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막막할 때, 서다인이 일어나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나 따라와요.”남하준은 그녀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끌려갔다.침실에 들어선 후 서다인은 문을 잠그고 남하준을 큰 침대 앞으로 끌어당겼다.“앉아요.”서다인은 긴장된 듯 침을 삼켰고 남하준은 앉아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얼굴에 눈에 보이는 홍조를 띠고 맑고 깨끗한 눈매가 수줍게 변하고 나쁜 짓을 하려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순간 그녀는 남하준의 어깨를 두 손으로 눌러 그를 침대에 쓰러뜨렸다.그녀는 몸을 숙이고 숨을 몰아쉬고는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몰래 나랑 엄마 유전자 검사를 해봤는데 난 정말 친딸이 아니었어요.”“내가 그 집안 양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정말 서다인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의사가 난 아직 처녀라고...”서다인은 그 말을 할 때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얼굴부터 귀까지 빨개졌다.그녀는 남하준 위에 엎드려 약간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의 옷 단추를 천천히 풀어주며 호흡이 더욱 흐트러졌다.“증명하고 싶어요...”남하준의 눈빛이 뜨거워지고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더니 서다인의 거침없는 손을 덥석 잡았다.“완아, 난 너 믿어. 이런 식으로 증명할 필요 없어.”서다인은 움찔하더니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몸을 뒤집어 서다인을 누르고 한 손으로 상체의 무게를 짚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는 여자의 도발을 참을 수 없었다. 단추 두 개를 푸는 동작만 해도 이미 입이 바짝 마르고 마음이 들떠서 몸이 더워 죽을 지경이며 부풀어 올라 견디기 힘들었다.남하준은 한껏 쉰 목소리로 말했다.“우린 부부야. 잠자리는 부부간의 사랑을 나누는 일이지 뭘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야.”서다인은 부끄러운 듯 눈을 늘어뜨리고 그를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방금 마음이 너무 급했어요. 당신이 나 안 믿어줄까 봐. 몰래 검사한 보고서는 이미 버렸거든요.”남하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네 말 믿어. 하
남하준이 키스하려 할 때 그녀는 얼굴을 돌려 피했다.남자의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가에 찍혔고 그녀는 긴장하며 중얼거렸다.“나... 씻고 싶어요.”서다인은 온몸이 뜨겁고 볼이 붉어지며 부끄러워서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야릇한 기류가 번지면서 그녀의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남하준은 천천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는 그녀 몸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일어나서 두말없이 화장실로 뛰어갔다.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입을 살짝 벌리고 심호흡을 했다.드디어 올 것이 왔다.이미 남하준에게 사실을 알렸으니 그는 그녀의 몸이 더럽다며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서다인은 예전처럼 많은 걱정을 하지 않고 깨끗하게 씻었다.처음인 만큼 서로에게 좋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30분 후.서다인은 깨끗한 잠옷을 입고 욕실에서 나왔다.이때 남하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베란다와 탈의실을 둘러보았지만 남하준은 보이지 않았고 텅 빈 방을 바라보며 그녀의 마음도 가라앉았다.그는 바쁜 걸까? 아니면 도망간 걸까?서다인이 침실을 나와 서재 입구에 이르니 서재 문이 열려 있고 남하준은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서다인은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려다가 몇 초 만에 천천히 손을 놓고 돌아섰다.이런 일은 급하지 않았다.서재에서 남하준은 입구의 서다인을 힐끗 보았다. 그는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지만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서다인이 뒤돌아서서야 천천히 눈을 들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어둡고 무거웠다.그는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고 눈을 감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충동을 다스렸다.싸움터에서 도망치는 것은 남하준 스타일이 아니었다.그러나 그는 그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이번에 탈영병이 되었다.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녀의 신분이 회복되는 순간 그들의 결혼은 무효로 된다.무효한 결혼인데,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품에 안을 수 있을까?그녀에게 마음에 품은 애인이 있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절
서다인은 다시 전화를 끊었다.곧이어 연결음이 뚜뚜 하고 전화가 계속 밀려들었다.그녀는 인터넷이 깨끗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고 그녀의 번호를 유출했다.10분도 안 돼 10여 통의 전화가 들어왔고 수십 개의 메시지가 필사적으로 폭격했다.서다인은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팽팽해지는 것 같아 급히 휴대전화를 껐다.그녀는 식욕이 없어서 아침을 먹지 않았다.미칠 것 같았다.그녀는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늘어뜨린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커다란 스트레스에 그녀는 곧 무너질 것 같았다.그녀는 이 일로 인해 남하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다.“사모님, 괜찮으세요?”도우미가 걱정스레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너무 걱정 마세요. 도련님이 다 해결하실 거예요.”서다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재빨리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2층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방에 들어간 그녀는 문을 닫고 전원을 켜 서지석의 번호를 눌렀다.2초도 안 되어 서지석이 전화를 받았다.“세상에, 이게 누구야?”서다인은 눈물을 꾹꾹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다.“대체 어쩔 생각이야?”“오빠가 어제 말했잖아? 160억을 일시불로 주면 된다고.”그녀는 너무 화가 나 숨통이 아팠다.“나 돈 없어.”“너 유명한 화가 지완이잖아? 그림 몇 작품만 그리면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 아니야?”“그리고 너한텐 남하준이 있잖아?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거 조금만 받아도 160억은 껌이지.”“돈과 세력을 다 갖춘 부부가 친정을 안 챙긴다는 게 말이나 돼?”서지석은 말할수록 더욱 거만해졌다.“내가 그 머나먼 변강 지역까지 가서 매제한테 일자리 달라고 했는데 날 개처럼 내쫓았잖아? 날 전혀 존중하지 않았어. 다인아, 오빤 절대 못 참는다?”“그래서 엄마 아빠까지 끌고 TV에 나와 소란을 피웠어? 내 과거를 털고 잔뜩 부풀려 이야기하면서 날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젠 내 개인정보까지 언론에 퍼뜨려?”“난 너한테
서다인은 멍해져서 서둘러 옷을 입고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금원을 떠나 차를 타고 뉴빌리지 대문 밖으로 향했다.뉴빌리지는 M국 고위 행정관리와 권세가들이 사는 곳으로 대문 밖은 경비가 삼엄하여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었다.서다인은 뉴빌리지 대문을 나서면서 밖이 떠들썩한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오장육부가 은은하게 아파 주먹을 불끈 쥐고 가늘게 떨었다.진화연의 뒤에는 친척 몇 명이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서다인, 엄마가 무릎 꿇는다. 네 아빠와 오빠를 살려다오.]진화연은 현수막 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범벅으로 된 채 영락없는 불쌍하고 여린 어머니의 모습이었다.구경꾼의 3분의 2 이상이 기자와 매체였고 카메라와 휴대전화가 가득했다.서다인은 진화연을 본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그녀는 진화연의 딸은 아니지만 3년 동안 정성을 다해 섬긴 것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개를 키워도 주인을 물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진화연의 이런 행동은 죽은 돼지가 끓는 물에 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패가망신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서다인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물었다.“지금 뭐 해요?”진화연은 고개를 젖히고 서다인을 보더니 순간 소리 내어 울었다.“다인아, 엄마가 잘못했어. 제발 용서해줘.”이 순간 모든 언론 기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가 바로 사건의 여주인공, 남하준 장군의 부인 서다인인 것을 보고 흥분하여 앞으로 몰려가 사진을 찍고 라이브 방송을 켰다.경호원은 상황이 위험해지자 서다인의 곁을 지키며 목소리를 낮추어 주의를 주었다. “사모님, 먼저 집에 돌아가시죠. 여긴 도련님께서 해결하실 겁니다.”서다인은 마음이 매우 괴로웠다.그녀는 남하준에게 의지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그에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그는 국가 대사를 처리하고, 그룹의 일을 처리하고, 바깥에 많은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게다가 남씨 집안도 엉망이고 넷째 형은 아직 병원에서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런 상황에서 모든 걸
진화연은 더 크게 울었다.그러자 한 기자가 물었다.“서다인 씨, 왜 부모님을 책임지지 않는 거죠? 그리고 부모님께서 TV에서 서다인 씨의 과거를 폭로했는데,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서다인은 몇 발짝 뒤로 물러서 마음을 추스르고 모든 언론사 기자들을 향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기자님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제 영상을 전 세계에 공개해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3년 전 기억을 잃었고 내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지만 전 절대 서다인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저를 서다인의 신분으로 살게 하도록 이 모든 걸 꾸몄어요.”“이 사실을 공표하면 전 아마 위험에 처하겠죠. 하지만 이 가족 사람들은 정말 지긋지긋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네요.”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서씨 일가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진화연이 일어나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다인아,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서다인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또박또박 말했다.“난 성형하지 않았어요. 이건 병원에서 증명할 수 있죠. 그러니까 제 가족, 친구, 동창이나 저를 본 적 있는 분들은 연락 바랍니다.”진화연은 바로 미리 준비한 DNA 보고서를 꺼내며 말했다.“우린 이미 두 번이나 유전자 검사를 받았어. 넌 내 딸이 맞아. 내 딸이 확실하다고...”서다인은 진화연의 손에 든 DNA 보고서를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나도 당신처럼 이 가짜 보고서에 속았어요. 이젠 당신 딸 잘 찾아봐요. 난 아니니까.”말을 마친 서다인은 기자들에게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여러분 제가 가족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고 두 명의 경호원이 그녀의 뒤를 지키며 몰려든 기자들이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금원으로 돌아온 서다인은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남하준과 이 일을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녀는 참지 못하고 말해버리고 말았다.당연하게도 그녀는 다시 한번 실검에 올랐고 이번에는 더 떠들썩하고 파격적인 내용이었다.서다인은
남하준은 서다인의 허리를 두르고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는 다정하게 속삭였다.“완아,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난 네 선택 존중해.”서다인은 그의 품에 안겨 말했다.“내가 미리 말하지 않았다고 화내지 않아요?”“너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 어쩔 수 없었던 거잖아?”남자의 이해에 서다인은 마음이 따뜻했다.“맞아요.”그녀는 당시 진화연의 핍박을 받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너무 급해 모든 것을 말해버린 거였다.“괜찮아. 내가 있잖아.”남하준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했다.여자는 그가 키스한 자리에 따듯한 힘이 들어가 사지를 관통하는 느낌이었다.그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뭐 좀 먹었어?”남하준이 묻자 서다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입맛이 없어요.”“그래도 좀 먹어야지.”“배 안 고파요.”남하준은 그녀를 가로로 안고 계단으로 향했다.“일단 방에 가서 쉬고 있어. 내가 먹을 것 갖다 줄게.”서다인은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껴안았다.“나 혼자 갈 수 있어요.”“알아.”남하준의 발걸음은 평온했고 말투는 부드러웠다.“내가 너 안고 싶어서 그래.”서다인은 얼굴이 뜨거워져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의 두툼한 어깨에 기대어 편안하게 그의 보살핌을 즐겼다.현관 쪽에서 류청과 정호는 두 사람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거실에서 나와 금원 밖을 지켰다.정호가 옅게 웃었다.“도련님께 이렇게 부드러운 면이 있는 줄 몰랐네.”류청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아주 심각하게 말했다.“도련님 요즘 너무 바빠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혹시 너도 눈치챘어? 도련님 이미 사모님 사랑하고 계셔.”류청은 쓴웃음을 지었다.“사랑하다 뿐이겠어?”정호는 경악했다.“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도련님께서 이미 사모님 신분을 조사하셨어.”정호는 화들짝 놀랐다.“그럼 왜 진작 알리지 않고 사모님이 언론 앞에서 가족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게 만들
아내라는 두 글자에 유동진과 유미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표정으로 서다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뭔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유동진은 잠시 놀라더니 기쁘게 웃었다.“그쪽이 하준이 마누라예요? 하준이 언제 결혼했어요? 난 왜 몰랐죠?”서다인은 유미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아무 표정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다.“반년 전 혼인신고 하고 결혼식은 아직 올리지 못했어요.”서다인이 설명하자 유동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도 안 돼요. 나랑 하준이가 얼마나 친한데 혼인신고를 하면 당연히 나한테 말했죠. 우린 절친이고 생사를 함께 한 형제라고요.”서다인은 황급히 그들을 안으로 모시고 직접 차를 끓이고 간식을 내왔다.풀이 죽은 유미는 기분 나빠서 조용히 앉아 차만 마시며 집에 들어온 후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동진은 소파에 기댄 채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하준이는요? 집에 있어요?”“아니요, 요즘 회사 일도 바쁘고 집에 일이 좀 생겨서 가끔은 오지만 오래 머물지 못해요.”“내가 예전에 그랬거든요. 그 자식한테 시집 간 여자는 반드시 외로움을 참고 독립적인 사람이어야 한다고. 정말 존경스러워요.”서다인은 약간 어색한 듯 웃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이때, 유미가 휴대전화를 꺼내 두 사람 앞에서 전화를 걸더니 순간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하준아, 나랑 오빠 너희 집에 왔는데 너 언제 와?”서다인은 그녀의 부드러운 말투에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저도 모르게 그녀를 쳐다봤다.유미는 지적이고 진중하고 대범한 여자였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성숙한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더니 말했다.“지금 돌아오는 길이래요.”“서다인 씨, 무슨 일 하세요?”유미가 또 묻자 서다인은 어색한 듯 목청을 가다듬고 대답했다.“하는 일 없어요.”유미는 가볍게 피식 웃었다.“일을 안 한다고요? 임신했어요?”서다인은 얼굴이 뜨거워졌고 고개를 가로저었다.“하준이 집에는 도우미도 있고 부하도 있
유미가 비꼬았다.“하준이 일편단심 코스프레 하더니 결혼은 이렇게 쉽게 할 줄 몰랐네.”유동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유미야, 너 오늘 왜 이래? 말에 가시가 있어.”서다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불편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바르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전 일이 있어서 먼저 방에 갈게요. 두 분 편히 있으세요.”“그래요, 우리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린 자주 와서 이 집에 익숙해요.”유동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목시계를 봤다.“하준이도 곧 집에 도착하겠네요.”이 말을 마치자마자 문밖에서 주차하는 소리가 들렸고 유동진이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하준이 왔나 보네요.”유미는 부랴부랴 일어나 문 쪽으로 성급히 걸어갔고 서다인은 멀뚱멀뚱 제자리에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웠다.남하준이 들어왔을 때 온화한 웃음기를 머금은 유미가 보였다.“하준아, 오랜만.”유미가 손을 내밀었고 남하준도 손을 내밀어 인사했다.“오랜만이네.”“하준아.”유동진이 다가가 두 손을 벌리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자 남하준은 유미의 손을 떼고 걸어가서 유동진과 격한 포옹을 나누었다.“반년 못 본 사이에 허약해졌어.”남하준은 주먹으로 유동진의 가슴을 몇 대 때리며 기분 나쁘게 인상을 찌푸렸다.“대체 얼마나 운동을 안 한 거야?”유동진은 그를 껴안고 거실로 걸어가며 말했다.“지금 내 몸이 중요해? 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반년 동안 나 몰래 결혼을 해? 어떻게 한마디도 안 할 수 있어.”남하준이 고개를 들어보니 서다인이 거실에 서서 약간 굳은 표정으로 별로 기쁘지 않은 모습이었다.그는 유동진과의 어깨동무를 풀고 서다인 앞에 다가가 눈빛은 뜨겁고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완아, 내 친구들 소개해 줄게.”“이미 자기 소개했어요.”이때 유미가 다가와 느릿느릿 말했다.“하준아, 난 네가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을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뜻밖에 너도 이런 속물이 될 줄 몰랐어. 자기 아내를 손에 물도 안 묻히는 사모님으로 만들다니.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스쿠터를 타고 남태준의 집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한낮의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에 그는 아마 출근 중이겠지?너무 일찍 온 것 같아서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떠나려던 참에 남태준이 문을 열고 나왔고 그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성큼성큼 앞으로 쫓아가며 불렀다.“지우야!”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를 뒤 돌아봤다.마음이 격해진 남태준은 몇 걸음 만에 지우 곁으로 달려가 뜨거운 시선을 내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방금까지만 해도 용기가 넘치던 지우는 그를 만난 순간 맥이 풀리며 긴장해서 물었다.“출근 안 했어요?”“오늘 휴식이야.”남태준은 둘 곳 없는 손을 주머니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지우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마음속에 번져 그녀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어디 나가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은 고민 없이 말했다.“아니. 나 아무 일도 없어. 들어가 앉을래?”지우가 고개를 돌려 집을 보니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머릿속에 지난번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뭐 물어보려고 왔어요. 물어만 보고 갈 거예요.”묻기만 하고 바로 간다?남태준은 너무 아쉬웠다.헤어진 후 지우가 먼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태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너무 더워.”지우도 고개를 들어 눈 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이 남자가 햇볕에 약하다고?’그리고 남자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보니 평소에도 햇볕을 많이 쬐는 것 같았다.지우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차를 옆으로 몰고 가서 멈추고 가방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그러자 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다희가 육건우의 범죄 증거를 입수했으니 네가 가서 가져와. 난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방해하지 마
“육건우가 지금 나랑 같이 거물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데 네가 찾는 그 신비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와볼래?”남태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주소 보내.”“좋아.”전화를 끊은 남태준은 지우의 메시지를 잊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이 밤.지우는 휴대전화를 안고 남자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벌써 두 번째였다. 남태준이 그녀에게 두 번이나 답장하지 않았다.지우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남태준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에게 재결합을 청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이틀이 지났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지우는 평생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남태준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와 임다희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계속 생각했다.송수빈이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지우를 불렀고 지우는 일할 마음이 없어 컴퓨터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송수빈은 한창 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문득 송수빈이 소리쳤다.“지우야. 네 전 남자친구 연예 뉴스에 나왔어!”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렸다.송수빈이 핸드폰 액정을 그녀 앞에 널어놓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지우는 그 안의 사진과 글을 보고 움찔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남태준과 임다희가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다정한 장면이 찍힌 것이었다.제목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임다희, 다정하게 음식을 먹여주다.’였다.송수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랐다.“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어. 남 대장님 너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전 여자친구랑 만나고 있어? 이거 환승 연애 아니야? 쓰레기!”지우는 가뜩이나 마음이 아팠는데 송수빈이 남태준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감싸기 시작했다.“그냥 밥 한 끼 먹은 것뿐이잖아? 그게 뭐? 요즘 기자들 직업정신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도 아
지우는 눈물을 흐릿하게 머금은 채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다른 사람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지 말고 독립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욕을 먹은 지성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진효연은 아들이 아까워 남태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우를 야단쳤다.“지금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지성이가 왜 남자답지 못하고 왜 독립적이지 않은데? 지성이는 그저 좋은 직장 찾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태준이가 남이야? 지성이 미래의 매형인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남태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지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밥 안 먹어!”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식탁을 빠져나와 방으로 가더니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진효연은 그제야 반응하고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남태준을 보았다.남태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두 사람 아직 화해 안 했어?”진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제 저희 반대 안 하시는 거예요?”진효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반대 안 해. 내가 허락해서 두 사람 이미 다시 만나는 줄 알았어.”진효연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문득 쑥스러웠다.남태준이 지우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방금 그녀의 부탁은 확실히 좀 지나쳤다.지금 남태준은 마음속에 돌이 박힌 듯 숨이 막혔다.이따금 전해지는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차라리 지우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그와 헤어졌길 바라고 있었다.지금 보니 지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우는 정말 자신의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을까?단순히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어서?남태준은 맛을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했다.그가 떠날 때까지 지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를 몰고 넓은 거리를 무작정 누볐고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뚜뚜.메시지 벨이 울렸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