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본가로 돌아가 몸조리를 했지만 남하준이 자는 안방에 머물지 않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이유로 객실에서 혼자 지냈다.그녀는 심지어 산후 도우미까지 방에 묵게 했는데 남하준이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그리고 하루 세끼를 방에서 먹었다.대부분 시간에 책을 읽고 휴식하며 거의 방문을 나서지 않았다. 가끔 밖에 나가더라도 뒷마당에서 산책할 뿐이었다.남하준은 일이 바빴지만 어렵게 시간을 내서 정안을 만나려 할 때마다 그녀가 일부러 피했다.정안은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유미를 보고 싶지 않았다.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쓸데없이 질투하고 싶지 않았다.어느덧 한 달이 소리 없이 지나갔다.날씨는 아직 조금 춥지만 봄이 오고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했다.지윤은 몸이 완전히 회복되어 본가로 들어가 정안을 가까이에서 돌봤다.이날 점심, 정안은 지윤과 함께 아들을 보러 신생아실로 갔다.녀석은 제법 키도 크고 몸도 무거워졌는데 눈에 보일 정도로 나날이 건장해지고 있었다.그러나 심폐기능은 아직 그다지 좋지 않아 의사는 신생아실에 한 달 더 입원할 것을 권장했다. 여기 전문 장비와 전문 의료진이 있어 신생아의 성장에 더 좋았다.정안은 의사의 지시를 따랐고 아들을 본 후 지윤과 함께 병원을 떠났다.차들이 북적거리는 도로에서 지윤이 평온하게 차를 몰며 신중하게 도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정안은 휴대폰을 꺼내 고개를 숙이고 데이터 연구를 계속했다.지윤은 그녀의 진지한 모습을 흘끗 보고는 물었다.“언니 언제 그룹에 돌아갈 생각이에요?”정안은 덤덤하게 말했다.“안 돌아가.”“네? 일을 그만둬요?”정안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고 말투는 고요한 물처럼 차분했다.“이미 안성에 연구소를 설립해달라고 나라에 신청했어.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전부 안성에서 진행될 거고, 필요하다면 그룹에 며칠 동안 출장 갔다가 그쪽 일 마치면 다시 안성으로 돌아올 거야.”지윤은 몰래 정안을 곁눈질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그녀가 완
지윤은 그녀의 곁을 지키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어도, 몇 년 동안 측근 비서로 일했으니 여전히 정안의 망을 볼 줄 알았다.지윤은 사방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정안이 바쁘게 조작하는 화면을 보았다.그때야 지윤은 정안이 몇 년 전 그녀의 해킹 계정에 로그인한 것을 발견했다.정안은 무기공학과 화학제조를 전공했는데 화학무기를 만드는 데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능통해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컴퓨터 실력도 뛰어났다.그녀는 해킹 계정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 다른 사람의 컴퓨터를 해킹하지 않으며 인터넷에서 자신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해커 차트의 순위에도 오르지 못했다.한바탕 조작한 후 정안이 컴퓨터를 덮었다.곧 건물 관제실 직원들이 소동을 일으키며 문을 열었다.“사람 불러서 수리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멀쩡하던 화면이 왜 다 나갔어?”정안은 컴퓨터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안녕하세요, 저 리셋 미용실 직원인데요. 원장님께서 우리 병원 CCTV가 왜 다 나갔는지 물어보라고 하셨어요.”직원이 긴장하며 말했다.“저희도 어찌 된 일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어요. 여기 메인 화면이 전부 나갔어요.”정안은 눈살을 찌푸리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제가 CCTV 설비에 대해 좀 아는데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직원은 정안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또 그녀 뒤의 지윤도 살펴보았다.순진하고 달콤한 외모의 두 여자를 보자 경계심을 내려놓고 두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것 좀 보세요. 다 이렇게 됐어요.”정안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 이거 제가 고칠 줄 아는데. 좀 도와드릴까요?”“아가씨가 고칠 수 있다고요?”직원이 의아해서 묻자 정안이 고개를 끄덕였다.“네!”직원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의자를 당겨 그녀를 앉혔다.국가 기밀도 아니고 그저 CCTV일 뿐이니 그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정안은 앉은 뒤 주머니에서 USB
펑 하는 큰 소리가 났다.정안은 차 문을 닫고 한이서의 뒤를 성큼성큼 따랐고 지윤이 급히 뒤쫓아갔다.“언니, 뭐 하게요?”정안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내 아들이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살게 했어. 넌 총에 맞고 내 가족이 실종되고 목숨을 잃었는데 내가 저 여자 쫓아가서 뭐하겠어?”“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잖아요!”“증거 필요 없어. 백인호와 짜고 내 할아버지 전 재산을 차지했다는 것만으로 난 저년 죽일 거야.”“언니. 사람을 죽이는 건 범죄에요!”지윤은 바짝 긴장했다. 정안의 성격이 더 이상 연약하지 않고 강인해졌다는 걸 점점 더 실감했다.정안은 지윤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이서를 따라 미용실로 들어갔다.한이서가 피부 관리를 받고 있을 때 정안과 지윤은 옆에서 성형 상담을 받으며 한이서의 동태를 살폈다.1시간 뒤, 피부 관리를 마친 한이서는 룰루랄라 엉덩이를 흔들며 고양이 걸음으로 화장실로 들어갔다.그러자 정안과 지윤이 그 뒤를 따랐다.한이서가 화장실 칸에 들어가 문을 닫고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시작하자 정안이 코를 가리고 문 앞에 서서 낮은 소리로 명령했다.“지윤아. 문 부수고 들어가서 저년 변기에서 똥 먹게 해.”지윤은 충격에 입을 딱 벌리고 정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지금까지 정안의 뜻을 어긴 적이 없으며 또 이런 방법이 한이서에게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다만 언제나 착하고 순한 정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순간적으로 경악했다.정안은 눈살을 찌푸리고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재촉했다.“안 들어가?”지윤은 감격에 고개를 끄덕였고 순간 피가 끓어올라 몇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발을 들어 힘껏 걷어찼다.펑 하는 큰 소리가 울려 퍼지자 한이서는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큰소리로 외쳤다.“악!”한이서는 벌떡 일어나 본능적으로 바지를 잡아당기고 당황한 표정으로 지윤을 바라보았다.“당신...”한이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윤이 그녀의 머리채를 확 잡아채고 징그럽고 더러운 변기에 마구 쑤셔
지윤은 정안의 입장을 생각만 해도 이가 근질근질했는데 정안은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울까?“언니. 도련님께 솔직히 말해서 유 비서 보내라고 해요. 나 지금 유 비서 보기만 해도 끔찍한데 언니는 얼마나 괴롭겠어요?”정안은 작업을 끝낸 후 태블릿을 닫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담담하게 말했다.“나 괜찮아.”왜냐하면 그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그녀는 남하준에게 자신이 유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유미가 그녀의 집에 나타나는 게 싫다는 것을, 두 사람의 감정에 개입하는 게 싫다는 것을 표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남하준은 유미가 그들 사이의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유미는 정통 어르신이 그의 곁에 보낸 사람이고, 서로 십수 년의 우정을 나눈 사람이고, 더욱이 남하준의 친한 친구 여동생이라는 이유때문에 남하준은 유미에게 다소 편파적이고 그녀를 배려하고 있었다.정안이 암살당한 날, 그녀는 안 좋은 예감이 들어 그에게 집에 남아서 자신과 함께 있어 달라고, 류청을 보내 유미를 구하게 하라고 부탁했다.하지만 그는 유미의 안위를 걱정해 결국 떠났다.그러나 이건 결코 그녀가 남하준을 가장 미워하는 원인이 아니었다.그녀가 가장 미워하는 것은 자신이 가장 위험하고 무력할 때, 그를 떠올리고 그에게 도움을 청할 때였다.처음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두 번째는 전원을 껐다.그 순간, 그녀는 전에 없던 절망을 느꼈다. 여자는 절대 남자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그녀의 아들도 그 사고로 인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로 했고, 앞으로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의지할 것이라 다짐했다.30분 후, 차량이 본가에 들어섰다.정안이 조수석에서 내리자 멀지 않은 곳에 군전 그룹의 차량 몇 대가 서 있었는데 한 무리의 병사들이 나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그들은 멀리서 정안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그들의 눈
남하준은 여전히 무거운 호흡으로 그녀의 팔을 잡았고 그녀를 향해 돌아서서 그윽한 눈동자로 부드럽게 속삭였다.“완아. 우리 얘기 좀 해.”정안은 눈길도 주지 않고 정면을 주시하며 덤덤한 어조로 비꼬았다.“매일 공사다망하신 분 시간을 제가 어찌 감히 뺏겠어요? 아니면 도련님의 그 잘난 비서가 또 저보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가씨가 그쪽 일을 방해한다고 말할 텐데요?”남하준은 가슴의 기복이 심하고 심호흡을 하며 가슴 끝이 아려오는 통증을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다.“우리 부부야. 나에게 꼭 이래야겠어?”“나 기억 잃지 않았으니까 도련님께서 상기 시켜 주지 않으셔도 돼요.”도련님이란 호칭은 존칭 같지만 생소함이 극에 달했다.남하준은 약간 붉어진 눈으로 그녀의 거리감 느껴지는 얼굴을 바라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이러한 고통은 이미 한 달 넘게 그를 지독하게 괴롭혔다.지난 한 달 동안 그들은 같은 지붕 아래 살았지만 정안은 그를 외면하고 전화도 받지 않고 답장도 하지 않고, 강제로 그녀 앞에 나타나도 그녀의 태도는 겨울의 서리보다 더 차가웠다.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그때 유미가 달려와 부드럽게 말했다.“하준아. 괜찮은 거 확인했으니까 이제 가자.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어.”남하준은 못 들은 척했고 정안이 덤덤하게 말했다.“이거 놔요. 나도 바빠요. 도련님이랑 여기서 시간 낭비할 시간 없어요.”남하준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두말없이 정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하준아!”유미가 두 발짝 쫓아갔지만 불만스러운 얼굴로 계속 쫓아갈 자격이 없었다.남자의 손힘이 너무 센 탓에 정안은 손목이 아파 났다.남하준은 다급하고 거칠게 그녀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가 안방 안으로 던졌다.방문이 펑 하고 세게 닫혔다.이 큰 소리는 그의 모든 불만을 가득 채웠고 놀란 정안은 심장이 덜덜 떨렸다.그는 정안을 침대 가장자리로 끌어당겨 그녀의 어깨를 눌러 앉혔다.그리고 자신은 돌아서서 방의 낮은
정안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남하준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는데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영혼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두 눈이 마주치자 모든 것이 변했다.그는 정안의 눈에서 어떠한 온기도 느낄 수 없었다.사실 정안의 마음도 편치 않았지만 계속해서 불필요한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할 말 끝났으면 나 먼저 가볼게요. 나 진짜 바쁘거든요.”정안이 일어나서 문 쪽으로 돌아서자 남하준이 돌진하여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며 나지막한 말투로 물었다.“나한테 대체 왜 이래?”정안은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답했다.“사랑하지 않아요. 대답이 됐나요?”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날카로운 칼처럼 남하준의 가슴에 꽂히자 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그의 안색은 점점 나빠지고 눈 밑은 슬픔으로 가득 차서 뻣뻣한 웃음을 지으며 덤덤한 척 말했다.“그럼 왜 돌아왔어? 왜 내 아이를 낳고 왜 나랑 결혼했어? 대체 왜?”그의 모든 질문에는 끝없는 고통이 배어 있고 목소리는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정안은 그의 목소리에서 가벼운 흐느낌을 듣고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감정이 자극되었다.분명 이 남자를 사랑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이 죽일 놈의 마음을 억누르기가 이렇게 어려웠다.그럴수록 정안은 조금의 진심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가슴이 은은히 아프고 눈 밑이 촉촉해지며 괴로웠지만 그럴수록 진심을 꽁꽁 감추고 더 차갑게 말했다.“지금 후회하고 있어요. 만약 이런 나를 감당하기 어렵고 나로 인해 당신이 괴롭다면 우리 이혼해요.”남하준은 차갑게 웃더니 그녀의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서서 몸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그의 넓은 뒷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그는 몰래 눈물을 닦고 갑작스럽게 다가온 아픔을 견디려고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추슬렀다.다시 몸을 돌려 정안을 마주한 그의 깊은 눈빛은 붉고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숙연하고 냉랭한 태도는 강경하게 변했다.“백완자. 난 이번 생에 네 손에
어쩌면 이게 남하준의 진정한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그녀 앞에서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그의 본성을 억눌렀을 수 있다.그녀는 전혀 남하준의 상대가 아니었다.정안은 순간 너무 무기력했고 남하준은 성큼성큼 집을 나섰다.유미는 그가 나오자 급히 마중 나와 그의 걸음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하준아. 너 안색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남하준은 그 누구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유미의 관심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류청은 남하준의 안색이 어둡고 눈시울이 붉어진 걸 보고 급히 달려가 긴장하며 차 문을 열어주었다.남하준은 차에 오르기 1초 전에 지윤을 보더니 차갑게 명령했다.“지윤 씨도 데려가.”류청은 의심스러웠지만 더 묻지 못하고 지윤을 쭈뼛쭈뼛 바라보았다.유미가 불쾌한 듯 물었다.“지윤 씨는 왜 데려가? 그저 완자 비서일 뿐이잖아. 우리 업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유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하준은 이미 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류청이 지윤에게 다가가 몇 마디 중얼거렸다.지윤은 류청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 남하준의 차에 올라 그와 뒷좌석에 앉았다.류청이 운전하고 유미가 조수석에 앉았다.차량은 시동을 걸고 훌쩍 떠나갔다.지윤은 남하준의 온몸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차 전체가 얼음고에 들어간 것 같아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그녀는 침을 삼키고 긴장하며 물었다. “도련님, 저 데리고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남하준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그럼 두 사람은 내 사람들을 따돌리고 어디 가서 뭐 했어요?”지윤은 움찔하더니 다소 긴장한 듯 웃어 보였다.“저희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아무 데도 가지 않았어요.”남하준이 차갑게 경고했다.“나 두 번 묻기 싫으니까 말해요.”지윤이 쩔쩔매며 류청을 바라보았다.류청은 차를 몰면서도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말하라고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지윤은 다시 조수석의 유미를 쳐다보고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는 불쾌하게 말했다.
지윤은 충격에 입을 딱 벌리고 남하준을 바라보았다.남하준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죠?”지윤은 코웃음을 치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어쩐지 언니가 도련님을 사랑하지 않더라니. 정말 그럴 가치가 없네요.”“이유를 말해봐요.”남하준이 차갑고 매서운 눈으로 묻자 지윤은 그의 위엄에 겁을 먹고 긴장하여 침을 삼키고는 짐짓 가볍게 농담했다.“도련님께서 이렇게 내연녀를 감싸시니까 언니가 도련님을 못 믿고 직접 진상을 조사하는 거죠. 미숙아로 태어난 아들과 총을 맞은 나의 복수를 하려는 거예요.”남하준이 불쾌하게 말했다.“유미는 내연녀가 아니에요. 우리는 순전히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예요.”지윤은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참. 어느 바람피운 남자가 자기 내연녀를 인정해요? 난 도련님 아내가 아니니 저에게 설명할 필요 없어요. 어쨌든 도련님은 언니와 유 비서 사이에서 유 비서를 선택했어요. 우리 언니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그쪽 아니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언니가 가치 없다고 판단하면 사랑하지 않는 건 당연하죠.”남하준은 주먹을 천천히 쥐며 얼굴이 새파래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는 지윤의 입에서 정안의 입장을 들었다.이것이 바로 정안이 지금 그를 냉대하는 이유일까?남하준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무릎을 손으로 꽉 조이며 점차 힘을 주었다.“계속 말해봐요.”“뭘 계속 말해요?”지윤이 의혹스러워 묻자 남하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지윤 씨가 무슨 말을 하든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알고 있는 거, 불만이든 분노든 전부 털어놔요.”“왜 언니한테 안 물어봐요?”“지금 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어떻게 나와 말을 섞겠어요?”지윤은 코웃음을 치며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거 참 잘됐네요.”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려 꾹 참았다.지윤은 한숨을 내쉬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차가운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의 유미를 바라보며 마음속의 불만을 토로했다.“도련님은 참 자기 복을 누릴 줄 모르세요. 언니처럼 훌륭한 아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