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떠나는 요트 안에서 정안은 조용히 남하준 곁을 지켰다.그가 총에 맞았기 때문에 그들은 바다에서 바로 배를 타고 M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가장 가까운 접안 지점을 선택했다.상륙한 후 정안은 지나가는 행인의 전화를 빌려 구조 전화를 걸어 남하준을 병원으로 옮겼다.혼수상태에 빠진 남하준을 안고 그의 콧구멍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그녀는 이번 일을 겪고 나니 마음까지 단단해졌다.세상에 그 무엇도 남하준을 잃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없었다.백인호가 아니었다면 남하준은 벌써 섬에서 죽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백인호에게 아무런 감사의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부모를 죽인 원수로 여겼다.언젠가는 반드시 직접 백인호를 죽이고 부모님의 복수를 할 것이다.병원, 수술실 입구의 의자에 앉아 있는 정안은 눈꺼풀이 무겁고 피로가 극에 달했지만 수술실에 있는 남하준이 마음에 걸려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수술은 새벽 4시부터 아침 9시까지 이어졌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정안은 한시도 긴장을 놓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선생님. 저... 저는...”정안은 멈칫했다. 그들은 무슨 사이일까? 아마도 친구?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사가 위로했다.“너무 걱정 마세요. 남편분 생명에는 지장 없습니다. 총알이 어깨 갑골에 박혔지만 급소를 다치진 않았어요. 총알을 빼내는 게 어려워 피를 너무 많이 흘렸으니 몸이 좀 허약할 겁니다. 당분간 안정을 취하고 잘 돌봐주세요.”정안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움을 전했다.“너무 감사합니다. 선생님. 꼭 잘 돌볼게요.”“환자 신원 정보가 아직 입력되지 않았으니 시간 내서 신원 정보부터 보충하세요.”정안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합니다.”의사가 떠나고 곧 간호사가 남하준을 밀고 나왔다.정안은 간호사와 함께 침대를 밀었다. 남하준은 옷을 입지 않은 채 어깨에 붕대를 두르고 창백한 얼굴로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 있었다.병실로 돌아온 정안은 여전히 잠들 수 없었다. 남하준의 침대 가장자리에
정안은 말없이 그녀를 가만히 지켜봤다.류청이 두리번거리더니 물었다.“정호랑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어요?”정안은 류청을 문밖으로 끌어내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자세한 상황은 하준 오빠가 깨어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분명한 건 정호 씨가 매수당했어요.”류청은 경악하더니 격하게 부인했다.“그럴 리 없어요!”그들은 형제 같은 전우였으니 한동안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하준 오빠 부상도 그 사람 짓이에요.”류청은 주먹을 불끈 쥐고 핏대를 세우며 애써 분노를 억누르려고 정안에게 등을 돌리고는 고개를 들어 심호흡했다.정안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그가 이토록 분노하고 가슴 아파하니 남하준은 아마 그보다 백 배는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정안은 남하준이 생각 나 류청을 두고 병실로 들어갔다.그녀가 들어서는 순간, 눈앞의 광경을 보고 멈칫했다.유미는 침대 가장자리의 의자에 앉아 팔꿈치로 침대를 짚고 두 손으로 남하준의 손바닥을 꽉 잡고 자신의 얼굴에 대고는 애틋한 눈빛으로 남하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더니 남하준의 손등을 자기 입술로 잡아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이런 애틋한 장면을 보며 정안은 들어가야 할지 물러나야 할지 몰랐다.그녀에게 남하준의 손을 놓으라고 할지, 아니면 너무 걱정 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아쉽게도 그녀는 유미에게 남하준을 놓아주라고 할 어떠한 명분도 없었으니 혼자 기분 나빠할 수밖에 없었다.정안은 들어가 그녀의 맞은편에 서서 말했다.“유미 씨...”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유미가 고개도 들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돌아가세요. 여긴 내가 지킬게요.”정안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유미는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나지도 않자 불쾌한 눈빛으로 정안을 올려다보고는 남하준의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왜요? 더 볼 일 남았어요?”정안은 심호흡을 한 뒤 설명했다.“하준 오빠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요.”“그럴 필요 없어요. 깨어나면 류청 씨가 알려줄 거예요.”“지윤
‘그랬구나.’유미는 안색이 창백하고 정신이 혼미한 정안을 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왜 그래요?”“아... 아니에요.”집안은 애써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서운함을 감추려 했다.유미가 일어나더니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우리 사귀는 거 방금 알았어요? 하준이한테 못 들었어요?”정안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지만 애써 침착한 척 말했다.“하준 오빠 탓 아니죠. 제가 친구도 안 하고 연락도 끊고 살자고 했으니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것도 어쩌면 당연하죠.”“아. 그랬군요.”정안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언제 Z국으로 돌아가요?”흠칫 놀란 정안이 주머니의 박스를 만져보니 다행히 경분자는 그대로 있었다.“이번 주에요.”“대체 Z국에서 무슨 일 해요? 아니 계속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요. 할아버지와 그 거대한 그룹을 두고 가는 게 아쉽지 않아요?”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쓴웃음을 지으며 남하준을 슬쩍 다시 보니 가슴 끝이 아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아쉽죠.”그녀가 아쉬운 건 남하준이지 아무 의미 없는 재산이 아니었다.유미는 얼굴이 약간 어두워지며 긴장했다.“그래서... 안 가요?”정안은 몰래 눈물을 훔치고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가야죠. 가서 처리해야 할 급한 일들이 있어요.”“그럼 일이 잘 되길 바랄게요.”정안은 또 한 번 남하준을 훔쳐보았다. 이제는 그를 보고 싶어도 몰래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그는 이미 다른 여자의 남자친구이고 앞으로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될 것이다.생각해보니 그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정안은 애써 슬픔을 억누르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두 분 행복하세요.”“당연하죠. 고마워요.”정안이 몸을 돌리자 눈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르륵 흘러내렸다.심장이 너무 아파 미칠 것 같았다.정안은 이 세상에 한 여자를 계속 기다릴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남하준처럼 좋은 남자가 왜 그녀를 기다려야 할까?
병원을 나온 정안은 은행 현금인출기를 찾아 카드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돈을 인출했고 그 돈으로 비행기 표를 사서 M국으로 돌아갔다.비행기에서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내내 울었다.M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눈은 이미 무서울 정도로 빨갛게 부어올랐다.지윤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언니, 도련님 죽었어요?”정안은 그 말을 들으니 가뜩이나 비통한 심정이 더 괴로워 지윤을 끌어안고 실컷 울었다.“언니,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요. 우리 고인의 명복을 빌어요.”지윤은 눈물을 적시고 안타까워하며 위로했다.돌아가는 길에 정안은 울다가 지쳐 차에서 잠이 들었고 백씨 저택에 도착해 샤워하고는 곧장 잠이 들었다.그녀는 무려 15시간을 잤다.백진과 여은수가 지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지윤이 말했다.“도련님이 돌아가셨어요.”백진과 여은수는 경악하더니 한참을 슬퍼한 후에야 류청에게 전화해 확실히 물어보려 했다.여은수가 전화를 걸어 스피커폰으로 연결했고 백진과 지윤이 붙어서 열심히 들었다.“류청, 하준이 죽었나?”류청은 경악했다.“어르신. 누가 그래요?”세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고 여은수가 물었다.“안 죽었어?”“당연히 안 죽었죠.”류청은 좀 화난 듯했다.“도련님은 방금 M국으로 돌아오셔서 금원에서 쉬고 계세요. 상처를 입긴 했지만 목숨이 위험한 정도는 아니에요.”“그럼 우리 손녀가 왜 저렇게 슬퍼하고 있나?”여은수가 걱정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애가 눈이 퉁퉁 부어서 방에서 지금 열 몇 시간째 자고 있어. 아무것도 안 먹고 잠만 자고 있다고.”“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아마 도련님 때문에 Z국으로 돌아가는 계획을 망쳐서 그럴 수도 있죠.”지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맞는 말이네.”“그럼 이만 끊겠네. 하준이한테도 안부 전해주고.”“네. 감사합니다. 어르신.”류청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고 세 사람은 다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같은 시각, 금원.류청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돌아서서 유
유미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의자를 끌어와 남하준의 침대 옆에 앉더니 부드러운 말투로 위로했다.“하준아. 난 너 이해해.”“어릴 때부터 맘에 품었던 여자고 또 첫사랑이니 분명 잊기 힘들 거야. 또 성인이 돼서 어쩌다 네 아내가 되었지. 생긴 것도 예쁘고 성격도 좋고 온화하니 어느 남자가 설레지 않겠어?”“하지만 네가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는 널 사랑하지 않아. 이게 가장 치명적이야.”남하준은 칼로 가슴을 베이는 것 같아 미간을 천천히 찡그리며 꾹 참았고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그는 쉰 목소리로 슬픔에 잠겨 나지막이 말했다.“그럼 그 위험한 곳에 왜 나 구하러 왔겠어?”유미는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제 발로 들어간 게 아니라 잡혀 들어간 걸 수도 있잖아? 물어본 적 있어?”남하준이 침묵하자 유미는 잠시 생각한 후, 그의 핸드폰을 가져갔다.“정말 답답해 미치겠네. 사랑하면 고백해! 어차피 처음 거절당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번 거절당하면 네가 단념할 수도 있잖아!”남하준은 휴대폰을 홱 빼앗아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우리 일에 끼어들지 마.”유미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난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너 그 총상도 그 여자 보호해 주다가 맞은 거지?”남하준은 말없이 휴대폰을 이불 속에 숨겼다.“넌 그 여자를 위해 목숨도 버렸는데 그 여자는 어떻게 했어? 너 병원에 데려다주고 말았잖아? 나랑 류청 씨가 병원에 도착하니 빨리 떠나지 못해서 안달이더라. 뭐 빨리 Z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나?”유미는 말할수록 화가 나서 언성을 높였다.“Z국으로 돌아가긴 개뿔. 아마 지금 집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을걸?”“하준아. 난 네가 너무 안타까워. 왜 굳이 한 나무에 목을 매는 건데?”“그 한 나무가 네가 목매 죽을 가치가 있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 여자는 너 안중에도 없잖아?”“너 지금 혼자 침대에서 내려올 수도 없이 심하게 다쳤는데 그 여자는 뭐 하고 있어? 반 시간 거리에 있으면서 너 보러 오지도 않잖아? 하물며 전화 한 통, 메시지
이튿날.남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금원으로 가 남하준을 문병했고 점심 무렵, 류청이 직접 차를 몰고 그들을 남씨 저택까지 데려다주었다.남씨 저택 앞에서 류청은 정안을 만났다.집안에서 나오던 정안은 류청을 보자 잰걸음으로 다가갔다.“류청 씨.”류청은 걸음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하준 오빠 좀 어때요?”류청은 좀 쏘아붙이듯 말했다.“아가씨 덕분에 도련님 아주 건강하세요.”정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걱정으로 가득 찼다.“도련님 가족분들 모두 아침 일찍 금원으로 가 도련님보고 이제 돌아오는 길이에요. 그런데 아가씨는 왜 여기서 나오세요?”정안은 단풍나무 집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태준 오빠 보러왔어요.”류청은 심호흡을 하더니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속으로는 앞으로 그가 좋아하는 여자가 백완자처럼 무심하고 냉혈한 여자라면 직접 목 졸라 죽이겠다고 생각했다.그는 화를 억누르고 또박또박 말했다.“저희 도련님이 대체 아가씨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피해 다녀요?”정안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류청이 왜 이렇게 화내는지 몰랐다.“그게 무슨 말이죠?”류청은 두 손으로 가슴을 두른 채 정안의 순진한 얼굴을 바라보며 분개해서 말했다.“도련님이 마음속 깊이 줄곧 사랑해온 여자가 백하린이란 거 누가 몰라요? 아니. 이젠 백완자죠?”정안은 멍해졌다.“사실 아가씨도 도련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죠? 근데 그 깊은 마음을 귀찮게 여기고 멀리하잖아요. 도련님은 당신을 존중하고 있어요. 방해하지 않고 매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두는 거죠. 겨우 그쪽을 내려놓고 새 삶을 선택했는데 왜 뜬금없이 목숨을 걸고 혼자 그 섬에 가냐고요? 그럼 도련님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정안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고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남하준은 정말 한 달 만에 그녀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새 삶을 시작한 것이다.어쩌면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유미라 새로운 사랑에 빨리 빠졌는지도 모른다.정
깔끔하고 큰 방에서 남하준은 눈을 감고 침대 머리맡에 반쯤 누워있었다. 부드러운 노을빛이 베란다에서 비쳐 들어와 그의 잘생긴 얼굴을 매혹적으로 물들였다.지금의 그는 조금 초췌해 보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정안은 오는 길에 이미 마음 다짐을 했다.그는 이미 싱글이 아니니, 기대하지 말자, 환상을 품지 말자, 절대 아무런 환상도 품지 말자고.하지만 그를 보고 나니 여전히 걷잡을 수 없이 설레었다.그녀는 베이지색 꽃무늬 롱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리고 왼손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흰색 국화 다발을 들고 오른손에는 보건 식품 두 상자를 들고 있었다.그렇게 불안해하며 쭈뼛쭈뼛 서 있었고 얼굴에는 반달 웃음을 지으며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남하준은 그녀의 미소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왔어?”“네.”정안은 보건 식품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보건 식품 사 왔어요.”“저기 둬.”남자가 방의 낮은 탁자를 가리키자 정안이 다가가 선물을 내려놓고 손에 든 꽃을 보더니 돌아서서 물었다.“오빠. 꽃은 어디에 둘까요?”남하준이 침대 옆 캐비닛을 가리켰고 정안이 다가가 꽃을 놓았다.아주 가까운 거리였고 남하준이 고개를 들어 그녀의 예쁜 얼굴을 보고 있었다.정안은 그의 뜨거운 시선을 보더니 즉시 비켜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옆의 의자를 보고 그의 침대 옆에 당겨 앉았다.“몸은 좀 괜찮아요?”정안이 인사치레로 묻자 남하준이 씁쓸하게 웃었다.역시 그녀는 환경을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섬의 감옥에서 주동적으로 그의 손을 쓰다듬고 몸을 만지며 친밀한 행동을 서슴지 않던 그 완자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남하준이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응. 괜찮아.”“상처 아직도 아파요?”정안이 그의 어깨를 보며 물었다.그가 옷을 입고 있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그녀는 지금 그와 눈이 마주칠까 봐 어깨를 볼 수밖에 없다.“가끔 아파.”“혼자 걸을 수 있어요?”그녀가 또 묻자 남하준은 말없이 그녀를 빤
남하준은 활짝 웃으며 부드러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완아.”정안이 고개를 들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네?”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국가는 네가 필요해.”정안은 달콤하게 웃더니 나지막이 물었다.“그럼 오빠는요?”남하준은 경악해서 멍하니 정안을 바라보았다.순간 정안은 자신의 물음이 분수에 맞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제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인데 이런 때아닌 물음은 선을 넘었다.남하준이 정신을 차리고 막 대답하려고 하자 정안이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사과했다.“미안해요. 장난이었어요.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남하준의 말은 목구멍에 막혀 버렸고 정안은 더욱 어색해져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빠. 푹 쉬세요. 나 갈게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떠났고 남하준이 급하게 소리쳤다.“완아!”너무 아쉬웠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려는 걸까?남하준이 불렀지만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급한 그는 이불을 제치고 침대에서 내려 쫓아가려 했다.“완아!”그가 부를수록 그녀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고 남하준의 목소리는 더욱 무거워졌다.“백완자!”정안의 손이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남하준의 외치는 소리는 더욱 강해져 그녀의 풀네임까지 부르자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돌아섰다.그녀가 막 몸을 돌리자 남하준의 허약한 몸이 갑자기 그녀 몸 위로 덮치며 쓰러졌다.정안은 뒤로 밀려서 등을 문짝에 부딪혀서 몸으로 막아냈고 빠르게 남하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남하준은 두 손으로 문을 받치고 안간힘을 쓰다가 정안의 도움으로 겨우 자리를 잡았다.그러나 그는 몸의 힘의 태반이 정안을 누르고 있었다.당황한 정안은 긴장하고 가슴 아파하며 그의 허리를 꼭 껴안고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그가 침대에 앉아 있을 때 이렇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하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남하준은 자신의 허약한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일어나면 현기증이 났지만 그녀를 보고 싶은 그의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백완자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
지우는 예전에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그녀는 남태준 같은 유형의 남자를 좋아했다.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좋아함으로써 그의 성격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감싸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아니요. 난 당신 같은 돌직구가 좋아요.”남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맑고 큰 눈과 촉촉한 입술을 보니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일어서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가자. 밥 먹으러 가자. 다른 일에 주의력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널 잡아 먹을 것 같아.”지우는 부끄러워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었다.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식탁 앞에 놓아주었고 식탁 위의 반찬 세 가지와 국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 정말 요리를 잘하는구나.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 정도로 비주얼이 훌륭해.”지우는 기분 좋게 앉아 그에게 국을 떠 주었다.남태준도 따라 앉아서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맛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맛있어. 지우가 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다니.”지우는 그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뿌듯해졌다.그녀가 만든 건 그저 일상적인 가정식 음식이었고 평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조리 방법도 단순했다.갈비찜, 토마토 달걀 볶음, 청경채, 그리고 어두 무찌개였다.그러나 남태준은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싱글벙글했다.“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면서 그래도 나 음식 못하게 할 거예요?”지우가 궁금해서 묻자 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 목을 축이고 말했다.“만약 네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고 취미라면 그리고 힘들지 않다면 해도 돼.”“하지만 네 취미도 아니고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한다면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거듭하며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그러면 너도 힘들잖아.”남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만지며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손으로 지우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빛은 뜨거웠다.“내 침대에서 좀 더 오래 자지 그랬어?”“네?”지우가 의혹스러운 듯 맑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했다.“내가 돌아오면 같이 잘 수 있게.”지우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졌고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줍게 중얼거렸다.“누구 좋으라고요!”“앞으로 나 밥해주지 마.”남태준은 그녀의 하얀 작은 손을 만지고 입가에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왜요?”지우는 자신의 요리 솜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늘 그녀가 요리했으니.“내가 돌아와서 하면 돼. 내가 바쁘면 요리사 부르면 되고.”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문지르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보았다.“내 여자친구는 요리나 집안일 같은 거 할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지우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 나에게 네 일을 공유하고 내 일을 경청하고 각자의 일을 마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시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뭐가 시시한 일인데요?”“영화 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쇼핑하고...”남태준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수줍은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그의 키스는 뜨거웠고 큰 손은 천천히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아 그녀의 엉덩이를 안으로 오므렸다.진한 키스가 뜨거워질수록 지우는 그의 몸 반응이 점점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앉은 위치가 애매해 커다란 것이 몸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온몸은 저도 모르게 나른해지고 팔다리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고 아랫배가 공허해졌다.떨림, 수줍음 그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그녀를 도망치게 했다.그녀가 옮기려고 할수록 남태준이 그녀를 껴안고 더 바싹 달라붙었다.진한 키스가 불러온 욕망에 두 사람의 숨결은 가빠졌다.남태준은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서 떠나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 목소리를 잃은 듯 쉰 목소리로 가볍게 중
“그럼...”임다희는 믿기 싫은 듯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목숨 걸고 널 구한 건 내가 경찰이기 때문이야.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어.”“그럴 리 없어.”임다희는 분노하여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울먹였다.“나 절대 못 믿어. 나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남태준은 긴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임다희, 난 널 위해 목숨을 버린 적 없어.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무슨 논리?”임다희가 눈물을 쓱 닦았다.“넌 그래도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니까 측은한 마음에 그 요트를 떠나라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네가 내 신분을 폭로한 거야.”남태준은 그녀를 구하려던 동기를 차근차근 분석해줬다.“네가 내 스파이 신분을 폭로하면서 우리 둘 다 위험에 빠졌어.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 난 절대 자기 살길만 도모하고 다른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어. 경찰의 책임감으로 너 데리고 도망친 거야.”임다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남태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죽을 뻔한 건 너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야.”지금 남태준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그의 관대함 때문이었다.“너 지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는 거야?”임다희가 눈물이 흐릿해져서 묻자 남태준이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맞아.”“하지만 지우가 너를 차버렸어.”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고상한 자태를 뽐내며 조롱하듯 물었다.“이번에도 흔쾌히 승낙하고 깨끗이 잊은 거야?”남태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질투가 많은 여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맞아. 깨끗이 잊었어. 이미 끝난 인연이고 지나간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어? 이 세상에 여자가 수도 없이 많은데 한 나무에만 매달릴 필요 없잖아?”임다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매섭게 말했다.“쓰레기!”그리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