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 인기척이 없고 별과 달은 어두침침했다.남하준이 일을 마치고 본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넘었다.집 안팎이 환하지만 다들 방으로 돌아가 쉬고 있어 휑뎅그렁한 집안이 쓸쓸해 보였다.남하준이 피곤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방문을 열고 보니 방안이 어두컴컴했다.불을 켜도 텅 빈 방에는 정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그는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치고 쓸쓸한 기분으로 들어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허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깊은 자책감에 빠졌다.한 달여 동안 공허함이 그의 마음의 절반을 차지했고, 나머지 절반은 정안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이었다.분명 두 사람은 부부이고 지금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낯선 사람만도 못한 관계였다.그는 몇 초 동안 생각하다가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다.15분 후, 그는 산뜻하고 깔끔한 잠옷을 입고 방을 나섰다.정안의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녀가 없었다. 그는 또 지윤의 방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지윤이 문을 열며 의문스러워 물었다.“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저 찾아오셨어요?”“내 아내 지윤 씨 방에 있어요?”내 아내라는 세글자가 유달리 굳건하고 단호하게 들렸다.지윤은 눈빛이 반짝이며 약간 긴장한 모습이었다.“네. 근데 언니 이미 잠들었어요. 할 말 있으면...”지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하준이 문을 열고 억지로 쳐들어갔다.지윤이 당황하여 막으려 하였으나 손을 쓸 겨를이 없었다.“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언니 이미 잠들었다니까요? 도련님 보고 싶지 않아서 여기 와서 자고 있는데 이렇게 쳐들어오시면 어떡해요?”남하준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침대로 향했다.정안이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서 눈을 뜨는 순간, 온몸이 허공에 붕 뜨고 누군가 그녀의 몸을 가로로 안았다. 놀란 정안은 상대방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그녀는 내려오려고 발버둥 쳤다.“남하준. 무슨 짓이야? 내려줘!”남 부부의 일에 지윤이 더 이
정안은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잠이 오지 않았다.얼마 후 그녀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깊은 잠에 빠졌다.얼마나 잤을까, 그녀는 커다란 손이 그녀의 몸에 살짝 닿는 것을 느꼈다.남자의 큰 손이 그녀의 뒷목을 통해 조심스럽게 지나갔고 그녀를 깨울까 봐 동작이 가볍고 조심스러웠다.정안은 정신이 흐릿한 가운데 팔을 베고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깨어나지 못했다.그녀는 따뜻한 품으로 파고들어 편안한 위치를 찾고 계속 잤다.다만, 꿈속에서 그녀는 익숙한 향기가 코끝에 맴돌고 뜨거운 호흡이 그녀의 얼굴에 뿌려지는 걸 느끼며 두툼하고 따뜻한 품에 안겨 편안하게 잠을 잤다.이튿날 아침.정안이 품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순간, 자신이 남자의 팔꿈치를 베고 몸을 반쯤 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지극히 다정하고 애매한 자세였다.그녀는 어젯밤 분명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잤는데 왜 이렇게 잠버릇이 안 좋을까?정안은 마음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조금의 미련도 없이 빠르게 그의 품에서 일어났다.정안의 기척에 놀란 남하준이 눈을 떴을 때 방문을 열고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만 보였다.남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깊은숨을 내쉬었다.정안은 방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단장한 후 가방을 들고 나갔다.그녀는 걸으면서 지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일어났어? 나랑 지금 밖에 나가자.”곧 지윤이 답장을 보냈다.“방금 깼어요. 조금만 기다려요.”“그래.”정안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거실에서 유미가 셋째 내외와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정안을 본 남영준이 활짝 웃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완자야. 잘 잤어?”유미와 최서윤은 순간 안색이 굳어져서 정안을 보았다.그녀가 백완자의 신분을 회복한 후, 남씨 가문 일가는 서다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녀를 끔찍이 아꼈다.남창민 부부는 어린 시절처럼 그녀를 친딸처럼 대했고, 남씨 가문 5형제도 그녀를 친동생처럼 대했
정안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두 분께 너무 감사드려요.”“가족끼리 감사할 것 없어.”남희준이 호탕하게 말하자 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죽을 계속 먹었다.그러자 또 다른 둔탁하고 상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완자 일찍 일어났네.”정안이 고개를 들어보니 둘째 남이준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그가 식탁으로 가서 앉자 정안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세 사람은 아침을 먹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남영준의 마음은 일찍 거실을 떠났고 목을 길게 쭉 빼고 계속 식탁 쪽을 바라보았다.결국 참다못해 일어나자 최서윤이 언짢아하며 물었다.“당신 뭐하러 가요?”“아침 먹으러.”최서윤의 안색이 굳어졌다.“방금 먹었잖아요?”남영준이 걸어가며 말했다.“배불리 못 먹어서 더 먹으려고.”최서윤은 화가 나서 이가 근질근질했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정안을 노려보며 나지막이 불평했다.“백완자가 집에 들어온 후로 이 집안 형제들은 아주 꿀을 발견한 꿀벌처럼, 사탕 발견한 개미처럼, 똥을 발견한 파리처럼 계속 저 옆에 가서 붙는다니까!”여기서 한 달을 산 유미도 이런 광경을 여러 번 보아 궁금해서 물었다.“왜 다들 저렇게 완자를 좋아하는 거죠?”최서윤은 두 손으로 가슴을 두르고 다리를 꼬고 소파에 기대어 차가운 얼굴로 질투에 차서 말했다. “내 남편 말에 따르면 소꿉친구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네요. 시어머니의 설명대로라면 백완자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귀여웠고 또 이 집엔 딸이 없어서 아들들이 전부 백완자를 친동생처럼 아꼈다네요.”유미가 차갑게 웃더니 비꼬았다.“어느 남자가 자기 친여동생과 결혼을 해요?”유미의 말속에 가시가 있음을 알아챈 최서윤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준이는 야망이 커서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갑부의 손녀에, 생김새도 귀엽고 성격도 좋고 게다가 슈퍼 모범생인 여자를 보며 어느 사춘기 남자가 설레지 않겠어요?”유미가 움찔하더니 흥분에 겨워 물었다.“그럼 아직 미혼인 태준
그때, 침착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최서윤과 유미가 계단을 돌아보니 남하준이 멋진 블랙 롱코트를 입고 위층에서 내려왔는데 늠름하고 기품이 넘쳤다.유미는 멍해졌고 최서윤도 함께 넋을 잃었다.늘 남하준의 아우라에 놀라는 그녀였다. 일찍이 남하준에게 결혼을 거절당한 것이 그녀의 평생 한으로 되었다.매번 남하준을 만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왜 같은 형제인데 그녀의 남편은 외모도 몸매도 남하준보다 못하고 능력도 한참 차이가 날까?“하준아. 굿모닝.”유미가 일어나서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남하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어두운 눈빛으로 유미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더니 덤덤하게 물었다.“내가 설명을 잘 못 한 거야? 아니면 네가 못 알아들은 거야?”유미가 단호하게 말했다.“나 휴가 필요 없어.”남하준은 인정사정없이 차갑게 말했다.“그럼 이 집에서 나가.”“출근하기 너무 멀어서 오가기 불편하단 말이야.”유미가 나지막이 불평했다.“류청도 여기서 사는데 왜 나만 쫓아내?”최서윤이 끼어들었다.“그래, 하준아. 집이 이렇게 큰데 비서 열 명이 와도 충분해. 어떻게 비서를 집에서 쫓아낼 수 있어?”남하준의 안색이 더욱 나빠졌고 말없이 꾹 참고 유미의 억울한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짜증이 났다.그때 식탁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남이준이 썰렁한 농담을 해서 모두를 웃겼는데 분위기가 상당히 화기애애했다.남하준의 마음이 이미 식탁으로 날아가 버렸고 그는 덤덤하게 명령했다.“너 지금 휴가야. 이 집에서 나가. 이건 명령이야.”말을 마친 그는 식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유미가 뒤에서 투덜거렸다.“나 휴가 원하지 않는다고!”남하준은 들은 체 만 체 성큼성큼 걸어갔다.“다들 좋은 아침이에요.”남하준이 식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 눈길을 끌었다.정안은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도 들지 않고 얼굴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침 식사에만 열중했다.남하준은 정안의 양옆에 큰형과 둘째 형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남하준과 정안 모두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두 사람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다들 눈치챈바 계속 캐묻기 난처했다.남하준은 항상 바빴고 정안의 산후조리 기간에 만나지도 않고 서로 교류도 없어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분위기가 난처해졌을 때, 유미가 걸어와서 손에 노트를 들고 남하준 곁에 섰다.“하준아, 오늘 스케줄 내가 다 짜놨어.”정안이 아침을 먹던 동작이 순간 굳어졌고 안색이 가라앉아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저 다 먹었으니까 다들 천천히 드세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떴고 형들은 경악하여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가 아침을 반쯤 먹은 걸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오늘은 왜 이렇게 적게 먹어?”정안은 대꾸도 없이 성큼성큼 떠났다.평소 같으면 남하준은 정안이 그와 함께 아침을 먹고 싶지 않고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아 떠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정안이 진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유미였다.남하준은 심호흡을 하고 애써 화를 억누르며 차갑게 물었다.“내 명령을 귓등으로 들은 거야?”유미는 서러워하며 중얼거렸다.“휴가 가기 싫은 것도 잘못이야?”남하준은 눈을 감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식탁 위에 놓인 주먹을 천천히 움켜쥐고 손등의 핏줄이 부풀어 올랐다.어쩐지 정안이 유미를 그렇게 싫어하더라니.유미는 정말 겁도 없이 상사의 말도 존중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의 아내를 안중에 둘까?남하준은 눈을 뜨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엄숙하게 말했다.“아주머니. 지금 당장 유미 짐 싸서 기사더러 집에 데려다주라고 하세요.”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도우미는 긴장해서 급히 응수하고 위층으로 몸을 돌려 정리하러 갔다.유미는 어금니를 깨물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서러워했다.남하준은 일어나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냉담한 태도로 또박또박 말했다.“네 업무는 류청이 맡아 할 거고 넌 한 달 안에 다른 자리 마련될 거야.”유미는 억울하기 그지없었다.“하준아! 설마 백완자 때문이야? 너 언제부터 이렇게 공과 사를 구별
보다 못한 최서윤이 유미를 도와 말해주려고 다가갔다. “하준아. 유미 씨 잘못한 거 없는데...”남하준이 그녀를 차갑게 흘기며 엄숙하게 말했다.“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마시죠.”최서윤은 그의 차가운 기운에 충격을 받아 깜짝 놀라 소리를 뚝 그치고 침을 삼켰다.말을 마친 남하준은 성큼성큼 떠났고 그가 대문을 나섰을 때 류청이 차량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도련님, 잘 주무셨어요?”류청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남하준이 주변을 둘러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완자는?”“사모님은 지윤이와 함께 차를 몰고 나가셨습니다.”“따라가.”남하준이 즉시 차 문을 당겨 앉자 류청이 운전석에 들어서 시동을 걸며 물었다.“혹시 무슨 일 생겼습니까?”남하준은 조바심이 났다.“완자가 리셋 미용실 CCTV를 해킹해서 유미를 조사했어.”“유 비서를 왜 조사하죠?”“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뭔가 실마리를 찾아서 지금 깊이 조사하러 갔다는 게 중요해.”“혹시 사모님이 우리 계획을 망칠까 봐 걱정되십니까?”남하준은 침묵하며 천천히 창밖을 내다보았다.계획을 망쳤으면 계획을 바꾸면 된다.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정안이 위험에 처하는 것이었다.유미도 저번에 그 미용실을 파고들다가 납치당했으니....1시간 뒤.차량이 리셋 미용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고 지윤이 시동을 끄고 안젠벨트를 풀고 정안을 돌아보았다.“도착했어요. 우리 들어가요?”정안은 얼굴이 굳고 미간을 찡그린 채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아니.”“여기까지 왔는데 왜 안 들어가요?”정안이 태블릿을 지윤에게 보여주자 지윤이 안에 있는 정보를 확인했다.회사 등록 정보가 있었는데 리셋 미용실의 법인은 한이서였다. 즉 이 미용실은 백씨 가문 산업 중 하나였다.“한이서?”지윤은 그때 이 미용실 화장실에서 한이서에게 더러운 물을 먹인 기억이 떠올랐다. 한이서는 그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을 것이다.정안이 태블릿을 가져가며 느릿느릿 말했다.“오랫동안 CCTV를 봤는데 유 비
정안은 권총 같은 무기를 꺼내 지윤에게 건넸다.“이거 갖고 있어.”지윤이 경악했다.“총기 사용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M국의 총기 통제는 매우 엄격했다. 일반인이 총을 소지하는 것도 불법인데 게다가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건 사형감이었다.정안은 특수 마스크를 꺼내 지윤에게 씌워주며 설명했다.“총에 총알이 들어 있지 않아. 내가 연구한 다량의 에테르를 함유한 화학무기로 의학적으로 환자를 마취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지. 사람에게 쏘아도 다치지 않고 탄체가 파열되어 공기 전파를 통해 사람이 조금만 마셔도 몸이 저리고 힘이 없어 혼수상태에 빠져.”지윤은 감격에 겨워 손에 든 총을 바라보며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언니는 역시 대단해요.”정안은 자신의 마스크를 착용하고 말했다.“조심해서 사용해. 탄체를 튕길 때 흡입하지 않도록 20초 동안 숨을 죽이고 있어.”“좋아요.”지윤은 고개를 돌려 점점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았고 두 사람이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지윤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총을 겨누자 사내들은 그녀 손에 든 총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정안이 준비를 마치고 명령했다.“쏴!”말이 끝나자 지윤은 앞 사람을 향해 총을 쐈는데 펑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즉시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사람을 겨누고 또 한 발 쐈다.두 발의 총격이 끝나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웅크리고 앉아 좌우로 흩어져 차 안으로 숨었다.그러자 주차장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계속해서 쓰러졌고 앞과 뒤 차량에 타고 있던 남자들이 상황을 보자마자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정안과 지윤을 향해 들이받았다.정안과 지윤은 빠르게 반응하여 주차된 차량의 좌우로 숨었다.펑 하는 굉음과 함께 그녀들의 차량이 부딪쳐 찌그러졌다.정안은 차 밑으로 기어들어 숨었다.잠시 후 차에 타고 있던 남자가 문을 열고 내려오더니 휴대전화를 꺼내서 다이얼을 돌렸다. “이 여자 손에 화학무기가 있어. 사람 더 보내고 방독면도 챙겨.”정안은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지윤이 총을
남하준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뜻밖에도 그녀는 방향을 바꿔 반대쪽을 통해 일어나 몸의 먼지를 털고 있었다.지윤이 달려와 긴장하며 그녀를 부축했다.“괜찮아요?”“나 괜찮아.”정안은 중얼거리더니 복도를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이전에 쓰러진 사내들 외에도 몇 명의 사내가 방독면을 쓰고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알고 보니 그들의 구원병이 와서 지윤이 해결할 수 없었다.남하준은 정안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그녀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안과 지윤이 몰고 온 차는 이미 심하게 손상되어 운전할 수 없었다.“경찰이 현장을 처리할 테니 내 차 타고 가.”“고마워요.”남하준이 말하자 정안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들의 차로 향했다.그녀는 조수석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고 지윤과 류청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남하준을 보았다.남하준은 어두운 얼굴로 조수석의 정안을 한참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말했다.“타.”류청은 별말 없이 운전석에 앉았다.지윤은 이해할 수 없어 조수석 유리 창문을 두드렸다.“언니, 도련님이랑 뒤에 타세요.”정안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잔말 말고 빨리 타.”지윤은 불쾌한 듯 입을 삐죽 내밀고 뺨을 불룩하게 내밀며 마지못해 뒷좌석 문을 열었다.남하준과 나란히 앉아 그의 차갑고 위엄 있는 분위기를 견뎌야 하니 지윤은 너무 괴로웠다.차량이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번화가로 들어섰다.답답한 차 안, 형언할 수 없는 저기압이 감돌고 있었다.지윤은 창가에 웅크리고 앉아 바깥 경치를 조용히 바라보며 남하준이 그녀와 언니를 꾸짖을 거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남하준이 먼저 그 정적을 깨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직접 조사하지 말고.”지윤은 흠칫 놀라 남하준을 돌아보았다.그의 시선이 줄곧 정안의 옆모습에 고정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지윤은 그
지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병원에 병 보러 오지 왜 왔겠어? 갑자기 왜 태준 씨를 물어?”임다희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확인했다.“태준이가 당신 안 찾았어?”“아니.”지우가 고개를 젓자 임다희는 가볍게 웃었다.“그쪽이 아니라면 대체 누굴 찾아갔을까?”“그게 무슨 말이야?”지우가 일부러 이해가 안 가는 척 묻자 임다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두 사람 재결합한 거 맞지?”지우는 침묵했다.임다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조롱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두 사람 다시 만나는 거 아니까. 태준이가 당신을 찾지 않은 건 아마 약효가 너무 강해 당신 같은 여린 몸을 망쳐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여자를 찾아 해결했나 보네.”“약효가 너무 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지우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녀를 만족시켜줬다.임다희는 속이 편안해지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이 시간에 당신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지우의 안색이 확 가라앉았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앞의 이 악랄한 여자를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남태준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고 무슨 염치로 지금 까불고 있을까?만약 남태준이 그녀가 임다희와 정면충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지우는 절대 임다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남태준의 뜻에 따라 얌전하고 철든 여자친구가 되어야 했다.지우는 괴로운 척 연기하며 겨우 눈물 한 방울을 짜냈다.임다희는 그녀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한 감정을 잠재우고는 실소를 터뜨렸다.“이게 당신들 사랑이야? 하하. 우습네!”그녀의 비아냥거림과 함께 차 문이 닫히고 차량이 서서히 빠져나갔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택시를 잡아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태준을 걱정했다. 그의 옷이 흠뻑 젖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지우는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고는 남태준의 집에 가서 깨끗한 옷 몇 벌을 챙기려 했다.
잠시 후 한 남자 의사가 들어와 남태준이 평온하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효과가 조금은 있네요.”말을 마친 그는 남태준의 아랫도리를 보더니 한마디 보탰다.“하지만 효과가 만족스럽지는 않네요. 휴. 환자분 물 많이 주시고 약효가 천천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의사는 자리를 떠났고 지우는 급히 미지근한 물을 붓고 남태준의 아랫배를 슬쩍 쳐다봤다.병원의 이불이 너무 얇은 편도 아니었는데 남태준의 아랫배가 여전히 부풀어 올랐다.지우는 속으로 욕했다.‘늑대 같은 임다희! 빌어먹을!’“태준 씨. 물 좀 마셔요.”지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남태준이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뜨고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자 지우가 서둘러 그의 등을 부축해 주었다.“아직도 힘들어요?”지우가 관심하며 묻자 남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나 이제 괜찮으니까 너 집에 가서 쉬어.”“싫어요. 여기 있을래요.”남태준은 눈을 감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돌아가라고.”“혹시 무슨 일 생겼는데 옆에 돌봐줄 사람 없으면 어떡해요?”“여기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으니까 나 괜찮아.”“그래도 난 여기 있고 싶다고요.”남태준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천천히 뜨고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몸 안의 불은 꺼졌지만 탄소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어. 넌 탄소 더미 옆의 디젤과 같아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비유를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남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지우는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여기 머무르는 게 어쩌면 그의 안정과 회복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좋아요. 나 먼저 갈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줘요.”“그래.”지우는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1층 로비에서 매니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약을 받는 임다희를 만났다.지우는 재빨리 기둥 뒤에 숨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허리와 다리를 다친
지우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옆집에서 종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매번 거래가 있을 때면 이웃 할아버지는 종돈에게 독한 약을 먹였고 약을 먹은 종돈은 열 몇 마리의 암퇘지와 교배를 했다.그녀는 그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처절하고 끔찍한 돼지 울음소리는 그녀 어린 시절의 악몽이었다.정신이 번쩍 든 지우는 두말없이 펑 하고 문을 닫았다.갑작스레 문을 닫는 모습과 지우의 창백한 얼굴, 당황하는 모습에 남태준은 피식 웃었다.지우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았고 15분 후, 남태준은 지우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응급실에 가서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의사가 남태준 옆에 있는 지우를 가리키며 물었다.“환자분 여자친구예요?”남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여동생이에요.”지우는 마음이 뭉클했다. 남태준은 스스로 고통을 참을지언정 그녀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여자친구 있어요?”“없어요.”“내가 주소를 줄 테니 가서...”의사가 간단한 방법을 추천하려 하자 남태준이 엄숙하게 말했다.“나 경찰입니다.”의사는 말을 뚝 그치고 긴장된 듯 침을 삼키더니 웃어 보이며 애써 둘러댔다.“그러니까 제 말은 이런 경우 의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도 해독제가 없어요.”“진정제 놔주세요. 진정제가 안 되면 마취제라도...”“그런 약은 함부로 처방할 수 없고 일정한 수치에 도달해야 처방할 수 있어요. 환자분 같은 경우는...”의사는 난처해하더니 남태준의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강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고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진정제 놓아드리겠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거예요. 그저 괴로움을 조금 억제하는 정도예요.”“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롭게 참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다른 약도 같이 처방해 드릴게요.”의사가 약을 처방하며 말했다.“여자친구도 없고 그런 서비스도 받기 싫다면 여동생분께 성인 가게에 가서 사달라고 하세요.”지우는 이렇게 난처한 적이 없었다.
지우가 만약 숫처녀라면 아마 고생할 것이다.남태준은 생각하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러 의사를 찾아 해결할 생각이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이얼을 돌리려던 순간,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지우가 다급하게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태준 씨?”남태준은 움찔 놀랐다. 뜨거운 눈으로 지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니 입이 바짝 마르고 욕망이 최고조에 달했다.지우는 남자가 머리와 몸이 흠뻑 젖어 숨도 약간 헐떡이는 것을 보고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타오를 듯한 고온에 지우는 화들짝 놀랐다.“태준 씨 열 나요.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남태준은 꾹 참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운전할 줄 알아?”“아니요.”지우가 긴장하며 말했다.“방금 택시 타고 왔어요. 택시 타고 병원에 데려다줄게요.”택시?남태준은 자신이 통제 불능이 되어 택시에서 무슨 엉뚱한 짓을 할지 몰라 걱정했다.지우는 휴지를 뽑아 그의 볼과 목의 물기를 닦아 줬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기, 손바닥의 부드러움은 치명적인 유혹처럼 그를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들고 싶게 만들었다.“지우야.”남태준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감고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도 못하며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말했다.“방금 다희를 만났어.”지우는 땀을 닦는 동작을 멈추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티 나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요?”“그리고 이렇게 됐어. 너무 괴롭고 답답해 죽을 것 같아.”남태준은 침을 삼키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지우의 시선은 그의 고통스러운 안색에서 내려와 그의 가슴팍을 보니 기복이 아주 심했고 더 아래로 내려가니 운전석에 앉아도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다희가 약을 먹였어요?”지우는 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어쩔 줄 몰랐다.그러자 남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어떡해요?”지우는 부랴부랴 고개를 내밀어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살폈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그건 지난번에 이미 설명했잖아.”“그 사람 내가 만나야겠어. 주소와 연락처 줘.”“없어.”임다희는 냉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내가 그렇게 큰 단서를 줘서 네가 공을 세웠는데 넌 내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이 이런 태도로 날 심문해?”“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너 경찰서로 데려가 어떻게 해서 그 단서를 얻었는지 조사할 거야. 너 절대 쉽게 못 벗어나.”임다희는 피식 웃더니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정말 어이가 없어.”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 술을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알코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점차 뜨거움으로 번지고 일부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며 의식이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컵을 보더니 와인을 바라보았다.컵은 닦았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문제는 아마 개봉하지 않은 것 같은 와인에 있을 것이다그가 방심했다.남태준은 더 이상 임다희를 캐묻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말없이 성큼성큼 돌아서서 가버렸다.“태준아!”임다희가 급히 뒤쫓아가 남태준을 뒤에서 덥석 끌어안고 두 손을 놓지 않았다.“가지 마. 태준아. 사랑해.”임다희는 와인에 매우 강한 약을 넣었다. 소 열 마리라도 이 약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남태준의 경계하고 신중한 성격을 알고 일부러 와인에 약을 넣은 다음 개봉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이거 놔.”남태준은 화를 꾹 참고 나지막이 명령했지만 임다희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그의 몸을 더 꽉 껴안고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문지르며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임다희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겨 어깨너머로 세게 넘어뜨렸다.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임다희의 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초라했다.“내일 다시 봐.”남태준은 매섭게 말하고는 방에서 사라졌다.그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
며칠 후.남태준은 임다희가 제공한 단서에 따라 미리 깊은 산에 잠복해 마약 밀매업자들을 잡았고 몇 킬로그램의 물품도 압수했다.모두가 기뻐하고 공적을 세운 것을 감격스러워하며 축하하고 있을 때, 남태준만 걱정이 가득했다.그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임다희가 이렇게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그녀의 신분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다.이 사건은 곧 경찰에 의해 발표되었고 공식 웹사이트는 물론 뉴스에도 게재되었다.뉴스를 본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태준아. 네가 마약상을 잡고 물건까지 손에 넣은 건 내 공도 있지 않아? 나 밥 한 끼 사줘야 하는 거 아니야?]남태준은 그녀의 입에서 단서를 더 찾고 싶어 그녀의 요구를 승낙했다.저녁, 퇴근 후 남태준은 임다희가 준 장소로 차를 몰고 갔다.장소에 도착해서야 개인 클럽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곳은 VIP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준 초대 코드로 그 클럽에 들어갔다.긴 복도를 지나 웨이터가 룸의 문을 열었다.남태준이 들어가서 보니 범상치 않은 방이었다. 커다란 방에는 침대, 소파, 식탁, 옷장에 화장실까지 있었다.식탁에서 임다희는 섹시하고 우아한 튜브톱 스커트를 입고 요염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식탁 위에 촛불을 켜 놓은 저녁 식사는 매우 낭만적이었다.“태준아 왔어?”임다희는 일어나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어서 앉아.”남태준은 조금 경계하며 천천히 걸어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앞에 있는 양식을 보고 옆에 있는 몇 병의 술을 보며 말했다.“오늘 식사를 위해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야.”“마음에 들어?”임다희가 웃으며 묻자 남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아니. 싫어.”임다희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의자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대어 덤덤하게 말했다.“네가 준 정보 아주 정확하더라. 고마워. 만약 필요하다면 경찰서에 와서 상금 받아 가.”임다희는 어이없이 웃으며 옆에 이미 열린 술을 들고 남태준에게
“네?”지우가 멍하니 아직 반응하지 못했을 때 남태준이 바로 키스를 했다.남자의 패기 넘치고 강한 딥키스에 지우는 어질어질하고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없었으며 그의 부드럽고 끈적거리는 몸 아래에서 넋을 잃었다.함께 있는 시간은 늘 뜨겁고 끈적끈적했으며 아늑하고 행복했다.진한 키스를 나눈 후, 지우는 몸이 나른하고 숨이 가빠졌지만 남태준은 오히려 더욱 에너지가 넘치고 심지어 욕망이 자극되어 발산되지 않으니 더욱 흥분했다.그는 지우를 거실에 남겨두고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방으로 달려가 목욕을 했다.다시 나왔을 때 지우는 거실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남태준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컴퓨터 내용을 들여다봤다.그러자 지우는 노트북을 덥석 덮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시간이 늦었어요. 집에 가야겠어요.”남태준이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저녁 9시가 넘었다.그는 지우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며 그녀가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랐다.“열 시에 가.”남태준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조용히 달랬다.“열 시에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지우는 고개를 흔들었다.남태준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항상 그녀에게 키스해 그가 욕망을 억누를 수 없을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가 매번 자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또 고통스럽게 억누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런 남자를 보며 지우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아니요. 지금 가야겠어요. 너무 늦으면 안 돼요.”남태준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래.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지우는 즉시 물건을 챙기고 가방을 든 뒤 남태준의 따뜻한 손을 잡았다.“가요.”남태준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좀 서운했다.지우는 정말 그와 더 있고 싶지 않은 걸까?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미어졌다.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승용차는 마당에서 천천히 빠져나가 도로로 들어가 쏜살같이 달려갔다.길가에는 오랫동안 주차된 승합차 한 대가 줄곧
적어도 지우가 그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니 말이다.남태준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다희는 언제나 자신이 훌륭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이야. 자기가 원하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손에 넣으려 하지.”지우가 감탄하며 말했다.“그 여자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네요.”남태준이 거침없이 말했다.“그래도 한 때 만났던 사이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그럼 태준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지우가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다시 만나고 싶어요?”남태준이 화를 억누르고 물었다.“나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묻는 거야?”“그럼 아까 왜 그렇게 긴장하며 끌고 나갔어요. 그건...”남태준의 바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그건 네가 우리 집에 있는 거 들키기 싫어서지. 지성이가 이미 육건우에게 한 방 먹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지우는 순간 그의 뜻을 알아챘다.전에 남태준은 임다희가 아직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몰라서 대범하게 지우를 소개해줬었다.하지만 지금은 임다희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걸 알았으니 지우를 보호하기 위해 이 연애를 잘 숨겨야 했다. 아니면 임다희가 또 무슨 수단을 써서 두 사람을 이간질할지 모른다.마음이 따뜻해진 지우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남 대장님도 무서울 때가 있었네요?”남태준은 그녀의 말에 화가 나서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지우가 날쌔게 손을 피했다.“지우야. 이리 와.”남태준이 화난 척 말했지만 지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싫은데요?”남태준이 몸을 기울이고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 하자 지우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식탁을 나섰다.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직 밥 다 안 먹었는데 어디 가?”“안 먹을래요.”지우는 방긋 웃으며 남태준의 행동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잡고 혼내주려 하는 것 같았다.남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우는 급하게 돌아서서 거실로 뛰어갔다.“이리 오라고.”남태준이 부드러운 명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