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 강지찬이 약속대로 정각에 정유진을 픽업하러 왔다. 정유진은 회사에서 이미 쇼핑 리스트를 작성해 두었다. 방사선 차단 옷 외에도 임산부용 속옷과 바지도 필요했다. 특히 임신 후기에는 몸매 변화가 크기 때문에 임산부에게 적합한 속옷과 바지를 구입하는것이 필수였다.그녀는 바꿔가며 입을 수 있도록 샴페인 색상의 끈나시 두 개를 골랐고 강지찬은 옆에서 보며 불만스러워했다. 정유진과 처음으로 쇼핑몰에 와서 사는 옷이 방사선 차단 옷이라니. "이거 두 개만 고를 거야?" 강지찬이 물었다. 방사선 차단 옷은 디자인이 단조로워 별로 고를 것도 없었다. 정유진은 그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두 개의 탱크탑을 추가로 골랐다. 그녀가 점원에게 기능과 주의사항에 대해 자세히 묻는 모습을 보며 강지찬은 외면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찬은 여자와 함께 쇼핑해본 경험이 없어, 그냥 한쪽에 앉아 쉬기로 했고, 정유진은 쇼핑을 빨리 끝내고 필요한 물건들을 한가득 담아왔다. 강지찬이 계산을 마치고 정유진과 함께 돌아서려는데, 류선과 고세연이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정말 강지찬이네, 방금 건너편에서 쇼핑하다가 너를 봤어. 여긴..." 이 가게는 육아용품점이었다. 강지찬이 정유진을 이런 가게에 데려오다니... 류선의 시선이 정유진의 배에 머물렀다. 임신한 건가? 이렇게 빨리? 그녀는 자신의 비실거리는 아들이 생식능력에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고 속으로 걱정했다. 고세연도 상황을 깨닫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지찬 오빠, 당신이랑 이 여자가..." 류선은 눈에 숨겨진 질투를 감추며 정유진을 가리키며 화를 냈다. "이 여자가 임신했다고? 지찬아 너 정말 어리석구나. 이런 여자를 우리 집에 들일 수는 없어. 게다가, 세연이를 두고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류선의 목소리가 하도 컸던 탓에 가게 안의 직원들과 주변 다른 가게의 고객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고 그중에는 강지찬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었다. "저기 강지찬 아닌가요? 옆에 있는 여자
강지찬은 당시 자신이 정유진에게 넘어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에이프릴 호텔에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그녀를 호텔로 데려가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상류층에는 순식간에 소문이 퍼졌고, 모두가 알게 되었다.모두들 강지찬이 정유진과 단지 한 번의 일탈을 벌인 것으로 생각했다. 어쨌든 정유진이 약혼자가 있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니 말이다. 누가 그들이 실제로 아이까지 가질 줄 알았겠는가?류선의 말을 듣고, 강지찬은 걸음을 멈추었다."나 강지찬이 누구와 결혼하든지, 언제부터 숙모가 나서서 간섭한 거죠?" 강지찬은 성격도 만만치 않았고 독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으며 상대가 어른인지 아닌지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었다.그는 냉정하게 고세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숙모가 그렇게 좋아한다면, 직접 집으로 데려가 며느리로 삼으면 더 좋지 않겠어요?""너..." 류선의 얼굴색이 단번에 변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아무것도 아닌 여자와 결혼하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세연이는 네 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하는 예비 며느리고, 널 오랫동안 좋아해 왔잖니. 난 이런 좋은 커플을 망치고 싶지 않아."강지찬은 정유진의 어깨를 감싸며 단호하게 말했다."그렇다면 숙모도 제대로 봐두세요, 이 여자가 바로 내 여자친구예요. 앞으로는 잘못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고세연은 단지 내 아버지가 거둬들인 고인이 된 친구의 딸일 뿐이지. 나랑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그는 정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리 와요, 이분은 제 숙모예요. 며칠 후에 집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는데, 지금 만나게 되었으니 먼저 인사해요."정유진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그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숙모, 안녕하세요."이에 류선과 고세연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그들도 강지찬이 이번에는 진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됐어요,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어요. 지금은 배고픈 상태로 있어선 안 되잖아요." 강지찬은 정유진을
강 씨네 저택에서, 고세연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강홍식은 분노로 인해 거의 쓰러질 뻔했고, 집사에게 명령했다. "저 불효자식에게 전화해! 당장 돌아와서 이 상황에 관해 설명하라고 해." 집사는 눈물을 흘리는 고세연을 보고 망설였다. "강 대표님은 회장님이 부르는 이유를 알 것입니다. 아마도...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강지찬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전화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고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집사는 이 전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자기 아들이 중요한가, 아니면 외부인이 중요한가? 집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강홍식이 탁자를 치며 말했다. "지금 전화해서 즉시 돌아오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이 집에 다시는 발도 못 붙인다고 전해!" 집사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었고 류선은 기회를 이용해 말했다. "아주버님, 지찬이도 나이가 들었습니다. 그냥 세연이와 결혼하게 하세요. 아주버님은 지찬이 친부이자 우리 강 씨 가문의 가장이니 당신의 말이 곧 법이죠." 이 말을 들은 강홍식은 양심이 찔렸다.가문의 가장은 무슨? 그저 강 씨 집안의 장남이라는 호칭을 얻었을 뿐이다. 강 씨 가문의 사업은 이미 강지찬에게 넘어갔고, 그는 이제 둘째처럼 연말의 배당금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신세였다.하지만 류선에게 이런 칭찬을 받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강홍식은 평생 제대로 된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운이 좋았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에게 의지했고, 이제 늙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젊었을 때는 아버지를 화나게 했고, 이제 늙어서는 아들을 화나게 했고, 그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한평생 멍청이'일 뿐이었다.류선의 말에 자극받은 강홍식은 '대가문의 가장'으로서의 허영심이 되살아났다. "저 불순한 놈이 돌아오면, 저 자식이랑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거야!" 강지현도 자리에 있었고, 동의하지 않았다. "저 정
정유진이 목욕을 마치고 입은 것은 새 옷이 아니라 반팔티와 칠부 바지였다. 강지찬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쇼핑몰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고세연에 대해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이 여자는 마음에도 없고, 고세연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고세연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그에게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지찬의 마음속은 조금 불편해졌다. "나를 경계하는 거예요?" 정유진이 머리를 말리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하지만 강지찬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럼 그 잠옷으로 갈아입어요." 정유진이 머리를 말리던 손길을 멈추고 돌아보며 말했다. "확실해요?" 강지찬의 눈동자가 움찔했고 가슴이 철렁 움직였다.이 여자 도대체 무슨 뜻이지? 기회가 있다는 뜻인가? 하지만 그가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정유진이 말을 이었다. "알아봤는데 임신 초기 석 달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요. 그래도 지금 잠옷을 갈아입게 할거에요?" 강지찬은 중요한 포인트를 잡고 되물었다. "석 달 후에는 가능하단 말이에요?" 정유진은 머리를 계속 말리며 이렇다 저렇다 대답하지 않았다. 다 큰 성인들인데, 동침한다는 것이잖아?강지찬이 그녀를 좋아하는 건 성격 때문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이 문제는 결국 마주해야만 한다. "그럼 오늘 밤에는 안방으로 옮겨 잘게요." 강지찬은 기회를 잡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유진 씨, 그 어플을 연구하고 있지 않나요? 거기에 임산부의 남편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나요?" 이번에는 정유진이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좋아요." 그 어플에는 실제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강지찬은 벌써 마음이 간질간질했고 인제야 정유진의 약점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음이 약하고 다루기 쉬웠다. 이전에는 그녀의 부모와 지아였고, 이제는 아이가 추가되었다. 그날 밤, 강지찬은 정유진의 침대에 들어갔고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강지찬은 몇 초 동안 생각하다가 '같은 구덩이'가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멍청한 여인, 자신을 한빈과 비교하다니!“유진 씨 날 색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 강지찬의 여색을 멀리하는 명성을 유진 씨가 깬 걸 잊었어요? 당신은 마치 내가 당신한테 억지로 무언가를 시킨 것처럼 말하네요, 나도 당신의 억지 호의는 필요 없어요.”정유진은 왠지 모르게 이 사람과 여자 연예인의 벽 밀치기 사진을 생각해냈다. 예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관계를 확인했으니 이젠 마음에 걸림돌이 생겼다.그녀는 강지찬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지찬 씨는 날 강요하지 않았고, 나도 지찬 씨를 억지로 기쁘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이건 나 자신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거예요. 잘 맞으면 함께 있고, 맞지 않으면 헤어지는 거죠.'지나치게 차분한 태도였다.강지찬은 각양각색의 여자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정유진 같은 여자는 정말 처음이었다.그녀가 이렇게 차분할수록, 눈물을 흘리는 그녀는 더욱 그를 당황하게 했다.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주우려고 하자 강지찬은 급히 침대에서 내려왔다.“내가 할게요, 당신은 누워 있어요.”그가 밖으로 나가 빗자루로 방을 청소하고 샤워를 하러 간 뒤 돌아왔을 때, 정유진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몸의 물기가 마르길 기다렸다가 강지찬은 조심스럽게 침대에 누워 그녀를 안았다.시간이 흘러 3일 후, 강지찬은 선물 더미를 가지고 정유진과 함께 유진의 집을 방문했다.주말이라 정명학과 이명자가 집에 있었고 문을 연 것은 명자였다.깔끔한 정장을 입은 강지찬을 보고 명자는 차마 웃을 수가 없었고 전혀 사위를 대하는 장모님의 눈빛으로 지찬을 대할 수 없었다.반면 강지찬은 상당히 열정적이었고, 정유진의 소개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인사했다.“어머님, 강지찬이라고 합니다, 전에 만난 적 있네요.'지난번에 이 사람이 한빈의 어머니를 쫓아냈다는 것을 생각하니 명자는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들어와요.”말하면서 현관 옆 신발
유진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정명학과 함께 차를 마신 후 강지찬과 정유진은 집을 떠났다.강지찬은 오후에 회의가 있었기에 먼저 정유진을 집에 데려다준 후 회사로 향했다.이번 고위급 회의에는 강지현도 참석했으며, 회의가 끝난 후 대표실로 찾아왔다.그가 회사에 다닌 이후 처음으로 대표실에 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죠?”강지찬은 회사의 재무 부서장을 대하는 태도로 물었다.낮은 대표실의 온도 때문에 강지현은 들어오자마자 차가운 공기에 자극을 받았는지 바로 기침을 했고 강지찬은 그가 기침하는 것을 무심하게 지켜보며 냉정한 눈빛을 보냈다.강지현이 몇 번 기침을 한 후에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형, 큰아버지가 오늘 꼭 집에 돌아오라고 하셨어요.”오늘 강홍식이 강지찬에게 여러 번 전화했지만, 그때 정유진 집에 있었기에 강지찬은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한 통도 받지 않았다.이에 화가 난 강홍식이 강지현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게 했던 것이다.“무슨 일이야?” 강지찬이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돌아가서 아버지와 관계를 끊으라는 거야? 번거롭게 하지 말고, 기자 회견을 준비하라고 할게,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게 더 정식적이잖아?”강지찬은 강지현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강지현은 상대가 자신에게 적대적이라는 것을 알았고, 더군다나 이제 자신이 그들 부자 사이에 끼어들었으니 강지찬의 화를 피하기는 어려웠다.“아니에요.” 강지현이 말을 이었다. “큰아버지는 형이 세연 씨와 약혼하길 원해요.”“정말 재밌는 생각이네!” 강지찬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돌아가서 그 사람에게 말해, 그가 자신의 첫사랑을 그렇게 그리워한다면, 차라리 첫사랑의 딸과 직접 결혼하라고. 어차피 똑같으니까.”강지현은 동의하지 않았다. “형, 왜 세연 씨를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세연 씨도 단지 의지할 곳을 찾고 있을 뿐이에요.”“그럼 네가 결혼할래?” 강지찬은 비웃듯이 강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나 말이야 쉽지. 강지현의 표정이
다음 날 아침에야 강지찬은 출장을 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냈다.“전에 이미 정해진 일정이었어요. 이틀이나 삼 일 만에 돌아올 거에요.”정유진은 태연하게 죽을 마시며 대답했다. “그래요, 조심히 다녀와요.”강지찬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입을 맞추며 입안의 대추를 가져갔다.“남자친구가 출장 가는데, 반응 좀 보여줘야 하지 않나요?”정유진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전화할게요.”강지찬은 그녀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요, 전화한다고 했으니 지켜볼게요. 전화 안 하면 어떻게 될지 두고 봐요.”정유진이 좌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고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보고 싶을 거예요.”말을 내뱉는 유진의 얼굴에는 남자들이 기대하는 표정은 없었다. 부끄러워하거나 사랑에 빠진 여자처럼 애교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녀는 진심이었다.그녀는 강지찬과 진지하게 다시 시작하고자 했다.강지찬은 갑자기 마음이 약해져, 그녀의 머리를 끌어당겨 다시 키스했고 이에 장 씨 아주머니는 부엌에서 나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워했다.지찬은 충분히 키스한 후에야 정유진을 놓아주었고, 그녀의 입술에서 물기를 닦아내며 깊은 눈으로 말했다.“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선물 사다 줄 테니.”“알겠어요.”강지찬은 오후 비행기였기에 정유진은 바로 그의 짐을 싸주었다.그녀의 능숙한 동작을 보고 강지찬은 마음이 쓰라렸다. 전에 한빈을 위해 자주 짐을 싸준 티가 났기 때문이었다.그는 옆에서 구시렁댔다.“매일 전화해요. 내가 없는 이 며칠 동안 장 씨 아주머니가 게스트룸에서 잘 겁니다. 유진 씨를 챙겨줄 사람이 있어야 나도 마음이 편하죠.”“만약 우리 집에서 누가 당신을 귀찮게 하면, 온유한에게 전화해요. 이건 그 사람 명함이고. 아무튼, 당신이 해결 못 하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전화하면 돼요.”정유진은 드디어 출장에 관련된 질문을 건넸다. “최의현 씨와 함께 가나요?”최의현이 안 간다면 분명히 그녀에게
정유진은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업무에서도 확실한 성격이었다.수영장 하나를 파는 것 같은 작은 일은 예원이 해결할 수 있었지만, 강지현의 일은 결국 그녀의 것이었고, 그녀가 가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했다.결국, 예원이 운전을 하고 두 사람은 함께 상록수 별장으로 향했다.“너는 걱정이 너무 많아, 나조차도 믿지 못하는 거야?”정유진은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상록수 공사가 시작된 후 한 번도 가보지 않았어, 가서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현장에 도착했을 때, 강지현도 거기 있었다.마당은 온통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다.예원은 연신 주의를 줬다. “조심해, 거기 서 있어. 안전모 가져다줄게.”그리고 강지현에게 인사했다. “강 사장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안전모 하나 가져다드릴게요.”강지현은 웃으며 말했다.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감사합니다.”예원은 안전모를 찾으러 갔고 강지현은 정유진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유진 씨, 굳이 오지 않아도 됐어요. 저랑 예원 씨가 상의하면 될 일이고, 키키도 있잖아요.”정유진아 대답했다. “지현 씨의 의뢰는 제가 담당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디자이너로서 현장에 나와야 하죠.”강지현의 마당도 스튜디오 예담과의 계약 내용에 포함되었고, 정유진은 이전의 디자인을 들고나와 두 사람은 마당에서 토론하기 시작했다.“앞마당에 둔다면 첫째로는 전체 마당의 모양을 해치고, 둘째로는 사생활 보호가 안 돼요.”정유진은 시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뒷마당은 이쪽이 모두 나무라 여름에는 그늘이 지고, 가을과 겨울에는 낙엽이 떨어져 청소가 힘들고, 미관상으로도 별로예요. 제 제안은 옥상에 한 구역을 만드는 거예요, 바로 여기요.”강지현은 그 위치를 보고 말했다. “면적이 좀 작지 않나요?”정유진이 대답했다. “조금 작지만, 이 위치에서 뻗어 나갈 수 있어요. 전에 이 단지에서 누군가 이렇게 한 것을 보고, 특별히 관리사무소에 물어봤어요. 옥상 개조는 규정 내에서만 가능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