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고 큰 방에서 남하준은 눈을 감고 침대 머리맡에 반쯤 누워있었다. 부드러운 노을빛이 베란다에서 비쳐 들어와 그의 잘생긴 얼굴을 매혹적으로 물들였다.지금의 그는 조금 초췌해 보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정안은 오는 길에 이미 마음 다짐을 했다.그는 이미 싱글이 아니니, 기대하지 말자, 환상을 품지 말자, 절대 아무런 환상도 품지 말자고.하지만 그를 보고 나니 여전히 걷잡을 수 없이 설레었다.그녀는 베이지색 꽃무늬 롱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리고 왼손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흰색 국화 다발을 들고 오른손에는 보건 식품 두 상자를 들고 있었다.그렇게 불안해하며 쭈뼛쭈뼛 서 있었고 얼굴에는 반달 웃음을 지으며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남하준은 그녀의 미소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왔어?”“네.”정안은 보건 식품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보건 식품 사 왔어요.”“저기 둬.”남자가 방의 낮은 탁자를 가리키자 정안이 다가가 선물을 내려놓고 손에 든 꽃을 보더니 돌아서서 물었다.“오빠. 꽃은 어디에 둘까요?”남하준이 침대 옆 캐비닛을 가리켰고 정안이 다가가 꽃을 놓았다.아주 가까운 거리였고 남하준이 고개를 들어 그녀의 예쁜 얼굴을 보고 있었다.정안은 그의 뜨거운 시선을 보더니 즉시 비켜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옆의 의자를 보고 그의 침대 옆에 당겨 앉았다.“몸은 좀 괜찮아요?”정안이 인사치레로 묻자 남하준이 씁쓸하게 웃었다.역시 그녀는 환경을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섬의 감옥에서 주동적으로 그의 손을 쓰다듬고 몸을 만지며 친밀한 행동을 서슴지 않던 그 완자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남하준이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응. 괜찮아.”“상처 아직도 아파요?”정안이 그의 어깨를 보며 물었다.그가 옷을 입고 있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그녀는 지금 그와 눈이 마주칠까 봐 어깨를 볼 수밖에 없다.“가끔 아파.”“혼자 걸을 수 있어요?”그녀가 또 묻자 남하준은 말없이 그녀를 빤
남하준은 활짝 웃으며 부드러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완아.”정안이 고개를 들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네?”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국가는 네가 필요해.”정안은 달콤하게 웃더니 나지막이 물었다.“그럼 오빠는요?”남하준은 경악해서 멍하니 정안을 바라보았다.순간 정안은 자신의 물음이 분수에 맞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제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인데 이런 때아닌 물음은 선을 넘었다.남하준이 정신을 차리고 막 대답하려고 하자 정안이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사과했다.“미안해요. 장난이었어요.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남하준의 말은 목구멍에 막혀 버렸고 정안은 더욱 어색해져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빠. 푹 쉬세요. 나 갈게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떠났고 남하준이 급하게 소리쳤다.“완아!”너무 아쉬웠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려는 걸까?남하준이 불렀지만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급한 그는 이불을 제치고 침대에서 내려 쫓아가려 했다.“완아!”그가 부를수록 그녀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고 남하준의 목소리는 더욱 무거워졌다.“백완자!”정안의 손이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남하준의 외치는 소리는 더욱 강해져 그녀의 풀네임까지 부르자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돌아섰다.그녀가 막 몸을 돌리자 남하준의 허약한 몸이 갑자기 그녀 몸 위로 덮치며 쓰러졌다.정안은 뒤로 밀려서 등을 문짝에 부딪혀서 몸으로 막아냈고 빠르게 남하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남하준은 두 손으로 문을 받치고 안간힘을 쓰다가 정안의 도움으로 겨우 자리를 잡았다.그러나 그는 몸의 힘의 태반이 정안을 누르고 있었다.당황한 정안은 긴장하고 가슴 아파하며 그의 허리를 꼭 껴안고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그가 침대에 앉아 있을 때 이렇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하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남하준은 자신의 허약한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일어나면 현기증이 났지만 그녀를 보고 싶은 그의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백완자
“너한테 해명할 일이 있어.”남하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깨너머로 속삭였다.“뭐요?”“나랑 유미 안 사귀어.”정안은 어리둥절하더니 순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그녀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 있었다.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기뻐야 하는지, 분하고 화를 내야 하는지 몰랐다.하지만 유미의 적의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게다가 그 수단이 더럽고 악랄했다.마음을 추스른 정안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은 손이 천천히 조여왔다.“하지만 유미 씨는 나한테 두 사람 사귄다고 했어요.”그래서 남하준은 반드시 그녀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든 안 하든 자신을 아무런 기회도 없는 위치에 놓이게 할 수 없었다.정안이 미혼이고 그도 싱글이라면 그래도 기회는 있을 것이다.“응. 유미가 나한테 말했어.”정안은 갑자기 좀 무서워졌다.만약 남하준이 해명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영원히 오해했을 것이다.그 오해가 풀렸다 해도 유미는 그저 친구의 원한을 풀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뿐이고,또 유미가 먼저 사실을 털어놓았으니 남하준은 그녀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이 세상에 이렇게 당당하게 수단을 부릴 수 있는 여자가 또 있다니.정안은 본인이 전혀 유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거 설명하려고 나 쫓아온 거예요?”정안은 그의 귀에 대고 조용히 물었다.“응.”“유미 씨는 아마 생각 못 했을 거예요.”“뭘?”‘오빠가 나 이렇게 사랑하는 거요.’정안은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빠가 나한테 이거 해명할 줄 몰랐을 거예요.”남하준은 몸을 곧게 펴고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그녀의 붉어진 뺨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너 신경 안 쓰는 거 알아.”‘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미치게 신경 쓰죠!’정안은 입을 벌려 설명하려 했지만 말문이 막혔다.아직 남하준에게 마음을 전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Z국 과학 연구원을 그만두고 계약 해지를 처리하고 국적을 M국으로 다시 옮기면 비로소 고백할 용기가 날 것이다.만약
방금까지 빨리 떠나려던 여자가 갑자기 왜 남아서 그를 돌본다고 할까?게다가 그렇게 다정하게 말이다.남하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궁금해서 물었다.“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야?”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오빠 나 구하다가 다친 거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돌봐야죠.”남하준은 가볍게 웃더니 눈빛이 어두워졌고 정안이 애교스럽게 말했다.“옛날에는 여자가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할 능력이 없으면 자기 몸까지 바치곤 했어요.”남하준은 몸이 뜨거워져 이불을 내리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보답할 능력이 없다고?”정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맞아요!”남하준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그런 농담 하지 마.”‘나 진짜로 여길지도 모르니까.’“농담 아니에요!”정안이 진지하게 말했지만 남하준은 다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정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이불을 더 끌어당겨 목까지 덮었지만 남하준이 천천히 아래로 당겨서 이불을 허리춤까지 잡아당겼다.정안이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이불을 잡아당겨 덮어주자 남하준은 눈을 꼭 감고 다시 아래로 내렸다.정안이 또 손을 뻗자 남하준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눈도 뜨지 않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더워.”“몸이 허약한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해요.”남하준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놓았고 정안이 다시 한번 그의 이불을 덮어주었다.이번에는 그가 움직이지 않았다.정안은 방 안에 잠시 앉아 있다가 그가 꿈에 푹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그녀도 살금살금 방을 나갔다.문이 닫히는 순간 남하준은 천천히 눈을 뜨고 방문을 바라보며 실의가 눈 밑을 스쳐 지났다.정안은 내려가 거실에 앉아 지윤에게 전화해 옷 몇 벌을 챙겨오라고 했다.그녀가 전화를 끊자 류청이 들어와 전보다 예의 바른 모습으로 말했다.“지금 가시게요?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정안이 피식 웃었다.“아니요. 가서 일 보세요. 제가 오빠 돌볼게요.”류청은 멍해 있었고 정안은 그의 표정을 보며
정안은 손이 텅 빈 채로 주인인 양 행동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난 괜찮아요.”“하준이 배고플 것 같으니 배웅하지 않을게요. 살펴 가세요.”유미는 예의를 차리는 듯했지만 말을 돌려 그녀를 쫓아내려 했다.말을 마친 그녀는 음식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정안은 주먹을 불끈 쥐고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자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녀는 더 이상 이렇게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남하준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지만 그도 남자였다. 그리고 유미의 수단이 뛰어나고 두 사람은 오랜 친구였으니 언제 정이 피어날지도 모른다.그녀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 남하준을 잃었을 때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잠시 생각에 잠긴 정안은 몸을 돌려 재빨리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노크 없이 바로 문을 열고 들어섰고, 마침 유미가 남하준을 부축하고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방안의 두 사람은 소리를 듣고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정안은 뻘쭘했지만 용기를 내어 웃으며 말했다.“하준 오빠 혹시 나 필요할까 봐서요.”남하준의 눈빛이 놀라움에서 기쁨으로 번지더니 이내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미 떠난 줄 알았는데 아직 집에 있을 줄이야. 그의 냉담한 얼굴에 점차 미소가 피어올랐다.유미는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였는데 그녀는 정안이 아직 가지 않을 줄은 몰랐다.“도울 건 없어요. 아직 식사 안 하셨죠? 내려가서 요리사에게 저녁 식사 준비해달라고 하고 드시고 가세요.”정안이 입술을 오므리며 웃었다.“아직 배 안 고파요. 늦게 먹어도 되고. 어차피 갈 생각 없으니까.”남하준은 또 움찔했고 눈빛은 더욱 짙어졌다.유미는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 큰 성인남녀가 같이 있는 건 좀 아니죠?”“난 괜찮아요.”정안은 또 남하준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다정하게 물었다.“오빠는요? 괜찮아요?”“금원의 대문은 언제나 널 향해 열려 있어.”남하준
“도와줘요?”정안은 그가 움직이지 않자 수줍게 물었다.남하준은 그녀가 떠나기를 기다렸는데 그 말을 들으니 덩달아 쑥스러워했다.하지만 정안은 밖에 있는 유미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오빠 일 다 보면 내가 부축해서 나갈게요.”남하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심장이 약간 뜨거워지고 호흡이 흐트러지고 쉰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네가 여기서 보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일을 봐?”정안은 서서히 몸을 돌려 등을 돌린 뒤 수줍게 말했다.“나 안 볼 테니 시작하세요.”“완아, 너...”남하준이 애틋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말을 잇기도 전에 정안이 말을 끊었다.“꾸물거리지 말고 빨리요!”정안은 부끄러워서 화가 났다.남하준은 그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어 매우 난처했고 그녀의 곁에서 도저히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었다.“오래된 부부라고 생각하면 부끄러울 것도 없어요.”정안이 고개를 푹 숙이고 옷자락을 두 손으로 살살 잡아당기며 수줍은 말투로 위로했다.“더군다나 우리 반년 동안 부부로 지냈잖아요. 친밀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남하준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뜻에 따라 바지를 내리고 무리하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수다로 어색함을 달래려 했다.“그래서 내 몸은 언제 봤는데?”정안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냥 헛소리한 거예요.”“태준이 형도 이렇게 돌봤어?”남하준의 말투가 약간 무거워졌고 불쾌감이 역력했다.“아니요. 태준 오빠는 오빠예요. 어떻게 이렇게 돌봐요?”남하준이 변기 버튼을 누르자 물소리가 났고 그는 세면대 쪽으로 걸어가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었다.정안은 빠른 속도로 달려가 수건을 들고 그의 곁에서 기다렸다.그녀는 남하준의 눈치를 살피며 의문스럽게 물었다.“근데 왜 자꾸 태준 오빠 얘기하는 거예요?”남하준은 말없이 손을 깨끗이 씻고 수건을 챙기려는데 정안이 바로 그에게 건네주었다.그는 잠시 멍해 있다가 그녀가 건네준 수건을 받아 들고 부드럽게 말
남하준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좀 피곤한 듯 말했다.“너 바쁜데 매일 올 필요 없어. 나 이틀 정도 쉬면 다 나을 거야.”유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푹 쉬어.”정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문을 열고 나가던 유미는 고개를 돌려 정안을 보았다. 정안도 그녀를 올려다보며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공기는 얼어붙었다.방문이 닫히고, 정안은 마침내 한시름 놓았다.그녀는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 고기를 집어서 올려 남하준에게 건네주었다.남하준은 입도 벌리지 않고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유미 갔으니까 더 이상 연기할 필요 없어.”정안은 움찔했다.“오빠, 나...”그녀는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돌보고 싶었다.물론 유미를 화나게 하려는 목적도 부인할 수 없었다.남하준은 그녀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받아 혼자 먹기 시작했다.“괜찮아. 난 기꺼이 너한테 이용당할 수 있어.”“내가 오빠를 이용해요?”“유미 화나게 하려는 거잖아.”정안은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너도 돌아가. 여기서 내키지 않는 일 하지 말고. 의미 없으니까.”남하준은 말을 빙빙 돌려가며 그녀도 쫓아내려 했고 정안은 마음이 좀 괴로웠다.“오빠는 내가 왜 유미 씨 화나게 한다고 생각해요?”남하준은 눈을 늘어뜨리고 식탁의 음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맛이 없었다.“여자들 사이 갈등을 내가 어떻게 알아. 알고 싶지도 않아.”분위기가 다소 무섭게 가라앉았다.정안의 휴대전화 소리가 두 번 울리자 그녀는 흘끗 보고는 일어섰다.“오빠 나 잠깐 내려갔다 올 테니까 먼저 먹고 있어요. 지윤이가 나 옷 챙겨왔대요. 저녁에 내가 샤워할 물 받아 줄게요.”정안이 발걸음을 옮기자 남하준이 그녀를 불렀다.“백완자, 내가 오해할 만 한 일은 하지 마.”정안은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무거운 마음으로 설명했다. “나 이미 Z국 과학연구원에 사직서 제출했고, 국무원에 M국으로 다시 귀화하겠다는 신청서도 제출했어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 열심히 처리하고 있어요. 조
정안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거실에서 지윤을 만났다.지윤이 옷 봉투를 건네주며 물었다.“언니, 왜 갑자기 금원에서 지내는 거예요? 도련님 대체 얼마나 다친 거예요?”정안은 짐을 받고 지윤과 소파에 앉았다.“큰 부상을 두 번 입어서 몸이 많이 허약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지윤은 우울해하며 침묵하자 정안이 물었다.“Z국 쪽엔 연락 없었어?”지윤은 안색이 굳어지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언니 신분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쉽게 언니를 놓아주려 하지 않죠. 어떻게든 언니를 쟁취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정안이 죄책감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계속 이 일을 맡아 처리해줘. 어느 쪽에도 미움 사지 않고 소란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지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안타까워하며 물었다.“대체 왜 Z국과 경분자를 포기하고 M국으로 돌아오려는 거예요? 전에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며 어디서든 똑같다고 하셨잖아요.”“만약 M국으로 돌아오면 경분자에 관한 연구는 물론, 강대국의 지원, 그동안 고생한 성과도 포기하는 거고 심지어 미래의 노벨상까지 포기하는 거잖아요. 그건 인생 절정의 순간이에요, 언니.”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기분이 울적했다.“언니,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정안은 견고하게 고개를 들더니 지윤의 근심 어린 눈길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니, 그럴 필요 없어. 계속 Z국과 협상해줘. 어떤 요구를 제기하든 나만 보내준다면 난 다 괜찮아.”지윤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어 계속 설득하려 했다.“언니...”정안이 손을 내밀어 막았다.“그만. 나 이미 결정했어.”지윤의 얼굴이 확 굳어지더니 엄숙하게 말했다.“도련님 때문이에요? 언니는 사랑을 위해 사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정안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야.”“그럼 대체 왜요?”정안이 지윤의 손을 잡더니 진지하게 설명했다.“지윤아, 사실 과학에는 국경이 있어.”지윤이 어리둥절해서 눈살을 찌푸렸다.“Z와 M국은 우방국이고 관계는 그런대로 원만한 편이지만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