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강지찬을 바라봤다. ‘이 사람 미친 거 아니지?’옆에서 지켜보던 구경꾼들도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멍해 있었다.‘정유진이 사모님이라고?’‘진짜야 가짜야?’강지찬은 여전히 한 손으로 정유진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속으로는 왠지 모를 쾌감을 느꼈다.하지만 정유진이 그와 선을 지키려 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이혼하겠다고? 그래 두고 봐!’이윽고 강지찬이 진심 섞인 말투로 말했다.“미안해, 여보. 원래는 나도 이렇게까지는 하려 하지 않았어. 결혼한거 숨기며 지내는 거도 일종의 비밀연애라고 느꼈거든. 근데 오늘 이 상황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더라. 난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건 참을 수 없어.”강지찬의 본모습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의 이 모습에 쉽게 속아 넘어갈 것이다.정유진은 너무도 화가 난 나머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강 대표님, 연기 진짜 잘하네요.”‘이젠 연기도 하네. 어디 남우주연상이라도 줄 가?’“대표님이라 하지 말고 여보라고 불러.”강지찬은 그윽하게 정유진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정유진만 그의 그 연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그녀의 눈에는 그의 속셈이 뻔히 보였다.‘이혼하겠다고? 어디도 못 가게 내 옆에 둘 건데? 모든 사람이 넌 강지찬의 여자라는 걸 알게 할 거야.’한편, 그들 모습에 남태연은 눈시울이 빨개졌다.“강 대표님, 그, 그럼 저는요?”강지찬이 고개를 들어 남태연을 바라봤다.“남태연 씨,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남태연은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삽시간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삼자 상간녀라고 정유진을 욕하던 그녀였는데, 강지찬에게 이렇게 뒤통수를 맞다니!정유진이 강지찬 와이프이기 때문에, 남태연이야말로 그들 혼인의 제삼자인 것이었다.남태연은 경호원과 함께 울면서 그 자리를 뛰쳐나갔다.이윽고 강지현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정유진
강지찬과 정유진의 은밀한 결혼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특히 K 그룹의 직원들은 정유진이 전에 성원과 비지니스를 맺은 이유를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마음대로 의논할 수도 없었다.언제 어디에서나 만나면 정 대표님이라며 깍듯이 모셨다.정유진은 할 수 없이 책상을 두드렸다.소미는 시선을 거두고 열심히 일하는 척하며 웃었다.“정 대표님, 뭐 하시는 거예요?”“커피 좀 내려 주세요, 고마워요.”소미는 그녀를 위해 커피를 내려오며 돌아 올때 경악했다.“정 대표님, 공정부의 직원들이 급하게 나가는 걸 봤어요.”정유진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보았다.“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요, 다른 일에 관심 가지지 말고요.”“관심 가지는 게 아니라 그냥 말씀드리는 거예요.”소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그녀는 정유진과 강지찬의 일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나 계속 물어보지 못했다.정유진도 말하기 싫었다.다음날 정유진은 K 그룹으로 가지 않았다. 최근 연우 인테리어와 비즈니스를 맺었는데 그중의 한 공정이 바로 예술학원이었다.이 예술학원은 규모가 꽤 컸기에 정유진이 직접 현장으로 가서 계량했다.그들이 오전부터 오후 세 시까지 계량을 끝마치고 나서야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학교에서 나오니 갓길에 세워진 경찰차와 함께 시공 중인 현장에 모인 사람들이 보였다.“저, 저분은 강 대표님?”정유진은 소미의 말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강지찬이 사람들과 함께 그곳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정유진은 이 현장이 강씨 가문의 것임이 기억났다.시중심에서 이런 시공 현장은 비쌌기에 재력이 없는 기업에서는 감당 불가였다.강씨 가문은 여기에 쇼핑센터와 고급 아파트를 지으려고 한다고 들었다.강지찬도 현장에 온 걸 보니 사고가 났을 것이다.정유진은 한번 싹 훑고 옆의 기자들을 발견했다.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현장의 경찰들이 제지하는 바람에 찍지 못했다.옆의 아저씨가 설명하기 시작했다.“시신이 나왔어요. 시신뿐만이 아니라 백골이 다 되었다니까. 이런 집을 누가 사?”그
인터넷의 글은 금세 퍼졌다. 정유진은 샤워를 마친 후 강씨 가문과 강지찬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것을 발견했다.하나는 네티즌이 강씨 가문의 부동산 매물의 안전 통로가 불적합하다고 폭로한 것이었다.또 하나는 한 크리에이트가 강지찬의 사생활이 불결하며 여자 연예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양다리를 걸친다고 폭로했다.정유진은 형사사건이 이렇듯 큰 여론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시신을 발견한 건 부동산 매물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정유진은 이번 일을 엄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씨 가문은 컸기에 강지찬의 직원들이 해결해 줄 것이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다음날 그녀는 강지찬의 집을 찾아갔다. 그녀가 직접 받은 비즈니스이기도 하고 아는 사람이기에 현장에 가서 보고 싶었다.강지찬의 집은 천장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꽤 빨리 진행되었다.집에서 나올 때 이미 퇴근 시간이어서 정유진이 차를 타려고 할 때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몸을 돌려 보니 강지찬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우연이네요.”걸어오는 그를 보며 정유진이 말했다.“집 보러 온 거야? 나 일 있으니까 먼저 갈게.”강지찬은 그녀의 차 문을 눌렀다.“나를 피하는 거예요?”정유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그와 잘 지낼 방법을 몰랐다.그가 한빈과 한패란 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다.아름다운 백옥에서 티를 발견한 것 마냥...정유진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강지찬도 화를 내지 않았다.“시간도 늦었으니까 같이 밥 먹어요.”둘은 그렇게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할 얘기가 없었기에 정유진은 인테리어 얘기만 했다.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강지찬은 얘기했다.“당신의 걱정을 나한테 얘기할 수 있어요?”정유진은 고개를 저었다.“얘기할 게 없어. 너의 일에는 참여하지 않을 거야. 우리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릴 수 없어.”그녀의 얼굴은 강경했다. 마치 4년 전에 그녀가 강지찬을 떠날 때와도 같았다.강지찬은 쓰게 웃었다.“당신에게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알아요. 근데 나한테는 너무 중
미팅룸은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최의현은 강지찬과 다른 사람들을 번갈아 보며 탁자를 짚었다.“말 좀 해보세요.”홍보부서의 책임자는 땀을 닦으며 안절부절 못했다.“여론은 이미 가라앉혔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워낙 영향이 커서 부동산 매몰에는 악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최의현은 또다시 다른 경영자들을 바라보았다.“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방안 좀 생각해 보세요.”그때 장형준이 갑자기 들어와 강지찬에게 귓속말을 하더니 둘은 미팅룸을 나갔다.그가 나가니 미팅룸의 직원들은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이번 여론 몰이에는 배후가 있을 거예요. 아마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것일 거예요.”최의현은 얼굴이 어두워졌다.“남들 다 아는 말은 하지 마세요. 지금 중요한 건 해결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는 거예요. 특히 매몰에는 영향이 가면 안 돼요.”대표님 사무실에서 장형준이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었다.“형사들이 고고학자들을 요청했는데 경원장이 소개한 분이십니다. 그 시신은 일부러 묻은 것으로 예측됩니다. 상대방의 수단이 대단하여 아직 확실하지 않아 다른 고고학자를 요청했답니다.”강지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결과는 언제 나오지?”“적어도 이틀 걸립니다.”지금 여론의 확산 속도를 보면 이틀은 또 다른 이슈를 만들 수도 있었다.그러나 이틀은 경찰 측에서 내온 최소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 경찰들도 매일 야근을 하며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경찰 측에서도 이미 몇 개의 회사를 수색했어요. 하지만 서울에 있지 않았기에 시간이 더 필요할 거예요.”강지찬은 손을 내저으며 나가라는 제스처를 보였다.몇 발짝 나가자 임우연이 딸라 들어왔다.“강 대표님, 전 대표님 오셨습니다. 제가 막지 못했습니다...”말이 끝나자 전태연의 아빠가 들어왔다.강지찬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차만 부탁했다.“차 마시러 온 거 아닙니다.”전 대표는 매우 화나 보였다.“강지찬 씨, 모르는 척 하니 재밌나요?”강지찬의 눈빛은 차가워졌다.“요즘에 바빠서
공정부서의 분위기는 매우 긴장되어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정유진은 소미에게 다른 말 없이 본분만 다 해라고 전했다.그녀는 한규진을 만나려고 했다.그러나 강씨 가문이 지금 일이 발생했으니...강지찬은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정유진은 강씨 가문의 주식을 보니 내려갔다.점심을 먹고 그녀는 커피를 내려오니 소미는 핸드폰을 들고 달려왔다.“정 대표님, 강 대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어요.”이번 강지찬의 실시간 검색어는 안나와의 스캔들과 관련 있었다.네티즌들은 그를 나쁜 남자라고 욕하며 강씨 가문이 인테리어한 부동산을 거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언론을 통제하는 자는 역시 네티즌들의 “나쁜 남자”에 대한 역겨움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었다.오후에 주식이 거래가 개시되자 강씨 가문은 곤두박질쳤다.최의현은 강지찬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홍보팀이 검색어를 지우는 걸 허락하시지 않으시고, 무슨 생각인 거예요? 그냥 두실 건가요?”강지찬은 표정이 어두워졌다.“검색어는 지울 수 있어도, 네티즌들은 어떻게 할 건데?”“...”임우연이 달려 들어왔다.“강 대표님, 안나가 트위터를 올렸습니다.”강지찬과 최의현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안나도 실검에 올랐기에 자신은 강지친과 친구 사이이며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반박했다.네티즌들은 믿지 않고 안나의 두 작품이 강지천이 투자한 사실을 끄집어냈다.최의현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밤의 행사에 참석하실 건가요?”“강지현도 있나?”“아마도요.”“가야지, 왜 안가?”“어디로 갈 건가요?”강지찬은 최의현에게 답하지 않고 내려가 정유진의 사무실로 들어갔다.공정팀의 직원은 강지찬이 정유진을 데리고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뭐 하는 거야?”정유진은 발버둥을 쳤지만 강지찬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엘리베이터에서 강지찬은 화를 풍겼고 정유진의 표정 또한 좋지 않았다.“지금은 출근 시간인데 왜 나를 데리고 나오는 거야?”강지찬은 미간을 찌푸리며 정유진을 한쪽으로 밀
정유진이 강지찬에 의해 집으로 돌아오자 이미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그들을 보며 머리를 묶은 남자가 놀라며 말했다.“또... 메이크업해 줘야 하는 거예요?”그 남자는 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 송 선생님으로 4년 전에 정유진에게 두 번 정도 메이크업을 해 준 적이 있었다.“아직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하셔도 돼요.”강지찬은 그녀를 짚으며 송 선생님에게 말을 마친 후 올라갔다.정유진은 송 선생님에게 물어 본 후 강지찬이 자신을 데리고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타이밍에 나를 데리고 간다고?’정유진은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강지찬은 바지를 벗어 팬티 바람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에요?”“강지찬, 나도 살아있는 사람이야. 왜 나랑 얘기하지 않고 마음대로 해?”“당신은 내 아내예요. 같이 가는 게 맞지 않나요?”“...”그의 모습은 정말 얄미웠다.강지찬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두 날이나 잠을 자지 못했어요. 여자들은 메이크업에 시간이 많이 든다면서요? 천천히 해요. 그리고 6시에 깨워줘요.”주식이 모두 떨어졌는데 행사에 참석할 기분이 있나?그럼 이 행사는 일반 행사가 아닐 것이다.정유진이 강씨 회사에서 출근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자났기에 그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정도는 잘 알았다.이건 강지찬의 개인적인 일이 아닌 회사에 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일이다.시간이 충족하니 송 선생님은 그녀에게 얼굴 마사지까지 해주었다.마시지가 끝날 때 벨소리가 울렸다.문을 열자 마치 4년 전의 장면이 펼쳐졌다. 십 여벌의 예복과 그에 어울리는 쥬얼리가 전시장처럼 거실에 펼쳐졌다.“그냥 이 정도로 해요. 제작은 무리예요.”송 선생님은 유진에게 말했다.“사모님, 먼저 예복 골라보세요. 예복이 정해지면 메이크업을 정하죠.”정유진은 그녀의 호칭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그녀는 강지찬이 자신을 데리고 가는 이유를 알았기에 눈에 띄는 예복을 고르는 건 필수였다.그녀의 눈에는 중간의 레드색 예복이 눈에 들어왔다
다이아몬드 반지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정유진은 손에서 묵직한 무게를 느꼈다.손가락 사이즈는 딱 맞았다.송 선생님은 의아한 듯 물었다.“이게 4년 전에 해외에서 찍은 다이아몬드인 거예요? 어머나, 너무 예뻐요.”강지천은 정유진을 힐끗 보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정유진은 깜짝 놀랐다. 4년 전?그녀는 갑자기 생각났다. 당시 강지천과 약혼할 때 그는 다시 반지를 준비하겠노라 약속했었다.그녀는 이 반지의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워 반지를 빼고 그에게 돌려주려 하였다.강지천은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다른 사람들에게 강지천이 이런 반지를 살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게 할 건가요?”정유진은 그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자신은 도우려 가러 했으나 그는 왜 이렇게 의기양양하단 말인가?그녀는 그와 싸우기 싫어 행사가 끝난 후 돌려줄거라 생각했다.현장에 도착한 후에야 행사에는 각계각층의 유명인들과 티비에서나 보는 연예인들과 진행자들이 눈에 들어왔다.입장할때에는 심지어 레드카펫과 수많이 사진기들이 있었다.정유진은 해외에서 여러 번 행사에 참석한 경험이 있기에 결코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강지찬이 이처럼 성대한 행사를 참석할거라 예상하지 못했다.강지찬은 자신의 외투를 그녀에게 벗어 두었다.그녀가 거절하려 했으나 눈앞 남자의 말에 막혔다.“여보, 기자들이 찍어요.”가슴이 철렁거렸다.그 “여보”라는 단어는 그녀를 단숨에 4년 전으로 데려놓았다.강지천은 그녀를 안으며 여러 번 여보라고 부르기 좋아했다. “뭘 봐요?”강지천은 그녀의 아래턱을 조금 꼬집었다.“웃어 봐요.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라.”정유진은 정신을 차리고 오늘의 임무를 떠올렸다.강지천과 함께 연기하는 것은 결코 어색하지 않았다.정유진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안 추워요.”강지찬은 짖궂게 웃었다.“내 아내의 등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안 되죠.”그는 정유진의 손을 잡으며 상냥하게 말했다.“들어가요.”강지찬을 보자 기자들은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다.한 기
강지천이 오늘 온 목적은 바로 그들의 앞에서 정유진과 애정을 과시하기 위해서다.정유진은 그의 구체적인 일정을 몰랐기에 자신은 그저 따르리라 생각했다.그리고 안나가 도착했다.많은 이목 속에서 안나는 정유진을 안았다. 마치 오래된 친구 사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그리고 화장실도 함께 했다.안나는 화장실 안을 훑어본 후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문을 잠그고 비서를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꺼내 들어 입에 물었다.그리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안나는 낮게 웃었다.“만약 내가 강 대표랑 아무사이도 아니라고 말하면 믿어줄 건가요?”정유진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호텔로 드나드는 둘을 포착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어떻게 아무 사이도 아닐 수 있겠는가?안나는 정유진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믿지 않으면 말아요. 나랑 상관 없으니까.”그녀는 강지찬의 일은 마음대로 말하지 못했다. 눈앞의 여자가 강지찬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안나가 제일 잘 알 것이다.강지찬보다 그녀가 더욱 잘 알았다.담배를 피운 후 안나는 입에 페퍼민트를 뿌리고 몸에는 향수를 뿌리며 냄새를 없애려 했다.그녀는 거울에서 정유진을 향해 웃었다.“이따가 인터뷰가 있어요. 그 사람들은 분명히 나와 강 대표의 사이를 물을 거예요. 내가 뭐라고 하든 당신처럼 아무도 믿지 않겠죠.”안나라는 여자를 정유진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그러나 그녀가 자신한테 적의가 없음을 알았다.저번의 경찰서의 일도 그녀와 얘기해야 했다.“당신과 강지찬은 나한테 숨기는 게 있죠?”“그건 강 대표한테 물어야죠.”화장실을 나오며 안나는 비서와 함께 인터뷰하러 갔다.정유진이 강지찬을 찾으러 갈 때 앞의 두 사람을 마주쳤다.“당신도 왔어요?”구소원이 강지현의 팔에서 팔을 풀며 기쁘게 인사했다.“그러게. 당신들이 여기 있을 줄은 몰랐어요.”정유진의 “당신들”이란 말에 구소원은 대뜸 고개를 돌려 강지현을 보며 웃었다.“서로 아는 사이예요?”강지현은 정유진을 보며 알아본 듯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