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반지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정유진은 손에서 묵직한 무게를 느꼈다.손가락 사이즈는 딱 맞았다.송 선생님은 의아한 듯 물었다.“이게 4년 전에 해외에서 찍은 다이아몬드인 거예요? 어머나, 너무 예뻐요.”강지천은 정유진을 힐끗 보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정유진은 깜짝 놀랐다. 4년 전?그녀는 갑자기 생각났다. 당시 강지천과 약혼할 때 그는 다시 반지를 준비하겠노라 약속했었다.그녀는 이 반지의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워 반지를 빼고 그에게 돌려주려 하였다.강지천은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다른 사람들에게 강지천이 이런 반지를 살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게 할 건가요?”정유진은 그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자신은 도우려 가러 했으나 그는 왜 이렇게 의기양양하단 말인가?그녀는 그와 싸우기 싫어 행사가 끝난 후 돌려줄거라 생각했다.현장에 도착한 후에야 행사에는 각계각층의 유명인들과 티비에서나 보는 연예인들과 진행자들이 눈에 들어왔다.입장할때에는 심지어 레드카펫과 수많이 사진기들이 있었다.정유진은 해외에서 여러 번 행사에 참석한 경험이 있기에 결코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강지찬이 이처럼 성대한 행사를 참석할거라 예상하지 못했다.강지찬은 자신의 외투를 그녀에게 벗어 두었다.그녀가 거절하려 했으나 눈앞 남자의 말에 막혔다.“여보, 기자들이 찍어요.”가슴이 철렁거렸다.그 “여보”라는 단어는 그녀를 단숨에 4년 전으로 데려놓았다.강지천은 그녀를 안으며 여러 번 여보라고 부르기 좋아했다. “뭘 봐요?”강지천은 그녀의 아래턱을 조금 꼬집었다.“웃어 봐요.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라.”정유진은 정신을 차리고 오늘의 임무를 떠올렸다.강지천과 함께 연기하는 것은 결코 어색하지 않았다.정유진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안 추워요.”강지찬은 짖궂게 웃었다.“내 아내의 등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안 되죠.”그는 정유진의 손을 잡으며 상냥하게 말했다.“들어가요.”강지찬을 보자 기자들은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다.한 기
강지천이 오늘 온 목적은 바로 그들의 앞에서 정유진과 애정을 과시하기 위해서다.정유진은 그의 구체적인 일정을 몰랐기에 자신은 그저 따르리라 생각했다.그리고 안나가 도착했다.많은 이목 속에서 안나는 정유진을 안았다. 마치 오래된 친구 사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그리고 화장실도 함께 했다.안나는 화장실 안을 훑어본 후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문을 잠그고 비서를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꺼내 들어 입에 물었다.그리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안나는 낮게 웃었다.“만약 내가 강 대표랑 아무사이도 아니라고 말하면 믿어줄 건가요?”정유진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호텔로 드나드는 둘을 포착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어떻게 아무 사이도 아닐 수 있겠는가?안나는 정유진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믿지 않으면 말아요. 나랑 상관 없으니까.”그녀는 강지찬의 일은 마음대로 말하지 못했다. 눈앞의 여자가 강지찬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안나가 제일 잘 알 것이다.강지찬보다 그녀가 더욱 잘 알았다.담배를 피운 후 안나는 입에 페퍼민트를 뿌리고 몸에는 향수를 뿌리며 냄새를 없애려 했다.그녀는 거울에서 정유진을 향해 웃었다.“이따가 인터뷰가 있어요. 그 사람들은 분명히 나와 강 대표의 사이를 물을 거예요. 내가 뭐라고 하든 당신처럼 아무도 믿지 않겠죠.”안나라는 여자를 정유진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그러나 그녀가 자신한테 적의가 없음을 알았다.저번의 경찰서의 일도 그녀와 얘기해야 했다.“당신과 강지찬은 나한테 숨기는 게 있죠?”“그건 강 대표한테 물어야죠.”화장실을 나오며 안나는 비서와 함께 인터뷰하러 갔다.정유진이 강지찬을 찾으러 갈 때 앞의 두 사람을 마주쳤다.“당신도 왔어요?”구소원이 강지현의 팔에서 팔을 풀며 기쁘게 인사했다.“그러게. 당신들이 여기 있을 줄은 몰랐어요.”정유진의 “당신들”이란 말에 구소원은 대뜸 고개를 돌려 강지현을 보며 웃었다.“서로 아는 사이예요?”강지현은 정유진을 보며 알아본 듯
강지찬의 말투는 듣기 싫었다. 그에 비하면 강지현의 말투는 훨씬 성숙했다.“그럼요, 다 형님 덕분이에요.”강지찬은 콧방귀를 뀌더니 정유진의 허리를 감싸안고 떠났다.“...”‘강지찬은 도가 뭔지 모르는 사람인가?’그는 일부러 그런 것이다.“구소원을 만났어요?”강지찬은 담담히 말했으나 말투에는 조소가 어려있었다.정유진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구소원과 또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네, 만났어요. 아름답더라고요. 강지현 씨랑 어울렸어요. 만족해요?”강지현은 움찔하더니 비웃었다.“구소원은 회사가 있고 삼촌이 국회의원이에요. 당신은 뭐가 있죠?”“...”구소원의 출신이 그녀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의 말은 참 이상했다. 그는 정유진과 강지현이 뭔가 있다고 생각했다.정유진은 그의 말에 답하기 싫었다.“이렇게 사진이 찍히면 여론이 잠잠해 질 가요?”“오늘 만난 목적이 여론 때문이라고 누가 그랬어요?”“그럼 아닌가요?”정유진은 왼손의 다이아몬드를 바라보며 되물었다.“아니!”그는 또 화를 냈다.여론이 아니라면 전 세계에 자신이 강지찬의 아내라는 것을 알리려고 그랬단 말인가?여기까지 생각하자 정유진은 가슴이 뛰었다.그녀는 손의 반지를 보았다... 맞단 말인가?강지찬은 시계를 보며 행사가 재미없어 빨리 떠나고 싶었다.이때 직원이 정유진을 향해 말했다.“사모님, 구씨 아가씨가 사적으로 도움을 청합니다.”“구소원? 무슨 일인가요?”직원은 조금 난처한 기색을 띠었다.“구씨 아가씨의 피라이버시와 관련된 것이기에 알릴 수 없습니다. 행사장에서 사모님밖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만나러 가주시기를 바랍니다.”직원의 말에 정유진은 강지찬을 향해 말했다.“가볼게요.”강지찬은 직원의 “사모님”이라는 말에 안도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정유진은 직원을 따라 올라갔다.“사모님, 문을 두드리시면 됩니다.”말을 마친 후 직원은 떠났다.정유진이 문을 두드리자 검은 슈트를 입은 남성이 문을 열었다.방에 웬 남자가 있는 거지?생
전태연의 경호원이 정유진의 손을 묶은 다음 침대에 밀어 넣었다.전태연는 정유진의 비참한 최후를 이미 본 듯 침대 옆에 서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제가 법을 어겼다고요? 경찰 아저씨가 저 잡고 나서 그렇게 말하세요!” 정유진은 법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눈앞의 여자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태연 씨, 강지찬이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요? 그의 복수가 두렵지도 않아요?"전태연에게 애원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정유진도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전씨 가문이 강지찬과 많은 협력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나를 건드리면 강지찬이 당신 가문의 회사에 보복할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아요? 잊지 마세요. 강지찬은 당신의 모든 돈을 잃게 할 수 있는 실력과 방법을 가지고 있어요!"전태연은 동공 지진이 왔고, 그녀 역시 약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하지만 강지찬이 한 일을 생각하니 더욱 질투가 났다.그녀도 어리석지 않았다. 상황을 둘러본 후에야 자신이 강지찬에게 이용당했고 상대방이 정유진을 자극하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전태연은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화가 났다. "자기의 처지조차 감당하지 못할 수준인데, 지금 우리 가족의 서포트가 없으면 새로운 프로젝트는 감히 엄두도 못 낼 거예요.”전태연도 재빨리 반응했다."유진 씨, 당신이 그 두 프로젝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정유진은 침묵했다.전태연도 의외의 상황이 벌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정유진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제가 전에 경고했잖아요. 제 남자를 뺐으면 좋은 결과는 없을 거라고요."그녀는 혐오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남자에게 눈치를 주며 말했다."빨리 움직여요. 사진을 더 많이 확보하세요."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경호원과 함께 나갔다.‘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다시 닫히자, 정유진은 두려움에 이빨마저 떨려왔다."잘 생각하셔야 해요. 저는 강지찬의 아내입니다. 혹시..."그녀는 손에 낀 다이아몬드
돈 외에도 이 남자는 전태연을 실망하게 해서는 안 됐다.결국 전씨 가문에 계속 빌붙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는 오늘 전태연이 당부한 일을 해내야 했다."고운 아가씨,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전태연 그 여자가 당신도 알겠지만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탓하고 싶으면 그 여자를 탓해요. 나도 결국 돈 받고 일하는 입장이니까.”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정유진을 향해 돌진했다.정유진이 스탠드 등을 바닥에 내쳤다.안타깝게도 손이 묶인 그녀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고, 그 남자에게 밀려났다.정유진은 수납장에 부딪혔다.램프는 도자기로 되어 있었는데, 수납장에 부딪히면서 쨍그랑 소리가 나며 깨져버리고 말았다.정유진도 서둘러 도자기 조각을 집어 들고 TV 속의 여자주인공처럼 도자기를 목에 갖다 댔다."꺼져요! 감히 이리 오면 여기서 죽어버릴 거예요!"남자는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는 그녀의 위협이 전혀 두렵지 않았고 심지어 정유진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이 도자기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날카롭지 않아요. 믿거나 말거나, 목이 잘리기도 전에 내가 뺏을 거예요.”정유진도 충격을 받았다.그 남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정유진은 눈을 꼭 감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는 힘껏 목으로 찔렀다.너무나도 아팠다. 순식간에 피가 솟구쳤다.그 남자는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스스로에게 그렇게 가혹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찌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는 심하게 욕을 퍼부었다.“너 이 미친년,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어? 퉤, 재수 없는 년!”정유진은 아파서 식은땀이 퍼붓듯 쏟아졌지만 손에 들고있는 도자기를 결코 놓을 수는 없었다.피는 그녀의 목에서 흘러 곧바로 그녀의 팔을 적셨다. 손바닥은 피로 인해 끈적했고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날 보내줘요. 아니면 여기서 죽을 거예요!”남자는 짜증이 확 났다.시간이 없는 와중에 강지찬이 왔을 때 그가 임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전태연은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지금 이 여자도
정유진의 목에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고, 하얀 시트도 곧 붉게 물들었다. 강지찬은 깨끗한 수건을 찾아 상처를 눌러주었고, 장형준은 남자가 기절한 것을 보고 달려가 그녀의 손목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었다.그녀는 도자기 조각을 꽉 쥐고 있던 손을 놓으며 움직였다.손바닥에 피가 흥건했다.강지찬은 그녀의 손을 살펴보다가 오른손도 베여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장형준은 수건을 하나 더 가져와 손을 감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도련님, 부인을 병원으로 모시고 가세요. 제가 여기 남아 처리할게요.""깨끗이 처리해."강지찬이 재킷을 찾아서 진유진에게 입혀주었다. 그녀의 얼굴은 몹시 암울했다.정유진을 안고 방금 문을 나섰는데 한규진과 온유한도 왔다.한유진은 장형준을 돕기 위해 뒤에 남아 있고, 온유한은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차량은 지하 주차장 승강기 입구 앞에 주차되어 있었고, 세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은 채 바로 병원으로 갔다.다행히도 이쪽은 태안병원과 가까웠다.정유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피를 흘린 탓에 온몸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강지찬은 그녀를 품에 꼭 안았고 그녀의 주체할 수 없는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겁내지 마, 괜찮아." 강지찬은 부드럽게 달랬다.조수석에 앉은 온유한은 뒤를 돌아보며 정유진이 떠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강지찬의 차가운 두 눈을 보며 말했다.“형수님의 목에 난 상처는 깊지 않아 큰 문제가 아니지만, 반대로 손의 상처는 조금 심각합니다." 제일 큰 문제는 동맥에 상처가 가는 것이었다.정유진은 이제 사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상처가 시원하고 몸도 시원하다는 느낌만 들었다."전태연입니다."그녀가 말했다.“알아.”강지찬이 중얼거렸다. 정유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응급실에 입원했다.수술은 한 시간가량 걸려서야 끝이 났다.힘줄에 부상이 없어서 다행이었다.정유진은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외상에 불과하였지
잠시 서로를 쳐다보던 강지현이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그는 싸우러 강지찬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정유진을 보러 온 것이었다.그가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강지찬의 긴 팔이 그를 막으려 손을 뻗었다."내 아내는 이미 잠들었어."강지현은 침묵했다.두 사람은 다시 서로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온유한은 기침하며 앞으로 나와 상황을 마무리했다."지현아, 형수님은 괜찮으셔. 연회는 잘 끝났어?"강지찬이 곁에 있으니 강지현도 오늘 정유진을 볼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온유한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다시 자리를 떠났다. “속이 검은 놈.”강지찬은 차갑게 말했다. 온유한이 좋게 말했다."이혼할 생각이 없으면 형수님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세요."강지찬이 온유한을 노려보며 말했다."내가 아직도 정유진에게 잘 못 해준다고?” 온유한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도 솔로였기 때문이다.생각에 잠긴 온유한은 이렇게 말했다“여자들은 모두 달래야 돼요. 지아를 봐요. 아무리 다혈질이어도 좋게 말하면 듣잖아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는 강지찬의 비웃음 소리를 들었다."어떻게 감히 지아를 예로 들 수 있어? 넌 네가 지아를 어떻게 망쳤는지 전혀 모르겠어? 걔가 지금 얼마나 기어오르고 있는지 몰라? 너도 걔랑 같은 셈이야?”온유한은은 코를 문지르며 말했다"지아가 그렇게 심했어요? 괜찮지 않아요?"강지찬은 온유한을 밀어내고 혼자 병실로 돌아갔다.병실에는 벽 등이 하나 남아 있었는데, 희미한 불빛 때문에 강지찬은 잠시 4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 작은 집에서 그가 매일 집에 돌아올 때면 전등 하나가 켜져 있었다.정유진은 조용히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얇은 이불은 그녀의 몸매를 감추지 못했다.강지찬은 화장실에 가서 간단히 씻고 몸에 묻은 물기가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침대에 누웠다.정유진은 잠에 깊게 들어 깨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감
정유진이 씻고 나온 후 장형준이 마침 아침식사를 가지고 왔다. 어젯밤 강지찬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채로 정유진을 포옹하는 장면을 올렸는데 실시간 검색어에 뜨지 않았다.아무도 실검 자리를 사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당시 많은 언론에서 많은 사진을 노출했고, 이번에는 강지찬이 결혼했다는 것을 만천하가 알게 되었다.강지찬은 현지 뉴스를 훑어보았는데 거의 모든 보도가 그와 정유진에 관한 것이었고, 특히 정유진의 손에 끼고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집중적으로 이슈가 되었다.강지찬은 다른 사람의 평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뉴스는 그의 흥미를 돋구었다.장형준이 아침 식사를 차리고 나가자 강지찬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가 정유진의 손에서 숟가락을 빼앗았다."내가 먹여줄게." 정유진은 잠깐 얼어붙었다.“괜찮아요.” 오른손이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왼손이 있었다.그녀가 말하며 강지찬의 왼쪽 얼굴을 쓱 훑었다. 얼굴에는 멍이 들었고 조금 부은 것 같았다. 입술에 있는 딱지가 방금 떨어졌는데 바로 새로운 상처가 생기다니. 강 대표님의 차갑고 터프한 분위기가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그 남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강지찬이 죽을 한 숟가락 퍼서 정유진의 입가에 갖다주었다. 정유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벌리지 않았다.“전에는 네가 날 먹여줬지. 지금은 내가 먹여줄게.”강지찬이 말했다. 정유진이 얼어붙었다.그녀는 많은 것들이 지나가고 잊혔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강지찬이 이 말을 하자 그 당시의 화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강지찬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과속 차량에 팔을 다치고 그녀에게 밥을 먹여달라며 떼를 썼었다.추억에서는 거의 항상 다툼과 갈등이 오갔다. 정유진 역시 자신과 강지찬에게 약간의 온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거의 잊어버릴 뻔했다.멍한 그녀의 모습을 본 강지찬은 숟가락을 들고 안 먹으면 계속 기다릴 듯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늘 그렇듯 제멋대로였다. 정유진
“진짜 열받아 죽겠어. 정말!”화가 난 최신애는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엄마인 나를 점점 안중에도 안 두는구나. 같이 지옥에 가자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온혁진은 이런 최신애가 너무 귀찮았다. 낮에 임씨 가문 사람들과 만나면 그들은 온유한과 임유희의 혼사를 언제 치를 것이냐고만 물었다.지금 이런 상황에서 온유한이 임유희와 약혼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애초에 임씨 가문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우리가 오히려 발목이 잡혔어.”온혁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임씨 가문 사람들에게 어떻게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유한이 결혼에 대해 나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 경고하는데 당신도 좀 똑똑하게 굴어, 나중에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되지 말고. 임씨 가문 사람들도 속셈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최신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속셈이가 있어 봤자 무슨 속셈이가 있겠어요? 유희를 우리 집 며느리로 들이고 싶은 것뿐이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유희가 유한이만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임씨 가문도 그저 말로만 재촉하는 것이니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나라고 상관하고 싶겠어요? 현채영 같은 여자가 강지아보다 훨씬 못한데 어떻게 우리 온씨 가문에 들이겠어요? 그런 여자를 들였다가는 서울의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온혁진은 골치가 아팠다. 말로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온유한이 진짜로 현채영과 결혼하려 한다면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그래서 이 일은 최신애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이날 오후 최신애는 장희수와 함께 미용실에 갔다. 대화가 잘 통했는지 저녁에는 카드 놀이하러 함께 갔다.온유한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는 임유희만 있었고 현채영은 다른 일이 있어서 현씨 저택으로 돌아갔다.“유한 오빠, 아직 밥 안 먹었죠?”온유한이 ‘응’이라고 대답하자 임유희는 얼른 하인을 시켜 밥을 차리게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어머님이 일이 있으셔서 밖에서 저녁 드시고 오겠대요. 아버님도 석식이 있으시다고 했고 현채영 씨도 저녁에 늦게
온유한이 회의를 마치자마자 전성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급히 사무실로 돌아왔다.“선생님, 집에 일이 생겼습니다!”온씨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마당에 경찰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최신애는 임유희의 손을 잡고 경찰에게 사건 경위를 말하고 있었다.“보석이 박힌 그 장신구를 지금 사람들은 잘 안 써요. 다만 온씨 가문 며느리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이라 정말 돈이 급할 때 쓰기 위해 남겨둔 것이에요. 오늘 전문적인 청소 담당자를 불러서 청소를 할 때 금고를 깜빡하고 안 잠근 채 주방에 가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위층에 올라가 보니 가보와 장신구 몇 점이 보이지 않았어요. 몇천 만원 현금은 그대로 있었고요. 경찰분들, 아마 분명 이런 물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훔쳐 갔을 거예요. 현채영이 아니면 누구겠어요? 집이 파산해 돈이 부족한 여자예요. 이 여자가 보석들을 방에서 가지고 나오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혹시나 인정하지 않을까 봐 동영상까지 촬영했어요. 증거까지 있는데 계속 발뺌할 수 있을까요?”경찰 몇 명은 서로를 쳐다봤다.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온씨 가문 사모님은 억울한 척하며 말했지만 말 한 마디마다 빈틈이 있었다.진짜로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면 이 집안사람 모두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 장신구들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사건의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온유한이 돌아왔다.현채영은 그가 돌아오자 웃음을 지을 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최신애는 흥분하며 앞으로 걸어갔다.“아들아, 마침 잘 왔어. 이 여자 손버릇이 아주 나빠. 빨리 내보내.”온유한은 경찰 몇 명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두운 얼굴로 최신애를 바라보며 말했다.“돌아오는 길에 대충 들었어요. 하지만 채영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채영이를 믿어요.”“또 이 여자를 감싸고 도는 거야?!”이렇게 좋은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가만히 있을 최신애가 아니었다.“이
현채영이 잠에서 깼을 때 최신애는 점심을 거의 다 먹은 상태였다.“어머니, 점심 먹을 때 부르라니까요. 왜 안 부르셨어요?”최신애는 우아한 모습으로 식사를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알아서 깼잖아?”“그래도 불렀어야죠. 그러다가 배를 곯으면 유한 씨가 어머님을 나무랄 거예요.”최신애는 테이블을 내리치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리고 현채영이 밥 먹으면서 음식 투정을 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야채가 너무 많네요. 이 음식은 아무 맛이 안 나요.”최신애는 겨우 화를 참았다.“내가 나이가 들어 입맛이 담백해졌어. 못 먹겠으면 이 집에서 꺼져도 돼. 널 불잡을 사람 아무도 없을 테니.”현채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유한 씨가 얘기했잖아요. 저는 짭짤하면서도 단 것을 좋아해요. 탕수육 같은 거 좋아하니까 다음번에는 그런 것으로 만들어 주세요.”하인은 최신애의 눈치를 살피며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현채영은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더니 한마디 했다.“왜요? 밥 먹는 것조차 어머님이 허락해야 먹을 수 있는 거예요?”현채영이 젓가락을 두드리는 소리에 최신애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젓가락을 테이블에 ‘탁’하고 놓았다.“네가 뭔데 감히 내 앞에서 테이블을 내리쳐!”최신애가 격노했다.“현씨 집안이 이 지경으로 전락한 게 다 이유가 있었어. 정말 교양이 하나도 없네!”그 말에도 현채영은 화를 내는 대신 ‘흥’하고 콧방귀만 뀌었다.“최씨 가문 식구들은 교양이 있어서 성격이 이렇게 모났나 봐요. 유일한 친아들마저도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너 정말...”최신애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여봐라, 어른은 안중에도 없는 이 여자를 쫓아내라.”“누가 감히 할 수 있는지 나야말로 보고 싶네요.”현채영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어머님,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제가 여기에 있는 걸 힘들어하면 유한 씨도 같이 나간다고 했어요. 집도 이미 다 장만했어요.”“뭐라고?”최신애는 어리둥절해 했다.“너에게 집도 사줬어?
“유희야, 네가 잘못 짚은 거 아니야? 유한이가 현채영에게 점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최신애는 분통을 터뜨렸다.“강지아에게도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저게 연기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일부러 강지아를 괴롭혔는데 전혀 반응이 없잖아.”임유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제 예상이 맞아요. 현채영은 유한 오빠가 저와 어머니를 상대하기 위해 일부러 데려온 거예요.”“그런데 강지아는 서원준과 사귀고 있잖아.”최신애는 임유희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온유한이 강지아를 아직도 좋아한다면 어떻게 강지아보다 현채영에게 더 잘할 수 있겠는가?강지아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다고?온유한의 성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는 것은 참지 못할 것이다.“유희야, 일단 허튼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유한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고민해. 유한이가 너를 진짜로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한테 화내는 거야. 너는 너무 착해. 현채영 그 여자를 봐, 하루 종일 유한에게 붙어서 별짓을 다 하잖아.”임유희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는 아무리 노력해도 현채영처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하지만 온유한이 하루 종일 현채영과 붙어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힘들었다.다음 날 아침 현채영은 또 늦게 일어났고 온씨 가족이 식사가 끝난 뒤에야 방에서 나왔다.“아버님, 어머님, 임유희 씨, 굿모닝.”그러더니 온유한의 볼에 입까지 살짝 맞췄다.“유한 씨, 좋은 아침.”온씨 집안사람들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임유희는 입에 넣은 밥을 뱉어내고 싶을 정도였다.온유한이 현채영의 손을 잡더니 그녀를 옆자리에 앉히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졸려서 밥 먹기 싫다며? 네 아침은 남겨놨으니 피곤하면 좀 더 자고 일어나서 먹어도 돼.”“출근하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꿀을 탄 듯 달콤한 현채영의 목소리에 최신애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도저히 들어줄 수 없었다.“먹을 거야, 말 거야? 안 먹을 거면 꺼져, 아침부
“쇼핑 더 할 거야?”화령의 두 손에도 쇼핑백이 가득 들려 있었다.맞은편 가게에서 현채영이 치마를 입어보고 있었고 온유한이 그녀의 어깨끈을 고쳐주고 있었다.“이제 가자. 거의 다 샀어.”강지아가 말하는 순간 화령은 무슨 생각이 난 듯 한마디 했다.“곧 금성 씨의 생일이라 선물 좀 사야 할 것 같아. 같이 골라줘.”두 사람은 남성복 가게에 갔다.최금성은 항상 이 브랜드의 옷을 입었기에 가게에도 그의 옷 사이즈가 있었으므로 화령은 스타일만 고르면 되었다.양복과 셔츠 외에 화령은 넥타이도 골랐다. 총 2천만 원이 넘었다.“서 대표에게 뭐 안 사줘도 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는 멍해졌다.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필요 없을걸?”두 사람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강지아도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적응하지 못했다.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좋아하는 강지아지만 여자친구로서 주는 거라면... 왠지 이상했다.화령은 서원준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사람이 재미있기도 하고 강지아에게 일편단심이었다. 듣는 소문에 의하면 부모님의 인품도 좋다고 했다.“서원준에게 아무거나 하나 골라줘 봐. 요 몇 년 동안 일이 없을 때마다 날아가서 너와 같이 있어 주고 그랬잖아. 알 사람들은 다 알아.”화령의 말은 사실이었다.강지아는 어쩔 수 없이 서원준을 위해 은회색의 패셔너블한 넥타이를 골랐다.“괜찮아?”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넥타이를 선물하는 것이었기에 강지아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잘 어울리겠지?”“당연히 잘 어울리지. 서 대표가 얼마나 스타일리쉬한데. 이런 컬러 잘 어울려.”강지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사기로 결심하고 종업원에게 건넸다.“이거 포장해 주세요.”뒤돌아선 순간 온유한과 현채영이 어느새 가게에 들어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현채영이 온유한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유한 씨, 넥타이 사기로 했잖아. 내가 골라줄게.”온유한이 ‘응’이라고 대답하며 강지아의 옆을 지나갔다.종업원은 강지아와 화령의 물건을 재빨리 포장했다. 이
“강지아 씨, 이 치마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지아 씨처럼 피부가 뽀얀 사람들만 소화해낼 수 있을 거예요.”종업원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평소 이런 색상을 거의 입지 않은 강지아마저도 꽤 마음에 드는 듯했다.“그래요. 이걸로 살게요.”이때 옆에 있던 임유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치마가 정말 예쁘네요. 마음에 들어요.”그러자 최신애가 말했다.“그럼 사.”임유희를 본 종업원은 미안한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죄송합니다. 이 치마는 저희가 새로 출시한 한정판 신상품이라 사이즈별로 한 벌씩밖에 없어요. 고객님도 S사이즈시죠? S사이즈는 더 없습니다. 대신 다른 스타일로 추천해 드릴게요. 저희 가게에...”“다른 스타일 말고 저걸로 줘.”최신애의 말에 종업원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강지아는 상대하기 귀찮았다. 두 집안이 이미 인연을 끊었기에 굳이 인사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드레스 룸에 가서 다른 치마로 갈아입었다.한편 최신애는 아직도 종업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내가 이 가게 VIP야. 지금 이 치마가 마음에 들어서 입어보겠다고 하잖아.”종업원은 골치가 아팠다.한편 다른 치마로 갈아입고 나온 강지아와 화령은 최신애가 없는 셈 치고 즐겁게 계속 쇼핑을 했다.강지아가 옷을 잔뜩 골라 종업원에게 주며 포장해달라고 했다.최신애는 빨간 치마를 뺏어오기로 마음먹은 듯 종업원이 포장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빼앗아서 임유희에게 건넸다.“유희야, 입어 봐.”임유희가 치마를 들고 피팅룸으로 들어가려 하자 강지아가 앞으로 한 걸음 나와서 말했다.“이 치마는 제 거예요.”임유희도 물러서지 않았다.“아직 돈을 내지 않았잖아요. 그럼 당연히 강지아 씨의 것이 아니죠.”“내가 먼저 결정한 것이고 이미 사겠다고 얘기도 끝났어요. 대학교수면 누가 먼저인지 기본 도리는 알지 않나요?”“강지아 씨보다 내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단아한 분위기의 임유희에게 빨간 치마가 더 잘 어울린다고?강지아는 피식 웃었다.“본인이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아
해장국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던 임유희는 외출하려던 온유한과 마주쳤다.“유한 오빠,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 가는 거예요?”온유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본 후 바로 무시해 버렸다.명성 빌딩.늦게 집에 들어온 진수혁은 거실 소파에 검은 그림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재빨리 불을 켰다.“왜 또 왔어?”자기 집이 아니었기에 진수혁도 함부로 비밀번호를 변경할 수 없었다.하지만 온유한이 마음대로 드나드는 것은 퍽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게다가 온유한은 술까지 마셨다.온유한의 발 옆에는 이미 여러 개의 맥주 캔이 놓여 있었고 손에도 캔이 하나 쥐어져 있었다.“지아의 발목 문신도 그쪽이 지운 거야?”“응.”진수혁이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문신 지울 때 많이 아파?”“어떨 것 같은데?”“지아가 울었어?”“울진 않았어.”온유한이 맥주를 계속 마시자 진수혁도 마시고 싶은 마음에 냉장고를 열었지만 한 캔도 남아 있지 않았다.진수혁이 화가 나서 말했다.“내 싸구려 맥주가 그쪽 같은 부자들이 마신다니 참으로 영광이네.”온유한이 계속 말했다.“가게가 어디야?”“뭐?”진수혁은 어리둥절했다.두 사람이 연락처를 교환한 뒤 진수혁은 가게 위치를 온유한에게 보냈다.주소를 확인했음에도 온유한은 집에 가지 않은 채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잠들기 전 진수혁에게 한마디 했다.“내가 여기 있다고 지아에게 말하지 마.”진수혁은 어이가 없었다.재벌가들의 사랑싸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며칠 후 강지아는 서원준과 함께 진수혁을 찾으러 갔다.빨갛게 부어오른 피부가 다 낫자 흉터가 다시 드러났다.서원준은 옆에서 문신을 하는 아가씨가 아파소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듣고는 강지아를 잡고 말했다.“그냥 안 하는 게 어때? 흉터가 크지 않아서 별로 티도 안 나. 진짜로.”진수혁이 서원준을 쳐다보며 말했다.“이분은...”“지아의 남자친구 서원준이에요.”“안녕하세요.”진수혁은 별다른 말 없이 강지아를 향해 물었다.“할 거
현채영의 말에 최신애는 화가 나서 가버렸고 임유희도 곧장 그녀의 뒤를 따랐다.집안에 들어서기 전, 뒤에 있던 임유희가 불쑥 물었다.“현채영 씨, 유한 오빠 입술에 난 상처... 진짜 현채영 씨가 그런 거예요?”현채영은 걸음을 멈춘 뒤 뒤돌아서 임유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아니면 임유희 씨가 그랬겠어요?”임유희의 눈빛은 아주 차분했다.“유한 오빠와 만나는 척하지만 현채영 씨에게서는 한 번도 키스 마크를 본 적이 없어요. 현채영 씨의 향수 냄새는 아주 강하지만 유한 오빠에게서는 한 번도 진한 향수 냄새가 나지 않았고요. 늘 은은한 향수 냄새 그대로죠.”현채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임유희가 계속 말을 이었다.“오늘 저녁 강씨 가문 생일잔치에 간 거죠? 유한 오빠도 누구를 만나려고 간 것 같은데 아닌가요? 강지아 씨가 돌아왔나요?”현채영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역시 임유희 씨, 대학 선생님답게 꼼꼼하네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강지아 씨가 온 것은 맞지만 그게 유한 씨와 무슨 상관이죠? 유한 씨는 아이를 보러 간 거예요. 유한 씨가 옛 친구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유희 씨도 잘 알잖아요.”그러자 임유희가 말했다.“그래요? 유한 오빠 입술 상처도 강지아 씨가 낸 거죠?”현채영은 일부러 놀란 척하며 눈을 크게 떴다.“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두 사람 오래전에 헤어졌어요.”임유희가 계속 물었다.“현채영 씨 역할이 뭔가요? 목적이 대체 뭐예요? 돈 때문이에요?”현채영은 박수를 쳤다.“임유희 씨, 상상력 하나만은 정말 탄복할만하네요.”“내가 돈 때문에 여기에 있는 거라면 어머님이 주신 20억 원을 왜 안 받았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내 목적은 온유한이라는 사람 곁에서 온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차지하는 거예요. 그런데 임유희 씨는 왜 온씨 가문에 빌붙어 사는 거죠?”임유희가 말했다.“온유한 씨가 좋아서요.”현채영은 동정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따지고 보면 임유희 씨도 너무 불쌍해요.
강지아가 서원준과 사귀는 것에 대해 강지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정유진의 얼굴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온미정은 옆에 있는 온유한을 바라본 뒤 한숨을 내쉬었다.“유한이 이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정유진의 얼굴에는 근심이 다분했다.“그냥 다들 더 이상 시끄러운 일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이때 서원준이 강지아의 손을 잡았다.뜨거운 그의 손바닥과 달리 강지아의 손은 약간 차가웠다.생일파티에 워낙 일이 많았고 또 강지아도 더 있을 마음이 없었기에 정유진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 그런데 차에 타자마자 한 사람이 뒤따라 차를 탔다.익숙하고 은은한 향수 냄새가 그녀의 코를 찔렀다.온유한은 동하민이 앞 좌석에 타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강지아에게 다가갔다.“일부러 그런 거야?”강지아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아니. 서원준은 몇 년째 나만 기다렸어.”온유한이 가만히 있자 앞 좌석에 있던 동하민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온 선생님, 여자친구도 몇 명씩이나 있는 분이 우리 대표님에게 왜 이러세요?”강지아도 한마디 했다.“이만 내려줘. 오빠 여자친구나 내 남자친구가 보면 안 되지 않을까?”온유한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강지아를 매섭게 쳐다봤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차에서 내린 뒤 문을 쾅 닫았다.강지아가 한숨을 푹 내쉬자 동하민이 말했다.“대표님, 온 선생님,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몰라.”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강지아가 떠나자마자 온유한과 현채영도 자리를 떴다.온씨 저택으로 돌아온 후 그의 입술에 난 상처를 본 최신애와 임유희는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현채영은 온유한의 팔짱을 끼더니 방긋방긋 웃으며 말했다.“오늘 술을 좀 마셔서 넘어지는 바람에 유한 오빠가 좀 다친 것 같아요. 어머님, 유희 씨, 신경 쓰지 마세요.”“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천한 년!”최신애가 손을 들어 때리려 하자 온유한이 막아 나섰다.“그만 하세요!”큰소리로 외친 온유한은 기분이 언짢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