자 앞에 앉은 후 매우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제가 일 때문에 방금 도시 관리인에게 쫓기다가 길을 잃었어요. 반 시간이나 늦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소리를 들은 남우영은 고개를 들어 반대편에 앉아 있는 반인 반개구리를 보는 순간 멍해졌고 눈 밑에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놀라움이 언뜻 스쳤다.정장 차림의 남자는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며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약간의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그녀는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애써 웃으며 설명했다.“아.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남자가 덤덤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다은.”이다은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반응하고 말했다.“맞아요. 전 이다은이에요. 저희 이모가 말해줬나 보네요. 그래도 예의상 자기 소개를 더 자세히 해야겠어요.”남우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이다은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제 이모가 당신을 소개해줬어요. 저는 전문대 졸업에 올해 26살이고 프리랜서 창업자예요. 연애 경험 제로, 적금 제로, 나쁜 습관도 없고 취미도 없지만 꿈은 있어요.”남우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물었다.“꿈이 뭐죠?”이다은은 개구리 손을 덥석 움켜쥐며 흥분해서 말했다.“제 꿈은 달을 여행하는 우주비행사가 되는
너무 비정상이었다.그때 남서연과 백건이 다가왔다.세 사람은 사사로운 일을 제쳐두고 백건과 남서연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그들은 덕담도 나누고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흐름이 남우영에게 흘러갔다.“그러고 보니 우리 집안 애들은 전부 결혼했네. 이제 서연이까지 결혼했으니 우영이만 혼자야. 아내는 고사하고 여자친구도 없어.”“엄마, 내 위에 있는 사촌 형들 전부 서른이 넘었어요. 결혼하는 게 정상 아니에요?”“서연이는 너보다 어린 데도 이미 결혼했어!”남하준이 나서서 말렸다.“조금만 더 기다려. 서두르지 말고 서른이 넘으면 다시 말해. 안 되면 마흔에 해도 되고. 혹시 알아? 오십에 할 수도 있잖아. 아직 몇십 년 더 남았어.”남우영은 어두워진 얼굴로 덤덤하게 웃었다.“아빠는 위로를 참 잘해요.”백건은 정안과 남하준의 걱정을 이해하고 위로했다.“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우영이는 확실히 여자를 좋아해요. 얘가 어릴 때...”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우영이 갑자기 달려들어 한 손으로 그의 입을 막고 어깨동무를 한 채 옆으로 질질 끌고 갔다.“삼촌, 내가 할 말이 있어요.”정안은 긴장하더니 흥분해서 앞으로 다가갔다.“어릴 때 뭐? 야! 가지 마. 똑바로 말하고 가!”남우영은 백건을 꼭 감싸고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엄마. 삼촌이 헛소리하는 거예요.”“분명 뭔가 있네.”남하준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우영에게 비밀이 있네요.”남서연이 목소리를 낮추고 장난스레 중얼거렸다.“작은 아빠, 작은 엄마, 집에 가서 제가 우영 오빠의 비밀을 알아낼게요.”정안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좋아. 서연이 네가 돌아가서 꼭 물어봐.”남서연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이번 성대한 결혼식은 이틀 동안 거행되었다.첫째 날의 주제는 결혼식이었고 둘째 날의 주제는 여행이었다.그리고 이 섬은 백건이 사들여 남서연에게 선물했고 스위트 아일랜드라
“그래. 더 이상 의미가 없지.”“두 사람 지금 무슨 얘기하는 거야? 난 왜 하나도 못 알아듣겠지?”백건은 부드럽게 웃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넌 알 필요 없어. 가자. 부모님이랑 한잔해.”“그래요.”남서연은 주스를 챙기고 진우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서윤아와 백정우를 향해 걸어갔다.진우석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젖혀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서윤아는 휠체어에 앉아 적당한 우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백건과 남서연이 다가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아버님, 어머님, 저희가 한잔 올릴게요.”서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남서연을 보았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눈빛이지만 그런 사랑은 단순한 사랑이지 그녀를 향한 인정은 아니었다.그녀는 마음속 깊이 여전히 남서연의 능력이 그의 아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다만 그녀의 편견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아무도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그들 부부의 애정 전선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백정우는 크게 기뻐하며 격앙되어 잔을 들며 끊임없이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요점은 아이를 빨리 낳으라는 것이었다.남서연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백건은 이미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입술을 오므리고 몰래 남서연을 바라보며 꿀을 먹은 듯 달콤했다.비밀을 지키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하지만, 그의 어린 아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했다.3개월 후, 태아가 안정되면 모두에게 공개하려 했다.그리고 그녀의 체질도 대단해서 임신 증상이 전혀 없었다. 평소처럼 먹고 자고 출근하고, 어지럽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고, 입덧도 하지 않았다.멀지 않은 곳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남하준, 정안 그리고 그들의 아들 남우영.언뜻 보면 그들은 또래처럼 생겼는데 절대 남우영이 성숙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그의 부모가 선천적으로 미모를 타고났고 또 관리가 너무 잘 되어 젊어 보이는 것이었다.한 명은 늠름한 국방 장군이고, 한 명은 꽃 같은 미모의 화학자이고, 남우영
반년 후.남하준은 국경에서 안성으로 돌아왔다.정안과 반년 동안 떨어져 살면서 그는 그녀에게 언제 국경으로 돌아가냐고, 언제 실험실로 돌아가냐고 수없이 물었다. 비록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정안의 옆에 붙어 있으려 했다.그때마다 정안은 이렇게 대답했다.“난 안성에 남아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요.”무슨 중요한 일인지 정안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그리고 남하준은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정안은 묵은 원한과 새로운 원한을 함께 복수하고 있었다.유미의 남편은 횡령으로 고발돼 조사를 받다가 낙마했다.유미는 해외에서 남서연의 납치를 지시한 혐의와 직책 뇌물수수 혐의도 함께 추가되어 체포됐다.부부가 나란히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갔다.반년 동안 걷지도 못한 서윤아도 이 일을 알고 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승아를 집에 데려오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건은 그들 가족의 기업에 누를 끼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또 한 가지 큰일이 있었다.바로 백건과 남서연의 성대한 결혼식이었다.갑부의 결혼식은 M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에서 진행되었다. 십여 대의 비행기가 몇 번이고 낭만적인 섬으로 향했다.하늘과 바다가 일색이 되어 단조롭던 해변이 낭만적인 꽃바다로 변하고, 땅에 꽃잎이 깔리고, 수천만 개의 현장 장식이 있고, 가장 호화로운 음식과 술이 있었다.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서연도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장을 보게 되었다. 공기조차 꽃향기로 변했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로맨틱함이 가득했다.남서연은 수억 원짜리 웨딩드레스에 수십억 원짜리 주얼리를 착용한 채 멋지게 차려입은 백건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카펫을 밟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결혼식 무대 중앙으로 다가갔다.하객석은 꽉 찼고 모두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남서연은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달콤한 미소로 하객석의 부모님과 큰아버지들, 큰어머니들, 그리고 그녀를 20년 넘게 애지중지한 사촌 형제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자신이 너무 행복하다고 느꼈다
“백정우, 방금 뭐라 그랬어? 내가 소란을 피워?”서윤아가 울부짖자 핸드폰 저쪽에서 통화를 뚝 끊어버렸다.서윤아는 자기 화를 이기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냅다 던져 박살 냈다.그래도 그녀의 마음은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아들과 남편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고, 심지어 자기 딸과 외손자까지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것에 크게 실망했다.백건과 남서연을 이어주려고 주변의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녀와 점점 멀어진다고 느꼈다.유승아는 바닥에 부서진 휴대전화 두 대를 주워들고 그녀 곁에 다가와 앉으며 부드럽게 달랬다.“너무 화내지 마세요. 그러다 몸 상해요. 건이 결혼 문제는 천천히 해결하세요.”“승아야,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서윤아가 긴장하며 묻자 유승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때 정안이 성큼성큼 병실로 들어오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다.“이제 아무 방법도 쓸모 없어요.”병실 안의 두 사람은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정안은 우아하게 걸어 들어와 보온 상자를 손에 들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 건이는 이미 재산의 절반을 서연에게 주겠다고 공증을 끝냈어요. 이혼하면 가족 기업 전체가 흔들릴 거예요.”권력과 재산을 중시하는 서윤아는 고함을 질렀다.“누가 허락했어? 이 자식이 감히 반역을 저질러!”서윤아는 일어나지 못했지만 포악한 기세가 너무 강렬해 침대에서 벌벌 떨 정도였다.정안은 이제 그녀의 어머니를 걱정하지 않았다. 유일한 걱정은 유승아가 계속 파란을 일으키는 것이었다.도시락을 내려놓은 정안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유승아를 마주 보며 비꼬듯 말했다.“승아는 참 끈질긴 애구나. 건이는 이미 서연이와 결혼했으니 너도 이제 정신 차리고 적당한 선을 지켜. 더 이상 건이에게 환상을 품지 마.”유승아가 황급히 설명했다.“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와 건이는...”정안이 차갑게 웃었다.“오해인지 아닌지는 네가 누구보다 잘 알겠지. 거짓 해명은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