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은 움찔하더니 몇 초 동안 경직되었다가 허리를 굽히고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는 손바닥으로 뺨을 감싸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기복을 억눌렀다.몇 초 후,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두 눈은 이미 시뻘게졌고 차갑게 웃으며 쏘아 붙였다.“백완자. 너 내가 만만해? 필요할 때 찾아오고 필요 없으면 인정사정없이 내동댕이치다가 이제 결혼하고 싶으니까 와서 통보해? 내가 이번 생에 너 아니면 결혼 못 할 것 같아?”정안은 그가 힘겹게 감정을 억제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 경맥이 살살 뛰며 아프고 슬픈 마음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아이도 뱃속에서 심하게 차고 있었다.“미안해요.”정안은 천천히 일어나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장갑을 낀 채 목례를 하며 진심으로 사과했다.“내 생각이 짧았어요. 미안해요.”정안은 입구로 향해 문을 열고 나갔고 남하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 눈은 어둡고 쓸쓸하며 슬픔으로 가득 찼다.그가 원하는 건 결혼도 아이도 아닌 항상 그녀의 마음이었다.문이 닫히자 그는 소파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머리를 천천히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손을 힘없이 눈 위에 얹었다.단 몇 초의 침묵 후, 그는 벌떡 일어나 재빨리 옷장 앞으로 달려가 코트 한 벌을 꺼내 입고 또 다른 코트 한 벌을 꺼내 그녀를 쫓아갔다.추운 거리는 텅 빈 도시처럼 조용했다.길가의 따뜻한 노란색 불빛이 대지를 밝게 비추고 있었고 눈이 내리지 않는 밤도 추웠다.정안은 가로등 아래에서 울적한 마음으로 걸어갔다.그녀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만약 애초에 그렇게 많은 걱정과 생각을 하지 않고 M국에 돌아오자마자 남하준을 찾아왔더라면 지금의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남하준처럼 훌륭한 남자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있다. 반드시 그녀와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정안은 양손으로 천천히 배를 만지고 하늘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고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며 말했다.‘아가,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네 아빠를 잃어버렸어.’문
새벽 6시, 날은 아직 어둑어둑했다.정안은 졸린 몸을 가누고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문을 열고 보니 남하준은 이미 밖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시크한 블랙 수트 차림이지만 평소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잘 잤어?”남하준이 따뜻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정안은 자신이 입고 있는 코트를 내려다보니 그다지 예쁘지 않았다. “나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까요?”“괜찮아.”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남자는 그녀가 당장이라도 후회할까 봐 내내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비행기에서도, 비행기에서 내려 구청으로 갈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군혼이라 우선 등록권이 있었고 혼인신고 과정이 마치 쫓기듯 진행되며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았다.혼인신고 증명서를 손에 쥐었을 때 정안은 여전히 잠이 덜 깬 듯 몽롱했다.두 사람은 구청을 나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서 있었다.남하준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내가 보관할게.”“이건 내 건데 왜요? 싫어요.”그녀가 가끔 꺼내 보고 싶을 때 그에게 달라고 해야 하니 얼마나 번거로운가?남하준은 말없이 증명서를 주머니에 넣고 그녀의 손을 잡고 앞에 있는 승용차로 향했다.“도련님, 우리 어디 가요?”정안이 궁금해서 묻자 남하준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방금 혼인신고 가짜였어?”“아니요. 진짜죠!”남하준은 언짢은 듯 부드럽게 물었다.“근데 지금 자기 남편보고 도련님이라고 부른 거야?”정안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가 다른 한 손도 그의 큰 손을 잡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결혼했다는 거 당분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면 안 될까요? 특히 유미 씨에게.”남하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유미가 나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야. 너랑 아이 해치지 않을 거야.”“알아요. 나쁜 사람 아니라는 거 아는데 오빠를 너무 사랑해요. 너무 집착해서 자기사업도 포기한 여자니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요.”
정안은 천천히 몸을 남하준의 가슴에 기대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회사에서는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사적으로는 오빠라고 부를게요. 네?”남하준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잡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는데, 초롱초롱한 눈은 그렇게 온화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그렇게 듣기 좋은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그래.”그가 대답하자 정안은 달콤하게 웃더니 물었다.“우리 이제 어디 가요? 비행기 타고 그룹으로 돌아가요?”“금원으로 가.”“그럼 내일 돌아가요?”“결혼했으니 신혼여행 가야 하는 거 아니야?”정안이 호기심에 물었다.“오빠 안 바빠요?”“뭐든 내가 직접 할 필요 없어. 비서가 있잖아.”정안이 가볍게 웃더니 일부러 놀렸다.“하지만 난 바쁜데요?”남하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너 안 바빠.”“설마 내 일을 조사했어요?”남하준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완아. 나 너한테 원하는 거 하나밖에 없어.”“뭔데요?”남하준의 눈동자가 깊어지더니 엄숙하게 말했다.“평생 나 배신하지 마.”정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진지한 눈빛으로 또박또박 말했다.“난 이번 생에 절대 남하준을 배신하지 않아요. 만약 배신하면...”남하준이 원하는 건 앞 구절이었고 뒤 구절은 듣고 싶지 않아 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정안은 화들짝 놀라 눈을 부릅뜨고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받쳤다.그의 입과 혀가 천천히 깊숙이 파고들었다.정안은 급히 그를 밀어내고 머리를 뒤로 피하며 키스한 입술을 오므리고 부끄러운 듯 물었다.“뭐예요? 길거리에서 키스하면 어떡해요?”남하준은 가볍게 웃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차 문을 당겨 그녀를 조수석에 앉혔다.정안이 막 앉자마자 남하준이 고개를 내밀고 들어가 안전벨트를 잡아당겼다.“내가 할 수 있어요.”남하준은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 시트를 손으로 받치고 그녀의 붉어진 볼과 분홍빛 입술을 옆으로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또 그녀의 입술을 탐냈다.정안이
남하준이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엄마, 완자 임신했어요.”남창민과 허윤미는 정안의 배를 충격적으로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금세 경사에 젖은 분위기였다.“임신했다고? 벌써?”정안은 수줍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6개월 됐어요.”허윤미는 활짝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고 흥분해서 정안의 곁으로 달려가 그녀의 팔짱을 끼고 그녀의 배를 내려다보았다.“세상에. 벌써 반년이라니. 난 매일 너랑 하준이 미래를 걱정했어. 너희들 진작 이런 계획을 세웠으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죄송해요. 저...”정안이 죄책감에 사과하자 허윤미가 바로 말을 끊었다.“아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앞으로 여기서 지내. 내가 돌봐줄게. 네가 하준이 옆에 있는 건 안심이 안 돼서 그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내가 직접 만들어줄게.”남하준이 대뜸 끼어들었다.“나 잘 돌볼 수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허윤미가 눈살을 찌푸렸다.“아이를 임신한 적도 없고 낳은 적도 없는 네가 어떻게 잘 돌볼 수 있어? 완자는 여기 두고 넌 일하러 가려면 가. 내가 반드시 완자랑 아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키울게.”남창민이 위엄 있게 말했다.“그래. 하준아. 엄마 말 들어.”남하준이 가볍게 탄식했다.“싫어요.”“다른 건 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지만 이 일은 상의할 여지도 없어.”허윤미가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말했다.“완자 혼자 금원에 사는 건 도저히 맘이 안 놓이고 너 따라 변경으로 가는 건 더더욱 안심할 수 없어.”“엄마...”남하준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고 갑자기 부모님에게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린 걸 후회했다.정안도 본가에 살고 싶지 않았다.이곳에 최서윤이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최서윤은 전에 남하준을 좋아했는데, 정략결혼으로 그녀와 남하준의 혼사를 성사시키려 했다.하지만 남하준의 태도가 강경하여 누구도 그를 핍박할 수 없어 셋째 형과 혼인하게 된 것이다.그래서 최서윤은 늘 정안을 아니꼽게 여겼다.임신 중인 정안이 그녀와 함께 사는 건 도저히
지우는 정안을 놓아주고 그녀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들어와.”정안은 거실로 들어가 사방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태준 오빠는?”“남태준 씨? 헬스장에 있어.”지우가 다른 방을 가리키며 말하자 정안이 후다닥 걸어갔고 남하준이 그 뒤를 따랐다.정안이 노크하자 남자의 둔탁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정안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건장하고 잘생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태준을 본 순간 그녀는 형언할 수 없는 감격에 휩싸였다.한때 약하고 퇴폐적이었던, 삶의 의지가 없던 그 남자는 이미 사라졌고, 지금의 남태준은 예전의 찬란하던 모습을 되찾았다.당시 J국에서 보았던 모습보다 훨씬 건장하고 씩씩하며 잘생긴 얼굴에는 생기가 감돌았다.“오빠, 나 완자에요.”정안이 울먹이며 천천히 걸어갔다.남태준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침술과 꾸준한 운동으로 다리는 건강을 되찾았다.“완자?”남태준은 활짝 웃더니 손에 쥔 아령을 내려놓고 앞으로 손을 뻗어 정안을 찾았다.정안이 부리나케 앞으로 나가 그를 부축했다.남태준은 손을 뻗어 정안의 머리를 만지고 가볍게 다독였다.“오랜만이야. 키는 여전히 그대로네.”정안이 눈물을 글썽이고 웃으며 말했다.“나 이제 스물여섯인데 어떻게 키가 더 커요?”남하준은 질투심이 타올라 남태준의 두 손을 잡고 정안의 몸에서 끌어내리며 인사했다.“형 나도 왔어요.”“하준이도 왔어?”남태준이 기뻐하며 물었다.“응. 나 완자랑 결혼했어요.”말을 마친 그의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정안을 바라보며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눈물을 머금은 채 남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남태준이 남하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축하해. 녀석, 드디어 소원을 이뤘네.”지우가 들어와 경악해서 물었다.“뭐? 두 사람 결혼했어?”정안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지우가 들어와 정안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가자. 우리 나가서 얘기 좀 해.”남하준이 남태준을 부축하자 남태준이 바로 그의 손을
지우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급히 소파에서 빠져나가 넓은 곳으로 뛰어갔다.“폐인. 나 잡는 거 외에 할 줄 아는 게 뭐에요? 잡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폐인이란 건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니. 사람 참 귀찮게 하다니까!”“너! 내 손에 잡히면 밖에 내다 버릴 줄 알아.”남태준은 성큼성큼 다가가며 아무것도 부딪치지 않았는데도 지우를 잡지 못했다.“일단 나부터 잡고 얘기하시죠?”“너 죽었어. 내가 너 단풍나무에 매달아 말려버린다!”“그러던지!”지우가 웃으며 외쳤다.“폐인! 어디 한 번 잡아보라고!”정안과 남하준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고 남하준이 정안의 손을 잡고 말했다.“우리 가자.”정안이 거실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눈먼 독수리가 장난기 많은 영리한 병아리를 쫓고 있는 것 같았다.“신경 쓰지 마.”남하준이 말하자 정안은 그를 따라 떠났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단풍 숲길을 걸었다.“지우 덕에 태준 오빠가 저렇게 빨리 회복한 것 같아요. 근데 태준 오빠는 왜 지우에게 저렇게 잔인한 거예요?”남하준이 의혹스러운 듯 물었다.“뭐가 잔인해?”“뭐 내다 버리겠다는 둥, 나무에 매달려 말려버리겠다는 둥, 듣기만 해도 끔찍하잖아요.”남하준은 참지 못하고 웃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뭘 모르네. 형이 정말 잡고 싶었다면 1분 걸리지 않아 제압했을 거야. 그럼 지우 씨 도망갈 기회도 없었어.”정안이 경악해서 물었다.“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잡아요?”“귀가 있잖아. 소리만 잘 듣고 달려들면 2m 안에 건 잡을 수 있지.”남하준이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형이 전에 어떤 사람인지 잊었어? 연약한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눈 감고 소리로 얼마든지 잡을 수 있어.”“그런데 왜 지우와 장난을 치는 거죠?”정안이 궁금해서 입술을 오므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또 말했다.“매일 싸우고 서로 잡으며 노는 것도 재미없잖아요?”남하준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약간 질투심에 차서 물었다.“너 질투해
정안은 멍해져서 지난 일을 회상했다.‘뭐야. 처음부터 오해하고 있었던 거야?’“넌 상대가 적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사랑이 없는 결혼도 할 수 있잖아?”남하준은 마음속의 괴로움을 참고 애써 감정을 다스리려고 애썼다.“내가 어떤 마음일지 생각한 적 있어?”정안은 어이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오빠, 난 할머니 때문에 오빠랑 결혼한 게 아니에요.”“그럼 왜 결혼했는데?”정안은 마음이 급해져 불쑥 진심을 내뱉었다.“난 그때 이미 오빠를 3년 동안 짝사랑했으니까요!”남하준은 멍해졌다. 마치 혈 자리를 눌린 듯 경악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정안의 얼굴이 점점 더 화끈거려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고 작은 소리로 반복했다.“오랫동안 짝사랑했다고요.”남하준은 감격해서 그녀의 두 어깨를 잡고 고개를 숙여 그녀와 마주 보며 눈시울을 약간 붉히고 두 손을 떨었다.“방금 나 짝사랑했다고 했어?”정안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3년 동안 짝사랑했다고?”남하준은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물어봤다.“그러니까 네가 서다인이었을 때, 나를 처음 알았을 때부터 좋아했던 거야?”정안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고백하는 게 이렇게 민망한 일이었다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고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남하준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다.“넌 나 싫어한다고 말한 적도 있어. 근데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정안은 화가 나서 고개를 번쩍 들고 부끄러워 빨개진 얼굴로 그의 붉어진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세상에 어느 여자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아이를 임신해요? 만약 유전자가 좋은 아이를 낳고 싶으면 정자은행에 차고 넘치죠!”“너 참 나쁘다.”남하준은 한마디 속삭이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고 자기 심장에 비벼 넣을 기세로 꼭 껴안았다.정안은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남자의 허리를 껴안고 심하게 뛰는 그의 심장 소리와 뜨거운
“나 사랑하지 않아요?”정안은 화난 척 입술을 삐죽 내밀고 눈살을 찌푸렸다.남하준이 무의식중에 내뱉었다.“사랑해.”“그럼 애교스럽게 여보라고 한 번 부르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차라리 만 번 사랑한다고 말하고 말지.”정안은 웃음이 더욱 짙어져 그의 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그럼 만 번 사랑한다고 말해줘요.”남하준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가로로 안았다.정안이 그의 목을 두르고 긴장한 채 물었다.“왜 또 안아요?”남하준이 진지하게 말했다.“그렇게 길 안 보고 걷다가 넘어지면 속상한 건 나야.”정안은 가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더욱 환하게 웃었다.몸과 마음이 모두 따뜻해져서 구름 위를 밟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꿈만 같은 현실이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했다....금원으로 돌아간 후, 정안이 소파에 앉자마자 지우의 전화가 걸려왔다.그녀는 귓가에 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지우야, 무슨 일이야?”지우가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왜 벌써 갔어? 우리 아직 제대로 얘기도 못 했잖아.”정안이 피식 웃더니 물었다.“태준 오빠한테 안 잡혔어?”“아니. 아직 나 못 잡아. 지금 샤워하러 갔어.”지우가 조곤조곤 말하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실의에 빠진 듯 말했다.“사실 이미 거의 회복했어. 지난 반년 동안 나와 싸우려고 열심히 운동하고 의사도 만나고 재활 치료에 전념했어. 만약 정말 나아진다면 나도 이제 슬슬 떠나야지. 매달 수백만 원의 월급이 적은 돈도 아니고.”“그 정도 돈은 남씨 가문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부담 갖지 마. 오빠가 회복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네 덕이야.”“난 그저 돈 받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지우야, 오빠 눈 회복할 때까지 있어줘.”“사실 이제 내가 돌봐줄 필요가 없어. 눈은 안 보이지만 일상생활에 별로 지장이 없어. 심지어 정상인보다 더 잘한다니까? 밥하고 채소를 써는 것도 손으로 더듬으면서 해.”지우는 감탄하면서 말투에는 존경심과 숭배감이 흘러넘쳤다.“의지력이 아주 강해서 뭐든 잘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