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은 활짝 웃으며 부드러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완아.”정안이 고개를 들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네?”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국가는 네가 필요해.”정안은 달콤하게 웃더니 나지막이 물었다.“그럼 오빠는요?”남하준은 경악해서 멍하니 정안을 바라보았다.순간 정안은 자신의 물음이 분수에 맞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제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인데 이런 때아닌 물음은 선을 넘었다.남하준이 정신을 차리고 막 대답하려고 하자 정안이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사과했다.“미안해요. 장난이었어요.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남하준의 말은 목구멍에 막혀 버렸고 정안은 더욱 어색해져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빠. 푹 쉬세요. 나 갈게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떠났고 남하준이 급하게 소리쳤다.“완아!”너무 아쉬웠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려는 걸까?남하준이 불렀지만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급한 그는 이불을 제치고 침대에서 내려 쫓아가려 했다.“완아!”그가 부를수록 그녀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고 남하준의 목소리는 더욱 무거워졌다.“백완자!”정안의 손이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남하준의 외치는 소리는 더욱 강해져 그녀의 풀네임까지 부르자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돌아섰다.그녀가 막 몸을 돌리자 남하준의 허약한 몸이 갑자기 그녀 몸 위로 덮치며 쓰러졌다.정안은 뒤로 밀려서 등을 문짝에 부딪혀서 몸으로 막아냈고 빠르게 남하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남하준은 두 손으로 문을 받치고 안간힘을 쓰다가 정안의 도움으로 겨우 자리를 잡았다.그러나 그는 몸의 힘의 태반이 정안을 누르고 있었다.당황한 정안은 긴장하고 가슴 아파하며 그의 허리를 꼭 껴안고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그가 침대에 앉아 있을 때 이렇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하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남하준은 자신의 허약한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일어나면 현기증이 났지만 그녀를 보고 싶은 그의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백완자
“너한테 해명할 일이 있어.”남하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깨너머로 속삭였다.“뭐요?”“나랑 유미 안 사귀어.”정안은 어리둥절하더니 순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그녀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 있었다.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기뻐야 하는지, 분하고 화를 내야 하는지 몰랐다.하지만 유미의 적의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게다가 그 수단이 더럽고 악랄했다.마음을 추스른 정안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은 손이 천천히 조여왔다.“하지만 유미 씨는 나한테 두 사람 사귄다고 했어요.”그래서 남하준은 반드시 그녀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든 안 하든 자신을 아무런 기회도 없는 위치에 놓이게 할 수 없었다.정안이 미혼이고 그도 싱글이라면 그래도 기회는 있을 것이다.“응. 유미가 나한테 말했어.”정안은 갑자기 좀 무서워졌다.만약 남하준이 해명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영원히 오해했을 것이다.그 오해가 풀렸다 해도 유미는 그저 친구의 원한을 풀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뿐이고,또 유미가 먼저 사실을 털어놓았으니 남하준은 그녀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이 세상에 이렇게 당당하게 수단을 부릴 수 있는 여자가 또 있다니.정안은 본인이 전혀 유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거 설명하려고 나 쫓아온 거예요?”정안은 그의 귀에 대고 조용히 물었다.“응.”“유미 씨는 아마 생각 못 했을 거예요.”“뭘?”‘오빠가 나 이렇게 사랑하는 거요.’정안은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빠가 나한테 이거 해명할 줄 몰랐을 거예요.”남하준은 몸을 곧게 펴고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그녀의 붉어진 뺨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너 신경 안 쓰는 거 알아.”‘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미치게 신경 쓰죠!’정안은 입을 벌려 설명하려 했지만 말문이 막혔다.아직 남하준에게 마음을 전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Z국 과학 연구원을 그만두고 계약 해지를 처리하고 국적을 M국으로 다시 옮기면 비로소 고백할 용기가 날 것이다.만약
방금까지 빨리 떠나려던 여자가 갑자기 왜 남아서 그를 돌본다고 할까?게다가 그렇게 다정하게 말이다.남하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궁금해서 물었다.“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야?”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오빠 나 구하다가 다친 거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돌봐야죠.”남하준은 가볍게 웃더니 눈빛이 어두워졌고 정안이 애교스럽게 말했다.“옛날에는 여자가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할 능력이 없으면 자기 몸까지 바치곤 했어요.”남하준은 몸이 뜨거워져 이불을 내리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보답할 능력이 없다고?”정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맞아요!”남하준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그런 농담 하지 마.”‘나 진짜로 여길지도 모르니까.’“농담 아니에요!”정안이 진지하게 말했지만 남하준은 다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정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이불을 더 끌어당겨 목까지 덮었지만 남하준이 천천히 아래로 당겨서 이불을 허리춤까지 잡아당겼다.정안이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이불을 잡아당겨 덮어주자 남하준은 눈을 꼭 감고 다시 아래로 내렸다.정안이 또 손을 뻗자 남하준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눈도 뜨지 않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더워.”“몸이 허약한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해요.”남하준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놓았고 정안이 다시 한번 그의 이불을 덮어주었다.이번에는 그가 움직이지 않았다.정안은 방 안에 잠시 앉아 있다가 그가 꿈에 푹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그녀도 살금살금 방을 나갔다.문이 닫히는 순간 남하준은 천천히 눈을 뜨고 방문을 바라보며 실의가 눈 밑을 스쳐 지났다.정안은 내려가 거실에 앉아 지윤에게 전화해 옷 몇 벌을 챙겨오라고 했다.그녀가 전화를 끊자 류청이 들어와 전보다 예의 바른 모습으로 말했다.“지금 가시게요?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정안이 피식 웃었다.“아니요. 가서 일 보세요. 제가 오빠 돌볼게요.”류청은 멍해 있었고 정안은 그의 표정을 보며
정안은 손이 텅 빈 채로 주인인 양 행동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난 괜찮아요.”“하준이 배고플 것 같으니 배웅하지 않을게요. 살펴 가세요.”유미는 예의를 차리는 듯했지만 말을 돌려 그녀를 쫓아내려 했다.말을 마친 그녀는 음식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정안은 주먹을 불끈 쥐고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자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녀는 더 이상 이렇게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남하준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지만 그도 남자였다. 그리고 유미의 수단이 뛰어나고 두 사람은 오랜 친구였으니 언제 정이 피어날지도 모른다.그녀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 남하준을 잃었을 때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잠시 생각에 잠긴 정안은 몸을 돌려 재빨리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노크 없이 바로 문을 열고 들어섰고, 마침 유미가 남하준을 부축하고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방안의 두 사람은 소리를 듣고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정안은 뻘쭘했지만 용기를 내어 웃으며 말했다.“하준 오빠 혹시 나 필요할까 봐서요.”남하준의 눈빛이 놀라움에서 기쁨으로 번지더니 이내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미 떠난 줄 알았는데 아직 집에 있을 줄이야. 그의 냉담한 얼굴에 점차 미소가 피어올랐다.유미는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였는데 그녀는 정안이 아직 가지 않을 줄은 몰랐다.“도울 건 없어요. 아직 식사 안 하셨죠? 내려가서 요리사에게 저녁 식사 준비해달라고 하고 드시고 가세요.”정안이 입술을 오므리며 웃었다.“아직 배 안 고파요. 늦게 먹어도 되고. 어차피 갈 생각 없으니까.”남하준은 또 움찔했고 눈빛은 더욱 짙어졌다.유미는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 큰 성인남녀가 같이 있는 건 좀 아니죠?”“난 괜찮아요.”정안은 또 남하준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다정하게 물었다.“오빠는요? 괜찮아요?”“금원의 대문은 언제나 널 향해 열려 있어.”남하준
“도와줘요?”정안은 그가 움직이지 않자 수줍게 물었다.남하준은 그녀가 떠나기를 기다렸는데 그 말을 들으니 덩달아 쑥스러워했다.하지만 정안은 밖에 있는 유미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오빠 일 다 보면 내가 부축해서 나갈게요.”남하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심장이 약간 뜨거워지고 호흡이 흐트러지고 쉰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네가 여기서 보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일을 봐?”정안은 서서히 몸을 돌려 등을 돌린 뒤 수줍게 말했다.“나 안 볼 테니 시작하세요.”“완아, 너...”남하준이 애틋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말을 잇기도 전에 정안이 말을 끊었다.“꾸물거리지 말고 빨리요!”정안은 부끄러워서 화가 났다.남하준은 그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어 매우 난처했고 그녀의 곁에서 도저히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었다.“오래된 부부라고 생각하면 부끄러울 것도 없어요.”정안이 고개를 푹 숙이고 옷자락을 두 손으로 살살 잡아당기며 수줍은 말투로 위로했다.“더군다나 우리 반년 동안 부부로 지냈잖아요. 친밀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남하준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뜻에 따라 바지를 내리고 무리하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수다로 어색함을 달래려 했다.“그래서 내 몸은 언제 봤는데?”정안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냥 헛소리한 거예요.”“태준이 형도 이렇게 돌봤어?”남하준의 말투가 약간 무거워졌고 불쾌감이 역력했다.“아니요. 태준 오빠는 오빠예요. 어떻게 이렇게 돌봐요?”남하준이 변기 버튼을 누르자 물소리가 났고 그는 세면대 쪽으로 걸어가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었다.정안은 빠른 속도로 달려가 수건을 들고 그의 곁에서 기다렸다.그녀는 남하준의 눈치를 살피며 의문스럽게 물었다.“근데 왜 자꾸 태준 오빠 얘기하는 거예요?”남하준은 말없이 손을 깨끗이 씻고 수건을 챙기려는데 정안이 바로 그에게 건네주었다.그는 잠시 멍해 있다가 그녀가 건네준 수건을 받아 들고 부드럽게 말
남하준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좀 피곤한 듯 말했다.“너 바쁜데 매일 올 필요 없어. 나 이틀 정도 쉬면 다 나을 거야.”유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푹 쉬어.”정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문을 열고 나가던 유미는 고개를 돌려 정안을 보았다. 정안도 그녀를 올려다보며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공기는 얼어붙었다.방문이 닫히고, 정안은 마침내 한시름 놓았다.그녀는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 고기를 집어서 올려 남하준에게 건네주었다.남하준은 입도 벌리지 않고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유미 갔으니까 더 이상 연기할 필요 없어.”정안은 움찔했다.“오빠, 나...”그녀는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돌보고 싶었다.물론 유미를 화나게 하려는 목적도 부인할 수 없었다.남하준은 그녀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받아 혼자 먹기 시작했다.“괜찮아. 난 기꺼이 너한테 이용당할 수 있어.”“내가 오빠를 이용해요?”“유미 화나게 하려는 거잖아.”정안은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너도 돌아가. 여기서 내키지 않는 일 하지 말고. 의미 없으니까.”남하준은 말을 빙빙 돌려가며 그녀도 쫓아내려 했고 정안은 마음이 좀 괴로웠다.“오빠는 내가 왜 유미 씨 화나게 한다고 생각해요?”남하준은 눈을 늘어뜨리고 식탁의 음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맛이 없었다.“여자들 사이 갈등을 내가 어떻게 알아. 알고 싶지도 않아.”분위기가 다소 무섭게 가라앉았다.정안의 휴대전화 소리가 두 번 울리자 그녀는 흘끗 보고는 일어섰다.“오빠 나 잠깐 내려갔다 올 테니까 먼저 먹고 있어요. 지윤이가 나 옷 챙겨왔대요. 저녁에 내가 샤워할 물 받아 줄게요.”정안이 발걸음을 옮기자 남하준이 그녀를 불렀다.“백완자, 내가 오해할 만 한 일은 하지 마.”정안은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무거운 마음으로 설명했다. “나 이미 Z국 과학연구원에 사직서 제출했고, 국무원에 M국으로 다시 귀화하겠다는 신청서도 제출했어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 열심히 처리하고 있어요. 조
정안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거실에서 지윤을 만났다.지윤이 옷 봉투를 건네주며 물었다.“언니, 왜 갑자기 금원에서 지내는 거예요? 도련님 대체 얼마나 다친 거예요?”정안은 짐을 받고 지윤과 소파에 앉았다.“큰 부상을 두 번 입어서 몸이 많이 허약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지윤은 우울해하며 침묵하자 정안이 물었다.“Z국 쪽엔 연락 없었어?”지윤은 안색이 굳어지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언니 신분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쉽게 언니를 놓아주려 하지 않죠. 어떻게든 언니를 쟁취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정안이 죄책감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계속 이 일을 맡아 처리해줘. 어느 쪽에도 미움 사지 않고 소란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지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안타까워하며 물었다.“대체 왜 Z국과 경분자를 포기하고 M국으로 돌아오려는 거예요? 전에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며 어디서든 똑같다고 하셨잖아요.”“만약 M국으로 돌아오면 경분자에 관한 연구는 물론, 강대국의 지원, 그동안 고생한 성과도 포기하는 거고 심지어 미래의 노벨상까지 포기하는 거잖아요. 그건 인생 절정의 순간이에요, 언니.”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기분이 울적했다.“언니,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정안은 견고하게 고개를 들더니 지윤의 근심 어린 눈길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니, 그럴 필요 없어. 계속 Z국과 협상해줘. 어떤 요구를 제기하든 나만 보내준다면 난 다 괜찮아.”지윤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어 계속 설득하려 했다.“언니...”정안이 손을 내밀어 막았다.“그만. 나 이미 결정했어.”지윤의 얼굴이 확 굳어지더니 엄숙하게 말했다.“도련님 때문이에요? 언니는 사랑을 위해 사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정안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야.”“그럼 대체 왜요?”정안이 지윤의 손을 잡더니 진지하게 설명했다.“지윤아, 사실 과학에는 국경이 있어.”지윤이 어리둥절해서 눈살을 찌푸렸다.“Z와 M국은 우방국이고 관계는 그런대로 원만한 편이지만
정안은 옷을 드레스룸에 놓고 허리를 굽혀 노트북 모니터를 응시했다.갑자기 들이닥친 머리로 시선이 막히자 남하준은 깜짝 놀라며 그녀의 옆모습을 부드럽게 바라보았다.정안이 그가 일하고 있는 걸 보니 화면 페이지 팝업 서너 개가 켜져 있었는데 이메일, 무기 재고표, 채팅방 등등이었다. 그녀는 몸을 쭉 내민 상태로 남하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까운 거리 탓에 그녀의 아름답고 달콤한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고 그녀 머리카락의 은은한 향기가 풍겨와 더없이 매력적이었다.남하준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눈빛이 깊어졌다.“오빠, 지금은 푹 쉬어야죠. 일은 잠시 내려놔요.”정안이 속삭이자 남하준은 노트북을 천천히 덮었다.그녀는 만족스럽게 웃더니 그의 손에서 노트북을 받아 멀리 있는 책상 위에 놓았다.“오빠, 몸 닦을래요? 아니면 씻을래요?”정안은 멀리 서서 속으로는 긴장했지만 짐짓 덤덤하게 물었다.남하준이 옆에 있던 휴대전화를 들어보니 저녁 8시였다.“나 신경 쓰지 말고 너 방에 가 쉬어.”정안은 두 손을 등에 얹고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서며 수줍게 말했다.“오늘 밤엔 오빠랑 자고 싶어요.”남하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멍해 있자 정안이 다급히 설명했다.“오해하지 마요. 오빠가 밤에 물 마시거나 화장실 가거나 혹시나 나 필요한 일 있을까 봐 그래요.”남하준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고 깊은 눈동자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정안은 이 남자의 생각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어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이거 2미터짜리 침대라 충분해요. 절대 오빠 상처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해요.”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엷게 웃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완아, 나 휴대폰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너한테 전화하면 돼. 그러니까 너 나랑 잘 필요 없어.”“그래도 나 걱정된단 말이에요.”남하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나랑 같이 자는 건 안 걱정 되고?”“나 그냥 오빠 잘 보살펴주고 싶을 뿐이에요.”“우린 부부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데?”남하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