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막막할 때, 서다인이 일어나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나 따라와요.”남하준은 그녀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끌려갔다.침실에 들어선 후 서다인은 문을 잠그고 남하준을 큰 침대 앞으로 끌어당겼다.“앉아요.”서다인은 긴장된 듯 침을 삼켰고 남하준은 앉아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얼굴에 눈에 보이는 홍조를 띠고 맑고 깨끗한 눈매가 수줍게 변하고 나쁜 짓을 하려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순간 그녀는 남하준의 어깨를 두 손으로 눌러 그를 침대에 쓰러뜨렸다.그녀는 몸을 숙이고 숨을 몰아쉬고는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몰래 나랑 엄마 유전자 검사를 해봤는데 난 정말 친딸이 아니었어요.”“내가 그 집안 양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정말 서다인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의사가 난 아직 처녀라고...”서다인은 그 말을 할 때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얼굴부터 귀까지 빨개졌다.그녀는 남하준 위에 엎드려 약간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의 옷 단추를 천천히 풀어주며 호흡이 더욱 흐트러졌다.“증명하고 싶어요...”남하준의 눈빛이 뜨거워지고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더니 서다인의 거침없는 손을 덥석 잡았다.“완아, 난 너 믿어. 이런 식으로 증명할 필요 없어.”서다인은 움찔하더니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몸을 뒤집어 서다인을 누르고 한 손으로 상체의 무게를 짚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는 여자의 도발을 참을 수 없었다. 단추 두 개를 푸는 동작만 해도 이미 입이 바짝 마르고 마음이 들떠서 몸이 더워 죽을 지경이며 부풀어 올라 견디기 힘들었다.남하준은 한껏 쉰 목소리로 말했다.“우린 부부야. 잠자리는 부부간의 사랑을 나누는 일이지 뭘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야.”서다인은 부끄러운 듯 눈을 늘어뜨리고 그를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방금 마음이 너무 급했어요. 당신이 나 안 믿어줄까 봐. 몰래 검사한 보고서는 이미 버렸거든요.”남하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네 말 믿어. 하
남하준이 키스하려 할 때 그녀는 얼굴을 돌려 피했다.남자의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가에 찍혔고 그녀는 긴장하며 중얼거렸다.“나... 씻고 싶어요.”서다인은 온몸이 뜨겁고 볼이 붉어지며 부끄러워서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야릇한 기류가 번지면서 그녀의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남하준은 천천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는 그녀 몸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일어나서 두말없이 화장실로 뛰어갔다.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입을 살짝 벌리고 심호흡을 했다.드디어 올 것이 왔다.이미 남하준에게 사실을 알렸으니 그는 그녀의 몸이 더럽다며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서다인은 예전처럼 많은 걱정을 하지 않고 깨끗하게 씻었다.처음인 만큼 서로에게 좋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30분 후.서다인은 깨끗한 잠옷을 입고 욕실에서 나왔다.이때 남하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베란다와 탈의실을 둘러보았지만 남하준은 보이지 않았고 텅 빈 방을 바라보며 그녀의 마음도 가라앉았다.그는 바쁜 걸까? 아니면 도망간 걸까?서다인이 침실을 나와 서재 입구에 이르니 서재 문이 열려 있고 남하준은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서다인은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려다가 몇 초 만에 천천히 손을 놓고 돌아섰다.이런 일은 급하지 않았다.서재에서 남하준은 입구의 서다인을 힐끗 보았다. 그는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지만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서다인이 뒤돌아서서야 천천히 눈을 들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어둡고 무거웠다.그는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고 눈을 감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충동을 다스렸다.싸움터에서 도망치는 것은 남하준 스타일이 아니었다.그러나 그는 그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이번에 탈영병이 되었다.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녀의 신분이 회복되는 순간 그들의 결혼은 무효로 된다.무효한 결혼인데,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품에 안을 수 있을까?그녀에게 마음에 품은 애인이 있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절
서다인은 다시 전화를 끊었다.곧이어 연결음이 뚜뚜 하고 전화가 계속 밀려들었다.그녀는 인터넷이 깨끗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고 그녀의 번호를 유출했다.10분도 안 돼 10여 통의 전화가 들어왔고 수십 개의 메시지가 필사적으로 폭격했다.서다인은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팽팽해지는 것 같아 급히 휴대전화를 껐다.그녀는 식욕이 없어서 아침을 먹지 않았다.미칠 것 같았다.그녀는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늘어뜨린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커다란 스트레스에 그녀는 곧 무너질 것 같았다.그녀는 이 일로 인해 남하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다.“사모님, 괜찮으세요?”도우미가 걱정스레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너무 걱정 마세요. 도련님이 다 해결하실 거예요.”서다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재빨리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2층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방에 들어간 그녀는 문을 닫고 전원을 켜 서지석의 번호를 눌렀다.2초도 안 되어 서지석이 전화를 받았다.“세상에, 이게 누구야?”서다인은 눈물을 꾹꾹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다.“대체 어쩔 생각이야?”“오빠가 어제 말했잖아? 160억을 일시불로 주면 된다고.”그녀는 너무 화가 나 숨통이 아팠다.“나 돈 없어.”“너 유명한 화가 지완이잖아? 그림 몇 작품만 그리면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 아니야?”“그리고 너한텐 남하준이 있잖아?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거 조금만 받아도 160억은 껌이지.”“돈과 세력을 다 갖춘 부부가 친정을 안 챙긴다는 게 말이나 돼?”서지석은 말할수록 더욱 거만해졌다.“내가 그 머나먼 변강 지역까지 가서 매제한테 일자리 달라고 했는데 날 개처럼 내쫓았잖아? 날 전혀 존중하지 않았어. 다인아, 오빤 절대 못 참는다?”“그래서 엄마 아빠까지 끌고 TV에 나와 소란을 피웠어? 내 과거를 털고 잔뜩 부풀려 이야기하면서 날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젠 내 개인정보까지 언론에 퍼뜨려?”“난 너한테
서다인은 멍해져서 서둘러 옷을 입고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금원을 떠나 차를 타고 뉴빌리지 대문 밖으로 향했다.뉴빌리지는 M국 고위 행정관리와 권세가들이 사는 곳으로 대문 밖은 경비가 삼엄하여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었다.서다인은 뉴빌리지 대문을 나서면서 밖이 떠들썩한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오장육부가 은은하게 아파 주먹을 불끈 쥐고 가늘게 떨었다.진화연의 뒤에는 친척 몇 명이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서다인, 엄마가 무릎 꿇는다. 네 아빠와 오빠를 살려다오.]진화연은 현수막 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범벅으로 된 채 영락없는 불쌍하고 여린 어머니의 모습이었다.구경꾼의 3분의 2 이상이 기자와 매체였고 카메라와 휴대전화가 가득했다.서다인은 진화연을 본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그녀는 진화연의 딸은 아니지만 3년 동안 정성을 다해 섬긴 것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개를 키워도 주인을 물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진화연의 이런 행동은 죽은 돼지가 끓는 물에 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패가망신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서다인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물었다.“지금 뭐 해요?”진화연은 고개를 젖히고 서다인을 보더니 순간 소리 내어 울었다.“다인아, 엄마가 잘못했어. 제발 용서해줘.”이 순간 모든 언론 기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가 바로 사건의 여주인공, 남하준 장군의 부인 서다인인 것을 보고 흥분하여 앞으로 몰려가 사진을 찍고 라이브 방송을 켰다.경호원은 상황이 위험해지자 서다인의 곁을 지키며 목소리를 낮추어 주의를 주었다. “사모님, 먼저 집에 돌아가시죠. 여긴 도련님께서 해결하실 겁니다.”서다인은 마음이 매우 괴로웠다.그녀는 남하준에게 의지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그에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그는 국가 대사를 처리하고, 그룹의 일을 처리하고, 바깥에 많은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게다가 남씨 집안도 엉망이고 넷째 형은 아직 병원에서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런 상황에서 모든 걸
진화연은 더 크게 울었다.그러자 한 기자가 물었다.“서다인 씨, 왜 부모님을 책임지지 않는 거죠? 그리고 부모님께서 TV에서 서다인 씨의 과거를 폭로했는데,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서다인은 몇 발짝 뒤로 물러서 마음을 추스르고 모든 언론사 기자들을 향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기자님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제 영상을 전 세계에 공개해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3년 전 기억을 잃었고 내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지만 전 절대 서다인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저를 서다인의 신분으로 살게 하도록 이 모든 걸 꾸몄어요.”“이 사실을 공표하면 전 아마 위험에 처하겠죠. 하지만 이 가족 사람들은 정말 지긋지긋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네요.”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서씨 일가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진화연이 일어나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다인아,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서다인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또박또박 말했다.“난 성형하지 않았어요. 이건 병원에서 증명할 수 있죠. 그러니까 제 가족, 친구, 동창이나 저를 본 적 있는 분들은 연락 바랍니다.”진화연은 바로 미리 준비한 DNA 보고서를 꺼내며 말했다.“우린 이미 두 번이나 유전자 검사를 받았어. 넌 내 딸이 맞아. 내 딸이 확실하다고...”서다인은 진화연의 손에 든 DNA 보고서를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나도 당신처럼 이 가짜 보고서에 속았어요. 이젠 당신 딸 잘 찾아봐요. 난 아니니까.”말을 마친 서다인은 기자들에게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여러분 제가 가족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고 두 명의 경호원이 그녀의 뒤를 지키며 몰려든 기자들이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금원으로 돌아온 서다인은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남하준과 이 일을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녀는 참지 못하고 말해버리고 말았다.당연하게도 그녀는 다시 한번 실검에 올랐고 이번에는 더 떠들썩하고 파격적인 내용이었다.서다인은
남하준은 서다인의 허리를 두르고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는 다정하게 속삭였다.“완아,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난 네 선택 존중해.”서다인은 그의 품에 안겨 말했다.“내가 미리 말하지 않았다고 화내지 않아요?”“너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 어쩔 수 없었던 거잖아?”남자의 이해에 서다인은 마음이 따뜻했다.“맞아요.”그녀는 당시 진화연의 핍박을 받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너무 급해 모든 것을 말해버린 거였다.“괜찮아. 내가 있잖아.”남하준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했다.여자는 그가 키스한 자리에 따듯한 힘이 들어가 사지를 관통하는 느낌이었다.그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뭐 좀 먹었어?”남하준이 묻자 서다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입맛이 없어요.”“그래도 좀 먹어야지.”“배 안 고파요.”남하준은 그녀를 가로로 안고 계단으로 향했다.“일단 방에 가서 쉬고 있어. 내가 먹을 것 갖다 줄게.”서다인은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껴안았다.“나 혼자 갈 수 있어요.”“알아.”남하준의 발걸음은 평온했고 말투는 부드러웠다.“내가 너 안고 싶어서 그래.”서다인은 얼굴이 뜨거워져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의 두툼한 어깨에 기대어 편안하게 그의 보살핌을 즐겼다.현관 쪽에서 류청과 정호는 두 사람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거실에서 나와 금원 밖을 지켰다.정호가 옅게 웃었다.“도련님께 이렇게 부드러운 면이 있는 줄 몰랐네.”류청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아주 심각하게 말했다.“도련님 요즘 너무 바빠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혹시 너도 눈치챘어? 도련님 이미 사모님 사랑하고 계셔.”류청은 쓴웃음을 지었다.“사랑하다 뿐이겠어?”정호는 경악했다.“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도련님께서 이미 사모님 신분을 조사하셨어.”정호는 화들짝 놀랐다.“그럼 왜 진작 알리지 않고 사모님이 언론 앞에서 가족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게 만들
아내라는 두 글자에 유동진과 유미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표정으로 서다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뭔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유동진은 잠시 놀라더니 기쁘게 웃었다.“그쪽이 하준이 마누라예요? 하준이 언제 결혼했어요? 난 왜 몰랐죠?”서다인은 유미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아무 표정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다.“반년 전 혼인신고 하고 결혼식은 아직 올리지 못했어요.”서다인이 설명하자 유동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도 안 돼요. 나랑 하준이가 얼마나 친한데 혼인신고를 하면 당연히 나한테 말했죠. 우린 절친이고 생사를 함께 한 형제라고요.”서다인은 황급히 그들을 안으로 모시고 직접 차를 끓이고 간식을 내왔다.풀이 죽은 유미는 기분 나빠서 조용히 앉아 차만 마시며 집에 들어온 후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동진은 소파에 기댄 채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하준이는요? 집에 있어요?”“아니요, 요즘 회사 일도 바쁘고 집에 일이 좀 생겨서 가끔은 오지만 오래 머물지 못해요.”“내가 예전에 그랬거든요. 그 자식한테 시집 간 여자는 반드시 외로움을 참고 독립적인 사람이어야 한다고. 정말 존경스러워요.”서다인은 약간 어색한 듯 웃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이때, 유미가 휴대전화를 꺼내 두 사람 앞에서 전화를 걸더니 순간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하준아, 나랑 오빠 너희 집에 왔는데 너 언제 와?”서다인은 그녀의 부드러운 말투에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저도 모르게 그녀를 쳐다봤다.유미는 지적이고 진중하고 대범한 여자였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성숙한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더니 말했다.“지금 돌아오는 길이래요.”“서다인 씨, 무슨 일 하세요?”유미가 또 묻자 서다인은 어색한 듯 목청을 가다듬고 대답했다.“하는 일 없어요.”유미는 가볍게 피식 웃었다.“일을 안 한다고요? 임신했어요?”서다인은 얼굴이 뜨거워졌고 고개를 가로저었다.“하준이 집에는 도우미도 있고 부하도 있
유미가 비꼬았다.“하준이 일편단심 코스프레 하더니 결혼은 이렇게 쉽게 할 줄 몰랐네.”유동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유미야, 너 오늘 왜 이래? 말에 가시가 있어.”서다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불편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바르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전 일이 있어서 먼저 방에 갈게요. 두 분 편히 있으세요.”“그래요, 우리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린 자주 와서 이 집에 익숙해요.”유동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목시계를 봤다.“하준이도 곧 집에 도착하겠네요.”이 말을 마치자마자 문밖에서 주차하는 소리가 들렸고 유동진이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하준이 왔나 보네요.”유미는 부랴부랴 일어나 문 쪽으로 성급히 걸어갔고 서다인은 멀뚱멀뚱 제자리에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웠다.남하준이 들어왔을 때 온화한 웃음기를 머금은 유미가 보였다.“하준아, 오랜만.”유미가 손을 내밀었고 남하준도 손을 내밀어 인사했다.“오랜만이네.”“하준아.”유동진이 다가가 두 손을 벌리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자 남하준은 유미의 손을 떼고 걸어가서 유동진과 격한 포옹을 나누었다.“반년 못 본 사이에 허약해졌어.”남하준은 주먹으로 유동진의 가슴을 몇 대 때리며 기분 나쁘게 인상을 찌푸렸다.“대체 얼마나 운동을 안 한 거야?”유동진은 그를 껴안고 거실로 걸어가며 말했다.“지금 내 몸이 중요해? 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반년 동안 나 몰래 결혼을 해? 어떻게 한마디도 안 할 수 있어.”남하준이 고개를 들어보니 서다인이 거실에 서서 약간 굳은 표정으로 별로 기쁘지 않은 모습이었다.그는 유동진과의 어깨동무를 풀고 서다인 앞에 다가가 눈빛은 뜨겁고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완아, 내 친구들 소개해 줄게.”“이미 자기 소개했어요.”이때 유미가 다가와 느릿느릿 말했다.“하준아, 난 네가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을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뜻밖에 너도 이런 속물이 될 줄 몰랐어. 자기 아내를 손에 물도 안 묻히는 사모님으로 만들다니.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