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혜의 말을 들은 경쟁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모두 태안 그룹을 대표해서 회의에 참석한 안다혜가 유능한 인재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예의 있게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상업계에서 굳이 경쟁자한테 잘 보일 필요는 없었지만 밉보여서도 안 되었다. 자칫하면 표적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넘기기만 하면 되었다.태안 그룹은 다른 회사의 적이 아니라 우호적인 관계로 남을 것이다.안다혜가 회의실을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윤해준과 마주쳤다.“해준 오빠,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요?”“아니. 업무를 다 보고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윤해준은 자연스럽게 안다혜의 가방을 들어주었다. 안다혜는 윤해준을 힐끗 쳐다보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조금 전에 같이 있던 사원들은 전부 흩어졌고 윤해준은 혼자 복도에서 안다혜를 기다렸다.안다혜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윤해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만약 윤해준이 태안 그룹에 나타났다면 사원들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그녀는 풍산 그룹에서 사원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윤해준이 고개를 돌리더니 안다혜를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잘생김이 묻었어요.”안다혜는 저도 모르게 생각한 그대로 대답했다. 그녀는 말하자마자 얼굴이 삽시에 빨갛게 달아올랐다.‘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오빠한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 너무 수치스럽고 창피해. 오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윤해준은 헛기침하고는 손등으로 입을 막으면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정우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돌 같던 대표님이 웃었어. 대표님이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어?’그는 회의 때마다 굳은 표정을 하고서 앉아 있었다. 사원이 큰 실수를 하면 윤해준한테 된통 혼났다.오정우는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안다혜를 쳐다보았다. 아마 안다혜 때문에 윤해준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안다혜는 윤해준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심장이 덜컹 내
안다혜는 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윤해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사람들이 술렁거렸고 모두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오빠 마음대로 하세요.”안다혜는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오정우를 비롯한 여러 사원이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저분이 바로 윤 씨 사모님인가요?”“그런 것 같아요. 대표님이 저녁에 음식을 차릴 테니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어봤잖아요.”“대표님이 요리도 할 줄 안다니... 정말 신기해요.”“결혼하지 않고 영원히 혼자 지낼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표님은 이미 선녀님과 결혼하셨네요. 이렇게 보니 선남선녀예요.”“대표님은 원하는 것이라면 전부 얻은 것 같아요. 얼마나 완벽하고 행복한 삶이에요!”주변에서 업무를 보던 사원들은 사실 귀를 쫑긋하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안다혜는 주목을 받게 되자 안절부절못했다. 윤해준이 고개를 들고 위협적인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사원들은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업무를 보았다. 윤해준은 안다혜를 불편하게 한 사원들을 찾아내서 벌을 줄 수도 있었다.안다혜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업무를 봐야 해서 회사에 빨리 들어가야 해요. 오빠도 얼른 가보세요.”“그러면 주차장까지 데려다줄게.”그녀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미소 짓고 있는 이 남자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안다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윤해준과 같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사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원들은 윤해준이 여자한테 관심 없는 돌 같은 남자인 줄 알았다.하지만 윤해준은 좋아하는 여자한테 부드러운 면을 보여주는 다정한 남자였다.‘대표님과 사모님은 누가 봐도 어울리는 한 쌍이야. 안다혜 씨는 대표님의 분위기에 눌리지 않았어. 오히려 대표님을 리드하고 있는 것 같달까?’오정우는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자, 잡담은 이쯤하고 업무를 보세요. 오늘 보고 들은 건 절대 소문내지 말고요.”오정우가 천천히 말을 이
안다혜는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윤해준은 안다혜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다정아, 내가 잘생겼다면서 왜 나를 쳐다보지 않는 거야? 얼굴에 묻었던 잘생김이 떨어지기라도 한 건가? 아직도 민망해서 그런 거라면 이해할게.”안다혜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까 풍산 그룹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어쩐지 억울했고 가슴이 답답했다.그리고 저도 모르게 한 말을 농담 삼아서 하는 윤해준이 싫었다. 그녀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윤해준을 쳐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아무리 잘생겼어도 이미 못 볼 것까지 다 본 사이잖아요. 오빠의 얼굴을 계속 보다 보니 질렸다고요. 어쩌면 오빠라는 사람이 질렸을지도 모르죠.”안다혜의 말에 윤해준은 그 자리에 멈춰서서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는 윤해준이 멈춰 선 줄도 모르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중얼거렸다.안다혜는 다른 사람이 약점이거나 실수했던 일로 자신을 놀리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차 문을 열려고 할 때 윤해준이 따라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데려다준다면서 왜 거기에 서 있는 거예요? 싫으면 내 가방을 돌려줘요. 회사에 빨리 가봐야 해서 오빠랑 장난칠 시간이 없어요.”안다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이때 윤해준의 눈빛이 점점 뜨거워졌고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욕구가 타오르고 있었다.윤해준이 다가와서 차 열쇠를 뺏고는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안다혜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차 안으로 들어갔고 문을 잠갔다.그는 안다혜를 뒷좌석에 눕히고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다혜가 두 눈을 깜빡이더니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해준 오빠, 회사에 가야 한다고 했잖아요. 왜 이러는 거예요?”윤해준은 허리를 숙이고 안다혜의 귓가에 속삭였다.“다정아, 벌써 질리면 어떡해? 이제는 내가 남자로 보이지 않아?”섹시한 목소리가 귀 끝을 간지럽혔다. 안다혜는 심장이 거칠게 뛰었지만 여전히 정색한 채 말했다.“오빠가 화났다고 해도 소용없어요. 내가 말한 건 전부
윤해준은 숨을 돌리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안다혜가 대답하기도 전에 손으로 눈을 막고는 다시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숨이 막혀서 윤해준을 밀쳤지만 소용없었다.차 안은 한동안 열기로 가득 찼다.한편, 태안 그룹.안다혜가 회사로 돌아오자 옆에 앉아 있던 동료가 반갑게 맞이했다. 풍산 그룹 담당자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려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동료가 입을 틀어막으면서 물었다.“다혜 씨, 입이 왜 이렇게 부었어요? 피도 좀 난 것 같은데 괜찮아요?”동료 이지영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사랑스럽게 생긴 여자였다. 처사 방식이 과감하고 책임감이 넘쳐서 안다혜의 호감을 샀다.이지영은 평소에 간식을 가져오면 안다혜와 나누어 먹곤 했다.안다혜가 입술을 매만지며 대답했다.“미친개한테 물려서 그래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그 말을 들은 이지영은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어머! 남자 친구가 어떤 분인지 정말 궁금해요. 다혜 씨처럼 예쁜 여자의 남자 친구라면 엄청나게 멋진 사람이겠죠?”그녀는 헛기침하더니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남자 친구가 아니라 미친개라니까요.”이지영은 씩씩거리는 안다혜를 쳐다보면서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다혜 씨가 이렇게 귀여운 사람인 줄 몰랐어요. 평소에 일하는 모습만 보다가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니까 내적 친밀감이 생기네요.”안다혜는 그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나도 예전에는 자유로운 삶을 만끽했었지. 노는 걸 좋아하고 바닷가에서 미친 듯이 소리도 질렀어. 갑자기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네.’이지영은 디저트를 책상 위에 올려두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먼저 볼일 봐요. 저는 컵을 씻으러 가볼게요. 풍산 그룹에 다녀오느라 고생 많았어요.”“알겠어요. 지영 씨, 고마워요.”책상 위에는 전부 안다혜가 좋아하는 디저트가 놓여 있었다. 이때 주변을 맴돌고 있던 임유정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임유정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안다혜를 노려보면서 손톱을 깨물었다. 이훈과
안다혜는 임유정을 힐끗 쳐다보고는 생각에 잠겼다. ‘이훈과 같이 쇼핑하던 여자인 것 같아. 이름이 임유정이었나? 아무튼 이훈이 무척 따르던 여자였어.’그녀는 이훈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침을 꿀꺽 삼키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임유정은 이훈을 위해서 복수하려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을 것이다.안다혜는 악마 같은 놈을 감싸고 도는 여자가 있다는 게 우스웠다. 이훈과 임유정은 각자 원하는 것이 있었기에 그런 관계를 이어왔다. 안다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계속해서 서류를 정리했다. 컴퓨터에 파일을 저장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 팀장이 안다혜를 불렀다.“안다혜 씨, 할 얘기가 있으니 내 사무실로 와요.”“알겠어요.”안다혜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을 뒤따라갔다. 임유정은 안다혜가 문을 닫자마자 그쪽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더러운 년...”임유정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안다혜가 팀장과 그렇고 그런 관계여서 이훈을 내쫓을 수 있었다고 추측했다.‘팀장의 침대에서 구르던 년이 감히 이훈을 내쫓아?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네. 사무실 안에서 팀장이랑 이상한 짓을 하는 거 아니야?’임유정은 퇴근 시간까지 기다렸지만 안다혜와 팀장은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커피잔을 들고 지나가는 척하면서 안다혜의 자리로 다가갔다.임유정은 안다혜가 컴퓨터를 끄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는 흥분했다. 안다혜가 제출한 기획안은 초안이었기에 조금만 손을 보고 임유정의 명의로 제출하면 되었다. 그녀는 기획안을 가로챌 생각이었다.그렇게 되면 이훈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승진할 수 있을 것이다.임유정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 안다혜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지영이 그 모습을 보고 나서서 말했다.“임유정 씨, 지금 다혜 씨의 자리에서 뭐 하는 거죠? 다혜 씨의 허락을 받고 그러는 건가요?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말아요.”그 말을 들은 임유정은 정색한 채 팔짱을 끼고 말했다.“안다혜 씨가 컴퓨터를 끄지 않아서 도와주려고 했을 뿐
“다혜 씨, 제 말을 믿어주세요. 저는 풍산 그룹의 프로젝트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요. 다혜 씨가 해낸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안다혜는 이지영의 어깨를 토닥여 주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영 씨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지영 씨는 다른 사람의 성과를 욕심내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이지영은 울먹이면서 안다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부서에서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일을 나서서 할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었다.서류를 복사하거나 다른 부서에 전달할 사항이 있으면 이지영이 도맡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무실에서 한 사원이 물건을 잃어버리자 이지영을 제일 먼저 의심했다. 이지영은 증거가 있냐고 반문했다. 그 사원은 이지영이 모든 팀원과 친하게 지내기에 소지품에 손대기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결국 이지영이 훔친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큰 상처를 받았다. 며칠 후, 이지영은 다시 밝게 웃으면서 예전처럼 화목하게 지냈다.그녀는 안다혜가 자신을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안다혜는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이지영의 편을 들어주었다.이지영이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자 안다혜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안다혜가 티슈로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아주면서 물었다.“지영 씨, 혹시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내가 지영 씨를 오해할까 봐 그래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지영 씨를 믿어줄 테니 울지 말아요.”안다혜는 이지영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몰랐다. 이지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눈물을 닦았다.“아니에요. 제가 좀 감성적인 사람이라서 그래요. 다혜 씨가 저를 믿어준다고 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안다혜는 어떻게 된 일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괜찮아요. 지영 씨가 알려줘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것 같아요.”이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다혜 씨, 임유정이라는 여자를 꼭 조심해야 해요. 조금 전에 분명 무슨 짓을 벌이려고 했단 말이에요. 제
다음날.안다혜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임유정의 자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임유정은 안다혜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안다혜는 피식 웃고는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 임유정은 안다혜가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USB 안에 든 기획안 파일을 훑어보면서 중얼거렸다.“안다혜, 조금만 손을 보면 이 기획안은 내 것이 될 거야. 회의 때 내가 먼저 발표하면 네 체면이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해. 아무리 팀장이 네 뒷배라고 해도 수습할 수 없을 거야. 다시 회사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줄게.”이지영은 임유정의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안다혜 쪽으로 다가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혜 씨, 오늘따라 임유정이 자꾸 이쪽을 쳐다보는 것 같아요.”“그래요?”안다혜는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었다.“아까부터 느낀 건데...”이지영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잘못 본 줄 알고 다시 봤거든요. 임유정이 분명 다혜 씨를 쳐다보고 있었어요.”안다혜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어쩔 수 없죠. 그렇다고 해서 저를 쳐다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저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이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다혜를 바라보았다.“다혜 씨가 너무 예뻐서 질투하는 거예요. 실컷 보고 질투하라고 하죠. 임유정이 아무리 질투해도 다혜 씨가 훨씬 예쁜걸요.”안다혜는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신경 쓰지 말고 얼른 일해요. 저번에 팀장님이 부탁했던 서류를 정리했어요?”“어머!”이지영이 깜짝 놀라면서 다급히 서류를 찾았다.“다혜 씨가 아니었으면 잊어버릴 뻔했어요. 얼른 서류를 찾아서 정리해야겠어요.”말을 마친 이지영은 서류를 찾기 시작했다. 안다혜의 표정이 삽시에 굳어지면서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의 컴퓨터에 손을 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 사람이 누구인지 예상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안다혜는 컴퓨터에 손을 댄 사람이 오후에 있을 회의에서 그 기획안을 먼저 발표할 것이라고 생각했
임유정은 사과하지도 않고 안다혜를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 USB에 파일을 복사한 것만 생각하면 신이 나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회의가 시작되면 임유정은 안다혜의 기획안을 발표할 것이다. 안다혜를 짓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준비가 되었다.만약 임유정이 운 좋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면 태안 그룹의 일등 공신이 될 것이다. 안다혜한테 밉보이게 되더라도 상관없었다.이지영이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임유정은 다혜 씨랑 부딪히고 나서 사과도 하지 않네요. 어떻게 무례하게 굴고도 이럴 수가 있는 거죠? 임유정한테 당장 사과하라고 말해야겠어요.”이지영이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 임유정을 따라가려고 했다. 이때 안다혜가 앞을 막아서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지영 씨, 일단 진정하고 내 말부터 들어봐요. 무례하게 구는 사람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요. 조금 있다가 회의실에서 풍산 그룹과 협력할 프로젝트를 토론할 거예요. 지금 제일 중요한 건 프로젝트잖아요.”이지영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알겠어요.”두 사람은 회의실에 들어가서 앉았다. 임유정은 보란 듯이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아서 득의양양하게 웃고 있었다.이지영이 미간을 찌푸린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놓고 우리를 얕잡아보는 것 같아요. 무엇을 믿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니까요.”안다혜가 이지영의 팔을 툭툭 치면서 눈짓했다. 회사에서 이훈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에 말조심해야 했다.임유정처럼 이훈을 위해 복수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이지영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번 회의는 팀장이 진행을 맡았다. 중요한 프로젝트에 관한 의견이 나오자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풍산 그룹과 협력하려면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해요. 구체적인 기획안을 완성한 분이 있으면 이쪽으로 와서 발표해 보세요.”팀장이 자리를 비켜주면서 안다혜를 힐끗 쳐다보았다. 모든 사원을 상대로 한 말이었지만 사실 처음부터 이 자리는 안다혜에게 주는 기회였다.팀장은 안다혜가 유능한 인재라는 것
윤해준이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오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당장 태안 그룹 지하 주차장의 감시 카메라 영상을 찾아봐. 안다혜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야 해.”오정우는 전화를 끊자마자 컴퓨터로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윤해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노트북을 켜고는 위치추적기로 안다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다.몇 분 후, 오정우가 전화를 걸어왔다.“대표님, 찾았어요. 누군가가 안다혜 씨를 납치해서...”“서쪽 창고로 데려갔을 거야. 경찰에 신고하고 오 비서도 서쪽 창고로 와. 나는 지금 바로 출발할 거야.”윤해준은 엄숙한 어조로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오정우는 윤해준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동안 윤해준의 비서로 일하면서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더 독한 남자였다.오정우는 안다혜를 납치한 사람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윤해준이 화가 나면 아무도 말릴 수 없을 것이다.그는 싸늘한 표정을 짓고서 서쪽 창고로 향했다. 신호등에 걸려도 멈추지 않고 엑셀을 있는 힘껏 밟았다.윤해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운전대를 잡고는 생각에 잠겼다.‘다정아, 곧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진작에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해.’한편, 서쪽 창고.안다혜는 발버둥 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훈은 임유정의 옆에 서서 피식 웃더니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서진우는 무언가를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리는 악마 같은 남자였다. 그는 이훈한테 안다혜를 괴롭히는 영상을 잘 찍어서 전송하라고 지시했었다.건달은 손발이 묶여서 꼼짝하지 못하는 안다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온몸을 덜덜 떨며 건달을 노려보았다.“나한테 손대지 마!”안다혜는 저도 모르게 윤해준을 떠올리면서 울먹였다. 그가 곁에 있어 주면 늘 든든했고 하늘이 준 선물처럼 소중한 사람이었다.그녀는 윤해준이 자신을 구해주러 오기를 바랐다.“성격도 화끈하니까 가지고 놀 맛이 있네.”“반항해도 소용없어. 소리 지르지 말고 우리랑 재밌게 놀자.”이훈이 옆에 서서 다급
안다혜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납치당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를 납치하려고 계획한 사람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안다혜가 밉보인 사람은 그 몇 명뿐이었던 것이다.이훈이 당당하게 걸어오자 안다혜는 덤덤한 표정을 짓고 쳐다보았다. 그는 안다혜의 턱을 거칠게 잡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눈 깔지 못해? 네가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순순히 풀어줄 것 같았어? 얼른 대답해 봐.”안다혜는 입을 막고 있는 테이프를 떼어달라고 눈짓했다. 임유정이 테이프를 뜯으면서 득의양양하게 말했다.“회의실에서 나를 바닥에 내팽개치다가 납치당해 보니 기분이 어때? 정말 짜릿하지 않아? 울면서 나한테 빌면 기분이 좋아서 너를 풀어줄 수도 있어.”임유정은 안다혜의 볼을 매만지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안다혜가 침을 뱉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를 납치해도 태안 그룹에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그리고 경고하는데...”안다혜가 이훈을 노려보면서 말을 이었다.“지금 풀어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좋은 말로 할 때 풀어.”이훈은 안다혜가 협박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안다혜의 몸매를 훑어보면서 침을 삼켰다.이훈과 눈이 마주친 안다혜는 속이 울렁거려서 고개를 돌렸다.그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를 탓할 게 아니라 너를 원망해. 네가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려서 납치당한 거야.”안다혜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이훈은 그녀의 턱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더니 밖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이때 건달이 4명 정도 들어오자 안다혜는 깜짝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임유정이 깔깔 웃으며 물었다.“어때? 무서워서 꼼짝도 못 하겠지? 개 같은 년, 내가 기회를 주었을 때 나한테 빌었어야지.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어.”건달들은 의자에 묶인 안다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예쁜 얼굴과 굴곡진 몸매를 쳐다보면서 여유롭게 웃었다.“오늘 정말 운이 좋네.”“우리한테 이런 날이 오게 될 줄
마침 서진우도 안다혜를 끌어내리기 위해 기회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이훈은 서진우의 힘을 빌려서 안다혜를 상대할 생각이었다.그는 울고 있는 임유정을 달래주고는 창가로 가서 서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유정은 눈물을 그치고 이훈의 뒷모습을 지그시 쳐다보았다.이훈이 회사에서 거만하게 굴었던 건 안씨 가문 첫째 아가씨뿐만 아니라 서씨 가문 도련님이 뒷배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그가 서진우의 도움을 받게 되면 안다혜를 망가뜨리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한편, 발신자를 확인한 서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훈의 이름만 보면 그동안 안씨 가문 둘째 아가씨를 찾느라고 고생했던 것이 떠올랐다.카운터에서 마주친 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무능한 이훈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솟구쳐 올랐다.서진우가 전화를 받고는 차갑게 말했다.“쓰레기 같은 놈, 무슨 일로 연락한 거야? 안다혜가 허튼짓하지 못하게 감시하랬더니 풍산 그룹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어. 내 일을 망치게 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여자 하나 감시하지 못하고 회사에서 내쫓기다니...”이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서진우는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쩔쩔매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진우 도련님,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세요. 다른 방법을 토론해 보려고 연락한 거예요.”“다른 방법이라니?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거야?”서진우는 지난번에 연회에서 안다혜한테 한 방 먹은 후로 갖은 방법을 생각했었다. 그는 여러 사람을 보내서 안다혜한테 복수하려 했지만 누군가가 그녀를 계속 보호해 주어서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제일 믿었던 이훈마저 회사에서 해임당했기에 점점 화가 났다. 이훈이 임유정한테 일어난 일을 말하면서 제안했다.“서진우 도련님, 이번이야말로 안다혜한테 복수할 기회예요. 임유정을 너무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의 여자 친구잖아요. 여자 친구가 괴롭힘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서진우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네 여자 친
경비원들이 임유정을 회사 밖으로 쫓아냈다. 카운터 직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밖을 내다보며 수군거렸다.태안 그룹에서 사원을 내쫓는 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이때 한 경비원이 임유정의 물건이 담긴 상자를 던지면서 말했다.“앞으로 회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요. 당장 꺼지지 않으면 신고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요.”경비원이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뒤돌아 갔다. 그는 팀장의 지시에 따라 임유정의 물건을 전부 상자에 넣어서 던졌다.임유정은 팀장이 이 업계에 발을 들이고부터 지금까지 봤던 사람 중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이었다.카운터 여직원들이 바닥에 내팽개쳐진 임유정을 힐끗 쳐다보면서 깔깔 웃어댔다.임유정은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오늘 당한 치욕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몇 배로 갚아줄 테니 두고 봐.’카운터 여직원이 임유정을 쳐다보면서 다른 직원을 향해 말했다.“회사에서 내쫓긴 주제에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 봐요. 살벌한 표정을 짓는 걸 봤어요?”다른 직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겉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여자 같아도 늘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조금 전에 회사 단톡방에서 얘기하는 걸 보니 동료의 기획안을 표절했대요. 그리고 이훈과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고 했어요.”“회사에서 내쫓을 만하네요.”두 사람은 임유정이 어떤 표정을 짓든지 상관하지 않고 말했다. 임유정은 더 이상 이 회사의 사원이 아니기에 카운터 직원한테 따질 수도 없었다.카운터 여직원들이 손가락질해도 임유정은 반격할 수 없었다. 예전의 임유정이라면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그녀는 상자를 들고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러다가 길 한복판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이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절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안다혜한테 몇백 배 돌려줄 거야.’임유정은 택시를 타고 이훈이 지내는 곳으로 향했다. 이훈은 해임당한 뒤로 취직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가끔 서진우와 연락하면서 안다혜를
“안다혜 씨, 다음부터 절대 그러지 않을게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 테니 제발...”“다음이란 게 있을 것 같아요?”안다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임유정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 아니었다.만약 진작에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임유정한테 제대로 한 방 먹었을 수도 있었다.안다혜가 아니라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인턴이었다면 임유정한테 당해도 반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안다혜는 차가운 두 눈으로 임유정을 쳐다보았다. 임유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안다혜 씨, 이번에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하라는 대로 하고 죽은 듯이 지낼게요.”임유정이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지만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평소에 인성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퍼졌기에 모두 멀리하고 싶어 했다.이지영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환하게 웃었다.아까 안다혜가 나서지 말라고 할 때 속이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다행히 안다혜가 현명하게 처리해서 임유정의 만행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안다혜는 임유정의 손을 내치고는 팀장을 향해 말했다.“임유정 씨가 제대로 반성한 것 같으니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요?”임유정이 기뻐하기도 전에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회사에서 내보내고 이 업계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하는 거예요.”안다혜가 또박또박 말했다. 임유정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눈물만 흘렸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기에 해임당하면 이 업계에서 취직할 수 없을 것이다. 팀장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좋은 생각이에요. 안다혜 씨 말대로 해요.”안다혜는 임유정을 스쳐 지나가서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이때 임유정이 벌떡 일어서더니 안다혜의 얼굴을 잡아 뜯으려고 덤볐다.“안다혜, 이 개 같은 년!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이렇게 혼자 죽을 수는 없어. 죽으려면 다 같이 죽어야 해!”안다혜가 재빨리 옆으로 비키자 임유정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말았다.
임유정이 씩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말만 하지 말고 증거를 보여줘. 네가 그렇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어줄 것 같아?”안다혜는 임유정을 보는 체도 하지 않고 PPT를 한 장씩 넘겼다. 임유정이 발표한 것과 완전히 다른 기획안이 눈앞에 나타났다.이미 협업할 연예인을 섭외했고 구체적인 대안을 정리해서 적어두었다.안다혜의 차가운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임유정 씨가 발표한 기획안은 저의 초안이에요. 지금 여러분께 보여드린 건 최근에 완성한 기획안이에요. 온천 휴양지는 럭셔리한 이미지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그녀가 말을 이었다.“지금 보시는 화면은 초안의 단점을 보완해서 최종적으로 확정한 내용이에요. 유명한 브랜드 회사 담당자와 미팅을 진행했어요. 저의 기획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고요.”그 자리에 있던 사원들이 전부 일어나서 손뼉을 쳤다. 조금 전에 임유정이 발표한 것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훌륭했다.안다혜는 사원들의 인정을 받았다. 두 사람의 기획안을 비교해 보면 누가 더 유능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임유정이 안다혜의 기획안을 표절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임유정 씨가 이런 짓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평소에 얌전한 척하더니 아무도 모르게 이익을 챙기려고 했네요.”“저런 사람과 가까이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요. 앞으로 조심해야겠어요.”“표절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곧 해임당하지 않을까요? 오늘 밤에 회사의 상업 기밀을 유출할지도 모르잖아요. 회사 차원에서 놓고 보면 위험한 인물이에요.”그 말을 들은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다혜를 향해 말했다.“안다혜 씨, 정말 훌륭한 기획안이네요. 표절할 생각밖에 없는 사람과는 다르게 무척 애썼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팀장님,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처음부터 진행하고 싶었던 프로젝트였거든요.”안다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리고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을 찾아냈고요. 임유정 씨를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안다혜는 임유정을 내팽개치고는 티슈로 손가락을 닦았다. 임유정은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안다혜를 노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안다혜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안다혜, 네까짓 게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당장 무릎 꿇고 나한테 빌란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더한 짓도 벌일 수 있어.”임유정은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안다혜의 기획안을 훔쳐서 발표한 사람은 임유정이었지만 오히려 피해자처럼 굴었다.이때 팀장이 나서서 임유정을 말리며 진지하게 말했다.“임유정 씨, 동료끼리 싸우지 마세요. 안다혜 씨가 이러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렇죠?”팀장의 말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안다혜가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맞아요. 임유정 씨는 저의 기획안을 표절했어요.”“웃기는 소리! 내가 언제 표절했다고 그래? 내 기획안이 욕심나서 일부러 나를 모함하는 거잖아.”임유정은 발가벗겨진 것처럼 수치스러워서 언성을 높였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안다혜, 네가 팀장의 침대에서 뒹굴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렇지 않고서야 팀장이 너를 감싸고 돌 리가 없잖아.”“임유정 씨의 말을 들어보니 문뜩 궁금해지네요.”안다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이훈 씨랑 무슨 사이였어요? 아주 특별한 사이인 것 같던데요.”“뭐, 뭐라고?”그 말을 들은 임유정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안다혜가 그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임유정은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사원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팀장과 안다혜가 아니라 임유정과 이훈이 특별한 사이였던 것이다. 안다혜가 여유롭게 웃으면서 말했다.“임유정 씨,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그리고 임유정 씨가 이 기획안을 어떻게 완성했는지 다시 설명해 볼래요?”안다혜의 말에 팀원들이 깜짝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이때 이지영이 피식 웃으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다혜 씨의 말대로라면 임유정이
“임유정 씨의 기획안을 제출하면 회사의 명예에 먹칠하게 될 거예요.”안다혜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 단상에 서서 시끄럽게 떠드는 임유정을 지켜보다가 더는 들어줄 수 없어서 나섰던 것이다.임유정이 주먹을 꽉 쥔 채 반문했다.“안다혜 씨, 지금 뭐라고 했어요?”임유정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설마 제가 안다혜 씨보다 먼저 승진할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건가요? 안다혜 씨는 보기보다 속 좁은 사람이었네요. 동료를 시기 질투할 시간에 더 노력하지 그래요?”임유정은 안다혜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불안했다. 하지만 그날 밤에 안다혜의 컴퓨터에 있던 파일을 전부 복사한 뒤에 삭제했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안다혜가 아무리 해석하려고 해도 임유정이 먼저 발표했기에 이 기획안은 임유정의 것이 되었다.팀장이 안다혜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안다혜 씨, 설마 이 기획안을...”“팀장님!”임유정이 팀장의 말을 끊으면서 소리를 질렀다.“안다혜 씨는 아무 근거도 없이 동료를 모함하고 있어요. 그런데 팀장님은 왜 안다혜 씨의 편을 드는 건가요? 설마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관계는 아니겠죠? 어쩐지 저번부터 분위기가 미묘한 것 같았어요.”임유정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모두 팀장과 안다혜를 번갈아 보면서 귓속말했다.팀장은 임유정의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임유정 씨,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그런 사이 아니니까 모두 조용히 하세요.”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팀장의 표정을 관찰하면서 안다혜와 특별한 사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팀장이 아무리 부정해도 임유정의 말을 믿는 사람이 있었다.이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설명하려고 했지만 안다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다혜는 피식 웃더니 임유정 쪽으로 다가가서 노려보았다.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안다혜와 달리 임유정은 지나치게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임유정과 안다혜가 나란히 서 있으니 비교가 되었다. 짙은 화장을 한 임유정은 안
안다혜는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는 것처럼 편하게 앉아서 임유정을 쳐다보았다.안다혜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자 임유정은 화가 솟구쳐 올라서 주먹을 꽉 쥐었다.‘멍청한 년,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거야? 조금 있다가 너를 처참히 짓밟아줄 테니 기다려. 언제까지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지 지켜볼 거야. 이 기획안이 나의 것이 되면 너는 팀장한테 버림받겠지.’임유정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단상으로 올라갔다. 안다혜는 그 모습을 보고 팔짱을 끼더니 피식 웃었다.임유정은 USB를 컴퓨터에 꽂고는 준비한 기획안 파일을 클릭했다. 안다혜가 예상했던 대로 컴퓨터에 손을 댄 사람은 임유정이었다.임유정이 여유롭게 웃으면서 도발했지만 안다혜는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크린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 모습을 본 임유정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안다혜, 내가 준비한 기획안을 보고도 웃음이 나와? 곧 울면서 나한테 빌겠지.’임유정이 차분하게 말했다.“며칠 동안 준비한 기획안을 발표할게요. 풍산 그룹의 고급 온천 프로젝트는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와 컬래버하는 게 좋아요. 혹은 요즘 떠오르는 아이돌 그룹을 홍보대사로 초빙하면 더 좋고요. 그리고 풍산 그룹의 온천 휴양지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거예요.”임유정이 스크린에 PPT를 띄워놓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프로젝트의 내용을 귀담아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발표가 끝난 후, 팀원들은 임유정이 이토록 훌륭한 기획안을 생각해 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팀장이 감탄하면서 말했다.“임유정 씨, 정말 혼자 생각해 낸 기획안인가요?”임유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팀장님, 제가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가 아니면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을 거예요. 팀장님이 저를 미덥지 않아 하는 건 알지만 이건 오로지 저의 힘으로 완성한 거라고요.”팀장은 조금 전에 임유정이 자신만만하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어디에서 들어본 것 같은 내용이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