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권총 같은 무기를 꺼내 지윤에게 건넸다.“이거 갖고 있어.”지윤이 경악했다.“총기 사용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M국의 총기 통제는 매우 엄격했다. 일반인이 총을 소지하는 것도 불법인데 게다가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건 사형감이었다.정안은 특수 마스크를 꺼내 지윤에게 씌워주며 설명했다.“총에 총알이 들어 있지 않아. 내가 연구한 다량의 에테르를 함유한 화학무기로 의학적으로 환자를 마취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지. 사람에게 쏘아도 다치지 않고 탄체가 파열되어 공기 전파를 통해 사람이 조금만 마셔도 몸이 저리고 힘이 없어 혼수상태에 빠져.”지윤은 감격에 겨워 손에 든 총을 바라보며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언니는 역시 대단해요.”정안은 자신의 마스크를 착용하고 말했다.“조심해서 사용해. 탄체를 튕길 때 흡입하지 않도록 20초 동안 숨을 죽이고 있어.”“좋아요.”지윤은 고개를 돌려 점점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았고 두 사람이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지윤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총을 겨누자 사내들은 그녀 손에 든 총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정안이 준비를 마치고 명령했다.“쏴!”말이 끝나자 지윤은 앞 사람을 향해 총을 쐈는데 펑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즉시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사람을 겨누고 또 한 발 쐈다.두 발의 총격이 끝나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웅크리고 앉아 좌우로 흩어져 차 안으로 숨었다.그러자 주차장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계속해서 쓰러졌고 앞과 뒤 차량에 타고 있던 남자들이 상황을 보자마자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정안과 지윤을 향해 들이받았다.정안과 지윤은 빠르게 반응하여 주차된 차량의 좌우로 숨었다.펑 하는 굉음과 함께 그녀들의 차량이 부딪쳐 찌그러졌다.정안은 차 밑으로 기어들어 숨었다.잠시 후 차에 타고 있던 남자가 문을 열고 내려오더니 휴대전화를 꺼내서 다이얼을 돌렸다. “이 여자 손에 화학무기가 있어. 사람 더 보내고 방독면도 챙겨.”정안은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지윤이 총을
남하준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뜻밖에도 그녀는 방향을 바꿔 반대쪽을 통해 일어나 몸의 먼지를 털고 있었다.지윤이 달려와 긴장하며 그녀를 부축했다.“괜찮아요?”“나 괜찮아.”정안은 중얼거리더니 복도를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이전에 쓰러진 사내들 외에도 몇 명의 사내가 방독면을 쓰고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알고 보니 그들의 구원병이 와서 지윤이 해결할 수 없었다.남하준은 정안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그녀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안과 지윤이 몰고 온 차는 이미 심하게 손상되어 운전할 수 없었다.“경찰이 현장을 처리할 테니 내 차 타고 가.”“고마워요.”남하준이 말하자 정안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들의 차로 향했다.그녀는 조수석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고 지윤과 류청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남하준을 보았다.남하준은 어두운 얼굴로 조수석의 정안을 한참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말했다.“타.”류청은 별말 없이 운전석에 앉았다.지윤은 이해할 수 없어 조수석 유리 창문을 두드렸다.“언니, 도련님이랑 뒤에 타세요.”정안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잔말 말고 빨리 타.”지윤은 불쾌한 듯 입을 삐죽 내밀고 뺨을 불룩하게 내밀며 마지못해 뒷좌석 문을 열었다.남하준과 나란히 앉아 그의 차갑고 위엄 있는 분위기를 견뎌야 하니 지윤은 너무 괴로웠다.차량이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번화가로 들어섰다.답답한 차 안, 형언할 수 없는 저기압이 감돌고 있었다.지윤은 창가에 웅크리고 앉아 바깥 경치를 조용히 바라보며 남하준이 그녀와 언니를 꾸짖을 거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남하준이 먼저 그 정적을 깨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직접 조사하지 말고.”지윤은 흠칫 놀라 남하준을 돌아보았다.그의 시선이 줄곧 정안의 옆모습에 고정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지윤은 그
남하준은 해명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런 해명이 정안의 오해를 깊어지게 할까 봐 두려웠다.그가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지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맑고 큰 눈을 깜빡이며 충격을 받은 말투로 물었다.“설마 언니 전화 받기 싫어서 전원 끈 건 아니겠죠?”남하준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긴장한 나머지 툭 내뱉었다.“유미가 내 외투를 걸치고 있었어. 마침 휴대폰이 외투 주머니에 있었고.”순간 정안은 안색이 어두워졌다.‘정말 의리 깊은 우정이야!’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고 심호흡을 하며 답답하게 창밖을 보았다.지윤이 경악해서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물었다.“그럼 유 비서가 일부러 전원을 껐다는 거예요?”남하준이 설명했다.“내가 물어봤는데 부인했어요.”“그래서 도련님은 유 비서 말을 믿어요?”“내가 믿든 안 믿든 유 비서가 전원을 껐다는 증거는 없어요.”“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지나친 행동이네요.”지윤이 불쾌한 듯이 중얼거렸다.남하준의 어두운 눈동자에 당황스러움이 스치고 잠자코 있는 정안을 보며 미안함이 짙어졌다.차 안이 또 무거운 고요 속에 빠졌다.잠시 후 정안은 갑자기 몸을 돌려 온기 없는 눈빛으로 남하준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폰 줘요.”남하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정안에게 건넸다.정안은 휴대전화를 받아 차량의 선반에서 케이블을 찾아 휴대전화에 꽂고 또 그녀의 태블릿에 접속하고는 물었다.“잠금 번호 뭐예요?”남하준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해서 시트에 몸을 기댄 채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결혼기념일.”정안은 몇 초간 멈칫했다.류청과 지윤은 재밌는 구경을 한 것 같아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정안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태블릿에서 조작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코드를 작성하고 그날 휴대폰의 데이터와 지령을 내보내기 시작했다.작업이 끝나자 정안은 태블릿 화면을 밝게 하고 남하준 앞에 내보였다.“직접 확인해요.”남하준이 화면상의 일련의 코드 숫자를 보니 아주
남하준이 눈을 감고 냉담하게 물었다.“너도 같이 조사받고 싶어?”“죄송합니다.”류청이 부랴부랴 사과하고 긴장해서 말했다.“저는 정치적 입장이 확고하고 국가와 도련님에게 충성심이 강하니 조사할 필요 없어요.”남하준은 그를 조사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의심되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았고 일단 곁에 두면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주변 사람들에 대한 지나친 믿음으로 정호가 그를 배신하고 유미가 멋대로 그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다.그는 침울한 심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출발해.”...정안이 본가에 들어서자 최서윤의 신랄하게 비꼬는 소리가 들렸다.“요즘엔 여자들은 자기 남편 일을 지지하지도, 이해하지도, 도와주지도 않고 옆에 있는 여비서조차 용납할 수 없다니까.”정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거실 소파에 있는 최서윤을 돌아보았다.지윤은 화가 치밀어 올라 따지려 했지만 정안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 충동적인 행동을 막았다.지윤은 그녀의 비서였으니 최서윤에게 미움을 사면 앞으로 이 집에서 잘 지낼 수 없었다.정안이 천천히 다가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형님, 할 말 있으면 바로 하세요. 빙빙 돌려서 비꼬지 마시고.”최서윤은 거들먹거리며 소파에 기대더니 차갑게 되물었다.“동서를 말한 것도 아닌데 왜 예민하게 반응해?”정안은 변명할 가치도 없었다.“지금 이 방에 형님과 저뿐인데 설마 귀신과 대화하신 거예요?”최서윤은 정안의 강경한 태도에 더 이상 시치미를 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가슴을 두르고 기고만장하게 말했다.“하준이가 동서 예뻐하는 것만 믿고 옆에 있는 여비서까지 내쫓는 게 보기 불편해서 그래. 지금 유미 씨 집에서도 나갔고 일도 끊겼어. 이제 만족해?”정안은 살짝 넋을 잃고 지윤을 바라보았고 지윤도 어리둥절해 모르겠다는 뜻으로 두 손을 벌렸다.조금 의외였지만 정안은 곧 정신을 차리고 느릿느릿 말했다.“형님께서 그렇게 유 비서를 아끼시니 차라리 셋째 도련님 수행 비서로 채용해 회사에 출근시키는 건 어때요? 하루 24시간 옆에
남하준이 일단 마음먹으면 이렇게 신속하고 잔인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베란다 밖 등나무 의자에 앉아 맥없이 바깥 경치를 바라보며 온갖 상념을 늘어놓았다.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과의 채팅 페이지를 열어 그가 보낸 음성 메시지를 보면서 한 줄 한 줄 손가락으로 그었다그녀는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고 메시지도 곁눈질만 할 뿐 계속 무시했다.갑자기 남하준이 그간 자신에게 무슨 음성을 보냈는지 궁금해졌다.한 달 전의 음성으로 올라가 클릭해서 들었다.“완아. 너와 아기에게 내가 참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는 거 알아. 나 용서하지 않아도 되니까 무시하지는 마. 응?”“산후 도우미가 너 젖 오르는 게 힘들다고 했는데 내가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네. 너무 걱정되고 불안해. 나 지금 네 방 앞에 있는데 잠깐 나올래?”“몸은 좀 어때? 내일 나랑 같이 아기 보러 가자. 응?”“내가 잘못했어. 어떻게 해야 네가 용서해줄까? 내가 어떻게 해야 네 화가 풀릴지 좀 알려주면 안 돼?”“비 온다. 감기 걸리지 않게 옷 많이 입어.”“밤늦게까지 책 보지 마. 눈에 안 좋아. 얼른 불 끄고 쉬어.”“나 3일 동안 출장 가는데 그곳 장미 과자가 유명하대. 돌아올 때 좀 사 올게. 다른 것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완아. 뒤뜰에 감이 익었어.”“보고 싶다. 나랑 말 섞지 않아도 되니까 피하지 마.”“나 병원에 가서 우리 아기 봤는데 의사가 상태가 점점 좋아져서 곧 집에 돌아올 수 있대. 우리 상의해서 이름 지어주자. 성을 백 씨로 할까 아니면 남 씨?”“너 안 뚱뚱하니까 다이어트 하지 말고 많이 먹어. 몸이 회복되면 나랑 같이 산에 가서 일몰 보자.”“날씨가 풀렸어. 봄이 오려나 봐.”“벌써 한 달이야. 그동안 내가 어떻게 버텨왔는지 넌 아마 상상도 못 할 거야. 집에 있으면 너 기분 나쁘게 할까 봐 계속 바삐 일했어.”“약속을 어긴 대가가 이렇게 큰 거구나. 난 아마 평생 다시 약속 어기지 못할 거야.”“지윤 씨가 너에게 앵두를 여러 번 사준
정안은 평소 11시에 잤는데 오늘은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걱정하는지 마음이 허전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갑자기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문을 닫는 소리가 미약하고 남자의 발걸음은 가벼웠다.정안은 몸이 팽팽하여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했다.남자는 불을 켜지 않고 정안의 앞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두 손으로 침대를 짚고 몸을 숙인 후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그의 동작은 가볍고 느리고 조심스러웠다.정안은 은은한 술 냄새와 남하준 특유의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다.그의 뜨거운 호흡이 그녀의 얼굴에 뿌려져 약간 뜨거웠다.남하준은 그녀를 깨울까 봐 살짝 키스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가 씻었다.그는 정안의 수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빛이 방 밖으로 비칠까 봐 불도 켜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갔다.어쩌면 남하준이 돌아왔다는 걸 알아서인지 정안은 허전했던 마음이 한순간 편안해졌고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마음이 편안해진 그녀는 천천히 깊은 잠에 빠졌다.얼마나 지났을까,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곁에 있던 남자가 다시 그녀의 뒷머리 밑에 손을 얹고 그녀의 등을 대고 잠든 몸을 살며시 바로잡아 주는 것을 느꼈다.바깥 날씨가 아직 추웠다.정안은 튼튼하고 포근한 가슴이 그녀를 끌어안고 있으니 아주 편안했다.이른 아침의 첫 햇살이 온 방 안을 밝게 비추었다.아직도 단꿈에 빠진 정안은 아랫배가 뭔가에 떠받치는 것 같아 불편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눈을 떴고 두툼한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남하준에게 가까이 안긴 채 몸을 밀착하고 있었다.온몸에 반바지만 입고 있는 남자는 아침에 강렬한 생리적 반응을 보였고 마치 해방되지 않은 듯 그녀의 몸에 억지로 받치고 있었다.남자의 생리적 현상이 아랫배를 받치고 있어 조금 아팠던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으니 얼굴이 왠지 뜨거워졌다.하지만 그는 가볍고 고른 숨을 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지금 몇 시지?’정안은 갑자기 시간을 알고 싶어서
커튼의 차광 효과가 좋아서 방이 곧 어두워졌다.남하준이 다시 침대에 눕자 정안은 괜히 긴장해서 가장자리로 가서 등을 돌리고 잤다.그녀의 행동에 남하준은 서글퍼졌다.그는 정안을 향해 돌아누운 채 그녀의 숱이 많은 검은 머리를 가만히 바라보며 마음이 심란하고 몸이 불에 탈 것 같아도 추호도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우선, 그녀의 몸이 막 원기를 회복했기 때문에 너무 일찍 성생활을 하는 것이 좋지 않았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원하지 않았다. 남하준은 줄곧 그녀의 감정을 존중했고 조금도 강요하지 않았다.하지만 성에 관한 일은 한 번 경험하기만 하면, 엎치락뒤치락하는 쾌감을 느끼게 되면 약에 중독된 듯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그녀와의 아름다운 잠자리를 경험하기 전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려웠다.가슴이 긁히고 불꽃이 튕기는 느낌은 정말 보통 사람이 참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남하준은 서서히 눈을 감고 몸은 굳어 움직이지 않고 머리는 천천히 정안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떨어진 지척의 거리에서 은은한 머리카락 향기를 맡으니 마음이 조금 위로되는 것 같았다.정안은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고 눈을 감아도 다시 잠들 수 없었다.뒤에 있는 남자는 그녀가 깨어있을 때 그녀의 몸에 손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단지 그녀가 잠든 후에야 몰래 그녀에게 키스하고 몰래 안아줄 수 있었다.정안은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서서히 잠이 들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정오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남하준은 이미 방에 없었고 정안은 일어나서 씻고 옷을 입고 외출을 준비했다.가족들은 다들 출근하고, 파티에 참여하고, 놀러 가고 모두 제각기 바빠 아무도 집에 없었다.지윤이 거실에서 간식을 먹으며 로맨스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정안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거실 중앙으로 가서 TV에서 낯 뜨거운 화면을 보니 남녀 주인공이 뜨거운 키스를 나누며 침대 위로 천천히 쓰러지는 모습이 아주 아름답고 분위기 있었다.지윤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입꼬리가 씩 올라가 정안이 다가
정안은 불쾌한 듯 중얼거렸다.“내가 뭐 그러라고 시켰니? 누가 돌아오래?”지윤은 웃으며 정안에게 다가가 그녀의 귓가에 중얼거렸다.“도련님께는 언니가 있는 곳이 곧 집인 거죠. 바쁜 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잖아요? 돌아와서 언니 얼굴 한 번 못 보더라도 도련님은 매일같이 집에 돌아오고 계세요.”정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수상쩍은 표정으로 지윤을 바라보았다.“너 얼마 받았어? 왜 갑자기 하준 오빠 편에서 말해?”지윤은 어깨를 으쓱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제가 그저 쓸데없이 소리 한 거예요. 언니 듣기 싫으면 말고요.”정안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점심 먹으러 가자. 점심 먹고 나랑 드레스 사러 가.”“갑자기 웬 드레스요?”지윤이 경악해서 묻자 정안이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아침에 정통 어르신 따님 초대를 받아서 저녁 파티에 참석해야 해.”“정통 어르신 따님이 언니를 초대해요?”“그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말이야.”정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탄식했다.“하지만 정통 어르신 따님이라 거절하기도 애매해.”지윤이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왜 언니를 초대했대요?”“몰라.”“도련님께 알릴까요?”“필요 없어.”“그럼 나랑 같이 가요.”“그래 그럼.”저녁 무렵, 뉴빌리지의 대저택.정안이 풀 세팅하고 출석했지만 뜻밖에도 그녀의 착장은 이번 파티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가장 편안하고 평범한 옷을 입고 매우 수수하고 꾸밈이 없었다.정안은 자신이 한 방 먹은 것 같았다.분명 그녀를 초대했을 때, 성대하고 공식적인 고급 만찬이니 성대한 차림으로 참석하라고 했다.하지만 막상 오고 보니 정원에 무대를 만들어 피아니스트와 밴드를 초대했고 무대 아래에 있는 모닥불 주위에 다들 둘러싸고 앉았고 또 일부 사람들은 옆에서 고기를 구웠다.정안의 미모가 눈길을 끌었지만 고급스러운 차림과 우아한 드레스가 너무 돋보여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비웃기도 했다.“사모님, 안녕하세요. 제 이름
지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병원에 병 보러 오지 왜 왔겠어? 갑자기 왜 태준 씨를 물어?”임다희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확인했다.“태준이가 당신 안 찾았어?”“아니.”지우가 고개를 젓자 임다희는 가볍게 웃었다.“그쪽이 아니라면 대체 누굴 찾아갔을까?”“그게 무슨 말이야?”지우가 일부러 이해가 안 가는 척 묻자 임다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두 사람 재결합한 거 맞지?”지우는 침묵했다.임다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조롱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두 사람 다시 만나는 거 아니까. 태준이가 당신을 찾지 않은 건 아마 약효가 너무 강해 당신 같은 여린 몸을 망쳐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여자를 찾아 해결했나 보네.”“약효가 너무 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지우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녀를 만족시켜줬다.임다희는 속이 편안해지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이 시간에 당신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지우의 안색이 확 가라앉았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앞의 이 악랄한 여자를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남태준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고 무슨 염치로 지금 까불고 있을까?만약 남태준이 그녀가 임다희와 정면충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지우는 절대 임다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남태준의 뜻에 따라 얌전하고 철든 여자친구가 되어야 했다.지우는 괴로운 척 연기하며 겨우 눈물 한 방울을 짜냈다.임다희는 그녀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한 감정을 잠재우고는 실소를 터뜨렸다.“이게 당신들 사랑이야? 하하. 우습네!”그녀의 비아냥거림과 함께 차 문이 닫히고 차량이 서서히 빠져나갔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택시를 잡아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태준을 걱정했다. 그의 옷이 흠뻑 젖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지우는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고는 남태준의 집에 가서 깨끗한 옷 몇 벌을 챙기려 했다.
잠시 후 한 남자 의사가 들어와 남태준이 평온하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효과가 조금은 있네요.”말을 마친 그는 남태준의 아랫도리를 보더니 한마디 보탰다.“하지만 효과가 만족스럽지는 않네요. 휴. 환자분 물 많이 주시고 약효가 천천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의사는 자리를 떠났고 지우는 급히 미지근한 물을 붓고 남태준의 아랫배를 슬쩍 쳐다봤다.병원의 이불이 너무 얇은 편도 아니었는데 남태준의 아랫배가 여전히 부풀어 올랐다.지우는 속으로 욕했다.‘늑대 같은 임다희! 빌어먹을!’“태준 씨. 물 좀 마셔요.”지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남태준이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뜨고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자 지우가 서둘러 그의 등을 부축해 주었다.“아직도 힘들어요?”지우가 관심하며 묻자 남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나 이제 괜찮으니까 너 집에 가서 쉬어.”“싫어요. 여기 있을래요.”남태준은 눈을 감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돌아가라고.”“혹시 무슨 일 생겼는데 옆에 돌봐줄 사람 없으면 어떡해요?”“여기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으니까 나 괜찮아.”“그래도 난 여기 있고 싶다고요.”남태준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천천히 뜨고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몸 안의 불은 꺼졌지만 탄소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어. 넌 탄소 더미 옆의 디젤과 같아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비유를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남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지우는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여기 머무르는 게 어쩌면 그의 안정과 회복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좋아요. 나 먼저 갈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줘요.”“그래.”지우는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1층 로비에서 매니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약을 받는 임다희를 만났다.지우는 재빨리 기둥 뒤에 숨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허리와 다리를 다친
지우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옆집에서 종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매번 거래가 있을 때면 이웃 할아버지는 종돈에게 독한 약을 먹였고 약을 먹은 종돈은 열 몇 마리의 암퇘지와 교배를 했다.그녀는 그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처절하고 끔찍한 돼지 울음소리는 그녀 어린 시절의 악몽이었다.정신이 번쩍 든 지우는 두말없이 펑 하고 문을 닫았다.갑작스레 문을 닫는 모습과 지우의 창백한 얼굴, 당황하는 모습에 남태준은 피식 웃었다.지우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았고 15분 후, 남태준은 지우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응급실에 가서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의사가 남태준 옆에 있는 지우를 가리키며 물었다.“환자분 여자친구예요?”남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여동생이에요.”지우는 마음이 뭉클했다. 남태준은 스스로 고통을 참을지언정 그녀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여자친구 있어요?”“없어요.”“내가 주소를 줄 테니 가서...”의사가 간단한 방법을 추천하려 하자 남태준이 엄숙하게 말했다.“나 경찰입니다.”의사는 말을 뚝 그치고 긴장된 듯 침을 삼키더니 웃어 보이며 애써 둘러댔다.“그러니까 제 말은 이런 경우 의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도 해독제가 없어요.”“진정제 놔주세요. 진정제가 안 되면 마취제라도...”“그런 약은 함부로 처방할 수 없고 일정한 수치에 도달해야 처방할 수 있어요. 환자분 같은 경우는...”의사는 난처해하더니 남태준의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강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고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진정제 놓아드리겠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거예요. 그저 괴로움을 조금 억제하는 정도예요.”“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롭게 참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다른 약도 같이 처방해 드릴게요.”의사가 약을 처방하며 말했다.“여자친구도 없고 그런 서비스도 받기 싫다면 여동생분께 성인 가게에 가서 사달라고 하세요.”지우는 이렇게 난처한 적이 없었다.
지우가 만약 숫처녀라면 아마 고생할 것이다.남태준은 생각하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러 의사를 찾아 해결할 생각이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이얼을 돌리려던 순간,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지우가 다급하게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태준 씨?”남태준은 움찔 놀랐다. 뜨거운 눈으로 지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니 입이 바짝 마르고 욕망이 최고조에 달했다.지우는 남자가 머리와 몸이 흠뻑 젖어 숨도 약간 헐떡이는 것을 보고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타오를 듯한 고온에 지우는 화들짝 놀랐다.“태준 씨 열 나요.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남태준은 꾹 참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운전할 줄 알아?”“아니요.”지우가 긴장하며 말했다.“방금 택시 타고 왔어요. 택시 타고 병원에 데려다줄게요.”택시?남태준은 자신이 통제 불능이 되어 택시에서 무슨 엉뚱한 짓을 할지 몰라 걱정했다.지우는 휴지를 뽑아 그의 볼과 목의 물기를 닦아 줬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기, 손바닥의 부드러움은 치명적인 유혹처럼 그를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들고 싶게 만들었다.“지우야.”남태준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감고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도 못하며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말했다.“방금 다희를 만났어.”지우는 땀을 닦는 동작을 멈추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티 나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요?”“그리고 이렇게 됐어. 너무 괴롭고 답답해 죽을 것 같아.”남태준은 침을 삼키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지우의 시선은 그의 고통스러운 안색에서 내려와 그의 가슴팍을 보니 기복이 아주 심했고 더 아래로 내려가니 운전석에 앉아도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다희가 약을 먹였어요?”지우는 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어쩔 줄 몰랐다.그러자 남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어떡해요?”지우는 부랴부랴 고개를 내밀어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살폈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그건 지난번에 이미 설명했잖아.”“그 사람 내가 만나야겠어. 주소와 연락처 줘.”“없어.”임다희는 냉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내가 그렇게 큰 단서를 줘서 네가 공을 세웠는데 넌 내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이 이런 태도로 날 심문해?”“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너 경찰서로 데려가 어떻게 해서 그 단서를 얻었는지 조사할 거야. 너 절대 쉽게 못 벗어나.”임다희는 피식 웃더니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정말 어이가 없어.”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 술을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알코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점차 뜨거움으로 번지고 일부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며 의식이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컵을 보더니 와인을 바라보았다.컵은 닦았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문제는 아마 개봉하지 않은 것 같은 와인에 있을 것이다그가 방심했다.남태준은 더 이상 임다희를 캐묻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말없이 성큼성큼 돌아서서 가버렸다.“태준아!”임다희가 급히 뒤쫓아가 남태준을 뒤에서 덥석 끌어안고 두 손을 놓지 않았다.“가지 마. 태준아. 사랑해.”임다희는 와인에 매우 강한 약을 넣었다. 소 열 마리라도 이 약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남태준의 경계하고 신중한 성격을 알고 일부러 와인에 약을 넣은 다음 개봉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이거 놔.”남태준은 화를 꾹 참고 나지막이 명령했지만 임다희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그의 몸을 더 꽉 껴안고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문지르며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임다희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겨 어깨너머로 세게 넘어뜨렸다.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임다희의 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초라했다.“내일 다시 봐.”남태준은 매섭게 말하고는 방에서 사라졌다.그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
며칠 후.남태준은 임다희가 제공한 단서에 따라 미리 깊은 산에 잠복해 마약 밀매업자들을 잡았고 몇 킬로그램의 물품도 압수했다.모두가 기뻐하고 공적을 세운 것을 감격스러워하며 축하하고 있을 때, 남태준만 걱정이 가득했다.그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임다희가 이렇게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그녀의 신분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다.이 사건은 곧 경찰에 의해 발표되었고 공식 웹사이트는 물론 뉴스에도 게재되었다.뉴스를 본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태준아. 네가 마약상을 잡고 물건까지 손에 넣은 건 내 공도 있지 않아? 나 밥 한 끼 사줘야 하는 거 아니야?]남태준은 그녀의 입에서 단서를 더 찾고 싶어 그녀의 요구를 승낙했다.저녁, 퇴근 후 남태준은 임다희가 준 장소로 차를 몰고 갔다.장소에 도착해서야 개인 클럽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곳은 VIP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준 초대 코드로 그 클럽에 들어갔다.긴 복도를 지나 웨이터가 룸의 문을 열었다.남태준이 들어가서 보니 범상치 않은 방이었다. 커다란 방에는 침대, 소파, 식탁, 옷장에 화장실까지 있었다.식탁에서 임다희는 섹시하고 우아한 튜브톱 스커트를 입고 요염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식탁 위에 촛불을 켜 놓은 저녁 식사는 매우 낭만적이었다.“태준아 왔어?”임다희는 일어나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어서 앉아.”남태준은 조금 경계하며 천천히 걸어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앞에 있는 양식을 보고 옆에 있는 몇 병의 술을 보며 말했다.“오늘 식사를 위해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야.”“마음에 들어?”임다희가 웃으며 묻자 남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아니. 싫어.”임다희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의자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대어 덤덤하게 말했다.“네가 준 정보 아주 정확하더라. 고마워. 만약 필요하다면 경찰서에 와서 상금 받아 가.”임다희는 어이없이 웃으며 옆에 이미 열린 술을 들고 남태준에게
“네?”지우가 멍하니 아직 반응하지 못했을 때 남태준이 바로 키스를 했다.남자의 패기 넘치고 강한 딥키스에 지우는 어질어질하고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없었으며 그의 부드럽고 끈적거리는 몸 아래에서 넋을 잃었다.함께 있는 시간은 늘 뜨겁고 끈적끈적했으며 아늑하고 행복했다.진한 키스를 나눈 후, 지우는 몸이 나른하고 숨이 가빠졌지만 남태준은 오히려 더욱 에너지가 넘치고 심지어 욕망이 자극되어 발산되지 않으니 더욱 흥분했다.그는 지우를 거실에 남겨두고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방으로 달려가 목욕을 했다.다시 나왔을 때 지우는 거실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남태준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컴퓨터 내용을 들여다봤다.그러자 지우는 노트북을 덥석 덮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시간이 늦었어요. 집에 가야겠어요.”남태준이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저녁 9시가 넘었다.그는 지우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며 그녀가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랐다.“열 시에 가.”남태준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조용히 달랬다.“열 시에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지우는 고개를 흔들었다.남태준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항상 그녀에게 키스해 그가 욕망을 억누를 수 없을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가 매번 자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또 고통스럽게 억누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런 남자를 보며 지우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아니요. 지금 가야겠어요. 너무 늦으면 안 돼요.”남태준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래.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지우는 즉시 물건을 챙기고 가방을 든 뒤 남태준의 따뜻한 손을 잡았다.“가요.”남태준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좀 서운했다.지우는 정말 그와 더 있고 싶지 않은 걸까?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미어졌다.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승용차는 마당에서 천천히 빠져나가 도로로 들어가 쏜살같이 달려갔다.길가에는 오랫동안 주차된 승합차 한 대가 줄곧
적어도 지우가 그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니 말이다.남태준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다희는 언제나 자신이 훌륭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이야. 자기가 원하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손에 넣으려 하지.”지우가 감탄하며 말했다.“그 여자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네요.”남태준이 거침없이 말했다.“그래도 한 때 만났던 사이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그럼 태준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지우가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다시 만나고 싶어요?”남태준이 화를 억누르고 물었다.“나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묻는 거야?”“그럼 아까 왜 그렇게 긴장하며 끌고 나갔어요. 그건...”남태준의 바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그건 네가 우리 집에 있는 거 들키기 싫어서지. 지성이가 이미 육건우에게 한 방 먹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지우는 순간 그의 뜻을 알아챘다.전에 남태준은 임다희가 아직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몰라서 대범하게 지우를 소개해줬었다.하지만 지금은 임다희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걸 알았으니 지우를 보호하기 위해 이 연애를 잘 숨겨야 했다. 아니면 임다희가 또 무슨 수단을 써서 두 사람을 이간질할지 모른다.마음이 따뜻해진 지우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남 대장님도 무서울 때가 있었네요?”남태준은 그녀의 말에 화가 나서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지우가 날쌔게 손을 피했다.“지우야. 이리 와.”남태준이 화난 척 말했지만 지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싫은데요?”남태준이 몸을 기울이고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 하자 지우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식탁을 나섰다.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직 밥 다 안 먹었는데 어디 가?”“안 먹을래요.”지우는 방긋 웃으며 남태준의 행동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잡고 혼내주려 하는 것 같았다.남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우는 급하게 돌아서서 거실로 뛰어갔다.“이리 오라고.”남태준이 부드러운 명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