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어디야?”남하준의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물처럼 부드러우며 말투에는 다급함이 배어 있었다. “데리러 갈게.”정안은 순간 마음이 따듯해져 부드럽게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이미 차 탔으니까 주소만 보내줘요. 금원이에요?”“아니, 위치 보낼게.”“그래요. 그럼 이따 봐요.”말을 마친 그녀는 통화를 끊고 메시지를 열어 남하준이 보내온 위치를 보았다.그녀는 운전 기사에게 위치를 말하고 조용히 앉아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웠다.아직 남하준이 백하린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그녀가 이렇게 충동적으로 남하준을 만나러 달려가는 것은 단지 그가 백하린과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남하준은 더 좋은 여자를 만나야 한다. 그렇게 더럽고 나쁜 범죄자와 결혼하면 안 된다.30분 후, 차량이 멈추자 운전사가 입을 열었다.“도착했습니다.”정안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는 급히 지갑을 꺼내 돈을 꺼내려 했다.이때 운전자의 유리창이 울리고 유리창이 내려진 후 5만 원권 지폐가 운전자에게 전달됐다.“감사합니다.”운전기사는 기쁜 마음으로 감사를 표했고 정안은 멍해져서 돈 주는 동작을 멈추고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완아, 내려.”남하준의 맑은 목소리는 아주 듣기 좋았다. 낮고 부드럽고 마치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사람을 상쾌하게 했다.정안은 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너무나도 익숙한 남자의 얼굴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수려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흰 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은 그는 멋스러움이 극에 달했다.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니 경치가 그림 같은 펜션이었다.“하준 오빠.”정안은 조금 긴장한 나머지 어색하게 인사했다. 그가 직접 펜션 밖까지 마중 나올 줄은 몰랐다.그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나 친구들이랑 모임 있거든. 괜찮다면 너도 같이 갈래?”정안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두 사람은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고
질문을 던진 남하준의 검은 눈동자에 기대와 함께 희미하게 붉은 핏발이 서 있는 걸 보고 그녀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은은한 아픔이 그녀를 자극하고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모순된 심리에 휩싸였다.남하준은 담담한 척했지만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단 한순간이라도 좋아한 적 없어?”정안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꾹 참고 있었고 한참 후 남하준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되물었다.“그게 오빠가 백하린이랑 결혼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남하준은 씁쓸하게 웃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그래, 알겠어.”그는 쓸쓸함이 온몸에 드리워진 채 낮게 중얼거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정안은 속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뭘 알았다는 걸까?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이 남자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M국 장군에게 시집갈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신분 차이가 컸고, 그에게 시집가는 것은 Z국에서 그녀의 연구 사업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남녀 간의 사랑은 국가의 대업 앞에서 너무 하찮고 보잘것없었다.그녀는 가문의 재산도 상속받을 생각이 없으니 사랑은 말할 것도 없었다.“오빠는 더 좋은 여자 만나야 해요. 백하린은 자격 없어요. 게다가 내 신분으로 제멋대로 날뛰고 있으니 난 절대 보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남하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백하린은 이미 Z국에서 네 신분증 재발급을 신청했어.”정안은 순간 긴장해서 멍해 있었고 남하준이 덤덤하게 말했다.“Z국에 가서 감히 국적을 이전할 수는 없지만 네 신분증으로 M국에서 혼인신고는 할 수 있어.”“백씨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나랑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남자에게 얼마든지 시집갈 수 있어. 지금 너한텐 두 가지 방법밖에 없어. 모두에게 네가 백완자라고 밝혀. 아니면 네 신분으로 시집가게 놔둬. 그럼 네 할아버지가 작성한 유언장은 효력이 있어.”정안은 주먹을 불끈 쥔 채 꾹꾹 눌러 참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절대 내 신분으로 오빠한테 시집가게 할 수 없어요. 절대
정안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이 많은 곳에 익숙하지 않았다.룸 안에는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앉아 있는 큰 원형 테이블이 있었다.그중 두 사람은 유동진과 유미였고 다른 사람들은 안면이 없었다. 나이는 남하준과 비슷했고 모두 관료 기질로 매우 위엄 있고 늠름했다.그녀가 긴장해서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하자 남하준이 뒤에서 속삭였다.“들어가.”정안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문이 닫히자 남하준이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인사해. 내 친구 완자야.”정안은 뜨끔 해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남하준이 자신을 이렇게 소개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어색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미소를 지으며 모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모두 내 전우이자 친구들이야.”정안이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나 하준이 옆에 이성 친구 있는 거 처음 봐요.”유미가 불쾌한 듯 말을 끊었다.“야, 난 여자 아니야?”그러자 모두가 한바탕 웃더니 유미에게 너도나도 농담을 던졌다.남하준은 정안을 자신의 옆에 앉히고 깨끗한 그릇과 젓가락을 그녀 앞에 놓아주고는 그녀에게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모두 친한 친구들이니까 편히 있어.”정안은 얌전하고 단정히 앉아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모든 사람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들의 옷차림과 포스를 보니 분명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남하준과 호형호제하며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상당한 권력을 지녔거나 우정이 깊거나 어쩌면 둘 다 갖췄는지 모른다.유동진은 술 한 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안에게 소리 없이 따라주며 말했다.“다인 씨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니면 완자 씨?”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다 괜찮아요.”유동진은 그녀에게 술 반 잔을 따라준 후 남하준의 잔을 가리키며 말했다.“절대 하준이 따라 배우면 안 돼요. 술자리에 와서 술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차로 대신하는 건 너무 재미없거든요.”유미가 불쾌한 듯 입을 열었다. “누가 술자리에서 꼭 술을 마셔야
밤새 술을 권했지만 아무도 남하준이 술을 마시게 하지 못했다.그런데 정안이 오자마자 뜻밖에도 그녀의 술을 대신 마셔주고 있었다.모두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박수를 쳤고 정안이 술 마시는 것보다 더 재밌어했다.“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모두 점점 더 흥분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전략을 바꾸어 하나둘씩 정안에게 술을 권하러 달려갔다.그리고 모두 유동진의 수법대로 자신이 먼저 한 잔 비우고는 정안에게 술을 마시라고 강요했다.정안은 거절도 모르고 술도 모르니 전부 남하준이 대신 마셨다.한편 옆에서 보고 있던 유미의 얼굴이 새파래졌다.얼마 후 그녀가 일어서서 남하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하준아, 그만 마셔. 이건 다인 씨 술이야. 마시든 안 마시든 자기가 알아서 하라 그래. 너한테 흑기사 요청한 적 없잖아.”정안은 의자에 앉아 얼굴이 붉게 물든 남하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런 술 모임에 참석한 적이 없어 술자리 예절도 모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유동진이 그런 유미를 끌어내며 웃으며 말했다.“유미야, 그만해. 하준이 이 자식 처음으로 마시겠다잖아.”“그래, 유미야. 말리지 마.”남하준은 술잔을 내려놓고 미간을 찡그리고 유동진을 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이제 그만해.”유동진은 활짝 웃었다.“뭘 그만해? 난 네가 아니라 다인 씨랑 마시는 거야.”유동진은 또 한 잔 따라 정안의 손에 가져다주고 몸을 숙여 다가갔다.“다인 씨 아주 대단하네요. 하준이가 자기 룰을 깨게 만든 여자라니. 내가 한 잔 더 올리죠.”유동진은 자신이 먼저 마시고 정안의 술잔을 받쳐 그녀의 입으로 가져갔다.남하준은 꾹 참고 손을 뻗어 그녀의 술을 막았다.술잔을 위로 밀어 올리자 정안의 입술이 남하준의 손등에 붙었다.순간의 짜릿함에 정안은 온몸이 팽팽해지며 수줍고 긴장된 듯 움츠러들었다.남하준은 또 한 번 그녀의 잔을 빼앗아 유동진을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완이 술 못해.”“딱 한 잔만. 한 잔으로 안 취해.”유동진은 웃으며 남하준에게 다가가 어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정안이 걸으며 물었지만 남하준은 말없이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고 그녀를 데리고 정원 오솔길을 몇 군데 가로질러 갔다.펜션의 한 저택 문 앞에 멈춰 서자 그녀의 손을 놓았다.정안이 주위를 돌아보니 환경이 아름답고 푸른 식물이 둘러싸고 있어 독특하고 그윽한 곳이었다.남하준은 말없이 벤치에 앉더니 말했다.“나랑 같이 있어 줘.”정안은 흠칫 놀라더니 긴장해서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고개를 들어 정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어둡고, 입가에 어쩔 수 없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몸에 손 안 대. 그냥 오늘은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정안은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의 뜨거운 눈을 바라보며 더이상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그녀는 남자를 외면하고 옆에 있는 식물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시간이 늦었어요. 다 큰 성인남녀가 같이 있는 건 올바르지 않죠.”남하준은 차갑게 웃더니 말투에는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다.“우리가 부부로 지냈을 때 한 침대에서 자면서도 너한테 강요한 적 없잖아. 근데 이제 와서 내가 너 다칠까 봐 두려워?”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긴장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몸이 굳었다.“네가 백완자든, 서다인이든 난 다 사랑했어.”남하준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전에는 내가 변덕스럽고 마음이 갈대 같은 남자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한 사람은 오직 너였어. 네가 누구든, 어떤 이름이든 너에게만 마음이 움직였으니까.”남자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정안은 놀라서 얼어붙었고 심장이 심하게 벌렁거리고 호흡이 흐트러지며 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오빠 취했어요.”정안은 부끄러움 때문인지 알코올 때문인지 귀밑에서 목까지, 뺨까지 빨개진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아니, 안 취했어.”남하준은 손을 들어 아픈 이마를 짚고 팔꿈치를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나 좋아해달라고 강요
“오빠 미안해요.”장안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죄책감에 힘들었다.남하준은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두 손을 힘없이 늘어뜨리고는 붉게 물든 두 눈을 감았다.“알겠어.”그는 쫓아가지 않고 벤치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눈을 감아도 눈가에 두 방울의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따뜻한 노란색 불빛이 자욱하고 몽롱하여 남자의 쓸쓸하고 고독한 그림자를 휩싸고 있었다.정안은 빠른 걸음으로 뒤돌아보지 않고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그만큼 확고했다.남하준은 이마에 손을 얹고 눈가의 눈물을 가리며 외로움과 고통을 느꼈다.10년 전, 이미 이런 고통을 한 번 맛보았지만 지금 다시 겪으니 여전히 괴로웠다.정안은 펜션을 떠나 택시를 탔고 차에서 그녀는 내내 울었다.운전사는 그녀가 실연당한 줄 알고 계속 위로했지만 정안은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녀는 남자에게 차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도 너무 사랑하는 남자를 거절했기 때문이다.백씨 저택에 들어왔을 때, 지윤이 그녀에게 문을 열어주었다.지윤은 눈물범벅이 된 정안이 눈이 빨갛게 부어오른 채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언니 왜 그래요? 누가 언니 괴롭혔어요? 왜 울어요?”정안은 걸어가면서 눈물을 닦았다.“나 괜찮아.”“말해봐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누가 언니 괴롭혔죠?”지윤은 그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고, 정안은 무기력하게 침대에 쓰러져 이불 속에 틀어박혀 머리를 푹 덮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윤은 그녀의 옆에 앉아 걱정스레 물었다.“언니 대체 어디 갔었어요? 언니 이러면 내가 너무 걱정되잖아요?”정안은 이불을 들썩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나한테 고백했는데 내가 무정하게 거절했어.”“누가요? 남하준 씨가요?”정안은 미쳐버릴 것 같은 아픔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응. 원하는 게 많은 것도 아니었어. 정말 아주 간단했는데... 부부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심지어 친구도 아니어도 되니까 가끔
정안은 제자리에 멈추었고 백하린은 화가 치밀어 올라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며 물었다.“너 하준 오빠한테 무슨 말 했어? 대체 뭐라 말했길래 갑자기 나랑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꾸냐고?”정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백하린은 살벌한 눈빛으로 또박또박 말했다.“너 맞지? 어젯밤에 하준 오빠 만나고 왔지 너? 사람이 묻잖아? 대답하라고!”“맞아.”“이 재수 없는 년이. 진짜 너였어!”백하린은 화가 치밀어 곧장 손바닥을 치켜들었다.그러나 그녀의 손바닥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달려온 지윤의 손에 쥐어졌다.백하린은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통증이 온몸을 관통하여 비명을 질렀다.“악!”아팠던 백하린은 지윤의 손을 세게 뿌리치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잡혔던 손목을 꼭 잡고 지윤을 경계하며 노려보았다.지윤은 아무리 봐도 연약한 여자인데 왜 이렇게 아픈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어느 혈 자리를 꼬집어 온몸의 힘줄이 공격당하는 듯한 저린 통증이 그녀를 두렵게 했다.지윤은 정안의 앞에 서더니 오만하게 웃었다.“백하린 씨, 배운 사람답게 앞으로 손찌검은 하지 마시죠? 만약 우리 언니 얼굴에 흠집이라도 난다면 그 손목 아작 날 줄 알아요.”백하린은 이를 악물었지만 겁에 질려 뭐라 할 수 없었다.“너...”“내가 뭐?”지윤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그녀를 노려봤다.“집사!”그때 집사가 급히 다가와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무슨 분부 있으십니까?”백하린은 정안과 지윤을 가리키며 노기등등해서 말했다.“지금 당장 이 뻔뻔스러운 두 년 쫓아내. 앞으로 우리 집엔 발도 못 들이게 하라고.”“네, 아가씨.”집사는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고 곧 여섯 명의 보안 요원이 도착했다.지윤은 정안을 보호하며 긴장해서 물었다.“이제 어떡하죠?”정안도 어쩔 수 없었다.더 이상 백씨 저택에 남아 있을 수 있는 핑계가 없었다. 이대로 쫓겨나는 거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주거침입죄로 경찰서에 끌려갈 가능성도 있었다.기세등등해진 백하린은 오만하게 큰소리로 외쳤다.“당장
“할아버지 깨셨어요?”백하린은 달려가 백진의 팔짱을 꼈다.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감격한 척 눈물을 글썽였다.“다행이에요. 드디어 깨어났으니. 너무 다행이네요...”정안과 지윤은 평온하기 그지없었고, 백진이 깊은 눈으로 정안을 다정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담담하게 말했다.“나 소파로 부축해다오.”백하린은 눈물을 닦고 백진을 부축해 소파로 향했다.30분 후, 백인호가 부랴부랴 돌아와 소파에 앉아 있는 몇 사람을 보자 충격과 함께 백진을 바라보는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했다.백진은 눈도 안 들고 덤덤하게 차를 마셨다.이내 여은수도 급히 뛰어 들어왔고, 백진이 깨어난 것을 보고는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떨며 눈물범벅이 되어 걸어갔다.“영감. 드디어 깨어났어...”여은수는 백진의 곁으로 가서 그의 얼굴과 몸을 만지며 말했다.“진짜 괜찮은 거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당신 정말 회복했군요.”백진은 여은수의 손을 밀치고 불쾌감을 드러냈다.“됐어. 모두 앉게.”백인호는 심호흡하고 마음을 추스르고 다가가 앉더니 흥분한 척 입을 열었다.“아버지, 하늘이 도왔네요. 너무 잘 됐어요.”“그래.”백진은 싸늘하게 대꾸했다.백인호는 단정하게 앉아 있는 정안을 보고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지윤을 보더니 눈빛이 싸늘해졌다.모두가 자리에 앉자 백하린이 참지 못하고 정안을 가리키며 말했다.“할아버지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이 여자 정말 괘씸해요. 하준 오빠가 나랑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여자가 오빠에게 뭐라고 했는지 하준 오빠가 결혼을 번복하고 있어요.”“그리고 나랑 하준 오빠 혼사로 할머니를 협박해 우리 집에 틀어박혀 있고요. 할아버지, 제발 따끔하게 혼내주세요.”백진이 백하린을 힐끗 바라보는 눈빛에는 애써 숨겨둔 혐오감이 가득했고 다시 정안을 바라볼 때 눈빛이 한껏 부드러워져 나긋나긋 말했다.“이봐요. 우리 집엔 왜 들어온 거죠?”정안은 덤덤하게 말했다.“저 하준 씨랑 이혼하고 빈털터리로 나왔어요. 그리고 전 백 선생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