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뭐 하는 거야? 놔, 너 누구야?"오도훈은 놀라서 큰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지만 그 남자 앞에서는 소용도 없었다. 그는 힘에 밀려 마치 개처럼 무릎을 꿇었다.백채영은 그를 내려다보면서 얼굴의 악의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도망가긴 어딜 도망가?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오도훈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당황한 표정으로 백채영을 바라보았다. "백채영, 너 날 잡아서 뭘 하려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너의 일을 말하지 않겠다고!" 백채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너는 이미 내 일을 한번 누설했으니 나는 두 번 다시 널 믿지 않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은 영원히 입을 다물어야 진정으로 비밀을 지킬 수 있거든." '백채영은 지금 내 입을 막으려는 거야?'오도훈은 놀라서 온몸을 떨었고 공포에 질려 급히 말했다."나는 맹세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돈을 받고 나면 바로 출국할께. 정말이지 평생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그러나 백채영은 싸늘한 눈빛을 하며 오도훈에게 아무런 기회도 주지 않았다.백채영이 명령을 내렸다. "조용히 목 졸라 죽여." 이 남자는 백채영이 비싼 돈을 들여 비밀리에 찾아낸 탈주범이고 돈만 충분히 쥐여준다면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 과 같은 일은 뭐든지 할 사람이었다.남자는 곧바로 오도훈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오도훈은 목덜미가 으스러질 것 같은 질식감을 느꼈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는 그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요실금을 하게 했다.그는 목청을 돋우며 힘겨운 소리를 내질렀다. "살...살려주세요..." 그러나 목이 졸린 그가 낼 수 있는 소리는 너무 작아, 그 소리는 방 밖으로도 나갈 수 없었고 바깥의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희망을 화장실 안에 있는 사람에게로 돌렸다.그러나 그가 필사적으로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도우러 나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그러다 유리문 뒤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생사의 최전선에서 오도훈의 머리는 그
백채영은 카메라를 보고 갑자기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챘다.백아영이 오도훈과 손을 잡고 그녀를 해하려는 것이었다!당황한 백채영은 오도훈을 죽일 겨를도 없이 급히 남자에게 소리쳤다. "카메라를 뺏어! 빨리! 뺏어!" 남자는 반쯤 비틀린 오도훈을 팽개치고 백아영에게 달려들었지만, 백아영의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욕실에서 뒤이어 튀어나온 두 명의 경호원에게 제압당했다.백아영은 차갑게 백채영을 바라보았다. "가자, 네가 경찰서에 갈 차례야!"방금까지 득의양양한 모양이었던 백채영이 지금은 또 얼마나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지 모른다. 경찰서에 가게 되면 그녀는 징역형을 선고받을 것이고 감옥에 가게 되면 그녀의 명예와 인생은 완전히 끝장날 것이다.심지어 이성준도 다시는 그녀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이제 막 결혼 준비를 하며 인생의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데...'"아니, 싫어. 안 갈 거야. 아영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미안해, 하지만 넌 이미 감옥살이를 마쳤잖아, 이제 날 감옥에 보낸다 해도 너한테 좋을 게 없잖아. 너 돈 모자라지? 내가 돈 줄게! 엄청 엄청 많은 돈, 네가 나중에 부자로 살 수 있게 해줄게. 나 너 집에 다시 데려올 수도 있어, 엄마 아빠한테도 전처럼 널 잘 대해주라고 할게. 앞으로 나도 다시는 널 괴롭히지 않을 거야, 너의 좋은 자매가 돼 줄게, 우리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되어봐. 아영아,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제발 나 경찰서에 보내지 마. 용서해 줘, 다시 한번 나에게 기회를 줄 수 없어?" 백채영은 백아영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했다.백채영은 정말 두려웠다. 그녀가 어렵게 얻은 최고의 인생이 갑자기 없어지지는 않을까...최근 몇 년 동안 백아영은 처음으로 백채영이 이렇게 비굴하게 비위를 맞추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이처럼 비위를 맞추며 애원하는 것 또한 뭔가를 베푸는 듯하였다.'집으로 돌아가 부모까지 돌려준다고?'한때 그들은 백아영이 제일 아끼던 가족이었고 그때만 해도 그녀는 가족들이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백아영은 곧바로 카메라의 작은 화면을 이성준 앞에 내밀고 방금 녹화한 장면을 재생했다.「"내가 은침을 뽑아 오도연의 다리를 절단했다 해도 어쩔 건데?"」「"네가 죽으면 앞으로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를 거야!"」카메라로부터 백채영의 목소리가 또렷이 울려 퍼졌다."백아영이 일부러 유도해서 내가 말한 것이지 사실이 아니야. 성준아, 쟤를 믿지 마!" 백채영의 격동된 소리는 이성준이 그녀의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된 듯 애써 잡으려는것을 보여주었다.그러나 확실한 증거 앞에서 그녀의 변명은 매우 보잘것없었다.이성준의 눈빛은 마치 만 년 동안 녹지 않는 빙하처럼 차가웠다.사람을 해하여 감옥살이한 것은 백아영이라는 사람의 가장 큰 오점이었고, 첫인상부터 그녀의 인품이 비열하다고 생각이 든 것도 여기서 비롯되었다.그런데...뜻밖에도 누명을 쓴 거라니...진짜로 악랄하게 사람을 해친 건 바로 이 착한 숙녀처럼 보이던 백채영이라니!사람 뒤에서 그녀는 살인하려는 모습을 숨기지도 않았는데, 그야말로 악랄하고 흉악하였다.예전에 그에게 아름다운 하룻밤을 주어 그더러 지금까지 잊지 못하게 한 여인의 실제 인품이 이 모양이라니...이성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다.백채영은 이성준이 자신을 혐오하고 실망하는 표정을 보고는 마치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뼛속부터 차가워지기 시작했다.그녀는 무섭고 두려워 몸을 떨었다.만약 이성준이 그녀를 돕지 않는다면 그녀의 인생은 끝장날 것이다!"성준아, 성준아,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니 다시 한번 기회를 줘. 넌 날 책임지겠다고 약속했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했잖아. 난 너의 미래의 아내니 날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없어... 우리 결혼식도 준비되고 있고 모든 사람이 우리가 결혼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이씨 가문도 더 이상 망신을 당해서는 안 되잖아. 네가 이 일을 정리하는게 어때?"백아영은 똑똑히 알고 있다. 이성준이 얼마나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지.전에도 아무리 자신이 싫어도 그 약속 하나만으로 자신을 지켜줬다.
"나와의 약혼을 취소하겠다고?" 백채영은 전보다 더 절망적이었고 두려움이 극에 달했으며 마치 모든 희망이 꺾인 것만 같았다."아니, 싫어, 성준아. 나 버리지 마. 넌 날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번복할 수 있어? 네가 날 원하지 않는다면 난 끝장이야, 내 인생은 끝장이라고! 성준아..."결정을 내린 이성준이 백채영을 바라보는 눈빛은 더 이상 온기 하나 없었고, 전혀 상관없는 낯선 사람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백채영, 너 스스로 잘 처리해."차갑게 한마디를 던지고 이성준은 몸을 돌려 차에 올랐다.시동을 거는 소리에 겁에 질린 백채영이 달려가 그를 막으려 했지만, 차창에서는 그의 차갑고 몰인정한 옆모습만 보였다.그녀는 온몸에 오한이 나는 듯한 절망을 느끼며 울음을 터뜨렸다."이성준, 너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 설마 네 마음속에 이미 백아영이 들어간 거야? 이참에 나랑 파혼하고 백아영이랑 같이 있고 싶다, 뭐 그런 거야?" 이성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백채영을 무시한 채 명령을 내렸다. "이만 가자." 마이바흐 차는 나는 듯이 달려갔다."성준아..."백채영은 처절하게 울부짖었지만, 마이바흐가 가차 없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낭패한 모습으로 괴로워하는 백채영을 보며 백아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이성준이 직접 백채영과 파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정말 단호하네... 감정이 없는 '아내'도, 사랑하는 여자친구도, 비열하고 악랄한 짓을 한 사람도, 다 똑같이 싫어하는 모습이네...'아무도 말리지 않은 덕분에 백아영은 무사히 백채영과 오도훈을 경찰서로 보낼 수 있었다.경찰서에서 진술하고 나오니 벌써 새벽이 다 되었다.민우진은 차를 몰고 백아영을 집 아래층까지 데려다줬다."우진 씨, 요 며칠간 저를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백아영은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민우진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녀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민우진은 차
서재 안, 이영철은 화가 난 나머지 찻잔을 쾅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백채영은 대체 뭐 하는 거야? 결혼을 앞둔 사람이 이렇게 큰 말썽을 부려? 내가 화 나서 죽는 꼴 보고 싶어?! 정수야, 목걸이 건네주기 전에 얼른 다시 가져와.”오정수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를 마치고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내 실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회장님, 선우 일가에서 이미 목걸이를 받았다고 합니다.”이는 사실 백아영한테서 훔친 목걸이인데 선우 일가를 상징하는 징표였다. 따라서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목걸이를 선물함으로써 선우 일가에서 백채영을 인정하게끔 할 작정이었는데, 지금은...띠리링!이때, 이영철의 개인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개인 연락처까지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기에 하필이면 타이밍까지 공교로워 누군지 굳이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이영철은 순식간에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그냥 모른 척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안 그래도 만나기 힘든 선우 일가를 이번에 연락이 닿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므로 지금 전화를 끊게 된다면 다시 접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결국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이영철 씨? 안녕하세요, 전 선우소훈이라고 합니다.”휴대폰 너머로 부드러우면서도 다급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영철 씨께서 보내주신 목걸이를 잘 받았습니다. 저희 손녀딸의 목걸이가 확실한데, 혹시 지금 이영철 씨랑 같이 있나요?”이영철은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목소리만큼은 차분하고 여유가 넘쳤다.“맞아요.”“이름이 뭐예요?”이영철이 느긋하게 말했다.“선우소훈 씨, 어린 손녀딸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어서 보고 싶기는 한데 어색하기도 하죠? 지금 그녀에 대해 알려준다고 해도 보여주기식 정보에 불과할 뿐, 선우소훈 씨께서 직접 남원에 오셔서 손녀딸을 만나는 것보다 못하지 않겠어요?”사실 그는 선우 일가 사람을 남원으로 불러들일 작정이었다. 왜냐하면 눈앞에서 상봉하게 해야만 어떤 상황은 통제하기 훨씬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다만 이제는
이른 아침, 사촌 동생 구민기는 와인을 들고 부리나케 별장으로 달려가 이성준의 방으로 곧장 향했다.“형...”밤새워 뒤척이던 이성준은 안 그래도 늦게 잠들었는데 날이 밝기도 전에 다시 눈을 뜨게 되자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며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이내 심기가 불편한 나머지 싸늘한 눈빛으로 구민기를 쏘아보았다.“중요한 일만 아니면 넌 죽었어.”잔뜩 날이 선 이성준의 모습에 구민기는 그가 백채영의 일 때문에 속상한 줄 알고 마음이 더더욱 안타까웠다.어쨌거나 모태 솔로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백채영은 이성준의 마음을 빼앗은 유일한 사람이지 않겠는가! 이성준이 결혼하고 싶어 한 여자는 백채영뿐인데, 그녀의 진면목을 알고 나서 혼사가 무산되었으니 당연히 힘들어하기 마련이다.그는 침대 옆에 걸어가서 앉더니 손에 든 와인을 흔들었다.“형, 모든 걱정은 술로 잊어버려. 술을 마시면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도 극복할 수 있을 거야.”이성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내가 괴롭다고 한 적이 있어?”구민기는 어리둥절했다.“실연했는데 아무렇지 않아? 형은 감정이 없어? 아니면...”구민기는 이성준을 빤히 쳐다보며 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채영 씨를 좋아한 게 아닌가?”이성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백채영 때문에 가슴이 설렜던 그날 밤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정작 백채영과 지내기 시작한 이후로 따분하고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이었다.심지어 그녀와 파혼하면서 이루 설명할 수 없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는데...“민기야.”이성준은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혹시 처음 만났을 때 가슴이 설렜던 여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미건조해진 적이 있어?”구민기는 고개를 저었다.“형, 나 어떤 놈인지 알잖아.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데, 과연 날 설레게 했던 여자가 있을까?”이성준은 어이가 없었다. 저 자식한테 물어볼 정도면 아직 잠이 덜 깨긴 했나 보네.“이제 그만 꺼져줄래?”구민기는 재빨리 머리를
백아영은 마음이 착잡하긴 했지만 진동하는 술 냄새 때문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말문이 막힌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이내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성준에게 다가가 말했다.“이성준, 침놓아 줄 테니까 혼자 옷 벗고 누울 수 있겠어?”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이성준이 고개를 들었다. 잘생긴 얼굴은 핏기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창백했고, 잔뜩 찌푸린 미간은 그가 고통을 얼마나 힘들게 참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술에 취해 눈동자가 살짝 풀렸지만, 백아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잡아먹을 듯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소름이 돋은 백아영은 했던 말만 되풀이했다.“혼자서 옷 벗고 누울 수 있겠어?”“옷을 벗어?”이성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곱씹더니 이내 몸을 틀어 소파에 누웠다.“네 소원이라면 이뤄줄게.”내 소원을 이뤄주다니? 마치 그녀가 본인이 옷 벗는 모습을 보기 위해 먼 길 찾아온 것 같은 말투는 뭐지?백아영은 어이가 없었다. 곧이어 이성준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고, 하얗고 탄탄한 피부가 눈앞에 점점 더 많이 나타나더니 목젖부터 복근까지 훤히 드러났다.완벽한 라인과 이성을 마비시킬 듯한 달큰하고 진한 와인향까지 더해 ‘유혹적인 옴므파탈’의 매력을 물씬 풍겼다.그녀는 주변의 공기마저 후끈 달아오른 느낌에 입이 바짝 말랐는데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이내 머릿속으로 떠오른 엉큼한 상상을 재빨리 떨쳐 버리고 고개를 홱 돌리더니 은침을 꺼냈다. 그러고 나서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는 다시 뒤돌아서 침놓는 데 집중했다.하지만 이성준은 술에 취했는지 평소와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남자의 저돌적인 시선은 뜨겁다 못해 데일 지경이라 백아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땀을 흘렸다.그런데 하필이면 진지한 표정으로 말까지 걸다니!“집중하는 모습 보기 좋네.”백아영은 화들짝 놀란 나머지 손까지 떨려서 자칫 급소를 잘못 찔러 그를 골로 보낼 뻔했다.그녀의 귀가 문제
진동하는 술 냄새와 공격적인 입맞춤으로 백아영은 정신이 아득했다.이내 머리가 윙윙거렸고, 당황스러운 나머지 넋을 잃고 말았다.이성준이 또다시 술 마시고 그녀에게 키스하다니! 어떻게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린단 말인가?백아영은 황급히 발버둥 치며 남자를 밀어냈지만, 컨디션을 회복한 이성준은 되려 치료해 준 은인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 그녀를 번쩍 들어 침대에 눕히고는 위로 올라타서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었다.게다가 키스에 만족하지 못하고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어루만지는 이성준 때문에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백아영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전류가 피부를 뚫고 몸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에 참기 힘들 지경이었다.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녀는 당장이라도 미칠 것 같았다.이성준의 손놀림은 점점 대담해졌고, 일촉즉발에 이르기 직전 백아영은 그가 자신의 목에 키스하는 틈을 타서 황급히 말했다.“이성준, 그만! 나 임산부야, 임산부라고!”거침없이 움직이던 이성준이 갑자기 우뚝 멈췄다.이내 잘생긴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노골적인 눈빛은 마치 백아영을 집어삼킬 듯 이글이글 타올랐다.백아영은 또다시 그를 자극할까 봐 꼼짝할 수 없었다.“이만... 놔줘.”놔달라고?“싫어.”이성준은 타오르는 욕망을 힘겹게 억누르며 백아영의 옆에 누웠고, 그녀가 마치 곰 인형이라도 되는 듯 탄탄한 팔로 꼭 끌어안았다.사실 그는 침착하기는커녕 날뛰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통제 불능의 지경까지 이르렀다.다만 이런 상황에서 자제력을 되찾음으로써 그녀를 향한 마음이 단지 육체적인 욕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마치 그녀에게...이성준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머리로 그녀의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백아영은 이성준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규칙적으로 변하자 잠이 들었다는 생각에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벌렁거리던 심장도 그제야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그러나 남자의 품에 안겨 숨결을 오롯이 느끼는 상황에서 그녀는 마음이 심란했고, 온몸이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