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준의 품에 기대고 있던 백아영은 갑자기 몸이 굳어졌다.그제야 성무열과 약속한 두 달의 연애가 생각났고 지금 대외로도 그녀의 남자친구는 성무열이다.그는 서둘러 다가와 손을 뻗어 백아영의 어깨를 감싸 안으려고 했으나 이성준이 놓아주지 않았다.순간 두 사람 사이에 줄다리기가 이어졌고 서로 경계하며 불꽃이 튀어 올랐다.양쪽으로 몸이 갈리지는 느낌이 들면서 중간에서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된 백아영은 난처함에 몸 둘 바를 몰랐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혼자 갈게...”그러나 아무도 손을 놓지 않았고, 두 남자는 오히려 그녀를 더 꽉 껴안았다.성무열은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아영아, 네가 말해. 누구랑 갈 건지.”이 말은 단순히 누군가를 따라간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았다.어찌 됐든 지금은 성무열의 여자친구이기에 그와 함께 가는 게 맞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동안 자신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노력한 이성준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아영아, 네가 성준 씨한테 고마움을 느끼는 건 나도 알아. 그건 내가 나중에 보답할 테니까 더 이상 그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돼.”성무열은 입에 발린 소리를 내뱉으며 속 좁게 말을 이었다.“네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고 했잖아.”그 말은 날카로운 바늘처럼 가슴을 찔렀다.이성준은 침울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녀가 답하기만을 기다렸다.백아영은 그들의 뜨거운 시선에 몸이 불타는 듯 따끔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성무열의 말은 일종의 경고이자 도덕적 위협이다.두 달 동안 여자친구가 되어주기로 약속했고 아직 시간이 남아있으니 아무리 이성준에게 고마움과 죄책감을 느낀다 해도 지금은...약속도 지켜야 하고, 성무열한테 은혜도 갚아야 하니 이성준한테 진 빚은 앞으로 천천히 만회하기로 생각했다.생각을 가다듬은 백아영은 이를 악물고 미안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성준아, 고마웠어.”고맙다는 말은 단번에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이성준은 기분이 착잡했고 눈빛에는
이성준은 넋을 잃은 채 자리에 서 있었고, 그의 손을 살며시 잡은 이현무의 큰 눈에도 실망으로 가득 찼다.“아빠, 아영 아줌마 우리랑 같이 있는 게 싫대요?”이성준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허리 숙여 이현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약속했다.“아니, 꼭 우리랑 함께할 거야! 무조건!”성무열과 백아영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호원은 도망치고 있던 백채영을 잡아 왔다.이영철이 무너진 후 의지할 구석이 없었던 백채영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겁에 질린 얼굴로 용서를 빌고 있었다.“성준 씨,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협박받고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 내가 현무 엄마인 걸 생각해서라도 용서해 줘.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될까? 한 번만...”이성준은 싸늘하고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백채영을 바라봤다. 그동안 그를 구한 적 있다는 이유로, 현무의 엄마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너무 많은 기회를 주었다.그러나 거듭된 기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거부한 채 점점 더 악랄해져 현무를 납치하는 일까지 저질렀다.그녀의 모든 행동은 한 아이의 엄마가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백채영, 넌 권력과 명예밖에 모르는 사람이야. 정상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네 꿈이지? 그래, 내가 그걸 이뤄줄게.”이성준의 말투는 한없이 차가웠다.“지금부터 백씨 일가에 대한 모든 협력 지원을 철회하고, 백채영의 모든 자금을 회수한다!”협력을 철회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순간 백씨 일가는 가장 빠른 속도로 파산하게 되고 백채영은 지금껏 누렸던 모든 걸 잃게 된다!이제 그녀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가난에 허덕이면서 개보다 못한 생활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안돼, 아니야. 성준 씨, 한 번만 용서해 줘. 제발 한 번만...”백채영은 겁에 질린 울음을 터뜨리며 이성준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려고 몸부림쳤지만 이성준은 혐오스러운 듯 피하며 이현무를 안고 성큼성큼 떠났다.이현무마저도 그저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 조
불법 약물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 덕분에 경찰은 최대한 빨리 심씨 일가를 압수 수색할 수 있었다.몰락할 위기에 처하자 심씨 일가 사람들은 법을 어기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바빴다.경찰들과 추격전을 벌이고 있던 그때, 외진 산길에서 차 한 대가 통제력을 잃고 숲으로 돌진하여 비탈길을 따라 아래로 굴러떨어졌다.한참을 구르고 나서야 겨우 멈췄고 차는 크게 박살나 꼴이 말이 아니었다.누군가 부서진 차 문을 힘겹게 열어젖혔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안에서 기어 나왔다.산 위에서도 수색하는 발소리가 들려왔지만 부상을 입은 탓에 일어서지 못했고 도망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니 절망한 채로 멍하니 자리에 멈춰있었다.그 순간 그녀의 앞에 반짝이는 구두 한 켤레가 나타났고, 회색의 정장 바지를 따라 올라가자 민우진의 온화한 얼굴이 보였다.그러나 눈빛만큼은 살벌했다.“심유미 씨, 제가 도와줄 테니 저랑 거래하지 않을래요?”이미 궁지에 몰린 심유미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좋아요!” ...그동안 걱정 때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던 백아영은 피곤한지 꼬박 하룻밤을 잤고 일어나자마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심씨 일가에서 신우 일가의 신약을 복제한 증거를 찾아냈는데, 이는 백아영이 이영철한테 준 약이 진짜고, 나중에 발견된 것이 가짜라는 걸 증명하기에 충분했다.모든 건 심씨 일가에서 계획한 일이었다!심씨 일가에서 어떻게 복제한 신약을 선우 일가와 바꿔치기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할머니를 죽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백아영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었다.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백아영은 당장이라도 증거를 들고 직접 이씨 가문으로 찾아가고 싶었다.그러나 걸음을 떼자마자 성무열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다 나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움직이면 안 돼. 가만히 누워서 쉬어!”그는 박력 넘치게 말하고선 옆에 있던 선우철한테 명령했다.“이 증거들을 이씨 가문으로 가져다줘요. 사례나 보답은 필요 없고 이걸로 선우 일가와 이씨 가문은 서
선우철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성준 씨, 다름이 아니라 증거를 전달하러 왔습니다.”선우철은 재빨리 증거들을 넘겨줬고 그걸 건네받은 이성준은 예상한 결과인 듯 크게 놀라지 않았다.그는 이현무를 방으로 돌려보낸 후, 이영철이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강원에서 돌아온 그는 줄곧 이곳에 갇혀있었고 몇몇 경호원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이영철은 여전히 강원에서 입던 옷을 그래도 입은 채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소파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앞에 놓인 음식은 차갑게 식어있었고 손자가 아니라 원수를 바라보듯 한 싸늘한 눈빛으로 매섭게 이성준을 노려봤다.“여기엔 왜 왔어? 당장 나가!”이성준은 그에게 다가가 방금 받은 증거들을 건네줬다.“이게 진실이에요. 할아버지가 선우 일가에서 찾은 약은 심씨 일가에서 만든 복제품이에요. 이거 외에도 대량의 복제품을 만든 증거가 발견되었고 할머니의 죽음은 백아영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이영철은 눈빛이 흔들리더니 재빨리 증거들을 건네받아 훑어보았고 표정은 점점 창백해지고 추악해졌다.“아니, 그럴 리가 없어...”손은 저도 모르게 덜덜 떨렸다.“백아영이 한 게 틀림없어. 심씨 일가가 왜 그런 짓을... 절대 아니야...”복수하기 위해 그 어떤 대가도 기꺼이 치르리라 다짐하고 심씨 일가와 손을 잡았는데 이제서야 아내를 죽인 범인이 심씨 일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그럼, 그동안 했던 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자신의 아내를 죽인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버려졌다...“이성준, 네가 날 속이고 있는 게 틀림없어. 이건 가짜야, 다 가짜라고!”이영철은 현실 부정하며 화를 내더니 모든 자료를 찢어 방안에 날렸다.이성준의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싸늘한 표정으로 침착하게 말했다.“이곳에서 편히 쉬세요. 할머니 복수는 제가 할게요.”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떠났다.이영철은 여전히 불신 가득한 얼굴로 소파에 꼿꼿이 앉아 있었으나 전체적인 기운은 빠르게 쇠퇴하고 있었다....심씨 일가의 사건은
지금 이 순간 백아영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마구 뛰었고 마치 꿀 먹은 듯 달콤한 느낌이 들었다.“경진 씨를 위해서 파티 준비했는데 같이 갈까?”이성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매력적이었고 순간 정신이 멍해진 백아영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졌다.그러나 어디선가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성준 씨, 제가 준비했으니까 귀찮게 그럴 필요 없어요.”오는 길에 차가 잠깐 고장 났던 성무열은 다른 사람보다 한발 늦게 도착했다.그러나 도착하자마자 추파를 던지고 있는 이성준의 모습을 보고선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백아영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자신을 과시했다.방금 전까지 핑크빛이 맴돌던 세상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불쾌한 느낌이었다.그녀는 자리에 뻣뻣하게 선 채 불편함을 억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이성준이 표정도 어두워졌고 당장이라도 성무열을 죽여버릴 듯 살기 넘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가족끼리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 성준 씨를 초대하기엔 불편하니 저희는 먼저 가볼게요.”그는 백아영을 끌어안고 건방진 태도로 차를 향해 걸어갔다.백아영은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성준을 바라봤다. 좋은 기분은 순식간에 먹구름이 낀 듯 우울해졌고 경직된 채로 성무열에게 이끌려 갔다.그 모습을 본 선우경진은 한숨을 내쉬었다.선우경진은 줄곧 이성준과 백아영의 사랑을 응원했는데, 구치소에 갇혀 있던 사이에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날 줄은 아예 몰랐고 갑자기 나타난 성무열이 당황스럽기만 했다.서로 좋아하면서도 함께 할 수 없는 그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성무열은 고급 펜션을 예약했다.장소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백아영이 품에 들고 있던 장미꽃을 빼앗아 쓰레기통에 버렸다.백아영은 짜증을 내며 차에서 내렸다.“성무열, 그걸 왜 버려?!”다시 주우려고 했지만 성무열이 제지했다.“내가 더 많이 사줄게.”“그거랑 달라!”백아영은 화가 난 채로 반박했다.“다르다고? 이성준이 준거
분위기 망치지 말라고 눈치 주는 거나 다름없었다.백아영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그래, 착하지.”성무열은 만족스러운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강제로 껴안은 채 펜션을 향해 걸어갔다.백아영은 고개 돌려 쓰레기통을 바라봤고 그녀의 두 눈은 괴로움으로 가득 찼다.싸울 땐 언제고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되찾은 그들을 바라보며 그저 평범한 커플이 밥 먹듯 하는 사랑싸움인 것 같았다. 하지만...선우경진은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함을 느꼈다.“고모부.”그는 조용히 온유성을 뒤따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두 사람 사이 어떻게 생각해요?”온유성은 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이성과 지능은 잃지 않았다.선우경진의 질문에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아영이가 두 사람을 보는 눈빛이 달라. 말로는 서로의 첫사랑이라고 하던데, 내가 봤을 땐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증거가 없었고 백아영한테도 여러번 물었는데 돌아오는 건 정말로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가식적인 위로뿐이었다. 선우경진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며칠 동안 살펴볼게요. 성무열이 어떤 사람이든 아영이가 절대 혼자 속앓이하지 않게 도와줄 거예요.”...파티 다음 날, 백아영은 어디선가 느껴지는 좋은 향기에 눈을 떴고 웬 도우미가 손에 장미꽃을 든 채 다가왔다.핑크색 장미꽃은 하트모양을 이루고 있었고 어제 이성준이 선물했던 꽃다발과 색깔만 빼고 거의 똑같았다.순간 심정이 두근거린 백아영은 다급하게 물었다.“누가 보낸 거예요?”“성준 도련님이 사람 시켜서 보내셨어요.”이성준이 보냈다는 말에 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어제 쓰레기통에 버려진 장미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는데 다시 똑같은 걸 받으니 기분 좋아진 그녀는 손을 뻗어 꽃을 껴안았다.“저녁을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시던데 가실 거예요?”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성무열이 말했던 것들이 떠올라 차마 그럴
바쁜 하루를 보낸 뒤 지친 몸으로 공장을 나오던 백아영은 길가에 멈춰선 은회색 스포츠카를 발견했다.성무열은 장미꽃 한 송이를 입에 물고, 보닛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멋진 포즈를 취했는데 양아치 느낌이 물씬 났다.“아영아.”이내 그녀를 향해 윙크를 날리더니 요염한 눈으로 끼를 부리기 바빴다.그러고 나서 장미꽃을 그녀에게 건넸다.“미인에게 장미꽃을 바칠게.”매력 발산하는 모습은 어제 그녀와 싸우고 억지 부리던 사람과 전혀 달랐고, 마치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았다.백아영도 굳이 다시 언급하기 귀찮은 듯 장미꽃을 무심하게 건네받았다.“바쁘다면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대?”성씨 일가가 국내로 복귀하면서 성무열이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므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성무열은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아무리 바빠도 널 소홀히 하면 안 되지. 여자친구가 퇴근할 때 픽업 와서 집까지 데려다주는 건 기본 아니겠어?”역시 그는 입만 살았다.백아영도 이제 익숙한 듯 태연하게 조수석에 올라탔다.“출발해.”성무열은 그녀를 힐긋 바라보았다.“기분이 좋은가 보네?”“응.”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내가 픽업 오는 게 꽤 좋나 봐? 앞으로 매일매일 데리러 올게.”성무열이 뿌듯한 얼굴로 말하자 백아영은 어이가 없었다.물론 설명하기도 귀찮았다.‘본인이 그렇다는데 뭐.’그 뒤로 매일 아침 백아영은 아름다운 장미꽃을 받았는데, 덕분에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그리고 오후가 되면 공장에 이성준이 보낸 차가 도착했고, 때로는 음료수와 디저트, 때로는 과일과 쿠키를 보냈는데 겹치는 날이 한 번도 없었다.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는 듯싶었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한창 서류에 사인하느라 정신없던 성무열은 그동안 이성준이 매일 오후 공장에 음식을 가져다줬다는 사실을 문득 전해 듣게 되었다.“젠장! 왜 이제야 알려 주는 거야?”성무열은 화가 나서 서류를 내팽개쳤다.“
어차피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눈앞의 아름다운 경치까지 더해 얼어붙었던 백아영의 마음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결국, 바다 위의 장관에 흠뻑 빠져들었다.그녀는 소파에 몸을 파묻고 탁 트인 바다를 보며 기분이 한결 편안하고 좋아졌다.그동안 쌓였던 피로도 말끔히 사라졌다.백아영의 시선은 바다로 향했고, 이성준은 태양보다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마음에 들어?”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백아영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이성준이 피식 웃었다.“다음에 또 오자.”다음...성무열과 한 약속을 문득 떠올린 백아영은 머리가 지끈거렸고,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성준아, 바다도 봤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자.”퇴근 시간이 곧 다가오는지라 공장까지 픽업하러 온 성무열이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또 말썽을 부리기 마련이다.그녀의 생각을 단번에 꿰뚫어 본 이성준은 눈빛이 어두워졌다.다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저기 봐!”백아영은 이성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 핑크 돌고래 떼가 그들을 향해 헤엄쳐 오고 있었다.고래 떼가 수면 위를 드나들며 앞다투어 헤엄치는 장면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가까이 다가온 녀석들은 요트 주변을 여러 바퀴 맴돌다가 멀지 않은 곳에 모여서 함께 퍼덕거렸다.이를 본 백아영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무 귀엽잖아!”“만져볼래?”이성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만져봐도 돼?”백아영은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성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외투를 벗고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백아영은 아연실색하며 서둘러 외쳤다.“이성준, 지금 뭐 하는 거야? 위험해! 얼른 올라와.”돌고래 한 마리가 이성준을 등에 업고 바다 위로 떠 올랐다.그는 돌고래를 팔로 감싸고 요트에 다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자, 만져봐.”돌고래와 이성준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황홀경이 따로 없는 아름다운 장면에 백아영의 심장이 쿵쾅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