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반달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진짜 별일 없어요. 나 아직 Z국에 가지 않았고 오빠도 마침 안성에 있으니 더 오래 같이 있으려고 온 거지.”남하준이 진지하게 물었다.“나랑 정이라도 붙일 생각이야?”정안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정들면 그래도 갈 거야?”“가야죠.”남하준은 눈빛이 흐려지더니 정안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한마디 던졌다.“애가 배불러 할 짓이 없네.”정안은 그의 뒤를 따라갔고 두 사람은 거실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배불러 할 짓이 없다니요?”남하준은 앉은 뒤 티테이블의 귤을 들어 껍질을 벗기며 말했다.“꼭 가야 한다면서 왜 굳이 고통을 자초하는 건데?”정안은 더 이상 그와 이 문제를 논의하고 싶지 않아 옆으로 앉아 그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방금 유미 씨 왜 왔어요?”남하준은 까놓은 귤을 정안의 손에 놓았다.정안은 살짝 넋을 잃고 손에 든 귤을 보고 있자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남하준이 느릿느릿 설명했다.“서류도 가져오고 업무도 얘기할 겸.”“무슨 업무요?”정안이 궁금해서 묻고는 귤을 쪼개 한 조각 입에 넣으니 달콤한 식감과 특별한 과일 향이 섞여 아주 맛있었다.남하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보며 침묵을 지켰다.그러자 정안이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비밀이에요?”남하준이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하는 일은 너한테 전부 비밀 사안이야.”정안은 흠칫 놀라더니 얼굴빛이 가라앉았다.한바탕 얻어맞은 것 같아 좀 허탈했다.그녀는 느릿느릿 귤을 씹었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았고 가슴이 답답했다.문득 유미가 방금 한 말이 떠올랐다. 유미와 남하준은 평생의 친구, 평생의 동료, 업무 파트너 또는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난처한 신분은 남하준의 일을 묻는 것조차 군정을 염탐하는 것이 된다.남하준은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가라앉고 천천히 씹는 것을 바라보며 눈빛이 뜨거워지고 덩달아 마음이 가라앉았다.그녀가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세월이 고요해
정안은 기회를 틈타 그에게 기대어 한쪽 발을 그의 허벅지 위로 건너뛰어 그의 허벅지 안에 앉았다.남하준의 몸이 뻣뻣해지고 그녀에게 키스하는 동작을 멈추었다.정안은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고 그의 민감한 위치에 닿을 때까지 엉덩이를 천천히 그의 허리와 복부로 이동했다.순간 벼락이 치듯, 한 기류의 전류가 남하준의 사지를 관통했고 그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굳어지며 어딘가에서 순간적인 반응이 일어났다.남하준은 속으로 질주하는 욕망을 억누르며 그녀의 얼굴을 밀어내고 고통스럽게 인상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유혹 안 한다며?”정안은 얼굴이 새빨개지고 부끄러워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나 그런 적 없는데요?”남하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두 손으로 잡고 천천히 힘껏 내리누르자 두 사람 사이에는 조금의 틈도 없었다.“그럼 이건 뭔데?”눌려 약간의 통증을 느낀 정안은 수줍고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조심하지 않아 부딪힌 거예요.”남하준은 심호흡을 했다. 이대로 참다가는 그녀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미치겠네.”남하준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는데 지키고 있던 선은 이미 끓어오르는 욕망에 무너져 꿈틀거린 지 오래였다.정안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고 입술을 오므렸다.남하준은 그녀의 분홍색 입술을 바라보며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느꼈다. 그녀의 거친 호흡과 심장 기복 그리고 뜨거운 욕망이 불처럼 남하준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그녀가 너무 주동적이어서 남하준이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다.아무리 강한 신념이라도 지금 이 순간 모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정안은 부끄러운 눈을 들어 남자의 뜨거운 시선을 마주 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오빠. 정말 원하지 않아요?”남하준의 목구멍으로 두 글자가 흘러넘쳤다. “원해.”그는 미친 듯이 원하고 있었다. 모든 정력과 욕망을 모두 그녀의 몸에 쏟아내고 싶은심정이었다.얼마나 많은 외로운 밤을 그녀의 생각으로 잠 못 이뤘을까.정안은 거의 다 된 것 같아 두 손으로 천천히 그의 목을 졸랐다. 경험
“근데 콘돔은 왜 안 사용해?”“안전기에요.”“한층 더 보호하면 좋은 거 아니야?”정안은 어쩔 수 없이 창피하지만 계속 핑계를 댔다.“그게... 막이 있어서 불편해요.”남하준은 어리둥절했고 온몸이 경직되어 눈빛 속에 충격을 숨길 수 없었다.정안은 지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궁색하고 난처해 죽을 지경이었다.“이건 네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야.”남하준은 놀라서 손을 떼고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단발머리를 늘어뜨리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숙연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말투가 약간 굳어졌다.“설마 내 아이를 임신하고 싶은 건 아니지?”마음을 들킨 정안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눈빛이 반짝이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감추어야 할지 몰랐다.그녀의 반응은 남하준의 추측을 완전히 확인시켜 주었다.남하준은 경악과 분노에 휩싸여 꾹 참고 뒤로 물러난 뒤 고개를 들고 심호흡을 하며 착잡한 심정이었다.정안이 나지막이 설명했다.“사실 나...”남하준은 화가 나서 온몸이 괴로워 그녀의 말을 바로 끊었다.“요즘 이상하게 자꾸 나 유혹하는 이유가 그거였어? 백완자, 너 참 독하다.”당황한 정안은 긴장하며 연신 사과했다.“미안해요, 오빠.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요. 오빠가 동의하지 않을 걸 아니까 내가 다른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남하준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분노에 눈시울을 붉히고 목소리를 낮추어 화를 냈다.“내가 동의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랬다고?”정안은 주먹을 천천히 쥐며 사실대로 말했다.남하준은 이 아이러니한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그녀를 보는 눈빛에 증오가 깃들었다.“백완자. 난 이미 충분히 비참하다는 생각 안 해? 근데 내 아이를 임신하고 Z국으로 돌아가서 내가 혈육의 이별까지 겪게 해? 내가 더 많은 그리움과 더 많은 고통을 느꼈으면 좋겠어?”정안은 남하준이 그렇게 큰 고통을 느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눈물
남하준은 마음을 추스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말투로 물었다.“완아. 너 나 사랑해서 내 아이를 임신하고 싶고 M국에 머물고 싶은 거야?”정안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 끝이 저릴 정도로 아팠다.남하준은 진지한 눈빛으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너만 남고 싶다면 난 목숨을 걸고 너 보호할 거야. Z국이 아무리 강해도, 내가 있는 한 넌 무조건 안전해. 모든 일은 내가 책임질게.”정안은 눈물을 참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난 오빠가 목숨 거는 것도, Z국과 적이 되는 것도, 오빠 몸이 부서지는 것도 전부 원하지 않아요.’남하준은 점점 뒷걸음질 치는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정안의 어깨를 잡고 허리를 굽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완아, 너도 나 사랑하지?”정안은 눈물을 참고 코를 훌쩍이며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요. 나 Z국으로 돌아가면 일하느라 결혼할 생각 없어요. 그냥 오빠 유전자가 탐나서 아이를 낳고 싶었을 뿐이에요.”남하준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갔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는데 눈가에 눈물이 가득했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정안의 그 말은 수백 개의 화살처럼 그의 심장을 찌르고, 피와 살을 헤집어 피가 뚝뚝 떨어져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그는 웃었다. 우는 것보다 더 못생기게 웃는 그의 눈 밑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분노에 차서 나지막이 화를 냈다.“날 사랑하지 않아도 돼. 근데 왜 그렇게 잔인한 수단으로 나 괴롭히려는 거야?”정안은 눈물범벅이 되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남하준이 소파 가장자리에 가서 방금 떨어뜨린 핸드폰을 주워 정안을 등지자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슴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그는 얼음처럼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난 널 만난 적도, 사랑한 적도 없는 거야. 앞으로 남은 인생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익숙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정안은 마음을 가다듬고 무릎에서 고개를 들어 두 손으로 눈물을 닦고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지윤의 전화인 것을 보고 심호흡을 한 후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귓가에 연결했다.“지윤아.”정안이 부드럽게 입을 열자 지윤이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언니 지금 어디예요?”정안은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 바지의 먼지를 툭툭 털며 말했다.“금원이야.”“내가 주소 하나 보낼 테니까 지금 당장 와요.”지윤은 다급해 보였고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이 섞여 있었다.정안은 그녀가 이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봐서 금원을 뛰쳐나가며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언니 할머니 찾았어요.”정안은 마음이 급해져 더 빨리 뛰었다.“어디야? 할머니 어디 계셔? 주소 보내.”“보낼게요. 근데 마음 단단히 먹어요.”순간 정안은 머릿속이 하얘지고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그녀는 택시를 타고 지윤이 보낸 주소를 따라 외진 교외로 나가 낡은 건물 공사장에 멈춰 섰다.그녀가 공사장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는 이미 경찰차 여러 대가 주차돼 있었고 주변은 폴리스라인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폴리스라인 밖에서 두 명의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이를 본 정안은 더욱 당황했고 공포와 불안이 점점 더 심해지고 발걸음이 무거워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언니!”지윤이 멀리서 그녀를 보고 무거운 표정으로 달려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정안의 손은 차갑고 몸은 가늘게 떨고 있었고 목소리마저 떨리며 긴장해서 물었다.“할머니는?”지윤이 하늘을 가리키자 정안이 고개를 들었다.순간 정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깊이 타들어 가는 공포가 온몸에 번져 눈물이 시야를 흐렸다. 허공에 매달린 할머니를 바라보니 가슴이 칼로 에는 듯 아팠고 너무 아파 미쳐버릴 것 같았다.포승줄에 묶인 할머니는 몸에 폭탄 같은 것을 가지고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할머니를 들어 올린 건 대형 크레인이었다.정안은 경찰 앞에 달려들어 그들의 손을 덥석 잡으며 다급하
“저건 원격 조종 폭탄이에요. 올라가면 죽는다고요!”“아니요. 저 사람들은 나 못 죽여요. 내가 있는 한 절대 폭파하지 못해요. 빨리 알려주세요. 내가 올라가요.”전문가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이거 미친 여자네. 당장 끌고 나가!”정안은 전문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올라가게 해 주세요. 나 정안이에요. 절대 나 죽이지 못한다고요. 빨리 어떻게 제거하는지 알려주세요. 내가 할게요.”전문가들은 생명을 구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녀가 죽음을 무릅쓰는 건 이해하지 못했다.“그쪽이 누구든 당장 폴리스라인 밖으로 물러나세요!”그때 머리 위에서 여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완자야. 우리 완자...”정안이 고개를 번뜩 들었지만 눈물이 그녀의 시야를 흐려 할머니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급히 눈물을 닦고 미소를 지으며 울먹였다.“할머니, 괜찮아요. 내가 할머니 구하러 왔으니까 곧 내려올 수 있어요.”여은수가 웃으며 말했다.“완자야. 할머니가 많이 사랑해. 내가 우리 손녀 아주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정안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나 알아요. 지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우리 집에 돌아가서 얘기해요. 네?”여은수가 큰소리로 외쳤다.“나 네 엄마랑 아빠 만났다. 그리고 한 살짜리 네 동생도 봤고. 완자야. 이 할미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 내가 하늘에서 너희들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지켜주마.”정안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오장육부가 저린 것 같았고 목소리가 떨렸다.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어디 있어요? 할아버지는 어디 계세요?”“국내에 있는 한 별장에 구금됐는데 주소도 모르고 주변도 잘 보이지 않았어.”정안은 할머니의 허약한 몸을 보고는 폭탄 제거 전문가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제발 저 올라가게 해 주세요. 블랙 섀도우 조직이든 백인호든 절대 나 죽이지 못해요. 나 올라가게만 해 주면 내가 할머니 구할 수 있어요.”폭탄 제거 전문가가 경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경찰이 즉시 돌진해 와서 정안을 부
“할머니 괜찮은 거지? 괜찮지?”정안은 고함을 지르며 애간장이 찢어질 듯 울부짖고 애통해하며 두 발이 힘없이 흘러내렸다.지윤은 그녀를 끌어안고 미끄러져 내려갔고 두 사람은 무릎을 꿇은 채 서로를 꼭 껴안았다.정안은 통곡하며 목놓아 울었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할머니가 눈앞에서 죽었는데도 할머니를 구하지 못했으니 자신ㅇ 너무 무능하다고 생각했다.어릴 때부터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할머니가 눈앞에서 사라졌다.시신도 찾을 수 없었다.정안은 두 손으로 가슴팍의 옷을 꽉 움켜쥐고 심장을 짓눌렀지만 따끔거리는 느낌은 점점 강해지고 호흡은 점점 옅어졌다.그녀는 결국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지윤의 품에서 기절할 때까지 울었다.정안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아침이었다.지윤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밤새 그녀를 지켜보다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급히 그녀의 이마를 만지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언니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물 좀 줄까요?”정안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슬픈 기색이 가득했지만 더 이상 울지 않았다.지윤이 또 말을 이었다.“어젯밤에 하준 도련님께서 언니 보러 왔어요. 아침에도 왔다가 이제 막 갔어요.”정안은 유유히 고개를 돌린 채 눈시울을 적시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오빠가 뭐래?”“백인호는 이미 1급 수배범으로 분류되어 전국에서 수배 중이라고 하셨어요.”정안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지윤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도련님께서 언니 옆에 있어 주지 못한다고 서운해하지 마세요. 그쪽에도 지금 일이 많아요.”정안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탓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이미 인연을 끊겠다고 밝힌 남하준이 그녀의 할머니가 사고 난 후 두 번이나 그녀를 보러 왔으니 그 사랑이 깊어 여전히 그녀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말한다.지윤은 그녀가 고개를 가로젓자 무슨 뜻인지 몰라 계속 설명했다.“류청 씨 말 들어보니까, 어제 점심에 정호를 호송하던 죄수 차량이 습격당했고 도로에서 격렬한 총격전과 폭
정안은 화가 나서 온몸이 불편했고 또박또박 소리쳤다.“네가 원하는 건 돈이잖아. 가문의 모든 재산을 주겠다는데 왜 할머니를 죽여? 왜 우리 가족을 모두 해치는 거냐고?”백인호가 피식 웃더니 느릿느릿 말했다. “지금 백씨 가문 돈은 해외로 나갈 수 없어. 난 M국 수배범이고. 나를 이렇게 만든 이상 나도 본때를 보여줘야지 않겠어? 안 그럼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잖아?”정안은 얼굴이 굳어지고 불끈 쥔 주먹이 가늘게 떨리며 가슴에 한이 맺혔다.백인호가 말을 이었다.“나 방금 결혼했어. 아내 이름이 한이서야. 내일부터 이서가 돌아가 모든 재산을 상속받고 그룹 회장직을 맡을 거야. 이서 손에 이미 네 할아버지 임명장과 자산 이전 협의서가 있어. 만약 너희 가족이 하나둘씩 할머니를 따라가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이서가 재산 상속받는 거 막지 마. 남하준이 이 일에 끼어드는 건 더더욱 안 되고. 내가 돈을 손에 넣지 못한다면 네 가족은 잿더미가 될 거야.”정안에게 가족의 안전을 제외한 모든 건 보잘것없었다.그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내 가족들 해치지 않는다면 뭐든 들어줄 수 있어.”백인호가 웃으며 말했다.“좋아. 그럼 경분자도 줘.”“그건 네가 가져도 쓸모없는 물건이야. 나만 그 원리와 사용법을 알고 있어.”“하지만 내가 팔 수는 있잖아? 1g에 1조억 원. 이건 천문학적 수치야.”정안이 코웃음을 쳤다.“욕심이 끝도 없네.”그러자 백인호가 명령했다.“내일 경분자 48g을 이서에게 건네.”“좋아.”말을 마친 정안은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옆으로 던졌다.지윤이 눈을 부릅뜨고 긴장된 표정으로 정안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정안이 그녀의 걱정을 눈치채고 그녀의 손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이 세상에서 진짜 경분자를 연구해 본 사람은 나 말고 군전 그룹의 그 노교수들뿐이야.”지윤이 지난번 군전 그룹 폭발 사건을 떠올리니 바로 그 교수들이 2g 경분자 연구에 실패했었다.그녀는 순간 정안의 뜻을 이해했다. “설마 백인호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