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아가 서원준과 데이트를 마치고 밥 먹으러 갔을 때 최신애가 갑자기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지아야, 부탁이야. 우리 온씨 가문 좀 살려줘. 우리 유한 아빠 좀 살려줘!”최신애가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강지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강지아를 본 서원준은 바로 다가와 그녀를 감싸 안았다.“사모님, 자중하십시오.”최신애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지, 지아를 다치게 할 생각 없어. 나는 그저 사과하러 온 거야. 지아만 나를 용서해 주고 우리 온씨 가문을 구해주겠다고 하면 그동안의 일은 바로 사과할게.”최신애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 계속 말했다.“지아야, 유한 아빠가 그 사람들 때문에 곧 죽을지도 몰라. 제발, 네가 살려줘!”강지아가 서원준의 재킷을 꼭 잡더니 한마디 했다.“가세요... 가라고요..."최신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강지아는 한시라고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최신애를 바라보며 품에 있는 강지아를 다독였다.“사모님,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온씨 가문에 일이 생기든 말든 지아와 무슨 상관인데요? 왜 지아가 온씨 가문을 구해야 하는 거죠? 게다가 어린 지아가 무슨 수로 그렇게 큰 온씨 가문을 구하겠어요.”여기까지 말한 서원준은 코웃음을 쳤다.“그리고 근로자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태안 그룹에서 일을 했는데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으니 따지는 게 당연하죠. 근로자들 정서를 잘 안정시키면 온씨 집안을 공격하지 않을 거예요. 누가 소란을 피우고 싶어서 피우겠어요. 단지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이렇게 하는 거죠.”강지아가 다소 놀라는 얼굴로 서원준을 바라봤다. 서원준이 온씨 가문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많이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조급한 최신애는 레스토랑 안에 손님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정서를 안정시키는 데도 돈이 필요해. 하지만 지금 돈이 없어. 지아야, 강씨 가문에서 우릴 도와주지 않으면 혁진 아저씨가 진짜로 자살할지도 몰라.:그러자 서
“지아야, 어떻게 생각해?”서원준은 강지아를 자리에 앉힌 뒤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강지아는 물을 마시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서원준을 노려봤다.그러자 서원준이 한마디 했다.“네가 마음속 응어리를 풀었으면 좋겠어. 매번 이 집안사람들 볼 때마다 너무 긴장하니까.”강지아는 온씨 가문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때의 장면들이 떠올랐고 온유한과 헤어질 때 아팠던 마음이 다시 생각났다.그 기억들은 마치 무거운 돌덩이처럼 그녀의 가슴에 박혀 숨조차 쉬기 어렵게 했다.“밥 안 먹을래. 집에 가고 싶어.”강지아가 가방을 들고 가려 하자 서원준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강씨 저택에 데려다줬다.최신애가 병원에 왔을 때 태안 병원 앞은 경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심지어 실탄을 소지한 무장특공대까지 출동했고 그들은 최신애의 신원을 확인한 뒤 병원에 들어가게 했다.푀신애는 한 걸음씩 앞으로 옮길 때마다 간간이 서늘했다.일이 너무 커진 바람에 병원 운영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일부 중증 환자들마저 병원을 옮기겠다고 아우성치었다.진료동의 로비에 기자와 근로자들로 가득 차 있었고 기자들이 든 마이크와 카메라를 본 최신애는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너희 원장더러 나오라고 해. 오늘 정확히 얘기해 주지 않으면 이곳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갈 테니!”“온혁진! 겁쟁이처럼 숨지 말고 얼른 나와.”“너희 재벌들이 마음대로 공장을 닫으면 우리 근로자들은 뭘 먹고 살라고!”“온혁진! 얼른 나와. 우리 다 계약서를 체결하고 들어온 사람들이야. 함부로 해고할 수 없어!”사람들이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누군가 옆으로 밀치는 바람에 최신애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다행히 경찰이 많아 노동자들은 함부로 폭동을 일으키지 못했고 그저 온혁진더러 얼굴을 드러내라고 협박했다.하지만 온혁진인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회사가 진짜로 파산한다면 그 또한 많은 빚을 지게 될 텐데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이 점을 알고 있는 최신애는 근로자들의 기세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영상 속 최신애는 얼굴 가득 겁에 질려 있었고 목소리뿐만 아니라 온몸도 떨고 있었다.“그때 지아를 공개적으로 저격하는 게 아니었어요. 모욕하거나 난처하게 하지도 말았어야 했어요. 내 아들과 헤어지라고 강요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 제 잘못이에요. 어리석고 생각이 짧아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요... 지아야,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현장에 있는 기자와 근로자들은 최신애의 모습에 모두 어리둥절했다.무슨 상황이지?최신애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을 보니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았다.그러자 옆에 있는 기자들이 더욱 흥분하며 물었다.“사모님, 방금 지아라고 한 사람이 혹시 강씨 가문의 딸 강지아 씨를 말씀하시는 건가요?”“사모님, 강지아 씨에게 왜 사과를 하는 거죠?”“사모님,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사모님,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사과를 하는 거죠? 혹시 강씨 가문에 부탁할 일이라도 있나요?”기자와 근로자들의 추궁에 최신애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아마 그녀 평생 이토록 초라한 것은 처음일 것이다.강지아는 영상 속에서 최신애가 사과하는 모습을 다시 한번 봤다.“지아야,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 넌 아주 훌륭한 아이야. 어릴 때부터 훌륭했고 지금도 훌륭해. 내, 내가 너그럽지 못해서 너희 강씨 가문을 못마땅하게 여겼어. 그래서 사사건건 너에게 시비를 걸었나 봐. 지아야, 네가 어렸을 때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르지? 내가 너를 정말 예뻐했는데... 우리 집에 데려오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정도였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정말 미쳤나 봐. 지아야, 내가 진짜 잘못했어.”...서원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태안 병원에 근로자가 약 2천 명 정도 모였어. 이 사람들의 요구 또한 합리적이야. 소란만 피우지 않으면 경찰들도 어떻게 하지 못해. 온씨 가문 사모님도 아마 근로자들의 기세에 많이 놀란 것 같아.”강지아의 표정을 살피던 서원준은 그녀가 영상 속의 최신애를 빤히 쳐다보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지아야
방으로 돌아온 강지아는 욕조 물속에 몸을 숨겼다.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얼마 있지 않고 바로 나왔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서원준은 얼른 목욕 수건을 꺼내 그녀의 머리를 닦아줬다.“괜찮아?”“괜찮아.”강지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서원준은 이미 개봉한 약병을 다시 서랍에 넣은 뒤 그녀의 머리카락을 닦아 주었다.강지아가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내가 용서했다고 전해줘.”강지아가 이렇게 빨리 용서할 줄 몰랐던 서원준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웃으며 말했다.“서두르지 말고 일단 머리부터 말려.”서원준은 다른 사람의 머리를 말려준 경험이 없었다. 본인이 목욕한 후에도 대충 두세 번 수건으로 닦는 게 전부였기에 강지아의 머리를 닦아주는 행동이 매우 거칠었다.강지아의 부드러웠던 긴 머리카락이 이내 흐트러졌다.한편 강지아의 머릿속에 예전에 온유한이 그녀의 머리를 닦아주던 생각이 떠올랐다.온유한 말고는 강지아의 머리를 닦아준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어릴 적부터 강지아를 돌봐준 탓인지 그의 손길은 아주 부드러웠고 프로페셔널했다.그러면서 다정한 온유한의 눈빛에 강지아는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다.한편 자신의 행동이 너무 거칠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던 서원준은 방금까지 멀쩡하던 강지아가 갑자기 온몸을 움츠리고 입술을 꼭 깨문 모습에 깜짝 놀랐다.“X발!”서원준은 수건을 내던진 뒤 얼른 서랍을 열어 조금 전의 약을 꺼냈다.강지아는 병이 발작할 때마다 약을 거부했지만 서원준은 이를 악문 그녀의 턱을 잡고 억지로 약을 먹였다.몇 분이 지나자 강지아의 정서도 안정된 듯했다.“아까만 해도 멀쩡했는데 왜 갑자기...”서원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지아야, 또 그 사람 생각한 거야?”강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가장 원망한 사람은 최신애가 아니었다.그녀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도 당연히 최신애는 아니었다.그녀의 이런 모습에 서원준은 그녀의 얼굴을 잡고 말했다.“바보야, 나 좀 봐. 이렇게 멋진 남자 친구가 하루 종일 네 눈
온유한이 올 줄 몰랐던 강지아는 그를 본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거실 안의 사람들 모두 강지아에게 시선이 쏠렸고 최신애는 강지아를 보자마자 흥분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최신애가 이토록 열정적인 모습은 처음이었다.하지만 강지아는 최신애를 발견하지 못한 듯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온유한의 눈빛은 이 세상 모든 것에 무관심한 듯했다. 안경을 쓰지 않아 어쩌면 강지아도 잘 보이지 않았겠지만 강지아는 왠지 그의 눈빛에 온몸이 얼어붙은 듯 몸도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이때 서원준이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아까 샤워를 오래 해서 어지러운 거야?”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지아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자 서원준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말했다.“그래, 그럼 저기 가자. 다들 기다리니까.”“응.”강지아는 더 이상 온유한 쪽을 보지 않았지만 심장은 여전히 쿵쾅쿵쾅 뛰었다.“지아야, 왔어?”최신애가 강지아 앞에 달려와 강지아의 손을 잡으며 중얼거렸다.영상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눈앞 가까이에서 보니 최근 몇 년 동안 최신애도 많이 늙었다.예전에는 체면을 제일 중요시하던 최신애인지라 언제나 재벌 집 사모님처럼 예쁘게 꾸미고 다녔지만 오늘은 화장도 별로 하지 않아 아주 늙어 보였다.“지아야, 나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강지아는 최신애가 잡고 있는 손을 뺐다.최신애의 사과가 진심이든 거짓이든 간에 강지아는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강지아가 용서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최신애는 온유한 쪽을 힐끗 쳐다본 뒤 다급히 말했다.“지아야, 너만 용서해 준다면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어.”최신애가 진짜로 무릎을 꿇으려 하자 옆에 있던 서원준이 얼른 최신애를 부축했다.“사모님, 이러지 마세요. 지아가 부담스러워 하잖아요.”강지아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담담하게 말했다.“용서했어요.”최신애는 어리둥절해 했고 한쪽켠에 앉아 있던 온유한도 강지아를 바라봤다.조금 전까지 모든 것에 무심해 보이던 온유한도 긴장
“아들, 그냥 가면 어떻게 해. 강지찬에게 도와달라고 해야지.”최신애가 안달복달하며 달려왔다.“네 아버지가 그 사람들 때문에 병원에서 나오지 못하는데 얼른 방법을 생각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우리 병원을 헐어버릴 거야. 지아한테 바로 알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아들, 어디 가?”온유한은 최신애의 말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차에 탔다.최신애가 강지찬에게 다시 돌아와 도움을 청하려 하자 온미정이 그녀를 붙잡았다.“유한이의 생각을 모르겠어요? 강씨 가문의 도움을 원하지 않잖아요.”“무슨 말이에요?”최신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설마 유한이가 나를 속였단 말이에요? 강지아에게 사과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것이고? 강지아가 나를 용서했다고 했는데 유한이는 여전히 집안일을 돌보지 않으려 해요. 나를 많이 원망하나 봐요.”“최신애 씨, 본인 아들에 대해 정말 하나도 모르네요.”온미정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자기 엄마가 원망스러우면 여기에 같이 오지도 않았겠죠. 지아에게 사과하라고 했다는 것은 다시 엄마로 받아들이겠다는 거예요.”하지만 최신애는 마음이 조급했다.“강지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우리 온씨 가문은 어떻게 해요?”온미정은 어이가 없어 이마를 짚었다.“저도 몰라요.”한편 강지찬과 정유진도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온유한의 생각을 알았다.알고 보니 온유한은 병원에 가서 모든 근로자와 언론 앞에서 공장이 생산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고 근로자들더러 내일 계속 출근하라고 했다.온유한의 확답을 받은 근로자들이 하나둘씩 병원을 떠난 뒤 온유한은 취재진의 취재에도 응했다.온유한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책임을 지고 태안 그룹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강지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강지찬이 궁금해하고 있을 때 서원준이 풀이 죽은 얼굴로 들어왔다.저녁 식사 시간이라 서원준은 알아서 테이블 앞에 앉았고 하인이 가져온 수저를 건네받은 뒤 바로 먹기 시작했다.서원준이 물었다.“왜 혼자야? 지아는?”“갔어요.”정유
보름 동안 강지아와 함께 이곳저곳 여행을 다닌 동하민은 서울의 상황에 대해서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보름 사이, 온유한은 온씨 가문의 불경기를 완전히 바꿨다.우선 근로자들의 정서를 안정시킨 뒤 공장이 다시 생산을 재개하도록 했다.그리고 어디서 거래처를 찾았는지 창고의 재고들을 모두 팔았다.재고가 팔리면서 대금을 회수했기에 태안 그룹의 급한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게다가 온유한이 물건을 모두 팔자 기존의 유통업자들은 조급해졌다.태안 그룹의 물건은 품질이 좋고 수요도 많아 판매가 잘되며 많은 병원과 협력하고 있었기에 원래 무산되었던 주문 계약 건도 다시 협력하게 되었다.그러면서 태안 그룹의 사건도 다시 수사에 들어갔다.온유한은 강지찬에게 도움을 청하지는 않았지만 경은우를 찾으러 갔다.경은우를 찾는다는 것은 강지찬 쪽과의 관계가 여전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다음 날에도 온유한은 태안에 머물며 사건의 진행 상황을 추적하면서 회사의 업무를 처리했다.온유한은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해명을 내놓았다.태안 그룹은 또한 온라인 마케팅으로 이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온유한은 또 임씨 가문과 깊은 관계가 있는 투자자들과도 따로 만났다.온유한과 석식 자리가 있은 후 투자자들과 임씨 가문과의 사이도 예전보다 못해졌다.며칠 후 자금이 속속 입금되었다.지난 보름 동안 매일같이 중요한 일 처리를 해내는 온유한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동하민은 강지아에게 감히 알리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응원했다.저녁을 먹고 나오니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강지아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본 동하민은 그녀를 이끌고 근처 광장으로 갔다.작은 유럽 마을의 광장에는 매일 저녁 많은 사람들이 놀러 왔기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사진 찍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악기를 다루는 사람...“대표님, 우리 저기에 가요.”한쪽켠에서 아저씨, 아줌마들이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간단하고 배우기 쉬워 동하민은
주민희까지 포함해서 상대방은 모두 네 명이었다.한 사람은 운전을 담당하고 두 남자는 강지아의 납치를 담당했다. 보아하니 만단의 준비를 하고 온 것 같았다.강지아가 요 이틀 머무는 곳은 경치가 아름다운 작은 마을로 그저께 동하민과 막 도착한 상황이었다.그렇다면 도착하자마자 주민희의 눈에 띄었단 말인가?옛날 이 여자의 미친 행동을 생각한 강지아는 어쩌면 오늘로 끝장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뭐 하는 거야?”주민희는 강지아의 얼굴을 쳐다보면 볼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최근 몇 년 동안 줄곧 이 작은 마을에 숨어 있었던 주민희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떠받들리는 톱스타가 아니었다.하지만 강지아는 사업이 잘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예뻐지고 있었다.강지아의 얼굴을 보기조차 싫은 주민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피식 콧방귀를 뀐 뒤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이 들이마신 다음 능숙하게 연기를 내뿜었다.“뭐 하는 거냐고? 3년 전에 성공하지 못한 일을 하려는 거지.”주민희의 냉소가 가득한 한마디에 강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3년 전에 성공하지 못한 일?불을 질러 그녀를 죽이는 일?“어젯밤에 길을 가다가 널 보고 깜짝 놀랐잖아. 내 눈을 의심할 뻔했어. 강지아, 우리 정말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강지아가 차 밖을 내다봤다.마을이 너무 작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봉고차가 마을을 나섰고 도로 양쪽에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보였다. 아름다운 환경은 아름다우면서도 매우 낯설었다.강지아가 한마디 했다.“주민희, 그냥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기 사람도 별로 없고 관광객도 많지 않아서 내가 여기서 죽으면 넌 어디도 도망가지 못해. 지금 꽤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빨리 도망가.”강지아의 말에 주민희는 고개를 돌려 강지아에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강지아의 얼굴에 내뿜지는 않았지만 좁은 차 안에 연기가 가득 차는 바람에 강지아는 저도 모르게 기침을 했다.“너는 내 일도 망쳤고 집도 못 가게 했어.”주민희는 큰 소리로 웃으며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