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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작가: 대어
진성준은 나를 미워했지만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날 저녁 진성준과 나는 모두 가족을 잃었다.

벙어리인 데다가 귀까지 먹었고 또 진성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별이는 내가 지킨 귀한 아이’라는 한마디 때문에 진성준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되레 오빠처럼 챙겨주면서 나를 키웠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매년 진성준의 어머니 기일이 되면 항상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서 혼자 어머니를 뵈러 갔었다.

예전에 내가 한 번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술에 취한 그에게 매정하게 걷어차이고 말았다. 그는 나의 목을 조르면서 흉악하게 말했다.

“강샛별, 넌 우리 어머니한테 절을 할 자격도 없어.”

하지만 정신을 차린 다음에는 내 목에 생긴 멍 자국을 어루만지면서 연신 사과했다.

“별아, 미안해. 나도 내가... 왜 이리 모순적인지 모르겠어.”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나와 잠자리할 때도 내 얼굴을 가리곤 했었다.

그리고 나도 모순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진성준이 평생 오빠로서 내 옆에 있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어디 생각처럼 되는가? 20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를 미친 듯이 사랑했다.

진성준이 나를 평생 사랑할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와 결혼하겠다고 한 것도 사실은 첫사랑에게 신장 이식 수술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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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뒤에서 경찰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진성준 씨, 일주일 전에 성준 씨네 집에서 강샛별 씨를 데려간 사람을 찾았어요. 정경호 씨라고 알아요?”정경호는 경찰에 잡혔을 때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맞아요. 내가 그랬어요. 내가 샛별이 불러내서 사람 시켜 죽였어요. 딱히 이유는 없고 그냥 진성준이 눈에 거슬려서 그랬어요.”정경호는 씩 웃으면서 옛 친구를 보듯 진성준을 쳐다보았다.“샛별이 지금 어디 있어?”“성준아, 무슨 소리야, 그게?”“샛별이 어디 있냐고 물었어.”정경호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내가 말했잖아. 별이는 계속 네 옆에 있었다고. 그렇게 똑똑하다는 애가 설마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우연이 있다고 믿은 거야? 마침 암시장에 여자 시신이 나왔고 또 마침 채은이한테 딱 맞는 신장을 가지고 있었어. 그리고 이미 신장 이식을 한 번 해서 신장이 하나만 남았고. 또 마침 임신까지 한 생태였어.”“너... 이 X자식아. 걔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리고 네 후배이기도 하잖아.”“화났어? 내가 물었었잖아. 임신까지 했는데 토막 내는 건 불쌍하다고 신고하지 않겠냐고. 근데 네가 싫다면서 그냥 황산에 던져버리라고 했잖아. 그리고 어쩜 샛별이한테 전화 한 통도 안 할 수 있어? 연약한 여자가 혼자 밖에서 떠도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어휴... 그날 저녁에 샛별이한테 전화 한 통만 더 했어도 걔 휴대전화가 트렁크에 있었다는 거 알았을 텐데. 그때 네가 직접 옮겼던 그 시신이 바로 샛별이야. 봐봐, 난 진작 돌려줬어.”“X발, 나쁜 자식, 죽여버릴 거야. 절대 가만 안 둬.”진성준이 이를 꽉 깨물고 정경호에게 달려들자 경찰이 말렸다. 그러자 정경호가 싸늘하게 웃었다.“진성준, 샛별이가 왜 날 따라 그 눈밭에 갔는지 알아? 네가 그 눈밭에서 걔한테 프러포즈할 거라고 했거든. 그때 얼마나 좋아하던지. 눈빛이 아주 반짝였어. 나중에 내가 죽이려고 하니까 임신했다고 하더라고. 다신 널 두고 채은이랑 싸우지 않겠다면서 떠나겠다고 했어. 마지막

  • 차가운 눈밭에 남겨진 그녀   제18화

    무서웠던 별이는 약속대로 세 번 전화했다.진성준이 전화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몸이 아무리 아파도, 뒤에 있는 사람들이 무서워도 오빠가 꼭 구하러 올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오빠는 오지 않았고 돌아오는 건 이 말이었다.“강샛별, 적당히 해. 채은이 지금 위험한 상태라고 했지? 도와줄 생각이 없으면 귀찮게 하지 마.”진성준은 그렇게 별이를 포기했다.사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나는 너무도 아팠었다. 그런데 진성준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마지막에 머리와 사지가 잘려나갈 때도 거의 고통이 없었다. 심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진성준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마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조차 모를 것이다.“내가 왜 울어? 이건 가짜야. 내가 울 리가 없지.”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닦던 그때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강샛별 씨 가족분 되시나요? 여기 성주 병원입니다. 오늘 강샛별 씨 산부인과 진료 날이라서요. 산모와 아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으니까 꼭 제때 병원에 와서 검사받으세요.”멈췄던 눈물이 또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진성준은 머리를 움켜쥐고 중얼거렸다.“별아, 들었어? 나 아빠 된대.”‘그래. 오빠. 아빠가 될 수 있었는데...’

  • 차가운 눈밭에 남겨진 그녀   제17화

    “헛소리하지 마.”진성준은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정채은을 노려보며 목을 졸랐다.“말도 안 돼. 걔 얼마나 연약한데. 길 걸을 때도 자주 넘어진다고. 그런 걔가 그 낭떠러지에서 날 업고 나왔다는 게 말이 돼?”“콜록콜록... 이 미친놈아, 이거 놔.”정채은은 그를 힘껏 밀어버렸다.“하나만 더 알려줄게. 그때 오빠가 이식받은 신장도 샛별 씨 신장이야. 샛별 씨가 신민혁 씨한테 부탁했다고 들었어. 오빠가 죄책감 가질까 봐 평생 비밀로 해달라고 했대. 참 어리석은 여자야. 자기 인생을 남자한테 바치기나 하고. 그러니까 죽었지. 하하. 죽어도 싸.”“그 입 다물지 못해?”그날 진성준은 그야말로 미치광이가 따로 없었다. 경찰이 와서야 그의 손에 잡힌 정채은을 겨우 구해주었다.그리고 진성준은 경찰서에서 나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강샛별 씨 시신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대량의 핏자국을 보면 시신을 토막 냈을 가능성이 있어요.”“토막요?”“네. 눈밭에서 끊어진 손을 발견했거든요. 근데 아직 몸과 머리를 찾지 못했어요.”“말도... 안 돼요... 샛별일 리가 없어요. 절대 아니에요... 뭔가 잘못 안 거 아니에요?”“진성준 씨, 이젠 진성준 씨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강샛별 씨 일은 안타깝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범인을 찾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샛별 씨와 연락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요? 뭔가 이상한 점이 없던가요?”“이상한 점이요?”진성준은 덜덜 떨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카톡을 확인하지 않고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별아, 오빠 바빠. 수업할 때랑 출근할 때 네 전화 못 받아.”“그럼 오빠가 보고 싶으면 어떡해?”“그럼 이렇게 하자. 한 번 전화하면 오빠가 보고 싶다는 뜻이고 두 번 하면 오빠더러 밥 먹으러 오라는 뜻으로 하자.”“그럼... 세 번째는?”“세 번째는 구조 신호. 우리 별이한테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하는 거야. 근데 걱정하지 마. 오빠가 잘 지켜줄게. 별

  • 차가운 눈밭에 남겨진 그녀   제16화

    그 후 며칠 동안 진성준은 출근하지 않았고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매일 앞치마를 두른 채 집을 깨끗하게 청소할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많이 만들었다. 심지어 나에게 밥도 떠주었고 비계까지 떼서 집어주었다.“비계에 붙은 살코기만 좋아하지? 대체 누가 이런 버릇을 들였는지, 참. 얼른 먹어. 앞으론 오냐오냐하지 않을 거야.”“강샛별, 많이 컸다 너? 이것도 다 못 먹어? 그러니까 이렇게 야위었지. 됐어. 나머지 밥은 내가 먹을게. 다음부턴 낭비하지 마. 낭비하면 못 써. 알았지?”그렇게 그는 허공에 대고 끊임없이 말했고 나의 접시에 담긴 음식도 모두 먹어버렸다.우리가 함께 썼던 안방으로 돌아온 진성준은 평소 나를 안던 것처럼 내 베개를 안았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살살 어루만졌다.“별아, 나 너무 힘들어. 조금만, 조금만 안고 있을게.”진성준이 뭔가 잘못됐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그가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 적이 있었다. 후회하고 날 영원히 기억하길 바랐지만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건 바라지 않았다.그렇게 3일이 지났고 진성준의 앞으로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아직 채 완성하지 못한 조각 작품이었는데 그에게 주려 했던 생일선물 중 하나였다.아주 크고 무거운 예쁜 인형이었다.진성준은 인형을 거실에 내려놓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인형이 너랑 닮았어. 마음에 들어. 예전에는 네가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하고 조각에도 재능이 없다고 했던 건 다 거짓말이었어. 우리 별이는 뭐든지 다 잘해. 조각도 제일 잘해.”진성준은 다정하게 웃었지만 나는 눈물을 떨구었다.‘오빠, 내가 살아있을 때 이런 얘기 좀 해주지. 이젠 늦었어.’그날 이후 진성준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계속 경찰과 나의 행방을 찾으면서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다만 더는 정채은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성준 오빠, 샛별 씨 일은 우리도 참 안 됐다고 생각해. 근데 사람은 앞을 봐야지...”“안

  • 차가운 눈밭에 남겨진 그녀   제15화

    진성준은 그제야 경찰에 신고했다.경찰이 CCTV를 확인한 결과 내가 마지막으로 실종된 곳이 폐공장 근처라는 걸 알아냈다.폐공장이긴 했지만 눈이 내릴 때면 커플들이 가끔 와서 사진을 찍는 로맨틱한 명소이기도 했다.진성준은 곧장 그곳으로 달려와 비틀거리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뭔가 떠올랐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멀지 않은 곳의 폐공장을 쳐다보았다.드디어 알아챈 걸까?이곳은 이름도 모르는 여자 시신을 해부했던 곳과 아주 가까웠다.“진성준 씨, 우리 경찰견이 눈밭에서 이걸 찾았습니다.”피가 묻은 보청기였다.지금 이 순간 진성준의 표정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충격에 빠진 듯했고 또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는 나에게 맞춤 제작해줬던 비싼 보청기를 들여다보았다.“아니에요... 별이 것일 리가 없어요... 이 세상에 보청기가 얼마나 많은데. 별이 거 아니에요. 내가 밥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먼저... 가볼게요... 별이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요. 집에... 가서 밥 먹어야 해요.”진성준은 정신이라도 놓은 듯 경찰을 밀어내고 집으로 향했다.“별이 그냥 삐졌을 뿐이야. 그래. 어릴 적부터 그랬어. 삐지면 나랑 숨바꼭질했잖아. 아무 일 없을 거야. 숨어있다가 곧 나오겠지.”진성준은 집으로 가는 길에 해바라기 꽃도 구매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다.그는 다시 마음을 진정하고 텅 빈 집을 향해 불렀다.“별아, 나 왔어. 오늘 저녁 뭐 먹어? 갈비찜? 별이가 해준 갈비찜이 제일 맛있어. 별아, 요즘 바쁜 일이 끝나면 우리 결혼식 올릴까? 신혼여행 어디로 가고 싶어? 국내 아니면 해외? 보자, 내 휴가가 며칠 있는지. 그동안 휴가 쓰지 않았으니까 아마 한 달 정도 쉴 수 있을 거야. 신혼여행 한 달이면 충분하겠지? 아이 좋아해? 우리 아이 가질까?”모든 것이 싸우기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그땐 나에게 말도 걸곤 했었다. 이렇게까지 말이 많진 않았지만.말해봤자 차가운 말투로 대충 두어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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