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후.남태준이 방문을 열었다.입구에 총을 든 남자 몇 명이 서 있었다.“형님, 꽤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오래 했는데 여자는 괜찮아요?”“너희들은 여기서 뭐해?”“보스가 형님 상황 살피라고 하셔서요. 일이 끝나면 여자를 보스 방으로 데려오라고 하셨어요.”남태준은 침울한 표정으로 방을 돌아보았다.“내가 직접 데려갈게.”“네.”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남태준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거칠게 서다인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서다인은 헝클어진 머리와 단정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M국 쪽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그녀는 남태준을 통해 이 재난을 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남하준이 구조 요청 메시지를 받고 그녀를 구할 방법을 찾기를 바랄 뿐이었다.통나무집 앞의 정자에서 대머리는 남태준이 서다인을 끌고 오는 것을 보고 두 눈을 반짝였다. 느끼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담배를 피우며 유유히 입을 열었다. “태준아, 좋았어?”남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대머리는 일어서서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이제 내 차례야.”서다인은 두피가 저리고 심장이 폭격하듯 뛰며 메스꺼움이 밀려왔다.“형님, 이 여자를 가지고 노는 것보다 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좋은 소식이라니?”남태준이 고개를 돌려 서다인을 보니 그녀는 몸을 가늘게 떨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그는 대머리에게 거짓말을 마구 지어내며 서다인에게 더 많은 시간을 벌려고 했다. “방금 물어보니 이 여자는 Z국에서 온 화학자더라고요. 우리가 전에 구했던 그 불량품들을 해결할 방법이 있어요.”대머리는 경악하며 서다인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저 여자가?”“네, 한번 시도해보죠.”남자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번들번들한 대머리를 만지며 즐겁게 말했다.“그래, 창고로 끌고 가.”서다인은 창고로 끌려갔다.그녀는 이렇게 거대한 마약 제조 공장을 보았을 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고 분노가 치밀었다.
남태준은 지금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10년 넘게 마약을 제조해 온 장인도 못 해낸 일을 서다인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서다인이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좋았다.서다인은 연구하면서 중얼거렸다.“불순물에는 나트륨이 들어 있고 루비듐과 비슷한 물질이 있는데 루비듐은 공기와 물에 닿으면 폭발해요. 저도 이렇게 이상한 새로운 원소는 처음 봐요.”“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연구해 볼게요.”모두가 알아듣지 못한 채 수상쩍은 표정으로 서다인을 바라보았다.서다인은 그들의 의심의 눈초리와 그녀의 몸을 탐내는 곱지 않은 눈빛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진짜 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서다인은 가루를 조금 집어 병에 넣고 어떤 물질을 넣어 불 위에 잠시 태웠다.그녀는 동작이 능숙하고 매끄러우며 여러 차례 조작한 후 가루를 물에 넣었다.모두 다시 폭발할 줄 알고 뒤로 물러섰다.그러나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남태준은 놀라서 서다인을 바라봤다.대머리는 크게 좋아하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역시 Z국 화학자야. 이렇게 빨리 해결하다니. 아주 좋아!”서다인은 긴장된 표정으로 남태준을 바라보았다.남태준은 미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의 뜻을 내비쳤다.서다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물을 만나면 폭발하는 현상은 해결했지만 치명적인 독소를 갖고 있어 흡입하면 바로 죽어요.”대머리가 서다인에게 다가가자 서다인은 놀라서 뒤로 물러나 그를 경계하며 바라보았다.그는 서다인의 뺨을 두드리며 말했다.“예쁜 아가씨, 나를 도와 2t의 물건을 해결한다면 내가 살려줄게. 약간의 보상도 줄 수 있어.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환영하고.”마약 두목의 말은 한마디도 믿을 수 없다.서다인은 굳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워요.”갑자기 밖에서 총소리가 났다.서다인은 긴장해서 가슴이 두근거렸고 악연하게 밖을 바라보았다.모두가 긴장하여 즉시 총을 들고 뛰쳐나갔다.남태준은 권총을 꺼
딱 봐도 마약 소굴의 전투력이 더 강해 뚫기 어려운 것 같았다.서다인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갑자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서다인의 귀에 들려왔다.그녀는 권총을 움켜쥐고 온몸이 뻣뻣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귀를 쫑긋 세우고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서다인.”차분하고 경쾌한 목소리가 서다인의 귀에 들려왔다.총을 잡은 그녀의 손이 떨리며 자신이 너무 긴장해서 생긴 환청인 줄 알았고 호흡이 더 가빠졌다.“서다인.”남하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이 순간, 서다인은 환청이 아니란 것을 확신하고 재빨리 옷장 문을 열었다.낯익은 모습이 눈에 띄었고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와 남자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남하준은 옷장 속에 숨어 있는 여인을 보고 하루 종일 불안했던 가슴을 쓸어내렸고 모든 걱정과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서다인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옷장을 뛰쳐나와 남하준의 품에 안겼다.“정말 하준 씨에요?”서다인은 그의 허리를 꼭 껴안고 따뜻하고 두툼한 가슴에 묻었다.비현실적이지만 또 안심되었다.남하준은 그녀를 꼭 껴안고 눈을 감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벌렁거리는 심장은 지금도 아련하게 아팠다.그는 서다인이 마약 소굴에 갇힌 후 모진 일을 당할까 봐 걱정했다.1분 1초가 그를 모질게 괴롭혔다.용병이 하루가 지나도 이곳을 뚫을 수 없자 그는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서 혼자 위험을 무릅쓰고 잠입했다. 미스터리한 사람이 준 소식에 따라 서다인이 있는 정확한 위치로 왔다.“괜찮아. 나야.”남하준은 심호흡하고 목소리를 낮추어 부드럽게 위로했다.“집에 가자.”서다인은 그의 따뜻한 품에 안겨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코를 훌쩍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어떻게 들어왔어요? 저 사람들 엄청 많은 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어요. 전투력이 웬만한 중대에 뒤지지 않아요.”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문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이제 말해줄게.”서다인은 조용히 그를 따라 떠났다.밖은 캄캄하고 총소
서다인은 걸으면서 뒤돌아 창고에 있던 몇 톤의 마약이 불빛에 삼켜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졌다.마약 소굴 졸개들은 창고가 함락된 것을 보고 모두 이쪽으로 달려왔다.우거진 수풀을 지나 서다인은 남하준을 따라 J국의 끝자락, 밑이 보이지 않는 절벽으로 올라갔다.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수천 미터 떨어진 J국에서 총격전이 계속되었고 포연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앞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마약 소굴이 있고 뒤에는 절벽이 있었다.서다인은 놀라서 남하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 여기로 올라온 거예요?”남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방을 살피며 그녀를 큰 바위 뒤로 데리고 가서 그녀를 누르고 몸을 웅크렸다.그는 호주머니에서 신호총을 꺼내 서다인의 손에 쥐여 주었다.“30분 후에 헬기가 너 데리러 올 거야. 헬기가 하늘에서 선회하면 이 신호총을 쏴.그럼 너 구하러 올 거야.”“당신은 어디 가는데요?”서다인은 걱정스러운 듯 남자의 손을 잡았다.남하준은 뜨거운 눈동자로 그녀의 아련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살짝 쓸어올려 머리카락을 귀 뒤에 꽂으며 속삭였다.“정호는 도난당한 무기를 추적하느라 여기서 중상을 입고 아직도 병원에 누워 있어.”서다인은 그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혼자 들어가서 도난당한 무기 행방을 조사하려고요?”남하준은 씁쓸하게 입술을 오므리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착하지, 여기서 헬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서다인은 정호의 최후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안 돼요. 혼자 가는 건 너무 위험해요.”“나 괜찮을 거야.”서다인은 두 손으로 그의 팔을 꼭 껴안고 그를 잃을까 봐 긴장하며 살짝 울먹였다. “하준 씨, 제발 가지 마요. 당신은 M국 장군이고, 군전 그룹 수장이잖아요. 사람을 보내 나 구하러 온 것처럼 사람을 보내 무기 행방을 조사하면 되잖아요. 혼자 위험을 무릅쓰지 말아요.”남하준의 따뜻한 손은 서다인의 얼굴을 천천히 만졌고 엄지손가락은 그녀의 눈물을 부드럽게
서다인은 그녀를 구출하러 온 헬기에 의해 발견되었고 무사히 군전 그룹으로 돌아갔다.그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남하준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그녀는 걱정스럽고 두렵고 괴로운 마음이 점점 더 강해졌다.1분 1초가 흐른 지금, 그녀는 남하준의 무사 귀환을 하늘이 지켜주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대낮.군전 그룹 대문 앞에서 서다인은 무릎을 껴안고 화단 가장자리에 앉아 젖은 눈으로 앞쪽의 넓은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남하준이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류청은 그녀의 걱정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꼈다.하지만 왜 꼭 남하준과 이혼하겠다고 고집하는지 알 수 없었다.그는 서다인 앞에 다가와 말했다.“사모님,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드셨어요.”서다인은 먼 곳을 바라보며 눈동자를 흠뻑 적시고 괴로운 마음을 참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 안 고파요.”“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도련님께서는 무사히 돌아오실 거예요.”서다인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들어 류청을 바라보았고 목소리는 약간 울먹였다.“류청 씨, 어서 사람을 보내 하준 씨 좀 구해 주세요. 제발. 제발 좀.”“죄송합니다. 도련님께서 이미 군전 그룹 병사는 J국에 들여보낼 수 없다고 명령하셨어요. 그러니 국경은 더더욱 넘을 수 없죠. 일단 개입하면 양국 간의 정치적 문제로 번져 전쟁을 일으킬 수 있어요.”“그럼 하준 씨 어떡해요?”서다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니 눈은 이미 새빨갰다.“너무 걱정 마세요. 고용병도 있잖아요. 게다가 도련님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서다인은 힘없이 화단 가장자리에 다시 앉아 고개를 숙이고 무릎에 묻은 채 몰래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낮부터 밤늦게까지 기다렸지만 남하준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은 없었다.1박 2일의 기다림.서다인은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해서 많이 초췌해졌다. 남하준이 살해당했다는 생각만 하면 울컥했다.자정이 넘어서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노크 소리에 바짝 긴장한 신경이 순간적으로 약동하여 침대에서 뛰어 내려와
서다인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가 한 말을 머릿속에 기억했다.당부를 마친 의사는 물건을 챙겨 병실을 떠났다.서다인은 어두운 얼굴로 멍하니 있었고 남하준의 상처를 애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남자는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고 죄책감과 자책감을 가지고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그동안 입은 상처만 해도 수천 개가 넘어. 이 정도 작은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야.”남하준의 가벼운 말이 그녀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지난번에는 심장과 매우 가까운 곳에 총상을 입었다.자칫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는데 그는 왜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까?이번에도 온몸이 칼에 찔렸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남하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울먹이는 그녀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다가 가슴이 아팠다.“왜 계속 우는 건데? 내가 다쳐서 마음 아파?”서다인은 얼른 돌아서서 남하준에게 등을 돌리고 두 손으로 눈을 만져 눈물을 닦았다.남하준은 자신이 오해한 것 같아 허탈하게 웃었다.당장 이혼하고 싶은 여자가 어떻게 마음 아파할 수 있겠는가?상처에 놀랐을 수도 있고 불쌍하고 감사한 마음뿐이겠지.서다인은 눈물을 닦고 감정을 추스르고 돌아서서 남하준 곁으로 가서 환자복을 집어 들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전히 울먹이며 말했다.“어서 옷 입어요. 감기 걸리겠어요.”남하준은 뜨거운 눈으로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들었다.서다인은 눈을 내리뜨고 감히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의 뜨거운 눈초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형님은 만났어요?”“아니.”남하준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분실된 무기는 찾았어요?”“찾았어.”단추를 채우던 서다인의 손이 흠칫 멈추더니 그의 뜨거운 시선과 마주치며 물었다.“잘됐네요. 그럼 이제 군대 보낼 수 있는 거죠?”“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양국 정치가 걸려 있어.”서다인은 정치를 몰라서 더 이상 이 일을 캐묻지 않았다
서다인은 경악했다.“네?”남자는 그녀의 허벅지를 가리켰다.서다인은 마침 긴 치마를 입고 있었고 양발을 움츠리더니 긴장한 얼굴이 뜨거워져 소리쳤다.“미쳤어요?”남하준은 귀가 빨개졌지만 애써 침착한 척 설명했다.“그냥 확인차 물어본 거야. 무례하게 굴려는 의도는 없었어.”“내가 잘 때 몰래 바지를 벗겨 훔쳐봤죠?”남하준은 온몸이 뜨거워 나고 귀부터 목까지 빨개진 것을 느끼며 급히 해명했다.“훔쳐보지 않았어.”“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두 사람은 함께 자라면서 어린 시절 백하린이 핫팬츠를 입었을 때 바지를 걷어 올려 직접 보여줬다.“진짜 있어? 오른쪽 허벅지에?”남하준은 표정이 무거워지더니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여자는 의심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았다.“그런 건 왜 물어요? 내 신분에 대해 알아낸 거예요?”“네 신분?”서다인은 즉시 입을 다물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눈빛을 반짝이며 가장자리로 옮겨 테이블 위의 포도송이를 집어 들었다.“과일 씻어 올게요.”서다인은 과일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남자는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류청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백하린과 할아버지 DNA 샘플은 입수했어?][하린 아가씨가 너무 신중해서 손에 넣지 못했지만 어르신 내외 혈액은 이미 손에 넣었어요.][병원에 갖고 와. 그리고 적당한 핑계로 다인이 혈액이랑 같이 검사해 봐.]서다인은 씻은 과일을 들고 병실을 들어섰다.그녀는 과일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의사가 당신 충분히 쉬어야 한댔어요. 업무는 우선 손에서 놓으시죠?”남하준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서다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서다인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아니.”“포도 먹을래요?”“시어서 싫어.”“시다고요?”서다인은 믿지 못하고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는데, 시큼한 떫은맛이 미뢰에 스며들어 이가 빠질 정도로 시어서 이목구비가 오그라들었다.남하준은 그녀의 이목구비가 시어서 일그러진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
순간 방안은 애매한 분위기가 극에 달해 어색해졌다.이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류청이 들어와 서다인에게 다급하게 물었다.“사모님 혹시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A형인데 왜 그러세요?”“제 동료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수혈해야 하는데 병원에 A형 혈액이 부족해요. 헌혈 좀 해 주시겠어요?”서다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일어나 류청에게 다가갔다. “좋아요. 어서 가죠.”류청은 서다인을 데리고 병실을 떠났다순간 남하준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과거의 여러 가지 일들이 머리에 떠올랐다.그는 서다인이 완자라는 사실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모든 진실은 곧 드러날 것이고 DNA 결과를 내심이 기다리면 된다.10분 후.병실로 돌아온 서다인은 중얼거렸다.“난 건강하고 아무런 지병도 없는데 왜 피를 이렇게 조금만 뽑지?”그녀가 병상으로 돌아왔을 때 남자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뺨을 괴고 다소 창백해진 남하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남자의 이목구비는 깊고 아름다운데 지금 약간 창백해져 더욱 야성적이고 매혹적이었다.하지만 그의 상처를 생각하면 서다인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이제야 남하준의 일이 단순히 무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그는 많은 위험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외부에 떠도는 그 소문들은 모두 헛소리였다.남하준이 살육에 눈 하나 깜짝하지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해서 아무도 감히 그의 미움을 사지 못한다고 했다.사실 그는 범죄자에게만 단호하고 가차 없는 사람이었다.‘고마워요. 무사히 돌아와 줘서.’서다인은 그에게 이불을 살며시 당겨서 잘 덮어 주고는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편안하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1박 2일 동안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서다인은 이미 지쳐서 곧 잠이 들었다.얼마가 지났는지 서다인은 배고픔에 잠에서 깼다.눈을 떴을 때, 창문 밖은 캄캄했다.그리고 그녀는 지금 병상에 누워 남하준의 팔을 머리에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스쿠터를 타고 남태준의 집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한낮의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에 그는 아마 출근 중이겠지?너무 일찍 온 것 같아서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떠나려던 참에 남태준이 문을 열고 나왔고 그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성큼성큼 앞으로 쫓아가며 불렀다.“지우야!”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를 뒤 돌아봤다.마음이 격해진 남태준은 몇 걸음 만에 지우 곁으로 달려가 뜨거운 시선을 내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방금까지만 해도 용기가 넘치던 지우는 그를 만난 순간 맥이 풀리며 긴장해서 물었다.“출근 안 했어요?”“오늘 휴식이야.”남태준은 둘 곳 없는 손을 주머니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지우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마음속에 번져 그녀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어디 나가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은 고민 없이 말했다.“아니. 나 아무 일도 없어. 들어가 앉을래?”지우가 고개를 돌려 집을 보니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머릿속에 지난번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뭐 물어보려고 왔어요. 물어만 보고 갈 거예요.”묻기만 하고 바로 간다?남태준은 너무 아쉬웠다.헤어진 후 지우가 먼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태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너무 더워.”지우도 고개를 들어 눈 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이 남자가 햇볕에 약하다고?’그리고 남자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보니 평소에도 햇볕을 많이 쬐는 것 같았다.지우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차를 옆으로 몰고 가서 멈추고 가방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그러자 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다희가 육건우의 범죄 증거를 입수했으니 네가 가서 가져와. 난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방해하지 마
“육건우가 지금 나랑 같이 거물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데 네가 찾는 그 신비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와볼래?”남태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주소 보내.”“좋아.”전화를 끊은 남태준은 지우의 메시지를 잊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이 밤.지우는 휴대전화를 안고 남자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벌써 두 번째였다. 남태준이 그녀에게 두 번이나 답장하지 않았다.지우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남태준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에게 재결합을 청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이틀이 지났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지우는 평생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남태준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와 임다희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계속 생각했다.송수빈이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지우를 불렀고 지우는 일할 마음이 없어 컴퓨터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송수빈은 한창 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문득 송수빈이 소리쳤다.“지우야. 네 전 남자친구 연예 뉴스에 나왔어!”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렸다.송수빈이 핸드폰 액정을 그녀 앞에 널어놓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지우는 그 안의 사진과 글을 보고 움찔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남태준과 임다희가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다정한 장면이 찍힌 것이었다.제목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임다희, 다정하게 음식을 먹여주다.’였다.송수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랐다.“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어. 남 대장님 너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전 여자친구랑 만나고 있어? 이거 환승 연애 아니야? 쓰레기!”지우는 가뜩이나 마음이 아팠는데 송수빈이 남태준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감싸기 시작했다.“그냥 밥 한 끼 먹은 것뿐이잖아? 그게 뭐? 요즘 기자들 직업정신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도 아
지우는 눈물을 흐릿하게 머금은 채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다른 사람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지 말고 독립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욕을 먹은 지성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진효연은 아들이 아까워 남태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우를 야단쳤다.“지금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지성이가 왜 남자답지 못하고 왜 독립적이지 않은데? 지성이는 그저 좋은 직장 찾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태준이가 남이야? 지성이 미래의 매형인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남태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지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밥 안 먹어!”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식탁을 빠져나와 방으로 가더니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진효연은 그제야 반응하고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남태준을 보았다.남태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두 사람 아직 화해 안 했어?”진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제 저희 반대 안 하시는 거예요?”진효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반대 안 해. 내가 허락해서 두 사람 이미 다시 만나는 줄 알았어.”진효연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문득 쑥스러웠다.남태준이 지우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방금 그녀의 부탁은 확실히 좀 지나쳤다.지금 남태준은 마음속에 돌이 박힌 듯 숨이 막혔다.이따금 전해지는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차라리 지우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그와 헤어졌길 바라고 있었다.지금 보니 지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우는 정말 자신의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을까?단순히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어서?남태준은 맛을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했다.그가 떠날 때까지 지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를 몰고 넓은 거리를 무작정 누볐고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뚜뚜.메시지 벨이 울렸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
네모난 식탁에는 여섯 가지 요리에 국 하나,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새우, 게, 생선, 닭, 쇠고기, 야채, 수입산 인삼 비둘기 찜이 있었다.이러한 음식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남태준은 명절이나 중요한 날이 아니면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한 상 가득한 음식을 보던 남태준이 시선을 돌려 지성의 어두운 얼굴을 보니 이 맛있는 음식들이 지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성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엄마, 의사가 상처 완전히 아물기 전에는 담백하고 잘 소화되는 음식을 많이 먹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라고 했어요. 아직 이런 음식은 벅차요.”진효연은 야채를 집어 지성의 그릇에 놓았다.“넌 야채 많이 먹어. 이건 충분히 담백해.”지성은 게를 보며 침을 흘렸다. 평소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는 그의 집에서 하필 그가 다쳤을 때 해산물을 준비하다니.밥을 먹기도 전에 화가 잔뜩 불렀다.진효연은 집게로 가장 큰 게를 집어 남태준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놓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태준아. 넌 이거 많이 먹어.”“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지우를 쳐다봤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태준은 진효연이 너무 열정적인 것 같았다.설마 그를 수양아들로 삼아 지우의 오빠로 만들고 싶은 걸까?“혹시 게 뜯는 도구 있어요?”남태준이 식탁을 보며 묻자 진효연은 어리둥절했다.게를 자주 먹지 않으니 게를 먹을 때 전문적인 도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지우는 그릇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가 깨끗한 작은 가위와 커피용 작은 숟가락을 꺼내 남태준에게 건넸다.“대충 이거라도 써요. 우리 집은 게를 먹을 때 그냥 입으로 뜯었어요.”지우가 부드럽게 말하자 남태준은 엷게 웃으며 도구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우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진효연은 남태준에게 해산물을 집어주고 지성에게 닭고기를 집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다들 열심히
지우가 물건을 들고 지성의 방으로 가져갔다.남태준은 신발을 갈아신고 들어가서 그녀의 집안을 둘러봤다.확실히 좀 좁고 낡긴 하지만 깔끔한 편이었다.부엌 맞은 편에 바로 식탁이 있고 식탁 옆에는 거실이 있고 거실 소파도 짧아서 세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텔레비전은 구식이고 냉장고도 작아서 거실 구석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비좁아 보였다.“태준이 왔어?”진효연은 음식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활짝 웃으며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앉아. 어서 앉아. 준비 거의 끝나가.”너무 친절하고 다정한 태준이라는 호칭에 남태준은 조금 어리둥절했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제가 뭐 도와드릴까요?”“없어. 없어. 그저 앉아서 차나 마시고 지우와 얘기나 나누면 돼. 부엌일 정도는 나 혼자로 충분하지.”남태준은 또 움찔했다.지우와 얘기를 나누라니. 조금 어리둥절했다.너무 갑작스러운 열정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성은 부랴부랴 남태준에게 거실 소파에 앉으라고 청한 뒤 녹차 한 잔을 우려낸 뒤 리모컨을 건넸다.“TV 볼래요?”남태준이 다급하게 거절했다.“괜찮아.”지성은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스포츠 채널을 누르면서 말했다.“누나는 로맨스 드라마만 좋아해요. 누나가 집에 있으면 내가 리모컨을 차지한 적이 없어요.”남태준이 따뜻하게 웃었다.“그건 직업 때문에 그런 거잖아.”“형도 누나 글 쓰는 거 알아요?”“누나가 경찰의 사랑 이야기를 쓴 적 있는데 아쉽지만 결말은 비극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책을 출판했어요.”남태준은 방금 찻잔을 들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동작이 뻣뻣해져서 차마 차를 마실 수 없었다.방 안에서 지성의 옷을 챙겨주던 지우가 그의 말을 듣고 노기등등하게 뛰쳐나왔다.“야. 너 그 부질 없는 입 다물어!”남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우를 바라보았다.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하지만 지성에게는 그저 무서울 따름이었다.지성은 긴장한 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TV를 계속
지우가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일어서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래. 그럼 나 간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의 옆을 지나갔다.남태준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그녀가 병실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벼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지우는 그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저번에 강제로 그녀의 몸을 가지려고 해서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았다.요 며칠 동안 그는 끝없는 번뇌와 후회 속에 살았다.그때 지성이 가방을 들고 남태준 앞으로 다가왔다.“형. 가요.”남태준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내가 들게.”지성은 크게 기뻐했고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고마워요. 형.”차에 오른 남태준은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했다.잠시 후 지우가 뒤에서 따라오자 남태준은 속도를 줄이고 백미러로 지우가 스쿠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약간 멍해졌다.지성이 그런 남태준의 상태를 눈치채고 말했다.“누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다니는 길이라 아주 익숙해요. 조금 있다가 앞쪽 길목에 도착해서 오솔길로 빠지면 누나가 우리보다 훨씬 빨라요.”남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지성은 힐끔 남태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사실 우리 누나가 가끔 사납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하고 어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사람 잘 챙길 줄 알고 성실하고 선량한 편이에요.”남태준이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알아.”“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을 때, 난 대학생이었고 누나 혼자 힘으로 이 집안을 지켰어요. 병원비며 빚이며 모두 누나 혼자 짊어졌어요.”남태준이 계속 응대했다.“알아. 지우 좋은 사람인 거.”지성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리 누나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 왜 헤어졌어요?”남태준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네 누나가 나 안 좋아해. 별로 느낌이 없대.”지성은 입을 떠벌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누나 사람 보는 눈은 개나 줘버렸나? 난 또 엄마가 두 사람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