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뒤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더니 무리를 이뤘고, 이내 폭발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증상 초기에는 온몸이 나른해지며 힘이 없다가 나중에 극심한 고통이 밀려오면서 오장육부의 기능이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증상이 빠르게 악화한 사람은 이미 병원에서 위독 판정을 받았다.목숨과 직결된 일인지라 살고 싶은 욕망이 간절해진 환자들의 머릿속에는 별안간 선우 일가가 떠올랐다. 약을 사지 말라고 설득할 땐 들은 체도 안 하더니 결국은 뻔뻔스럽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다만 그나마 영업을 이어가던 선우 일가 소속 병원도 치료 방법이 없어 속수무책이었다.초반에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절망에 빠졌다. 게다가 옆에서 부추기는 인간 때문에 곡소리는 점차 원망으로 바뀌었고, 부작용이 생긴 탓을 선우 일가에게 돌렸다.“이게 다 선우 일가 탓이에요. 선우 일가 때문에 우리가 이 지경이 된 거죠. 회복약이라는 걸 개발한 장본인이잖아요. 선우 일가의 명성만 아니었다면 전 사지도 않았을 거예요.”“이제 일이 터지니까 나 몰라라 하고 생사 따위 관심 없다는 건가?”“우리가 죽으면 당신들 탓이니 당장 책임져요!”선우 일가 사람은 한숨을 내쉬며 반박했다.“저가 회복약이 부작용이 있다고 일찌감치 경고했잖아요. 사지 말라고 그렇게 설득했는데 귓등으로 듣더니...”“다들 봤죠? 그래서 지금 쌤통이라는 거예요? 의사의 사명감을 운운할 때는 언제이고 그냥 거짓말쟁이가 따로 없네요!”“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원흉인 선우 일가가 멀쩡하다는 게 말이 돼요? 목숨으로 갚아요!”사람들의 감정이 격해지자 환자 가족들은 이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듯 선우 일가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심지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 병원을 부술 기세였다.결국 선우 일가는 어쩔 수 없이 모든 병원을 닫았다.그러나 끝까지 물고 늘어진 사람들이 선우 일가 별장의 위치까지 알아내서 무리 지어 몰려왔다. 어찌 됐든 머릿수만 믿고 선우 일가에서 손까
순간, 이성준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만약 지금 말린다면 아영이가 평생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낄 거예요...’아까만 해도 그는 믿기지 않았다. 백아영이 막무가내로 억지 부리는 사람을 보면 스스로 혹사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 보자 이성준이 백아영을 더 잘 알고 있는 건 사실인 듯싶었다.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빠삭했다.반면,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백아영.”성무열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 결국 난 한 달 넘게 허튼짓만 한 거네, 맞아?”백아영은 한숨을 쉬었다.“미안해.”“미안할 필요는 없어. 진작에 나한테 으름장 놓았지만, 내가 고집을 부려서 한번 시도해보려고 했을 뿐이야. 다만 결국은 이렇게 될 줄이야...”성무열은 쓴웃음을 지었다. 비록 아직 약속 시간이 남았지만,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는가?“만약 중학교 때 전학 가지 않고 계속 네 곁에 머물렀다면 널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였을 거야.”성무열의 표정은 여전히 오기가 넘쳤다.“백아영, 단지 네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우리의 계약을 일찍 끝내는 거야. 이성준과 헤어지는 순간 꼭 다시 널 찾아갈 테니까!”깜짝 놀란 백아영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무열이 먼저 포기하다니?이내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며 마치 새장에서 탈출한 새처럼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무열아, 고마워! 선우 일가한테 지원한 돈은 나중에 꼭 갚을게.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바로 달려갈 테니까. 넌 참 좋은 사람이야, 우린 영원한 친구 맞지?”“그만! 입 다물어. 괜히 핑계 대지 마.”성무열은 씩씩거리며 뒤돌아서 떠났다.이내 백아영의 눈길이 닿지 않은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건방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실망과 슬픔이 서서히 드러났다.10년 넘게 좋아한 여자였지만, 결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니.성무열이 떠난 뒤 백아영은 재
계단 입구에는 선우 일가 경호원이 수두룩했고, 잔뜩 흥분한 환자 가족들이 백아영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 막았다. 백아영은 계단을 내려오다가 멈춰 서서 도도한 표정으로 그녀를 잡아먹으려고 안달 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이내 무덤덤하게 말했다.“부작용 치료법을 연구해냈으니까 살고 싶은 사람은 그만 소란 피우세요.”그녀의 한마디에 북새통이 따로 없던 거실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절망으로 빛을 잃었던 수많은 눈동자가 순식간에 희망이 차올랐다.“진짜요?”그러나 곧바로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부작용 치료법을 알고 있으면서 왜 진작 공개하지 않은 거죠? 다들 속지 마세요! 어쩌면 우리를 낚으려고 하는 말일 지도 몰라요.”“그러니까, 분명 거짓말일 거예요. 선우 일가가 더는 버티지 못하겠으니까 우선 사람 한 명을 보내서 위로하는 척하다가 그 틈을 타서 도망치려는 작정인가 봐요.”가뜩이나 불안한 사람들은 이 말을 듣자 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백아영은 분위기를 몰아가려고 선동하는 몇몇을 힐긋 쳐다보더니 얼굴을 똑똑히 기억했다.그러고 나서 다시 걸음을 옮겨 계단에서 내려왔다.“아영 씨, 가지 마세요.”선우철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백아영의 앞을 가로막았다.백아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걸어가는 대신 선우철에게 약병 하나를 건넸다.“중병에 걸린 사람 아무나 찾아서 먹여주세요.”선우철은 즉시 약병을 받아들고 약 먹을 의향이 있는 환자를 찾으러 갔다.비록 여전히 관망하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목숨이 간당간당해서 기꺼이 시도해보려고 약을 꿀꺽꿀꺽 마시는 환자도 있었다.약을 마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쁘게 내쉬던 호흡이 점차 안정되었고, 컨디션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비록 당장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진짜 효과가 있네요!”“맙소사, 정말 부작용이 사라졌잖아? 다행이네, 이제 우린 살았어요!”“아영 씨, 얼른 약 주세요! 저도 먹을래요.”“저요! 저도 필요해
백아영이 소란을 선동한 사람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아니나 다를까 제일 뒤편에 서 있는 민우진을 발견했다.‘역시나 올 줄 알았어.’백아영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곧이어 기다란 다리를 움직여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백아영의 앞을 지키는 경호원 때문에 그는 멀찍이 멈춰섰다.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만큼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동안 봄바람처럼 따뜻한 느낌이 온데간데없었다.“아영 씨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독하네요. 테스트하려고 스스로 몸을 혹사하면서 괴로움에 몸부림칠지언정 저한테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거예요?”백아영은 한숨을 쉬었다.“이제 포기했어요?”이번 소동을 겪으면서 그가 만든 저가 회복약도 우세를 잃게 되고, 민씨 가문까지 연루되어 더는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존재하지 않았다.그러나 민우진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후회한 적도 없어요.”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경호원 벽을 교묘하게 뚫고 백아영을 향해 돌진했다.반면, 이씨 가문 별장.위정이 다급하게 서재로 뛰어왔다.“사장님! 백채영이 찾아왔어요.”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보드를 두드리던 이성준이 우뚝 멈췄고, 고개를 들어 싸늘하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말했다.“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찾아오지?”이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왔는지 두고 볼 거야.”이성준은 성큼성큼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거실에 서 있는 백채영의 옷차림은 사뭇 깔끔해졌고, 정성이 돋보인 메이크업까지 더해 다시 예전의 숙녀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그녀는 이성준을 바라보며 스스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미소를 지었다.“성준 씨.”그동안 PC랑 거의 같이 살다시피 한 이성준은 강도 높은 프로그래밍과 장시간 작업 때문에 피곤함이 극에 달했다.이내 소파에 앉더니 여전히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고 말했다.“목적이 뭔지 얘기해.”이성준의 무뚝뚝한 모습을 보고도 백채영은 마지막일 지도 모
조마조마하던 백채영의 가슴이 드디어 진정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백승구부터 보여줘.”“백승구를 데려와.”이성준이 말했다.최근 백승구의 병세는 점점 심각해졌고, 백아영이 약을 수도 없이 보내준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완치까지는 힘들었다.사실 그는 기꺼이 백승구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악마와 다름없는 아이라고 하지만 죽어가는 모습을 마냥 지켜보고 싶지는 않았다.곧이어 누군가 백승구를 안고 올라왔다. 녀석은 살이 빠져서 뼈가 앙상할 정도였고, 창백한 얼굴은 핏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삐쩍 마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아이를 건네받은 백채영은 마치 한 무더기의 뼈를 안고 있는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고, 속으로는 이렇게 되었는데 과연 살릴 수 있냐는 의문이 들었다.그러나 이 지경까지 온 이상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으로 발악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더는 물러날 길이 없었다.“성준 씨, 내가 왜 백승구를 구하려고 하는지 알아?”백채영은 품에 안긴 아이를 원망과 증오가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왜냐하면 백승구가 내 친아들이거든.”이성준의 동공은 급격히 흔들리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당시 백채영이 아이를 낳고 나서 그는 이현무와 친자확인을 했으나 백채영은 검사한 적이 없었다.설마...“맞아, 성준 씨 추측대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바꿔치기 당했어. 현무의 생모는 사실 백아영이야.”백채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정말 짜증 날 정도로 부럽네. 사실 하룻밤 상대가 황도훈이었지만, 운 좋게 성준 씨와 자게 되었거든. 설령 내가 백아영의 자리를 대신해도 성준 씨는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끌렸잖아. 돌고 돌아 결국 백아영을 선택하다니...”“뭐라고?!”이성준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고, 충격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4년 전, 왠지 모르게 위화감을 느꼈던 사소한 일들이 문득 확신으로 변하면서 납득이 갔다.그날 밤을 제외하고 백채영에 대해 이상
곧이어 날카로운 단검을 백아영의 목에 겨눴다.“아영 씨, 미안해요.”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만큼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백아영은 등골이 오싹했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사실 심은아를 내보낼 때부터 그녀를 어느 정도 경계하고 있었다.그런데 쫓겨났던 사람이 어찌 소리소문없이 이곳에 나타난 걸까?“심은아 씨, 뭐 하시는 거예요?”선우철은 깜짝 놀라 버럭 화를 냈다. 순간, 후회가 물밀듯이 몰려왔다.심은아를 들여보낸 사람은 바로 그였다.조금 전 심은아가 급히 찾아와서 이도하의 단서를 발견했다며 구해주러 가자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거실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는지라 우선 심은아를 집에 들여보냈고, 소란을 잠재우고 나서 그녀와 함께 이도하 구하러 가려고 했다.하지만 결국 적을 집안에 불러들인 꼴이라니!“은아 씨, 혹시 누가 도하 도련님을 빌미로 협박한 건 아니죠? 어리석은 짓은 그만하고, 우리가 대신 구해줄 테니까 믿어주세요.”심은아가 피식 비웃었다.“이도하는 고작 버리는 카드에 불과하죠.”백아영은 절망에 빠져 눈을 질끈 감았다.그동안의 모든 의혹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첫 만남부터 심은아에게 속았다.심은아는 방에 갇힌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다.온유성이 치료 중에 갑자기 정전된 일은 물론 선우 일가에서 일어난 모든 우연의 일치와 사건 사고는 전부 심은아가 몰래 꾸민 꿍꿍이였다.그동안 선우 일가에 숨어 있던 스파이가 바로 심은아였다.그녀는 모두의 눈을 피해 온갖 말썽을 부렸다.“도하 도련님도 속은 거예요?”백아영의 목소리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도하 도련님에게 무슨 짓을 했어요?”“걱정하지 마세요. 어쨌거나 아이의 아버지인데, 고분고분 말만 잘 듣는다면 목숨은 붙어 있을 거예요.”날카로운 단검이 백아영의 목에 바짝 다가왔다. 심은아는 백아영의 귀에 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아영 씨, 본인 걱정이나 하세요. 저랑 같이 가시죠?”심은아는 백아영을 붙잡고 밖으로 걸어갔다. 피부에 닿은 날
차 안에서 민우진은 자연스럽게 백아영을 건네받았고, 이미 힘이 빠진 그녀를 품에 안았다.여태껏 안아본 게 처음이지 않은가?백아영과 스킨십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줄이야!민우진은 흐뭇한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아영 씨, 제가 진작 이렇게 했더라면 그동안 불필요한 시간 낭비는 없었겠죠?”후회란 찾아보기 힘든 그의 말에 백아영은 괜히 슬프고 처량한 느낌이 들었다.“우진 씨는 항상 좋은 의사이자 상류층에서 명망 높은 귀공자로 소문이 자자한데 이제 평판도 바닥나고 심지어 민씨 가문까지 연루되었잖아요. 과연 저 때문에 그럴만한 가치가 있나요? 게다가 날 납치한다고 해서 아무 소용 없어요. 제 마음은 이미 딴 곳에 있고, 사람 또한 붙잡지 못할 거예요.”그녀는 단지 잠깐 붙잡혀있을 뿐이다.선우 일가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구할 것이며, 이성준도 수수방관할 리가 없었다. 물론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대신 틈만 나면 도망칠 작정이다.이렇게까지 하면서 붙잡는 건 너무 힘들고, 지치기도 하며 무의미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들어 차창 뒤쪽을 바라보았다.“거 봐요. 이성준이 벌써 따라붙었네요. 어쩌면 절 데려갈 수 없을지도 몰라요.”민우진의 미소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눈빛이 싸늘해지면서 경계로 가득했다.이성준은 선우 일가와 달리 싸움도 잘하고 지능도 뛰어났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백아영을 데려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그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터널로 진입한 차량 앞에 갑자기 똑같은 차가 몇 대 더 나타났는데, 안에 모두 백아영과 비슷한 몸매에 같은 옷차림의 여자가 머리에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민우진은 손을 들어 백아영을 기절시키고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그녀의 머리에 씌워주었다.그러고 나서 백아영을 품에 안고 차에서 내리더니 검은색 마스크를 쓰지 않은 여자가 있는 차에 태웠다.이내 뒤돌아서 심은아에게 신신당부했다.“아영 씨 데리고 먼저 출발하세요. 이성준은 내가 상대할 테니까.”“네.”심은아는 그
이성준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선택지가 7개나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정확하게 골랐다.다만 아쉽게도 똑같이 민우진에게 속은 입장이다.급제동한 마이바흐가 멈춰서기도 전에 이성준은 긴 다리로 차에서 내렸다.이내 무시무시한 살의를 내뿜으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닥에 쓰러진 여자를 포함해 현장에 있는 사람을 훑어보았다.“백아영은 어디 있지?”제갈연준은 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자를 발로 툭 걷어찼다.“여기 있잖아? 이성준, 우린 똑같이 민우진에게 농락당한 피해자들이야. 지금 쫓아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그는 백아영을 쫓아가는 걸 단호하게 포기했다. 어쨌거나 이성준이 뒤따라온 이상 부하들도 곧 도착할 것이고, 이성준과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면 백아영은 영원히 따라잡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비록 짜증도 나고 울화가 치밀었지만, 제갈연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결정을 내렸다.심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열 받아서 이를 꽉 악물었다. 하지만 입맛 벙긋했을 뿐 결국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이미 민우진에게 보란 듯이 당했는데 싸움까지 일으킨다면 그의 바람을 이뤄주는 꼴이 된다.눈앞의 사람들은 백아영을 곤경에 빠뜨린 장본인이라서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이성준은 그래도 이성을 잃지 않고 미련 없이 뒤돌아서 차에 올라타 U턴하고 쏜살같이 떠났다.지금은 백아영을 되찾는 게 급선무였다.그러고 나서 다시 결판내도 늦지 않았으니까.이성준이 도로를 질주하던 중 다른 차량을 막으러 출동했던 헬기들이 잇달아 소식을 전해왔다.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이미 확인한 5대 차량에 백아영은 없었다.결국 마지막 한 대만 남았다.이성준은 풀 액셀을 밟고 도로 위에 잔상이 남을 정도로 달렸다. 이내 위험천만한 코너에서 마지막 차량을 따라잡았다.차는 충돌을 피하려다 그만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에어백이 터지면서 기사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이성준은 뒷좌석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차 문을 벌컥 열었다.“아영아...”그가 다가가는 순간 날카로운 단검에 날아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