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찬이 점점 더 파렴치해지자 정유진은 의도치 않게 그를 피하고 있었다.공식석상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금슬이 좋은 부부 연기를 하고 있었지만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다면 정유진은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하며 강지찬을 피하려고 했다.이날 저녁 정유진은 강지찬과 함께 중요한 연회에 참석했는데 참석자의 대부분은 정계 요인이거나 서울시의 재계 거물들이었다.정유진이 손에 끼고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흰색 드레스는 강지찬이 그녀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옷이었다. 자세히 보면 그들 둘이 입은 옷은 커플룩이었다.온미정은 온씨 가문의 어르신과 함께 왔지만 줄곧 강지찬을 피해 다녔다.남자들끼리 중요한 이야기를 하러 간 후에야 온미정은 정유진에게로 찾아왔다.“저 녀석의 눈빛은 마치 날 갈기갈기 찢으려하는 것 같아. 정말 무서워 죽겠네.”그러자 정유진이 말했다.“정말 무서웠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겠죠.”온미정은 정유진의 귓가에 대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말투로 말했다.“내가 임신했어.”“...”정완유는 멍해졌다.“뭐라고요?”온미정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임신했다고.”정유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놀랄 것 없어. 난 너에게만 알려줬어. 당분간 비밀로 해줘. 알았지? 누구한테도 말해서 안 돼. 그 자식도 안 돼.”“비밀을 지킬게요.”한참이 지나서야 정유진은 이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궁금했던 정유진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누구 아이예요? 혹시 시험관 아이에요?”“당연히 아니지.”온미정은 얼굴에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사람의 아이야.”그 말을 들은 정유진은 더욱 놀랐다.왜냐 하면 온미정이 말한 그 사람은 정유진은 모르고 있었다.온미정은 분명히 언급하기 싫어하는 과거가 있었다. 정유진은 그녀가 정말 사랑했던 연인이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몰랐다.두 사람이 헤어진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온미정이 갑자기 그 사람의 아이가 생길 줄은 전혀 몰랐다.솔직히 말해서 정유진은 그 사람이 정말 궁금했다.정유진이 묻고 싶으면
정유진은 오늘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지 않았고 지금 입은 드레스는 쉽게 구겨지는 재질이었기에 결국 강지찬은 그녀를 문에 눌러서 진하게 키스했다.그 짓거리는 하지 못했다.사실 일 때문에 두 사람은 자주 만났지만 사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정유진이 마치 자신을 물어뜯을 정도로 화가 난 표정을 본 강지찬은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주면서 약간 경멸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짓거리를 하려고 널 찾은 것 같아?”정유진은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정말 뻔뻔하네요. 저도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강지찬은 가서 그녀에게 와인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며칠 후에 강지현과 담판을 할 거야. 나와 함께 가자.”정유진은 깜짝 놀랐다.‘K 그룹이 성원 그룹을 인수하는데 나랑 무슨 상관이야?’정유진을 불러서 함께 강지현을 만난다는 건 분명히 강지현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정유진은 가고 싶지 않았고 흥취도 없었다.“노을빛 프로젝트를 원해?”“...”성원 그룹은 파산했고 노을빛 프로젝트는 이미 중단되었다.뜻밖에도 이 프로젝트는 결국 강지찬의 손에 넘어갔다.하지만 그녀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우리 회사는 지금 규모가 작아서 할 수 없을 것 같아요.”강지찬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할 수 없는 거야? 아니면 하기 싫은 거야? 흥. 멍청하기는.”정유진은 할 말이 없었다.“그 프로젝트는 너 말고도 원하는 사람이 많아. 잘 생각해 봐.”강지찬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오피스텔 인테리어가 다 끝나지 않았어? 집세와 직원은 원래의 몇 배인데. 그 돈은 어쩌려고?”정유진은 말이 막혔다.하지만 정유진은 그렇게 쉽게 속일 수 없었다. 강지찬이 그녀를 데리고 강지현을 만나자 하는 건 그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 외에 정유진을 이용해 강지현을 협박해 성원 그룹의 인수를 추진할 계획일 것이다.정말 상인 중에 좋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래요. 다음 달에 새 회사로 이사할 예정이에요.”정유진은 잠시 강지찬을 전남편이 아닌 협력 대상
엄청나게 큰 사무실에 강지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그들 중 일부는 매우 격식이 있게 전부 회색 양복의 옷차림이었다. 보기만 해도 실력이 꽤 있어 보였다.최의현은 고개를 돌려 강지찬에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내가 말한 서경시에서 온 고씨 가문의 사람이야.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런데 강지현도 참 대단해. 모든 사람을 이곳으로 불렀다니. 경매라도 할 생각인 거야?”그때 고씨 가문의 한 사람이 강지찬을 향해 걸어왔다.그 사람은 매우 젊고 잘생겼다. 나이는 스물다섯쯤으로 보였고 키가 매우 컸고 심지어 강지찬보다도 20cm 정도 더 커 보였다.그는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강 대표님, 저 기억하세요?”그러자 강지찬이 그 남자와 악수하면서 말했다.“물론 기억하죠. 지난번에 서경시로 회의하러 갔을 때 그쪽 아버님이랑 와인을 마셨어요. 뜻밖으로 구 대표님의 아드님이 이렇게 혼자 이런 장소에 나설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기회가 되면 함께 한잔하죠. 제가 살게요.”고남준은 웃으며 대답했다.“서울에 왔으니 당연히 강 대표님을 찾아야죠. 아버지께서 강 대표님께 드리라고 좋은 술을 주셨어요.”두 사람은 몇 마디 인사를 나누었고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강지찬에게 인사했다.이제 겨우 조용해지자 최의현이 말했다.“이 녀석은 서경시에서 평판이 매우 나쁘다고 들었어. 발이 넓은 사람이라고 해. 보기에는 순해 보이지만 속은 엉큼하다고.”이런 사람이 서울에 발을 들여놓으면 앞으로 큰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강지찬은 서울에서 세력이 가장 강한 사람으로 살아온 것이 이제 익숙했고 서울에 다른 굶주린 늑대를 들여오고 싶지 않았다.성원은 그가 무조건 차지해야 했다.그때 강지현이 들어왔다.다른 사람은 모두 얇은 셔츠를 입었지만 그는 아직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다.그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강지찬의 옆에 앉아 있는 정유진을 발견했다.정유진은 베이지색 셔츠를 입었는데 정말 아름답고 기품이 넘쳤다.특히 강지찬의 옆에 서 있으니 완
“왜요? 강지현 씨가 마치 상갓집 개처럼 보여서 마음이 안 좋아요?”강지찬의 눈빛은 가시가 돋친 듯했다.하지만 정유진은 따지기 귀찮았다.가뜩이나 화가 치밀어 올랐던 강지찬은 정유진의 이런 모습에 더욱 자극을 받아 더 크게 화냈다.“꺼져!”정유진은 어리둥절했다. 자기에게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차에 타고 있던 장형준과 최의현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바로 내렸다.상황이 심상치 않다.정유진은 성원의 문 앞에서 이 사람과 엮였다는 것을 소문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강지찬이 그녀를 아래로 누르고 말했다.“말해봐요. 마음이 아파요?”정유진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도대체 어디에서 내가 마음 아파한다고 느낀 거예요? 강지찬 씨, 어디 아프세요? 오늘 나더러 오라고 한 것은 당신이에요. 강지현이 망신당하는 것을 못 봐서 서운해요? 그러면 강지현 씨나 찾아가서 따져요. 여기서 나 같은 여자를 괴롭히는 게 무슨 재주인데요?”강지찬은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독기를 잔뜩 품은 채 말했다.“강지현과 눈짓을 주고받는 것을 내가 못 본 줄 알아요? 모두가 내 아내가 시동생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뒤에서 말해요. 내가 우스운 꼴을 당하니까 기분이 좋아요?”알고 보니 이 사람이 화를 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정유진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강 대표님, 한 번만 더 말할게요. 우리는 이미 이혼했어요. 내가 강지현 씨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해도 강지찬 씨와는 상관이 없어요!”강지찬 눈썹 치켜세우며 말했다.“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봐요?”한 번 더 말하라고 하면서 이 인간은 갑자기 정유진의 입술에 강한 키스를 퍼부었다.성원의 대문 앞에서 강지현은 고남준이 함께 걸어나왔다.강지현은 장형준이 차 옆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다가와서 차창을 두드렸다.정유진은 깜짝 놀라 강지찬을 힘껏 밀쳤다.하지만 그녀의 힘으로 어찌 강지찬을 이길 수 있으랴! 정유진은 초조하다 못
낯 뜨겁고 헐떡거리는 신음소리가 한바탕 이어진 후, 방안의 등이 켜졌다.조예원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됐고 몸은 수레바퀴에 눌린 듯 나른했다.오늘 밤 강지현은 미친 것 같았다. 이렇게 깡마른 사람에게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왔는지 모른다. 그녀를 당장이라도 삼킬 것 같았다.그를 실성하게 할 사람은 아마 정유진일 것이다. 정유진을 또 만났겠지?일을 마친 강지현은 샤워 타월을 허리춤에 감싼 채 조예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욕실로 향했다.조예원은 침대에 엎드린 채 3분 정도 숨을 고른 뒤 겨우 몸을 가누고 일어섰다.가운을 걸쳤다. 강지현이 나오기 전에 떠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낼 것이다.떠나기 전, 강지현에게 깨끗한 침대보와 이불까지 갈아줬다. 강지현의 정서를 안정시켜줄 향초까지 켰다. 그리고 나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침실로 향했다.강지현은 그녀와 같이 잠을 자지 않는다.침실로 돌아온 후, 욕조 물을 받아 몸을 담갔다. 그제야 찌뿌둥한 몸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샤워하고 거울에 비친 여자를 봤다. 그녀 자신도 이런 모습이 낯설었다.솔직하고 세련된 조예원은 이미 없다. 거울 속 여인은 정유진을 닮아가고 있다.얼굴이 닮은 게 아니라 분위기가 점점 닮아가고 있다.웨이브의 긴 생머리, 빨간 잠옷, 이런 것들은 조예원의 스마트한 얼굴과 사실 어울리지 않지만 강지현은 좋아했다.다음 날, 침대에서 일어난 조예원은 아랫배가 좀 불편했다.화장실에 가보니 생리가 왔다.그녀는 강지현의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임신이 되지 않았다.날씨가 점점 따뜻해지자 강지현의 몸이 최근 눈에 띄게 좋아졌다.최근 강지현은 갑자기 바빠졌다. 하루 종일 아래층으로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거의 매일 외출했다.강지현은 그녀와 말을 섞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그녀가 세 마디 물으면 강지현은 그저 ‘네’라고 대답만 했다.하지만 조예원은 이 사람이 요즘 바쁜 이유가 성원 인수 건과 관련되었을 거라고 추측했다.인수합병이 끝나면 강지현이 완전히 자신의 소유가 되는
“무슨 말이라니요? 아들이 감옥에 갔고 3년이 지나야 나와요. 제가 3년을 더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소희는 그동안의 억울함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오랫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아이까지 낳아줬는데 지금은 명분조차 없어요. 왜요, 아직도 내가 기다리기를 원해요? 그럴 가치나 있는 사람이냐고요!”귀염둥이 아들이 이렇게 욕을 먹자 오성연은 듣기 싫었다. 두 사람은 싸우기 시작했다.“소희야, 생각하고 말해. 우리 한빈이 아니었으면 서울에서 이렇게 많은 사업을 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 지금 한빈이 곤경에 처하니까 너는 바로 이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노인네를 내쫓으려 하고! 너 이러다 벌 받을 거야!”소희는 피식 웃었다.“벌은 당신들이나 받아야죠! 한빈 씨가 벌 받은 거예요. 정유진에게 했던 그 업보! 그리고 나더러 당신을 돌보라고요? 그럼 왜 그동안 당신 아들과 결혼시키지 않았어요? 만약 결혼했다면 당신은 나의 시어머니이고 나는 당연히 당신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 내가 왜 당신을 부양해야 하는 거죠? 고작 몇 년 동안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른 것 떄문에요?”오성연은 온몸에 힘이 빠진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한빈은 소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강지현을 따라 재기하면 소희보다 좋은 조건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며칠도 안 되어 감방에 들어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오성연은 너무 후회되었다. 소희가 고향으로 가라고 했지만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겠는가?기어가서 소희의 다리를 껴안으며 애걸복걸했다.“내 수양딸아. 이 어머니를 쫓아내지 마. 나 아직 젊어. 앞으로 집안일을 내가 다 떠맡을게. 그러니까 제발 쫓아내지 마.”소희는 발로 그녀를 걷어찼다.“꺼져! 지긋지긋해요. 혼자 말고 아이도 같이 데리고 꺼져요. 사실대로 말할게요. 나는 다른 사람과 결혼할 거예요.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으니까.”오성연은 차마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너의 핏줄이야. 네가 낳은 딸도 버리겠다는 말이냐
소희는 보모에게 딸의 옷을 챙겨 오성연에게 건네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한빈의 핏줄만 데려가면 돼요. 나머지는 신경 쓰지 마세요.”오성연 화가 나서 허벅지 두드렸다.“독한 년, 친자식은 놔두고 잡종을 키우려 하다니!”이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이 잡종 혹시 바깥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 낳은 거야? 하느님, 이 무정한 년을 당장이라도 죽여주세요!”소희는 상대하기 귀찮아 시어머니와 아이의 짐을 문밖으로 내팽개쳤다.그녀야말로 이 잡종을 키우고 싶겠는가?애초에 귀신에게 홀려 큰 골칫거리를 만들었다. 소희도 매우 우울해했다.다만 이 아이는 법원이 그녀에게 양육해야 한다고 판결했기에 반드시 키워야 했다. 다시 유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게다가 그녀와 혈연관계가 없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운다고 치면 된다. 친자식도 아니기에 이제 막 사귄 남자친구와도 상관없다.오성연은 옆에 있는 여자아이를 세게 밀었다.“봤지? 너의 친어머니가 잡종을 키우더라도 너를 안 키우겠다고 하니 앞으로 이 늙은이 따라다니며 살면 돼. 공부도 그만하고 새 옷도 그만 입어, 알겠지?”이 말을 듣고 있던 소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렇다. 그녀는 마음이 독한 여자다.그녀는 올해 서른네 살로 한빈보다 나이가 많다. 한빈이 나오면 서른일곱 살이다.서른일곱, 그녀의 청춘은 한빈 때문에 낭비되었다. 이제라도 자신을 위해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이대로 늙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녀 자신을 이런 것은 용서할 수 없다.그리고 한빈이 나온다고 해도 그녀와 결혼할 보장이 없지 않은가?소희도 딸을 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나 원망하지 마. 원망하고 싶으면 너의 아빠나 원망해.”소녀는 반대편 소년을 죽어라 쳐다봤다. 두 눈은 증오에 가득 차 있다.이 사람은 그녀의 엄마를, 그녀의 큰 집을,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아직 어리지만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었다.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다는 것을 알았다.TV에서 봤던 것처럼 잘 먹지 못하고 못 입고 못 배
정유진은 강예중으로부터 한빈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지 뉴스를 보니 역시나 성원이 현지 뉴스 검색어에 오르내렸다.강지현과 조예원의 법정 출두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두 사람은 분주한 모습이었다.정유진은 한순간 세상이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다.강예중은 지원서류를 한 무더기 들고는 머뭇거리며 말했다.“정 대표님, 예담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 회사에 오려고 하는데 한 번...”정유진이 바로 말했다.“그쪽 상황은 어때?”강예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안 좋아요. 성원에 연루된 후 수주가 없어요. 지금은 기존 프로젝트로 겨우 회사 문을 열고 있기는 한데 나간 사람들이 이미 꽤 많아요. 이제 며칠 됐다고... 우리가 떠난 지 1년도 안 됐는데...”정유진이 말했다.“저쪽은 네가 잘 아니까 알아서 해, 쓸 만한 사람은 오라고 하고.”예담 스튜디오의 일부는 초기 회사 창립멤버들이다. 정유진이 하나씩 가르친 셈이다. 마침 연우 인테리어도 구직 중이네 사람이 있으면 남기고 싶었다.정유진은 한 계약서를 확인하다가 문득 추호가 떠올랐다. 어젯밤에 추호에게 배웅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오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이 자식은 원래부터 빈둥빈둥 놀러 온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맞춰주길 바라진 않지만 인사도 없이 무단결근을 하니 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결국 추호는 하루 종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다음날 오전, 추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정유진은 상대방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대체 무슨 상황이에요?”“개자식하고 싸웠어요.”“누구?”“누나는 몰라요. 서경시에서 왔어요.”정유진은 별다른 질문 없이 관심 조로 말했다.“어디 다쳤습니까? 힘들면 집에 가서 쉬세요.”추호의 눈이 반짝였다.“누나, 나 걱정하는 거예요?”정유진의 안색이 이내 어두워졌다.“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추호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정유진의 책상 위에 서류 뭉치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보낼 서류가 있어요?”추호는 다른 일은 잘 못 하다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