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고 큰 방에서 남하준은 눈을 감고 침대 머리맡에 반쯤 누워있었다. 부드러운 노을빛이 베란다에서 비쳐 들어와 그의 잘생긴 얼굴을 매혹적으로 물들였다.지금의 그는 조금 초췌해 보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정안은 오는 길에 이미 마음 다짐을 했다.그는 이미 싱글이 아니니, 기대하지 말자, 환상을 품지 말자, 절대 아무런 환상도 품지 말자고.하지만 그를 보고 나니 여전히 걷잡을 수 없이 설레었다.그녀는 베이지색 꽃무늬 롱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리고 왼손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흰색 국화 다발을 들고 오른손에는 보건 식품 두 상자를 들고 있었다.그렇게 불안해하며 쭈뼛쭈뼛 서 있었고 얼굴에는 반달 웃음을 지으며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남하준은 그녀의 미소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왔어?”“네.”정안은 보건 식품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보건 식품 사 왔어요.”“저기 둬.”남자가 방의 낮은 탁자를 가리키자 정안이 다가가 선물을 내려놓고 손에 든 꽃을 보더니 돌아서서 물었다.“오빠. 꽃은 어디에 둘까요?”남하준이 침대 옆 캐비닛을 가리켰고 정안이 다가가 꽃을 놓았다.아주 가까운 거리였고 남하준이 고개를 들어 그녀의 예쁜 얼굴을 보고 있었다.정안은 그의 뜨거운 시선을 보더니 즉시 비켜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옆의 의자를 보고 그의 침대 옆에 당겨 앉았다.“몸은 좀 괜찮아요?”정안이 인사치레로 묻자 남하준이 씁쓸하게 웃었다.역시 그녀는 환경을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섬의 감옥에서 주동적으로 그의 손을 쓰다듬고 몸을 만지며 친밀한 행동을 서슴지 않던 그 완자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남하준이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응. 괜찮아.”“상처 아직도 아파요?”정안이 그의 어깨를 보며 물었다.그가 옷을 입고 있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그녀는 지금 그와 눈이 마주칠까 봐 어깨를 볼 수밖에 없다.“가끔 아파.”“혼자 걸을 수 있어요?”그녀가 또 묻자 남하준은 말없이 그녀를 빤
남하준은 활짝 웃으며 부드러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완아.”정안이 고개를 들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네?”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국가는 네가 필요해.”정안은 달콤하게 웃더니 나지막이 물었다.“그럼 오빠는요?”남하준은 경악해서 멍하니 정안을 바라보았다.순간 정안은 자신의 물음이 분수에 맞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제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인데 이런 때아닌 물음은 선을 넘었다.남하준이 정신을 차리고 막 대답하려고 하자 정안이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사과했다.“미안해요. 장난이었어요.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남하준의 말은 목구멍에 막혀 버렸고 정안은 더욱 어색해져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빠. 푹 쉬세요. 나 갈게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떠났고 남하준이 급하게 소리쳤다.“완아!”너무 아쉬웠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려는 걸까?남하준이 불렀지만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급한 그는 이불을 제치고 침대에서 내려 쫓아가려 했다.“완아!”그가 부를수록 그녀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고 남하준의 목소리는 더욱 무거워졌다.“백완자!”정안의 손이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남하준의 외치는 소리는 더욱 강해져 그녀의 풀네임까지 부르자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돌아섰다.그녀가 막 몸을 돌리자 남하준의 허약한 몸이 갑자기 그녀 몸 위로 덮치며 쓰러졌다.정안은 뒤로 밀려서 등을 문짝에 부딪혀서 몸으로 막아냈고 빠르게 남하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남하준은 두 손으로 문을 받치고 안간힘을 쓰다가 정안의 도움으로 겨우 자리를 잡았다.그러나 그는 몸의 힘의 태반이 정안을 누르고 있었다.당황한 정안은 긴장하고 가슴 아파하며 그의 허리를 꼭 껴안고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그가 침대에 앉아 있을 때 이렇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하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남하준은 자신의 허약한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일어나면 현기증이 났지만 그녀를 보고 싶은 그의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백완자
“너한테 해명할 일이 있어.”남하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깨너머로 속삭였다.“뭐요?”“나랑 유미 안 사귀어.”정안은 어리둥절하더니 순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그녀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 있었다.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기뻐야 하는지, 분하고 화를 내야 하는지 몰랐다.하지만 유미의 적의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게다가 그 수단이 더럽고 악랄했다.마음을 추스른 정안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은 손이 천천히 조여왔다.“하지만 유미 씨는 나한테 두 사람 사귄다고 했어요.”그래서 남하준은 반드시 그녀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든 안 하든 자신을 아무런 기회도 없는 위치에 놓이게 할 수 없었다.정안이 미혼이고 그도 싱글이라면 그래도 기회는 있을 것이다.“응. 유미가 나한테 말했어.”정안은 갑자기 좀 무서워졌다.만약 남하준이 해명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영원히 오해했을 것이다.그 오해가 풀렸다 해도 유미는 그저 친구의 원한을 풀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뿐이고,또 유미가 먼저 사실을 털어놓았으니 남하준은 그녀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이 세상에 이렇게 당당하게 수단을 부릴 수 있는 여자가 또 있다니.정안은 본인이 전혀 유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거 설명하려고 나 쫓아온 거예요?”정안은 그의 귀에 대고 조용히 물었다.“응.”“유미 씨는 아마 생각 못 했을 거예요.”“뭘?”‘오빠가 나 이렇게 사랑하는 거요.’정안은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빠가 나한테 이거 해명할 줄 몰랐을 거예요.”남하준은 몸을 곧게 펴고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그녀의 붉어진 뺨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너 신경 안 쓰는 거 알아.”‘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미치게 신경 쓰죠!’정안은 입을 벌려 설명하려 했지만 말문이 막혔다.아직 남하준에게 마음을 전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Z국 과학 연구원을 그만두고 계약 해지를 처리하고 국적을 M국으로 다시 옮기면 비로소 고백할 용기가 날 것이다.만약
방금까지 빨리 떠나려던 여자가 갑자기 왜 남아서 그를 돌본다고 할까?게다가 그렇게 다정하게 말이다.남하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궁금해서 물었다.“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야?”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오빠 나 구하다가 다친 거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돌봐야죠.”남하준은 가볍게 웃더니 눈빛이 어두워졌고 정안이 애교스럽게 말했다.“옛날에는 여자가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할 능력이 없으면 자기 몸까지 바치곤 했어요.”남하준은 몸이 뜨거워져 이불을 내리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보답할 능력이 없다고?”정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맞아요!”남하준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그런 농담 하지 마.”‘나 진짜로 여길지도 모르니까.’“농담 아니에요!”정안이 진지하게 말했지만 남하준은 다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정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이불을 더 끌어당겨 목까지 덮었지만 남하준이 천천히 아래로 당겨서 이불을 허리춤까지 잡아당겼다.정안이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이불을 잡아당겨 덮어주자 남하준은 눈을 꼭 감고 다시 아래로 내렸다.정안이 또 손을 뻗자 남하준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눈도 뜨지 않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더워.”“몸이 허약한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해요.”남하준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놓았고 정안이 다시 한번 그의 이불을 덮어주었다.이번에는 그가 움직이지 않았다.정안은 방 안에 잠시 앉아 있다가 그가 꿈에 푹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그녀도 살금살금 방을 나갔다.문이 닫히는 순간 남하준은 천천히 눈을 뜨고 방문을 바라보며 실의가 눈 밑을 스쳐 지났다.정안은 내려가 거실에 앉아 지윤에게 전화해 옷 몇 벌을 챙겨오라고 했다.그녀가 전화를 끊자 류청이 들어와 전보다 예의 바른 모습으로 말했다.“지금 가시게요?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정안이 피식 웃었다.“아니요. 가서 일 보세요. 제가 오빠 돌볼게요.”류청은 멍해 있었고 정안은 그의 표정을 보며
정안은 손이 텅 빈 채로 주인인 양 행동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난 괜찮아요.”“하준이 배고플 것 같으니 배웅하지 않을게요. 살펴 가세요.”유미는 예의를 차리는 듯했지만 말을 돌려 그녀를 쫓아내려 했다.말을 마친 그녀는 음식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정안은 주먹을 불끈 쥐고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자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녀는 더 이상 이렇게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남하준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지만 그도 남자였다. 그리고 유미의 수단이 뛰어나고 두 사람은 오랜 친구였으니 언제 정이 피어날지도 모른다.그녀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 남하준을 잃었을 때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잠시 생각에 잠긴 정안은 몸을 돌려 재빨리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노크 없이 바로 문을 열고 들어섰고, 마침 유미가 남하준을 부축하고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방안의 두 사람은 소리를 듣고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정안은 뻘쭘했지만 용기를 내어 웃으며 말했다.“하준 오빠 혹시 나 필요할까 봐서요.”남하준의 눈빛이 놀라움에서 기쁨으로 번지더니 이내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미 떠난 줄 알았는데 아직 집에 있을 줄이야. 그의 냉담한 얼굴에 점차 미소가 피어올랐다.유미는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였는데 그녀는 정안이 아직 가지 않을 줄은 몰랐다.“도울 건 없어요. 아직 식사 안 하셨죠? 내려가서 요리사에게 저녁 식사 준비해달라고 하고 드시고 가세요.”정안이 입술을 오므리며 웃었다.“아직 배 안 고파요. 늦게 먹어도 되고. 어차피 갈 생각 없으니까.”남하준은 또 움찔했고 눈빛은 더욱 짙어졌다.유미는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 큰 성인남녀가 같이 있는 건 좀 아니죠?”“난 괜찮아요.”정안은 또 남하준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다정하게 물었다.“오빠는요? 괜찮아요?”“금원의 대문은 언제나 널 향해 열려 있어.”남하준
“도와줘요?”정안은 그가 움직이지 않자 수줍게 물었다.남하준은 그녀가 떠나기를 기다렸는데 그 말을 들으니 덩달아 쑥스러워했다.하지만 정안은 밖에 있는 유미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오빠 일 다 보면 내가 부축해서 나갈게요.”남하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심장이 약간 뜨거워지고 호흡이 흐트러지고 쉰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네가 여기서 보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일을 봐?”정안은 서서히 몸을 돌려 등을 돌린 뒤 수줍게 말했다.“나 안 볼 테니 시작하세요.”“완아, 너...”남하준이 애틋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말을 잇기도 전에 정안이 말을 끊었다.“꾸물거리지 말고 빨리요!”정안은 부끄러워서 화가 났다.남하준은 그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어 매우 난처했고 그녀의 곁에서 도저히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었다.“오래된 부부라고 생각하면 부끄러울 것도 없어요.”정안이 고개를 푹 숙이고 옷자락을 두 손으로 살살 잡아당기며 수줍은 말투로 위로했다.“더군다나 우리 반년 동안 부부로 지냈잖아요. 친밀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남하준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뜻에 따라 바지를 내리고 무리하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수다로 어색함을 달래려 했다.“그래서 내 몸은 언제 봤는데?”정안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냥 헛소리한 거예요.”“태준이 형도 이렇게 돌봤어?”남하준의 말투가 약간 무거워졌고 불쾌감이 역력했다.“아니요. 태준 오빠는 오빠예요. 어떻게 이렇게 돌봐요?”남하준이 변기 버튼을 누르자 물소리가 났고 그는 세면대 쪽으로 걸어가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었다.정안은 빠른 속도로 달려가 수건을 들고 그의 곁에서 기다렸다.그녀는 남하준의 눈치를 살피며 의문스럽게 물었다.“근데 왜 자꾸 태준 오빠 얘기하는 거예요?”남하준은 말없이 손을 깨끗이 씻고 수건을 챙기려는데 정안이 바로 그에게 건네주었다.그는 잠시 멍해 있다가 그녀가 건네준 수건을 받아 들고 부드럽게 말
남하준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좀 피곤한 듯 말했다.“너 바쁜데 매일 올 필요 없어. 나 이틀 정도 쉬면 다 나을 거야.”유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푹 쉬어.”정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문을 열고 나가던 유미는 고개를 돌려 정안을 보았다. 정안도 그녀를 올려다보며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공기는 얼어붙었다.방문이 닫히고, 정안은 마침내 한시름 놓았다.그녀는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 고기를 집어서 올려 남하준에게 건네주었다.남하준은 입도 벌리지 않고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유미 갔으니까 더 이상 연기할 필요 없어.”정안은 움찔했다.“오빠, 나...”그녀는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돌보고 싶었다.물론 유미를 화나게 하려는 목적도 부인할 수 없었다.남하준은 그녀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받아 혼자 먹기 시작했다.“괜찮아. 난 기꺼이 너한테 이용당할 수 있어.”“내가 오빠를 이용해요?”“유미 화나게 하려는 거잖아.”정안은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너도 돌아가. 여기서 내키지 않는 일 하지 말고. 의미 없으니까.”남하준은 말을 빙빙 돌려가며 그녀도 쫓아내려 했고 정안은 마음이 좀 괴로웠다.“오빠는 내가 왜 유미 씨 화나게 한다고 생각해요?”남하준은 눈을 늘어뜨리고 식탁의 음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맛이 없었다.“여자들 사이 갈등을 내가 어떻게 알아. 알고 싶지도 않아.”분위기가 다소 무섭게 가라앉았다.정안의 휴대전화 소리가 두 번 울리자 그녀는 흘끗 보고는 일어섰다.“오빠 나 잠깐 내려갔다 올 테니까 먼저 먹고 있어요. 지윤이가 나 옷 챙겨왔대요. 저녁에 내가 샤워할 물 받아 줄게요.”정안이 발걸음을 옮기자 남하준이 그녀를 불렀다.“백완자, 내가 오해할 만 한 일은 하지 마.”정안은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무거운 마음으로 설명했다. “나 이미 Z국 과학연구원에 사직서 제출했고, 국무원에 M국으로 다시 귀화하겠다는 신청서도 제출했어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 열심히 처리하고 있어요. 조
정안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거실에서 지윤을 만났다.지윤이 옷 봉투를 건네주며 물었다.“언니, 왜 갑자기 금원에서 지내는 거예요? 도련님 대체 얼마나 다친 거예요?”정안은 짐을 받고 지윤과 소파에 앉았다.“큰 부상을 두 번 입어서 몸이 많이 허약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지윤은 우울해하며 침묵하자 정안이 물었다.“Z국 쪽엔 연락 없었어?”지윤은 안색이 굳어지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언니 신분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쉽게 언니를 놓아주려 하지 않죠. 어떻게든 언니를 쟁취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정안이 죄책감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계속 이 일을 맡아 처리해줘. 어느 쪽에도 미움 사지 않고 소란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지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안타까워하며 물었다.“대체 왜 Z국과 경분자를 포기하고 M국으로 돌아오려는 거예요? 전에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며 어디서든 똑같다고 하셨잖아요.”“만약 M국으로 돌아오면 경분자에 관한 연구는 물론, 강대국의 지원, 그동안 고생한 성과도 포기하는 거고 심지어 미래의 노벨상까지 포기하는 거잖아요. 그건 인생 절정의 순간이에요, 언니.”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기분이 울적했다.“언니,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정안은 견고하게 고개를 들더니 지윤의 근심 어린 눈길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니, 그럴 필요 없어. 계속 Z국과 협상해줘. 어떤 요구를 제기하든 나만 보내준다면 난 다 괜찮아.”지윤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어 계속 설득하려 했다.“언니...”정안이 손을 내밀어 막았다.“그만. 나 이미 결정했어.”지윤의 얼굴이 확 굳어지더니 엄숙하게 말했다.“도련님 때문이에요? 언니는 사랑을 위해 사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정안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야.”“그럼 대체 왜요?”정안이 지윤의 손을 잡더니 진지하게 설명했다.“지윤아, 사실 과학에는 국경이 있어.”지윤이 어리둥절해서 눈살을 찌푸렸다.“Z와 M국은 우방국이고 관계는 그런대로 원만한 편이지만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
지우는 예전에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그녀는 남태준 같은 유형의 남자를 좋아했다.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좋아함으로써 그의 성격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감싸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아니요. 난 당신 같은 돌직구가 좋아요.”남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맑고 큰 눈과 촉촉한 입술을 보니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일어서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가자. 밥 먹으러 가자. 다른 일에 주의력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널 잡아 먹을 것 같아.”지우는 부끄러워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었다.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식탁 앞에 놓아주었고 식탁 위의 반찬 세 가지와 국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 정말 요리를 잘하는구나.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 정도로 비주얼이 훌륭해.”지우는 기분 좋게 앉아 그에게 국을 떠 주었다.남태준도 따라 앉아서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맛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맛있어. 지우가 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다니.”지우는 그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뿌듯해졌다.그녀가 만든 건 그저 일상적인 가정식 음식이었고 평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조리 방법도 단순했다.갈비찜, 토마토 달걀 볶음, 청경채, 그리고 어두 무찌개였다.그러나 남태준은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싱글벙글했다.“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면서 그래도 나 음식 못하게 할 거예요?”지우가 궁금해서 묻자 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 목을 축이고 말했다.“만약 네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고 취미라면 그리고 힘들지 않다면 해도 돼.”“하지만 네 취미도 아니고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한다면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거듭하며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그러면 너도 힘들잖아.”남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만지며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손으로 지우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빛은 뜨거웠다.“내 침대에서 좀 더 오래 자지 그랬어?”“네?”지우가 의혹스러운 듯 맑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했다.“내가 돌아오면 같이 잘 수 있게.”지우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졌고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줍게 중얼거렸다.“누구 좋으라고요!”“앞으로 나 밥해주지 마.”남태준은 그녀의 하얀 작은 손을 만지고 입가에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왜요?”지우는 자신의 요리 솜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늘 그녀가 요리했으니.“내가 돌아와서 하면 돼. 내가 바쁘면 요리사 부르면 되고.”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문지르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보았다.“내 여자친구는 요리나 집안일 같은 거 할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지우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 나에게 네 일을 공유하고 내 일을 경청하고 각자의 일을 마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시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뭐가 시시한 일인데요?”“영화 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쇼핑하고...”남태준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수줍은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그의 키스는 뜨거웠고 큰 손은 천천히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아 그녀의 엉덩이를 안으로 오므렸다.진한 키스가 뜨거워질수록 지우는 그의 몸 반응이 점점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앉은 위치가 애매해 커다란 것이 몸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온몸은 저도 모르게 나른해지고 팔다리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고 아랫배가 공허해졌다.떨림, 수줍음 그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그녀를 도망치게 했다.그녀가 옮기려고 할수록 남태준이 그녀를 껴안고 더 바싹 달라붙었다.진한 키스가 불러온 욕망에 두 사람의 숨결은 가빠졌다.남태준은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서 떠나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 목소리를 잃은 듯 쉰 목소리로 가볍게 중
“그럼...”임다희는 믿기 싫은 듯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목숨 걸고 널 구한 건 내가 경찰이기 때문이야.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어.”“그럴 리 없어.”임다희는 분노하여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울먹였다.“나 절대 못 믿어. 나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남태준은 긴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임다희, 난 널 위해 목숨을 버린 적 없어.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무슨 논리?”임다희가 눈물을 쓱 닦았다.“넌 그래도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니까 측은한 마음에 그 요트를 떠나라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네가 내 신분을 폭로한 거야.”남태준은 그녀를 구하려던 동기를 차근차근 분석해줬다.“네가 내 스파이 신분을 폭로하면서 우리 둘 다 위험에 빠졌어.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 난 절대 자기 살길만 도모하고 다른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어. 경찰의 책임감으로 너 데리고 도망친 거야.”임다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남태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죽을 뻔한 건 너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야.”지금 남태준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그의 관대함 때문이었다.“너 지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는 거야?”임다희가 눈물이 흐릿해져서 묻자 남태준이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맞아.”“하지만 지우가 너를 차버렸어.”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고상한 자태를 뽐내며 조롱하듯 물었다.“이번에도 흔쾌히 승낙하고 깨끗이 잊은 거야?”남태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질투가 많은 여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맞아. 깨끗이 잊었어. 이미 끝난 인연이고 지나간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어? 이 세상에 여자가 수도 없이 많은데 한 나무에만 매달릴 필요 없잖아?”임다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매섭게 말했다.“쓰레기!”그리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