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은 움찔하더니 몇 초 동안 경직되었다가 허리를 굽히고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는 손바닥으로 뺨을 감싸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기복을 억눌렀다.몇 초 후,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두 눈은 이미 시뻘게졌고 차갑게 웃으며 쏘아 붙였다.“백완자. 너 내가 만만해? 필요할 때 찾아오고 필요 없으면 인정사정없이 내동댕이치다가 이제 결혼하고 싶으니까 와서 통보해? 내가 이번 생에 너 아니면 결혼 못 할 것 같아?”정안은 그가 힘겹게 감정을 억제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 경맥이 살살 뛰며 아프고 슬픈 마음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아이도 뱃속에서 심하게 차고 있었다.“미안해요.”정안은 천천히 일어나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장갑을 낀 채 목례를 하며 진심으로 사과했다.“내 생각이 짧았어요. 미안해요.”정안은 입구로 향해 문을 열고 나갔고 남하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 눈은 어둡고 쓸쓸하며 슬픔으로 가득 찼다.그가 원하는 건 결혼도 아이도 아닌 항상 그녀의 마음이었다.문이 닫히자 그는 소파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머리를 천천히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손을 힘없이 눈 위에 얹었다.단 몇 초의 침묵 후, 그는 벌떡 일어나 재빨리 옷장 앞으로 달려가 코트 한 벌을 꺼내 입고 또 다른 코트 한 벌을 꺼내 그녀를 쫓아갔다.추운 거리는 텅 빈 도시처럼 조용했다.길가의 따뜻한 노란색 불빛이 대지를 밝게 비추고 있었고 눈이 내리지 않는 밤도 추웠다.정안은 가로등 아래에서 울적한 마음으로 걸어갔다.그녀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만약 애초에 그렇게 많은 걱정과 생각을 하지 않고 M국에 돌아오자마자 남하준을 찾아왔더라면 지금의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남하준처럼 훌륭한 남자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있다. 반드시 그녀와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정안은 양손으로 천천히 배를 만지고 하늘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고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며 말했다.‘아가,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네 아빠를 잃어버렸어.’문
새벽 6시, 날은 아직 어둑어둑했다.정안은 졸린 몸을 가누고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문을 열고 보니 남하준은 이미 밖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시크한 블랙 수트 차림이지만 평소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잘 잤어?”남하준이 따뜻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정안은 자신이 입고 있는 코트를 내려다보니 그다지 예쁘지 않았다. “나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까요?”“괜찮아.”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남자는 그녀가 당장이라도 후회할까 봐 내내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비행기에서도, 비행기에서 내려 구청으로 갈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군혼이라 우선 등록권이 있었고 혼인신고 과정이 마치 쫓기듯 진행되며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았다.혼인신고 증명서를 손에 쥐었을 때 정안은 여전히 잠이 덜 깬 듯 몽롱했다.두 사람은 구청을 나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서 있었다.남하준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내가 보관할게.”“이건 내 건데 왜요? 싫어요.”그녀가 가끔 꺼내 보고 싶을 때 그에게 달라고 해야 하니 얼마나 번거로운가?남하준은 말없이 증명서를 주머니에 넣고 그녀의 손을 잡고 앞에 있는 승용차로 향했다.“도련님, 우리 어디 가요?”정안이 궁금해서 묻자 남하준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방금 혼인신고 가짜였어?”“아니요. 진짜죠!”남하준은 언짢은 듯 부드럽게 물었다.“근데 지금 자기 남편보고 도련님이라고 부른 거야?”정안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가 다른 한 손도 그의 큰 손을 잡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결혼했다는 거 당분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면 안 될까요? 특히 유미 씨에게.”남하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유미가 나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야. 너랑 아이 해치지 않을 거야.”“알아요. 나쁜 사람 아니라는 거 아는데 오빠를 너무 사랑해요. 너무 집착해서 자기사업도 포기한 여자니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요.”
정안은 천천히 몸을 남하준의 가슴에 기대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회사에서는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사적으로는 오빠라고 부를게요. 네?”남하준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잡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는데, 초롱초롱한 눈은 그렇게 온화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그렇게 듣기 좋은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그래.”그가 대답하자 정안은 달콤하게 웃더니 물었다.“우리 이제 어디 가요? 비행기 타고 그룹으로 돌아가요?”“금원으로 가.”“그럼 내일 돌아가요?”“결혼했으니 신혼여행 가야 하는 거 아니야?”정안이 호기심에 물었다.“오빠 안 바빠요?”“뭐든 내가 직접 할 필요 없어. 비서가 있잖아.”정안이 가볍게 웃더니 일부러 놀렸다.“하지만 난 바쁜데요?”남하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너 안 바빠.”“설마 내 일을 조사했어요?”남하준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완아. 나 너한테 원하는 거 하나밖에 없어.”“뭔데요?”남하준의 눈동자가 깊어지더니 엄숙하게 말했다.“평생 나 배신하지 마.”정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진지한 눈빛으로 또박또박 말했다.“난 이번 생에 절대 남하준을 배신하지 않아요. 만약 배신하면...”남하준이 원하는 건 앞 구절이었고 뒤 구절은 듣고 싶지 않아 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정안은 화들짝 놀라 눈을 부릅뜨고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받쳤다.그의 입과 혀가 천천히 깊숙이 파고들었다.정안은 급히 그를 밀어내고 머리를 뒤로 피하며 키스한 입술을 오므리고 부끄러운 듯 물었다.“뭐예요? 길거리에서 키스하면 어떡해요?”남하준은 가볍게 웃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차 문을 당겨 그녀를 조수석에 앉혔다.정안이 막 앉자마자 남하준이 고개를 내밀고 들어가 안전벨트를 잡아당겼다.“내가 할 수 있어요.”남하준은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 시트를 손으로 받치고 그녀의 붉어진 볼과 분홍빛 입술을 옆으로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또 그녀의 입술을 탐냈다.정안이
남하준이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엄마, 완자 임신했어요.”남창민과 허윤미는 정안의 배를 충격적으로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금세 경사에 젖은 분위기였다.“임신했다고? 벌써?”정안은 수줍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6개월 됐어요.”허윤미는 활짝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고 흥분해서 정안의 곁으로 달려가 그녀의 팔짱을 끼고 그녀의 배를 내려다보았다.“세상에. 벌써 반년이라니. 난 매일 너랑 하준이 미래를 걱정했어. 너희들 진작 이런 계획을 세웠으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죄송해요. 저...”정안이 죄책감에 사과하자 허윤미가 바로 말을 끊었다.“아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앞으로 여기서 지내. 내가 돌봐줄게. 네가 하준이 옆에 있는 건 안심이 안 돼서 그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내가 직접 만들어줄게.”남하준이 대뜸 끼어들었다.“나 잘 돌볼 수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허윤미가 눈살을 찌푸렸다.“아이를 임신한 적도 없고 낳은 적도 없는 네가 어떻게 잘 돌볼 수 있어? 완자는 여기 두고 넌 일하러 가려면 가. 내가 반드시 완자랑 아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키울게.”남창민이 위엄 있게 말했다.“그래. 하준아. 엄마 말 들어.”남하준이 가볍게 탄식했다.“싫어요.”“다른 건 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지만 이 일은 상의할 여지도 없어.”허윤미가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말했다.“완자 혼자 금원에 사는 건 도저히 맘이 안 놓이고 너 따라 변경으로 가는 건 더더욱 안심할 수 없어.”“엄마...”남하준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고 갑자기 부모님에게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린 걸 후회했다.정안도 본가에 살고 싶지 않았다.이곳에 최서윤이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최서윤은 전에 남하준을 좋아했는데, 정략결혼으로 그녀와 남하준의 혼사를 성사시키려 했다.하지만 남하준의 태도가 강경하여 누구도 그를 핍박할 수 없어 셋째 형과 혼인하게 된 것이다.그래서 최서윤은 늘 정안을 아니꼽게 여겼다.임신 중인 정안이 그녀와 함께 사는 건 도저히
지우는 정안을 놓아주고 그녀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들어와.”정안은 거실로 들어가 사방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태준 오빠는?”“남태준 씨? 헬스장에 있어.”지우가 다른 방을 가리키며 말하자 정안이 후다닥 걸어갔고 남하준이 그 뒤를 따랐다.정안이 노크하자 남자의 둔탁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정안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건장하고 잘생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태준을 본 순간 그녀는 형언할 수 없는 감격에 휩싸였다.한때 약하고 퇴폐적이었던, 삶의 의지가 없던 그 남자는 이미 사라졌고, 지금의 남태준은 예전의 찬란하던 모습을 되찾았다.당시 J국에서 보았던 모습보다 훨씬 건장하고 씩씩하며 잘생긴 얼굴에는 생기가 감돌았다.“오빠, 나 완자에요.”정안이 울먹이며 천천히 걸어갔다.남태준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침술과 꾸준한 운동으로 다리는 건강을 되찾았다.“완자?”남태준은 활짝 웃더니 손에 쥔 아령을 내려놓고 앞으로 손을 뻗어 정안을 찾았다.정안이 부리나케 앞으로 나가 그를 부축했다.남태준은 손을 뻗어 정안의 머리를 만지고 가볍게 다독였다.“오랜만이야. 키는 여전히 그대로네.”정안이 눈물을 글썽이고 웃으며 말했다.“나 이제 스물여섯인데 어떻게 키가 더 커요?”남하준은 질투심이 타올라 남태준의 두 손을 잡고 정안의 몸에서 끌어내리며 인사했다.“형 나도 왔어요.”“하준이도 왔어?”남태준이 기뻐하며 물었다.“응. 나 완자랑 결혼했어요.”말을 마친 그의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정안을 바라보며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눈물을 머금은 채 남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남태준이 남하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축하해. 녀석, 드디어 소원을 이뤘네.”지우가 들어와 경악해서 물었다.“뭐? 두 사람 결혼했어?”정안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지우가 들어와 정안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가자. 우리 나가서 얘기 좀 해.”남하준이 남태준을 부축하자 남태준이 바로 그의 손을
지우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급히 소파에서 빠져나가 넓은 곳으로 뛰어갔다.“폐인. 나 잡는 거 외에 할 줄 아는 게 뭐에요? 잡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폐인이란 건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니. 사람 참 귀찮게 하다니까!”“너! 내 손에 잡히면 밖에 내다 버릴 줄 알아.”남태준은 성큼성큼 다가가며 아무것도 부딪치지 않았는데도 지우를 잡지 못했다.“일단 나부터 잡고 얘기하시죠?”“너 죽었어. 내가 너 단풍나무에 매달아 말려버린다!”“그러던지!”지우가 웃으며 외쳤다.“폐인! 어디 한 번 잡아보라고!”정안과 남하준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고 남하준이 정안의 손을 잡고 말했다.“우리 가자.”정안이 거실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눈먼 독수리가 장난기 많은 영리한 병아리를 쫓고 있는 것 같았다.“신경 쓰지 마.”남하준이 말하자 정안은 그를 따라 떠났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단풍 숲길을 걸었다.“지우 덕에 태준 오빠가 저렇게 빨리 회복한 것 같아요. 근데 태준 오빠는 왜 지우에게 저렇게 잔인한 거예요?”남하준이 의혹스러운 듯 물었다.“뭐가 잔인해?”“뭐 내다 버리겠다는 둥, 나무에 매달려 말려버리겠다는 둥, 듣기만 해도 끔찍하잖아요.”남하준은 참지 못하고 웃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뭘 모르네. 형이 정말 잡고 싶었다면 1분 걸리지 않아 제압했을 거야. 그럼 지우 씨 도망갈 기회도 없었어.”정안이 경악해서 물었다.“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잡아요?”“귀가 있잖아. 소리만 잘 듣고 달려들면 2m 안에 건 잡을 수 있지.”남하준이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형이 전에 어떤 사람인지 잊었어? 연약한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눈 감고 소리로 얼마든지 잡을 수 있어.”“그런데 왜 지우와 장난을 치는 거죠?”정안이 궁금해서 입술을 오므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또 말했다.“매일 싸우고 서로 잡으며 노는 것도 재미없잖아요?”남하준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약간 질투심에 차서 물었다.“너 질투해
정안은 멍해져서 지난 일을 회상했다.‘뭐야. 처음부터 오해하고 있었던 거야?’“넌 상대가 적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사랑이 없는 결혼도 할 수 있잖아?”남하준은 마음속의 괴로움을 참고 애써 감정을 다스리려고 애썼다.“내가 어떤 마음일지 생각한 적 있어?”정안은 어이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오빠, 난 할머니 때문에 오빠랑 결혼한 게 아니에요.”“그럼 왜 결혼했는데?”정안은 마음이 급해져 불쑥 진심을 내뱉었다.“난 그때 이미 오빠를 3년 동안 짝사랑했으니까요!”남하준은 멍해졌다. 마치 혈 자리를 눌린 듯 경악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정안의 얼굴이 점점 더 화끈거려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고 작은 소리로 반복했다.“오랫동안 짝사랑했다고요.”남하준은 감격해서 그녀의 두 어깨를 잡고 고개를 숙여 그녀와 마주 보며 눈시울을 약간 붉히고 두 손을 떨었다.“방금 나 짝사랑했다고 했어?”정안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3년 동안 짝사랑했다고?”남하준은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물어봤다.“그러니까 네가 서다인이었을 때, 나를 처음 알았을 때부터 좋아했던 거야?”정안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고백하는 게 이렇게 민망한 일이었다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고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남하준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다.“넌 나 싫어한다고 말한 적도 있어. 근데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정안은 화가 나서 고개를 번쩍 들고 부끄러워 빨개진 얼굴로 그의 붉어진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세상에 어느 여자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아이를 임신해요? 만약 유전자가 좋은 아이를 낳고 싶으면 정자은행에 차고 넘치죠!”“너 참 나쁘다.”남하준은 한마디 속삭이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고 자기 심장에 비벼 넣을 기세로 꼭 껴안았다.정안은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남자의 허리를 껴안고 심하게 뛰는 그의 심장 소리와 뜨거운
“나 사랑하지 않아요?”정안은 화난 척 입술을 삐죽 내밀고 눈살을 찌푸렸다.남하준이 무의식중에 내뱉었다.“사랑해.”“그럼 애교스럽게 여보라고 한 번 부르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차라리 만 번 사랑한다고 말하고 말지.”정안은 웃음이 더욱 짙어져 그의 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그럼 만 번 사랑한다고 말해줘요.”남하준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가로로 안았다.정안이 그의 목을 두르고 긴장한 채 물었다.“왜 또 안아요?”남하준이 진지하게 말했다.“그렇게 길 안 보고 걷다가 넘어지면 속상한 건 나야.”정안은 가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더욱 환하게 웃었다.몸과 마음이 모두 따뜻해져서 구름 위를 밟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꿈만 같은 현실이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했다....금원으로 돌아간 후, 정안이 소파에 앉자마자 지우의 전화가 걸려왔다.그녀는 귓가에 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지우야, 무슨 일이야?”지우가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왜 벌써 갔어? 우리 아직 제대로 얘기도 못 했잖아.”정안이 피식 웃더니 물었다.“태준 오빠한테 안 잡혔어?”“아니. 아직 나 못 잡아. 지금 샤워하러 갔어.”지우가 조곤조곤 말하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실의에 빠진 듯 말했다.“사실 이미 거의 회복했어. 지난 반년 동안 나와 싸우려고 열심히 운동하고 의사도 만나고 재활 치료에 전념했어. 만약 정말 나아진다면 나도 이제 슬슬 떠나야지. 매달 수백만 원의 월급이 적은 돈도 아니고.”“그 정도 돈은 남씨 가문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부담 갖지 마. 오빠가 회복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네 덕이야.”“난 그저 돈 받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지우야, 오빠 눈 회복할 때까지 있어줘.”“사실 이제 내가 돌봐줄 필요가 없어. 눈은 안 보이지만 일상생활에 별로 지장이 없어. 심지어 정상인보다 더 잘한다니까? 밥하고 채소를 써는 것도 손으로 더듬으면서 해.”지우는 감탄하면서 말투에는 존경심과 숭배감이 흘러넘쳤다.“의지력이 아주 강해서 뭐든 잘
유승아가 멀리 가자 남서연은 휴대전화를 들고 커피 두 잔 값을 내고 떠났다.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날짜를 보았다.백씨 가문이 계획한 유승아와 백건의 결혼식은 아직 20여 일 남았다.보아하니 유승아가 급했던 것 같다.남서연은 속으로 생각했다.‘오빠에게 여자친구가 없는 이상 오빠만 나와 결혼하고 싶다면 난 아무 걱정 없이 사랑에 눈이 먼 여자가 될 수 있어. 그 누구의 방해도 소용없다고!’물론 유일하게 용납할 수 없는 건 남자의 배신이었다....저녁 무렵.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남서연은 남우영의 메시지를 받았다.[서연아, 삼촌 명령으로 오늘부터 내가 아니라 삼촌이 네 출퇴근을 책임질 거야.][하지만 건이 오빠는 나와 같은 방향이 아니잖아요.][길은 같은 방향이 아니지만 마음은 같은 방향이잖니?]남서연은 곧장 백건에게 전화를 걸었다.벨이 두 번 울리고 곧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연아.”“오빠, 나 출퇴근 도와줄 필요 없어요. 우영 오빠가 도와주는 게 훨씬 편하죠.”백건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우린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해. 네 일도 바쁘고 나도 바쁜데...”남서연이 곧장 말을 끊었다.“오빠 시간은 소중하잖아요. 일부러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에게는 앞으로 평생의 시간이 있잖아요.”백건은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 정이 깊지 못하여 두 사람의 혼사에 또 변고가 생길까 봐 이렇게 긴장한 것이다.“서연아.”백건이 속삭였다.“네?”“어디야?”“사무실이요.”“우영이가 계속 네 출퇴근을 도와주라고 할게. 하지만 지금은 내가 너 보고 싶어.”남서연이 긴장되어 핸드폰을 보니 오후 5시였다. 그리고 사무실 전체를 둘러보았다.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고 결혼 사탕까지 받은 상황에서 만약 백건이 이 시간에 그녀를 찾는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들통날 것이다.“내려오지 말아요.”남서연은 부랴부랴 일어나 사무실을 나서서 엘리베이터 문으로 향했다.“내가 갈게요.
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유승아는 사탕을 집어 들고 한숨을 내쉬었다.“휴, 이건 모두 아주머니가 나를 위해 준비한 건데. 건이는 자기 편하려고 이걸 바로 네게 갖다 줬네.”남서연 얼굴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유승아는 뒤늦게 반응한 듯 미안한 척 말했다.“미안해, 서연아. 난 그냥 한 말인데. 기분 나쁜 건 아니지?”남서연은 웃음을 짜내어 고개를 가로저었다.“두 사람 백년해로하길 바랄게.”“고마워요.”유승아는 커피를 들고 한 모금 마시며 테이블 위의 사탕을 흘끗 쳐다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오늘은 백건에 대해 얘기하려고 찾아 왔어.”“네. 말씀하세요.”“건이가 왜 너와 결혼하려는지 알아?”“아니요.”“건이가 말 안 해줬어?”“물어본 적 없어요.”“알고 싶지 않아?”남서연은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승아 언니, 나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당연하지. 말해봐.”“절대 내게 그 이유를 알려주지 마세요.”유승아는 멍해졌다.그녀가 밤새도록 생각한 도발적인 말들이 남서연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궁금하지 않아?”“너무 궁금하죠.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빠 입에서 직접 듣고 싶어요.”“건이가 널 속일까 봐 두렵지 않아?”“오빠가 나를 왜 속여요?”남서연이 되묻자 유승아는 기회를 잡고 서둘러 말했다.“왜냐하면...”“잠시만요.”남서연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맑고 순수한 눈동자로 웃으며 말했다.“난 그래도 오빠가 알려주는 버전을 듣고 싶어요. 나를 속인다고 해도 난 오빠만 믿을래요.”유승아는 차갑게 콧방귀를 꼈다.“사랑에 제대로 눈이 멀었네.”“그게 뭐 나쁜가요? 만약 두 사람 모두 제정신이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죠.”유승아는 몸을 기울여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정말 건이가 너를 속일까 봐 두렵지 않아?”남서연도 똑같이 몸을 기울여 목소리를 낮추었다.“설마 오빠가 제 돈을 사기 치려고 해요?”유승아는 안색이 확 굳어졌고 남
2분간의 깊은 키스에 남서연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백건은 아쉬운 듯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떠났고 이마를 맞대고 있는 두 사람의 숨결이 거칠고 어지러웠다.방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남서연은 눈을 내리뜨고 수줍어서 남자의 따스한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나 갈게.”백건이 속삭이자 남서연의 목구멍에서 겨우 단음이 새어 나왔다.“네.”“시간 나면 자주 나 찾아와.”백건이 조곤조곤 말하자 남서연은 조금 멍해졌다.왜 그녀가 찾아가야 할까?“오빠가 나 찾으러 오면 안 돼요?”남서연이 나지막이 묻자 백건이 입술을 오므리고 엷게 웃었다.“안 될 건 없지. 하지만 너희 집에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 네 사무실에는 사람이 더 많고.”남서연은 그제야 남자의 뜻을 알아챘다.단둘이 만나자는 뜻이었다. 그의 사무실로 가든 아니면 그의 집으로 가든.남서연은 부드럽게 응답했다.“네.”백건은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문을 열고 나간 후 문을 닫아주었다.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몰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두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린 채 기분 좋게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끌어안고 한 바퀴 돌았다.그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었다. 백건은 그녀를 좋아한다는 의사를 보인 적도,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할까?‘너와 결혼하고 싶어 미치겠어’라는 백건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이튿날 아침.남서연은 사탕과 과자를 잔뜩 챙겨와서 사무실 동료들에게 나눠주었다.모두 그녀가 나눠준 사탕과 과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서연아, 너희 집 재벌이야? 이렇게 비싼 사탕을 회사 사람들에게 나눠줘?”“이건 사탕 계의 에르메스잖아. 한 알에 몇만 원이야. 그리고 이 견과류 초콜릿 비스킷은 작은 박스에 몇십만 원이야.”“그러게 말이야. 오늘 나눠준 것만 해도 몇백만 원은 되겠어.”남서연은 모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에 든 사탕을 보며 어리둥절했다.“우리 집
남씨 가문은 늘 남서연의 요구를 들어줬다.그녀가 이렇게 얘기하니 다들 웃으며 말했다.“그래. 두 사람이 알아서 해.”“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저씨, 아주머니. 감사드려요.”백건은 미간에 웃음을 머금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남서연은 남자가 기뻐하는 것을 보고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백건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부주의한 틈을 타서 가볍게 주물렀다.백건은 남씨 본가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너무 기뻐 집안 어른들과 술을 몇 잔 더 마시고 술자리에서 어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남서연은 방에 가서 씻고 쉬려고 했다.“술을 마셨으니 운전하지 말고 우리 집에서 묵고 가.”남창민이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말했다.백건이 승낙하려는데 허윤미가 그의 손을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당신 취한 거 아니에요? 건이는 운전기사와 함께 왔어요.”“그래. 내가 깜빡했네.”백건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저도 모르게 남서연의 방을 돌아보았다.술을 몇 잔 마신 남우영이 옆에서 보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삼촌, 서연이가 잠시 떠난 사이에 지금 몇 번째 보고 있는 거예요? 방에 돌아갔으니 다시 나오지 않을 거예요.”백건은 그렇게 호명되니 모든 어른들 앞에서 민망하여 어색하게 웃었다.이에 어른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백건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의 바르게 말했다.“늦었으니 이만 가볼게요. 모두 일찍 쉬세요.”“내가 바래다주마.”남태준이 따라 일어서자 백건이 서둘러 말했다.“괜찮아요. 아저씨.”남태준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백건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설 때 참지 못하고 남서연의 방을 쳐다보았다.남태준이 그의 마음을 간파하고 물었다.“위에 올라가서 서연이랑 인사하고 갈래?”백건의 눈에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설렘이 스치더니 예의 바르게 말했다.“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잘 자라고 인사만 하고 내려올게요.”남태준은 손을 내저었다.“어서 가봐.”백건은 성큼성큼 부엌을 나와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