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이미 신고했으니까 출동했을 거야.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온유한이 말해도 강지아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온유한은 그녀 앞으로 다가와 예전처럼 손을 잡았다.“만지지 마!”강지아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그를 거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온유한을 노려보는 그녀는 그가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궁금할 뿐이었다.서울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지 않은가?요즘 많이 바쁘다고 하지 않았던가?여기에 무엇을 하러 왔단 말인가?유럽의 작은 마을에서 우연히 마주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강지아는 뒷걸음질 치다가 바로 뒤돌아섰다.하지만 몇 걸음 가기도 전에 온유한이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바로 안아 들었다.“이거 놔. 놓으라고.”그녀는 도마 위의 물고기처럼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온유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강제로 차에 태웠다.지금 이 순간, 멍해진 강지아는 오롯이 이 남자와 멀리 떨어져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일어나서 뛰려고 했지만 다시 온유한에게 잡혀 차에 탔다.다시 일어나면 온유한은 또다시 그녀를 차에 밀어 넣었다.여러 번 반복하자 온유한이 갑자기 차 안으로 들어와 그녀를 몸 아래로 눌렀다.두 사람의 가까워진 거리에 눈이 휘둥그레진 강지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봤다.겁에 질린 강지아는 온유한의 몸 아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내가 무서워?”강지아의 눈에 가득한 두려움에 온유한은 이런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 옆에서 귀염둥이로 사랑받고 자라던 소녀가 그를 이렇게 무서워할 줄 몰랐다.온유한은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온유한이 마치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양 강지아는 아무 말 없이 두려움과 절망의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다.“내가 그렇게 무서워?”온유한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사실 지금 온유한은 그녀의 얼굴을 만지고 싶고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강지아는 미친듯이 거부했다.강지아는 지금 정말로 미칠 것 같았다.
온유한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현지 경찰이 그에게 전화해 주민희를 못 잡았다고 전했다. 이곳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다.그 여자가 이름을 바꾼 것 같지만 무슨 이름으로 바꿨는지 그리고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못 잡았다는 경찰의 말에 경찰이 최선을 다해 수색하지 않은 것을 느낀 온유한은 싸늘한 태도로 전화를 끊었다.이 일은 강지찬에게 맡겨야 할 것 같았다. 주민희, 그 미친 여자가 두 번 다시 강지아의 옆에 나타나게 해서는 안 된다.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옆 방에 있던 동하민의 목소리가 들렸다.“온 대표님,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온유한은 바로 방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옆 방의 문은 잠겨져 있었다. 몸으로 몇 번 세게 밀쳐 문을 열려고 할 때 문이 갑자기 열렸다.동하민이 초조한 얼굴로 욕실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온 대표님, 저희 대표님이...”욕실로 뛰어 들어간 온유한은 강지아가 물에 흠뻑 젖은 채 욕조에 엎드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온유한의 뒤를 따라온 동하민이 말했다.“대표님이 기절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온 대표님이...”동하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유한은 강지아를 욕조에서 끌어내 옆 카펫에 눕힌 뒤 재킷을 풀고 응급처치를 시작했다.“대표님이 왜 이러는 것일까요? 왜 욕조에서 익사를 하려는 것일까요?”‘익사’라는 두 글자에 온유한은 흠칫 놀랐지만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얼른 그녀에게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을 했다.다행히 동하민이 제때 발견했기에 강지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물 한 모금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렸다.온유한의 입술이 강지아의 입술에서 떨어졌다.그녀의 몸 양옆을 짚고 있는 온유한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느낀 강지아는 하마터면 또 기절할 뻔했다.두 눈을 부릅뜨고 온유한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온유한은 화가 났지만 아무 말 없이 강지아를 침대로 눕혔다. 강지아는 그제야 완전히 정신이 든 듯했다.“대표님, 더 이상 날 놀라
경찰서에 있던 온유한은 강지아가 이곳을 떠난 것을 듣고는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것 같았다.온유한은 그를 피하는 강지아만 생각하면 마음이 쓰라렸다.호텔에 돌아오자마자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사실 며칠 전 온미정으로부터 우연히 강지아가 당분간 이곳에 머물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시간을 쪼개 강지아를 만나러 달려온 것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뭘 하기도 전에 강지아가 위험에 처했다. 그런데 몇 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강지아는 온유한 때문에 놀라서 도망갔다.온유한도 강지아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에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어 다시 귀국했다.한편 온씨 가문은 다시 안정되었다.온유한이 돌아온 것을 본 최신애는 서둘러 마중을 나갔고 하인에게 짐을 받으라고 지시했으며 또 주방 아주머니에게 빨리 밥을 차리라고 했다. 정말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이었다.“아들아, 외국에 뭐 하러 간 거야?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거야?”온유한은 자기 엄마를 힐끗 본 뒤 말했다.“지아를 찾으러 갔어요.”“응?”어리둥절해 하던 최신애는 갑자기 한마디 했다.“왜 찾으러 간 건데?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최신애는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간신히 참고 말을 돌렸다.“그럼 지아는 만났어? 어디에 있었는데? 너와 함께 돌아온 거야?”상냥한 최신애의 표정은 후배를 아끼는 자상한 어른이 아닐 수 없었다.온유한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나를 보자마자 도망갔어요.”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 최신애는 아쉬운 듯 허벅지를 쳤다.“다 이 엄마 탓이야. 내가 그동안 너무 어리석었어.”요 며칠 온유한의 강력한 일 처리 수단 덕에 다시 얼굴을 들 수 있게 된 온혁진과 최신애는 자기 아들에게 너무 고마워하고 있었다.그래서 아들이 무슨 말을 하든 절대 반기를 들지 않았다.온유한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옷 갈아입고 올게요.”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내려왔을 때 거실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아
최신애는 임씨 가문 모녀를 쫓아냈다.“이 집안사람들 대체 뭐야! 처음에 우리에게 부탁할 때 좋은 말이란 좋은 말은 다 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태도가 바뀌었어.”임씨 가문의 남자들이 직면할 곤경을 생각한 장희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다 네 탓이야.”장희수가 임유희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온유한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집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이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무감각해진 임유희는 그때 최신애에게 온갖 미움을 받았던 강지아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실망이 극에 달하면 변명조차 하기 귀찮아지는 것 같다.“나중에 다시 온유한을 찾아가서 어떻게 부탁할지 생각해 봐. 알아들었어?”임유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알았어.”장희수가 뒤따라 차에 타며 말했다.“잘 들어. 온유한이 승낙해 주지 않으면 네 아빠와 오빠 모두 위험해.”“응.”임유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희수는 그녀의 고분고분한 모습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씨 저택에 있는 최신애도 임씨 가문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아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욕하며 보는 눈이 없고 노망이 들었다고도 했다.밥을 먹은 뒤 다시 회사에 간 온유한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그 사람은 다가오자마자 온유한의 멱살을 잡더니 주먹을 휘둘렀다.무방비 상태로 주먹을 맞은 온유한은 바로 차 위로 쓰러졌다.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다시 그의 멱살을 잡고 차 위에 짓눌렀다.“온유한, 비열하고 파렴치한 자식!”서원준은 미친 사람처럼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온유한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피했기에 서원준이 휘두른 주먹은 그의 귓전을 스쳐 지났다.“강지아 앞에 나타날 낯짝이 있어? 나쁜 자식, 여태껏 힘들게 한 것으로도 부족해?”서원준은 정말로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강지아가 어디에 있는지 겨우 알아냈는데 온유한이 먼저 갈 줄은 몰랐다.“대체 뭐 하자는 건데? 지아가 아직도 널 기다
2주가 지난 후, 임유희의 아버지는 체포되었고 온씨 가문의 공장과 병원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강지아는 여전히 귀국하지 않았다.“대표님, 저희 진짜 여기에... 일주일 있나요?”하얀 설산을 바라보는 동하민은 추운지 이까지 떨며 말했다.동하민은 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추위에 약했다.그녀 외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엄마가 조산한 탓에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고 했다. 게다가 어렸을 때 술꾼 아버지가 그녀를 늘 문밖에 내놓고 벌을 세웠기에 그때마다 추위에 심하게 떨었다고 했다.그때 하마터면 얼어 죽을 뻔했다고 했다.나중에 건강해졌지만 추위에는 여전히 약했다.“스키 선생님을 불렀는데 같이 배울래? 배우려면 배우고 싶지 않으면 호텔에 있어.”동하민은 얼른 대답했다.“안 배워.”하지만 스키 선생님을 본 순간 동하민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스키 선생님이 이렇게 멋있을 줄이야!“대표님, 저 그냥 스키를 배우고 싶어요.”강지아가 스키 선생님을 바라보자 스키 선생님이 어깨를 한 번 들썩인 후 말했다.“얼마든지요.”한편 바다를 건너 찾아온 서원준은 금발에 푸른 눈을 한 키 큰 남자가 강지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두 사람 모두 스키복을 입고 있었고 강지아가 고글을 벗지 않았다면 서원준은 그녀임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온유한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외국인이 나타나다니!서원준이 다가온 것을 본 강지아는 눈빛을 반짝이더니 이내 스키를 벗고 그를 향해 달려갔다.서원준이 두 팔을 벌리자 그의 앞으로 달려간 강지아는 순간 머뭇거렸지만 이내 그의 품에 안겼다.서원준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호텔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이제 막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강지아는 기분이 좋은지 의기양양한 어조로 말했다.“우리 애기가 보고 싶어서.”서원준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더 깊은 키스로 넘어가려 하자 강지아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렸다.서원준은 일부러 못 본 척하며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입을 맞췄다.강지아가 스
“강요하지 마.”강지아의 표정이 굳어졌다.이제 막 정신을 차린 그녀는 서원준이 이 타이밍에 청혼할 줄은 몰랐다.서원준이 강지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회피하지 마. 온유한은 하던 일 끝내고 또다시 너를 찾으러 올 거야.”강지아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그 사람... 그러지 않을 거야...”그녀의 이런 모습에 서원준의 눈빛이 깊어지더니 이내 강지아의 손을 잡고는 다짜고짜 반지를 그녀의 손에 끼워줬다.“지아야, 온유한이 네 가까이에 와서 널 다치게 하지 않을게.”서원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지아를 품에 꼭 껴안았다.“그 사람 그냥 잊으면 안 돼?”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강지아는 손에 낀 반지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서원준은 강지아가 반지를 빼서 버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여기까지 달려온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했다.“너와 같이 있으려고 일부러 휴가 내고 온 거야. 스키를 배우는 거야? 내가 가르쳐줄게. 네 약혼자가 이래 봬도 학교에서 스키 선수였어.”강지아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막무가내인 서원준도, 부드러운 서원준도 그녀는 거절할 수 없었다.거절하고 싶지도 않았다.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온유한은 책상 위에 택배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몇 가지 서류 외에 택배 상자가 하나 더 있었다.서류를 뜯고 나서 옆에 있는 서랍을 열어 안에서 메스를 꺼냈다.이 메스는 졸업 후 태안 병원 첫 수술 때 사용한 메스로, 오래되어 사용할 수 없었다. 아침에 어딘가에서 찾아내 택배를 뜯기 위한 칼로 사용하기 위해 서랍에 넣어뒀다.메스를 잡은 순간 온유한은 손이 떨려 한참 동안 손을 내려다보았다.“후회해?”고개를 드니 온미정이 손에 점심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와 있었다.온유한은 메스로 택배를 뜯었다.온미정은 온유한에게 온씨 가문이 하마터면 망할 뻔한 것, 그리고 평생 배운 것이 물거품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지 묻고 있었다.어떻게 대답하든 온씨 가문의 사람들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기에 온유한은 대답하지 않았다.온미정은 점심
밤 10시가 되어서야 회사를 나온 온유한은 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태안 그룹 건물에서 나온 뒤 한참이나 입구에 서 있었다.강지찬과 연락을 하지 않은 뒤부터 저녁 시간이 유난히 더 힘들어졌다.한 시간 후, 그는 차를 몰고 한 아파트 앞에 왔다.이 고급 아파트는 면적이 크지 않아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이 살고 있었다.현채영도 여기에 살았다.온유한을 집으로 들인 현채영은 그가 왜 갑자기 왔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묻지 않고 차를 한 주전자 타 왔다.집이 작아서 거실에 서면 집 안이 훤히 보였다.온유한이 말했다.“너무 작아. 내가 큰 집으로 바꿔줄게.”현채영이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여기에서 사는 게 편해.”이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집은 현채영의 예전 옷방보다도 더 작았다.현채영은 차를 두 잔 따른 뒤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주변 이웃들이 다 회사에 다니는 젊은 여자들이야. 아침 일찍 출근하고 늦게 돌아오는 것을 보면 왠지 부러워.”온유한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차를 마셨다.천천히 한 잔을 다 마시자 현채영이 그의 잔을 다시 채워줬다.두 사람은 서로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다.현채영은 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온유한은 단지 고용 관계일 뿐이었다.그녀는 온유한의 평범한 친구도, 연인인 여자친구도 아니었기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거라는 기대 따위 없었다.이때 현채영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미안, 전화 좀 받고 올게.”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내가 실례했네.”온유한은 주머니에서 은행 카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으며 말했다.“마감 금액이야.”“고마워.”온유한이 떠난 후 전화를 받기 위해 가만히 있을 때, 현관 앞까지 갔던 온유한이 한마디 했다.“지태주는 너와 안 어울려. 결혼할 거면 다른 사람과 해.”현채영은 어리둥절했지만 저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꽉 움켜쥐었다.벨 소리가 멈췄고 상대방도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현채영의
강지아와 서원준은 보름 후에야 서울에 돌아왔다.온유한은 서원준이 강지아의 허리를 감싼 채 웃고 떠들며 공항을 빠져나오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차 안에 숨어 그들이 차에 타고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려 휴대전화를 보니 온혁진이었다.“미팅 시작했는데 어디로 간 거야?”“공항이요.”온유한이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자 온혁진은 어리둥절랚다.“공항이라고? 이 자식, 공항에는 뭘 하러 간 거지?”온미정이 말했다.“오늘 지아가 돌아오잖아.”‘강지아’ 세 글자를 들은 온혁진과 최신애는 쉽게 뭐라고 하지 못했다.서원준은 강씨 본가까지 강지아를 데려다줬지만 강지아가 집안까지는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서원준이 그녀에게 프러포즈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으니 강지찬과 정유진이 보면 분명 물어볼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오빠와 새언니에게 직접 설명하고 싶었다.강지아가 강지찬과 정유진 앞에 앉자마자 집사가 와서 강홍식이 그녀를 부른다고 했다.강지찬과 정유진도 강지아와 같이 강홍식을 만나러 가자 강홍식의 표정이 굳어졌다.“지아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부른 건데 너희들까지 왜 다 온 거야?”강지찬이 다리를 꼬며 말했다.“묻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아마도 강지찬보다 강홍식을 더 잘 저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강홍식은 심호흡을 하고 나서 아버지 노릇을 하려고 하기 시작했다.“서원준이라는 남자, 어떤 집안 녀석이야?”이제 막 집에 도착한 강지아는 강홍식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와 새언니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강지아는 대충 얼버무렸다.“엄마와 같이 살아요. 다른 사람은 없어요.”그 말에 강홍식은 미간을 찌푸렸다.“아버지는? 죽었어? 병으로 죽은 거야? 무슨 병인데?”그러면서 잔뜩 아니꼬운 기색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어른들이 아파서 일찍 돌아간 집안사람들은 만나지 마. 혹시 유전병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머니는 뭐 하는 사람인데?”강지아는 조금 놀랐다. 그녀를 훈계하기 위해 부른 것이라 생각했는데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