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이 엘리베이터를 나오자마자 전태연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당신이 바로 소문만 무성한 강 대표의 전 약혼녀 정유진인가요?”정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리 알아내는 전태연인지라 강지찬의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정유진에 대한 정보를 바로 알아냈다.“강지현과 도망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또다시 돌아온 거예요?”정유진은 안 그래도 기분이 너무 안 좋았기에 여기서 강지찬의 여자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정유진은 전태연이 말을 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옆으로 지나가려는 순간, 전태연의 경호원 두 명이 그녀를 막아섰다.정유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보세요, 아가씨. 우리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굳이 제가 이런 것까지 아가씨에게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요?”재벌 집에서 아가씨 행세를 해오며 부모님이 오냐오냐하게 키운 탓에 항상 도도했던 전태연은 거침없는 정유진의 태도에 순간 기분이 확 안 좋아졌다. “정유진 씨, 경고하는데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거예요. 괜히 내 신경을 건드리지 말고요.”정유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요, 뭘 물어보고 싶은데요?”“강 대표님과 헤어진 게 맞나요?”정유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바로 대답했다.“헤어진 셈이죠.”정유진도 쉽고 빨랐던 혼인신고와 달리 관계를 정리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줄 몰랐다. 사실 그녀와 강지찬은 혼인신고 그 종이 한 장만 빼면 헤어진 셈이나 다름없었다.다만 아직 확실하지 못할 뿐이었다.“헤어진 셈이라니요?”전태연이 그녀의 대답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자 정유진은 진지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강지찬 씨가 그렇게 좋으면 단속 좀 잘하세요. 빨리 나와 정리할 수 있게 얘기 잘하고요. 그게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게 아닐까요?”강지찬과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은 전태연의 입장에서는 이 말이 귀에 너무 거슬리게 들렸다.“무슨 뜻이에요, 비웃는 거예요?”정유진은 이런 그녀의 반응이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비웃는다고
사진은 가까이 걸어오는 강지찬과 장형준의 발 앞에 떨어졌다.순간 정유진은 깜짝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전태연은 강지찬을 보고 바로 그의 가까이에 다가가 말했다.“강 대표님, 정유진 씨와 장난 좀 쳤어요.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길이예요?”강지찬은 정유진을 힐끗 보더니 다시 전태연을 보며 말했다.“오늘 저녁 같이 먹기로 한 거 아니에요?”약속이 깨진 줄 알았던 전태연은 강지찬의 말에 활짝 웃었다.“네, 네. 맞아요.”하지만 정유진은 두 사람이 밥을 먹으러 가는지 아니면 호텔을 가는지 전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온통 그 사진에 쏠려 있었다.강지찬이 고개만 숙이면 바로 사진을 보게 될 것이다.‘안돼! 강지찬에게 절대 사진을 보여 줘서는 안 돼!’경호원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정유진은 바로 자기를 잡고 있던 경호원의 팔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달려들어 사진을 발밑에 밟았다.강지찬은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오는 정유진의 모습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정유진은 화장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사진과 지갑만 주워 가방에 쑤셔 넣었다.화가 머리끝까지 난 정유진은 강지찬을 보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강지찬 씨, 이 여자와 너무 잘 어울리네요. 백년해로하시길 바랍니다!”말을 마친 정유진은 강지찬을 덩그러니 남겨둔 채 자리를 박차고 바로 가버렸다. 옆에 있던 전태연은 강지찬이 자기를 거만하다고 오해할까 봐 바로 설명했다.“정유진 씨가 예전에 대표님을 배신했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래서 지갑에 혹시나 다른 남자와 관련된 증거가 있지 않을까 해서 뒤진 거예요.”강지찬은 차가운 눈빛으로 입구까지 걸어간 정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있었나요?”“아무것도 없었어요. 카드도 몇 장 없던데요.”전태연은 말을 하자마자 가까이 다가와 강지찬의 팔짱을 끼려 했다.강지찬도 별 거부를 하지 않자 그녀도 서슴없이 팔짱을 꼈다. 한편 차에 오른 정유진은 운전석에 앉
정유진은 특별히 이곳저곳에 연락해 이혼소송의 성공률을 알아봤다. 하지만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승소할 자신이 절대 없다고 대답했다.강지찬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법원이라고 해서 그들을 강제로 이혼시킬 수 없었다.제일 원만한 결과가 합의이혼인데 이렇게 되면 시간이 길어지기에 정유진에게는 그만큼 할애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그래도 강지찬부터 손을 써야 해.”조예원의 말에 정유진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강지현이 출국하는 것을 도와준 거로 내가 강지현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오해하고 있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그 사람이 나를 많이 원망해.”“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지현 오빠가 곧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때가 되면 강지찬도 너희 두 사람이 같이 있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제발 그랬으면 좋겠어.”강지현이 돌아오는 날, 원래는 조예원이 마중 나가려 했지만 성원에서 갑자기 미팅하자고 연락이 오는 바람에 결국 정유진이 차로 몰고 마중을 나갔다.공항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응원 플래카드와 꽃을 든 팬들이 출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잠시 후,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톱스타가 걸어 나왔고 그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처음에 정유진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주변 팬들의 목소리로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안나, 안나!”“안나 씨, 사랑해요.”팬들은 마이크를 안나 얼굴 가까이에 대고 물었다.“안나 씨, 이번에 서울에 오게 된 것은 개인 스케줄 때문입니까, 아니면 업무 스케줄 소화하러 온 건가요?”“안나 씨, 강 대표님을 보러 온 건가요?”“안나 씨의 생일이 거의 다가오고 있는데 혹시 강 대표님과 함께 보내실 건가요?”정유진이 멀리서 그들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고개를 돌려보니 강지현이 이미 옆에 와있었다.“마중 나온 사람이 내가 옆에 온 줄도 몰라요?”정유진은 웃으며 대답했다.“톱스타를 구경하느라고요.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강지현은 들고 있던 짐을 그녀에게 넘기지 않고
강지아가 막 나가려던 참에 강지찬이 집으로 들어왔다.“오빠, 왔어? 둘째 오빠도 왔어. 한번 가봐.”“들어와.”강지아는 입을 삐죽 내밀고 강지찬을 따라 다시 마당으로 들어갔다.“많이 한가해?”강지찬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강지아를 쳐다보았다.“나야 당연히 별로 할 일이 없지.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는 진작 다 그렸어.”강지찬은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할 일이 없으면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그래. 매일 집에서 별로 하는 것도 없잖아?”강지아는 오빠의 말에 다른 뜻이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금 상태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다.“친구도 없는데 만나기는 누구를 만나? 원래는 새언니와 오후에 커피라도 한잔 마시려고 했는데 새언니가 요즘 너무 바쁜 것 같아.”“쓸모없는 자식.”강지찬은 한마디만 하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억울하게 혼난 강지아는 그제야 강지찬 말속의 숨은 뜻을 눈치챘다.“오빠, 설마 오빠가 새언니를 만나고 싶은데 나더러 연락해 달라는 거야? 오빠가 만나고 싶으면 직접 얘기하면 되지, 왜 그렇게 빙빙 돌려.”한편, 집에 도착한 강지현이 소파에 앉아 손에 든 차를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류선이 그를 보며 말했다.“너도 그동안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으니 이제 적당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해야 하지 않겠어?”서른까지 못살 거라는 의사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강지현은 서른을 넘기고도 잘살고 있었다. 하지만 류선은 강지현의 건강을 계속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를 바랐다. 류선은 말을 마치자마자 주머니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꺼내 강지현에게 보여줬다.“이것 좀 봐봐, 다들 얼마나 똑똑하고 예뻐. 게다가 집안도 아주 괜찮아.”하지만 강지현은 사진을 볼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고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당분간은 결혼하고 싶지 않아.”류선은 강지현의 말에 깜짝 놀랐다.“결혼을 안 한다고? 지금 나이가 얼마인데 아직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야? 강지찬은 이미 전씨 집안의 그 외동딸과 밥까지 먹었
늦은 저녁, 정유진이 한창 샤워하고 있을 때 강지현의 전화가 걸려왔다. 옆에 있는 정유진이 때마침 발신자 표시가 ‘강지현’인 것을 보고 그녀 대신 전화를 받았다.“지현 오빠, 저 예원이에요.”강지현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인사했다.“예원 씨, 오랜만이에요.”강지현은 오늘 저녁 조예원이 밥을 사기로 했던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오롯이 본인 할 말만 했다.“유진 씨 있어요?”그 말에 조예원의 얼굴에 있던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지금 샤워 중이에요. 방금 들어간 거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지현 오빠, 혹시 급한 일이라도 있어요? 유진이 나오면 전해줄게요.”“아니에요, 괜찮아요. 나중에 문자로 해도 돼요.”조예원이 잠깐 침묵하자 강지현은 이내 말을 이었다.“나중에 만나서 밥이나 같이 먹어요. 내가 살게요. 잘 자요.”“잘 자요.”4년 만이었지만 강지현의 마음속에 조예원이란 사람은 친구조차도 아닌 것 같았다.정유진이 샤워를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오자 조예원은 그녀를 향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지현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었어.”“뭐라고 했는데?”“말하지 않았어. 너에게 문자를 보내도 된다면서.”정유진은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닦으며 휴대전화를 집어 들며 한마디 했다.“지현 씨의 말로는 강지찬이 전씨 집안과 결혼한대.”그 말에 조예원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다른 사람과 결혼할 사람이 왜 계속 이혼을 미루는 걸까?”정유진은 강지현에게 답장을 보내며 말했다.“일부러 나를 괴롭히려는 거지. 지현 씨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겠다면서 나더러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어.”조예원은 무심한 듯한 태도로 말했다.“지현 오빠가 너의 일에 신경을 참 많이 쓰네?”정유진은 조예원이 묻는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나 때문에 애가 타서 그러는 거지. 내가 이혼을 안 하면 연우와 우리 엄마를 데려올 수 없으니까.”다음날, 조예원과 정유진, 그리고 예담 스튜디오 직원들은 프로젝트 미팅을 마친 후 사무실에 돌아왔다. 정유진
그날 밤, 기자는 강지찬이 안나와 함께 에이프릴 홀에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정유진은 샤워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남교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이때 조예원이 휴대전화를 들고 와서 말했다.“이 인간쓰레기 좀 봐. 전씨 집안하고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어?”하지만 정유진은 강지찬 열애설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몰라. 어차피 그 전태연이라는 아가씨가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조예원은 정유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강지찬이 너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성격이 많이 변한 게 아닐까? 자기 아버지 침대에 고세연을 보낸 일도 서울 전체를 얼마나 떠들썩하게 했는데... 나중에는 또 두 사람을 강제로 결혼시켜 고세연이 자기에게 시집오겠다는 생각을 아예 완전히 끊어 버리게 했으니... 이 남자, 정말 너무 잔인한 것 같아.”그 말에 정유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응, 잔인하지.”강지찬은 잘난 척하고 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에이프릴 홀, 강지찬은 아직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룸 안에는 남자 몇 명만 있었다.최의현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안나가 너더러 하는 척만 해달라고 하니까 네가 진짜로 딱 스캔들 날 정도까지만 할 줄은 몰랐어. 얼굴이라도 좀 내밀지 그래? 그런데 그 조씨 그 인간이 이득 보는 거에는 완전히 선수 같아. 누가 뭐래도 안나는 너의 스캔들 여자친구야.”온유한은 흥이 깨진 강지찬을 보며 웃었다.“지찬이가 그 스캔들 여자친구까지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어.”그때 옆에 있는 경은우가 말했다.“형, 고모님 사건 공소시효가 거의 만료되는데 정말 수사를 계속할 생각이 없어요?”최의현이 한마디 끼어들었다.“해야지, 반드시 조사해야지.”말을 마친 최의현은 또 강지찬을 보며 입을 열었다.“정유진 씨를 못 잊겠으면 그냥 집에 데려와. 어차피 법적으로도 명색이 네 마누라니까. 정유진 씨가 싫으면 확실하게 이혼하고 네 할 일 해. 나는 네가 계속 이러는 거 더 이상 지켜보지 못 하겠어.”온유한도 맞장구를
임우연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사모님, 오늘 밤 폐를 너무 많이 끼치네요. 죄송합니다.”하지만 정유진은 한밤중에 밖으로 나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로 가방에서 이혼 합의서를 꺼냈다.“강 대표님,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사인만 하면 강 대표님도 밖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잖아요?”옆에 있는 임우연은 속으로 정유진이 이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정유진의 말에 강지찬이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둡고 무거운 그의 눈동자는 정말이지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웠다.“정유진, 당신은 아내 역할을 이렇게 해?”그 말에 정유진은 너무 어이가 없어 한마디 했다.“하... 그렇지 않으면요? 방은 잡으셨어요? 제가 방이라도 잡아 드릴까요?”옆에 있던 경찰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더니 이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재벌 집의 사람들은 이렇게 인생을 즐기네...’강지찬이 사인할 기색이 없자 정유진도 더 이상 여기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경찰 아저씨, 별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도 될까요?”“여기에 서명만 해 주시면 됩니다. 다른 일은 저기 임우연 씨가 이미 다 처리했어요.”서명을 한 정유진이 집에 가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옆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확 밀쳤다. 다행히 옆에 있던 임우연이 빠른 속도로 정유진의 팔을 잡아주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분명 얼굴을 아래로 한 채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을 것이다.“너야? 네가 한 짓이야?”안나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정유진을 가리켰고 옆에 있는 강지찬도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정유진은 치솟아 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참으며 말했다.“무슨 말이에요?”안나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사람 시켜서 나를 망신 주라고 했냐고!”재수 없는 놈은 거꾸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이건 뭐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말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제가 남에게 신경 쓸 만큼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렇게 못돼먹지도 않았고요. 잘못 짚었어요.”안나가 갑자기 달려들어 정유
다음 날, 정유진이 내려오자마자 조예원은 거실에서 욕설을 퍼부었다.“강지찬, 그 개자식이 또 실검에 올랐어. 이 사람은 도대체 체면이라는 게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혼도 안 했는데 바람피운 거잖아?”조예원은 어젯밤의 정유진보다 더 화가 난 듯했다.“내가 이거 다 캡처해서 저장해 놓을게! 이건 소송하면 전부 바람을 피운 증거로 제출할 수 있어.”“변호사에게 물어봤는데 그런 폭로는 소용이 없대.”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정유진은 하품하며 대답했다.정유진은 며칠 안에 반드시 설계도를 내야 했기에 이혼 일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점심이 다 될 무렵 강지현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오더니 때마침 예담 스튜디오 근처라며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마침 예원이도 여기 있으니까 같이 나갈게요. 귀국한 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잖아요.”전화기 너머의 강지현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말했다.“예원 씨는 다음에 불러요. 오늘은 그냥 간단하게 밥 먹으면서 할 얘기가 있어요.”순간 정유진은 살짝 어리둥절했지만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휴대전화를 끊자마자 조예원이 그녀가 있는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점심 뭐 먹을 거야? 내가 같이 주문할게.”“좀 이따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 나는 신경 쓰지 마.”조예원은 알겠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나갔다.강지현은 예담 스튜디오 맞은편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고 정유진이 들어갔을 때 웨이터가 때마침 음식을 내오고 있었다.음식이 전부 나온 후 정유진은 바로 젓가락을 들지 않았고 답답한 얼굴로 강지현을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지현 씨, 예원이와의 관계에 대해 나에게 숨기는 거 있지 않아요?”강지현이 웃으며 되물었다.“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그냥 일부러 피하는 것 같아서요.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죠?”강지현이 정유진에게 국을 떠주며 말했다.“아니에요. 예원 씨가 원하는 걸 제가 해 줄 수 없어서 괜한 희망을 품게 하고 싶지 않아요. 오해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요.”정유진은 순간 뭐라고 말해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