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억지로 미소지으며 짐짓 괜찮은 척했다.“아니에요. 나가볼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남하준 곁을 재빨리 스쳐지나 옷방을 뛰쳐나와 방을 나갔다.남하준은 뒤돌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정안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분명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왜 자꾸 그를 유혹할까?그의 머릿속에 언뜻 정안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돌아온다면 계속 부부로 지내자고 했던.남하준은 거울을 두 손으로 받치고 눈을 감고 머리를 숙여 심호흡을 하니 심장이 아련하게 아려왔다.그는 모든 국가의 정치적 수단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정안은 아직 5년 계약이 남아 있으니 Z국은 절대 그녀를 M국에 머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5년이든 15년이든, 그는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다.단지 미래의 그녀는 여전히 지금과 같은 마음일까? 여전히 그와 부부가 되고 싶어 할까?그는 정안이 그와 계속 부부로 살자고 한 것이 그냥 해 본 말인지, 아니면 그가 남편감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해 시집가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어쨌든 결혼하기 전에는 절대 사리사욕을 위해 그녀를 탐할 수 없었다. 그녀와의 잠자리는 더더욱.그는 정안이 나중에 이것 때문에 후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거실에서 정안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시무룩하게 책을 보고 있었는데 머리가 복잡해 손에 든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위층의 남하준만 생각했다.그때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정안이 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보니, 검은색 슈트를 입은 남하준이 우아하고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장군의 포스는 슈트에 의해 묻히지 않고 오히려 더 화려하게 빛났다.정안은 좋아하는 남자가 이렇게 멋있는 걸 보니 가슴이 마구 나대기 시작했다.“오빠 어디 가요?”정안은 소파에 무릎을 꿇고 소파 등에 손을 엎드려 물었다.남하준은 소매 단추를 조절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따듯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외국 부총리가 방문해서 국빈 연회가 있
뚜뚜.핸드폰이 두 번 울렸다.정안이 울적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 열어보니 지우가 보낸 계좌이체였다.지우가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갚는 것을 보고 또 마음이 아팠다.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지우가 여전히 열심히 사는 걸 보면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서다인의 신분이 없었다면 그녀는 평생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사는 친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평범한 학력, 평범한 일자리, 내세울 만한 가정 배경도 없고 부모의 도움도 없이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두 손에 운명이 달린 사람.아버지가 암에 걸려 전 재산을 털어 병을 치료하는 바람에 집안은 가난해지고 정안에게 수천만 원의 빚을 졌다.이 돈은 정안에게 언급할 가치도 없이 적은 돈이라 갚을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지우는 기어코 갚겠다고 고집했다.그건 그녀의 자존심이고, 신용이고, 진심이라 생각했다.정안은 열심히 사는 이 친구를 생각하니 마음이 좀 불편해져서 휴대폰을 들고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연결음이 몇 번 울리더니 지우가 목소리를 낮추어 전화를 받았다.“완자야, 왜?”정안이 웃으며 말했다.“돈 받았어. 이렇게 급하게 갚지 않아도 돼. 너 여유로워지면 갚아.”“설마 돈이 적다고 무시하는 거임?”“그런 뜻 아니란 거 알잖아.”“알아. 넌 내가 안 갚길 원하잖아. 하지만 난 네가 자선 화가 지완이라서, M국 갑부의 손녀라서 너랑 친구가 된 게 아니야. 내 맘 알아?”“알겠어.”“나 지금 알바 중. 먼저 끊는다.”정안이 급히 물었다.“어디서 알바해?”“오늘 휴식이라 강변에서 노점상으로 수공예품 팔아.”정안이 생각하더니 말했다.“주소 좀 줘봐. 나도 노점상에서 수공예품 파는 거 체험해보고 싶어.”“그래. 주소 줄게.”지우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고 정안에게 주소를 보냈다.정안은 집으로 돌아가 가방과 휴대폰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그녀는 콜택시에 앉아 창문을 열고 두 손을 창가에 얹고 턱을 팔에 얹은 채 조용히 길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길가의 건물이 한 프레임씩 스쳐
남하준은 2초간 침묵하더니 정안이 그의 교통사고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지 않고긴장해 하며 물었다.“너 외출했어?”정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네. 지우 만나러 가다가 마침 봤어요.”“경호원은 데리고 나왔어? 지윤 씨도 같이 나왔고?”그의 말투가 점점 진지해졌다.“아니요. 저 혼자요.”남하준이 다급하게 물었다.“주소 줘. 사람 보낼게.”정안은 다시 침묵했다. 남하준은 그녀의 물음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남하준의 교통사고를 걱정하고 있는데 그는 교통사고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그녀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었다.“괜찮아요. 잠깐 친구 만나러 가는 거예요.”정안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를 속일 수밖에 없었다. “이따가 지윤이도 올 거예요.”남하준은 엄숙하지만 아주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앞으로 외출하려면 꼭 나한테 말해. 절대 혼자 나가지 말고 경호원과 같이 나가고. 알겠어?”정안은 잘못해서 혼나는 아이처럼 중얼거렸다.“알겠어요. 그럼 오빠는요?”남하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그제야 자기 일을 말했다.“방금 추돌사고가 있었는데 별일 아니야.”“안 다쳤죠?”정안이 걱정스레 물었다.“안 다쳤어.”정안은 방금 유미와 그가 손을 잡는 모습이 생각나 왠지 질투심이 생겨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잠시 우물쭈물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옆에서 유미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가 들려왔다.“젼형적인 어장관리네. 너 이렇게 걱정하면서 언제 너 낚아 올린대?”그 말을 들은 정안은 가슴 전체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그녀가 언제 남하준을 어장 안의 물고기로 여겼다고.유미는 또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었다.정안은 심호흡을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옆에서 파리처럼 앵앵거리는 사람 유미 씨에요?”남하준은 의문스러워서 하며 물었다.“들렸어?”정안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물었다.“내가 듣는 거 싫어요?”“그 말이 아니야.”정안은 마음이 더욱 무거워져 짜증스
정안은 화가 나서 온몸이 쑤셨다. 남하준 같은 대쪽 같은 남자 옆에 여우 같은 여자가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형제 같은 감정이라니?유미는 분명 남하준에게 딴마음을 품고 있는데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인가?전화를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하준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고 끊어버렸다.그의 전화가 다시 걸려오자 정안은 문자 한 통을 보냈다.“배터리 없어요.”그러고 나서 그녀는 전원을 껐다.차량이 강변에 도착하자 넓은 도로에 아름다운 상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고 강변에는 많은 관광객이 왕래하고 있었다.정안은 계속 위로 올라가서 인파를 뚫고 걸어가다 보니 끝에 있는 지우가 보였다.지우의 작은 노점상에는 다양한 상품들이 놓여 있었는데 종류가 많고 가격이 저렴했다.모두 매우 평범한 공예품, 작은 장식품과 머리 장신구 등등이었다.“완자!”지우는 정안을 보자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신이 나서 낮은 의자에서 일어나 정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정안도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그녀의 앞에 진열된 상품을 내려다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렸다.이거 다 팔아도 20만 원도 안 될 것 같았다.지우는 정안을 끌어당겨 유일한 낮은 의자에 그녀를 앉히고 자신은 쪼그리고 앉아 정안을 보며 낙관적으로 말했다.“오늘 사람 많아서 아까 엄청 바빴잖아. 그래서 너랑 길게 얘기 못 했어.”“아주 바빠?”정안이 안쓰러워하며 다정하게 물었다.“바쁠 때도 있고. 손님이 몰리면 잠깐 바쁘다가 또 없으면 그냥 앉아있지 뭐.”정안은 지우의 손을 잡더니 물었다.“오늘 얼마 벌었는데?”지우는 감격스러운 눈빛을 하고 흐뭇하게 말했다.“아침 내내 4만 원 벌었어. 만약 저녁까지 기다린다면 10만 원 넘을 수 있을 것 같아!”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마음이 씁쓸했다.지우가 또 말했다.“너 저녁에 집 가지 마. 내가 국수 사줄게.”그때 한 손님이 다가와 유리구슬 팔찌를 집어 들며 물었다.“이거 얼마예요?”지우는 벌떡 일어서서 환하게
잠시 후 정안은 봉투 하나와 간이 테이블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지우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정안은 테이블을 펴고 봉투에서 A4 용지 한 묶음, 붓과 먹을 꺼냈다.그녀는 백지에 몇 글자를 써서 노점상에 붙였다.[2만 원 이상 구매 시 수묵화 그림 한 장 증정!]정안이 먹을 갈기 시작하자 지우가 좌우를 살피며 말렸다.“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야. 평소 명화 같은 거엔 관심이 없어서 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정안은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지완의 공식 계정에 로그인하여 게시물 하나를 올렸다.[친구를 위해 물건 파는 중. 2만 원 이상 구매 시 그림 무료로 증정.]정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싱글벙글 웃으며 지우를 보았다.“기다려봐.”지우는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정안의 곁에 쪼그리고 앉아 조금 불안했다.“네 그림이 얼마나 비싼데 여기 노점상 전체 상품을 합해도 네 그림 가격 천만 분의 일도 안 돼. 네가 네 몸값 낮춰 가며 나 도와주면 나 엄청 죄책감 느낄 거야.”정안은 A4 용지를 휙휙 저으며 말했다.“나 원래 자선 목적으로 그림 그렸어. 널 돕는 것도 일종의 자선이야. 그리고 이렇게 작은 종이에 그리는 그림은 별로 가치도 없어.”지우는 반신반의했다.정안은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30분 후, 그들의 노점상 앞에 십여 대의 고급차량이 세워졌다.노점상 앞에 줄을 서서 그림을 기다리는 남자들은 모두 양복 차림에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이 거리의 품격과 어울리지 않았다.온 사람들은 수집가이거나 회사 대표들의 비서였다.“여기 있는 상품 전부 살 테니 지완 씨 그림에 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이것은 모든 호기로운 손님들의 요구였다.그러면 정안이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서명이나 사진은 안 됩니다.”그녀는 일단 그녀가 서명하거나 그림과 사진을 찍으면 이 그림은 물이 불어나서 몇백만 원 이상의 가격에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되면 그녀가 지우를 도우려는 원래 취지
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 지우를 도울 수 있어 기분이 좋은 그녀는 유미와 남하준의 걱정거리를 진작 잊고 있었다.지우가 젓가락을 들고 국수를 먹으며 궁금해서 물었다.“기사 보니까 너 그림 한 장이 몇십억 원이라던데, 정말이야?”정안은 엷게 웃더니 젓가락을 놓고 냅킨을 들어 입을 닦았다.“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 보통은 몇천에서 몇억 정도.”지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렇게 값이 나가는 거야?”“예술은 재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노이즈 마케팅과 셀럽 효과가 더 크지. 나 처음에 온라인에서 그림 그렸거든. 그때 자선 경매를 하는데 아빠가 나 몰래 40억 원으로 내 그림을 샀어. 난 또 그 거금을 산간 지역의 학교에 기부하면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지. 그 후로는 걷잡을 수 없이 값이 치솟았어.”“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네 그림은 몇십 억 원의 가치가 있고 소장 가치가 있다고 여겼고 모두 네 스타일을 연구하고 그림을 모사하기 시작한 거네?”정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우는 유유히 면을 먹으며 감탄했다.“부자들 세상을 난 모르겠지만 네가 부럽네. 널 그렇게 사랑하는 아빠가 계시잖아.”정안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니 아빠 얘기에 그녀는 쓸쓸한 기색과 슬픈 표정이 역력했다.“지우야, 너희 아버지 요즘 건강은 어떠셔?”“지난달에 돌아가셨어.”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목이 메어 말했다.정안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한동안 어떻게 그녀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모아둔 돈을 모두 탕진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어렵게 수술을 마치고 모두 좋아지고 있다고 느꼈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불행은 늘 힘든 사람에게 닥친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불치병 환자의 슬픔이었다.정안은 사과의 뜻으로 지우의 손을 꼭 잡았다. 지우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모두 지난 일이었다.정안이 생각하더니 또 물었다.“지우야, 너 전에 정신병원에서 심리상담 자원봉사로 일한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정안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안 돼. 돈은 꼭 줘야 해. 아니면 너 한 시간도 못 버틸 거야.”지우는 경악했다.“그 정도로 심각해?”지우는 돈도 벌고 싶고 존경할만한 마약 경찰을 돕고 싶어 하겠다고 응수했다.정안은 남태준의 업무 특성과 어쩌다 다쳤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 지우에게 낱낱이 알려줬다.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일 무렵, 정안은 지우의 손을 잡고 국숫집을 나갔다.막 몇 걸음 걸어 나온 두 사람은 입구 큰길의 남자를 보고 걸음이 뚝 멈추었다.검은색 승용차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는데 바로 남하준, 유미 그리고 류청이었다.남하준이 어두운 얼굴로 다가가 따져 물었다.“지윤 씨는? 경호원은? 왜 혼자 다녀?”지우는 남하준이 왜 갑자기 완자에게 화를 내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정안이 어둑한 하늘을 보니 아마 연회가 끝난 것 같았다.그녀의 시선이 남하준을 넘어 유미를 향해 흘끗 보더니 마음이 불편해졌다.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남하준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엄숙한 투로 말했다.“너 때문에 지금 인터넷이 난리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어?”정안은 침묵했다. 그녀는 남하준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의 곁에 유미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지우가 나서려 했다.“사실은...”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미가 남하준 곁으로 다가가더니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완자 씨, 아까 왜 하준이 전화 끊었어요? 전원까지 꺼서 하준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요? 외국 지도자를 접대하는 중요한 연회에서 하준이 계속 불안해하고 있었다고요. 그 나이 먹고 왜 아직도 철이 없어요?”정안은 어안이 벙벙해서 유미를 보며 말문이 막혔다.유미는 지금 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설교하고 있을까?그녀가 남하준의 전화를 끊었다고 해도 이건 유미가 나서서 혼낼 일이 아니었다.정안은 자신의 격을 낮춰가며 유미를 비난하고 싶지 않아 남하준을 바라보았다.촉촉한 눈망
유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정안을 흘끗 바라보더니 정의롭고 늠름한 자세로 남하준의 편에 서서 말했다.“부부라니요? 완자 씨가 부부라고 인정한대요? 대체 하준이를 뭐로 생각하는지 몰라요. 아무런 명분도 주지 않으면서 계속 인연도 끊지 않고. 보통 친구도 아니지 않아요?”류청이 급히 앞으로 나가 유미를 뒤로 당기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유미 씨, 그만 하세요.”유미는 류청의 손을 뿌리치고 울분에 차서 말했다.“난 그쪽 도련님 생각해서 말하는 거잖아요? 언제까지 저 여자 손에 놀아 나게 할거예요?”정안은 말없이 남하준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눈 밑이 촉촉해지고 가슴이 아팠다.그는 정말 유미가 하는 모든 말에 동의하고 있는 걸까?그녀를 정말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으로 생각할까?정안은 실망한 듯 지우의 손을 잡고 돌아섰고 괴로워서 목소리마저 힘이 빠졌다.“지우야, 가자.”지우가 그녀를 따라갔다.“그래.”두 사람이 막 한 걸음 걸었을 때 남하준이 정안의 앞으로 성큼 다가가더니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하고 부드러운 말투에는 약간의 근심이 묻어났다.“또 어디 가는데?”정안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숨을 참으며 억울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남자는 알아채지 못하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집에 가자. 친구랑 같이 집에 가서 놀아 밖에서 돌아다니지 말고. 위험해.”지우는 가소롭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나랑 함께 있는데 뭐가 위험해요? M국 치안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요? 곳곳에 감시 카메라와 순찰 경찰들이 있으니 도련님께서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남하준은 지우를 흘끗 쳐다보더니 탄식했다. 지우는 상황을 모르고 있으니 두려움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다만 정안은 자신의 신분이 특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블랙 섀도우 본부에서 이미 신분을 폭로했으니 언제 어디서든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정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덤덤하게 말했다.“도련님의 관심은 감사하지만 금원에는 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다 도련님 형제분께서 내가 도련님 마음 갖고 놀면서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