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는 말할수록 화가 나서 목소리가 더 치솟았다.“두 번째 소개팅 상대는 우리 집처럼 찢어지게 가난해서 조건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지. 근데 그 엄마가 정말... 우리 약혼하고 동거하고, 임신해서 아들까지 낳으면 결혼식 올리래. 게다가 결혼식이랑 애 백일잔치를 같이 치르재.”“여기서 중요한 건 무조건 아들을 낳아야 하는 거야. 아니면 예물 따위 없대.”지우가 화가 나서 입김을 불면서 어느새 단풍나무 집까지 간 줄 몰랐다.정안은 그녀의 경험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고 또 우습기도 했다. 그녀의 주위에서 이런 이상한 일들은 만나기 어려웠다.지우가 말을 이었다.“엄마가 나 시집가라고 만날 소개팅 시켜주니까 짜증 나 죽겠어.”“왜 그렇게 서두르시는데?”“왜긴 왜야? 남동생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으니 결혼을 서두르고 싶은 거지.”정안은 어리둥절했다.“네 남동생 결혼이 너랑 뭔 상관인데?”지우가 정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난 정말 네가 부러워.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돈 걱정 하나 없이 주위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공주로 컸으니. 나처럼 가난한 집 딸들의 숙명이 얼마나 슬픈지 모르잖아.”정안이 알아채고 경악해서 말했다.“설마 너 결혼한 예물 돈으로 동생 결혼시키려는 거야?”“설마가 아니라 사실이야.”정안이 의분에 차서 말했다.“세상에 어떻게 그런 부모가 있어?”지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몇백만 원의 조의금을 받았어. 아버지 병 치료를 위해 내가 몇 천만 원의 빚을 졌다는 거 뻔히 알면서도 엄마는 내 빚을 갚아줄 생각은 않고 동생에게 차를 사줬어.”“그럼 넌 왜 엄마 말대로 소개팅을 하는 건데?”정안이 얼굴이 굳어지며 또박또박 말했다. “나 같으면 그런 어머니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찾았을 거야.”“남동생을 편애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잖아. 어릴 때부터 나 학대한 적도 없고 공부도 시켜주고 먹이고 입혔으니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가 없어.”정안이 그녀를 끌고 계속 앞으
낯익은 고용주의 집에 돌아오니 지우는 더욱 친근감을 느꼈다.깨끗하게 정리된 거실.지우는 처음으로 손님으로 방문해 단정히 앉았는데 남태준이 바로 맞은편에 앉아 그녀는 매우 어색해 보였다.정안이 차를 준비하러 가자 거실의 분위기가 상당히 무겁고 두 사람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지우가 몰래 남태준을 보니 몸이 건장하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 안심했다.정안이 차를 들고 와서 어색해하는 두 사람을 보고 호기심에 물었다.“두 사람 오랜만에 만났는데 왜 말이 없어요?”지우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 건네준 찻잔을 받아 들었다.“고마워.”정안은 또 따뜻한 차 한 잔을 남태준의 손에 넣었다.“고마워.”정안이 지우의 옆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굳어 있어? 우리 재밌는 얘기 나눠.”지우는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주위에 나눌 만한 기쁜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그녀의 인생 곳곳에 슬픔이 있고, 생활 곳곳에 시련이 있는데, 무슨 기쁜 일이 있겠는가?남태준이 차 한 모금을 천천히 마시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안은 물을 마시면서 지우를 슬쩍 곁눈질하고 또 남태준을 보았다.두 사람 사이의 이 어색함은 긴장 때문일까?그녀는 이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남하준과 처음 만났을 때 괜히 긴장돼서 말도 잘 못 했었다.정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지우야, 너 소개팅에서 겪은 기이한 일들 계속 말해봐. 나 더 듣고 싶어.”지우는 놀라서 찻물에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하며 입을 꼭 막았다.정안이 반응도 하기 전에 남태준이 익숙하게 손을 뻗어 티슈 케이스를 만지고 티슈 두 장을 꺼내어 기침하는 방향으로 건넸다.지우는 남태준이 건넨 휴지를 보자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그의 눈은 맑고 아름답지만 시선에는 초점이 없어 전혀 앞을 볼 수 없었다.지우는 그가 앞을 보는 줄 알았다.“고마워요.”지우가 남태준이 건네준 휴지를 받았고 정안이 지우의 등을 살살 토닥였다.“왜 그래? 방금 밖에서는 잘 얘기
두 사람 모두 아쉬워하고 있을 때 남태준이 갑자기 끼어들었다.“엄마 말 들어.”정안과 지우는 넋을 잃고 경악하며 그를 바라보았다.남태준은 서서히 주먹을 쥔 채 가슴이 출렁이고 안색이 긴장한 듯 가라앉아 엄숙하게 말했다.“너무 일찍 결혼하지 마.”지우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저 이제 스물여섯이에요.”“남자들은 다 믿을 수 없어.”“그럼 누굴 믿어야 하죠?”“자기 자신.”정안과 지우는 모두 그의 말에 공감했고 그가 단지 감명받아서 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그건 뒷말을 위한 핑계였다. 그가 목청을 가다듬더니 말했다.“지우야. 돌아와서 일해. 내가 월급 올려줄게.”정안은 참지 못하고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지우는 충격적인 눈으로 남태준을 바라보며 너무 놀라서 잠시 반응하지 못했다.한 달에 수백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지극히 정상인 시각장애인을 돌보라니. 지우는 그렇게 높은 월급을 받기가 부끄러웠다.남태준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네 어머니는 예물을 얼마나 원하셔?”지우는 또 놀라 멍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정안을 바라보았다.남태준은 대체 무슨 뜻일까? 돌아와 일하란 뜻일까? 아니면 예물을 묻고 싶은 걸까?정안은 모르겠다며 직접 물어보라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했다.지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한동안 대답이 없자 남태준의 숨결은 더욱 무거워졌고 말투는 엄숙해졌다.“지우야. 너와 결혼하려면 예물이 얼만데?”지우가 놀라서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6천만 원이요. 엄마가 적어도 6천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하셨어요.”남태준이 또박또박 말했다.“그 돈 내가 어머니께 드릴 테니 시집가지 말고 돌아와서 일해. 매달 천만 원 더 줄게. 급여를 제외한 모든 비용은 내가 책임져.”지우는 가만히 남태준을 바라보고 있자니 온몸이 멍해졌다. 마치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자리가 어디 있을까?만약 그녀가 남태준을 알지 않았다면 이 남자는 분
남태준은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더니 쉰 목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지우야. 만약... 너만 원한다면 난... 내가 가진 회사 주식의 수입 전부를 너에게 줄 수 있어. 그리고 급여와 보험 보상금, 부동산 몇 군데, 그리고 투자한 프로젝트들...”남태준이 긴장하면서도 엄숙하게 자신의 모든 수입을 설명하며 태도를 밝힐 때, 지우가 갑자기 중단했다. “감사하지만 전 스폰 받고 싶지 않아요.”남태준은 주먹을 살짝 쥐더니 말을 멈추고 씁쓸하게 입꼬리를 걸치고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켰다.지우는 매우 복잡한 심정으로 심호흡하더니 용기 내어 말했다.“도련님,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사실이고 저도 아무런 재주가 없어 그저 인터넷 소설이나 쓰면서 생활비나 조금 버는 작가지만 그래도 세계관이 바른 사람이에요. 전 스폰 받고 싶지 않아요.”남태준은 주먹을 더 꽉 쥐며 괴로움이 가슴에 가득 찼다.지우는 한숨을 내쉬더니 밝은 어조로 말했다.“전 세계관이 맞는 남자를 찾아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어요.”“저는 돈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아빠가 편찮으실 때 그렇게 많은 빚을 지면서도 몸을 팔아 남자에게 빌붙어 돈을 벌 생각을 해본 적 없어요. 지금은 더더욱 그럴 생각이 없고요.”“도련님의 선의에 감사드려요.”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건강하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남태준은 마음이 눈처럼 캄캄하고 무겁고 짓눌리는 느낌이었다.그는 주먹을 꽉 쥐고 아플 정도로 꼬집어도 심장 깊숙한 곳의 고통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는 순전히 그녀를 곁에 두고 싶을 뿐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지우가 먼저 스폰이란 단어를 꺼냈고 그는 그 단어의 뒤에 숨겨진 사실에 이끌려 그 잠재적 의미를 간과하고 말았다.그녀를 책임지고 싶고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육체적 거래처럼 얄팍한 의도는 아니었다.남태준이 반응했을 때 이미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당황해서 일어나던 그는 앞으로 가다가 쾅 하고 무릎을 탁자에 부딪혔고 그는 통증을 참으며
그 후, 남하준은 말없이 파일 하나를 보내왔다.정안이 클릭하여 열어보니 안에는 녹음 한 단락이 있었다.그녀가 녹음 파일을 열심히 들으니 한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망할 늙은이, 5조 원짜리 산장이 하나 더 있었던 거야?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어?”백진은 의문스러웠다.“5조 원짜리 산장이라니?”정안은 오랜만에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입을 틀어막았다.“계속 시치미를 떼?”백진이 반응하고 말했다.“그래서 어쩔 생각인데?”“그 산장 양아들 백인호 명의로 바꾸겠다는 유언장 새로 작성해. 얌전히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당신 아들, 며느리와 손자는 아마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없을 테니까.”정안은 그제야 남하준의 방법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할아버지가 알아채지 못하고 협조하지 않는다면 분명 들통 날 것이다.남하준은 할아버지와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서로의 생각을 짐작하며 계획을 진행했다.만약 할아버지가 부인한다면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할아버지가 5조 원짜리 산장을 볼모로 잡지 않는다면 이 일도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다.정안은 심장을 부여잡고 숨죽여 들으면서 할아버지가 좀 더 지혜롭길 기도할 때 또 백진의 목소리가 들렸다.“유언장 바꾸는 건 되는데 나가서 아내 제사를 지내야겠어.”“당신은 나와 조건을 협상할 자격이 없어.”한이서가 분노하자 백진이 포기하듯 말했다.“그럼 내 가족을 모두 죽여. 아내도 이미 죽었으니 나도 진작 살고 싶지 않았어. 내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도 당신들에게 이렇게 오랫동안 갇혀있었고, 당신들이 백가의 모든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다면 분명 살 수 없겠지.”한이서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좋아. 그 조건 받아들이지. 하지만 시간은 내가 정해.”“좋아.”정안은 이 녹음 파일을 들은 후 감격하여 눈물을 글썽였다.너무 기뻤고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남하준이 한이서를 반년 넘게 지켜봤지만 그녀는 백인호에게 연락한 적도, 정안의 할아버지와 부모님께 연락한
정안은 불안하게 하룻밤을 기다렸다.다음 날, 남하준은 돌아오지 않았다.그녀는 감히 전화를 걸어 방해하지 못하고 끝없는 고통과 기대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한 번도 시간이 그렇게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1분 1초를 세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문 앞을 응시했다.아무리 기다려도 남하준은 돌아오지 않았다.셋째 날 늦은 밤, 그녀는 휴대전화로 인기 뉴스를 보았다.묘비 산에서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주변 주민들이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깊은 밤이라 총소리만 들리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정안은 휴대전화를 계속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남하준의 번호를 눌렀다.휴대전화에서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음이 들려왔다.정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고 커다란 손이 그녀의 심장을 움켜쥔 것 같았다.가슴이 답답하고 아프고 걱정과 두려움 속에 안절부절못하며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새벽 세 시.정안은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아 코트를 걸치고 베란다 밖에 서서 찬 바람을 쐬며 정원 앞의 큰 철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남하준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또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정안은 갑자기 고급차량이 별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흥분해서 말을 할 수 없었고 재빨리 몸을 돌려 방으로 뛰어들어 문으로 달려갔다.남하준이 차에서 내려 문을 닫고 몸을 돌리는 순간, 그림자 하나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오빠!”정안의 목소리는 약간 울먹였고 감격스러웠고 흥분했다.남하준은 기쁘지만 또 안쓰러웠다. 새벽 4시가 다 되어가는데 그녀는 아직도 안 자고 있었다.남하준이 반응하기 전에 정안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어 그의 목을 감싼 후 꽉 안았다.그는 자연스럽게 정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큰 키와 큰 체형 때문에 정안은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온몸의 힘이 남자의 팔에 들어갔다.“안 다쳤어요?”정안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걱정돼 당장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남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정안의 품이 너무 부드
남하준은 뜨거운 시선으로 정안의 눈을 내려다보며 그녀의 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정안은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 입술을 오므리더니 물었다.“계획은 어떻게 됐어요?”“날 밝으면 말해줄게. 응?”그의 따가운 시선은 여자의 연분홍 입술에 고정되어 있었고 목젖이 저절로 위아래로 굴렀다.“좋아요.”정안은 힘들어 보이는 그의 뺨을 손으로 살며시 어루만졌다.“피곤하죠? 내가 샤워 물 받아줄게요. 씻고 얼른 쉬어요.”“안 힘들어.”남하준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뜨거운 눈빛은 마치 화로 같았다.“나 샤워하러 갈 테니까 먼저 자지 마.”자신에게 할 말이 있나 싶어 정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남하준은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외투를 벗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뒤돌아서 화장실로 들어갔다.정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휴대전화를 눌러보니 배터리가 없었다.즉시 충전선을 찾아 그의 휴대전화를 충전했고 이불을 펴고 그가 잘 자리에 들어가서 누워 이불속을 따뜻하게 해주었다.10분 후, 정안은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즉시 일어나 앉았다. “내가 따뜻하게 했어요. 오빠...”정안은 순간 소리가 뚝 그쳤다.눈앞의 남자는 마른 수건을 손에 들고 반쯤 젖은 단발머리를 닦고 있었고 각진 이목구비는 여전히 매혹적이고 아름다우며 상체는 벗은 채 샤워타올만 두르고 나왔다.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의 건장한 체격은 그야말로 감탄스러웠고 가슴 근육은 단단하고 복근은 뚜렷했다.사나이가 목욕하고 나온 이 장면은 정말 생기와 야성미가 넘쳤다.정안은 그가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을 본 적이 드물어 매번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며 괜히 부끄러워 났다.그녀는 겁에 질려 눈을 내리뜨고 눈빛을 약간 피하며 중얼거렸다.“일찍 쉬세요.”남하준은 머리카락을 닦던 수건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침대를 받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정안은 고개를 점점 더 숙였고 턱을 목구멍에 파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뛰고 목소리가 떨렸다.“또 옷 안 입고 자요?”남하준은 저
정안은 그의 손목을 덥석 누르고 흐릿한 눈을 뜨고 그의 뜨거운 시선을 바라보며 숨을 헐떡였다.“오빠. 새벽 네 시예요. 요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이러면 안 돼요.”남하준은 손을 빼서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말투에는 아쉬움이 깃들었다.“몸이 아직 회복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나 밀어내는 거야?”정안이 급히 설명했다.“이미 두 달이 넘었어요. 몸이 회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오빠가 걱정돼서...”남하준은 이불을 빼서 몸을 덮고 샤워타올을 빠르게 뿌리쳤다.순간, 남자의 몸이 정안의 아랫배에 닿았고 그녀는 남자의 고통스러운 욕망을 실감하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정말 잠들 수 없었다.정안은 움찔하더니 몸이 팽팽해지고 볼이 붉어져 수줍게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남하준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네 몸이 불편하다면 참을 수 있는데 나 피곤할까 봐 걱정하는 거라면 나 못 참아.”정안은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고 아랫배가 세게 받친 느낌에 조금 괴로워 부끄러운 듯 눈을 감았다.“원해?”남하준이 그녀의 목에 키스하고 쉰 목소리로 부드럽게 달랬다.“살살, 빨리 끝낼게.”살살은 얼마나 살살이고, 빠르다는 건 또 얼마나 빠르단 걸까?그들이 관계를 맺은 건 비록 한 번뿐이었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 그는 살살 빨리 끝낼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정안은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내면 그도 일찍 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네.”정안이 수줍어하며 대답하자 남하준은 다정하게 웃더니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손으로 그녀의 잠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뜨거운 욕망이 한밤중에 타오르고 있었다.피부의 솔직한 만남, 가장 깊은 곳에서의 육체적 교감은 감정의 가장 좋은 조화제였다.정안이 평생 들어본 남하준의 가장 큰 거짓말은 살살 빠르단 것이었다.새벽의 시간은 이 남자가 쓰기에 역부족이었다.게다가 그는 정안이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절제하고 있었다.이른 아침 해가 뜨자 정안은 피곤해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