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채영을 되찾은 후 백 씨 가문의 부모는 그녀를 백아영과 같은 의대에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백채영이 의학에 대한 기초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분야의 재능조차도 없었다.백아영은 학교에서 소문난 천재였으나 백채영은 전 학년의 꼴찌였다.백채영이 후에 백아영을 감옥에 보내지 않았다면 백아영의 빛에 가려져 발아래 짓밟히고 멸시를 받았을 것이다.백채영은 다시는 그런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수줍게 말했다.“어릴 때 밖에서 떠돌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또래 친구들한테 의학 지식이 따라 못 가요. 의학 지식을 배운 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선우소훈은 백 씨 가문에서 예전에 입양해서 키운 아이는 백아영이고 나중에야 백채영을 찾아온 것을 알고 있었다.자신의 손녀가 같은 수준의 교육을 못 받은 것으로 이렇게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선우소훈은 갑자기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날로 얻어먹은 백아영이 더 꼴 보기 싫어졌다.그는 자상하게 말했다.“배운 적이 없어도 괜찮아. 네 사촌 오빠가 가르쳐 줄 거야. 그의 의술은 선우 가문의 젊은 세대 중 최고야. 그에게서 배우면 반년 후에는 또래 친구들보다 잘할 거야.”다른 사람들은 10년 동안 의술을 배워야 하는데 반년이면 그들을 따라잡고 심지어 백아영을 능가할 수 있다고?이것이 바로 선우 일가의 놀라운 의술인가?백아영도 내세울 게 꽤 괜찮은 의술밖에 없는데, 그녀를 초월하고 심지어 눌러버릴 때면 백아영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백채영은 곧바로 기뻐하며 연신 고대를 끄덕였다.“꼭 오빠를 따라 제대로 배울 거예요!”“오빠, 잘 부탁드려요.”구승호는 외부에 알려진 가명이고 그의 본명은 선우경진이었다. 그는 이름을 숨기고 밖에서 단련하면서 은밀히 외부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어렸을 때 그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 선우정현 이모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백채영도 좋아했다.“넌 우리 선우 가문의 유일한 공주님이야. 널 가르치게 되어 영광이야. 난 모든 걸
하지만 이것은 백채영을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한 일이었다.백아영은 아무 말 없이 청소하러 갔다.백아영이 평온한 표정으로 안도하듯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백채영은 가슴에 화가 꽉 차 더욱 답답해졌다. 그녀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이런 그녀의 모습을 본 선우경진은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저으며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채영아, 너 배 속에 아기도 있는데 화를 내면 안 좋아. 저런 사람한테 신경 쓰지 마.”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백아영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선우 일가 사람들한테 그녀가 안달 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말이 맞아요. 저런 비천한 도우미를 신경 쓰지 않을래요.”선우경진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의학 실험실을 보여주고 의술을 가르쳐줄게. 우리 시간도 얼마 안 남았어.”어떻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천천히 배우면 될 것을. 하지만 백채영도 얼른 잘 배워서 백아영을 짓밟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에 따지지 않았다.백채영과 선우경진은 의학 실험실로 갔다. 하룻밤 사이에 서둘러 설치한 것이지만 내부에는 기본 시설들이 전부 다 갖춰져 있었다. 심지어 많은 물건들은 백채영이 학교에서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선우경진의 의학에 대한 태도는 아주 엄격했다. 의학 실험실로 들어서자 그의 온화한 모습은 사라졌고 진지한 태도로 백채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선우 일가의 사람들은 의학에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좋은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선우 일가의 어린 공주의 재능이 가장 높았는데 태어날 때부터 측정할 수 있었다. 선우 일가의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였다.그래서 다른 집에 시집간 선우정현이 낳은 딸한테도 “선우”라는 성을 주었다. 심지어 오래전부터 나중에 공주님이 커서 선우 가문을 물려받을 것을 결정해 왔다. 그러나 그가 가르치기 시작한 후 점점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백채영은 그가 가르친 내용들을
백채영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의학 실험실을 떠나면서 낮은 목소리로 욕했다.“선우 의가는 무슨. 그냥 그렇네. 여기서도 기초부터 시작하면 그 구린 교수들이랑 다를게 뭐가 있어.”반년만 있으면 의술을 배워서 백아영을 짓밟을 수 있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다.“선우 의가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쓰레기인 거야.”선우주영은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경멸하는 표정으로 백채영을 조롱했다.지금 주변에 아무도 없기에 백채영에 대한 그녀의 태도가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났다.백채영은 깜짝 놀랐다가 앞에 있는 사람이 선우주영인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곧바로 불만을 품고 반박했다.“아직 적응이 안 된 것뿐이지 시간만 주면 적응해서 바로 배울 거예요.”“네가 적응할 때 되면 선우경진도 네가 가짜라는 것을 발견할 거야.”선우주영은 비웃으며 말했다.“너 선우 가문의 딸을 그렇게 쉽게 사칭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혈액 검사는 넘겼지만 아직 재능이 남아있어. 선우 가문의 공주님은 백 년에 한 번 나타나는 천재라 아무리 복잡한 선우 가문의 의술도 한 번 보면 배울 거야. 넌 기초적인 것도 한참 배워야 하는데 과연 들통이 안 날까?”백채영은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고 그제야 선우경진이 방금 전까지 왜 그런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는지 뒤늦게 이해했다.그녀가 멍청하다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재능이 부족해서 그녀에게 의문을 품은 것이었다!“그럼 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더 이상 선우경진을 따라 의술을 배울 수는 없잖아요.”선우주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너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널 감싸주고 있는데, 핑계를 대서 배우지 않으면 되잖아. 얼마나 쉬워? 하지만 백아영이 여기 있어서 혹시 어느 날에 선우 가문의 의술을 접할 기회가 생겨 바로 배워서 걔의 재능을 뽐낸다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만약 선우 가문 사람들이 백아영의 뛰어난 의학 실력을 보게 된다면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백채영은
“봤어? 성준 도련님은 혼사를 제안하려고 찾아온 거야. 이 결혼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회장님과 어머니도 모시고 왔잖아. 그때 네가 성준 도련님과 결혼했을 때는 감히 꿈도 못 꿨지? 하긴, 성준 도련님 같은 귀공자와 어울리는 사람은 존귀한 신분을 가진 채영 아가씨뿐이지.”도우미는 쌀쌀맞은 얼굴로 백아영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우리 채영 아가씨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가 따로 없는 주제에 대체 낯짝이 얼마나 두꺼웠으면 뻔뻔스럽게 성준 도련님과 결혼한 거야?”쟁반을 들고 있는 백아영의 손이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마치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듯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이성준이 혼사를 제안하러 왔을 줄이야.게다가 격식까지 갖추었으니 이성준과 백채영의 예식은 빠른 시일 내로 준비를 마치고 진행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두 사람이야말로 명실상부한 부부였다.“얼른 다과를 가져가서 세팅하지 않고 뭐해? 성준 도련님한테도 두 눈으로 직접 너랑 우리 채영 아가씨의 격차를 확인하는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어? 채영 아가씨는 귀한 선우 일가 따님인 반면 넌 남의 시중이나 들고 심부름 해주는 도우미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이야.”도우미가 백아영을 앞으로 밀치자, 그녀는 중심을 잃은 나머지 휘청거리며 본의 아니게 거실로 들어섰다.거실에서 시중을 들던 도우미가 즉시 큰소리로 꾸짖었다.“백아영, 조심해! 어쩌면 그렇게 칠칠맞지 못해? 음료수 하나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거야?”갑작스러운 호통에 거실에 있는 사람의 시선이 백아영한테 집중되었다.그녀를 발견한 이영철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지만, 금세 아무도 모르게 표정을 폈다. 포커페이스로 일관한 그의 얼굴은 과연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반면, 백아영이 이곳에서 도우미로 있을 줄은 몰랐던 오미란은 깜짝 놀랐다.이씨 가문에서 쫓겨난 이후로 이 정도로 몰락했단 말인가?그녀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백아영이 이혼하고 나서도 이씨 가문의 체면을 깎아 먹는다는 생각에 더더욱 못마땅했다.이성준
다과를 내려놓던 백아영의 손이 멈칫하더니 이내 코가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허수빈의 딸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이후로 뭇사람의 질타와 혐오를 한몸에 받았고, 다들 허수빈을 빌미로 그녀를 모욕하고 비난했지만 오로지 이성준만 부모가 저지른 잘못은 자식과 상관없다고 했다.백아영은 다과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이성준 바라보며 설명했다.“그 편지는 우리 엄마가 나한테 쓴 게 아니라 백채영한테 보낸 거야. 내가 일부러 선우 일가 아가씨를 사칭했다고 벌을 내릴 겸 채찍질...”백아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채영이 입을 열었다.“성준 씨, 그날 우연한 기회에 내가 선우 일가 아가씨라는 사실을 알고 제때 찾아갔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진짜 백아영에게 내 자리를 빼앗겼을지도 모른다니까?”백채영이 천만다행이라는 듯 말했다.“백아영은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이 커. 애초에 자기한테 보낸 편지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가족을 찾겠다고 간 거야. 내 자리를 대체하려고 하는 의도가 너무 티 나지 않아?”이성준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백아영한테 편지를 줬을 때 분명 모르는 눈치였어.”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건 누가 봐도 백아영의 편을 들어주는 느낌이라 백채영은 당황함과 불안감이 밀려왔다.이내 황급히 말을 보탰다.“왜냐하면 백아영이 성준 씨도 속였기 때문이지. 백아영한테 여태껏 간직해온 포대기가 있는데, 생모가 남긴 글귀가 적혀 있거든? 돈이 궁할 때 이 편지를 가지고 선우 일가 사람을 사칭한다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했어. 다들 포대기에 적힌 글씨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과연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명백한 증거물 앞에서 입만 놀린다고 해서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하지만 이성준이 물었다.“포대기는 어디 있는데?”지금 보겠다는 건가?순간 백채영은 안절부절못했다. 어쨌거나 보통 수단이 아닌 이성준이 일말의 의심이라도 품고 포대기의 진위를 검증한다면 그 비밀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포대기는 우리 집에 있어
백아영은 속으로 별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하지만 끝까지 캐물으려는 이성준의 기세에 어쩔 수 없이 그날 있었던 일을 대충 설명했다.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이성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가족을 뵈러 간 다음 날에 박라희가 포대기를 찾아냈다라... 마치 너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듯 타이밍이 늦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고 딱 맞아떨어졌어. 아마도 그녀가 몰래 다른 짓을 꾸몄을 가능성이 커. 포대기를 감정 맡겨 보면 알 수 있을 거야.”생각지도 못한 그의 발언에 백아영은 어안이 벙벙했다.어쨌거나 그동안 두 사람 사이의 원한 또는 박라희라는 예비 장모와의 관계를 놓고 봐서라도 박라희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백채영의 편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그녀는 멍한 얼굴로 이성준을 바라보았다.“내 말 믿어주는 거야?”넋을 잃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자 이성준은 불쾌한 듯 쌀쌀맞게 말했다.“내가 그 정도로 눈치 없는 것 같아?”백아영은 할 말을 잃었다.눈치가 없기는커녕 현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치가 있는 사람 치곤 어떻게 백채영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단 말인가?백아영은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피식 웃기만 했다.그동안 마음고생이 꽤 심한 듯 안색이 창백해 보였지만, 그녀가 미소를 짓는 순간 햇살보다 더 눈 부시고 따사로웠다.이성준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녀를 꿰뚫어 볼 듯한 남자의 날카로운 시선에 백아영은 안절부절못하더니 주뼛주뼛 말했다.“성준아?”이성준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순간 동공이 흔들리더니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을 보내 포대기를 가져갈 테니까 결과 나오면 알려줄게.”이성준의 도움으로 그나마 포대기 진위를 증명하는 일은 희망이 보였다.백아영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마워!”정원에서 멀지 않은 꽃밭 뒤편, 백채영은 싸늘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극도로 분노한 탓에 얼굴은 이미 잔뜩 일그
“아... 배가 아파요. 너무 아파...”백채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온통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그러다 소파에 털썩 쓰러져 배를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더욱이 그녀가 입은 흰색 드레스에 선홍색 핏자국이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박라희는 깜짝 놀라면서 큰소리로 외쳤다.“피! 아이! 아이가 큰일 났어요.”백채영의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선우 일가와 이씨 가문이 소중히 여기는 손자라서 순식간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선우소훈이 즉시 다가가 맥을 짚었다.이내 미간을 점점 더 찌푸리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산할 징조야, 얼른 가서 은침 갖고 와!”재빨리 침을 놓고 나니 백채영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이제 괜찮아.”선우소훈의 안색이 여전히 어두웠다.“혈액순환을 자극하는 음식을 먹어서 자칫 유산할 뻔했어. 채영아, 왜 그런 걸 먹은 거야?”백채영은 창백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저었다.“전 그런 음식 먹은 적이 없어요. 임신한 이후로 매사에 조심하고 있거든요. 오늘 과일이랑 태아에 좋다는 탕약 빼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선우경진이 벌떡 일어나서 테이블 위에 놓인 과일을 살폈다.“과일은 문제없는데... 금숙 씨, 약 그릇 아직 있어요?”“아직 아가씨 방에 있어요. 지금 가져올게요.”도우미가 잽싸게 반쯤 남은 약 그릇을 가져오자, 선우경진이 확인하기 시작했다.“탕약에 분말 유산약이 섞여 있네요.”선우경진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큰소리로 호통쳤다.“누가 약을 끓였죠?”금숙이 서둘러 대답했다.“백아영입니다.”이에 이성준의 표정이 굳어졌다.선우소훈이 버럭 화를 냈다.“백아영을 불러와!”거실에 도착한 백아영은 적나라한 악의를 고스란히 느꼈다. 다들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 듯 눈빛에 원망이 가득했다.선우경진이 먼저 나서서 물었다.“네가 여기에 분말 유산약을 탔어?”거실을 쓱 훑어본 백아영은 무슨 일인지 금세 눈치채고 딱 잘라 부인했다.“아니요.”“네가 아니면 누구겠어?”박라희는 화를 내며 욕설
박라희와 백채영 모녀의 애틋한 모습을 보자 안 그래도 박라희에 대한 의심이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철석같이 믿을 정도였다.이영철이 즉시 물었다.“굳이 확인할 필요 있나? 여기 있는 사람들이 우리 채영을 얼마나 예뻐한다고, 아마 백아영만 계속 질투하고 증오하며 잘못되길 오매불망 바랄 거야! 분말 유산약을 탄 범인은 백아영밖에 없어. 그녀의 변명을 듣는 것조차 시간이 아까우니 차라리 이 기회에 저 재수 덩어리를 깔끔하게 치워버리는 게 어때?”이영철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선우소훈 씨, 저년이 감히 우리 손자를 노렸어요. 이씨 가문에서 절대 쉽게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저한테 맡겨만 주세요. 다시는 채영을 다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할게요.”선우소훈은 백아영이 임신했다는 이유로 죄를 저질렀다 한들 태아와 관련 없는 일인 지라 처벌을 미루고 한 번쯤은 눈감아 주려고 했다. 게다가 맡은 바 일을 착실하게 해내고 개과천선의 기미라도 보인다면 채찍질은 면하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질 줄이야! 사람이 어찌 이 정도로 악랄할 수 있냐는 말이다.백아영에 대한 그의 증오는 이미 극에 달했다. 더는 그녀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럴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좋아요! 이영철 씨가 데려가세요. 앞으로 다시는 채영 앞에 나타나게 하지 마세요.”선우 일가는 가훈이 엄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남의 목숨을 구하는 사람들인지라 어느 정도 마음이 약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백아영이 선우 일가에 남아 있는 이상 적어도 인간 대접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씨 가문은 수단이 잔인하고 무자비하기로 소문났기에 그녀가 임신했다고 해도 절대 봐주지 않는다.만약 이영철에게 끌려간다면 그녀는 물론 아이까지 위험해질지 모른다.백아영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약을 탄 게 아니라고 다시 한번 설명했지만, 입이 닳도록 말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그녀가 악랄한 마녀라는 낙인이 찍힌 이상 편견을 가지고 애초에 변명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