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속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알고 보니 그는 이렇게도 예민했다.‘이 정도로 벌써 못 견디겠다는 거야?’남하준이 다정하게 물었다.“완아, 먼저 나가줄래? 입구에서 나 기다려.”“아!”정안은 고개를 푹 숙이고 웃음을 참으며 일어나 담담하게 욕실을 나섰다.문을 닫는 순간.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부끄러워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보같이 웃었다.방금 장면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그녀가 자신의 손을 보니 더욱 부끄러웠다. 대체 방금 어디서 나온 용기로 덥석 잡았을까?정안은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며 침대로 달려들어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까지 덮었다.머릿속의 어지러운 것들을 감싸기에는 그 수위가 너무 높았다.저도 모르게 계속 회상하고 있었다.침대 위에는 아직도 남하준의 은은한 향기가 남아 있었다.정안은 자신이 뭐에 씌웠다고 생각했다.남하준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그녀도 들어가 샤워를 했고, 그녀가 다시 나오고 보니 남하준은 이미 잠들었다.그가 자는 척하는 건지, 정말 피곤한 건지 몰라 그녀는 그의 옆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조용히 그를 지켰다.그 후로 며칠 동안 정안은 남자에게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 생활상의 일도 걱정할 필요 없고 집안일도 할 필요 없이 그저 남하준의 곁을 지켰다.그의 몸은 아주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정신상태가 눈에 띄게 맑아지고 체력과 에너지가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나흘째가 되자 그는 유산소 조깅, 팔굽혀펴기, 복싱 등 운동을 시작했다.정안은 예전과 다름없이 운동을 싫어하며 자고 싶을 때까지 잤다.그녀가 깨어나고 보니 침대 반대쪽이 또 텅 비어 있었다.그녀는 긴 머리를 손으로 빗고 나른한 걸음으로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다.세수와 양치질을 한 후, 다시 드레스룸으로 가서 꽃무늬 원피스를 가져와 입었다.그녀는 간단하게 치장을 하고 남하준이 정원 앞에서 조깅을 하는지 보려고 베란다 밖으로 나가 두리번거렸다.하지만 남하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철문 밖에 낯익은 모습
정안은 뒤에 있는 유미에게 그녀가 남하준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입을 맞춘 후, 그녀는 수줍게 천천히 남자의 입술을 떠났다.유미는 상황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남하준이 정안의 뒤통수를 낚아채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품으로 확 끌어당겨 강하게 키스했다.이번에는 정안이 어리둥절했다.그녀의 몸은 남자의 탄탄하고 넓은 가슴에 달라붙어 있어 두 사람은 빈틈없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마치 이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유미는 얼음처럼 차갑고 노기를 띤 얼굴로 홱 돌아섰다.정안의 두 손은 남자의 가슴에 댄 채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하나도 없이 남자의 키스를 받았다.그의 강력한 힘은 그녀의 몸을 단단히 잠그고 강렬한 키스는 침투적이고 다급하고 거칠었으며 그녀의 입과 혀를 빨며 중독된 듯 그 속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어 보였다.그에 비해 방금 정안의 키스가 얼마나 단순했는지 모른다.걸터앉은 자세가 야릇하게 밀착되어 있어 남자의 신체 반응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그건 강렬하고 무서웠다.그녀는 가슴이 세차게 뛰고 온몸이 뜨거워지고 산소가 부족한 듯 호흡이 흐트러졌다.슬픔에 잠긴 깊은 키스는 정안이 숨이 막힐 것 같아 그를 살짝 밀치고 나서야 천천히 풀렸다.두 사람은 여전히 이마를 맞대고 눈을 살짝 감은 채 숨을 헐떡이며 뜨거운 숨결을 나누고 있었다.“네가 먼저 키스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남하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극도로 낮았고 마치 목구멍에서 바로 삐져나온 듯 금욕적이고 매혹적이었다.정안은 여전히 소용돌이치는 뜨거운 기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키스였고 지금도 발끝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떠다니는 느낌이었다.그녀의 나른한 몸은 약간 뜨거웠고 아랫배에서 낯선 공허함이 밀려와 처음으로 신체적 갈망을 느꼈다.“오빠.”정안은 부끄러운 듯 중얼거리며 그의 양어깨에 손을 얹고 어떻게 자기 생각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응?”그가 나지막한 콧소리로 대답하자 그녀가 수줍게
갓 샤워를 마친 남자는 촉촉한 단발머리에 상쾌하고 잘생긴 얼굴을 하고 탄탄한 가슴 근육과 매혹적인 라인이 그려낸 좁은 허리로 치명적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그와 반 미터 떨어진 정안은 자신의 호흡 속에 전부 남자의 은은한 바디워시 향기가 가득한 걸 느꼈다.여러 번 보아도 그의 몸을 볼 때마다 정안은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그녀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짐짓 덤덤하게 물었다.“오빠 왜 아침부터 샤워해요?”남하준은 가볍게 기침하며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아침에 뛰어서 땀을 많이 흘렸어.”말을 마친 그는 정안의 곁을 지나 옷방으로 들어가 머리를 닦은 수건을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정안이 따라 들어가 거울에 등을 기대고 여전히 그의 몸매를 훑어보았다.남자는 옷장에서 옷 한 벌을 꺼내고는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안 나가?”정안은 장난스럽게 입술을 오므리고 분명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덤덤하게 물었다.“내가 보면 안 되나?”남하준은 피식 웃었다. 눈 밑에 언뜻 수줍은 기색이 스치더니 한 손을 정안의 뒤에 있는 거울에 기대어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내려다보았다.정안은 반짝이는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그녀의 이 청순하지만 유혹적인 눈빛은 남하준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이었다.“보고 싶어?”남하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정안이 곧장 고개를 끄덕이자 남하준은 움찔했다.“너 언제부터 이렇게 변태적으로 변한 거야?”남하준은 가볍게 웃으며 덤덤한 척 물었다.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뺨에 뿜어져 나오자 정안은 긴장하여 입술을 오므리고 심호흡을 하더니 용기를 내어 그의 두툼한 어깨에 한 손을 살짝 얹었다.남하준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녀는 뼈가 없는 듯한 부드러운 손바닥을 아래로 내려 그의 차가운 피부를 쓸어 넘기고, 탄탄한 가슴 근육을 만지고, 결이 고운 복근을 따라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남하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막 끝낸 찬물 샤워가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
정안은 억지로 미소지으며 짐짓 괜찮은 척했다.“아니에요. 나가볼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남하준 곁을 재빨리 스쳐지나 옷방을 뛰쳐나와 방을 나갔다.남하준은 뒤돌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정안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분명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왜 자꾸 그를 유혹할까?그의 머릿속에 언뜻 정안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돌아온다면 계속 부부로 지내자고 했던.남하준은 거울을 두 손으로 받치고 눈을 감고 머리를 숙여 심호흡을 하니 심장이 아련하게 아려왔다.그는 모든 국가의 정치적 수단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정안은 아직 5년 계약이 남아 있으니 Z국은 절대 그녀를 M국에 머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5년이든 15년이든, 그는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다.단지 미래의 그녀는 여전히 지금과 같은 마음일까? 여전히 그와 부부가 되고 싶어 할까?그는 정안이 그와 계속 부부로 살자고 한 것이 그냥 해 본 말인지, 아니면 그가 남편감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해 시집가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어쨌든 결혼하기 전에는 절대 사리사욕을 위해 그녀를 탐할 수 없었다. 그녀와의 잠자리는 더더욱.그는 정안이 나중에 이것 때문에 후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거실에서 정안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시무룩하게 책을 보고 있었는데 머리가 복잡해 손에 든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위층의 남하준만 생각했다.그때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정안이 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보니, 검은색 슈트를 입은 남하준이 우아하고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장군의 포스는 슈트에 의해 묻히지 않고 오히려 더 화려하게 빛났다.정안은 좋아하는 남자가 이렇게 멋있는 걸 보니 가슴이 마구 나대기 시작했다.“오빠 어디 가요?”정안은 소파에 무릎을 꿇고 소파 등에 손을 엎드려 물었다.남하준은 소매 단추를 조절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따듯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외국 부총리가 방문해서 국빈 연회가 있
뚜뚜.핸드폰이 두 번 울렸다.정안이 울적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 열어보니 지우가 보낸 계좌이체였다.지우가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갚는 것을 보고 또 마음이 아팠다.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지우가 여전히 열심히 사는 걸 보면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서다인의 신분이 없었다면 그녀는 평생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사는 친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평범한 학력, 평범한 일자리, 내세울 만한 가정 배경도 없고 부모의 도움도 없이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두 손에 운명이 달린 사람.아버지가 암에 걸려 전 재산을 털어 병을 치료하는 바람에 집안은 가난해지고 정안에게 수천만 원의 빚을 졌다.이 돈은 정안에게 언급할 가치도 없이 적은 돈이라 갚을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지우는 기어코 갚겠다고 고집했다.그건 그녀의 자존심이고, 신용이고, 진심이라 생각했다.정안은 열심히 사는 이 친구를 생각하니 마음이 좀 불편해져서 휴대폰을 들고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연결음이 몇 번 울리더니 지우가 목소리를 낮추어 전화를 받았다.“완자야, 왜?”정안이 웃으며 말했다.“돈 받았어. 이렇게 급하게 갚지 않아도 돼. 너 여유로워지면 갚아.”“설마 돈이 적다고 무시하는 거임?”“그런 뜻 아니란 거 알잖아.”“알아. 넌 내가 안 갚길 원하잖아. 하지만 난 네가 자선 화가 지완이라서, M국 갑부의 손녀라서 너랑 친구가 된 게 아니야. 내 맘 알아?”“알겠어.”“나 지금 알바 중. 먼저 끊는다.”정안이 급히 물었다.“어디서 알바해?”“오늘 휴식이라 강변에서 노점상으로 수공예품 팔아.”정안이 생각하더니 말했다.“주소 좀 줘봐. 나도 노점상에서 수공예품 파는 거 체험해보고 싶어.”“그래. 주소 줄게.”지우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고 정안에게 주소를 보냈다.정안은 집으로 돌아가 가방과 휴대폰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그녀는 콜택시에 앉아 창문을 열고 두 손을 창가에 얹고 턱을 팔에 얹은 채 조용히 길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길가의 건물이 한 프레임씩 스쳐
남하준은 2초간 침묵하더니 정안이 그의 교통사고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지 않고긴장해 하며 물었다.“너 외출했어?”정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네. 지우 만나러 가다가 마침 봤어요.”“경호원은 데리고 나왔어? 지윤 씨도 같이 나왔고?”그의 말투가 점점 진지해졌다.“아니요. 저 혼자요.”남하준이 다급하게 물었다.“주소 줘. 사람 보낼게.”정안은 다시 침묵했다. 남하준은 그녀의 물음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남하준의 교통사고를 걱정하고 있는데 그는 교통사고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그녀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었다.“괜찮아요. 잠깐 친구 만나러 가는 거예요.”정안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를 속일 수밖에 없었다. “이따가 지윤이도 올 거예요.”남하준은 엄숙하지만 아주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앞으로 외출하려면 꼭 나한테 말해. 절대 혼자 나가지 말고 경호원과 같이 나가고. 알겠어?”정안은 잘못해서 혼나는 아이처럼 중얼거렸다.“알겠어요. 그럼 오빠는요?”남하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그제야 자기 일을 말했다.“방금 추돌사고가 있었는데 별일 아니야.”“안 다쳤죠?”정안이 걱정스레 물었다.“안 다쳤어.”정안은 방금 유미와 그가 손을 잡는 모습이 생각나 왠지 질투심이 생겨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잠시 우물쭈물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옆에서 유미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가 들려왔다.“젼형적인 어장관리네. 너 이렇게 걱정하면서 언제 너 낚아 올린대?”그 말을 들은 정안은 가슴 전체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그녀가 언제 남하준을 어장 안의 물고기로 여겼다고.유미는 또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었다.정안은 심호흡을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옆에서 파리처럼 앵앵거리는 사람 유미 씨에요?”남하준은 의문스러워서 하며 물었다.“들렸어?”정안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물었다.“내가 듣는 거 싫어요?”“그 말이 아니야.”정안은 마음이 더욱 무거워져 짜증스
정안은 화가 나서 온몸이 쑤셨다. 남하준 같은 대쪽 같은 남자 옆에 여우 같은 여자가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형제 같은 감정이라니?유미는 분명 남하준에게 딴마음을 품고 있는데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인가?전화를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하준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고 끊어버렸다.그의 전화가 다시 걸려오자 정안은 문자 한 통을 보냈다.“배터리 없어요.”그러고 나서 그녀는 전원을 껐다.차량이 강변에 도착하자 넓은 도로에 아름다운 상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고 강변에는 많은 관광객이 왕래하고 있었다.정안은 계속 위로 올라가서 인파를 뚫고 걸어가다 보니 끝에 있는 지우가 보였다.지우의 작은 노점상에는 다양한 상품들이 놓여 있었는데 종류가 많고 가격이 저렴했다.모두 매우 평범한 공예품, 작은 장식품과 머리 장신구 등등이었다.“완자!”지우는 정안을 보자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신이 나서 낮은 의자에서 일어나 정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정안도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그녀의 앞에 진열된 상품을 내려다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렸다.이거 다 팔아도 20만 원도 안 될 것 같았다.지우는 정안을 끌어당겨 유일한 낮은 의자에 그녀를 앉히고 자신은 쪼그리고 앉아 정안을 보며 낙관적으로 말했다.“오늘 사람 많아서 아까 엄청 바빴잖아. 그래서 너랑 길게 얘기 못 했어.”“아주 바빠?”정안이 안쓰러워하며 다정하게 물었다.“바쁠 때도 있고. 손님이 몰리면 잠깐 바쁘다가 또 없으면 그냥 앉아있지 뭐.”정안은 지우의 손을 잡더니 물었다.“오늘 얼마 벌었는데?”지우는 감격스러운 눈빛을 하고 흐뭇하게 말했다.“아침 내내 4만 원 벌었어. 만약 저녁까지 기다린다면 10만 원 넘을 수 있을 것 같아!”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마음이 씁쓸했다.지우가 또 말했다.“너 저녁에 집 가지 마. 내가 국수 사줄게.”그때 한 손님이 다가와 유리구슬 팔찌를 집어 들며 물었다.“이거 얼마예요?”지우는 벌떡 일어서서 환하게
잠시 후 정안은 봉투 하나와 간이 테이블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지우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정안은 테이블을 펴고 봉투에서 A4 용지 한 묶음, 붓과 먹을 꺼냈다.그녀는 백지에 몇 글자를 써서 노점상에 붙였다.[2만 원 이상 구매 시 수묵화 그림 한 장 증정!]정안이 먹을 갈기 시작하자 지우가 좌우를 살피며 말렸다.“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야. 평소 명화 같은 거엔 관심이 없어서 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정안은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지완의 공식 계정에 로그인하여 게시물 하나를 올렸다.[친구를 위해 물건 파는 중. 2만 원 이상 구매 시 그림 무료로 증정.]정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싱글벙글 웃으며 지우를 보았다.“기다려봐.”지우는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정안의 곁에 쪼그리고 앉아 조금 불안했다.“네 그림이 얼마나 비싼데 여기 노점상 전체 상품을 합해도 네 그림 가격 천만 분의 일도 안 돼. 네가 네 몸값 낮춰 가며 나 도와주면 나 엄청 죄책감 느낄 거야.”정안은 A4 용지를 휙휙 저으며 말했다.“나 원래 자선 목적으로 그림 그렸어. 널 돕는 것도 일종의 자선이야. 그리고 이렇게 작은 종이에 그리는 그림은 별로 가치도 없어.”지우는 반신반의했다.정안은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30분 후, 그들의 노점상 앞에 십여 대의 고급차량이 세워졌다.노점상 앞에 줄을 서서 그림을 기다리는 남자들은 모두 양복 차림에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이 거리의 품격과 어울리지 않았다.온 사람들은 수집가이거나 회사 대표들의 비서였다.“여기 있는 상품 전부 살 테니 지완 씨 그림에 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이것은 모든 호기로운 손님들의 요구였다.그러면 정안이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서명이나 사진은 안 됩니다.”그녀는 일단 그녀가 서명하거나 그림과 사진을 찍으면 이 그림은 물이 불어나서 몇백만 원 이상의 가격에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되면 그녀가 지우를 도우려는 원래 취지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