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괜찮은 거지? 괜찮지?”정안은 고함을 지르며 애간장이 찢어질 듯 울부짖고 애통해하며 두 발이 힘없이 흘러내렸다.지윤은 그녀를 끌어안고 미끄러져 내려갔고 두 사람은 무릎을 꿇은 채 서로를 꼭 껴안았다.정안은 통곡하며 목놓아 울었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할머니가 눈앞에서 죽었는데도 할머니를 구하지 못했으니 자신ㅇ 너무 무능하다고 생각했다.어릴 때부터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할머니가 눈앞에서 사라졌다.시신도 찾을 수 없었다.정안은 두 손으로 가슴팍의 옷을 꽉 움켜쥐고 심장을 짓눌렀지만 따끔거리는 느낌은 점점 강해지고 호흡은 점점 옅어졌다.그녀는 결국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지윤의 품에서 기절할 때까지 울었다.정안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아침이었다.지윤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밤새 그녀를 지켜보다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급히 그녀의 이마를 만지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언니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물 좀 줄까요?”정안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슬픈 기색이 가득했지만 더 이상 울지 않았다.지윤이 또 말을 이었다.“어젯밤에 하준 도련님께서 언니 보러 왔어요. 아침에도 왔다가 이제 막 갔어요.”정안은 유유히 고개를 돌린 채 눈시울을 적시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오빠가 뭐래?”“백인호는 이미 1급 수배범으로 분류되어 전국에서 수배 중이라고 하셨어요.”정안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지윤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도련님께서 언니 옆에 있어 주지 못한다고 서운해하지 마세요. 그쪽에도 지금 일이 많아요.”정안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탓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이미 인연을 끊겠다고 밝힌 남하준이 그녀의 할머니가 사고 난 후 두 번이나 그녀를 보러 왔으니 그 사랑이 깊어 여전히 그녀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말한다.지윤은 그녀가 고개를 가로젓자 무슨 뜻인지 몰라 계속 설명했다.“류청 씨 말 들어보니까, 어제 점심에 정호를 호송하던 죄수 차량이 습격당했고 도로에서 격렬한 총격전과 폭
정안은 화가 나서 온몸이 불편했고 또박또박 소리쳤다.“네가 원하는 건 돈이잖아. 가문의 모든 재산을 주겠다는데 왜 할머니를 죽여? 왜 우리 가족을 모두 해치는 거냐고?”백인호가 피식 웃더니 느릿느릿 말했다. “지금 백씨 가문 돈은 해외로 나갈 수 없어. 난 M국 수배범이고. 나를 이렇게 만든 이상 나도 본때를 보여줘야지 않겠어? 안 그럼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잖아?”정안은 얼굴이 굳어지고 불끈 쥔 주먹이 가늘게 떨리며 가슴에 한이 맺혔다.백인호가 말을 이었다.“나 방금 결혼했어. 아내 이름이 한이서야. 내일부터 이서가 돌아가 모든 재산을 상속받고 그룹 회장직을 맡을 거야. 이서 손에 이미 네 할아버지 임명장과 자산 이전 협의서가 있어. 만약 너희 가족이 하나둘씩 할머니를 따라가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이서가 재산 상속받는 거 막지 마. 남하준이 이 일에 끼어드는 건 더더욱 안 되고. 내가 돈을 손에 넣지 못한다면 네 가족은 잿더미가 될 거야.”정안에게 가족의 안전을 제외한 모든 건 보잘것없었다.그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내 가족들 해치지 않는다면 뭐든 들어줄 수 있어.”백인호가 웃으며 말했다.“좋아. 그럼 경분자도 줘.”“그건 네가 가져도 쓸모없는 물건이야. 나만 그 원리와 사용법을 알고 있어.”“하지만 내가 팔 수는 있잖아? 1g에 1조억 원. 이건 천문학적 수치야.”정안이 코웃음을 쳤다.“욕심이 끝도 없네.”그러자 백인호가 명령했다.“내일 경분자 48g을 이서에게 건네.”“좋아.”말을 마친 정안은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옆으로 던졌다.지윤이 눈을 부릅뜨고 긴장된 표정으로 정안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정안이 그녀의 걱정을 눈치채고 그녀의 손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이 세상에서 진짜 경분자를 연구해 본 사람은 나 말고 군전 그룹의 그 노교수들뿐이야.”지윤이 지난번 군전 그룹 폭발 사건을 떠올리니 바로 그 교수들이 2g 경분자 연구에 실패했었다.그녀는 순간 정안의 뜻을 이해했다. “설마 백인호
연결음이 막 들려오자 정안은 갑자기 전화를 끊더니 휴대전화를 지윤에게 넘겼다.“전화 안 해요?”지윤이 의문스러워 묻자 정안은 시무룩해서 말했다.“오빠는 지금 나 만나고 싶지도 않고 나랑 연락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네가 말해줘.”“그럴 리가요?”지윤이 경악해서 말하자 정안은 말없이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다가 머리까지 덮고 슬픈 마음으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지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남하준의 전화가 걸려왔다.그녀는 곧바로 귓가에 대고 바로 자신임을 밝혔다.“도련님, 저 지윤이에요.”남하준이 흠칫 놀라더니 물었다.“완이 깼어요?”“네.”“몸은 좀 어때요?”“괜찮아요. 다만 아직 많이 슬퍼해요.”“나한테 무슨 일로 전화했죠?”지윤은 이불을 덮은 정안을 흘끗 보고는 말했다.“언니가 도련님 연구팀에 스파이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어요.”“알고 있어요.”“네? 알고 계신다고요?”“가짜 백하린 정체가 탄로 난 뒤부터 계속 조사하고 있었어요.”지윤은 입술을 오므리고 웃더니 탄복하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피어났다.“언니랑 통화하시겠어요?”남하준이 침묵하자 지윤은 분위기가 조금 이상함을 감지했다.그때 남하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잘 돌봐주세요.”지윤은 정말 이해가 안 갔다. 남하준은 분명 정안을 그렇게 걱정하면서 왜 갑자기 냉담한 태도를 보일까?정안의 가족이 세상을 떠나서 위로가 가장 필요한 지금 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행동할까?지윤은 별말 없이 간단히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정안은 이불 속에 숨으니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할머니의 별세도 슬프고 남하준이 고한 이별도 더욱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다음날 점심.정안은 백인호의 아내 한이서를 만났다.생김새는 평범하지만 세련되고 야무진 여자였다.그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그룹에 들어가 회장직을 인수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신원과 가업 승계를 위한 서류를 발표했다.그날의 인기 검색어는 모두 백가의 뉴스였다.백완자가 Z국 출신이라 재산을 상속
지윤은 너무 궁금했다. 정안과 남하준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어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남녀 간의 감정이란 두 사람의 일이지 외부인이 도와줄 수 없었다.정안과 지윤은 호텔에 투숙했고 그 후 며칠 동안 여은수의 장례를 치렀다.호상이 아닌 데다 가족들이 모두 곁에 없어 정안은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고 환경이 아름다운 묘지를 찾아 할머니의 약간 남은 유골을 묻었다.정안은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뉴스도 보지 않고 그룹의 동태도 살피지 않고 매일 호텔에 숨어 마음을 다스렸다.그녀는 M국 지도를 보며 백인호가 그녀의 가족을 어디에 가뒀을 지 연구하기 시작했다.저녁 무렵.지윤이 호텔 로비의 음식을 들고 방으로 돌아와 안쓰러워하며 말했다.“언니, 뭐 좀 먹어요. 요 며칠 동안 잘 먹지 못해서 살이 빠졌어요.”“배 안 고파.”정안은 티테이블에 엎드려 지도 연구에 몰두했다. 각 지역을 백인호의 상황과 비교하며 그의 은신처를 추측했다.지윤은 음식을 그녀의 앞에 내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래도 좀 먹어야죠.”정안이 고개를 들어 긴장된 표정으로 지윤을 바라보며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너 혹시 백씨 별장에 도청 장치 설치하지 않았어?”지윤이 탄식했다.“설치했죠. 근데 이미 모두 신호가 끊겼어요.”정안은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가 끓어올랐다.‘역시 1급 범죄자다워. 반 수사 능력이 대단하군.’“그럼 한이서에게 24시간 미행은 붙였어?”지윤이 듣자마자 웃었다.“언니, 하준 도련님 부하가 이미 한이서를 몰래 미행하고 있고, 제 사람들도 뒤를 밟고 있어요. 한이서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니까 백인호를 만나기만 하면 우린 잡을 수 있어요.”정안은 지도를 내려놓고 일어서서 지윤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았다.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지윤아. 네가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지윤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난 언니 사람이에요. 원하는 건 명령만 하세요. 부탁할 필요 없어요.”정안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지윤의 달콤한 얼굴을 바라보며 속삭였
인기척이 없는 깊은 밤, 유원의 불은 여전히 환하게 빛났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유미가 소파에 누워 있는 유동진을 보니 얼굴이 빨갛고 술기운이 돌았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불쾌해서 물었다.“한밤중에 웬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유동진이 덤덤하게 웃었다.“어쩔 수 없었어. 하준이 취하게 하려면 마셔야지.”유미가 그의 곁에 다가가 앉더니 물었다.“왜 하준이 취하게 하는데?”유동진이 고개를 들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약간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오늘 백완자가 나 찾아왔었어. 글쎄 남하준을 원한다고 하지 뭐야.”유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동진은 바보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나 처음에는 하준이한테 프러포즈하겠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근데 두 사람 반년 넘게 부부 생활을 했는데도 깨끗한 몸이라니 너무 충격적이었어. 나...”유미가 일어나서 급하게 밖으로 나가자 유동진이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가며 그녀를 낚아챘다.“어디 가려고?”유미가 소리쳤다.“하준이 구하러 가야지!”유동진은 취기가 좀 가시더니 소리쳤다.“구하긴 뭘 구해?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네가 왜 끼어들어?”유미는 눈이 빨개져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누가 서로 사랑한대? 백완자는 앞으로 Z국으로 돌아가서 살 거라고. 하준이 옆에 있지 않아. 하준이가 사랑했던 사람은 예전에 그 첫사랑이지 지금 그 이기적인 여자가 아니라고!”“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준이가 누구를 좋아하든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정신 좀 차려!”유미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두 사람 이미 깨끗하게 끝났어. 보름 넘게 연락하지 않았다고. 하준이가 이미 그 여자 포기하기로 했는데 왜 그 나쁜 여자를 도와 하준이를 해치려는 거야?”유동진은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내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두 사람 보름 넘게 연락 안 한 거 네가 어떻게 알아? 하준이 사람 매수했니?”유미는 유동진의 손을 홱 뿌리치고 소리쳤다.“이거 놔! 나 하준이 구하러
새벽 두 시.금원 2층 한 곳의 불빛이 아직 켜져 있었다.정안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술 취한 남자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그의 피부는 알코올로 인해 붉어졌고 각진 이목구비는 뚜렷하고 깊고 아름다우며 강인했다.그녀는 내일 떠나야 하므로 이렇게 비열한 수단을 써서 유동진에게 그를 취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정안은 내일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고 두 사람이 서로 낯선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픔을 참을 수 없어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볼을 만졌다.이미 세 시간 동안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그의 잘생긴 외모를 보니 평생 봐도 모자랄 것 같았다.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녀는 오히려 망설이고 있었다.만약 그녀가 정말 남하준의 아이를 임신해서 돌아올 수 없다면 남하준은 평생 그녀를 미워하지 않을까?정안은 눈물을 닦고 그의 귓가에 몸을 기대어 중얼거렸다“오빠. 정신 좀 차려봐요.”남하준은 귀가 간질간질하여 머리를 약간 움직였다.정안은 그가 반응하는 것을 보고 천천히 그의 입술에 키스하고 눈을 감고 천천히 깊이 들어갔다.남하준이 붉은 눈을 뜨고 취기에 빠져 깜빡이자 정안의 흐릿한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낚아채서 키스를 받았다.정안은 그의 몸 위로 올라가 그의 품에 안겨 깊은 키스를 나눴다.남자는 취기를 머금은 채 꿈결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키스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몸의 감각은 꿈보다 더 진실하고 여자의 피부는 뜨거웠다.그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남하준은 몸을 돌려 정안을 품에 안은 채 두 손으로 침대를 짚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는 의식이 약간 흐리멍덩했지만 여전히 매우 이성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억제하며 담담하게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정안은 그가 이렇게 이성적으로 말하는 것을 듣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이번에도 실패한 것 같았다.정안은 울먹이며 말했다.“오빠, 나 내일 가는데 우리에게 진짜 미래가 없는 거예요?”남하준
남하준은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이런 일을 결정할 수 있을까?성은 동물의 본능이며 매번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정안은 서서히 일어나 눈물을 닦고 마지막으로 노력해도 또 실패하면 남하준을 완전히 포기하고 Z국으로 돌아가 과학 연구를 계속하려 했다.가족은 M국 정부와 Z국 정부에게 맡겨 찾도록 하고 그녀는 이번 생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정안이 묶은 포니테일을 풀어헤치자 긴 생머리가 순식간에 어깨 위로 떨어졌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옷의 단추를 천천히 풀고 입고 있던 옷을 하나하나 벗었다.수줍음으로 인해 온몸의 하얀 피부가 빨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호흡마저 흐트러졌다.그녀는 남하준이 전에 했던 말을 기억했다. 네가 내 앞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어도 눈길도 주지 않고 만지지도 않겠다던 말.만약 정말 그녀를 만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녀에 대한 감정이 없는 것이다.정안이 서서히 손을 뻗어 남자의 얼굴에 닿았다.남하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핏발 선 눈을 떴다.순간 그는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얼어붙어 그녀의 순백의 몸을 바라보았다.그의 겉모습은 평온하고 애써 침착해 보였지만 가슴은 이미 벅차오르는 욕망에 파묻혀버렸다.정신을 차린 남하준은 쩔쩔매며 황급히 이불을 집어 들고 그녀의 몸을 감쌌다.“백완자. 너 진짜 미쳤어?”“맞아요. 나 미쳤어요.”정안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용기를 내어 그의 목을 감싼 채 입을 맞추었다.이번에 남하준은 반항할 생각도 없어졌고 몸은 이미 그의 통제를 벗어났다.그녀가 키스하도록 내버려 두었고 정안이 그를 아래로 누르자 따라서 누웠다.남자의 키스가 점점 더 뜨거워졌고 정안은 남자의 손을 잡고 천천히 자신의 몸을 만졌다.일촉즉발의 욕망이 그의 모든 이성을 잠식했다.남자는 미쳐가고, 절박해지고, 몸을 뒤척이며, 그녀의 입술에 미친 듯이 키스했다. 그녀의 얼굴, 목, 심지어 더 아래로... 그는 모든 옷을 벗고 요 몇 년 동안 억눌렀던 정욕을 마음껏 발산했다.
Z국.정안이 몰래 돌아오자 국가지도자는 감격에 겨워 직접 접대했다.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안이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그녀의 사직서는 몇 차례 완곡하게 거절당했고 또 여러 명의 지도원을 보내 정안과 대화하며 사상 개도 작업을 했다.지윤이 귀국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 연구소는 정안의 일상생활을 돌볼 새로운 조수를 배치했다.정안은 매일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었지만 더 많은 시간을 떠나기 위한 준비에 매진했다. 그녀는 국가에 제출할 경분자에 관한 연구를 모두 데이터 보고서로 작성했다.한 달 뒤.아침 7시, 정안은 잠에서 깨자마자 괴로워서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그녀는 속이 심하게 울렁거렸고 토해도 아무것도 뱉지 못했으며 그저 헛구역질만 했다.한바탕 토한 후, 정안은 물을 내리자마자 방으로 달려가 금고를 열었다.금고에는 중요한 서류를 보관하는 것 외에도 십여 장의 조기 임신 테스트지가 있었다.그중 몇 장은 이미 써봤고 매일 기대했지만 모두 음성으로 나와 그녀는 번번이 실패하면서 방황하며 지냈다.매일 마음이 초조했다.그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갔다.세면대 옆에 서서 손에 들고 있는 테스트지를 보고 목이 메는 것을 느꼈다.테스트지는 선명한 빨간색에서 시작하여 점차 변했고 마지막으로 두 번째 줄도 천천히 나타났다.두 개의 줄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 정안은 감격에 겨워 입을 가리고 눈시울을 붉히며 심장이 계속 쿵쾅쿵쾅 뛰었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정안은 남하준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M국으로 돌아가 직접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오빠, 나 임신했어요!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요!’정안은 화장실을 나와 방의 전화기를 집어 들더니 잠시 후 멍해졌다.과학 연구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전화기는 도청되고 있었다.그녀는 감히 전화하지 못하고 전화기를 천천히 내려놓자 또 속이 울렁거려 다시 입을 가리고 화장실로 뛰어들었다.“우웩!”구역질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이번에는 시큼한 물을 뱉었는데 계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