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억지로 미소지으며 짐짓 괜찮은 척했다.“아니에요. 나가볼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남하준 곁을 재빨리 스쳐지나 옷방을 뛰쳐나와 방을 나갔다.남하준은 뒤돌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정안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분명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왜 자꾸 그를 유혹할까?그의 머릿속에 언뜻 정안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돌아온다면 계속 부부로 지내자고 했던.남하준은 거울을 두 손으로 받치고 눈을 감고 머리를 숙여 심호흡을 하니 심장이 아련하게 아려왔다.그는 모든 국가의 정치적 수단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정안은 아직 5년 계약이 남아 있으니 Z국은 절대 그녀를 M국에 머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5년이든 15년이든, 그는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다.단지 미래의 그녀는 여전히 지금과 같은 마음일까? 여전히 그와 부부가 되고 싶어 할까?그는 정안이 그와 계속 부부로 살자고 한 것이 그냥 해 본 말인지, 아니면 그가 남편감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해 시집가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어쨌든 결혼하기 전에는 절대 사리사욕을 위해 그녀를 탐할 수 없었다. 그녀와의 잠자리는 더더욱.그는 정안이 나중에 이것 때문에 후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거실에서 정안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시무룩하게 책을 보고 있었는데 머리가 복잡해 손에 든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위층의 남하준만 생각했다.그때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정안이 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보니, 검은색 슈트를 입은 남하준이 우아하고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장군의 포스는 슈트에 의해 묻히지 않고 오히려 더 화려하게 빛났다.정안은 좋아하는 남자가 이렇게 멋있는 걸 보니 가슴이 마구 나대기 시작했다.“오빠 어디 가요?”정안은 소파에 무릎을 꿇고 소파 등에 손을 엎드려 물었다.남하준은 소매 단추를 조절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따듯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외국 부총리가 방문해서 국빈 연회가 있
뚜뚜.핸드폰이 두 번 울렸다.정안이 울적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 열어보니 지우가 보낸 계좌이체였다.지우가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갚는 것을 보고 또 마음이 아팠다.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지우가 여전히 열심히 사는 걸 보면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서다인의 신분이 없었다면 그녀는 평생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사는 친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평범한 학력, 평범한 일자리, 내세울 만한 가정 배경도 없고 부모의 도움도 없이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두 손에 운명이 달린 사람.아버지가 암에 걸려 전 재산을 털어 병을 치료하는 바람에 집안은 가난해지고 정안에게 수천만 원의 빚을 졌다.이 돈은 정안에게 언급할 가치도 없이 적은 돈이라 갚을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지우는 기어코 갚겠다고 고집했다.그건 그녀의 자존심이고, 신용이고, 진심이라 생각했다.정안은 열심히 사는 이 친구를 생각하니 마음이 좀 불편해져서 휴대폰을 들고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연결음이 몇 번 울리더니 지우가 목소리를 낮추어 전화를 받았다.“완자야, 왜?”정안이 웃으며 말했다.“돈 받았어. 이렇게 급하게 갚지 않아도 돼. 너 여유로워지면 갚아.”“설마 돈이 적다고 무시하는 거임?”“그런 뜻 아니란 거 알잖아.”“알아. 넌 내가 안 갚길 원하잖아. 하지만 난 네가 자선 화가 지완이라서, M국 갑부의 손녀라서 너랑 친구가 된 게 아니야. 내 맘 알아?”“알겠어.”“나 지금 알바 중. 먼저 끊는다.”정안이 급히 물었다.“어디서 알바해?”“오늘 휴식이라 강변에서 노점상으로 수공예품 팔아.”정안이 생각하더니 말했다.“주소 좀 줘봐. 나도 노점상에서 수공예품 파는 거 체험해보고 싶어.”“그래. 주소 줄게.”지우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고 정안에게 주소를 보냈다.정안은 집으로 돌아가 가방과 휴대폰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그녀는 콜택시에 앉아 창문을 열고 두 손을 창가에 얹고 턱을 팔에 얹은 채 조용히 길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길가의 건물이 한 프레임씩 스쳐
남하준은 2초간 침묵하더니 정안이 그의 교통사고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지 않고긴장해 하며 물었다.“너 외출했어?”정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네. 지우 만나러 가다가 마침 봤어요.”“경호원은 데리고 나왔어? 지윤 씨도 같이 나왔고?”그의 말투가 점점 진지해졌다.“아니요. 저 혼자요.”남하준이 다급하게 물었다.“주소 줘. 사람 보낼게.”정안은 다시 침묵했다. 남하준은 그녀의 물음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남하준의 교통사고를 걱정하고 있는데 그는 교통사고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그녀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었다.“괜찮아요. 잠깐 친구 만나러 가는 거예요.”정안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를 속일 수밖에 없었다. “이따가 지윤이도 올 거예요.”남하준은 엄숙하지만 아주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앞으로 외출하려면 꼭 나한테 말해. 절대 혼자 나가지 말고 경호원과 같이 나가고. 알겠어?”정안은 잘못해서 혼나는 아이처럼 중얼거렸다.“알겠어요. 그럼 오빠는요?”남하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그제야 자기 일을 말했다.“방금 추돌사고가 있었는데 별일 아니야.”“안 다쳤죠?”정안이 걱정스레 물었다.“안 다쳤어.”정안은 방금 유미와 그가 손을 잡는 모습이 생각나 왠지 질투심이 생겨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잠시 우물쭈물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옆에서 유미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가 들려왔다.“젼형적인 어장관리네. 너 이렇게 걱정하면서 언제 너 낚아 올린대?”그 말을 들은 정안은 가슴 전체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그녀가 언제 남하준을 어장 안의 물고기로 여겼다고.유미는 또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었다.정안은 심호흡을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옆에서 파리처럼 앵앵거리는 사람 유미 씨에요?”남하준은 의문스러워서 하며 물었다.“들렸어?”정안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물었다.“내가 듣는 거 싫어요?”“그 말이 아니야.”정안은 마음이 더욱 무거워져 짜증스
정안은 화가 나서 온몸이 쑤셨다. 남하준 같은 대쪽 같은 남자 옆에 여우 같은 여자가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형제 같은 감정이라니?유미는 분명 남하준에게 딴마음을 품고 있는데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인가?전화를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하준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고 끊어버렸다.그의 전화가 다시 걸려오자 정안은 문자 한 통을 보냈다.“배터리 없어요.”그러고 나서 그녀는 전원을 껐다.차량이 강변에 도착하자 넓은 도로에 아름다운 상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고 강변에는 많은 관광객이 왕래하고 있었다.정안은 계속 위로 올라가서 인파를 뚫고 걸어가다 보니 끝에 있는 지우가 보였다.지우의 작은 노점상에는 다양한 상품들이 놓여 있었는데 종류가 많고 가격이 저렴했다.모두 매우 평범한 공예품, 작은 장식품과 머리 장신구 등등이었다.“완자!”지우는 정안을 보자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신이 나서 낮은 의자에서 일어나 정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정안도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그녀의 앞에 진열된 상품을 내려다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렸다.이거 다 팔아도 20만 원도 안 될 것 같았다.지우는 정안을 끌어당겨 유일한 낮은 의자에 그녀를 앉히고 자신은 쪼그리고 앉아 정안을 보며 낙관적으로 말했다.“오늘 사람 많아서 아까 엄청 바빴잖아. 그래서 너랑 길게 얘기 못 했어.”“아주 바빠?”정안이 안쓰러워하며 다정하게 물었다.“바쁠 때도 있고. 손님이 몰리면 잠깐 바쁘다가 또 없으면 그냥 앉아있지 뭐.”정안은 지우의 손을 잡더니 물었다.“오늘 얼마 벌었는데?”지우는 감격스러운 눈빛을 하고 흐뭇하게 말했다.“아침 내내 4만 원 벌었어. 만약 저녁까지 기다린다면 10만 원 넘을 수 있을 것 같아!”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마음이 씁쓸했다.지우가 또 말했다.“너 저녁에 집 가지 마. 내가 국수 사줄게.”그때 한 손님이 다가와 유리구슬 팔찌를 집어 들며 물었다.“이거 얼마예요?”지우는 벌떡 일어서서 환하게
잠시 후 정안은 봉투 하나와 간이 테이블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지우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정안은 테이블을 펴고 봉투에서 A4 용지 한 묶음, 붓과 먹을 꺼냈다.그녀는 백지에 몇 글자를 써서 노점상에 붙였다.[2만 원 이상 구매 시 수묵화 그림 한 장 증정!]정안이 먹을 갈기 시작하자 지우가 좌우를 살피며 말렸다.“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야. 평소 명화 같은 거엔 관심이 없어서 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정안은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지완의 공식 계정에 로그인하여 게시물 하나를 올렸다.[친구를 위해 물건 파는 중. 2만 원 이상 구매 시 그림 무료로 증정.]정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싱글벙글 웃으며 지우를 보았다.“기다려봐.”지우는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정안의 곁에 쪼그리고 앉아 조금 불안했다.“네 그림이 얼마나 비싼데 여기 노점상 전체 상품을 합해도 네 그림 가격 천만 분의 일도 안 돼. 네가 네 몸값 낮춰 가며 나 도와주면 나 엄청 죄책감 느낄 거야.”정안은 A4 용지를 휙휙 저으며 말했다.“나 원래 자선 목적으로 그림 그렸어. 널 돕는 것도 일종의 자선이야. 그리고 이렇게 작은 종이에 그리는 그림은 별로 가치도 없어.”지우는 반신반의했다.정안은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30분 후, 그들의 노점상 앞에 십여 대의 고급차량이 세워졌다.노점상 앞에 줄을 서서 그림을 기다리는 남자들은 모두 양복 차림에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이 거리의 품격과 어울리지 않았다.온 사람들은 수집가이거나 회사 대표들의 비서였다.“여기 있는 상품 전부 살 테니 지완 씨 그림에 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이것은 모든 호기로운 손님들의 요구였다.그러면 정안이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서명이나 사진은 안 됩니다.”그녀는 일단 그녀가 서명하거나 그림과 사진을 찍으면 이 그림은 물이 불어나서 몇백만 원 이상의 가격에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되면 그녀가 지우를 도우려는 원래 취지
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 지우를 도울 수 있어 기분이 좋은 그녀는 유미와 남하준의 걱정거리를 진작 잊고 있었다.지우가 젓가락을 들고 국수를 먹으며 궁금해서 물었다.“기사 보니까 너 그림 한 장이 몇십억 원이라던데, 정말이야?”정안은 엷게 웃더니 젓가락을 놓고 냅킨을 들어 입을 닦았다.“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 보통은 몇천에서 몇억 정도.”지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렇게 값이 나가는 거야?”“예술은 재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노이즈 마케팅과 셀럽 효과가 더 크지. 나 처음에 온라인에서 그림 그렸거든. 그때 자선 경매를 하는데 아빠가 나 몰래 40억 원으로 내 그림을 샀어. 난 또 그 거금을 산간 지역의 학교에 기부하면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지. 그 후로는 걷잡을 수 없이 값이 치솟았어.”“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네 그림은 몇십 억 원의 가치가 있고 소장 가치가 있다고 여겼고 모두 네 스타일을 연구하고 그림을 모사하기 시작한 거네?”정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우는 유유히 면을 먹으며 감탄했다.“부자들 세상을 난 모르겠지만 네가 부럽네. 널 그렇게 사랑하는 아빠가 계시잖아.”정안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니 아빠 얘기에 그녀는 쓸쓸한 기색과 슬픈 표정이 역력했다.“지우야, 너희 아버지 요즘 건강은 어떠셔?”“지난달에 돌아가셨어.”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목이 메어 말했다.정안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한동안 어떻게 그녀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모아둔 돈을 모두 탕진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어렵게 수술을 마치고 모두 좋아지고 있다고 느꼈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불행은 늘 힘든 사람에게 닥친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불치병 환자의 슬픔이었다.정안은 사과의 뜻으로 지우의 손을 꼭 잡았다. 지우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모두 지난 일이었다.정안이 생각하더니 또 물었다.“지우야, 너 전에 정신병원에서 심리상담 자원봉사로 일한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정안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안 돼. 돈은 꼭 줘야 해. 아니면 너 한 시간도 못 버틸 거야.”지우는 경악했다.“그 정도로 심각해?”지우는 돈도 벌고 싶고 존경할만한 마약 경찰을 돕고 싶어 하겠다고 응수했다.정안은 남태준의 업무 특성과 어쩌다 다쳤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 지우에게 낱낱이 알려줬다.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일 무렵, 정안은 지우의 손을 잡고 국숫집을 나갔다.막 몇 걸음 걸어 나온 두 사람은 입구 큰길의 남자를 보고 걸음이 뚝 멈추었다.검은색 승용차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는데 바로 남하준, 유미 그리고 류청이었다.남하준이 어두운 얼굴로 다가가 따져 물었다.“지윤 씨는? 경호원은? 왜 혼자 다녀?”지우는 남하준이 왜 갑자기 완자에게 화를 내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정안이 어둑한 하늘을 보니 아마 연회가 끝난 것 같았다.그녀의 시선이 남하준을 넘어 유미를 향해 흘끗 보더니 마음이 불편해졌다.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남하준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엄숙한 투로 말했다.“너 때문에 지금 인터넷이 난리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어?”정안은 침묵했다. 그녀는 남하준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의 곁에 유미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지우가 나서려 했다.“사실은...”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미가 남하준 곁으로 다가가더니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완자 씨, 아까 왜 하준이 전화 끊었어요? 전원까지 꺼서 하준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요? 외국 지도자를 접대하는 중요한 연회에서 하준이 계속 불안해하고 있었다고요. 그 나이 먹고 왜 아직도 철이 없어요?”정안은 어안이 벙벙해서 유미를 보며 말문이 막혔다.유미는 지금 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설교하고 있을까?그녀가 남하준의 전화를 끊었다고 해도 이건 유미가 나서서 혼낼 일이 아니었다.정안은 자신의 격을 낮춰가며 유미를 비난하고 싶지 않아 남하준을 바라보았다.촉촉한 눈망
유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정안을 흘끗 바라보더니 정의롭고 늠름한 자세로 남하준의 편에 서서 말했다.“부부라니요? 완자 씨가 부부라고 인정한대요? 대체 하준이를 뭐로 생각하는지 몰라요. 아무런 명분도 주지 않으면서 계속 인연도 끊지 않고. 보통 친구도 아니지 않아요?”류청이 급히 앞으로 나가 유미를 뒤로 당기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유미 씨, 그만 하세요.”유미는 류청의 손을 뿌리치고 울분에 차서 말했다.“난 그쪽 도련님 생각해서 말하는 거잖아요? 언제까지 저 여자 손에 놀아 나게 할거예요?”정안은 말없이 남하준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눈 밑이 촉촉해지고 가슴이 아팠다.그는 정말 유미가 하는 모든 말에 동의하고 있는 걸까?그녀를 정말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으로 생각할까?정안은 실망한 듯 지우의 손을 잡고 돌아섰고 괴로워서 목소리마저 힘이 빠졌다.“지우야, 가자.”지우가 그녀를 따라갔다.“그래.”두 사람이 막 한 걸음 걸었을 때 남하준이 정안의 앞으로 성큼 다가가더니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하고 부드러운 말투에는 약간의 근심이 묻어났다.“또 어디 가는데?”정안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숨을 참으며 억울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남자는 알아채지 못하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집에 가자. 친구랑 같이 집에 가서 놀아 밖에서 돌아다니지 말고. 위험해.”지우는 가소롭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나랑 함께 있는데 뭐가 위험해요? M국 치안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요? 곳곳에 감시 카메라와 순찰 경찰들이 있으니 도련님께서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남하준은 지우를 흘끗 쳐다보더니 탄식했다. 지우는 상황을 모르고 있으니 두려움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다만 정안은 자신의 신분이 특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블랙 섀도우 본부에서 이미 신분을 폭로했으니 언제 어디서든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정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덤덤하게 말했다.“도련님의 관심은 감사하지만 금원에는 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다 도련님 형제분께서 내가 도련님 마음 갖고 놀면서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
지우는 예전에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그녀는 남태준 같은 유형의 남자를 좋아했다.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좋아함으로써 그의 성격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감싸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아니요. 난 당신 같은 돌직구가 좋아요.”남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맑고 큰 눈과 촉촉한 입술을 보니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일어서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가자. 밥 먹으러 가자. 다른 일에 주의력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널 잡아 먹을 것 같아.”지우는 부끄러워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었다.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식탁 앞에 놓아주었고 식탁 위의 반찬 세 가지와 국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 정말 요리를 잘하는구나.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 정도로 비주얼이 훌륭해.”지우는 기분 좋게 앉아 그에게 국을 떠 주었다.남태준도 따라 앉아서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맛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맛있어. 지우가 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다니.”지우는 그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뿌듯해졌다.그녀가 만든 건 그저 일상적인 가정식 음식이었고 평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조리 방법도 단순했다.갈비찜, 토마토 달걀 볶음, 청경채, 그리고 어두 무찌개였다.그러나 남태준은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싱글벙글했다.“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면서 그래도 나 음식 못하게 할 거예요?”지우가 궁금해서 묻자 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 목을 축이고 말했다.“만약 네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고 취미라면 그리고 힘들지 않다면 해도 돼.”“하지만 네 취미도 아니고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한다면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거듭하며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그러면 너도 힘들잖아.”남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만지며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손으로 지우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빛은 뜨거웠다.“내 침대에서 좀 더 오래 자지 그랬어?”“네?”지우가 의혹스러운 듯 맑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했다.“내가 돌아오면 같이 잘 수 있게.”지우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졌고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줍게 중얼거렸다.“누구 좋으라고요!”“앞으로 나 밥해주지 마.”남태준은 그녀의 하얀 작은 손을 만지고 입가에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왜요?”지우는 자신의 요리 솜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늘 그녀가 요리했으니.“내가 돌아와서 하면 돼. 내가 바쁘면 요리사 부르면 되고.”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문지르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보았다.“내 여자친구는 요리나 집안일 같은 거 할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지우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 나에게 네 일을 공유하고 내 일을 경청하고 각자의 일을 마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시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뭐가 시시한 일인데요?”“영화 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쇼핑하고...”남태준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수줍은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그의 키스는 뜨거웠고 큰 손은 천천히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아 그녀의 엉덩이를 안으로 오므렸다.진한 키스가 뜨거워질수록 지우는 그의 몸 반응이 점점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앉은 위치가 애매해 커다란 것이 몸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온몸은 저도 모르게 나른해지고 팔다리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고 아랫배가 공허해졌다.떨림, 수줍음 그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그녀를 도망치게 했다.그녀가 옮기려고 할수록 남태준이 그녀를 껴안고 더 바싹 달라붙었다.진한 키스가 불러온 욕망에 두 사람의 숨결은 가빠졌다.남태준은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서 떠나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 목소리를 잃은 듯 쉰 목소리로 가볍게 중
“그럼...”임다희는 믿기 싫은 듯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목숨 걸고 널 구한 건 내가 경찰이기 때문이야.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어.”“그럴 리 없어.”임다희는 분노하여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울먹였다.“나 절대 못 믿어. 나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남태준은 긴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임다희, 난 널 위해 목숨을 버린 적 없어.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무슨 논리?”임다희가 눈물을 쓱 닦았다.“넌 그래도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니까 측은한 마음에 그 요트를 떠나라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네가 내 신분을 폭로한 거야.”남태준은 그녀를 구하려던 동기를 차근차근 분석해줬다.“네가 내 스파이 신분을 폭로하면서 우리 둘 다 위험에 빠졌어.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 난 절대 자기 살길만 도모하고 다른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어. 경찰의 책임감으로 너 데리고 도망친 거야.”임다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남태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죽을 뻔한 건 너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야.”지금 남태준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그의 관대함 때문이었다.“너 지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는 거야?”임다희가 눈물이 흐릿해져서 묻자 남태준이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맞아.”“하지만 지우가 너를 차버렸어.”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고상한 자태를 뽐내며 조롱하듯 물었다.“이번에도 흔쾌히 승낙하고 깨끗이 잊은 거야?”남태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질투가 많은 여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맞아. 깨끗이 잊었어. 이미 끝난 인연이고 지나간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어? 이 세상에 여자가 수도 없이 많은데 한 나무에만 매달릴 필요 없잖아?”임다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매섭게 말했다.“쓰레기!”그리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